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61자.... 



 카르디 변경백은 정오가 되면 성루의 최상단을 오르곤 한다. 태양이 가장 높이 뜬 시간, 자신의 영지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전선을 바라보며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기 위함이다.

 그녀는 오늘도 성루의 맨 윗층에서 마경의 끝없는 지평선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병장기와 친근한 삶을 살기에 항상 짧게 유지하는 노란 머리칼이 바람에 부대낀다.

 그녀에겐 고민이 있다. 고민의 정체는 자신의 남편, 샤를의 몸 상태다. 

 최근 그는 마음의 병을 얻었다. 문제는 마음의 병이 신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다. 자신의 영지는 마경과 맞닿은 험지 중의 험지이다. 겨울엔 엄청난 추위, 여름엔 쪄죽을듯한 더위. 접경엔 자신들을 함락시킬 기회만 엿보고 있는 마물들. 따뜻한 지역의 출신인 샤를에게 무리가 된 것이다. 그러니..

 카르디는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

 카르디의 집무실.

 카르디는 며칠간 밀린 일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있었다. 변경백은 마수의 손길에서 국경을 지키는 일도 하지만, 평시엔 귀족 가문의 가주로서 행정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자신의 결재를 거쳐야 진행되는 일이 대부분이다. 아늑한 느낌을 주는 그녀의 집무실은 모닥불로 데워져 포근한 온기를 품었다.

똑똑
 
"르네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희끗한 머리를 깔끔하게 틀어 올린 집사가 요깃거리를 담은 쟁반을 들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일에 열중하면 끼니도 거르는 자신의 주인탓이다. 

 르네는 베르벡 가문에서 수십 년간 근무하며 가주를 2대째 모시고 있는 베테랑 중 베테랑이다. 그녀가 어렸을 때 기억하는 르네는 꽤나 미인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주름살마저 잘 어울리는 그런 노집사가 됐다. 그럼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매에서 그녀의 여전한 총명함을 엿볼 수 있다.

"주인님, 드시면서 하시지요." 

르네가 쟁반을 조심스럽게 집무실 책상에 올려놓았다.

"고마워요. 르네." 
카르디는 쟁반을 까보았다. 그녀가 좋아하는 치킨 샌드위치이다. 마음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녀는 크게 한 입 베어물었다.

"그런데 르네, 제가 시킨 일은 어떻게 됐나요?"
샌드위치를 우물우물 씹으며 그녀가 물었다.

"예. 주인님께서 지시하신대로 수도 가장 유명한 의원에서 약재를 공수해서 탕약을 달였습니다. 또한 이것이 말씀하신 물건입니다."

르네가 뒷주머니에서 자신의 손바닥 반만한 크기의 구슬을 꺼내 카르디에게 건냈다.

"아, 이거군요. 색깔이 참 예쁘네요. 수고했어요."

카르디는 샌드위치를 내려놓고 르네를 바라보았다.

"샤를은 요즘에도 혼자 씻나요?"

"예, 주인님. 아직 남에게 자신의 몸을 보이는게  부끄럽다고..." 르네가 말을 줄였다.
 
카르디는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갈 고민한다.

"흠, 좀 있으면 샤를이 약 먹을 시간이죠? 오늘은 제가 직접 먹일테니 미리 탕약을 준비하세요. 이것만 마치고 바로 갈테니."

르네가 카르디의 지시를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가주님. 그리고 최근 내무부에서 공문이 있었습니다."

"공문?"

르네는 비스듬히 내려앉은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녀의 매서운 눈매가 반짝인다.

"부군의 누이이자 소드마스터인 제르니 공께서 조만간 저희 영지에 방문할 예정이라고는 내용의 공문입니다. 방문 명목은.. 시찰입니다."

예상치 못한 이름의 예상하지 못한 방문 목적에 카르디는 얼굴을 찌푸렸다.

"제르니가 시찰 목적의 방문을? 이 시기에? 하, 황실은 아직도 우리가 자신들의 애완견인줄 아는건가?"

