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펑크- 남역정략결혼





삐-삐-


선화그룹 총수 선백야의 개인 전화가 울린다.



"누구지?"


[안녕하십니까? 백운그룹 총수 백연입니다.]


"아 연화언니 큰딸인가..."


[그동안 연락 없었던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최근 *스프롤지역 분쟁 상황때문에... 해결을 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전화 말고... 한 번 보지 직접. 연화언니 장례식이후로 본 적 없잖아?"


[그럼...]



*스프롤 : 도시 계획 없이 설비나 시설이 미흡한 채로 광범위하게 퍼져 나가는 고밀도 주거 지역. 주로 하층민이 거주한다.



***



두 초거대기업의 총수가 만나 악수를 나눈다


백운과 선화


왜인지 백운의 대표 백 연은 매우 긴장한 모습이다.



"그래, 오랜만이네 연이"


"오늘 만남을 요청드린건..."


"그래 저번에 전화로 얘기했던거 말이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연의 말을 끊는 선백야.



"넵.. 저희 두 도시 스프롤 지역이 확장 끝에 겹치게 되어 현재 해당 구역 경비대가 대치중인 걸로 보고받았습니다."


"그래...참 귀찮은 일이지...스프롤 하층민들이야 신경쓸 건 아니지만 우리 경비대원들이 다치면 골치 아프니까 말이야..."


"혹...혹시 선화 정규군 배치를 고려하고 계신 건..."



인구 천만의 기업도시국가 선화의 정규군 군사력은 주변 기업도시국가들에 잘 알려져 있는 수준이다.


세 배 이상 인구와 규모가 적은 백운의 입장에선 두려워할 수 밖에 없는 전력 차이이다.



"아직 결정난 건 없네. 자네 하기에 달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


"크흠.. 일단 제가 저번에 개인라인으로 전화 드린 것도, 오늘 만남을 부탁드린 것도 이 문제 해결을 위한 해결책 때문입니다."


"뭐 미리 생각해놓은 거라도 있나?"


"...저희 쪽에서 굽히고 들어가겠습니다..."


"그게 무슨..."



갑자기 굽히고 들어가겠다는 제안에 선백야는 당황한다.



"합병을 제안드리는 겁니다, 대표님."


"백운이 선화에 합병된다는 건가? 갑자기 왜 그런 제안을 하지?"


"스프롤 지역은...어차피 법의 제약 없이 퍼져 나갈 것이고, 분쟁지는 점점 넓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정도까지 된다면 저희 둘은...정규군 투입을 고려할 수 밖에 없겠죠. 그리고 백운의 군사력으론 선화를 이길 수, 아니 이기기는커녕 삼 일도 버틸 수 없습니다."


"어차피 못 이길거 미리 숙이고 들어가자는 건가? 선친께서는 그런 성향은 아니셨는데 말이지"



선백야는 백운의 대표였던 백연화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친한 언니이자 존경할만한 인물이었다. 



"저희 어머니...아니 백연화 전 회장님께서는 확실히 안되더라도 해 봐야 한다는 그런...그런 기업총수답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계셨지만, 저는 아닙니다. 저희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합병이 최선이라고 결정했을 뿐입니다."


"우리 쪽이야 뭐 나쁠 건 없지, 하지만 뭐 더 확실히 할 수 있는게 없을까? 사람이던 기업이던 잘 못 믿게 된단 말이지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뭔가...더 '확실한' 신뢰를 주는 게 없을까? 좀 끈끈하고...그런 천륜적인 관계 말이지."


"아...천륜...이라면...후우...대표님 따님들 혼기가 찼다고 들었습니다...저희...쪽에...이제 갓 성인이 된 남동생이 있습니다. 백 진이라고. 따님들 중 한 분에게 장가를 보내는 것도..."


"후훗, 정략결혼이라도 시키자는 건가?"



선백야가 기다렸다는 듯 말한다.


'정략결혼' 이란 말이 나오자 연이 움찔한다. 


