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명제는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축제 중 하나다.

사람들은 밤새 셀 수 없을 정도의 등불을 밝히고, 등불처럼 밝은 희망이 찾아오기를 기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식은 바로 자정에 거대한 초롱을 밝혀 축복을 기원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그런 곳에서 수성은 타이구 물류회사와의 접견 장소에서 그곳의 가이드와 하임델 부대의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타이구 물류회사는 수 세기 전 타이구 운송업으로부터 시작한 글로벌 물류회사이다. 또한 위그드라실의 고정 협력 파트너로 제로 수역에서 물류 배송 지원을 책임지기도 한다.

수성의 임무는 타이구 물류회사의 보안실 안에 있는 어느 한 ‘물건’을 배송시키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자 하임델 부대의 정예 멤버들이 하나둘씩 천천히 모이고 있었다. 하지만 수성이 바라본 사람은 그들의 뒤에서 절반쯤 가려진 여자아이였다.

‘세리스···.’

수성은 독백하면서 동시에 가슴이 아려왔다.

세리스는 선택적 기억상실증으로 가끔 다른사람의 이름을, 자신의 행동을, 추억을 까먹기 때문이다. 과잉기억증후군이라 불리며 모든 것을 과도할 정도로 전부 기억하는 수성과 반대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리스는 항상 자신의 행동을 메모할 수 있는 수첩과 녹음기능이 탑재되어 있는 볼펜을 들고 다닌다. 그녀에겐 수첩과 볼펜들이 오늘 등명제의 등불과 같이 소중한 것들이라는 뜻이다.

등불은 사람들의 소망과 축복을 담지만 세리스에겐 자신의 기억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리스는 볼펜이 없으면 그때 있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수성은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자 수성의 표정이 잠시나마 일그러졌다.

“오래기다렸나요?”

“아니요 얼마 안기다렸습니다.”

분석가가 말을 걸자 수성은 곧바로 표정을 고치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사람이 많네요.”

이어지는 분석가의 말에 수성도 대답했다.

“올해는 제로 구역에서도 등명제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어요.”

“아하 그래서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어라? 수성씨 그 얘기 어제 저한테도 말해주신 거 아닌가요?”

다행히 기억을 잃지 않은 세리스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네 맞아요”

-어제 임무 시작 하루전-

“···세리스도 갈건가요?”

임무 때문이라지만 어쨌거나 등명제에 참가하게된 수성이 호기심으로 세리스에게 물어보았다.

“등불의식? 그럼요~그럼요~ 가야죠 문제없어요!”

힘차게 대답하는 세리스를 보고 조금은 기뻐진 수성은 희미하게 기뻐하며 대답했다

“저도 큰 문제는 없을 거 같아요.”

“좋아요! 그럼 그날 사람들을 불러서 다 같이 등불 의식을 보러가요!”

“같이요? 좋아요.”

어제의 기억을 아직 잃지 않은 세리스를 보며 수성의 입가가 약간 미소가 지어졌다.

“어 잠깐 수성씨 제로 구역에서라면 코요테나 새신성회도 있다는 건가요?”

순간 뭔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세리스가 예리한 질문을 했다.

“맞아죠. 하지만 그렇게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어요. 그들도 1년간의 힘들었던 삶을 치유하고 다음 등명제를 버틸 힘을 얻어가야 할 테니까 그들로 인한 문제는 걱정 할 필요는 없어요.”

수성은 세리스의 질문에 간단히 답하며 세리스와 함께할 등명제의 등불의식을 기대했다. 그래서 그런지 수성은 이번 임무에 그녀의 어머니가 생전에 직접 디자인했던 전술 슈트를 가져왔다.

그렇기에 ‘미스트는’라는 이름의 전술 슈트는 그녀에게 있어 마치 부적 같은 존재로 수성은 ‘미스트’에게 임무를 잘 끝내고 세리스와 같이 등불의식을 본다는 약속을 지키게 해달라고 소망했다.

등명제에선 등불이, 세리스에겐 수첩과 볼펜이, 수성에게 ‘미스트’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오래기다리셨나요? 죄송합니다 중요한 날인지라 업무가 끝나지 않아서요.”

한 남자가 수성과 하임델 부대의 멤버들에게 다가가며 말을 이었다.

“인력이 부족해서 저 혼자서 여러분을 응대할 수밖에 없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분석가님, 그리고 희수성님. 아, 저는 타이구 물류회사 소속 창요 입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보다 이번 임무를 가이드 시작해주시죠”

수성은 괜찮다는 제스쳐를 표하고 곧바로 임무에 돌입했다.

“하하하 속전속결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네요. 그럼 바로 가이드를 하겠습니다.”

그렇게 수성과 하임델 부대는 가이드를 받으며 이동을 시작하고 어느 한 지점에서 멈춰섰다.

“여기서 부턴 희수성님만 따라오시면 됩니다.”

창요가 앞에 있는 건물을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서부터 잠시 작별이네요 분석가님, 모두”

수성은 분석가와 모두의 인사를 받고 창요가 가리킨 건물로 이동하려 했다.

“수성씨 다같이 등불 의식을 본다는 약속 안 잊었죠?”

세리스가 약간은 걱정하는 표정으로 수성에게 물었다.

“네 잊지않았어요 임무를 빨리 끝내고 같이 연등의식을 보내요.”

수성의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헤헤 그렇죠? 그래도 조금은 걱정되서요···.혼자임무를 수행하시니까요···.”

세리스가 안심되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지만 아직은 완전히 안심되지는 않은 것 같다.

“아! 저희 약속해요! 반드시 임무를 완벽하게 빨리 끝내고 다같이 등불 의식을 보기로!”

세리스가 꼬리에게 꼬리가 달렸으면 아마 엄청 흔들었을 정도로 활기차게 말했다.

‘약속···.’

약속이라는 말에 수성은 가장 끔찍한 기억이 꺼내졌다.

사실 3년 전, 두 사람은 발키리 게임 결승전을 보기로 약속했었다. 하지만 수성은 집안 사정으로 가지 못했고, 결국 세리스 혼자서 강림 사건에 휘말렸다.

어릴 때부터 기억 상실증을 앓던 세리스는 강림 사건으로 중상을 입었고, 가장 중요한 녹음 기기를 잃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깼을 때는 수성과 함께했던 기억들을 포함해 모든 기억을 잃었다.

수성은 해당 사건으로 자책했고,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세리스가 모든 과거를 잊어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수성은 아무대답도 없었다. 세리스는 미안한 표정으로 수성에게 말을 걸었다.

“어···수성씨 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례했죠?”

세리스의 표정을 보고 수성은 곧바로 대답했다.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랑 약속하는게 오랜만이라 좀 놀랐어요. 하죠. 약속. 반드시 세리스와 분석가님과 하임델 부대와 같이 등불 의식을 볼게요.”

그렇게 대답하자 세리스는 그제야 안심된다는 표정을 하고서 수성을 제대로 보내주었다. 수성도 그런 세리스를 보며 홀가분하게 임무를 수행하러 이동했다.

‘이번엔 반드시 약속을 지키고 말겠어.’

건물로 이동하는 수성의 눈빛은 결의에 차 있었고 다시금 세리스와 추억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약속을 할 수 있었다는 생각에 입꼬리가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