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이 글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쓰여졌음을 알립니다.


해당 집회는 전광훈 한기총 회장 목사의 주도하에 다수 기독교 신자에 일부 우파 시민단체 및 인사의 참여로 운영 되었음을 밝혀둡니다만,

글쓴이 본인의 견해는 주최 측과 큰 연관이 없습니다.




비가 미친듯이 때려박히던 광복절 오전 11시 30분. 병역 의무 수행을 마치고 전역한지 만 9년 5개월. 너무 빨리 바뀌어서인지, 10년도 채 되지 않은 서울의 강산은 이전 모습이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고. 온 사방에 서로 뜻이 다른 플래카드, 천막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가운데, 유관순 열사의 그림이 고층 빌딩 건물의 측면에 걸린 채 내려다보던 그곳. 광화문.

미리 우의를 준비해두어 비에 홈빡 젖는 건 피했지만, 얼굴로 수시로 날아오는 그놈의 우산의 살촉들은 끊이질 않고. 신고 간 운동화는 진작에 푹 젖어버려 양말까지 절벅절벅 '즙'을 뿜어내는 끔찍한 기분.

목표 집회 장소까지 가는 동안 아마도 다른 집회를 주최한 듯한 사람 하나가 연단에 서서 이렇게 외치더군요.
"여러분, 오늘은 어차피 수중전입니다! 우산을 잡고 자리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니 시원하지 않습니까!"

집회 장소까지 가는 동안 이순신 장군님 동상도 보고, 그 뒷편의 세종대왕 동상도 보았습니다.




애석하게도 저희 집회 장소는 이순신 장군님 등 뒤더군요. 누군가는 이걸 두고 이순신 장군도 등 돌린 집회라고 할 테고, 또 누군가는 이순신 장군님이 지켜주시는 집회라고 할...테죠. 리오의 예수상도 파벨라를 등지고 있고 그걸 두고 두가지 해석이 있었듯이.

아쉽게도 1차 순서 때는 사진을 많이 찍지 못했습니다. 비가 쉴 새 없이 퍼붓고, 우산 살촉 날아오는 게 눈에 맞지 않게 피하는 것도 벅차서 도저히 폰을 꺼낼 수가 없었어요. 따라서 이 글에 올리는 사진들은 대부분 2차 순서의 초반이 지나고 난 뒤의 사진들 몇 점이 대부분입니다.

기독교도들이 모이면 늘 하는 것이 예배. 1차 순서는 설교 및 예배 형식에 더한 집회.

하지만 예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주변에서 울려퍼지는 군가(멸공의 횃불을 정말 거의 10년 만에 부대 밖에서 듣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습니다)라던가, 혹은 하나하나 가세하는 서북청년단이라던지, 해병대전우회 깃발이라던지 이런걸 보고 있으려니. 이건 단순히 기독교도만의 집회는 아니라는 생각은 확고하게 들었습니다. 그 증거 중 하나가...



...이런 보수 단체가 엮여 있는 시위에는 항상 함께 등장하는 태극기와 성조기...물론 한미동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의 비중을 차지한다는 걸 생각할 때 이런 광경은 이미 예상한 바이고 예상한 바대로였습니다만, 1919년, 삼일절로부터 정확히 백년하고도 다섯달 반이 지난 시점. 고층 건물 옆을 통해 내려다 보는 유관순 열사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지는 광경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예배 순서 와중에 설교가 끝나고 대한민국 엄마부대의 대표인 주옥순 씨(https://namu.wiki/w/%EC%A3%BC%EC%98%A5%EC%88%9C)가 올라와서 연단에 서더군요. 전광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이 사람도 어느 교회 권사님이라나. 난 그거 처음 알았는데. 그거까지야 뭐 주최 측의 선택이라 치고, 그 다음 그 '권사님'이란 분이 한 말씀이 가관.

"여러분! 이 쏟아지는 비를 보십니까! 이 비는 지하에서 대한민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이승만 대통령의, 박정희 대통령의 눈물입니다!!!"

...네?

잠깐만요. 여기 아무리 우파 시민단체들 많이 있다고 해도 일단 기독교 단체가 절대 다수거든요; 헤브라이즘의 신봉자들에게 왜 뜬금없이 샤머니즘스러운 소리를;;;

그리고 그제서야 뒤편의 애드벌룬에 매달린 큼지막한 사진의 주인공이 누군질 알아챘지요. 우남 이승만 씨...그 쯤에서 대충 이 집회의 성격을 어지간히 짐작할 수 있을 듯합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는 모이는 법이랬지요.