카르디는 답답하다는 듯 예복 맨 윗 단추를 풀었다.

르네가 그런 그녀의 눈치를 보더니 말을 이었다. 

"그.. 아시잖습니까. 제르니 공은 성정이 포악하고 제멋대로라는 평가가 대부분입니다. 사견이지만, 아마 제르니 공께서 이번 방문을 밀어붙인게 아닌가 하는 것이 제 예상입니다."

"그쵸. 그녀는 아주 오만하죠." 그녀가 대꾸했다.

카르디가 손짓으로 축객령을 내렸다. 르네가 고개를 숙이며 방을 빠져나간다.

"어이가 없군." 카르디가 혼잣말을 했다. 씁쓸함이 묻어나오는 목소리다.

"시찰이라.." 
무언가를 놓친 느낌이 드는 카르디였다.

******
 카르디는 샤를의 방 앞에 서있다.한 손엔 르네에게 받은 탕약을 들고. 

 샤를과 자신은 각방을 쓴다. 몸 상태가 더욱 안 좋아지면서 샤를이 자신에게 요청한 사항이었다. 카르디로서는 남편과 각방을 써야한다는 것이 내심 자존심이 상했지만, 환자이인만큼 거부할 수 없었다.

최근 샤를은 매우 민감한 상태이다. 시종들한테 짜증을 부리는 횟수도 늘었다고 했다. 그의 몸상태를 반영하는 대목일까?

"샤를, 카르디에요. 들어갈게요."

 카르디가 방문을 밀고 들어갔을 때, 그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속이 비치는 얇은 슬립만을 입은 채로 침대 위에서 책을 읽고 있는 은발의 남성이었다. 

 그녀는 침을 꼴깍 삼켰다. 환자 앞에서 할 생각은 아니였지만 그의 모습이 조금.. 음탕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달빛에 반사되는 은발의 머리칼. 주로 방안에서 활동하여 창백해진 피부. 기력이 쇠하여 말랐지만, 그런 몸도 새하얀 슬립과 광기의 달빛이 섞이니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셨어요? 카르디. 거기 앉으세요." 자신의 남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딱딱한 목소리 로 말한다.

카르디는 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샤를, 몸은 좀 어때요? 이거 수도에서 힘들게 구한 탕약인데 한번 복용해봐요."

카르디가 따뜻한 목소리로 탕약을 건낸다.

"거기 두세요. 조금 있다가 마실테니." 여전히 읽고 있는 책에서 눈을 떼지 않는 샤를.

카르디는 얼굴을 찌푸렸다. 본인이 직접 약을 달여왔는데 남편이 이게 무슨 태도인가?

카르디가 짐짓 엄한 어조로 말했다.

"샤를, 아내가 이야기하면 남편은 집중해야죠. 다른 이야기도 아니고, 당신의 몸상태에 관한 건데."  

그러면서 카르디는 샤를의 메마른 볼을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좀 더 무겁게 가라앉은 그녀의 목소리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자신과 눈을 마주치는 샤를. 

 새파란 호수를 담은듯한 푸른 동공 안에 자신의 얼굴이 비치자 그녀는 속에서 무언가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정말 예쁘네.

 제 눈에 그렇지 않은 적이 있었냐마는 오늘의 샤를은 더욱 아름다운 것 같다. 카르디는 자신도 모르게 확 거리를 좁혀 그의 새하얀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터치에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는 것이 느껴졌지만, 카르디는 애써 그의 반응을 무시했다. 아니, 무시하려고 했다. 


차갑지만 미약하게 떨리기 시작하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카르디 그,그만. 저 환자에요."

 자신을 멈추는 목소리에 카르디는 정신이 들었다. 그의 목덜미에서 얼굴을 떼어내고 바라보니 샤를의 새파란 동공이 겁먹은듯 수축해있다. 

왜 나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거야. 난 너의 지어미라고.

