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고 싶을 때가 있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사랑받는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를 간절히 알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이 물속은 너무 차갑고 외로워서.

 

울고 싶어질 만큼 고독해서.

 

죽고 싶어질 만큼 미워져서.

 

 

 

―정신을 차렸을 땐, 난 이미 재해 특급 토벌 대상이 되어 있었다.

 

 

 

#1

 

 

 

내가 기르고 있는 고양이, 그러니까 나비는 재해 1급 토벌 괴수였다고 한다.

 

어떻게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 뭐, 뻔하지. 그 아이가 말해줬으니까.

 

 

 

나는 간단하게 믿어줬다. 고양이가 정확한 발성으로 내게 말을 걸었다는 사실부터 이 세상에선 드문 일이 아니던가.

 

정정, 다시 말하자면 민간인이 괴수를 만나는 것 자체가 드물다는 얘기다.

 

보통 괴수라는 족속들은 해수에서 올라오고, 대부분 사냥꾼에 의해 땅을 채 밟아보기도 전에 토벌된다.

 

 

 

바다가 삼면으로 덮여 있는 대한민국은 괴수로 인한 피해가 오죽하겠나. 그에 대한 대비는 섬나라인 옆 놈만큼 확실한 대비가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까 대부분 괴수는 도시를 파괴하기 전에 처리된다.

 

 

 

내가 먹이 주는 길냥이가 재해 1급 괴수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말이다.

 

 

 

"나비야."

 

 

 

일단은 연유를 물어보기로 했다.

 

눈앞의 존재가 수도를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재해라는 것을 인지한 상태에서, 내 몸은 도무지 움직이지 않았지만.

 

 

 

"거짓말이죠?"

 

 

 

어쩌다 보니, 존댓말이 튀어나왔네.

 

 

 

"거짓말이 아냐."

 

"확실하게 말했네…."

 

 

 

단순한 꿈이거나 헛것을 봤다는 핑계를 댈 수조차 없게 됐다.

 

이젠 도망칠 수 없을 것 같다는 확신마저 든다.

 

 

 

"그, 목적이라거나. 원하시는 게 있으십니까."

 

 

 

차 위에 누워 햇볕을 쬐고 있는 고양이에게 묻고 있는 나 자신이 순간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아니,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내가 지금 대한민국의 최종 보루다.

 

다행히도 나비에겐 지성이 있다. 여기서 내가 말만 잘하면 아무 문제도 없을 것이다.

 

몇 번이나 먹이도 주고 쓰다듬어준 사이다. 비록 알바나 전전하며 자취방에서 살고 있는 무직 한량이지만, 나비에게 있어서 나란 존재는….

 

 

 

…집사?

 

 

 

"대화를 마무리 짓기에 바깥은 들킬 염려가 있다."

 

 

 

나비가 요염하게 누운 자태와 상반되는 험악한 목소리로 그르렁거렸다.

 

놈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은빛으로 반짝인 건 착각이 아닐 거라 믿는다.

 

 

 

나비의 말도 일리는 있다. 인적은 없지만, 언제 어디선가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는 나비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진짜 존나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나비는 거부하지 않았다.

 

 

 

"이런 개쩌시는 분께서 왜 제게 먹이를 받아먹기나 하셨습니까…."

 

 

 

지금까지의 일 자체가 후회스럽고 통탄스러워 중얼거리듯 물었다.

 

자취방으로 가면서도 오한과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다.

 

호랑이 앞에 마주한 들짐승이 된 기분이다.

 

 

 

"맛있으니까."

 

"네?"

 

"참치캔, 맛있다고, 그거."

 

 

 

유별난 입맛이네.

 

목구멍 밖으로 나갈 뻔한 말들을 조용히 꾹꾹 눌러 담았다.

 

 

 

#2

 

 

 

자취방.

 

평소 깨끗하게 살자는 내 신념이 묻은 이 방은 유별나게 깨끗한 상태였다.

 

 

 

"깨끗하군. 마음에 들어."

 

 

 

나비가 훌쩍 내 품에서 뛰어 가볍게 바닥에 착지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방 안에 상태를 확인한다.

 

 

 

"아니, 너무 깨끗한데."

 

 

 

그러다가 이상한 듯이 나를 쳐다봤다.

 

 

 

"이사하려고 짐 다 뺐거든요."

 

"이사?"

 

"예. 요 주변 치안이 흉흉해졌거든요."

 

 

 

어느 샌가부터 주종 관계가 역전된 기분이 들었지만 개의치 않는다.

 

눈앞의 고양이는 재해 1급의 존재다. 겸손해질 수밖에 없는 상대다.

