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아버지의 좌천으로 인해 서울에서 시골로 전학 오게 된 모범생 한병태.


그는 서울에 비하면 보잘 것 없이 초라하고 촌스러운 이 시골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어르신들 말로 하자면 '내 신세가 어쩌다 이렇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맘에 들지 않는 것이 있다.




"역시 우리 석대야. 짜식들아, 너희도 느 반장 하는 거 반만큼만 해봐라."




반장 엄석대.


특유의 카리스마와 좋은 성적으로 선생들 사이에서 전폭적인 신뢰를 받고 있는 그.




그러나 한병태는 머지않아 그의 횡포를 하나씩 알게 된다.




빌린다는 핑계로 물건을 가져가서 돌려주지 않는다든지.


억지로 바지를 내리고 자위 행위를 시키며 낄낄댄다든지.


강제로 시험에서 이름을 바꿔내게 한다든지.




그 모든 것을 아이답지 않은 능숙한 폭력과 권모술수로 일궈내고, 또 담임 앞에서는 모범적인 학생을 연기한다.




엄석대는 한 마디로 왕이었다. 


적어도 이 반 안에서만큼은 그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독재 군주였다. 




그리고 그가 아이답지 않은 것은 비단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하아, 씨발… 어때, 좋지? 더 벌려봐, 씨발년아…!" 




하교길 중간쯤에 있는 낡은 창고.


우연히 들여다본 그 안에서 엄석대는 여고생을 눕혀놓고 거칠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이 근처에 있는 XX여고 교복이었다. 




"후아, 존나 맛있네…. 너도 좋지? 네 아다 뚫어준 자지잖아. 더 꽉 조여봐!"


"하아…! 으읏…!"




한병태는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는다.


남녀간의 성교.


섹스, 성관계.


그게 무엇인지 한병태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성교육 시간에 그에 대해서는 귀가 닳도록 들었다.


발랑 까진 아이들이 어디서 빨간 비디오를 주웠다더라 하는 얘기들도 몇 번이고 들었다. 




하지만 그게 지금 당장 우리에게 해당되는 얘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보건교사가 누누히 말했듯 섹스란 아주 한참이나 먼 미래, 우리가 어른이 된 뒤에나 있을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엄석대는 너무나 별거 아니란 듯 섹스를 하고 있었다.


자기보다 족히 서너 살은 더 많을 여고생과.


그것도 서슴없이 욕과 반말을 내뱉으면서.




엄석대가 점점 더 빠르게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이름 모를 그녀의 가슴을 마구 주무르며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거친 신음을 토해냈다. 




그녀의 입에서도 달뜬 호흡과 고통인지 환희인지 모를 목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엄석대 밑에 깔려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한 채 그가 자지를 쑤시는 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한병태는 차마 더는 보지 못하고 귀를 막고 달아나고 말았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마치 보이지 않는 주먹으로 머리를 마구 두들맞은 느낌이었다. 


엄석대의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이 자꾸 아른거려 이 냄새와 공기로부터 조금이라도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




등 뒤로 멀어지는 창고 쪽에서 왠지 한 여자의 긴 신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한병태는 반쯤 넋이 나가 비틀비틀 집으로 돌아간다. 


그때, 뒤에서 누군가 그의 어깨를 잡는다.




"야, 한병태!"




한병태의 누나였다. 


어깨 정도까지 오는 단정한 단발.


서울에서 왔다는 걸 티내는 듯 새하얀 피부.




그리고 하얀 셔츠에 까만 치마에 하얀 양말.


XX여고의 교복.




"너 무슨 일 있어? 왜 이렇게 얼굴이 하얘? 더위 먹었어?"




누나가 걱정스레 한병태의 이마를 닦아주며 본인도 손부채질을 한다.




'날이 덥긴 덥다, 빨리 집에 가자' 하고 앞서 가는 누나의 뒷모습을 보며 한병태는 이상스레 조금 전 엄석대의 얼굴이 떠오른다.


누나와 같은 교복을 깔아뭉개고 마구 허리를 흔들던 그의 성욕으로 번들거리던 얼굴이.



  ***



다음날.


종례 직후 교문 앞.


교문을 빠져나오던 한병태는 교문 앞에 서 있는 익숙한 얼굴을 발견한다.




바로 어젯밤 엄석대와 섹스를 하던 XX여고의 여고생이었다.




분명 그녀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테지만 한병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푹 숙이고 옆으로 천천히 돌아갔다. 




그녀가 왜 여기 있을까.


혹시 또 엄석대를 만나러…?




허나 그녀가 기다리던 것은 엄석대가 아니었다.




"누나!"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달려오는 그.


한병태와 같은 반인 아이였다.


땡그란 안경을 쓰고 있어 통칭 안경으로 통하는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달려갔다. 




아마 그녀는 안경을 데리러 온 듯했다. 


둘은 무척이나 사이가 좋은 것인지 꼭 손을 맞잡고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나타난 엄석대가 그녀를 불렀다. 




그때,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섬찟함을 느꼈다.




엄석대가 나타나서?


혹은 어제의 일이 그녀와 엄석대의 조우로 인해 다시금 되살아나서?




아니다.


내가 섬찟함을 느낀 것은 안경 때문이었다. 




엄석대가 그녀를 불렀을 때, 안경은 꼭 붙잡고 있던 누나의 손을 놓으며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하게 뒤로 물러났다.




어째서일까.


내게는 그 모습이 마치 우두머리의 등장에 꼬리를 말고 도망치는 나약한 수컷의 모습처럼 보였다.