 카르디는 상반되는 두 개의 감정이 자신의 안에서 섞이는 것을 느꼈다. 


하나는 자신에 대한 혐오였다. 환자를 앞에 두고 그의 의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욕구만 쫓은 것에 대한 죄책감.

 또 다른 감정은 비참함이었다. 왜, 왜 샤를은 아직도 자신을 거부하는 것인가. 아무리 사랑없이 시작한 혼사였지만 자신은 최대한 샤를을 아끼고 노력했다. 그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그런데 샤를은 좀처럼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다. 그들은 혼사 이후 한번도 몸을 섞은 적이 없다. 


결혼한지 2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양가의 감정이 뒤섞여 형언할 수 없는 답답함에 목이 메여온다. 

"미안해요 샤를." 카르디는 짧게 사과했다. 부끄러운데 화가 나서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 지금 샤를의 얼굴을 보면 좋지 않은 말이 나올 것 같다.

카르디는 그를 바라보지 않은채 설명을 이었다.

"이건 몸에 좋은 탕약이니까. 꼭 먹어요. 그리고 이 검정 구슬. 이 구슬은 당신의 몸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제가 수도에서 구한거에요. 여기, 중앙에 손바닥을 올려볼래요. 샤를?"

샤를 본인도 민망했는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채 순순히 손바닥을 올렸다.

구슬이 밝게 빛난다.

"이게 뭐죠?"

"이 빛은 당신의 마력에 감응하는거에요. 당신의 마력을 받아들인 이 구슬은 소유자인 제게 당신의 몸상태에 대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알려주거든요. 뭐 심박수가 급하게 오른다거나 그러면 빛날거에요. 최근들어 몸 상태가 더 안 좋아졌으니.. 지어미인 제가 더욱 챙겨야하지 않겠어요?" 카르디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그렇군요. 고마워요 카르디."

자신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하는 샤를의 모습에 카르디가 쓰게 웃었다.

이게 어떻게 남편과 아내의 대화인가? 그의 반응에서 머나먼 거리감이 느껴진다.

"아무튼, 저는 당신이 빨리 나았으면 좋겠으니까 샤를도 몸만 생각해요. 아, 그리고 조만간 당신의 누이인 제르니 공께서 우리의 영지를 방문할 것이라고 하더군요. 아마 시찰 목적 같긴 한데... 알아두라고요."

샤를의 눈동자가 커졌지만, 카르디는 그의 뒷말을 듣지 않고 그대로 일어났다.

"잘 자요 샤를."

오늘 밤은 성루에 올라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방을 나갔다.

******
 
 3일 후. 

 카르디의 저택은 손님맞이를 위한 연회 준비로 분주했다. 샤를의 누이이자 제국의 소드마스터 제르니만을 위한 자리였다. 샤를과 카르디는 사용인들과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이윽고, 제르니가 저택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제르니 공이십니다!-"

 문이 열리고 거구의 여성이 자신만만한 발걸음으로 저택에 발을 딛었다. 샤를과 같은 은발을 길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소드마스터에 걸맞은 아주 탄탄한 육체. 샤를과 닮은 듯하면서도 강아지처럼 유순한 느낌의 샤를과 달리, 좀 더 사나운 인상의 얼굴을 가진 여성이었다. 그녀의 무장은 간단한 의복에 칼 한자루였다. 그러나 그런 그녀를 얕보는 사람은 이 곳 어디에도 없었다. 검을 수련한 인류가 가장 높이 닿을 수 있는 경지에 있는 사람이니까.

 제르니는 서늘한 눈빛으로 자신을 맞이하는 저택의 사용인들을 훑어보았다. 일 순간 정적이 흐른다. 그 누구도 그녀와 눈을 마주하려하지 않았다. 단 한명만 제외하면.

 카르디는 변경백으로서의 위엄을 잃지 않고 똑바로 그녀를 관조했다. 제르니가 소드마스터지만 자신 역시 이 곳에서 군림하며 성공적으로 마수의 손길로 영지를 보호하고 있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사용인 사이에 서 있는 두 사람을 본 제르니의 얼굴이 환해졌다.

