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에 순애 아님 만화보고 생각난거

위에 적은 글의 연장선임




판타지 소설을 읽다보면 가끔 이런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이 술집에서 특별한 음료를 주문하면 안색을 미묘하게 굳힌 종업원이 비밀스러운 공간으로 안내하는 장면


그곳에서 주인공은 뒷세계의 정보상과 접촉해 대금을 지불하고, 원하는 정보를 손에 넣는다


가끔 정보상이 이성이라면 주인공(로판 여주 포함)의 히로인/서브 남주로 자리메김하기도 하고



소설 깨나 읽은 장붕이라면 작품마다 정보길드라는 게 등장하는걸 한번쯤 봤을 거임


이런 정보길드는 주로 뒷세계에서 활동하며 고객에게 정보로 대표되는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현실에서 이런 집단은 종종 이렇게 불리곤 한다


사기업 정보팀.


삼성, LG, 현대 등등 굴지의 대기업은 정보수집을 위해 전직 경찰관/검사/고위 공직자/정보기관원들을 채용해 별도의 팀을 구성하고 있었는데


대표적인 예시가 위에 언급된 삼성의 '미래전략실'이었다


이런 대기업 정보팀은 국내외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를 수집해줬음


정보의 질뿐만 아니라 분석 능력도 뛰어나서 한때 '국정원보다 사기업 정보팀이 뛰어나다!'는 소문마저 돌았을 정도였지. 판타지 소설의 정보길드가 국가기관보다 뛰어난 실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묘사되듯이ㅇㅇ


하지만 민간기업 정보팀은 정보기관과 달리 몇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었음


1. 법적 보호망의 부재.

-국정원/정보사/방첩사/경찰 정보국 등과 같은 정보기관은 합목적성이라고 해서 약간의 불법행위도 국가안보에 필요하다면 법의 보호를 받음. 반대로 민간기업은 그딴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예정임

(법원의 영장을 받아서 이루어지는 통신감청, 간첩을 미행하고 감시하는 행위 등)


2. 휴민트에 한정된 정보수집수단.

-통신감청으로 대표되는 기술정보 분야가 기축통화 치트키를 갈기는 미국에서조차 돈 먹는 하마인 것은 둘째치더라도, 외교부의 도움+우방국 정보기관의 협조를 받아 해외로 정보관을 파견하는 정보기관에 비하면 민간기업 정보팀의 활동은 제한될 수밖에 없었음

(도청장비 들여와서 통화나 사적인 대화를 몰래 녹음하던 사례가 90년대에 있었긴 하지만 결국 전부 처벌받았다)


등등등


이런 이유로 민간기업 정보팀은 태생적 한계로 정보기관을 뛰어넘지 못했음



국정원 전직 요원을 채용하면 되지 않냐고? 그 양반이 내곡동에서 근무할때 신원조사만 수백번은 받았을 텐데 회사가 퇴직하고 어디서 뭘하는지 모를리가


애초에 정보기관의 신원조사는 퇴직하고 나서도 꼬리표처럼 따라 붙음(퇴직자는 따로 분리해서 관리함)



그래서 민간기업 정보팀의 실상은 불륜 뒷조사하는 사설 탐정들과 크게 다를 게 없는 수준이었다는 게 정설임


자본의 크기와 인적자원의 차이가 정보의 질을 높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산업기밀을 알고 있는 기술자를 고액연봉을 미끼로 꾀어낼 수는 있어도 정보기관처럼 작정하고 데이터 센터에 침투해서 정보를 탈취할 수는 없었단 얘기지

(감이 오지 않는다면 짱개 국가안전부가 미국 본토의 국방연구시설에 침투해서 군사기밀을 탈취해간 전례를 생각하면 됨)


나름 기업 수준에서는 쓸만한 정보팀이었을지 몰라도 국가 단위의 정보작전을 수행하는 정보기관보다는 열세였고, 언론에 의해 대기업 정보팀의 존재가 탄로난 뒤로는 욕만 직쌀나게 얻어먹고서 모조리 해체됐음


해외에서는 아직도 산하에 정보팀을 둔 기업이 있고, 다소 불법적인 일을 맡기는 경우도 있지만, 현재 대부분의 외국 민간기업은 자체적인 정보수집보다 외주 업체에 정보수집+분석까지 맡기고 있음. 시장의 동향을 분석해주거나 외국으로 직접 가서 투자하기 좋은 지역인지 알아봐주는 곳들이 많거든

(참고로 우가리스탄으로 이름을 알린 첩붕이_PIC분석가_분도 민간기업의 외주를 받으면 이렇게 일한다고 함. 본인한테 직접 물어봄.)



정리하자면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정보길드 같은 정보조직은 실제로 존재하지만, 소설처럼 국가를 뛰어넘는 역량을 지닌 단체는 결코 아니란 것임



대기업 정보팀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는데. 해외 PIC쪽은 어떤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거기도 사정은 얼추 비슷한 모양이더라



민간기업은 정보가 간절한 클라이언트라


'우리가 정말 원하는 정보는 무엇인가?'

'어떻게하면 정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는가?'

'여기서 더 자세히 알아야하는 정보가 있나?'


싶도있게 고민하면서 PIC와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주고 받고, 계약을 연장하거나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는 반면


정부기관 같은 곳에서 외주가 들어오면(정보분석) PIC쪽에서 최종결과물을 제출해도 피드백 같은 거 일절하지 않는다더라


애초에 정부기관은 역량이 충분하기 때문에 PIC의 역할은 차별화된 관점, 교차검증을 위한 자료보완 정도에서 그친다고


얼추 예상은 했지만 유경험자의 육성으로 직접 들어보니 상당히 신선한 느낌이더라


12/31일에 들은 이야기인데 생각나서 적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