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의 여름은 실로 평화로웠다.

 

지구온난화가 가속화되어 5년 뒤에는 해수면이 일 미터는

올라간다던가, 유명 연예인이 방송 도중에 자연 발화되어

그 자리에서 타죽었다던가, 기타 등등.

 

그런 시답잖은 일보다도 당장 급한 건 내 주머니 사정이었다.

 

“...배고파.”

 

나는 마지막 편의점 빵을 입에 욱여넣으며 말했다.

 

동네 아는 형님 덕분에 편의점에서 나온 폐기 빵을 잔뜩

먹은 건 좋은데, 그걸로는 내 커다란 체구를 유지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내 키가 197cm에 몸무게만 12... 120kg이었나.

 

아무튼 이런 육중한 몸뚱이를 감당하려면 이까짓 빵조각이

아니라 고깃덩어리를 1kg은 먹어줘야 한다.

 

뭐, 그럴 돈이 있다면 이러고 안 있었겠지만.

 

“이제...어쩌지.”


나는 계단에 앉아 멍하니 하늘을 보았다.

 

돈이 없다. 열심히 살지 않은 건 아니다.

 

고등학생 주제에 알바를 3개나 뛰고 있으니, 그 정도면 나도

열심히 산다고 해줄 수 있었다.

 

하지만 부족하다.

 

이걸로는 나도 그 녀석도 죽을 수밖에 없다.

 

‘돈이 필요해. 그것도 아주 많이...’

 

돌아가신 아버지 왈,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순 없지만

거의 모든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던가.

 

내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돈만 있다면 해결할 수 있었다.

 

문제는 돈이 없다는 건데, 나 같은 일자무식 근육 덩어리가

돈을 버는 방법이라고 해봤자 노가다가 최선이었다.

 

“하...”


나는 한숨만 뻑뻑 내쉬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동생이 쓰러지고 1년째.

 

원인은 모른다. 의사들도 처음 보는 증상이라고 하였다.

 

그 녀석은, 내 여동생 혜주는 어느 날 갑자기 깊고 깊은

잠에 빠져들어, 단 한 번도 깨어나지 못했다.

 

처음엔 있는 돈, 없는 돈 끌어모아 어떻게든 치료하려고

해봤지만 결국엔 이 신세다.

 

이대로 가면 그 녀석은 죽는다.

 

아니, 당장 내 살길도 막막하다.

 

“어디서 복권이라도 주웠으면...”


멍하니 하늘을 보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엥.”


여기가 대체 어디지.

 

항상 지나던 골목이었다. 평생 이 동네에서 산 내가 매일

다니는 길을 헷갈릴 리는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나는 생전 처음 보는 골목에 있단 말인가.

 

“저, 저기요?”


사방이 꽉 막혀 있었다. 담벼락은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주위는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참고로 이 동네는 오토바이가 많이 다녀서, 24시간 내내

오토바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도 조용했다. 기묘할 정도로, 아니 기괴할 정도로.

 

‘내가 지금 꿈을 꾸나...?’

 

혹시 몰라 뺨을 몇 번 때려봐도 여긴 현실이 맞았다.

 

‘멍 때리다가 잘못 들어온 거겠지...’

 

그래, 그럴 것이다. 누구든 이런 실수 한 번쯤은 하지 않나.

 

나는 일단 골목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앞으로 쭉 걸어갔다.

 

걷고.

 

걷고.

 

또 걷고.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골목길에 질려 멈춰 섰다.

 

“아니 여기 대체 어디냐고!?”


길을 잃었다. 그것도 외길에서. 심지어 우리 동네에서!

 

이 어이없는 사태에, 나는 여기서 굶어 죽는 게 아닌가 하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가 왔던 길에, 건물이 서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없었던 2층짜리 낡은 사무소 건물이.

 

“뭐야, 여긴.”

 

처음 보는 건물이었다. 어디서든 볼 수 있을 법한 낡은

사무소였지만, 분명히 처음 보는 곳이었다.

 

간판에는 외국어...? 비슷한 지렁이 같은 글자가 쓰여있었다.

 

중국어? 아닌데, 어디 아랍어 같은 건가.

 

“음...으으으음...”


이건 들어오라는 거겠지?


저 외길로 더 들어갔다간 영영 못 나갈 것 같기도...

 

“좋아!”


돌아가신 아버지 왈, 할까 말까 고민되면 일단 저지르라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리려고 했는데, 살짝 밀어보니

그냥 스르륵 하고 문이 열렸다.

 

“음.”


나는 현관으로 들어갔는데, 꼭 무슨 골동품 가게처럼 보였다.

 

“안은 생각보다 깨끗한데.”


정체 모를 물건들이 잔뜩 있다는 거 빼면.

 

머리에 오징어? 가 달린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이나.

 

몸에 촉수가 잔뜩 달린 여자 초상화라든가.

 

머리가 세 개 달린 개...아니구나, 고양이 오르골? 도 있고.