하나뿐인데다 이제 갓 20인 남동생을 장가보내는 선택지밖에 없기 때문일까.



"...그렇습니다. 합병 그룹의 후계자는 그 사이에서 나온 딸로 하고."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내 쪽에선 둘째 시집 보내는 게 좋겠네. 새 그룹 이름은...음...'선백' 으로 하지. 어떤가?"



선백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악수를 청한다.



"임원분들과 결정해야하지 않으십니까?"


"어차피 다 내 딸들 아니면 조카들이야. 백운 쪽도 다 연화언니 조카들이었던 걸로 아는데?"


"그...그렇죠. 그러면...합병은 결정된 걸로 하시죠."


"자네는 동생들한테 잘 이야기해 봐. 난 딸들한테 말할 테니까."


"넵...감사합니다 대표님.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조정할 거 있으면 비서실 통해서 연락할게"



악수를 받은 백연은 허리 숙여 인사한다.


제안이 받아들여졌음에도 연의 표정은 여전히 좋지 못하다.





백운은 금강 하류, 선화는 조금 더 상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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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2170년이다. 이걸 당신이 읽는 시간대부터...한 150년 정도 뒤라고 할까.


그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잠깐 이야기해 보자면, 25대 최경은 대통령이 경제적으로 박살난 북측과 합의 후에 흡수통일을 이뤄냈다.


아니, 처음엔 그러는가 싶더니 북한 유지파들이 내전을 일으켜 한반도가 쑥대밭이 되고...전후복구 과정에서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돈이 들어가게 되자, 우리 정부는 대기업들에 손을 벌릴 수 밖에 없었고,


십몇 년간 한반도는 정상화될 기미가 없다가, 2080년대였나 한반도 통일국가는 수십 개의 기업도시국가로 쪼개지게 된다.


중국이 내려오는 걸 막기 위해 군사기업들은 연맹을 맺고 압록강-두만강 라인에 도시를 세웠다.


나머지 황폐화된 국토는 주요 거대기업들의 도시국가로 갈라졌다.


도시국가의 유지를 위해 대표 자리들은 세습제가 되었다.


내 어머니 백연화의 백씨 가문의 백운그룹도 금강 하류, 옛 군산의 땅에 도시를 만들었고, 90년 후인 2170년 현재 인구 300만의 도시국가를 이루었다.


흔히 말하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라고 할까.


하층, 중층, 상류층의 삶의 구분이 너무나도 뚜렷한 그런 사회.


세계적으로 봐도 많이 바뀌었을 것이다. 중국은 다섯 개로, 러시아는 일곱 개로 쪼개졌고, 3차 세계대전으로 동유럽과 북미는 불모지가 되었다.


내가 알기론 동유럽은 핵폐허, 북미는 한반도와 마찬가지로 기업도시국가 체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나의 어머니가 백운그룹의 기업총수였기에 난 상류층, 그 중에서도 최정상급 출생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칠 년 전 원인 모르는 이유로 급사하셨고, 지금은 큰누나 백연이 백운그룹 대표를 맡고 있다.


작은누나 백화는 백운 기업도시의 시장을 맡고 있고, 막내, 나는 이제 갓 성인이 되었다.


남자라고 해서 집구석에나 틀어박혀 있어야 한다는 이백 년도 더 된 생각은 없기에 진작 경영교육을 받으며 자란 나다.


계열사에서 몇 년 구르다 오면 적당한 자리 하나 누나가 만들어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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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익-


[화야...잠깐 내쪽으로 좀 와봐]



언니 회담이 벌써 끝난건가.


주로 2~3일은 걸리는게 도시대표회담인데.



"응? 언니 선화쪽 대표 만나러 간거 아니었어?"


[이야기할게 좀...빨리 끝나서. 얼굴 보고 이야기해야겠으니까 빨리]


"지금 갈게"




***




"무슨 일인데? 분쟁지 이야기한다고 간 거잖아? 선화쪽에선 뭐래?"


"화야 넌...백운 시장으로써 알잖아...우리는 선화를 이길 수 없다는 거."