"샤를!" 
"제르니!"

제르니가 단숨에 달려가 샤를을 폭 안았다. 거구의 체구에 샤를의 몸은 너무 쉽게 안겼다.

"오빠, 보고싶었어. 잘 지냈어? 몸은 어때?"

 제르니는 옆에 있는 카르디가 안중에도 없다는 듯 다정한 목소리로 샤를의 안부를 물었다.

"응, 나 최근엔 좀 괜찮아. 카르디 공께서 많이 돌봐주셔." 

샤를이 제르니의 가슴팍에 볼을 부비며 말했다.

아무리 남매라곤 해도 조금 과한 애정표현에 카르디는 무언가 불편해졌다.

"크흠, 흠. 제르니 공 아주 오랜만입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각인시키자 그제서야 카르디를 바라보는 제르니였다.

"아 카르디 공! 오랜만입니다. 이게 얼마만이죠? 잘 지내셨죠?"

제르니가 그녀에게 다가가 인사를 하며 친한 척을 한다. 카르디는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카르디 '?' 거기에 반말?
 
 아주 오랜만에 들어보는 호칭이었다. 자신을 하대하는 듯한 이를 만난게 얼마만인가. 심지어 작위상으로도 자신이 미묘하게 위이다. 제르니가 소드마스터의 경지로 올라선게 1년 전 일이고, 그 기념으로 황실에서 백작으로 추대한 것이 최근의 일이다. 반면 자신은 변경백으로서 유서깊은 가문이다. 


어딜 감히 건방지게. 소드마스터가 되어서 눈에 뵈는 것이 없는 것인가?

  샤를도 그렇다. 아무리 오랜만에 조우한 남매라곤 하지만, 여기 뻔히 지어미가 있는데 다른 여성에게 홀라당 안기는 것은 무슨 추태인가? 
 샤를이 조금 야속하게 느껴진다.

 카르디는 현재의 자리가 불편했지만, 여기서 호칭을 지적하는 것은 또 변경백으로서의 체면이 살지 않는다고 여겼다. 

 "반가워요. 제르니 공.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이후론 처음 뵙는것이죠?"

 "그럼요! 아, 죄송합니다. 소드마스터가 된 이후로 제국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황제폐하의 영지를 돌보느라 방문이 늦었습니다?"

"괜찮습니다. 일단 연회장으로 가시지요. 시장하실텐데."

 그들은 연회장으로 향했다.

******
 식사 자리의 분위기는 미묘했다. 변경백으로서의 재력을 과시하듯 호화로운 음식과 고가의 술이 끝도 없이 제공되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제각각 딴 생각 중인 탓일 것이다. 

 샤를은 현재의 자리가 매우 즐거웠다. 자신의 영지에서 언제난 마음고생하던 그였기 때문일까? 오랜만에 만난 누이와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잘 짓지 않던 함박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평소 잘 즐기지 않던 술까지 마셔 그의 새하얀 얼굴은 발그레 올라와있다. 

 제르니 역시 겉보기엔 즐거워보였다. 그녀도 달아오른 분위기가 싫지 않다는듯 샤를이 잔을 건네면 거절하지 않고 족족 마셔댔다. 샤를과 다른 점은 초인의 경지에 오른 그녀의 육체는 절대 취기에 굴복하지 않는다는점이지만. 

 카르디는, 심기가 불편했다. 아까 현관에서의 일이 마음에 남아서일지, 아니면 자신과 함께 있을 때와는 다른 모습의 샤를의 모습 때문인지 자신도 모르겠다.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은 확실했다. 그러나 연회를 개최한 입장에서 사소한 것으로 불편한 티를 내면 자신의 체면이 서지 않으리라 생각해 드러내지 않았을뿐.

