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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당신들과 할 이야기가 없어요. 하준이에 대해선 할 이야기가 더 더욱 없구요. 적어도 당신들 보단 제가 더 잘알테니까요. 그러니까 가주시겠어요?”


하준이가 기다리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정문에서 우성과 수민이 자신을 부를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미영이 당황하였으나 이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어제의 일은 미영 씨가 오해하신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한 사과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뿐이니까 잠깐이라도 시간을 내주실 수 있을까요?”


“그 부분에 대해선 나도 하고싶은 말이 있어. 난 하준이 소꿉친구기도 하고 네가 모르는 이야기도 많이 있다구!”


“…그럼 짧게 해주세요.”


가지고 있는 가식을 모두 쏟아부어 만들어낸 우성의 미소에 수민까지 가담하자 이를 피하긴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미영이 하준과 안준에게 문자를 보내며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그렇게 도착한 장소는 대학 근처 상가에 자리잡은 바였다.


“여긴 제가 자주 찾는 바예요, 수민이랑도 여러번 왔었죠. 오랜만이지?”


“응, 응! 이렇게 다시 오니까 두근거리는 걸?”


자연스럽게 말을 꺼내는 우성과 이에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수민의 모습에 거짓은 보이지 않았다. 미영은 그들을 따라 의자에 앉아 진열된 술과 장식들을 스치듯 살펴본 뒤, 우성에게 질문했다.


“…그렇군요. 그보다 이야기는 언제 하실 거죠?”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한잔 하면서 하는 건 어떨까요?”


“저번에 제가 술을 못한다고 이야기 드렸을..”


“잠깐 잠깐, 바로 일어나면 우리가 서운하다구.”


“이곳의 칵테일은 술보단 음료수에 가까우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형, 추천하는 거 하나만 줘.”


예상대로 술이라는 단어가 우성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미영이 안색을 굳히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수민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 틈을 노려 우성이 서두르듯 주문을 요청하자 바텐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증류주와 시럽, 과일과 탄산수를 꺼내 칵테일을 만들기 시작했다.


차라리 돈이라도 내고 떠날가 생각했던 미영이 가격이 붙은 메뉴를 보자마자 제대로 걸렸음을 인식했다. 죄다 만원 단위의 칵테일 뿐이다. 


“…한 잔만 마시고 떠날테니 이러지 마세요.”


“그럼 잠깐 휴대전화는 집어넣고 이야기하자. 전화는 나중에 할 수 있으니까.”


미영이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과 메신저를 확인하려 했지만 그 사이를 끼어든 수민의 손이 휴대전화를 가렸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도록 상황을 유도하는 것이 분명했기에 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바에서 느낄 수 있는 특유의 향기와 재즈의 나른한 선율이 미영의 기분을 가라앉혔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레몬 드롭 마티니입니다.” 


우성과 달리 차분한 인상의 바텐더가 미영에게 잔을 내밀었다. 잔을 받은 미영이 조심스럽게 한 모금 마시는 순간, 입안으로 퍼지는 열기와 새콤달콤함에 감탄사를 흘리고 말았다.


“와.. 전혀 쓰지 않아, 이게 칵테일인가요?”


“칵테일 처음 마시는 분들 반응이 대부분 그래요. 다들 이게 주스인줄 안다니까요.”


처음 느끼는 맛에 이끌려 느슨해진 틈을 파고 든 우성의 말에 미영이 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렇겠네요.. 이러면 마시는 데 어려움은 없겠어요.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주세요. 하준이에 대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죠?”


“우리가 조금 짖궂은 장난을 쳐서 하준이가 많이 힘들어 했거든요. 사과할 엄두도 나질 않아서 말도 못걸었는데.. 그때 미영 씨가 하준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라요.”


“조금 장난이 심했을지도 모르지만, 나랑 하준이 우성이는 친한 친구사이야. 그건 변하지 않을 거야.”


“…두분이 말하는 친구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 저는 모르겠어요.. 어, 벌써...”


“바텐더 형, 한잔 더 주세요.”


“아니, 그래도 이 비싼걸 계속 마실 순..”


“아뇨, 하준이의 곁에서 도와준 보답으로 드리는 마음이니까 사양마세요.”


거부감 없는 맛에 이끌리듯 잔을 기울이려던 순간, 천천히 마시려던 칵테일을 모두 마셔버렸음을 깨달은 미영이 당황하고 말았다. 내가 이렇게 술을 마셨던가..?


그리고 우성은 그 틈을 파고 들어가 바텐더에게 같은 잔을 주문했다.


“…그럼 감사히 잘 마실게요.”