그렇지...인구와 경제력 모두 우리를 한참 앞선 도시를 이길 수는 없다.



"그래서...그래서 내가 그쪽에 제안을 하나 했어."



언니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심란하다.



"합병을...제안했어...그쪽 대표님은 좋다고 하셨고."


"합병? 백운이랑 선화가 합병을 한다고? 언니 혼자 그런 걸 결정하고 제안한다고? 우리 임원들은 뭐 앉아서 보고만 있어?"


"걔들 어차피 내 말 무조건 듣잖아. 너만 설득하면 된 거야"


"아니, 그런..."



말문이 막힌다.


합병이라니.


어머니가 물려주신 이 도시를, 기업을 그냥 적국...그래 지금은 적국이나 다름없지...적국에 넘기려는 건가.



"그리고 합병의 조건이 하나 있어. 정략결혼이야"


"잠깐만 잠깐만. 그러면 언니 혼자 그룹 합병을 결정하고, 거기다 내 결혼까지? 언니 미쳤어?"



이 언니가 미쳤나?


요즘 분쟁지 해결때문에 머리를 너무 많이 쓴 건가?


언니는 항상 머리만은 기계화하기 싫어하긴 했다.


기본적 전뇌수술 말고는 건든 게 없다.


그렇다 해도 한 그룹의 총수라는 인간이 기업의 운명을 이렇게 결정해버린다고?



"네 결혼 아니야. 그쪽 딸밖에 없는 거 알잖아"


"그럼 진이? 진이 이제 20이야 언니. 진짜로? 누구랑 하는데? 선시은, 걔야?"


"그래..."



어이가 없다.


항상 바쁘셨던 어머니 대신 7살 어린 동생 진이에게 가족의 역할을 해 준게 나와 언니였다.


이제 갓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내보내나 했는데, 결혼을 시킨다라, 난 동의할 수 없다.


그리고...상대가 선시은이라니, 유학 시절에 만나 동갑이기도 하고 친해진 애인데...


나쁜 애는 아니었지만...뭐랄까...좀...남동생을 맡기기엔 좀 그렇다.




"그리고 진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합병은 말도 안 돼."


"백화. 내 말 들어! 지금 우리는 전쟁 아니면 합병이야. 네가 시장이면 잘 알거 아냐, 백운은 선화를 못 이겨. 결과는 같은데 우리 시민들이 죽냐 평화롭게 가냐 둘 중 하나잖아."


"그렇다고 언니 마음대로 진이 장가를 보내버려? 백운 운영을 그냥 넘겨버려? 도대체 어쩌자고 그런 제안을 덜컥...하아..."


"백운은...너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후계욕심 있는것도 아니었잖아. 차라리 합병하고 진이 딸을 선백그룹 후계자로 만드는게 우리한테 베스트야."



선백그룹? 선화와 백운의 합병 그룹 이름인가 보다.



"벌써 그룹 이름까지 정했어? 그러면 진이 의사는? 안물어봤지?"


"진이야...좋다고, 괜찮다고 하겠지...그런 아이니까..."


"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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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그룹을 혼자 운영하세요? 갑자기 백운이랑 합병이요?"



선백야의 첫째 딸이자 선화 기업도시의 시장, 선시영의 목소리이다.



"선화 총수는 나야! 넌 아직 시장이고. 선화 운영에 대한 건 내가 가장 잘 알고, 내가 결정해. 그리고 백운과 분쟁상황에 대해선 알고 있었잖아? 어떻게든 해결해야 될 거 아냐. 그리고 해결하면 최대한 평화적인 게 좋지."


"그럼 선백 그룹을 만든다 쳐요. 그리고 그쪽 남자애를 데려와서 시은이던 시담이던 결혼을 시켜. 그러면 선백 후계자는 그 딸이 될테고 저는 뭐 어떻게 되는 건가요? 네?"



선시은과 선시담은 각각 선백야의 둘째, 셋째 딸이다.



