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거야 시스티나!!"



남성의 높고,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울려퍼진다.



휘황찬란한 금색 빛 장식과 순백의 대리석, 그리고 이곳 저곳 보이는 여신을 형상화 해놓은 신상들이 이곳이 종교적이라는 것과


돈이 꽤나 들어간 곳이라는 것을, 길바닥에서 굴러들어온 거지를 데리고 와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게 해준다.





"알란... 도대체 뭐가 문제죠? 이미 대의회를 통해 결정된 사안입니다. 뭐 물론 당신의 그런 지금 태도가 문제이긴 하네요."





"아니 시스티나... 그 말은 지금, 높으신 분들께 후원 받고 있는 우리 주신교가 세력 확장을 원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 변방에서 다른 세계의 것들과 전쟁을 일삼는 공작가에 장가를..."





"잘 이해 했네요 알란, 그럼 이제 실행에 옮겨보는 건 어떨까요?"



시스티나의 금빛 머리칼이 그녀의 자리 위에 둥그렇게 뚫려 있는 원형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빛에 의해 더욱 반짝인다.



그녀는 이 무의미한 논쟁을 빨리 마무리 짓고 싶다는 듯이, 순백색의 천에 금실로 자수가 놓아져있는 장갑을 낀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긴다.





"진짜 시스티나... 나한테 그러면 안되지? 어? 내가 여기 끌고 들어온 공작, 백작, 아무튼 여러 귀족들이 몇인데?"





"하- 잘 알고 있다고요 알란- 당신이 매 절기마다 이뤄지는 대신성마법 행사 때 얼굴 마담 노력을 톡톡히 했다는 걸."





"그래! 그러면 나를 이렇게 보내버리면 더욱이 안되는거 아니야? 나는 이 신전의 우상이라고 우상! 내가 끌어들이는 사람이 얼만데 나를 변방 공작가로 장가 보내겠다고?"





"알란...? 방금 그 말은 당신의 신분에 어울리는 말은 아닌 것 같지만... 이번만 넘어가죠..."



시스티나가 자신의 머리카락 색과 비슷한 눈동자를 번쩍이며 금방이라도 신성력을 통해 신벌을 나의 머리에 꽂아버리겠다는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저게 도대체 어딜 봐서 주신교 수도왕국 지부장의 모습일까


어두운 뒷골목에서 살인의 신을 숭배하며, 그들의 힘을 행사하는 암살자들과 같은 비정하고, 차가운 눈빛이다.





"진짜 시스티나... 나 너무 싫어... 한 번만 봐줘어-"





"알란, 다른 사람이라면 당신의 그런 짓이 통했겠지만, 저에겐 통하지 않습니다. 둘이 본 세월이 얼마라고 생각하고 계시는 건가요?"



"이 사안은 무려, 여러 지역에서 모인 지부장들과, 현재 중앙 귀족 중에서도 입김이 강력한 자들이 고민한 끝에 도출해낸 결과입니다. 당신의 그런 변명 따위는 이미 다 고려가 끝난 상황이랍니다."





"아 진짜 나 못 가!!! 못 간다고오!!!"



시계의 아주 작은 선들의 사이보다 더 짧은 찰나의 시간,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수준의 아주 짧은 순간



나의 몸이 시스티나의 마력과 신성력으로 가득 채워지는 느낌이 든다.



나도 그저 그런 하수는 아니니 그 찰나의 시간, 그녀의 신성력을 내 몸에서 지워버리기 위해 노력해보지만...





"진짜아... 시..스티나아... 나.... 안..... ㄱ......"


'풀썩'





"하 알란... 당신은 왜 매번 그렇게... 다른 남자애들처럼 조용하고, 살랑살랑거리고, 순종적이면 좋을텐데... 뭐 그래서 당신이 다른 남자애들과는 다른점이 있지만"



소설 속 가련한 남주인공이, 악당의 마법에 가슴을 꿰뚫려 쓰러지듯이, 알란은 나의 수면 마법 덕분에 순식간에 세상 모른 채 잠이 들었다.





"여신님이시여, 이 모든 것은 당신의 권세를 이 땅에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늘이 보이는, 천장에 나있는 둥그런 창을 향해 고개를 든다



그 분께서 계실 높은 곳을 바라보며, 시스티나는 자신의 이런 신성력 행사가 그 힘의 주인을 위한 것을 알린다.





"거기 누구 있는가!!"





"넵"



그림자의 바닥에서 불쑥하고 솟아 오른 뒤, 점점 완벽한 사람의 형태를 갖춰간다.





"좀 잘 단장해서 보내주시길 바랍니다. 중요한 일이니..."





"걱정 마십쇼 시스티나님, 저희는 언제나 확실합니다."



그림자로부터 생겨난 성별을 알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사람은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알란을 안고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진다.





"후우... 일단 한 건은 해결 했나, 그나저나 기만의 신은 볼때마다 기분이 나쁘단 말이지... 우중충하고, 어둡고..."





---





흰 색 목재에 반짝이는 황금 장식이 더해진, 백마가 끌고 있는 마차가, 순백색의 정장을 갖춰입은 마부의 손놀림에 따라 대문 앞에 천천히 멈춘다.



마부는 능숙하게, 마차의 문이 열릴 곳 아래에 카펫 같은 것을 깔고, 그 위에 올라 무릎을 꿇는다.





"지오네브리아트 공작님을 뵙습니다."





"허락한다, 고개를 들도록."





"수도왕국 주신교 신전으로부터 지오네브리아트 공작님께 오게 됐습니다. 여기 부디 서신을."



서신은 미약한 마력으로 봉인되어 있었다. 푸는 법은 일전에 일러두었던 방법대로인가



'저희는 지오네브리아트 가문과의 발전된 관계를 원합니다...'



대충 훑어보니 이번 결정에 응해준것에 감사를 표하고,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기원한다는 내용이다.





"그래 고맙네, 먼 길을 오느라 지쳤을테니 머물 곳과 말도 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겠네 내 하인에게 안내를 받도록 하지."





"여신님과도 같은 넓은 아량을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마차에 타고 있는, 나의 배우자가 되실 분을 안내하기 위해 마차의 문을 연다.



'끼익'



마차의 안에는 나에 가슴 정도까지는 올까, 싶은 키를 가진 남성이 곤히 잠을 자고 있었다.



한 겨울에 내려 소복하게 쌓인 눈이, 아침의 푸르른 햇빛을 받아 차갑게 빛을 내듯이, 차가운 순백색의 머리칼


그 머리의 색과 비견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뽀얀 피부


그리고 힘만을 원하고, 수도 없이 다가왔던 남성들의 얼굴들 중, 세 손가락 정도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은 얼굴



누구나 좋아하는 그런 얼굴은 아니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뱉을 줄 알고 있는 것 같은 그런 담대함이 귀여움에 섞여 있는



'이렇게 생겼으니 그렇게 중앙 귀족들이 대신성마법 행사마다 신전에 금은보화를 갖다 바치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슬며시 눈이 떠진다. 열대 지방의 바닷가와 같이 푸르른 눈동자, 근데 보아하니 아직도 제정신은 아닌듯하다.





"죄송합니다 공작님. 차마 주무시고 계실 줄은..."


마부가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당황스러운 말투로 죄송함을 고한다.



"괜찮습니다, 벨? 피로가 쌓이신 모양이니 인사는 내일 나누도록 하자꾸나, 모시고 들어가서 도와드리렴."





"알겠습니다 주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