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역전 소설을 즐겨보다 깜빡 졸았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중세 시대 겨울날 고아원 앞에 버려진 아기가 된 남붕이.


당황해서 주변을 둘러보는데 자기처럼 버려진 남순이를 발견해.


남붕이는 그 아이가 즐겨보던 남녀역전 소설 속 등장인물이자, 훗날 마왕을 무찌르고 세상을 구할 용사란 사실을 알게 된 거지.


이대로 가만히 있다간 용사가 얼어 죽는다는 생각에 남붕이는 목이 찢어지라 울어서 겨우 구조되는 거야.


고아원에 들어오고 나서도 남붕이는 남순이 옆에 찰싹 붙어서 그녀를 지켜줘.


왜냐면 남순이는 나중에 세상을 구할 용사가 되거든. 남순이가 마왕을 무찔러주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하고 만단 말이야.


그래서 세상도 지킬 겸, 겸사겸사 나중에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겸 남순이 옆에 꼭 붙어있는 거지.


그 때문에 남순이가 자기에게 무슨 감정을 가지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두 사람이 성인이 된 날. 오랫동안 신세 지냈던 고아원이 망하고 말아.


때마침 남붕이와 남순이를 데려가겠다는 사람이 둘 나타났어.


한 명은 이 지역의 귀족으로 똘똘한 고아를 입양해 충성심 높은 하인으로 키우고자 했지.


다른 한 명은 인권 의식이 희박한 중세 기준으로도 악독하기 그지없는 노예상이었어.


이 노예상에게 팔리면 남자는 성노예로, 여자는 탄광에 팔아 버린다는 소문이 자자했지. 어느 쪽이던 오래는 못 살 거야.


문제는 두 사람 다 딱 한 사람만 원한 거야.


남붕이와 남순이 둘 중 한 명은 귀족가로, 남은 한 명은 노예상에게 팔려가야만 했지.


남붕이는 너무 무서웠지만 자기가 노예상에게 팔려가기를 자처해.


남순이는 반드시 용사가 돼야만 했거든. 거기에 오랫동안 돌봐주면서 동생처럼 느껴진 남순이를 노예상에게 넘길 수도 없었어.


남순이는 울면서 차라리 자기를 데려가라고 부탁했지만, 노예상은 남붕이의 빼어난 외모를 보고 얼른 계약을 체결해.


그렇게 남순이는 귀족가로. 남붕이는 노예 시장으로.


두 사람의 운명은 엇갈리고 말았어.




노예상에게 팔린 이후로 남붕이의 삶은 지옥이 됐지.


고아원이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맞거나 굶을 일은 적었거든.


남붕이는 고아원 담장 바깥으로 넘어가기도 전에 마차 안에서 강간당하고 말아.


동정과 비동정을 구분하는 게 불가능한 남녀역전 세상에서 비동정이라고 돈을 더 쳐 주지는 않거든.


그래서 외모가 아름다운 노예가 들어왔을 땐 노예상이 먼저 맛보는 게 업계의 불문율이었고.


동정을 상실한 충격이 채 가기도 전에 노예 시장에 팔리게 된 남붕이.


남붕이를 처음으로 산 사람은 지역의 졸부였어.


돈이 많아도 신분을 살 수 없는 졸부에게 귀족은 애증의 대상이었고, 그 뒤틀린 감정은 귀족처럼 아름다운 노예에게 풀어댔지.


남붕이가 제발 이제 그만 해 달라고 울면 이명이 들릴 정도로 강하게 뺨을 때리기도 하고.


섹스하다 남붕이가 지쳐 기절하면 목을 졸라 억지로 깨운 후 계속하는 거지.


24시간 연속 착정하다 자지가 더 이상 발기되지 않으면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수상한 미약을 사용해 강제 발기시킨 후 착정을 이어나가는 거야,


몸에 문신과 배빵 자국, 담배빵 자국이 무수히 많이 남았을 때쯤.


남붕이는 ‘질렸다’ 한 마디에 다시 노예 시장으로 팔려나가.




외모는 아름다웠지만 전 주인의 흔적이 많아서 가격이 떨어진 남붕이.


그런 노예를 두 번째로 사 간 사람은 어느 군대의 지휘관이었어.


마족과의 전쟁 때문에 피폐해진 병사들에게 하사할 위문품이 필요했거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전쟁터. 쥐꼬리만 한 봉급. 피 끓는 젊은 몸.