"합병한다면...너한테 내 자리 주고 나도 좀 쉬어야지 이제. 선백 합병그룹 대표를 네가 해. 네 후계자는 시은이랑 그쪽 아들 사이의 딸로 하는거고."


"시은이로 정한거에요? 시담이는 그러면?"


"기업합병이야 몰라도 도시의 합병은 신도심이 필요해. 지금 분쟁지역 스프롤 거주구를 밀어버리고 선백 신도심을 지을 거다. 신도심의 안정화 이전까지 도시의 합병은 어려워. 당분간은 선화, 선백, 백운 3도시 체제로 운영될거다."


"그럼 시담이를 지금 내 자리에, 선화 시장에 앉히자는 말씀이시네요 그러면."



시영은 머리가 아팠다.



"이거 다 백운하고 이야기 된 거 맞죠?"


"이제 알려줘야지"


"합의도 안 된 내용이었어요?"


"이 거래에선 우리가 갑이야. 내가 하는 말을 거절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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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누나가 날 부른다.


선화쪽하고 회담이 있다 했는데 벌써 돌아온걸까


보통 다른 도시 대표들 만날 때는 2~3일은 걸리는데...


그리고 날 직접 부르는 건 거의 없는 일이다. 


화가 났거나, 심각한 이야기를 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아니면 내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려는걸지도.



똑똑-


"들어와"



회장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갑자기 왜? 평소엔 직접 부르진 않잖아?"


"일단 앉아봐...하..."



누나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


아무래도 화가 난 건 아닌 듯하다.


이런 표정이었던 건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걸 나한테 알려줄 때 이후론 처음이다.



"무슨 일 있는거야? 선화는 어떻게 됐어?"


"진아...너 혹시 지금 교제 중인 여자 있어?"


"응? 갑자기? 일단 지금은...없지? 뭐 고등학교 졸업한지 두 달도 안 됐는데."


"다행이네...선화쪽은....선화랑은 내가 합병을 제안했어."


"...어?"


"지금 이대로는 전쟁뿐이야. 백운을 어떻게던 살리려면 합병밖에는 없고."


"...그렇기야 하겠지만...합병?"


"그리고 합병을 그쪽에서 받아들이는 조건이...하아...정략결혼이야. 진이 너랑 그쪽 딸의."


"...나보고 지금 결혼을 하라는거야?"



누나 입에서 나온 말을 믿을 수가 없다.



"누나가 진짜 미안하다...이건 너나 나를 위한 것도, 선화를 위한 것도 아니라 우리 백운을 위한 거야."


"...이 방법밖에 없는 거지?"


"...제일 안전한 방법이지..."



정략결혼이라...애초에 여자같은 건 관심도 없긴 했는데...


이거 안하면 전쟁이란 거지?



"그래, 할게."


"진짜로?"



푹 숙이고 있던 누나의 고개가 휙하고 올라간다.


내가 거절할 줄 알고 다른 대책이라도 생각하고 있던 건가.



"나는 누나가 백운의 총수로써 최선의 선택을 한 거라 믿을게."



***



내 침대에 눕는다.


머리가 복잡하다.


결혼이라니, 작년까지는 남중남고에 있어서 여자라곤 엄마나 누나들밖에 모르고 살았는데.


전쟁으로 백운이 쑥대밭이 되고 강제합병 당하는 걸 내가 결혼하는 걸로 막을 수 있다면야...


해야지, 어쩌겠는가.


누나는 계속 선화 대표와 이야기하는 중일 것이다. 


결정되는 사항들은 바로바로 알려 줄 것이다.


누나가 내일이라도 그쪽 딸과 만나게 해 주겠다고 했다. 



"하아...무조건 사이가 좋아야 한다고?"



이 합병에서 선화가 갑, 우리가 을인 만큼, 부부 간 금슬이 좋아야 합병 그룹 선백에서 백운 쪽이 뒤지지 않을 수가 있다...라는 누나의 당부가 있었다.


'정략결혼'에서 사이가 좋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도 일단 그 사람에 대해 알아야겠지.