생존을 위해서라면 먹고 있던 먹이마저 포기하는.


아니, 자신의 여자마저 내놓고 물러나는.




안경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안경의 눈은 공포와 굴종으로 물들어 있었다.


허나 그 가장 깊은 곳 어딘가에는 안도와 체념이라는 미약한 감정이 묻혀 있는 듯했다. 




나는 즉시 그들에게서 눈을 돌렸다.


그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



뭐 이런 식으로 흘러가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ntr.


반을 지배하는 엄석대의 공포 정치.


안경을 비롯한 피식자, 찌질이 계층은 엄석대의 집요한 괴롭힘에 못 이겨 

하나둘 만년필, 장난감, 컨닝페이퍼 등등을 내놓다가 끝내는 소중한 여자까지 제공하게 된다. 


한병태는 한 발짝 떨어진 위치에서 그러한 굴종을 바라보며 다소 불쾌함과 측은함을 동시에 느낀다. 


무엇보다 왜 그들이 저항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한병태는 엄석대의 그런 무자비한 만행에 저항해본다. 


그러나 역시 역부족이다.


싸움으로도 공부로도 정치질로도 그 무엇 하나 이길 수가 없다.




머지않아 한병태는 엄석대에게 찍히게 되고 

그의 보이지 않는 괴롭힘, 따돌림의 실체를 체감하게 되면서

처음에는 무척이나 확고했던 저항 의지도 점점 꺾여가기 시작한다. 




서울에서 이성적이고 민주적인 의사 결정만을 겪어온 한병태가 점점 엄석대의 독재 정치에 물들게 되는 과정.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엄석대의 비위를 결코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모습.


선생들에게 책잡히지 않게끔 은밀하게 배후에서 이뤄지는 엄석대의 괴롭힘.




한병태는 결국 엄석대에게 굴복한다. 


괴롭고 외로운 저항의 끝에 엄석대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만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소중한 누나, 첫사랑 등을 범하는 것을 묵인하게 된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창고 안에서 그녀들이 엄석대에게 처녀를 잃어갔다. 





한병태는 나아가 단순 묵인뿐만 아니라, 엄석대 패거리에 직접 가담해 그가 다른 여자들을 범하는 것을 도와주기까지 한다. 


처음에는 그저 엄석대 패거리에서 살아남기 위한 짓이었다. 


그러나 점점 엄석대 휘하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작은 권력, 안온함에 물들기 시작한다. 


이전의 집요하게 소외당하던 삶과 비교해보면 그 격차는 더욱 현격하다. 


한병태는 점점 익숙함을 느끼고 이 생활이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병태는 그 무렵 엄석대가 선심 쓰듯 포상처럼 내어준 여자를 상대로 아다를 떼게 된다. 


안경의 누나였다. 




그러나 그 이후.


새로운 담임이 오게 되며 엄석대의 공포 정치는 끝을 맞이한다. 




담임은 엄석대의 부정과 비리를 전부 파헤치고 그의 권위를 실추시킨다. 


아이들은 이때다 싶어 참아 왔던 엄석대의 잘못을 전부 폭로한다. 




한병태는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엄석대가 자신의 누나를 따먹던 모습이 머릿속에 아른거린다.


누가누가 더 많이 폭로하는지 경쟁이라도 붙은 듯한 아이들의 목청이 귓가에 아른거린다. 




한병태는 결국 침묵한다. 





이후 교실은 다시 평화를 되찾는다. 


엄석대라는 인물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다들 입을 맞춘 것처럼 엄석대 얘기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안경 녀석도 교문 앞에 마중 나온 누나와 함께 행복하게 집으로 돌아간다. 




한병태는 엄석대가 늘 여자들을 따먹던 빈 창고에 들려본다. 


안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 


엄석대가 여자들을 따먹을 때 켜놓던 작은 램프가 깨져 있었다. 




 - 너희들끼리 잘 해봐, 이 개자식들아!




그 말을 마지막으로 교실에서 달아났던 엄석대. 


엄석대는 그 이후 이곳에 왔던 것일까.


그리고 이 램프를 걷어차고 분을 풀었던 것일까.


언제고 자신의 권력과 권위를 여자를 비춰주던 이 램프를 박살내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후 한병태는 집으로 돌아온다. 


평소보다 조금 이른 귀가다.


그런데 집에서 어딘가 익숙한 소리가 들린다. 




“아아… 선생님…! 이제 그만하세요…!”




한병태는 가슴이 섬찟 달아오른다. 


마치 뜨거운 부지깽이로 속을 뒤집어 놓은 듯, 불에 데인 듯한 이 느낌. 




한병태는 집 뒤켠 창고에서 엄마와 담임을 발견한다. 


담임은 엄마의 치마를 걷어올리고 뒤에서 거침없이 자지를 쑤셔박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한병태 그 자식… 그 자식은 끝까지 입을 안 열덥니다. 공부도 잘 하던 놈이 어쩌다 엄석대 같은 새끼한테 물들어서는… 하아…. 제가 병태 그 자식 정신머리는 잘 고쳐놓을 테니, 하아, 어머님꼐서는 그냥 제 말만 잘 들으시면 됩니다.” 




어두운 창고,


거칠게 허리를 흔드는 담임과 애써 신음을 참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위에서 그 둘을 비추는 작은 전구 하나.




한병태는 깨닫는다.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누가 그 위치에 있느냐만 달라졌을 뿐, 아무 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하아, 이 씨팔년… 서울에서 왔다더니 살결이 아주 씹… 크윽, 씨바알… 안에 쌀 테니까 허리 더 들어, 이 씨발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