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기에는 하향식과 상향식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상향식은 세부적인 요소에서 시작해 점점 글의 전체상을 그려내는 작법이고, 하향식은 전체의 구도나 이념에서 시작해 세부적 요소들을 만들어가는 작법이다. 사람들은 상향식 작법이 하향식 작법에 비해 난이도가 낮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반대다. 상향식 작법은 하향식보다 더 많은 노력과 고통을 요구한다.


후피집과 오타쿠들의 장면 상상은 똑같이 상향식 작법으로 쓰여진다. 둘 다 어떤 장면(세부요소)들을 상상하고 그 부분을 우선적으로 작성한다. 그리고 거기까지 오는 구도와 전체상-다르게 말하면 서사를 써내리지 못한다. 오타쿠들은 단순 상상에서 멈춰설 수 있지만 작가는 다르다. 작가는 글로 벌어먹어야하니 어떻게든 글을 이어나가야한다. 그러므로 작가는 장면으로 이어지는 서사(구도)를 써야하는데 그것이 쉬운가? 아니다. 소재탭을 써보면 알지만 무지막지하게 어렵다. 쓴다고 한들 설정 구멍이 숭숭나거나, 필력 자체가 부족하다. 그래서 후피집을 쓰는 작가들은 편하게 쓰려고 클리셰나 클리셰 비틀기나 안티-클리셰에 의존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후피집은 초반에 자극적인 히로인들의 후회 피폐 집착 장면을 모조리 몰아넣는다. 그 과정에서 작가와 유사한 장면을 상상하던 독자들이 유입된다. 독자들은 자기가 생각하던 장면-혹은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하는 장면-을 보면서 작가가 이 장면같은 고점을 이어갈수있다는 기대를 한다. 그러나 후피집 작가는 독자들처럼 초반의 장면을 구상하는데 상상력을 다 써버렸다. 서사를 이어나갈 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글을 써야하는데 쓰지를 못하니 앞서 서술한 클리셰에 의존하는 현상을 보인다.


후피집에서 더 이상 후피집 장면이 나오지않고 클리셰 전개가 시작되면 지루함을 느낀 독자들이 이탈하고 다른 후피집 작품을 찾으러간다. 남아있는 독자들도 관성에 따라 글을 보다가 점점 흥미를 잃고 하차한다. 이렇게 독자수가 줄어드는 것을 보는 작가는 돈도 안되고, 클리셰 없으면 글이 써지지도 않으니 좌절감을 느끼고 연중을 선언한다. 그리고 이 작품의 남은 독자들은 다른 후피집을 찾아가고, 작가들은 수요에 따라 후피집을 쓰며 굴레가 계속 돈다. 


위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장면들 중간중간에 나올 서사를 생각하기 힘들다는 상향식 글쓰기의 문제점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위 문제점을 자기만의 방법으로 극복하고 후피집을 성공적으로 완결시킨 작품들이 대표적으로 두가지가 있다. 메나죽과 히집악으로, 위 두 작품이 어떻게 성공했는지는 또 다른 글에서 다루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