내일 만나면 이야기 좀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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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 처음으로 선화에 와 봤다.


지금까진 학교던 여가던 거의 백운 안에서만 있었는데.


내가 좀 폐쇄적으로 살았던 것도 있지만, 딱히 타 도시에 갈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몇몇을 빼곤 항상 경쟁상대, 적국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젠 선을 보러 선화에, 그것도 선화 본사건물에 오다니.


세상 일 모를 일이다.


선화 쪽 경호팀장이 날 약속장소까지 안내한다.


일반 경호원들은 전부 몸의 반 이상이 기계이거나 아예 인공지능인데, 경호팀장은 딱히 눈에 띄는 *임플란트는 없다.


*임플란트 : 사이보그와 같이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한 것. -사이버펑크 2077-



"이곳입니다, 백 진님."



선화 경호팀장이 문을 열자 큰 방이 하나 보인다. 


한 쪽 벽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 선화의 낮의 풍경을 가득 보여 준다.


초고밀도의 인구 천만의 도시 중심부는 볼 만한 광경이다.


방 곳곳엔 선화의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한가운데엔...



"와..."



아름답다.


방 안에 둘만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말이 나오질 않는다.


사진으로만 봤을 때는 이정도는 아니었는데.


우리 누나들도 재색겸비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잘생겼지만, 저 사람...



"저분이..."


"넵, 저희 선시은 현 선화건설 사장님이십니다."



저 사람은 잘생겼다는 표현만으론 부족하다.


하나의 조각을 보는 듯한 그런 아름다움.


뒤로 단정히 묶은 머리, 날카로운 눈매, 살짝 올라간 입꼬리, 붉은빛의 선화 정장까지.


심지어 전뇌수술 자국마저도 아름다워 보였다.



"반갑습니다."



선시은이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악수를 청했다.


가까이 오니 확실히 압도당하는 기분이 든다.


160인 나보다 머리 하나 이상 크니 190은 되려나.



"아, 안녕하세요"


"앉으시죠"



자리에 앉자 시은이 내 얼굴과 몸을 훑어보듯 쳐다본다.


초면에 이런 눈빛이라니.



"흠...이정도면..."


"네?"


"네, 일단 오시는 길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는 선화그룹 둘째딸 선시은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27이고 지금은 선화건설 사장직을 맡고 있습니다."


"아, 네네 반갑습니다."


"그쪽은?"


"저...는, 저는 백운그룹 대표님 남동생입니다. 백진이라고 하고요, 나이는 20입니다. 아직...맡고 있는 직책은 없네요. 작은누나, 백 화씨라면 아실 텐데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걔가 저에 대해 말을 하던가요? 그리고 제가 말을 놓아도 괜찮겠죠? 위치가 위치다보니 존댓말이 좀 어색하네요."



아무리 잘생겼어도 초면에 이런 태도는 살짝 불쾌할지도.



"네네 뭐 편하신대로..."


"그럼 편하게 할게. 잠깐 경호 좀 내보내주겠어? 둘만 따로 이야기하는게 나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우리는 경호원들을 물린다. 방 안에는 둘뿐이다.


시은씨가 왼손을 튕긴다.


다시 보니 왼팔이 기계이다. 



"됐다. 노이즈 캔슬링이야. 밖에서는 이제 우리가 하는 말 못 들어. 둘이 이야기좀 하자고."


"진씨? 이것 좀 읽어봐주겠어?"



시은씨가 내게 종이 몇 장을 내민다.


이런 시대에 종이 계약서라니, 


나는 계약서를 읽어 내려간다.


[선화와 백운은 '선백' 의 이름 아래 합병한다.]

[선백의 총수직은 현 선화 시장 선시영으로 한다.]

[현재 스프롤 분쟁 지역에 선화 신도심을 건설한다.]

[-선백 신도심의 안정화 이전까진 선화, 선백, 백운 세 도시를 개별적으로 운영한다.]

[선화의 시장은 선시담 현 선화메디컬 사장으로 한다.]

[백운의 시장은 백화 현 백운시장으로 유지한다.]

