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겉으로는 한국에 대해 압박하는 것으로만 비쳤지만, 실상은 미국 고위 인사들이 최근 일본과 한국 방문을 통해 한ㆍ일간 합의를 적극적으로 독려해 왔다.”

이수혁 주미 대사는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한ㆍ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ㆍ지소미아) 종료 통보 철회 배경을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이 지소미아 종료를 거둬들이도록 미국이 일본을 압박했다는 취지다.

이 대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 간 신뢰와 상호 소통이 강화됐다"면서 이를 토대로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 긍정적 영향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일본 언론 인터뷰에서 지소미아 종료 연기와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이수혁 주미 대사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한국문화원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지소미아 종료 유예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박현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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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사 발언은 지난 22일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 예정시간이 임박해 종료를 조건부로 철회하면서 협정 파기를 막았지만, 이후 한·일이 서로를 향한 비난전을 펴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다.

이 대사는 미국 측이 일본도 압박했다는 근거로 최근 한 달 동안 미 행정부 수뇌부가 잇달아 일본과 한국을 방문한 것을 들었다.

이 대사는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한미 안보협의회의 참석차 방한에 앞서 방일했고, 스틸웰 차관보도 나고야 G20 외교장관회의를 포함해 두 차례 방일했다”고 전했다. 또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도 한·미 및 한·미·일 3자 회담 개최에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덧붙였다.

이 대사는 “일일이 협의 과정을 다 공개하기 어렵지만, 초반 완강하던 일본 입장에 미세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결국 지난 금요일 한·일 간 합의에 이른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미국 측의 건설적 역할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대사는 “한ㆍ일간 합의가 누구의 승리다, 또는 미국 압박의 결과로 평가하기보다는 지난 몇 주간 진행돼 온 한·일간 진지한 물밑 협상에 미국의 독려가 종합적으로 작용해 이뤄진 결과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사는 미 행정부와 상ㆍ하원 의원을 두루 만나면서 “미국이 한ㆍ일 양국에 대해 균형적으로(balanced) 관여하고, 한국의 지소미아와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동시적(simultaneous)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설득했다고 밝혔다.

또 한국 입장에서 “지소미아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이 문제를 촉발한 “한ㆍ일간 강제징용 문제 등을 해결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한ㆍ일이 협의할 수 있도록 미국이 권유하는 역할을 해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미국은 그간 한ㆍ일간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중재자 역할은 하지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 하지만 이번에 미국이 나선 이유는 지소미아 종료가 한·미·일 군사정보 협력 이외에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 구조, 미국의 안보이익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라고 이 대사는 설명했다.

이 대사는 미 의회 역시 한국뿐 아니라 일본에도 협의할 것을 촉구했다고 강조했다. 지난주 의회는 입장을 발표하고 한국 측에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면서 한ㆍ일 양국에 이견 해소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할 것을 똑같이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는 것이다.

이 대사는 "이번 일을 계기로 한·미 간 신뢰와 상호 소통이 강화된 만큼 이를 토대로 앞으로 방위비 분담금 협상, 북핵 문제 공조, 역내 협력 강화를 모색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는 지소미아 연장과 방위비 분담금 협상은 별개라는 입장이다.

스틸웰 차관보는 25일 보도된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 인터뷰에서 ‘한국이 지소미아를 연기한 만큼 방위비 분담금에 대한 미국의 압력이 약해질 것이란 시각이 있다’는 질문에 “하나의 사안과 별개의 사안을 연관시키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답했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