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르게 잠이 들었을 알란이 지나갔던 길을 나 또한 마차를 타고 지나간다.



아닌가, 마차를 탄다면 이런 거북한 흔들림에 이기지 못하고 깼으려나



그 녀석의 얼굴이 떠오른다.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얼굴은, 자신이 팔려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분노로 가득한 표정이었다





"그래도 뭐, 거기 같이 있을 때보다는 더 잘 지내고 있겠지..."



아무도 들리지 않게 혼잣말을 내뱉는다.





"시스티나님 이제 좀 있으면 영지에 도착합니다."



마부의 목소리에, 언제 빠져 들었는지도 몰랐던 잠에서 깨어난다.





'확실히 피로가 쌓인건가... 잘도 잠을 잤네 이렇게나 흔들리는 마차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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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접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간다.



나의 자리 앞에는 향기로운 홍차가 놓여진다.



그리고 테이블엔 간단한 과자 같은 것들이 있다.






'맛있잖아, 이런 걸 먹고 있는건가'



알란의 호사스러운 생활은, 테이블에 놓여져 있는 과자를 한 입 하는 정도로도 알 수 있었다.






'끼익'



커다란 문을 하인들이 열고, 남녀 한 쌍이 응접실로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시스티나님, 편하게 유리나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얘기는 알란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오랜만이야 시스티나."


오랜만에 듣는 알란의 목소리다


글로만 얘기를 나눠봤던 공작이 나의 앞에 앉는다.



그리고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알란이 그 옆에 나란히 자리한다.






"아 안녕하세요 유리나, 그냥 알란이 잘 있나 한 번 보러왔을 뿐입니다."



그 둘은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상당히 엉겨있다.



유리나의 팔은, 알란이 자신의 것임을 과시하는 듯, 알란의 어깨를 감싸 그녀의 쪽으로 끌어당기고 있고



알란도 그런 행동이 내심 맘에 드는 듯, 유리나의 품에 뺨을 대고 비비적댄다.



'고양이냐...'





"시스티나 간만에 보는 거 같네?"





"그래, 하도 일에 치이다가 휴가를 받아서 시간도 난 김에 얼굴 보려 한 번 왔지."





"고생이 많으십니다."



유리나 공작의 미소가, 갖은 격무에 지친 나의 심신을 보살펴 주는 것만 같다.



저런 미소에 빠져든건가 알란은...





'쪽'





"유리나아! 시스티나도 앞에 있는데!"



공작은 자신의 품에 안겨 있는 알란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남긴다.





"왜 그래요 알란, 더 한 것도 많이 했으면서-"





"그치만, 시스티나 앞에서 이러면..."





나도 아무것도 모른 채로 온 것은 아니다. 깔아놓은 귀들로부터 들을 수 있는 소문에 의하면 둘의 결혼 생활은 예상과는 다르게 상당히 뜨거운 듯하다.





그렇게 카랑카랑한 목소리를 높여가며 투덜대고, 예쁘긴 해도 예쁜 모습 속에 독을 감추고 있는 독사 같은 알란을 능숙하게 귀여워 하고 있다.





"크흠, 아닙니다... 뭐 알만큼 알고 왔습니다. 잘 지내고 있는 것 같네요 알란?"





"맞아 시스티나, 처음에 얘기 했을 때는 너무 싫었는데... 너무 좋아 지금."



알란이 저런 표정도 지을 수 있었던가?



창기에게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그것도 아주 숙련되어 꽤나 비싼 금을 주고 안을 수 있는 남자가, 자신을 구매한 여성에게 푹 빠졌다는 듯이 짓는 표정이다.


난 사랑에 빠졌어요, 너무 행복해요


같은, 솔직히 말해 좀 거북한 표정이다.





왠지 모르게 드는 메스꺼운 느낌을 뒤로 삼키고, 담담하게 대화를 이어간다.



"제가 말했었죠 알란? 훨씬 더 좋을거라고."





"고마워요 시스티나, 덕분에 알란을 만날 수 있었어요."





"아닙니다, 그저 해야만 하는 일을 했을 뿐이죠, 유리나도 행복해 보이니 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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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가 주인의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고 있는 것 같은 광경에 너무나도 오랫동안 노출된 것인가



속이 이상하다.



그래도 공작가에서 묵고 갈 수 있도록 내어준 방은 상당히 맘에 들었다.



더군다나 저녁 식사와 와인들도.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지금은 휴가지만, 매일 계속되는 강도 높은 업무



툭하면 불러가서 여신님의 안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이뤄지는 밤샘근무


행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매 번 나에게서 빼가는 마력


그리고 '시스티나에게 맡길 수 밖에 없다' 라는 여론으로 인해 행사 때마다 불려가서 귀족 남성들에게 그들이 좋아할만한 모습을 보이고




'어디 귀여운 남자애 없을까... 알란이 적당했는데..."



알란과 비슷한 남성을 안아볼 수 있을까


얼마의 금화를 줘야 저 정도의 남성을 안아볼 수 있을까


고민을 잊기 위해 눈을 감고 잠에 드는 것에 집중한다.





"유리나하아... 옆 방헤앳! 시스티나가아앗!"



그들의 입장에선, 옆 방에 있는 나를 고려하여 상당히 소리를 죽이고 거사를 치루고 있는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해서 다 들린다.



들리는 것 뿐만 아니라, 벽을 타고 전해지는 규칙적인 진동



삐걱거리는 소리, 가볍게 쿵쿵거리는 소리






"안돼요- 알란은 내꺼니까- 절대 안 넘겨줘요."





"안 가아- 어디히이이잇! 안 가하니까하아.... 하아악...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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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숨도 자지 못했다.



도대체 몇 번을 하는 걸까


저 정도면 애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뺏고 뺏기는 정복전쟁 수준 아닐까


둘이 사랑을 나누는


아니 누구의 사랑이 더 큰지 경쟁하는 것만 같은 마상시합에서 나는 소리를 밤새 듣다보니 잠은 잠대로 뺏기고, 달아오르기는 달아오를대로 달아올랐다.



쾡한 모습으로, 이 욕구를 풀기 위해 사용될 금화를 어떻게 비용처리 할 지 고민한다.





"시스티나 잘 잤..어...?"



'잘 잤을리가 있겠냐'


라고 반문하고 싶지만, 알란의 몰골에 말문이 막힌다.





"시스티나님 잠자리는 괜찮으셨을까요?"



유리나는 알란의 손을 꽉 잡고 있다.



알란은 옷을 갖춰입긴 했지만, 뭔가 야한 모습이었다.



얼굴과 귀는 아직도 달아올라 있는 것처럼 보이고



천으로 미처 가려지지 않는 부분에는 벌레에 물린 듯한, 붉은 색 반점이 이곳저곳에 남겨져 있다.



목부터 시작해서 쇄골, 소매 사이로 살짝 보이는 손목



다른 곳에도 훨씬 더 많이 남겨져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굳이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유추해볼 수 있었다.






"네... 괜찮았습니다..."



"혹시 다음에 기회가 되신다면 수도에도 방문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떻게 생각해 알란, 같이 갈래?"





"유리나랑 가는데는 어디든 다 좋아..."





가뜩이나 잠을 자지 못해 날카로워진 신경을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이 더욱 긁어댄다.





무지성 5연참


나도 이제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