 그 와중에 제르니가 자꾸 자신들에게 건네는 술 때문에 오랜만에 자신의 얼굴도 불콰해진 것이 느껴졌다. 

 제르니가 한 번 더 따라주는 술에 입을 대려고 하는 순간.

"오빠, 몸 괜찮은 것 맞아? 저번에 만났을 때 보다 더 야윈 것 같은데."
제르니가 샤를에게 걱정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흠흠, 제르니 공. 그 놈의 오빠 소리 좀 넣어두면 안되겠어요? 제르니 공이나 샤를이나 어린 아이도 아니고 오빠, 동생 하면서 격식 없이 부를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는데."

카르디가 지적하자 제르니가  그녀에게 몸을 돌리곤 슬며시 웃음짓는다.

"흐, 카르디 공. 거슬리셨다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어릴 때부터 격식없이 친하게 자란 남매라서요. 어렸을 때부터 오라버니의 유약한 몸 상태는 제가 잘 알기도 합니다. 많이 봐 왔으니까요. 아시다시피, 전 소드마스터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실력있는 의원이잖아요?"
 
 그랬다. 애시당초 샤를의 가문은 대대로 명망있는 의원 가문이다. 다만, 예외적으로 제레니가 검술에 재능을 갖고 태어났으며, 이에 안주하지 않고 갈고 닦아 소드마스터의 지위까지 올랐을뿐.

 그러나 샤를의 생각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카르디 공의 말씀이 옳아, 제르니.  난 이제 결혼한 몸이고, 카르디 공이 내 지어미야. 이제부터는 좀 더 격식을 갖춰 부르렴. 이제 우리가 옛날처럼 어린 것도 아니잖아?"


히끅!


 술에 꽤 취한 샤를이 딸꾹질을 하며 제르니를 타박했다. 카르디는 놀란 눈치로 그를 바라본다.

 웬일로 샤를이 공적인 자리에서 카르디를 따르는 것이었다. 이런 자리에서도 언제나 자신과 최소한의 거리를 유지했던 샤를이 내뱉은 말이라곤 믿기지 않아, 카르디는 슬며시 올라가는 입꼬리를 내리려고 애썼다.

"흠흠, 샤를. 그렇게 정없이 말할 필요 있나요? 오랜만에 만난 누이가 오빠가 반가워서 그런것일텐데. 그것보다 여기 물이요. 딸꾹질 하시네요."

"아 고마워요. 여보." 샤를이 카르디에게 활짝 웃으며 그녀가 건넨 물잔을 받았다.


여...보??
펑!
카르디는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를 들은것같다.

여보..?라고? 지난간 자신한테 그렇게 애정어린 호칭으로 부른 적이 있었나?

그녀가 기억하기엔 처음이었다. 


"크흠! 샤를 고맙기는요. 지어미라면 당연히 남편을 챙겨야죠." 카르디가 부끄러워하며 짧게 대답했다.


그래서 카르디는 보지 못했다. 순간적으로 죽일듯 자신을 노려보는 제르니의 눈빛을.

"제르니 공, 아주 아름다운 밤입니다. 제국의 소드마스터와 정을 나누니 이 술맛이 더욱 달게 느껴지네요!"

 카르디가 기쁜듯한 표정으로 제르니의 잔에 술을 마저 따랐다. 제르니는 순식간에 표정을 감추고 원래의 그 유쾌한 얼굴로 돌아왔다.

"우리의 우정을 위해 건배를 할까요?"

카르디가 잔을 높이 들자, 샤를과 제르니가 따라 들었다. 

******

"우음..물....목말라...."

 카르디는 텁텁함을 느끼며 눈을 떴다. 자신의 침대였다. 침실의 창문 사이로 달빛이 새어 들어온다. 물을 마시며 생각했다.

샤를과 제레니와 함께한 저녁 식사. 지금까지와 다른 샤를의 살가운 태도에 기분이 좋아져 무리를 했다. 

'추태를 보였네.'

 변경백답지 못했다.

