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A 저인망 수사: 건전한 시민의식을 요구하기 이전에

어떤 범죄가 벌어지면, 경찰은 수사를 위해 범죄현장에서 증거들을 수집할 것이다. 200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 묘사되었듯이, 현장에서 발견된 범죄자의 생물학적 신분증인 DNA 샘플 또한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다. DNA 저인망 수사는 경찰이 다른 증거들 만으로는 범인을 특정할 수 없을 때, 범죄 현장 주위에 사는 시민들에게 협조를 구하여, 시민 개개인의 DNA 샘플을 얻어 데이터 베이스를 구축하고, 범죄 현장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하는 DNA를 가진 사람을 용의선상에 넣는 식으로 수사망을 좁혀가는 방법을 말한다.

DNA 저인망 수사는 실제로 다른 물증만으로는 범인을 찾기 힘든 사건을 해결한 혁혁한 공로가 있다. 1987년 영국에서 두 명의 십대 청소년이 강간 후 살해를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현장에서 발견한 정액을 채취한 경찰은 수사를 위해 해당 지역에 사는 약 오천 명의 남자들에게서 피를 제공받았다. 탐문 수사 중 경찰은 해당 지역에서 오직 한 명, Colin Pitchfork만이 경찰을 속여 자기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피를 제공한 것을 알아냈고, 그를 추궁하여 DNA를 얻어낸 결과, 결국 그가 범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매사추세츠의 어느 요양원에서 생명유지장치에 의존하여 살아있는 혼수 상태의 한 여성이 어느 날 임신을 하여 배가 부른 것을 간호사들이 눈치챘다. 임신 6개월차였는데, 간호사들이 발견한 당일 출산을 하여 미숙아가 태어났다. 경찰이 해당 병원에서 근무하는 33명의 남성들로부터 DNA를 제공받은 결과, 해당 병원의 간호사 Israel Moret가 강간범임을 밝혀냈다. 그 사건을 맡았던 경관은 자기 관할에서 이런 사건은 처음이었기에, DNA 저인망 수사 방법이 아니었으면 사건은 오리무중이었을 것이라고 술회했다.

생물학적 지식을 이용하여 손쉽게 범죄자들을 체포했으니, DNA 저인망 수사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용할 편리한 수사 방법이겠지만, 범죄와 관계없는 일반 시민의 인권을 침해한다는 점에서 만능의 수사방법으로 여겨져서는 안 된다. 이번 글에서는 그 이유를 조목조목 살펴보겠다. 먼저 경찰에 ‘협조’하는 사람들에게서 DNA 수집하는 부분이다. 경찰이 사건에 관계 없는 사람들에게 강제로 협력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 중에서 협조에 응하는 사람에 한해 피나 세포 조각을 수집하면, 협조에 응하지 않는 사람은 경찰 눈에 어떻게 보이겠는가? 당연히 용의선상에 올라간다.

2002년 8월 미국 로스 엔젤레스에서 대마초 소지죄로 집행유예 기간 중에 있던 Floyd Wagster는 해당 지역의 연쇄살인범을 찾고 있던 보안관에게 DNA를 제공할 것을 요구 받았다. 자신의 대마초 사용 여부를 경찰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그는 거부했는데, 보안관은 그가 집에 나오자마자, 미란다 원칙을 통보치도 않고 수갑을 채워 경찰서로 연행했다. 보안관은 그에게 DNA를 제공하지 않으면 법원 명령을 얻어서라도 너에게서 뜯어낼 것이며, 이를 지역 신문에 알릴 것이라 협박을 했으며, 결국 Floyd는 협박에 못 이겨 DNA 제공에 ‘협조’했다. 그의 DNA는 연쇄 살인범의 것과 일치하지 않았다.