 

이상한 물건이 잔뜩 있다는 걸 제외하면 평범?해 보였다.

 

“안녕.”


“우와아아아악!?”


나는 뒤에서 튀어나온 사람 때문에 놀라 펄쩍 뛰었다.

 

“누...누구냐!”


“그런 건 주인이 먼저 물어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아, 하긴.”


그게 예의이긴 하지. 생각해보니 내 잘못이 맞는 거 같았다.

 

“강태식이라고 합니다. 그, 성함이.”


“레인.”


...외국인?

 

그러고 보니, 근처에선 보기 드문 은발을 가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더더욱 보기 드문 엄청난 찌찌가...

 

“만져볼래?”


“어...아뇨.”


“그래? 만지면 손목을 자를까 했는데.”


그거 참...살벌한 농담일세.

 

나는 이 정체 모를 여자를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그녀는 검은색 정장에 빨간 넥타이를 메고 있었는데, 왠지 

사무원보단 여행 가이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얼굴. 소름 돋을 정도로 창백한 얼굴에, 저도 모르게

빠져들 것만 같은 새까만 눈동자가 나를 꿰뚫어보고 있었다.

 

“다 관찰했어?”


“아, 네.”


“그나저나 여긴 어떻게 온 거니?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


“어...초대요? 저도 그냥 우연히 지나치다 들어온 거라...”


“우연히.”


그녀가 껌을 씹듯이 단어를 우물거렸다.


“우연히, 우연히...”


“어...넵.”


“이 세상에 우연 따윈 없어. 모든 건 운명이야.”


이거 잘못 걸렸구나.

 

내가 사이비의 소굴에 발을 들이고 말았구나!

 

돌아가신 아버지 왈, 사이비랑은 겸상도 하지 말라 하셨다.

 

물론 우리가 식사를 함께 하는 건 아니지만, 그거나 저거나

비슷하긴 매한가지였다.

 

“사이비 아니니까 긴장 풀어.”


“...생각을 읽는 건 아니죠?”


“어쩌면 그럴지도?”


더더욱 수상해졌다. 차라리 그냥 사이비가 덜 의심스럽다.

 

“아무튼, 우리 가게에 온 걸 환영해. 일단 여기 온 이상

너도 나의 손님이라는 거겠지.”


“저...돈은 없는데요.”


“그래 보여.”

 

너무해. 근데 누가 봐도 난 거렁뱅이처럼 보이긴 했다.

 

구멍 뚫린 운동화에 늘어난 셔츠, 흙투성이 바지까지...

 

좀 심하게 보자면 노숙자 같기도 했다.

 

“혹시 강매할 거라면 그냥 갈 거니까요!”


“굳이? 하지만 알겠어, 네가 여기 온 이유를.”


그녀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나를 훑어보았다.

 

“키는 197cm 정도에 몸무게는 123kg...”


“어...네. 어떻게 아셨어요?”


“아주 훌륭한 몸이야. 마침 너 같은 남자가 필요했어.”


이...이 전개는!

 

수수께끼의 여자가 지나가던 남자를 덮쳐서 으챠으챠하는

전개로구나! 

 

설마 이런 식으로 동정을 뗄 줄은 몰랐는데, 하지만 원래

눈동자식 전개에는 개연성이 중요치 않은 법.

 

가끔씩은 길도 잃어볼 일이구나!

 

“처, 처음이니까 살살 부탁드립니다...”


“돈이 필요하지?”


돈.

 

그 한 마디에 묘한 압박감과 침착함이 느껴졌다.

 

“...네.”


“줄게. 나랑 일 하나 같이 하자.”


갑자기? 너무 뜬금없는 제안이라 대답이 선뜻 나오질 않았다.

 

난 여기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르고, 이 여자는 이름하고

가슴이 크다는 것만 알고, 그 일이라는 게 뭔지도 모른다.

 

“건수당 200만원.”


“200?”

 

“그래. 물론 보너스도 줄 거야, 어렵고 복잡한 건수일수록

보수도 올라갈 거야. 기본급이 200이라는 거지.”


기본급이...200!?


20만원이어도 놀랄 일인데, 200만원이라니!


‘아냐, 침착해. 아버지가 말했잖아, 달콤한 미끼일수록

독이 들어있기 쉽다고. 사기꾼들이 다 그런 식으로 사람을

낚는다고 했지...’

 

“사기 치는 거 아냐. 물론 범죄도 아니지.”

 

이번에도 그녀가 내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

 

“지독할 정도로 합법적이고, 사회공헌적이고, 자아실현적이며,

너의 한계를 시험하여 성장시키는 일이기도 하지.”


“그러니까 그게 수상하다고요! 그렇게 좋은 일을 처음 보는

고딩한테 선뜻 제안하는 사람이 어디 있냔 말입니다!”


“여기 있지.”

 

아, 그렇군.