 그래도 술자리 막판엔 샤를과 존대하지 않고 서로 반말을 했던것으로 기억한다. 결혼한 지 2년만에 남편과 부인이 존대를 해제한 것이다! 그의 몸상태가 더 좋아지면 다시 방도 합치고, 차차 더 알아가면 되리라. 

 '제르니가 오니 우리의 관계가 풀리다니.. 아이러니하네."

 그래도 현재 상황이 싫지 않았다.

소득이 많은 하루였다고 생각하며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침대로 들어간다.

음?
 
방 한구석에 놓아둔 검정 구슬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몸에 문제가 터진것이다. 


카르디는 급하게 옷을 주워입고 방을 나서려고 했다.

"하읏!"

등 뒤에서 어떤 남성의 신음소리가 들리기 전까진.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흐으읏! 하읏!"

 예의 그 신음소리는 구슬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카르디는 감정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구슬 속 목소리는 자신도 잘 아는 이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뭐지? 저건 그냥  생명력 감응 장치 아니었나? 
왜 저기서.. 샤를의.. '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며 방문을 나섰다. 변경백으로서 항상 지니던 자신의 검을 챙기는 것을 잊지 않으며.

******

 카르디는 지금 샤를의 방문 앞에 서있다. 평시라면 서있어야할 당직 시종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방문은 살포시 열려있다. 누군가 열어놓은듯.

 열린 틈사이로 음란한 소리가 새어나왔다.

 그녀는, 자신도 이유는 몰랐지만 본능적으로 기척을 숨기고 틈 사이로 눈을 갖다대었다

 그 곳엔 남녀가 몸을 섞고 있었다. 아래 깔려 있는 것은 자신의 지아비, 샤를.
그리고 그 위에서 난폭하게 그를 찍어 누르고 있는 것은 샤를과 같은 은발이었다.

 은색 장발. 

 그들의 자세가 보이고 그들의 대화가 자신의 귀에 톡톡히 들린다. 

 카르디의 동공이 요동치기 시작한다.


"후으응..! 제르니, 제르니!"
"흐윽! 샤를..샤를! 하읏!"

 그에게 올라탄 제르니가 샤를의 은발을 움켜쥐며 거칠게 엉덩이를 내려찍는다.
소드마스터에 걸맞는 육체가 작은 몸을 집어삼키는 풍경은 가히 폭력적인 광경이다. 

달빛에 그들의 은발이 반사되어 광기마저 느껴진다.


푸욱푸욱

"후윽..!! 제르니..좀만..진정해봣..!" 

샤를이 거칠게 달려드는 제르니의 몸을 가느다란 팔로 힘없이 밀치려하지만.
제르니는 능숙하게 한 손으로 그의 양팔을 머리위로 올려서 구속한다.

"조용히 해! 흐윽, 씨이발. 오빠...! 너무 보고 싶었어! 나 없는.. 동안..아무하고도..하읏 ! 안했지?"

"하으읏!"

넘치는 쾌감에 샤를이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다.

여전히 엉덩이가 죽일듯이 그의 좆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씨발, 웃...대답해! 정신차려!"

찰싹!
"아읏!아파!제르니!"

제르니가 거칠게 움직이며 샤를의 뺨을 쳐서 그가 정신을 잃지 않게 도와준다.

 그렇지만 샤를은 흥분감에 머리가 새하얗게 타는 기분이었다. 이게 얼마만에 하는 섹스인가? 자신의 좆은 더 이상 흥분할 수 없을만큼 서있다.

"나,나! 아무하고도 ,심지어 카르디하고도 안했어! 맨날..정조대차고..하앙..! 들키면..하앗! 안돼니깐..! 맨날..혼자...샤워하고..하으으윽! 내 몸은..하으윽! 네 꺼니까...! 어렸을 때부터 네 꺼니까! 하앗! 좋아..좋아!"

그가 허리를 들썩이더니 곧 발끝부터 경련했다. 