경찰 입장에서 DNA 저인망 수사를 위해 일반 시민에게서 DNA 샘플을 채취하는 것은, 음주운전단속을 위해서 길을 막고 운전자들에게서 입김을 채취하는 것이나, 가게에 강도가 들었을 때 강도가 남기고 간 지문을 채취한 후 비교를 위해 가게를 방문했던 모든 사람들의 지문을 채취하는 것과 전혀 다를 게 없다고 한다. 경찰이나 희생자의 가족의 입장에서는, 찔릴 게 없으면 시민들은 당연히 DNA 제공에 협조해야만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DNA가 주인에 대한 모든 것을 담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단순하게 주장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2011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에서 한 청소년이 피살되었다. 희생자의 옷에서 신원미상 남성의 DNA가 발견되었기에 경찰은 DNA 저인망 수사를 시작하여 해당 지역 남성 2만2천 명에게서 DNA 샘플을 제공받았다. 저인망 수사의 결과 43세의 세 아이를 둔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문제는 체포 이후에 터졌다.

해당 지역 남성들의 DNA를 모조리 모아 데이터 베이스를 만든 후 대조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범인이 1999년에 죽은 어떤 남성의 혼외자식인 것으로 드러났고, 경찰의 미숙한 정보 통제로 이 사실이 언론에 흘러 전국에 일파만파 퍼져버렸다. DNA 저인망 수사가 일반 시민들에게서 DNA를 광범위하게 수집하는 탓에 살인범 수사와는 전혀 관계 없는 개인의 사적인 관계가 국가권력을 집행하는 사법기관에 손에 들어가는 부작용이 일어난 것이다.

DNA는 개인의 사생활뿐만 아니라, 개인의 모든 생물학적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여러 기관에서 탐을 내는 정보가 될 수도 있다. 달리 말해, 수집된 DNA 증거가 수사 외 용도로 오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보험회사는 보험 신청자의 DNA를 미리 가지고 있다면 무슨 병에 걸리기 쉬운지를 분석해 보험 요율을 달리 책정할 수 있다. 국가는 범죄자의 DNA를 모아서 범죄자를 미리 판별할 수 있는 유전 정보가 있는지에 대해 연구할 수도 있다. 모든 성인 국민의 열 손가락 지문채취를 ‘국가안보’의 이름으로 합리화하는 우리 나라에서, DNA 샘플 및 분석정보가 수집되어 무분별하게 유통된다면 1997년 개봉한 앤드루 니콜 감독의 SF영화 ‘가타카’가 그리는 우생학적 디스토피아도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DNA 샘플이 수사 외 용도로 오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여러 각도에서 지적되고 있는데도, DNA 저인망 수사로 수집한 일반 시민의 DNA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한 법령이 준비되지 않은 점은 DNA 제공자들에게 막연한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서울시 중랑구 면목동에서 DNA 저인망 수사로 연쇄성폭행범을 검거하는 과정에서도, 협조를 요구 받은 시민들이 사건이 종결되면 내가 제출한 DNA 샘플은 어떻게 처리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범죄자의 DNA를 데이터베이스에 저장하여 관리하는 법은 있지만, 저인망 수사로 수집한 일반인의 DNA 정보를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서는 명문화된 규제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요약하면, DNA 저인망 수사는 범인검거라는 공익을 목적으로 하여 일반시민들에게 DNA 샘플을 사실상 강제로 요구할 수 있는데, 수집된 일반시민의 DNA는 여러모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으며, 현재까지 딱히 명문화하여 사건종결 후 그 DNA를 어떻게 폐기할 지에 대한 규제가 없는 상황이다. 이런 문제점들을 안고 있는데도 DNA 저인망 수사를 굳이 사용하려면, DNA 저인망 수사가 그만큼 범인검거를 기막히게 잘 할 수 있는 완벽한 수사 방법이어야 하는데, 사실 그렇지도 않다.

