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어?"


나무와 풀잎이 기분좋게 흔들리는 곳,

그 사이의 작은 꽃밭.

그곳에서 누군가가 테이블에 앉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왔으면 앉아, 할 이야기가 아주 많으니까."


남성, 아니, 여성인가?

중성적인 외형을 한 누군가는 누추한 옷을 입은 채로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자마자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그래, 너에겐 내가 어떻게 보여?"

"...예?"


갑작스러운 질문에 사고가 정지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보이는 가라, 그건 외모를 말하는 걸까, 첫인상을 말하는 걸까.

일단 난, 보이는 그대로를 말했다.


"...굉장히 친절한 사람 같네요."

"친절하다라, 내 첫인상이 그렇게 된건 오랜만이네."


그리고, 그 사람은 나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한 잔 들어봐, 맛이 어떤지 알려줘."


나는 아무런 의심도 없이 커피를 들이켰다.

그 순간, 나는 커피를 뱉어낼 뻔했다.

써도 너무 쓴 맛이었다.

내 혀가 쓴 맛에 녹아버리는 느낌이었다.


"...!! 쿨럭쿨럭...너무...너무 쓴데요..."

"쓰다라...그럼, 설탕을 조금 넣어볼래?"


그 사람은 나에게 각설탕 하나를 건넸다.

나는 각설탕을 커피에 넣어 녹인 후, 한 모금 마셔보았다.


"....? 아무 맛도 안나는 데요.."


커피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게되었다.

쓴맛도, 단맛도.


"...그거 알아?"

"..뭘요?"

"이건, 너의 인생이야."

"제...인생이요?"


그 사람은 내게 빙긋 웃으며 커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넌 아마 상당히 불행한 삶을 산 것 같네, 커피가 그 정도로 쓴 사람은 손에 꼽았거든."

"그럼...설탕은..."

"그건 너의 행복이야, 그 쓴 맛을 덮을 정도로, 강한 행복."

"전...그럼 어떤 삶을..."

"일단, 적어도 후회되는 삶은 아니었을 거라고 봐."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 커피가 무엇이길래 내 인생을 대변하는지.

그리고, 내 눈앞의 누군가는 그것을 어떻게 아는지가 궁금했다.


"..당신은...누구십니까..?"

"..누군가에겐 인도자, 누군가에겐 구원자, 누군가에겐, 미치광이로 불리는 작자지."


누군가는 쓴 웃음을 짓고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럼, 이제 가야할 시간이야."

"...가야할 시간이요?"

"응."


누군가가 허공에 손을 뻗자 문이 열렸고, 그곳에는,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 친구들, 지인들이 보였다.


"......."

"자, 그럼 이제 가봐, 다들 널 기다리고 있으니까."

"...나중에 또 볼 수 있을까요?"

"..."


누군가는 나를 보고 크게 웃으며 말했다.


"난 다시 보면 큰일나."


그리고, 누군가는 나를 문으로 밀쳐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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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딘가의 병실이었다.


"...여긴..."

"여보..!"

"아빠..!!"


아무래도,내가 사고를 당한 모양이었다.


"형, 괜찮은거지? 응?"

"아이고...우리 아들..."


그때 그 사람은 누구였는지, 그 광경은 무엇이었는지 몰라도.


"...저 괜찮으니까 그만 울어요."


지금은, 이들과 살아있는 이 순간을 만끽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