음료와 같으니 두잔을 마셔도 취할 일이 없을거라 결론을 내린 미영은 우성이 주문한 두번째 잔을 받았다. 칵테일과 들려오는 음악이 선사하는 잔잔한 분위기에 취하듯, 거부감을 드러내던 처음과 달리 미영은 우성과 수민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차 미소를 지으며 귀를 기울였다.


그것이 우성의 노림수라는 것임을 상상하지 못하고...


//


//


한편, 미영의 마중을 위해 대학에 온 하준과 그의 형 안준은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하고 주변을 뒤지고 있었다.


수민과 우성이 있다는 미영의 문자를 받는 순간, 발걸음을 재촉하듯 달려왔지만 그날의 도로가 하필이면 막히는 날이라 도착이 늦어 미영을 놓치고 말았다.


“형, 혹시 미영이한테 문자 왔어?”


“아니, 아무래도 수작질을 당한 거 같은데..”


불안을 견디지 못하고 하준이 휴대전화와 형을 번갈아가며 쳐다봤지만 안준 역시 별다른 소득을 얻진 못했다. 이미 해는 저물었고 전등이 켜진 밤이 찾아오고 있다.


“미영아.. 제발 전화 좀 받아..”


“잠깐, 그럼 이 새끼가.. 씨발, 하준아. 따라와.”


거리를 이잡듯 뒤지기를 한 시간하고 삼십분이 지났지만 미영의 행적은 찾을 수 없었다. 불안을 떨치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며 발을 굴리는 하준을 보던 안준이 무언가를 떠올린듯 동생을 끌고 대학가 근처 주점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미, 미영이 아냐? 미ㅇ..”


“닥치고 잠깐 기다려. 저걸 봐.”


“…저 녀석들이 왜..?”


안준의 생각대로 주점 거리에서 미영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영은 누군가의 부축을 받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부축을 하는 상대는 남자였고 그는 하준과 안준 모두 아는 남자, 우성이었다.


그 옆에서 자신만만한 미소를 짓고 있는 수민의 모습까지 있음을 발견했다.


“형, 저.. 저거 잡아야 해. 저러다 미영이가!”


“미영이는 저렇게 취하기는 커녕 술을 마실 애가 아니야, 아무래도 내가 알아본 그대로인 거 같은데.. 일단 따라가자.”


“…알았어..”


안준에게 생각이 있음을 알게 된 하준이 불안한 마음을 누르며 미영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라갔다. 만약, 그녀를 택시에 태운다면 다른 목적지가 있을 것이고 쫓아가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저 개새끼가..”


우성과 수민이 미영과 함께 들어간 곳은 대학가 모텔이었다. 모텔의 간판을 보는 순간, 하준의 입에서 욕설과 함께 이가 갈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결론을 내린 안준이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연락을 시도했다.


“여기 OO대학가 OO모텔 앞인데요, 어떤 남자랑 여자가 술취한 여성을 모텔로 끌고가고 있습니다. 빨리 와주세요.”


“혀, 형...?!”


안준이 즐겁다는 미소를 지으며 하준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지만 하준은 형의 미소에서 분노가 뒤섞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분명히 경찰을 부르지 않고 직접 데려가고 싶었지만 참아야할 이유가 있음을 느꼈다.


한편, 모텔의 방에 들어온 우성과 수민은 침대에 미영을 눕히자마자 서로의 옷을 벗기며 부둥켜 안기 시작했다.


“보드카 칵테일을 네잔이나 마실 줄은 몰랐는데.. 범생인척 해도 어설프단 말야? 물론, 수민이의 덕분이기도 하지만.”


“우성이한테 걸리면 한방이지. 내가 반한 남자인걸?!”


아니나 다를까 취기에 정신을 잃은 미영을 침대에 놓고 서로의 옷을 벗긴 우성과 수민이 이루어낸 결과에 미소지었다.


수민이 자랑스럽게 가슴을 드러내자, 포상이라는 듯 우성이 그녀의 유방에 입맞춤을 했다. 


“흥, 역시 우성이 밖에 없어.”


“그래도 오늘은 미영이까지 같이 하는 날인 거 알지?”


“미영이 같은 애도 하준이보단 우성이의 남자다움을 알아야한다고 생각해. 불쌍하잖아?”


“이 약 덕분이기도 하지.”


죄책감과 수치심, 후회를 모두 잊어버리고 우성에게 달라붙여 교태를 부리는 수민에게 그가 조그마한 손가락 크기의 비닐팩을 꺼내 흔들었다.


그것이 이 모든 행위가 의도를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미영을 데리고 바에 온 것도 보드카의 칵테일로 그녀를 취하게 만들었던 순간, 한잔을 더 권유하며 우성이 칵테일에 섞은 대마 가루였다.


