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강력한 군주권에 대한 환상이 너무 많은거 같음


드라마나 소설 같은 서사 구조 보면 흔히 왕권vs신권의 대립으로 묘사하는데


왕권이 선, 신권이 악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많음.


즉 올바른 개혁군주가 개혁을 가로 막는 기득권들(신권)과 싸우면서 이겨내는 스토리


이런 서사가 엄청 많고 웹소에도 자주 자주 보임


근데 역사적으로 보면 반대임.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조선왕조의 마지막 '르네상스'이자 대표적 '개혁군주'들의 시대였던 영정조 시대


영정조 재위 기간만 보면 틀린 말은 아님.


이들의 통치는 조선 왕들 중에서도 훌륭한 편이고


특히 왕조의 마지만 재흥기를 열었다는 점에서 대단한 인물들임.


근데 이게 인물이 아닌 시스템으로 보면 어떨까?


영정조 사후 바로 조선은 망국으로 갔음.


부자는 망해도 3대라는데 영정조 다음 왜 곧바로 망했을까?


흔히 하는 서사는 영정조 이후 군주들의 무능과 세도 정치 때문임.


이런 서서의 특징은 뭐냐면 조선 왕조를 시스템으로 안보고 왕 개인으로 봄


그래서 영웅주의 사관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음. 


근데 왕조 국가라고 하더라도 왕 개인이 아닌 시스템으로 봐야 함


특히 조선왕조는 봉건 국가 중에서도 시스템으로 운영되었던 대표적인 국가임.


영정조 시대, 즉 18세기 중흥기 이후 19세기 들어가면 바로 민란의 시대로 이어짐.


그렇게 보면 영정조의 18세기가 대게 이상함


17세기는 붕당정치의 모순이 극으로 달해서 나라가 붕당으로 쪼개진 시대고


19세기는 세도정치의 모순으로 인해 민란이 도처에서 발생해서 망해가는 시대고


근데 그 사이 18세기는 절대군주들에 의한 개혁시대거든.


이상하지 않아? 앞뒤로 망국인데 가운데만 르네상스임 ㅋㅋ


근데 이걸 시스템으로 보면 이상하지가 않음


조선 중기 붕당정치의 핵심은 복수의 붕당이 서로 공존과 상호견제를 하면서 현실정치를 이끌어 내는 시스템임


근데 이게 서로 싸우는 것처럼 보여도 기본은 사족 공통의 이해, 즉 기존 양반 중심의 질서에 대한 공통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시스템이었음


근데 이게 17세기 예송논쟁이랑 환국을 거치면서 변질됨


공존과 사족공통의 이해관계가 붕괴되고 반대파를 아예 학살하는 수준으로 변질됨.


17세기 거치면서 붕당정치는 이제 정치적으로 효용성을 상실함


그래서 18세기 붕당정치를 대신할 정치모델로 영정조의 '탕평정치'가 등장하는 거임


탕평정치는 왕이 스스로 이상적인 군주상을 설정하고 엄청난 노력을 하면서 


스스로 설정한 그 군주상처럼 행동하는 거임


이를 통해 직접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군주의 초월적인 권위를 세움으로써


군주를 중심으로 정치를 운영해나가는 새로운 모델임


그리고 영정조기 수많은 정치적 개혁이 이러한 모델에서 나왔음


이것만 들으면 아주 좋은 모델이잖아?


근데 이 모델의 한계는 명확함


바로 군주 개인 능력에 너무 의존하는 체제임.


탕평정치는 군주가 높은 도덕성과 이상향을 제시하고 동시에 거기에 자신이 부합할 때만


유지되는 시스템임


반대로 말하면 그런 군주가 안나오면 너무나 쉽게 변질될 수 있는 시스템이라는 소리


혈통으로 군주를 정하는 왕조국가에서 매세대 영조 정조 같은 괴물이 나올 수 있음?


불가능함. 실제로도 불가능했고


그니깐 영정조의 탕평정치는 장기지속 될 수 없는 정치 시스템임


그런 의미에서 17세기 붕당정치 보다 후퇴한 정치 시스템임


영정조 개인은 훌륭했을 지라도 그들이 만들어낸 정치모델은 조선 왕조 고유의 정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킴



또 예를 하나 들면 18세기 지방 통치 시스템을 보자.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조선의 지방의 향촌 질서는 사족들이 주도 하에 유지되었음.


