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30년대까지 미국은 미합'중국' 이었음.

이 시절 미국에선 인종차별주의자, 우생학자들이 판치고 국가에 대한 충성맹세를 거부하면 비국민 취급당했음.

당시 미 연방 대법원은 저지능자를 강제 불임시술하는 게 '합리적'이라던 시절이라, 당당하게 '분리하되 동등'하면 차별이 아니라며 백인석, 흑인석을 분리하라고 판결내림.


그러다가 뉴딜정책, 2차대전을 거치며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되자

미국의 엘리트들은 세계에 미국이라는 브랜드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려면 

최소한 몇몇 부분은 좀 꾸며야 겠다는 생각을 함. 

그래서 1950년대에 미국은 허둥지둥 인종차별을 금함. 


2. 그러면서 최강대국의 입지에 맞게 전체적인 체계를 손보려고 하다가 매카시즘을 처맞음.

거국적으로 사상검열 앞에 미국이 한번 뒤집힌 동안 소련은 스푸트니크를 날리고 원폭을 만들어 버림.

스푸트니크 쇼크는 미국인들이 강제 자아성찰을 하는 계기가 됨.

미국은 이때서야 전세계인들 모두 자기들처럼 천사의 존재를 믿고, 진화론은 빨갱이의 음모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됨.

 

당황한 미국은 문 레이스를 시작하며 진보적인 방향으로 대대적인 사회 개혁을 시작함. 

그 과정에서 교육 분야가 탈탈 털리자 그때까지 진화론을 교과서에 넣자는 말 만으로 경기를 일으키던 기독교계가 발칵 뒤집혔음.

보수적인 남부 기독교회의 교육가, 학부모들은 

'빨갱이-깜둥이들이 학교를 타락시키려 한다'고 확신하고 

아이들을 '보호' 하기 위해 자기들의 신념을 따르는 기독교 학교들을 열심히 만들기 시작함. 

근데 기독교 학교들도 학교니까 미국 정부는 관성적으로 이들에게 세금으로 보조금을 주었는데 여기서 무신론자들이 들고 일어남. 


'왜 내가 낸 세금으로 우리를 빨갱이라 욕하는 저 꼴통들을 지원해야 하냐?'라면서 

무신론자들이 종교학교 지원에 이의를 제기함


3. 당시 미 대법원은 뉴딜정책을 지원하던 1940년대 부터 남부의 인종차별을 타파하던 1960년대 말까지를 거치며 

진보주의로 싹 물갈이되어 있었음. 이들은 고민 끝에 '레몬 테스트'라는 걸 만들. 

미국 수정헌법 1조에 '국교의 설립을 금지하고 자유로운 종교활동을 보장한다' 라고 되었으니 

미 대법원은 아무리 기독교 문화가 미국의 근본이라도, 기독교가 미국의 국교가 아니라는 판결을 내림. 

따라서 국가의 지원을 받는 모든 학교는, 

반드시 종교에 중립적인 교육을 해야 하고, 오직 중립적인 프로그램만 미국민의 세금으로 지원받을 수 있음. 


그에 따라 그 때까지 미국 공립학교에서 널리 행하던 

- 다 같이 하는 아침 기도, 

- 크리스마스 시기에 찬송가 부르기

- 아침 예배 시간 등등이 싹 칼을 맞고 사라지게 됨. 

종교학교도 보조금 받는데 타격을 받음. 이게 지금으로 부터 50년전인 1971년의 상황임.


4. 이후 미국을 히피 문화가 휩쓸고 그 다음에 신자유주의가 등장했다가 냉전이 끝나며 시간이 흘렀음. 

미국의 세계원탑에 오른 1990년대, 에이즈 공포가 미국을 휩쓸고 약간 시간이 지나자 미국 정치-법조계는 성소수자들을 놓고 다시 한번 기독교와 전통 사회질서에 맞서기 시작했음.

처음에는 에이즈가 신의 형벌이란 논리로 게이들을 때려잡기 쉬웠지만 시간이 흐르며 사회는 무뎌져갔음. 


197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게이 성관계를 하면 처벌, 콘돔 팔아도 처벌, 결혼안한 사람들이 섹스하다 걸리면 처벌 이러던 나라에서 

세계화 바람을 크게 맞은 1990년대 후반에 이르자 미국은 사회가 급격하게 변해서 성기노출까지 가능한 개방 사회로 급변함.

그런데 미국 사회 한쪽이 '유럽화' 되었는데 다른 한쪽은 '어험 그래도 기독교 국가, 기독교 윤리가 있어야지' 하다보니

나라가 문화적으로 갈라지면서 점점 새로운 대립이 심각해짐.


