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멋진 숙녀분, 좋은 시간 보내지 않을래요?”

낡은 가스등 아래의 남자가 물었다. 

빛바랜 셔츠에 무릎을 몇 번씩 덧댄 데님 바지를 입고, 보풀 일어난 신문배달부 모자를 쓴 남자였다.  

빈민가의 뒷골목에 널리고 널린, 전형적인 공장 노동자 겸 파트타임 매춘부의 모습이었다. 

잘못 말한 것이 아니다. 

남자는 매춘부다. 매춘부(賣春婦)보다는 매춘부(賣春夫)라고 부르는 게 맞겠지만. 

이 뒤틀린 세상에서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광경이었다. 

“얼마지?” 

‘숙녀'가 되물었다. 

깔끔한 정장과 코트, 고급스런 흑단나무 지팡이, 반짝이는 실크햇. 아무리 봐도 더러운 뒷골목에 어울리는 차림새는 아니었다. 

“입으로만 하시려면 2펜스, 앉아서 하시면 4펜스. 반짝이는 실링 은화를 주신다면 저 모포 위에서 제 하얗고 끈적이는 것까지 드릴게요.” 

“흠, 지붕도 없는 곳에서 실링은 좀 비싼데.” 

“제 물건을 보신다면 전혀 아깝지 않으실 걸요? 이 거리에 저보다 큰 놈은 없다고요.”

남자는 그렇게 말하며 헐렁한 바지를 슬쩍 내렸다. 안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은 채였다.

여자는 지팡이를 거꾸로 들고 단단해진 채 투명한 물방울을 흘리는 양물을 요리사가 화덕의 소시지를 뒤집듯 뒤적였다. 사람보다는 가축을 평가하는 느낌에 가까운 모욕적인 처사였지만, 남자는 반들반들한 상아 손잡이가 비부에 닿을 때마다 간드러지는 신음을 내뱉을 뿐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따위보다는 내일 아침에 톱밥 섞인 빵 한 조각이라도 살 수 있을지가 더 중요했던 남자는 이어지는 모욕을 묵묵히 견디며 호객행위를 이어갔다. 

“뭐, 확실히 보기 드문 크기긴 한데… 기둥부터 머리까지 죄 갈색이군. 대체 몇 명이 돌려먹었지?”

“…글쎄요, 누가 그걸 일일이 세겠어요? 그래도 전 성인이 되고 거리에 나왔으니, 이 동네 남자들 중 저보다 깨끗한 사람은 많지 않을 거예요. 그건 장담할 수 있답니다?”

“흐음… 뭐, 새까맣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 거렁뱅이 소굴에선 깨끗한 편이긴 하겠지. 그래도 영 당기지 않는데.”

‘씨발새끼. 눈도 안 깜박이고 지팡이로 계속 찔러보는 주제에 고상한 척은.’

“오, 제발 부탁드려요. 발딱 서버려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게 된 불쌍한 남자를 내버려두고 가실 건가요? 돈도 없이 절조 없는 자지만 세우고 돌아가면 또 아내에게 매를 맞을 거예요.”

“하, 유부남 주제에 매춘이라니, 부끄럽지도 않나?” 

“애초에 절 거리로 내몬 게 그 여자인걸요.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남자라면 돈도 못 벌고 허구한 날 술에 매질뿐인 여자 따위보다, 손님 같은 멋진 숙녀분께 씨를 바치고 싶어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구제도 못할 갈보놈 같으니. 좋아. 적선하는 셈 칠까.”

여자의 손을 떠난 은빛 동전이 남자의 다리 사이에 명중한 뒤 땅바닥을 굴렀다. 

“읏! …감사해요, 멋진 숙녀분!” 

남자는 움츠러든 몸을 편 채 몸을 돌렸다.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에 안 드는 손님이었지만, 바가지 씌운 가격을 선뜻 지불할 정도라면 태도가 대수인가. 

은빛 실링 은화를 급히 주워 허리춤에 갈무리하며, 남자는 재수없는 호구의 돈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공장 일당과 합치면 싸구려 진 한 병 정도는 살 수 있을 테니, 오늘은 적어도 가죽 벨트로 얻어맞지는 않겠네. 내일은 톱밥 섞이지 않은 빵과 설탕 섞인 홍차 정도는 먹고 출근할 수 있으려나? 잘 꼬시면 은화 몇 개 정도는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밀린 방세도…’

론디니움의 빈민들이라면 으레 할 법한 고민이었다. 그러나 은화에 정신이 팔리지 않고 뒤를 돌아봤다면, 아무리 길거리 작부에 불과한 남자라도 자신의 고민이 부질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상아 손잡이와 황동 받침으로 마감한 흑단 지팡이가 남자의 뒤통수로 휘둘러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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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깔끔한 타격으로 이뤄진 두개골 골절. 능숙하게 적출된 성기와 혀. 질(Jill) 더 리퍼가 확실합니다.” 