물론 이 사족 중심의 질서라는게 문제가 없는건 아니었음. 사족들의 계급적 이해를 지키기 위해 상민 천민들을 억압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깐


그래서 18세기 영정조 때 지방통치 개혁이 실시되는데


대표적인게 수령의 권한을 강화하는 거 였음


이게 왜 가능했냐면 18세기 되면 중앙의 붕당정치가 붕괴함


붕당정치는 기본적으로 지방 재지사족 사이에 성립한 붕당을 기반으로 하는데 이 붕당정치가 붕괴하니깐


재지사족들이 중앙공론에 참여할 루트가 막힘.


그래서 17세기만 해도 기호사림이니 영남사림이니 뭐 이런게 붕당이었는데


18세기 이후부터 경화사족(수도권)-지방사족(지방) 이렇게 이원화되어 버림.


즉 중앙의 경화사족이 오늘날 sky 강남애들 마냥 계속 사실상 세습하는 걸로 가버림


지방 재지사족들의 권위가 몰락하고 지방 토호화 되어 버림.


그러니깐 중앙에서 수령의 힘이 지방 사족을 압도하기 시작해 버리는 거임


지방사족들이 중앙에 끈이 떨어졌으니깐


그래서 왕권을 등에 입은 수령들이 향리층이라 짜고 지방의 향촌 질서를 장악해 버림.


흔히 교과서에서 나오는 '향전'이 그 현상이고


어렵게 말하면 수령-이향 지배체제가 성립한 거임.


근데 보통 왕이 파견한 지방관이 지방 토호들을 제압하고 왕의 뜻대로 지방을 통치하면 좋은거 같잖아?


소설이나 영화나 드라마나 만화나 그렇게 나오고


근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


지방사족이 몰라하고 수령과 이향의 힘이 쎄지니깐


이들을 견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어져 버림.


그러니 이들이 부패해도 막을 방법이 없음. 조선의 중앙행정력으로는 백날 암행어사 파견하고 감사해도


불가능함. 보통 지방 사족들이 이런 관권의 비위를 고발하고 견제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들이 몰락하니깐 통제가 불가능해진 거임.


그때부터 헬게이트가 열리는 거지. 


지방 사족이야 어쨋든 수백년 거기 지방에서 자리잡고 사는 사람들이라서 


통치력을 확보하려면 최소한의 배려는 해줘야 했음 농민들 한테


근데 지방관은 얼마 근무했다 가는 사람이라 눈치 볼게 뭐있음?


다 빼먹고 런하면 그만인데. 



그니깐 강력한 왕권이라는건 환상임.


강력한 권력일 수록


강력하게 부패함.


그건 개인의 문제가 아님. 시스템의 문제임.

* * *


댓글 1:

비슷한 의미로 중앙집권의 나쁜 예로 대표적인게 시황제의 진나라지. 시황제가 살아있고 그 강력한 중앙통제력이 살아있을 때는 학살이든 뭐든 해서 통제력을 유지했지만 이세 황제가 서고 조고 중심의 조정이 썩어버리니까 순식간에 지방 통제력 다 날아거서 공중분해된 거.

조선이야 수백년에 걸친 통치 정통성에 단일한 문화 공유 때문에 몇몇 농민반란 제외하면 사족층이 대거 나라 뒤집자며 들고 일어서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대체동력도 없이 더 심하게 썩어가는 최악의 결과로 다가왔고



댓글2

이글 정확하네. 여러 대역에서 간관들을 약화시키고 왕권을 강화시켜 국운읊부흥시킨다는 식으로 썼는데 특히 정조가 정확히 그 짓을 하고 조선이 나락갔음. 애초에 이 시스템 자체가 남북조 시대 황제 독재 혹은 총신들의 전횡으로 생긴 극한의 불안정성을 줄일려고 도입된 걸로 앎. 이런 마인드 자체가 국회, 사법부 극혐, 대통령을 세습 절대 총통으로 같은 소리인것임




* * *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alternative_history&no=848669&search_pos=-840361&s_type=search_subject&s_keyword=.EC.99.95.EA.B6.8C&page=1


중앙집권은 좋고 지방분권은 나쁘다 이건 매우 고질적인 편견임.


미국 같은 경우는 오히려 중앙집권 했으면 지금 수준 국력이 못 나왔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