 

 

 

"내가 거부한다. 이사 가지 마라."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삿짐센터에 연락해둬야겠다. 오지 말라고.

 

 

 

"근데 나비 씨. 그, 인간으로 변하거나 하지는 않습니까?"

 

"그 이상한 호칭은 뭐냐. 그냥 나비라고 부르도록 해."

 

"예, 나비야. 인간으로 변하지는 않는 겁니까."

 

"더 이상해졌네."

 

 

 

나비가 고개를 돌렸다.

 

 

 

"네 모습에는 이 모습보다 인간이 더 좋은 것이로냐."

 

"아무래도 그렇죠?"

 

 

 

아무래도 여기 생활만 십 년은 보냈으니까.

 

 

 

"좋다, 보여주지."

 

 

 

당기 차게 말한 나비는 공중으로 훌쩍 한 바퀴 돌았다.

 

고양이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이윽고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인간 여자의 모습이라. 옷은 의태 하지 않습니까?"

 

"그런 세세한 세부 모습까지 설정하는 건 귀찮다."

 

"그럼 의태 과정에서 다량의 전파를 발생시킨 것도 단순히 귀찮아서 그런 겁니까?"

 

"뭐?"

 

 

 

나는 머리를 짚었다.

 

 

 

"좆됐네."

 

 

 

나는 나비에게 서랍에서 적당히 입을 옷을 던져주었다.

 

오늘 중으로 이사하려고 정리하지 않았던 건데, 이런 짓으로 쓰일 줄은 몰랐다.

 

 

 

"뭐냐, 이건."

 

"옷이요, 자칭 1급 괴수님. 곧 사냥꾼들이 올 거니까 뛰기나 하시라고요. 죽기 싫으면."

 

"자칭? 인간 주제에 어디 그런!"

 

"의태 하라고 한 건 저긴 한데요. 할 거면 똑바로 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고양이로 변해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좀 알 것 같네요."

 

 

 

의태가 가능한 괴수는 보통 인간의 무리 속으로 섞여들기를 원한다.

 

사랑받는다는 기분을 알고 싶으니까.

 

 

 

"네 놈이 진짜―!"

 

 

 

붉으락푸르락 해지는 그녀의 얼굴을 대변하듯 폭음과 함께 창문이 깨졌다.

 

 

 

"뭐, 뭐냐!"

 

"이미 위치 떴다니깐. 그냥 다시 고양이로 돌아가실래요? 아님 여기서 살처분되실래요?"

 

"모, 모르는데. 다시 돌아가는 거."

 

 

 

깨진 창문 아래로 연막을 투척한다. 연기가 새어오며 방안을 가리기 시작한다.

 

 

 

기껏 청소해놓은 방이 또 어질러져버렸다.

 

 

 

"전파 발생 위치. 각 괴수는 총 두 개체."

 

"두 개체?"

 

 

 

나비가 당황하며 나를 쳐다본다.

 

"재해 등급은 각각 특급과 3급으로 확인. 이에 대응하여 특급 사냥꾼이 이동 중. 구속 작업 시행합니다."

 

"이러니까 괴수들이 뻑이 가지."

 

"잠시만요, 특급?"

 

 

 

나 역시 정체가 탄로 난 지금, 여기서 가만히 살처분을 기다릴 수는 없다.

 

몸을 변화시킨다. 거대해질 필요는 없다. 어디까지나 도망치기 위한 목적으로 세포 하나하나를 재구성한다.

 

나는 나비의 몸을 붙들었다.

 

 

 

"어디서 1급이라고 구라를 쳠마."

 

"특급? 특급이라고? 네가?"

 

 

 

나체인 인간 여성을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은 영락없는 괴수 같다.

 

 

 

이래선 사랑받기는 또 그른 것 같다.

 

 

 

"내 넓은 아량으로 너도 데려가니까 알아서 버티든가 해."

 

 

 

간혹 인간 속에서 섞여 사는 괴수가 있다는 카더라가 있다.

 

 

 

나는 그 사실을 믿지 않는다.

 

그야, 그게 내 얘기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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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파괴하는 괴수가 있고, 괴수를 토벌하는 사냥꾼들이 있는 세계관.

 

자아가 생긴 순간부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알고 싶었던 특급 괴수가 인간에 섞여듬.

 

그 이후에 어쩌구저쩌구되서 저쩌구저쩌구 흑막을 무찌르는 왕도적 스토리 어쩌구저쩌구가 되는데. 

 

그냥 괴수물 보고 싶어서 쓴 거니 써주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