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렷하게 뜬 푸른 빛을 반사한 두 눈동자와 붉은 눈두덩이 아래 두터운 애교살을 가진 미려한 눈. 새하얀 광택을 뽐내는 피부, 길쭉하게 찢어진 예쁜 입술, 햇빛 아래에 유독 진한 혈색의 얼굴이 나의 강점이다. 자연 갈색의 예쁜 머리, 깡 마르지만 적당한 비율, 피부를 누르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뼈. 내 인생이 달라진 세상과 외모는 도리어 생존을 위한 수단이 되었다.


내가 아름답다. 이것을 인지한 순간 자만으로부터 도망치고, 여성에 대한 안목을 높여야 했다. 그러기 위해 나를 꾸미는 것이 1순위가 되었다.


열여덟이란 봄날은 내 능력을 증대하는 여느 이들과 다르게 오직 외모, 내조를 위한 준비 과정이 최우선시 되었다. 자연스럽게 내가 변하였다. 보잘 것 없는 나는 자력으로 성공하는 것보다 외모의 강점을 살려야 하는 관념이 이점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하나의 강박증으로 변해 집착까지 만들었다.


무능한, 한심한, 무지한 등등의 수식어가 붙은 이들을 사전에 솎아내고, 남녀를 가릴 것 없이 판가름을 하는 법관처럼 행동했다. 주위 시선이 그리 말했고, 심지어 손윗사람이자 집안의 장녀인 누나는 집 안 행동을 통제했다. 장녀와 막내, 가문의 품위와 얼굴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샤워 시간에 내 몸을 씻는 것으로 모자라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했다. 몸 냄새를 지우고, 심지어 아주 세세한 부위까지 흔적을 지웠다. 신체 부위마다 용품이 따로 사용했고, 모발에는 남성의 향이 은은하게 밴 우아한 꽃 향이 나를 지배했다.


샤워가 끝이 나면 로션 등을 포함한 피부 관리와 화장을 해야 했다. 눈을 진하게 칠해 내 애교살을 강조하고, 피부의 광택을 강조하는 화장까지 이어서 한다. 머리는 건조하지 않게 에센스를 포함해서 윤기를 유지한다.


가벼운 향수와 손톱을 관리한 직후, 교복을 입었다. 보수적인 집안은 아니어서 쇄골을 살짝 드러냈다. 사치품인 값비싼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가자 어째서 자꾸 마주치는 옆집 누나와 인사한다. 우연찮은 마주침에 그녀의 차 조수석에 앉으며 등교를 한다.


예쁘다. 내 주제에 저런 여자라니. 저 미소를 보면 웃음이 나오지만 억지로 교양을 유지한 채 웃었다. 누나는 나의 가벼운 행동이 가문의 명예를 더럽힌다고 하였다. 나는 매력적이다. 옆집의 누나도 나를 연모한다면 그녀의 부름에 대답할 것이다. 아니 나를 좋아하긴 할 것이다. 저 손 한 번 잡고 싶다. 왜 잡지 못하는가?


학교 앞에 도착하면 진한 아쉬움이 든다. 나가기 싫다. 학교라는 또 다른 사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학교의 존재로 옆집의 누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친다. 나는 빠져든 것이다. 도리어 이런 억압이 내 귀를 뜨겁게 만든다. 좀 더 들이대도 좋다고, 때론 강압적으로 하면 좋다는 의미로 손수건을 꺼냈다. 내 몸 냄새가 든 손수건으로 괜히 깨끗한 그녀의 양복을 닦아준 후 주었다. 내가 남자인데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을 제발 가져가 달라고. 여자라면 하라고. 제발.


등굣길 쏟아지는 시선이 있다. 여성들은 나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여실히 드러냈다. 학생이란 어린 신분은 저의를 숨기지만 내 눈에 보인다. 무시로 쏟아지는 관심은 무언으로 행하였다. 절대로 드러내지 못한 채 말이다. 그 앞으로 가자면 귀여운 여학생이 손을 잡았다.


