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내가 바로 그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다."

"안녕하세요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 씨."


그 말을 했다고 진짜로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가 내 앞에 나타날 줄은 몰랐지만,

초 카와이한 미소녀의 외형을 하고 있다. 계속 볼 수 있다면 그만한 것도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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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한테 그렇게 이야기해도 괜찮아? 네가 환각을 자연스럽게 여기면 여길수록 환각은 점차 네 삶에 침투해갈걸?"

"상관 없습니다. 환각이 있든 없든. 멋대로 하라 말하죠."


귀신생 20년, 정말 특이한 인간을 만났다.


"자, 식사는 하셨나요? 맛있게 드세요."

"뭐야. 나 먹을 수 없다고 장난치는 거야? 여우와 두루미에서 두루미가 되어버린 건가?"

"그건 아닙니다. 단지 사람 손님 대우를 해드릴 뿐이죠. 손님이 왔는데 어떻게 저 혼자만 밥을 먹을 수 있나요?"

"쳇."


"그러면 씻을 테니까, 당분간은 화장실에 들어오지 마."

"오, 귀신도 몸을 씻으실 수 있는 거군요."

"네 뇌 속에 흐르는 화학 덩어리가 씻는다고 생각한다면 웃기는 일이긴 하지?"

"그러면 씻지 않으실 겁니까?"

"아, 씻어. 씻습니다. 수도세 좀 쓰겠습니다."


"흠, 아무래도 같은 방을 쓰는 건 좀 그러시겠죠?"

"너는 무슨 귀신하고 각방을 쓰냐? 웃기는 놈이네."

"오 저는 물론 초 카와이 미소녀하고 같은 방을 쓰면 기쁘긴 합니다만, 당신은 저 같은 아저씨하고 같은 방을 쓰는 게 힘들지 않습니까?"

"에휴. 이상한 말을 하네. 그러니까 주변에 사람이 적지."


"아침 식사는 언제 하실 겁니까?"

"뭔, 아침 하는 시간을 귀신한테 물어보고 하냐. 아저씨 먹고 싶을 떄 해."

"그렇습니까."


"아침식사 아직 하지 않으셨죠? 맛있게 드세요."

"아저씨. 나 아침식사 필요 없다니까."

"저도 딱히 필요해서 먹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이렇게 숟가락을 들어, 음식을 입 안으로 넣으면 기분이 좋아지거든요."


숟가락으로 밥을 한 스푼 뜬다.

아암, 입 속으로 집어넣는다.

투두둑, 땅바닥에 밥알이 떨어진다.


"아저씨, 이걸 보라고."

"평범하게 드시고 계시네요."

"아니 그 쪽 말고 바닥 쪽을 보라고."

"꽤 많이 흘리시네요. 아침이 끝나면 바로 치워야겠습니다."

"에휴. 말을 말자."


"점심식사 아직 하지 않으셨죠? 맛있게 드세요."

"아저씨, 미쳤어?"

"미치지 않았습니다. 이건 당연한 거에요."

"나 아저씨가 한 음식 못 먹는다고."

"그러면 당신이 하면 되겠네요."

"아저씨, 귀신이 해준 음식 먹으면 귀신이 되는 거 몰라?"

"밥투정을 하는 귀신에게 딱 맞는 방법일 뿐입니다."


"제가 요리를 도와드리도록 하죠."

"흥. 이래보여도 나 요리 잘 할 수 있거든. 무시하지 마라."

"그러면 저녁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음, 저는 석탄이나 괴생명체를 먹는 식성이 없습니다만."

"우이씨..."

"귀신 분이 만드신 식사는 나중에 하는 걸로 하죠."

"각오해! 언젠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줄 테니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시끄러워! 도움 따위 필요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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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나 궁금한 거 있어."

"뭐든지 물어보세요. 무엇이든 알려드릴께요."

"아저씨는 왜 나한테까지 이렇게 잘해주는 거야?"

"사람이 사람한테 사람 대우 해주는 게 뭐가 이상해서요?"

"아저씨는 나 보고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라고 했잖아."


잠깐 동안 침묵하던 아저씨는, 곧 귀신 소녀(귀신생 20년차)에게 말을 이었다.


"데카르트의 악마에 대해 아십니까?"

"데카르트의 사고 실험에 등장하는, 우리를 통 속의 뇌로 만들어버린 존재 말이지?"

"다행히도 잘 아시네요."

"그게 지금 논쟁하고 무슨 관계인데?"

"그러면 한 가지 묻겠습니다. 저와 당신을 제외한 그 이외의 사람들은 실존합니까?"

"당연히 실존 …"


그리 대답하려던 귀신 소녀는, 아저씨의 말을 떠올리고서 대답을 멈추었다.

데카르트의 악마, 그 가정을 한다면 실존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기에.


"그게 내 질문하고 무슨 상관인데."

"그러면 한 가지 더 묻겠습니다. 게임 속에서 npc를 학살하고 다니는 사람은 정상일까요?"


당연히 정상이 아니다, 그 말이 귀신 소녀의 목젖까지 올라왔지만은,

잠깐 생각하고서 다시 그 말을 묻어놓았다.


"그거야 알 수 없는 부분이지. 단지 게임에서의 단편적인 행태만으로 현실에서의 적응 여부를 묻는 건 바보같은 짓이니까."

"그러면 npc들이 실제 사람과 같은 게임 속에서, npc들을 학살하고 다닌 사람은 사람으로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저씨의 질문, 그걸 들은 귀신 소녀의 눈에 여러 다른 귀신들이 스쳐지나간다.

사람들에게 악의를 품고 결국 다른 사람들을 해친 악령들, 그리고 그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어째서 그가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지, 귀신 소녀는 대략 알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있으니.


"난 사람이 아니야. 귀신이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귀신."

"그래서요?"

"그런데 넌 왜 귀신한테 친절하게 구는 건데. 해를 끼치는 존재라면 죽이는 게 당연하잖아."

"세상에, 귀신 분, 저한테 해를 끼치신 적이 있습니까? 저는 없는 것 같은데요?"

"귀신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줄어든다고. 죽을 수도 있다고."

"생명력이라니 그런 비논리적인 수치는 통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사람이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력이 쭉 쭉 빨리는 몸이니, 귀신의 생명력이나 사람의 기력이나 쌤썜이라고 치죠."


멍청이다.

귀신소녀는 그 사실 하나만큼은 잘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귀신이라는 건 결국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에 지나지 않잖아?"

"그렇죠. 당신은 제 뇌가 만들어낸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죠."

"그러면 왜 이런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를 대하는 데에 노력을 이리 기울이는 건데? 그냥 씻어버리는 게 훨씬 더 나을 텐데도?"

"제 근본적인 동기 부여는 도파민에서 오고, 풍성한 기쁨은 세로토닌에서 옵니다. 기억들은 시냅스 연결의 가중치고, 판단은 오류에 취약한 전기 신호들이죠."

"…"

"사람이란 역시 그저 비이성적인 화학 덩어리입니다. 그런데 제가 왜 사람을 대하는 데에 대충 대해야하나요?"

"그러면 왜 사람한테는 그렇게 말하지 않는 건데?"

"그야 귀신 님과 저만의 비밀이기 때문이죠. 좋지 않습니까? 비밀 이야기."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귀신 소녀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생각한 걸 입 밖으로 내었다.


"바보."

"네?"

"멍청이."

"네??"

"바보 바보."

"제가요?"

"바보 멍청이야. 그래 너 바보바보야."

"윽."



그날부터였다,

귀신 소녀가 자신의 외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건.

자신에게 찾아올 비극에서 눈을 돌리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