핏빛 얼룩의 앞치마를 두른 부검의의 단언에 경찰 간부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제길, 이걸로 다섯 번째군. 위에서 또 뭐라고 할지…”

“목격자는? 아무리 이곳 화이트채플이 거지 소굴이래도, 범행장소가 가스등이 깔린 메인 스트리트 바로 앞이니 없을 수는 없을 텐데.”

“주변 거주자들 중심으로 탐문하고 있으니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겁니다.” 

“희생자 유가족은?” 

“공장 프레스기에 끼어서 팔 한짝 날려먹고 술독에 빠져 사는 아내가 있더군요. 남편이 벌어오는 돈으로 먹고 사는데다, 의학지식이 있을 리 없으니 용의선상에서는 벗어나 있습니다.” 

“선배님들, 방금 버킹엄에 약식보고가 갔답니다. 여왕 폐하께서 노발대발해서는 치안총감을 소환하셨다더군요.” 

“제길, 당장 보고서 꾸며서 올리라고 하겠군. 일단 뭐라도 일을 좀 진척시켜 보자고. 아멜리아, 기마대 데리고 사건현장 통제에 합류해. 아그네스, 형사 둘 붙여줄 테니 희생자 아내를 털어서 정오까지 정보 취합해. 아비가일, 인력은 원하는 만큼 지원해줄 테니 화이트채플 일대에서 빌어먹을 창남들을 전부 치워.” 

“반발이 심할 텐데요. 이 동네에서 몸 파는 남자들은 그게 아니면 돈 나올 구석이 없는 밑바닥 인생 아닙니까.”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걸레놈들 사정 따위 알 게 뭐야! 더 이상 희생자가 났다간 스코틀랜드 야드의 절반은 모가지가 날아가게 생겼어! 시드니 경찰청으로 발령나서 죄수 놈들과 노닥거리고 싶은 게 아니면 당장 가서 빌어먹을 리퍼 자식이 칼질할 만한 창놈들을 거리에서 싹 체포하든 귀가시키든 해!” 

급히 흩어지는 부하들을 돌아본 뒤, 화이트채플 연쇄살인 사건 수사반장 샬럿 워런 경은 긴 한숨과 함께 파이프를 꺼내 물었다.

"빌어먹을. 왜 하필 내가 경찰청에 발령나 있을 때..."

한숨과 함께 퍼진 담배연기는 뭉게뭉게 그녀의 머리 주변을 맴돌다가 짙은 스모그를 몰고 오는 바람을 타고 퍼져나갔다.

흩어지는 연기 너머 우뚝 솟은 빅 벤을 망연히 바라보며, 워런 경은 부디 자신의 전근일까지만이라도 더 이상 시체가 나오는 일이 없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녀에게는 불행하게도, 며칠 뒤 똑같은 방식으로 살해당한 매춘부가 발견되었다. 화이트채플 메인 스트리트 주변으로 경찰 인력이 집중된 사이 빈민가의 판잣집 안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한 달 뒤, 샬럿 워런은 남아프리카 식민지로 전출되었다. 





*1실링 = 12펜스. 1실링은 지금 가치로 대충 만 원 정도. 

*빅토리아 시대 여성에게는 방직공장이나 하녀 일, 혹은 구빈원에서 제공하는 바느질 같은 제한적인 일자리밖에 열려 있지 않았고, 그마저도 지금으로 치면 2~3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고 일해야 했음. 가정법 역시 여성들의 편이 아니었기에, 이혼이나 남편의 외도로 경제적 빈곤에 내몰린 여성들은 자연스럽게 매춘으로 내몰렸음. 이들은 가슴과 성기만 노출한 채 서서 하는 간단한 행위로 2펜스 정도를 받았고(two pennies upright), 물 대신 마시는 3펜스 정도의 진과 싸구려 빵으로 끼니를 때우며 살아감. 잠은 1~2펜스 정도의 공용 숙소에서 잤고. 이런 숙소들은 침대가 아니라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아서 밤을 보내거나 빨랫줄 같은 밧줄에 기댄 채 잠을 자야 했음. 잭 더 리퍼 사건은 이러한 빈민가의 열악한 실태를 적나라하게 폭로했음. 

*실제 잭 더 리퍼는 날카로운 날붙이를 무기로 사용했음.

*잭 더 리퍼 사건의 수사 책임자 찰스 워런은 경찰 업무에 익숙한 인물이 아닌데다 무능한 덕에 온갖 트롤링으로 수사를 망쳤고, 이후 보어 전쟁에서도 트롤링으로 수많은 희생을 내며 엄청난 욕을 먹었음. 

 


소련 전차병 쓴 유동입니다

빨간맛만 쓰면 좀 그러니까 균형을 위해 새까만 자본주의맛도 좀 써 봤습니다

봐줘서 고마워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