DNA 저인망 수사를 하는 경우는 용의자에 대한 정보가 매우 적어, 사실상 믿을 증거가 DNA 밖에 없는 경우다. 범인을 특정할 수 있는 시청각 증거가 풍부한 상황이라면, 여러 사람에게 DNA를 수집한 후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하는 DNA 저인망 수사처럼 시간이 걸리는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럼 범인은 안 잡히려면 어떻게든 본인의 DNA를 경찰에 제공하지 않으면 된다. DNA 저인망 수사의 첫 성공을 알린 Colin Pitchfork의 경우도, Colin 본인이 타인의 피를 경찰에게 줘 속인 것을 1년 뒤에 동네 빵집에서 자랑스레 떠벌리지 않았으면 검거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1990년 미국 샌디에고에서 일가족 6명을 살해한 살인범은 즉시 펼쳐진 800명에게서 수집한 DNA 저인망에 해당되지 않아 용의선상에서 빠져나갔다가, 다른 범죄를 저질러 체포된 과정에서 이전 범행 또한 탄로났다. 미국 마이애미에서 1994년에서 1995년까지 걸쳐 일어난 어느 강간 및 살인사건의 범인은 2300명에게서 수집한 DNA 저인망에 해당되지 않아 검거를 피하는 듯 했으나, 이웃이 범인의 이상행동을 신고하여 검거되었다. 경찰이 설정한 저인망 범위에 범인이 해당되지 않으면, DNA 저인망 수사는 그저 관계 없는 수많은 일반시민의 DNA를 수집하는 행사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DNA 저인망 수사가 용의자를 특정할 유일한 방법이라면, 경찰은 더 많은 피해자가 생기기 전에 공익을 위해 이 수사 방법을 사용해야 할 것이다. 시민의 협조가 필수적인 이 수사방법에 경찰이 시민의 협조를 어떻게든 독려해야만 할 것이다. 조성용 단국대 교수가 지적한 대로 (1) 법 질서를 어지럽히고 시민들의 정의감을 자극하며 (2) 통계적으로 재발률이 높으며 (3) 신원확인을 특정할 수 있는 증거가 나오기 쉬운 범죄, 즉 살인, 강도, 강간 등을 저지른 강력범죄자 색출은, 사상범이나 불법시위 참여자 색출과 달리, DNA 저인망 수사를 적용하여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좋은 명분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에 면목동 연쇄 강간범 체포를 포함한 여러 예시가 모두 강력범죄에 해당하는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이 거부감을 표시했던 사례다. 즉, 모종의 이유로 시민들이 DNA 저인망 수사에 협조하여 정의구현에 동참하기 꺼린다는 것이다.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시민들에게 선진시민의식을 요구하며 경찰의 수사에 협조할 것을 요청했는데, 이는 곧 수사에 협조하지 않는 이는 후진적인 시민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비난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선진시민의식을 요구하기 이전에, 국가가 국민과 투명하고 끈끈한 신뢰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면, 시민들은 사법기관이 공익을 위해 시민의 DNA 샘플을 요구할 때 귀찮더라도 막연한 불안감은 품지 않은 채 동참했을 것이다. 즉, 선진시민의식은 국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이 서로 투명한 신뢰를 돈독히 쌓아나가며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사리에 맞는 명문화된 약속, 즉 법이나 규제를 국민과의 합의를 통해 만드는 것이다. DNA 저인망 수사는 현재 어떤 범죄를 해결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적용범위, 시민들에게서 모은 DNA 샘플을 사건 종결 후 어떻게 처리하는 지에 대한 법이나 규제가 전무한 상황이다. 법은 국민들간의 약속이다. DNA 저인망 수사를 안정적으로 계속 사법기관이 수사에 사용하려면, 국가는 반드시 국민들과의 합의를 통해 국가가 공익의 이름으로 어디까지 국민의 사생활 및 생물학적 정보에 간섭할 수 있는지에 대해 명문화된 약속을 만들어야만 할 것이다. 선진시민의식은 그 과정에서 자연히 꽃피울 것이다.

---------------------------------------------------

예전에 썼던 글인데, 이제는 어엿한 생물챈이 생겼으니, 올려봅니다.
가끔 생물 외에 물리 관련으로도 궁금한 것 생기면, 물리챈에도 놀러오십시오.
https://arca.live/b/physics
번창하시니 보기 좋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