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오두막 안에서 짐을 정리하고 있다.

정체모를 액체가 들어있는 각종 시험관, 주사기, 톱, 집게 등 고문도구같은 기구들과 시약을 가방에 넣고 챙기고 있었다.


"이봐, 돌팔이 출발시간이다. 후딱 나와."


"벌써 수천번이고 말하지만 난 돌팔이가 아니야! 촉망받던 의사라고!"


"말 그대로 '받던' 의사지, 의사면허 진즉에 취소됐는데도 계속 의학으로 먹고살면 그게 돌팔이지 뭐야?"


의사를 부른 남자는 투덜거리며 다시 계단으로 내려갔다.


이윽고 남자가 내려오자 주위에 모인 사람들을 보며 시킨 일들을 잘 해냈는지 확인했다.


"주문한 물건들은 모두 도착했나?"


"주문하신 독주, 약초, 의료도구 모두 마차에 꽉꽉 채워서 이미 출발하고 있다."


금발의 귀공자가 대답했다.


"인력들은? 교육은 다 끝났나?"


"형제자매님들 모두 선생께서 작성하신 이론서를 숙지시켰고 인근의 공동묘지를 파헤쳐 시체를 만지는 것 또한 익숙해졌습니다."


어딘가 섬뜩함이 느껴지는 인상의 성직자가 대답했다.


"허가는? 이후에 정치적으로 문제될 일은 없겠지?"


"이미 동의서와 허가서 모두 받아냈고 증인들도 확보했습니다 형님! 나 참, 이거 허가받느라 몇달동안 내 허리가 빠지는 줄 알았어요!"


느물거리는 인상의 잘생긴 남자가 대답했다.


"귀부인들에게 박아대서 시간을 대폭 절약한거 생각하면 남는 장사지 안 그래?"


금발의 귀공자가 잘생긴 남자에게 빈정거렸다.

 

"아니! 아줌마를 넘어서서 할매들이었잖아! 권력가들에게 정략결혼당한 미녀라며!"


"자자 그만하고 준비 되었으면 출발하지"


이내 남자는 다른 이들을 이끌고 마차를 몰았다.

신마저 버린 병자들의 도시로


언제부턴가, 끔찍한 역병이 전 대륙을 뒤덮었다.


역병에 걸리면 피를 토하고 호흡이 힘들어졌으며 최종적으로는 몸이 검게 썩어들어갔다.


의사협회는 원인과 치료법을 찾고자 심혈을 기울였지만 쥐와 벼룩이 병을 옮긴다는 것 외엔 밝혀내지 못했고,

교회는 역병에 걸린 자들을 신이 버린 자들로 규정, 병자들을 큰 도시로 모아 돌과 강철 가시의 벽 뒤로 격리시켰다.


이를 소돔이라 칭했고 대륙에 소돔이 10개 이상 만들어졌을 때 의사들은 병의 치료를 포기했다.


대륙을 뒤덮은 역병으로 인해 의사들의 권력은 하늘 높이 치솟아올랐고 성직자 또한 대중들이 불안해 할수록 신을 찾았기에 이 사태를 방관했다.


의사들은 병자들을 버렸고

신의 뜻을 퍼뜨리는 자들은 스스로 신이 되려 한다.


사람들을 이끄는 남자는 한때 촉망 받는 의사였으나 사태를 해결할 의지가 없는 협회를 떠났다.

이후에 뜻을 같이 할 동지들을 모으려 했으나,


"역병을 치료하기 위해 소돔으로 직접 들어가겠다고? 썩 꺼져! 자네같은 돌팔이에게 투자할 돈은 없네!"


"간호 일을 도와드릴 순 있으나 수만명이 넘는 환자들을 치료하겠다는건 좀 힘들 것 같네요."


"역병 걸린 놈들은 사람을 잡아먹는다는데 거길 어떻게 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절하였다.


"그러니까 저들을 치료하면 나중에 우리 상회만을 바라보는 미래의 고객이 되는 거 아닌가?"


"병마를 쫓아내서 새로운 형제자매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병자들이 많으니까 치료되고 나면 예쁜 사람들도 많겠지?"


"""함께 하지"""


어쩌다 보니 도박쟁이 거상, 사이비 교주, 카사노바 같은 제정신 아닌 놈들이 모이게 되었지만


남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역병을 몰아내고 싶었다.


설령 경제사기를 쳐서 물자와 자금을 확보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력을 얻기 위해 광신도들을 모으고, 권력자들의 아내에게 제비놈을 붙여 허가를 받아내서라도.


"슬슬 이 앞부터는 격리구역 인근 부지다. 다들 마스크를 끼도록 해."


새부리 마스크를 낀 행렬이 신조차 버린 도시를 향한다.


오직, 증오스러운 역병을 몰아내기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