 

할 말이 없어졌다. 나는 그냥 입을 다물기로 했다.

 

“난 말이야, 골동품 가게 사장이야.”


“네...그래 보이네요.”


“내 일은 간단해. 손님이 오면, 물건을 판매한다. 종종

물건을 사는 일도 있지만, 기본은 그거지.”

 

“돈 계산이라도 하면 될까요?”


“그렇게 쉬운 일이면 200만원이나 줄까?”

 

그건 아무리 그래도 좀.

 

나도 양심은 있다, 애초에 그렇게 쉬운 일을 남에게 돈 주고

맡기는 바보가 어디 있단 말인가.

 

“넌 골동품을 회수해오는 일을 하면 돼.”


“회수...입니까?”


“응. 물론 종종 다른 일을 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너의 일은 그게 전부야. 내가 지정한 장소로 가서, 내가 말한

물건을 회수해 돌아온다. 그걸로 끝. 참 쉽지?”

 

뭐지, 혹시 요즘 유행한다는 피싱인가 뭐시깽이인가...

 

“왜 직접 안 하시고?”


“난 가게를 봐야지. 손님이 언제 오실 줄 알고?”


아, 하긴. 한 방에 납득해버렸다.

 

“근데 왜 하필 저한테 그런 일을...?”


“네가 여기 왔잖아. 자격은 그걸로 충분해, 그리고...저걸 봐.”


나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갔다.

 

무언가가 구석에 서 있었다. 조각상...비슷한 무언가였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긴 했는데, 왠지 좀 역겹게 생겨먹은

조각상이었다. 눈알은 왜 저렇게 많이 달아놓은 거야?


“뭐로 보여?”


“조각상이죠? 누가 만들었는지는 몰라도 되게 징그럽게

생겨 먹었네요. 환공포증 생길 거 같아요.”


“그렇구나. 흐음.”


근데 저 조각상은 대체 왜?


“역시 소질이 있어. 너라면 아주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어, 정말입니까?”

 

“이것만은 거짓말이 아니야. 후후, 운명이 나의 등을 조금

밀어줄 생각이 든 모양이네. 귀인을 만나게 될 줄이야.”


대체 나의 어느 부분이 마음에 든 건지는 몰라도, 어찌됐든

칭찬이니까 좋은 쪽으로 해석하기로 했다.

 

“자, 일단 선입금이야.”


그리고 그녀가 내 손에 노란 지폐가 잔뜩 든 봉투를 건넸다.


“어...어!? 아니, 일도 시작 안 했는데요!”


“앞으로 잘 해보자는 뜻으로 준 거니까 그냥 받아.”


세상에 맙소사, 이 여자는 신인가?

 

그녀가 바로 신이란 말이야?


레인 펀치! 레인 펀치...!!

 

그녀는...신이야!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대가리를 땅에 박을 기세로 허리를 굽혔다.

 

“오늘은 일단 돌아가, 때가 되면 여기로 돌아오게 될 거야.”

 

“어...여기 주소도 모르는데요?”


“다음엔 내가 초대할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초대...? 차로 픽업이라도 한다는 뜻일까?

 

어찌됐든 이 돈이 있으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다.

 

무슨 일을 시키든 그게 무슨 대수랴, 가난보다 무서운 건

요로결석뿐이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또 오겠습니다, 사장님!”


“잘 가.”


세상에, 드디어 내게도 운이 따르는구나.

 

나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뛰쳐나갔다.

 


 

 

 

 

“그래, 조각상이라고.”

 

상태창으로 봤을 때는 대체 무슨 특성인지 몰랐는데.

 

강태식이라. 그는 아주 희귀한 체질을 타고 난 케이스였다.

 

‘자질만 따지면 나와 같은 승천자가 될지도 모르지.’

 

물론 지능 수치가 너무 낮아서 그러긴 힘들겠지만.

 

“고작 푼돈으로 저런 거물을 부릴 수 있게 될 줄이야.”

 

나는 의자에 앉아 ‘혼돈의 나팔수’를 보았다.

 

나 같은 숙련된 승천자조차 저것은... 오래 보고 있기 힘든

위험천만한 물건이었다.

 

그것은 실체가 없는 그림자처럼 구석에 숨어있었다.

 

피부에 돋은 붉은 눈알이 사방을 훑어보고 있었고, 언제든지

나를 덮칠 것처럼 살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저걸 인식한 순간 뇌가 녹기 시작할 터.

 

정신에 영향을 주는 이형체 따윈 흔하지만, 그중에서도 저건

나조차도 함부로 다루기 힘든 상급 이형체였다.

 

그런데 저걸 보고도, 그냥 조각상이라고?


“재미있네.”


이렇게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게 얼마만인지.

 

나는 혼돈의 나팔수를 보며 작게 웃기 시작했다.

 












같은 소설 누가 안 써오냐

숨겨진 흑막 다 봐서 이런 거 읽고 싶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