그렇게 우성은 미영이라는 음식을 먹기전 에피타이저로 수민과의 정사를 시작했다.


“…여…기…는?”


“응호옷! 아으읏! 하앙! 우성아, 우성아! 좀 더! 좀!! 아아아앙!!”


교성성과 땀으로 끈적해지는 십여분이 지날 무렵, 약기운에 취한 미영이 흐린 눈을 떴다. 분명히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있었을텐데..


혼란에 빠져 흐려진 시선을 붙잡고 주변을 살피려던 미영의 눈앞으로 젖가슴을 흔들고 혀를 내밀어 교성을 지르는 수민의 모습이 나타났다.


“하앙! 아앙! 오오옷! 우성아! 사랑해!!”


“…어떻…게…이럴……”


“하아, 깨어났어 미영 씨? 수민이 보내고 미영 씨도 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개처럼 엎드린 수민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교미에 집중하는 우성의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한 미영이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내 차례?

…누구 마음대로? 

…강간에 순번이 있었어?


미영이 공포에 떨면서 눈물을 흘리자 우성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수민의 젖가슴과 목을 움켜쥐었다.


“흐오오옷!! 오옥, 오오옷!!♡”


사람이길 포기한 듯, 교성을 지르는 수민에겐 더 이상 인간의 존엄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때, 미영은 듣기만 했던 하준이 느껴온 고통과 공포, 슬픔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수민이 사람을 포기한 동물의 교성을 지르며 절정에 취해 침대에 늘어지는 순간, 우성의 시선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오지…마…!!”


“내뺄 필요없어. 어차피 너도 저년처럼 될테니까.. 큭큭..”


‘하준아.. 도와줘.. 제발!!’


공포에 질려 눈물을 흘리며 어떻게든 벗어나려 했지만 대마와 술에 취한 몸은 그녀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이었다. 우성의 혓바닥이 미영의 눈물을 햝으며 음미하는 순간, 미영은 속으로 하준의 이름을 외쳤다.


“제보를 받고 왔습니다. 경찰입니다!”


“뭐라고?”


그 순간, 잠겨진 방의 자물쇠가 열리는 것과 동시에 누군가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소리를 예상하지 못했던 우성이 멍하니 고개를 드는 순간, 그곳에 세명의 경찰과 하준과 안준의 모습이 있었다.


그들은 보았다. 지독한 남녀의 악취와 늘어진 채 물을 흘리는 수민의 모습을, 뜯겨진 옷을 벗지 못한 상태로 눈물을 흘리는 미영과 그녀의 위에서 탐욕스럽게 혀를 움직이던 우성의 모습을..


“…너 이 개새끼가아아아아!!”


“크헉!”


그것이 마지막 실을 끊어버렸다.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가장 증오하던 남자가 범하려는 순간을 마주한 하준에게 남은 이성 따윈 없었다.


경찰들이 말리기도 전에 하준이 그 사이를 밀치고 들어가 우성의 얼굴에 주먹을 날려버렸다. 우성이 패배자위나 하던 쓰레기라 여긴 하준의 주먹은 안준을 따라 온 반년의 시간처럼 거칠었다.


“미영아.. 미영아, 미안해! 내가 빨리 왔어야 했는데..!!”


“…하…준아……고…마워..”


우성이 주먹에 맞아 나가 떨어지자, 하준은 생각할 틈도 없이 미영을 끌어안으며 울기 시작했다. 조금더 빠르게 왔다면 여자친구가 자신으로 인하여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거란 죄책감이 하준을 짓눌렀다.


하지만 미영은 미소를 지었다. 믿음에 응하듯 자신을 구하기 위해 나타난 남자친구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이를 지켜보던 안준 역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비록 미영에게 끔찍한 기억을 안겨주었지만 동생이 여자친구를 구하기 위해 두려움을 버리고 나서는 그 모습을 원했던 안준의 바람이 이루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한편, 주먹을 맞은 우성이 정신을 놓고 미친듯이 웃는 수민의 위에 쓰러지는 순간, 경찰 한명이 수갑을 꺼내 우성을 구속하기 시작했다. 또한 주변을 살피던 경찰 두명이 대마가루가 들어있는 작은 봉투를 발견했다.


“이거.. 마약 같습니다.”


“좋아, 다 챙겨. 우성 씨, 지금부터 당신을 마약관리법 위반과 강간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당신이 한 발언은 재판에서 불리하게 사용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질문을 받을 때 변호인에게 대신 발언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우성은 원하던 미영을 취하기는 커녕, 범죄자의 수갑을 차고 경찰서로 끌려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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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