성욕이 들끓는 암컷들 사이에 내던져진 찢어지라 울어서 그야말로 쉴 틈 없이 병사들을 상대해야만 했어.


수십명이 넘는 여군에게 봉사하다 자지가 수그러지면 배빵을 맞거나 목을 졸려졌어.


찢어지라 울어서 몸은 이제 생존의 위협이 느껴지면 자기 씨를 남기기 위해 억지로 서도록 조교 된 거야.


그것으로도 발기가 안 되면 최후의 수단으로 미약을 사용해 강제로 세웠지.


물론 비싼 미약을 사용해 화가 잔뜩 난 병사들의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남붕이의 몫이었고 말이야.


전쟁터에 끌려다니며 오랫동안 위문품으로 사용된 남붕이.


때로는 지휘관의 수발을 들고, 혹은 포로 교환을 위한 성접대용 노예로 사용되고,


그러다가 부대가 전멸당해 적에게 잡힌 후 인간에게 증오를 품은 마족에게 노리개로 사용되기도 하고.


지원군에게 마족이 전멸된 후, 살기 위해 마족에게 몸을 바쳤다는 이유로 처벌 조교 받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남붕이의 정신은 점점 무너져 가.


노예상에게 스스로 팔린 자신을 원망하고, 자기를 대신해 희생하지 않은 남순이를 증오하다가 언젠간 자길 구해줄 거라 믿어보고, 다시 남순이를 미워하고, 이런 선택을 한 자신을 미워하고, 그럼에도 필요한 일이었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보기도 하고...


그러다 부대 자금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다시 노예 시장에 팔렸지.




그렇게 되팔리고, 되팔리고, 되팔리기를 반복하기를 어언 수년이 지났어.


이제 남붕이는 기억하고 있는 게 거의 없어.


남녀역전 소설 내용, 고아원에서 갓 만든 빵의 냄새, 남순이와 용사, 같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했던 이야기.


그 모든게 부서진 그릇 사이로 새는 물처럼 전부 사라졌지.


미약에 미쳐서 절망에 휩쓸렸다가 희망을 붙잡아 다시 기어 올라오고, 다시 한 번 절망하다 그럼에도 희망을 품고...


어느 날은 용사의 활약상을 듣고 무언가 기억나려고 하다가 집중 안 하나며 뺨을 얻어맞고 희미한 잡념은 흩어지고 말았어.


결국 남붕이의 몸은 완전히 고장 나고 말았어.


오랫동안 폭력과 쾌락에 조교된 남붕이의 몸은 이제 미약이나 목조르기가 없으면 서지 않는 몸이 되고 만 거야.




남자 노예의 종착역이라 부르는 집창가에 팔린 남붕이.


집창가는 건물보다는 흙을 파 만든 토굴에 가까웠어.


이제 작은 방 한 칸이 남붕이의 세상이야.


남은 평생 여기서 나가는 일 없이, 죽을 때까지 손님만 상대하다가 시체가 되면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겠지.


남붕이의 정신은 무너지기 직전이야.


다만 남순이란 사람이 무척 중요하다는 건 기억하기에, 그 이름이라도 잊지 않기 위해 초점 없는 눈동자로 ‘나순이...나순이...’하고 중얼거리는 날이 많아졌지.


남순이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이제는 너무 오래된 기억이라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이름을 부르면 가슴이 아렸거든.


시끄럽다고 얻어맞는 날이 많았지만 그 행동만은 멈출 수 없었어.


주변에선 성노예가 드디어 미쳤다고 생각했지만, 여기선 흔한 일이었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그러던 어느 날.


마족과 결탁한 집창가의 범죄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용사 파티가 찾아왔어.


어엿한 용사로 인정받은 남순이는 입양 간 귀족 가문의 정식 후계자로 인정받고, 황제에게 막대한 보물과 귀족의 지위를 하사받았지.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해 선택받은 용사와 범죄자 사이에는 개미와 코끼리보다 더 큰 차이가 있었어.


용사가 휘두르는 성검 앞에서 마족이든 범죄자든 상관없이 떨어지는 낙엽처럼 휩쓸려 나갔지.


못된 범죄자들을 전부 무찌르고, 방 하나하나를 열어 가여운 노예들을 해방해 주던 남순이.


복도 맨 끝에 있던 작은 토굴의 문을 열었고.


“남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