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회 채널 (비)

 한국의 제사는 유교경전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국의 제사풍습은 원래 남녀 차별없이 유산받은 자녀들이 순서대로 지냈습니다.

장남만 제사지내는것이 아니라 순서대로 지냈습니다.

그리고 부모님의 유산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받았습니다.

 제사양식도 방식도 죄다 가문별로 달라고요. 

현재의 울나라 제사방식중에서 가문이 아니라 정부가 내놓은 기본의례준칙에 따른다면 죄다 족보 없는 제사라고 보시면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것이냐면 1960년대말인가 70년대에 들어서면서 제사를 어떻게 지낼것인가에 대해서 정부에서 만듭니다. 조선시대부터 이름있는 가문의 제사방식을 토대로 해서 만든것입니다.

 유교탈레반이라고 제사를 까는데 사실 이거 울나라 제사를 이딴구로 만든 박정희대통령부터 까야합니다.

조금만 더 연구했다면 조선의 일반가정집들이 지냈던 제사기록들 그리고 딸들의 제사참여와 재산상속등의 문제를 충분히 알아낼수있었습니다.

 근대 오히려 장남상속에다 장남들이 제사지내야하고 여자들의 참여를 막아버리고 유교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조차 다 엎어버리고 페해라는것은 다 그떄 만들어진것입니다.




 현재 제사가 얼마나 문제가 많냐면 가정법원이 가장 바쁠떄가 명절후입니다. 그떄 이혼율 급상승합니다.

 거기다 부모의 재산상속의 의미 이런것이 모두다 이상하게 변질되었고요.

 

조선시대 남편과 아내가 주고받은 편지들만 보아도 재산을 받아도 부모님제사를 지낼수가 없다면서 이거 어떻게 해야하냐면서 고민하는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재산상속에 관한 기록들을 찾아보면 실제 우리가 생각했던거랑은 조선은 상당히 다릅니다.

 임진왜란일어나기전부터 서서히 유교화가 되었지만 임진왜란이후로 무너지는 조선을 수습하기위해서 유교로 대동단결하면서 온갖 민페가 쏟아진것입니다.

 한국이 6.25전쟁이후로 반공을 국시로하면서 단결하듯이요. 그래도 일반가정집에서 우리가 아는 조선의 그런 막장 모습은 18세기쯤에야 나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나 일제시대 1960년대 일반가정집에서 제사지내는데 지금처럼 지낼수도 없어요. 가난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