여튼 대애충 무난하게 구호 외치고 주옥순 씨가 내려가자 다음에 등판 한 건 역시나 어느 교회 '집사'라고 하는 송영선 전 의원 씨(https://namu.wiki/w/%EC%86%A1%EC%98%81%EC%84%A0)...



전광훈 목사님. 이게 최선입니까? 정말 섭외하실 분들이 그렇게 없었습니까? 한탄하는 사이에 송영선 전 의원이 외친 말은 또 이랬습니다.

"여러분, 이 눈물은 지금 대한민국을 내려다 보고 슬퍼하는 하나님의 눈물입니다!!!"

...

...네, 그래요. 권사라는 주옥순 씨의 샤머니즘적인 발언보단 그래도 좀 낫네. 하지만 저 말을 듣는 순간 제 머리에 퍼뜩 떠오르는 성경 구절은 딱 둘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어디로 가서 네게 말씀하시더냐" (열왕기상 22:24 중 - 아합의 어용 선지자 시드기야가)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열왕기상 22:25 중 - 참 선지자 미가야의 대꾸)

옛날 성경책에도 정치인들이 듣기 좋게 하나님의 뜻을 호도하는 사람들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기원전 9세기들의 인물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송영선 '집사님'. 당신은 하나님이 울고 계시다는 걸 도대체 무슨 근거로 주장하시는 겁니까.

여기서부터 뭔가 벌써 탈력감이 마구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나도 싫어하고 그 사람이 그만 두는 편이 나을 거 같다는 생각은 나도 하고 있지만, 왜 하필 고르고 골라서 주옥순 '권사님', 송영선 '집사님', 입니까...

그 다음은, 이름은 못들었지만 불교계에서 지원 나오신 스님 한분의 연설이 있었는데, 이 분 이야기는 설상 가상.

"여러분!! 기독교의 기본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기독교의 기본 가치관을 왜 스님이 논하시나요. 뭐 그건 그렇다고 칩시다. 아래 모여있던 기독교계 회중의 답변이 대충 '사랑'으로 귀결되는 느낌이었는데. 뭔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느낌이자 얼른 이분이 외치시길

"자유!!!"

네? 네, 뭐 그래요.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게 기독교 가치지. 그거까지야 뭐 좋은데...

"평등!!! 박애애애애!!!!"


아놔...도대체 언제부터 기독교의 기본 가치관이 '프랑스 대혁명'이 되었습니까? 덕택에 교인들이 '이게 아닌데'하는 느낌이 강한 가운데 마지 못해 얼렁 뚱땅 넘어가는 구호제창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게 대통령 하야 촉구 집회인지 개그 콘서트인지 분간이 안가기 시작했습니다. 정사챈 고닉들을 저 연단에 올려도 이것 보단 더 논리적으로 잘 이끌어 갈거 같다는 생각마저 들기 시작...

그 다음 화두는 다름아닌 전광훈 목사 본인이 추진 중인 '천만인 하야 촉구 서명운동'. 네...사람들 많이 모으긴 모았나봐요. 지금까지 한 약 500만명 서명 받은 거 같아요. 그러면서 서명 받는 방법을 설명하기 전에 문재인 대통령이 빨갱이인 증거를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평창 올림픽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의 일부분을 반복 재생을 시키는데, 문제가 되었다는 해당 문구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사상가 신영복(https://namu.wiki/w/%EC%8B%A0%EC%98%81%EB%B3%B5) 선생님은..."

그리고는 김문수 전 도지사(https://namu.wiki/w/%EA%B9%80%EB%AC%B8%EC%88%98)가 등단해서 말하길 신영복은 육군사관학교 시절부터 좌익 세포 부식에 힘썼던 빨갱이라, 그리고 그 빨갱이를 존경하는 문재인은 역시 빨갱이다!!! ...라고 열변을 토하곤 내려가더군요.

...이건 뭐 대애충 정사챈 관리진 중 하나가 친 철견파 인사를 언급하자 그 인사는 철견님의 주구고, 그 철견님의 주구를 존중하는 그 관리진은 철견의 주구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어디서 많이 본 논리인데?

