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전투에서 호플리테스 팔랑크스가 거의 다 해먹고 기병이나 경보병 등 다른 병과들은 한줌따리에 전장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알고 있음


그래서 필리포스 2세와 알렉산드로스 3세의 마케도니아군이 그리스 지역에서는 최초로 충격기병을 사용한, 기병 혁명을 일으킨 군대라고 많이 알려져 있고




근데 실제 최신 연구에서는 흔한 통념과 반대로 그리스 일대에서 기병이 중보병과 비견될 정도로 전장에서의 중요도가 높은 편이었고, 이미 기원전 6세기 무렵부터 정면돌격으로 팔랑크스를 흔들 수 있는 매우 위협적인 전력으로 인식되었다고 함


어느 정도냐면


1. 스파르타의 왕 아게실라오스 2세에게는 '쓸모없는 호플리테스보다 수많은 용맹한 기병을 동원해 승리를 거두었다.'라는 기록이 있음


2. 페르시아 전쟁 당시 그리스 연합군이 방어선을 테르모필레에 차린 이유는 수적 열세 외에 페르시아 기병 운용을 저지하기 위해서


3. 플라타이아 전투 당시 그리스군은 페르시아군 기병대의 습격을 견디지 못해 야간에 퇴각


4. 스파르타군이 기병대 습격을 두려워해 일반적인 일제 퇴각이 아니라 부대별로 서로 엄호하는 순차 퇴각을 시도


5. 플라타이아 전투 후 페르시아에 협력한 그리스인들이 철수할 때 보이오티아 기병대가 추격하는 그리스군 경보병을 박살내고 중보병 진격을 틀어막음




이런 사례들에서 보이듯 기병대는 상당히 강력한 전력이었고, 이 때문에 많은 그리스 폴리스들이 기병대를 운용하였음


북부 그리스에서는 테살리아와 칼키디케가 대규모 기병대를 중심으로 병력을 운용하였고, 칼키스와 에레트리아는 기원전 507~506년 사이 아테네에 정복될 때까지 기마 귀족들에 의해 통치됨


로크리스와 포키스도 대규모의 기병대 운용을 선보였으며, 아테네는 소규모 시민기병대와 테살리아 기병대를, 스파르타는 아테네 기병에 대항해 보이오티아 기병대를 지원받아 운용했음




이러한 그리스 기병대는 영토 초계와 적 추격, 아군의 퇴각 보조 등 지원 역할뿐만 아니라 중거리에서 투창으로 팔랑크스를 괴롭히고 적의 기동을 제한하며 아예 정면돌격으로 보병진을 뭉개서 흩어놓는 등 핵심적인 역할도 수행하였음


이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전투 시에 팔랑크스를 되도록 기병 기동이 어렵고 측후면이 보호받는 험지에 배치시키려고 애썼고(의외로 그리스 팔랑크스는 관목 생울타리가 우거진 곳에서도 무리없이 전투가 가능할 정도로 험지 저항이 높음), 어떻게든 적과 대등한 규모의 기병대를 유지하려 애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마케도니아군이 기병 혁명을 일으켰다고 평가받는 것도 사실 그리스 폴리스들이 기병을 안 굴려서가 아니라, 아카이아 지역이 워낙 말을 키울 여건이 열악해서 기병을 일정 규모 이상으로 육성하지 못했기 때문임


마케도니아는 그냥 이전 시대의 기병 운용 전통을 이어받았고, 기병 육성 여건이 더 좋아서 충격기병 대규모 운용이 가능했던 거



기병과 비슷하게 중장보병이 아닌 경보병들도 팔랑크스에 대한 원거리 견제와 적 중보병 추격, 공간 장악 등을 통해 기병의 대체재 역할을 하거나 투석병/궁병 카이팅으로 팔랑크스를 갉아먹는 등의 역할을 하며 통념보다 전장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했을 거라고 함, 대신 기원전 6세기부터 한 몫 하고 있던 기병과는 달리 전장에서 입지가 늘어난 것은 페르시아 전쟁 이후부터였을 거라고


크레타 궁병대나 로도스 투석병들처럼 고대 시대의 유명한 용병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이미 유명한 용병 경보병이었을 거라고 함




요약


1. 고대 그리스에서 기병대는 중보병 팔랑크스와 비견될 정도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차지함

2. 의외로 그리스 팔랑크스의 기병 저지력은 신통치 않은 편이었기에 포진할 때 기병 기동이 힘든 지형 위주로 포진함

3. 마케도니아 기병 혁명은 허상임, 그냥 기병 육성이 더 쉬워서 충격기병을 많이 뽑을 수 있던 거

4. 경보병은 기병의 수가 적을 때 그 하위호환 대체재가 되었고, 그렇지 않아도 전초전으로 적을 갉아먹는 꽤 중요한 역할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