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역학을 배운 독자들을 대상으로 씀)



양자역학은 고전역학과 많이 다르다. 그리고 고전역학에서 모종의 처리를 했을 때 양자역학이 되는 것 마냥, 우리는 흔히 “양자화(quantization)”되었다는 말을 하곤 한다. 특히, QFT는 2차 양자화 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슈바르츠의 QFT 교재에서는 이 이름이 심각하게 잘못되었다고 불평한다. 양자화라고 하면 무언가가 띄엄띄엄 이산화되는 것을 떠올리게 된다. 실제로 컴퓨터과나 전자과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양자화라는 말을 사용한다. 하지만 물리학에 모드의 이산화는 사실 고전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양자역학의 초창기를 시작한 흑체 복사를 생각해보자. 보통 계산을 쉽게 하기 위해서 흑체를 속이 빈 거대한 큐브로 생각한다. 전자기장은 도체 표면에서 빠르게 죽기 때문에 큐브의 벽들 사이에서 빛들은 정상파를 이룬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모드들이 이산화된다. 여기까지는 완벽하게 고전적인 현상이다. 이후 각 모드의 에너지가 이산적이라는 플랭크의 가정이 QFT의 특징에 해당한다. 그런 의미에서 QFT는 1회 양자화되었다는 것이 슈바르츠의 지적이다.


그렇다면 모드의 양자화는 항상 고전적인 현상일까? 꼭 그렇지도 않다. 보어의 원자 모형은 고전적으로 연속된 궤도 반지름을 지닐 수 있어야 한다. 양자역학적으로, 슈뢰딩거 방정식이 정확히 모드를 이산화시키는 부분은 스페리컬 하모닉을 푸는 부분이다. 이는 해석적으로도 보일 수 있지만, 대수적으로는 각운동량 연산자가 교화 조건 [J_i, J_j]=i epsilon_{ijk} J_k을 만족시키고, 그에 따라 래더 오퍼레이터가 생기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특히, QFT의 canonical quantization이라는 포멀리즘의 이름을 생각해보자. 고전적으로 당연히 교환이 되던 것을 안 된다고 해볼 때, 수학자들이 말하는 양자화에 가까운 의미가 된다.


그런 관점에서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물리량 x, p, J, H 따위를 양자화했다. [x,p]이 0이 아니기 때문이다. QFT는 H를 헤밀토니안 밀도의 공간 적분으로 본다. 해밀토니안 밀도를 정의하는 필드들은 일반적으로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양자역학에서 x나 p가 어떤 힐베르트 공간에서 자기 자신으로 가는 연산자로 생각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힐베르트 공간 V에 대해, End(V)는 비가환 대수를 이룬다. 고전적으로 숫자로 생각하던 것과 대조하기 위해, 어떤 저자들은 숫자를 c-넘버, 연산자를 q-넘버라고 칭하기도 한다. c는 클래시컬, q는 퀀텀의 약자다.


이렇게 양자화가 되고 나면, 양자역학 때 각운동량 연산자들에 대해 한 것과 마찬가지로 래더 오퍼레이터를 정의할 수 있다. 이를 QFT에서는 크리에이터, 아닐레이터라고 부른다. 크리에이터를 진공 상태의 켓에 여러 번 적용한 것을 두고 입자들이 있는 상태라고 해석한다. 이런 식으로 비가환 조건은 플랭크의 양자화 가설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산화로서의 양자화는 플랭크의 양자화 가설 때 1회 일어났지만, 비가환 조건은 2회 일어났다는 점에서 QFT는 2차 양자화가 된 셈이다. 하지만 양자화는 보통 이산화라는 의미로 읽히므로, 이름이 잘못 되었다는 슈바르츠의 지적은 어쨌든 타당하다.



마지막으로, 양자역학의 또 다른 크리티컬한 특징인 불확정성의 원리를 생각해보자. 이 점에서 고전역학과 가장 달라진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잘 알려져있듯이, 불확정성의 하한 역시 커뮤테이터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도 교환 조건을 포기하는 것은 양자화라는 용어가 내포한 여러 뉘앙스를 가장 적절히 추상화한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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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다가 나름대로 생각해서 적어보았습니다.

다들 신년 잘 보내시고 물리 공부하는 한 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