샌님이다. 남자의 눈에만 보이는 숫처녀의 어리숙함. 주제를 벗어나는 대화와 어색한 태도는 수수한 걸 좋아하는 나를 도리어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이 여잔 매력적이나 내 취향은 아니다. 다만 가문 간 정략 대상자일 뿐. 억지로 끌려왔으나 내가 맘에 든 모양이겠지.


그러고 있으면 선생은 괜히 나를 따로 불러 주의를 주곤 했다. 매력적인 여성이다. 혼기를 채운 여인은 농후함이 살아 숨 쉬었다. 적령기에 든 32살의 성인은 배고픈 어린아이보다 조급했다. 나를 보며 욕정하여 심보가 솟아 쇄골을 드러낸 채 훈계를 받았다. 정신 차리지 못한 채 벌겋게 오른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며 웃으면 커다란 유방을 팔짱으로 꽉 막았다. 나를 내려다 보는 큰 여인께서 한낱 어린 나에게 안달을 내었다.


이 여자에게 안기고 싶다. 모든 걸 통제 당한 채 살기에 심지어 성욕마저 끓었다. 본래의 남성보다 높은 욕구이다. 다만 내 수음행위는 사회적 망신이므로 참고 참는다. 남자로 사는 것이 마냥 좋은 건 아니다. 차라리 교실 구석이나 중간에 위치한 어중간한 외모의 남자가 자유로운 연애 권리를 누린다.


수업 중 짝꿍이나 친한 여자들의 장난에도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정을 원한다. 그 중 하나와 밀회를 즐기고 싶다. 때론 그들의 우정을 파탄 내거나 또는 규합하여 나를 노리개로 삼을 지라도 즐기고 싶었다. 점점 속이 뒤틀리지만 웃으며 장난 친다. 동성의 친구들은 이미 연애를 즐기고 있었다. 나처럼 뛰어난 가문과 외모를 지니지 못하였으나 자유로운 권리로 저 큰 가슴을 가진 여자들에게 안길 수 있었다.


초반의 내 초라한 로망은 산산조각이 나서 무너졌다. 동성의 친구 앞에서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어딜 가든 감시를 받았고, 무엇을 하든 관망하는 여인들을 피해야 했다. 나는 기민하나 뛰어나지 못해 보이지 않는 손에 잡혀 있었다.


유일하게 마음을 놓는 건 학교 근처 낮은 산에 위치한 푸른 언덕이었다. 바로 옆에 언덕이 붙어 있으나 외부와 단절된 듯 무감각한 공간이었다. 그곳에 앉아 있으면 옆에 쪼르르 달려와 허벅지에 머리를 댄 여동생의 친구의 볼을 만졌다. 행복한 미소를 가진 순수한 소녀다. 이 순간 압박감을 벗어 던지려고 단추를 풀면 다급히 시선을 피하는 순진한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여성은 남자들에게 약하다. 아무리 힘 센 모습을 보여도 이런 귀여움도 받고 싶은 모양이다. 나랑 반대다. 오히려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이 현재의 의지였다. 바뀌었다. 옛 세상과. 나를 꾸미고, 사랑을 받으면 좋을 줄 알았는데 그 선 하나 넘지 못해 갑갑하였다. 그러나 알고 있다. 이 순간에도 나에게 고백하려는 이들은 늘 있다. 고백은 백 번 정도 받은 것 같다.


다 받고 싶다. 허나 누나의 호통과 집안의 위신에 의해 숨 죽이며 산다. 유난히 매력적인 단 음식, 좋은 향, 귀여운 인형, 목소리... 내 취향마저 바뀐 곳이다. 이런 취향을 누나가 통제한다. 내가 좋은 세상에 온 것이 맞나? 한 번의 폭발한 감정은 화산과 같았다. 여동생의 친구를 일으켜 세운 후, 마음에도 없는 입맞춤을 하였다.


"내일도 여기 와."


이렇게 도망쳤다. 해방감이 들었다. 이젠 큰일이 날 것이다. 저지른 일을 나 따위가 수습할 수 없을 것이다. 관계가 틀어지고, 또 다른 여성들도 나를 노리겠지. 그동안 유지했던 모든 관계를 끝내고, 솎아낸 일부만이 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아름다운 연애는 필요가 없다. 전화로 옆집 누나에게 연락했다. 오늘 끝장을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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