여튼, 어안이 벙벙해 있던 와중에 1차 순서가 끝나고. 드디어 비가 그치기 시작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은 확실히 많이 왔더라구요. 주최 측에선 대충 25~30만명쯤 모였다고 주장하는 느낌이고, 이런 주최측의 주장의 뻥튀기를 별로 신뢰하지 않는 제 아버지께선 7만~11만 정도일거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전 저 자리에서 사진 찍는 것만으로도 눈이 어지러울 정도로 정신이 없어서, 어느 정도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차 순서는 뭐...대충 친박 반문 우파 시위대 전문가들이 올라와서 이것저것 분위기를 돋우는 분위기였어요. 1차 순서 때도 뒤편에서 몇명이 '문재인 Dog shake it'이라던가 '죽여라'라던가 열심히 분위기 띄워보려고 애쓴 거 같은데, 주류가 교회 다니는 나이 지긋한 지방 어르신들이라 그런가, 호응이 거의 없다시피 해서 나중 보니 힘에 부쳐 지쳐하는 그런 느낌.

애석하게도 이 시점에서 저희 교회에서 올라온 저 포함 7명은 다시 김해로 내려가기 위해 그 자리에서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올라오는 데만 5시간이라는 장절한 시간이 걸렸는데, 집회가 끝나게 될 시점까지 죽치고 있다간 자정은 커녕 익일 새벽에도 귀가를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 따라서 그 이후 2차 순서에 어떤 이야기들이 나왔는지는 전해드릴 수가 없네요. 매우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개인적으론 분위기 격화되기 전에 나올 수 있어서 매우 다행이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해서 아래의 사진들은 귀가 차량을 주차해놨던 곳으로 돌아가던 중 뭔가 아쉬워서 찍었던 사진 들이에요.



이런 시위가 발생하게 되면 늘 그렇듯이 늘어서 있는 경찰 버스들...형광색 우비를 입고 지나다니던 경찰들도 많았고(찍었다가 시비 걸릴까봐 경찰을 직접 찍진 않았습니다...본 총권자는 쫄보입니다 (_ _);) 한가지 인상 깊게 남아있는 버스에 붙은 문구가 있었는데 "사람이 앞에 있으면 사람이 먼저!"라는 거였습니다. 요즘 경찰들 고생이 왠지 느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일반 시민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는 게 정상이지만.



반일을 반대하는 안티 반일 깃발...참고로 이 깃발이 있던 위치 근처는 대애당(조원진 곰팅이 아재의 그 당...) 집회 장소의 근방이었는데, 반대를 반대한다!! 라는 느낌이라, 불매운동하곤 다르면서도 뭔가 같아보이는 그런 기묘한 느낌이었어요. 참고로 대애당 집회장소 근처에선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메인 테마를 틀어놓곤 엉엉 울면서(진짜로 꺼이꺼이 우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려엉~ 석방하르아~ 하고 외치는 게...그들이 정말 싫어하는 북한의 어용 방송의 신파극과 지극히 닮아있다는 생각이 들자 또 기분이 묘해졌습니다.



이건 우공당(우리공화당) 집회장소...그다지 특별할 것도 없고 대단히 기억나는 말도 없지만, 이쪽은 박근혜를 외치기보단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여사를 추억하는 분위기가 강합니다. 참고로 말하자면 이 거리 지나는 가운데 가장 많은 플래카드들이 우리공화당에서 내 건 것들이더군요. 제가 지나가는 시점에 우리는 완전한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증명할 기회를 '놓쳤습니다'라고 연사가 말하던 중이었습니다. 참고로 그 연사가 밝히길 자신도 한때 촛불집회 참석했던 사람이라고...뭐라고 말하는 건가 들어보고는 싶었는데, 갈 길을 서두른지라...



남대문...즉 숭례문입니다. 여기쯤 오자 목청이 터질듯한 연사들의 목소리도, 음악소리도 들리지 않고 태극기와 성조기도 보이지 않더군요. 김해 촌바닥에서 살다가 서울에 와서 모든 게 신기하셨던 어르신들께선 기념 사진을 찍을 장소로 여길 고르셨지요. 전 이 마지막 사진을 찍다가 빨리 안오냐고 타박을 들었구요. 지난번의 대한민국의 헤로스트라투스 채종기 씨가 저지른 방화 이후로도 그럭저럭 멀쩡히 서 있는 모습입니다.

결론적으로 여러가지로 오랜만에 서울 구경도 해보고...사람이 모이는 곳은 그게 리얼 그라운드든, 인터넷 공간이든 양상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경험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