"씨발..하읏! 존나 귀여워 오빠.. 내 오빠! 하으응!"

 카르디는 비현실적인 광경에 말을 잃었다.

 내가 지금 뭘 보고 있는거지? 저렇게 음란한 탕아의 모습을 한 게 내 남편이라고?
 자신의 동생과 붙어먹는 짐승이?

그녀의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다.

반면 제레니의 사나운 기세는 줄지 않고 오히려 거세진다.

쭈웁 쭈웁

그의 새하얀 목덜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시작하는 제르니. 

그러면서 한 손으로 민감한 샤를의 유두를 애태우기 시작한다. 
음란하게 발기한 젖꼭지를 더욱 세운다.

"아!아으응! 거기는..!"

"하으읏! 오빠. 아까 .. 저녁 식사 때..한 말 다시 해 봐.."

"허으윽!!..허윽!!! 뭐라고?"

제레니가 사나운 목소리로 으르렁거렸다.

"아까!.. 왜 카르디..하응! 그년한테..하읏! 반말하면서 애교부렸냐고!"

"헤으윽..그거..흐윽..질투..너가...너무 귀여워서..흐읏!"

"이 씨발 걸레새끼..! 누나라고..하앙! 불러줘!"

못참겠다는듯 그녀가 샤를의 유두를 거칠게 씹었다.

"하읏..! 아파..!아파요 누나!"

제르니는 헛웃음이 나올것 같았다. 이렇게 요망한 생명체가 또 있을까?

"하읏..카르디 이 봊같은년..! 지가 뭔데..샤를은 내껀데..열네 살 때부터 내 꺼였는데!! 하아앙! 이거 기분 좋아!!"

"오,오,오,오혹..! 호오옥!"

샤를이 눈을 까뒤집고 쾌감에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느낌에 그는 제르니의 등판을 손톱으로 미친듯이 휘갈기기 시작했다.

"누나.. 나 갈 것같아요..!더는 못참앗!흐아앗!"
"크으윽..싸버려..동생 보지에 싸버려라!"

파앙!파앙!

"흐으으윽!"
"하아아앙!"

뷰르륵!뷰륵!
남매의 교성이 겹친 순간 샤를의 자지는 좆물을 힘차게 뽑아냈다.

자신의 자궁을 두드리는 정액의 느낌을 즐기며 제르니 역시 부르르르 떨었다.

"흐으으으........"

그녀는 자신의 밑에 깔려있는 오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까뒤집혀진 눈과 통제를 잃고 삐죽 튀어나온 혀,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음탕한 얼굴.

"진짜..칠칠맞게.."
그녀는 그런 그가 사랑스럽다는듯 온 얼굴에 짧은 버드키스를 퍼부었다.

******

철컥-

카르디는 조용히 자신의 방문을 닫았다.

자신이 본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샤를이 동생과 몸을 섞는 관계였다는 점이나, 자신을 농락했다는 점.

그런건 아무래도 좋다.

그녀가 더욱 신경쓰이는 지점은 따로 있다.

평소 자신에게 보여준 얼굴과 전혀 다른 쾌락에 젖은 샤를의 얼굴.
열락에 젖은 얼굴. 차갑고 팽팽한 변경백의 영지와 어울리지 않는 그 뜨거운 분위기.

그것은 정말이지.. 인큐버스나 몽마가 나타난다면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않을까?

그들의 거친 섹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샤를에게 그런 쾌감을 안겨줄 수 있을까?


남매의 사이에 자신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카르디는 아랫배가 쿵쿵 쑤시는 것을 느끼고 밑을 만져본다.


문제는 이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


질척하게 묻어나오는 분비물.


'왜..흥분한거지?" 스스로도 혼란스러웠다.


"흐읏"

하지만 그녀는 본능적으로 바지를 내리고 자신의 클리토리스를 지분거리기 시작했다.

자신에게는 결코 보여주지 않은 샤를의 그 얼굴을 상상하며.


뒷 일은 생각하지 않은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