5. 2001년, 9.11 테러가 있은 이후 미국은 반이슬람 광풍이 불었고 그 과정에서 너무 심한 인권탄압 저지르다보니 

2000년대 후반부터는 이거 너무 심한게 아니냐는 반격이 쏟아지며 다시 대법원이 진보쪽으로 급커브를 틀어버림. 

그 과정에서 오바마가 당선되더니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대변혁이 일어남. 


냉전이 끝난 후 세계화의 흐름앞에 뒷방 늙은이로 몰렸던 미국의 보수파들은 

여기까지 몰리자 미국이 망한다며 거세게 들고 일어남. 

그러면서 1970년대에 이미 결론내렸던 낙태, 종교교육이 총기자유 문제랑 세트로 다시 이슈로 떠오름.


2010년대가 되면서 그때까지 유지하던 미국의 종교적 중립 운동은 뿌리부터 흔들리게 됨. 

공적인 자리에 중립을 지키면 알아서 사상적 다양성이 자리잡을 줄 알았는데 웬걸,

앞에서는 다양성을 세련되게 유지해도, 아니 다양성을 강조할 수록 뒤에서는 극단주의가 깊은 뿌리를 내린 거였음.


그러다가 동성애, 무신론, 무슬림, 유색인 등등에게 위축되고 있던 미국의 주류문화, WASP는

구심점을 얻으며 여기저기서 들불처럼 반발을 일으킴. 

이런 변화의 대표적인 케이스가 동성애자 케이크 사건, 미식축구 교사의 기도모임 사건임. 


6. 2012년 미국 연방대법원은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이유를 들어 동성애자에게 결혼축하 케이크를 만들어주지 않겠다던 빵집 주인의 편을 들어줌. 

동성애자 커플이 굳이굳이 기독교인 빵집에 와서 자기들 결혼축하 케이크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걸 빵집 주인이 '정중히' 거절하자 동성애자 커플은 이게 차별이라고 들고 일어남.

미 대법원까지 간 케이크 소송에서 연방 대법원은 '굳이 동성애자가 빵집 주인의 종교적 신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강요할 수는 없다'고 성소수자 보호보다 종교의 자유를 편들어 줌. 


7. 2015년 브레머튼 고등학교 미식축구 코치 케네디 씨는 경기할 때 선수들을 모아놓고 개방된 경기장에서 모여 기도를 함. 이걸 보고 레몬테스트에 정면으로 위반된다고 본 몇몇 학부모가 코치를 해임하라고 요구함. 코치는 이 때문에 짤리자 자신의 종교 자유가 위협받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대법원까지 끌고감. 

연방 대법원은 코치가 

수업중에 기도한 게 아니고, 

기도할 것을 명령한 것도 아닌데다가, 

학교가 교육예산으로 지원한 것도 아니므로 

이 경우에는 코치 개인의 종교적 표현이라고 판단해 줌.



8. 이런 식으로 미국 대법원은 1970년대 이래 유지하던 진보적 흐름을 동성애 결혼 허락에서 정점을 찍은 이후, 대대적으로 방향전환해서 트럼프 시절에는 무리수를 둬가며 보수로 완전히 틀었음.


정리해보면 미국대법원은 1930년대 뉴딜 이후로 진보로 방향전환해서 

인종차별 타파, 여성인권 증진, 성적취향에 따른 차별금지 등, 소수자 권익을 추구해왔음. 

그러다가 1970년대 이후로 급진적 진보주의자들과 보수파들의 긴장이 시작되어 

2010년대를 기점으로 우파의 영향력이 점점 강해지다가 

트럼프 시기를 지나며 6-3으로 압도적인 보수 우위 대법원으로 돌아섬. 

그리고 그 성향이 2010년대 이후 종교 관련 판결에 영향을 주고 있음.


9. 여기까지 본 다음, 과거 차별금지법 제정을 둘러싸고 논쟁이 일어났을 때 한창 하던 말인데, 

학교에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 처벌을 받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미국을 놓고 말하자면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맥락에서 말을 했냐가 문제가 됨.


교사가 방과후에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말했으면 큰 문제가 되지 않음.

그런데 교사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겠다는 이유로 공립학교에서 

세금지원을 받아가며 학생들에게 기독교 찬송가를 토대로 하는 '메리 크리스마스'를 전교생 모두에게 부르라고 지시하면 

그땐 문제가 될 수 있음.


교회나 그냥 아는 사람들끼리 메리 크리스마스 하는 건 문제가 안 됨. 

다만 괜히 시비거는 불편러들은 있을 수 있음. 물론 해피 홀리데이라고 해도 시비거는 불편러가 있을 수 있으니 

해브어 굿데이만 하고 대충 웃으면서 손흔드는 게 현명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