[선백의 시장은 선시은 현 선화건설 사장으로 한다.]


셋째 장까진 전부 내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마지막 장은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우리의 결혼에 대한 이야기였다.


계약서도 아니라 그냥 목록이랄까.


아마도 시은씨가 직접 쓴 듯했다.



"시은씨, 이건..."


"아 마지막장 이야기지? 일단, 우리 둘은 선백 신도심쪽에서 살아야 해. 내가 시장이니까. 아마 지금 건설시작 했을 테니까, 기본시설들 채우려면 한 달 쯤 걸리고."


"그럼 그때까지는 어떻게 하실 생각이시죠?"


"거기 나와있을텐데? 동거는 미리 시작하는게 나아. 합병 도중인데다 신축중인 도시만큼 타 도시 공작에 취약한 게 없잖아. 안정성이 최고야. 잘못하면 선백이 타격 입을거니까."


"그거랑 동거랑 무슨 상관이...?"


"20은 20인가..."


(너무 다른 임원들 대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나...갓 20이면 아직 어린애이긴 한데...아무리 교육을 받았다 해도 이러면...)



'20은 20인가' 라니, 너무 대놓고 무시하는 티를 낸다.


일부러 그러는건가?


아니면 7살이나 어린데다 친구 남동생이라 무의식적으로 그러는 걸까?



"일단 선백 신축과 스프롤 지역 구제가 필요하거든? 이 두 가지에서 선화랑 백운 각각의 그룹에서 처리해야 할 게 많을 거야. 진씨는 백운 쪽을, 나는 선화 쪽을 처리하는 게 계약상 합의점이지만, 진씨, 아직 사회생활 해본 적 없지?"


"아직은 없네요. 하지만 학교 다니면서 경영 수업은 들었-"


"그거 다 쓸데없어. 실제 사업체를 경영해 본 적은 없는 거잖아? 백 연 총수님께서는 진씨를 이런 직책, 선백 신도심 백운대표라는 직책에 바로 올릴 정도로 신뢰하시긴 하나 본데, 나나 우리 선화쪽은 아니란 말야. 백화 걔도 이건 동의했고. 어리숙한 대표만큼 그룹을 취약하게 만드는 게 없단 말이지."

 


내 말을 끊긴 했지만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가 없다.


이런 중요한 자리에 경력 없는 사람을 올리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들 텐데, 거기다 남자라니.


나도 사실 누나들이 뭘 믿고 나에게 이 자리를 준 건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지금 이해하고 있지? 그러니까 선화 쪽 일 뿐만 아니라 백운 쪽까지 내가 하겠다는 거야. 대외적으론 진씨가 일하는 걸로 나와야겠지만. 갓 성인 된 남자애를 믿지 못하는 입장은 이해해 줄 수 있지?"


"네...이해할 수 있죠 당연히..."



그렇다고 해야지 어쩌겠어.



"진씨가 해야 할 거는 백운쪽이랑 회의해야 할 때 얼굴 비치는 거 정도?"


"중요한 건 대외적으론, 그러니까 우리 총수들 일가 말고는 이걸 몰라야 한다는 거야. 대표직에 앉은 사람이 아무것도 못 한다는게 들통나면 망하니까. 그러니까 진씨가 실제로 업무를 보고 있는 것처럼 해야 하고, 결국 우리 둘이 한 집에서, 내가 진씨를 관리하며 업무를 보는 게 베스트란 말이지."


"신도심 신축 전까진 일단 지금 내 집으로 들어와. 진씨 서재랑 침실 할 정도 방은 있으니까. 혹시 지금 전담 수행원같은 거 있나?"


"수행원은 아직 없어묘. 그런데 제가 그러면 시은씨 집으로 들어가는 건 언제쯤?"


"수행원은 그럼 선화쪽에서 붙여 줄 거야. 남자가 아무래도 편하겠지? 뭐 집에 들어오는 건 내일로 하자."


"내일 바로요? 누나들하고 이야기라도..."


"그쪽 대표님이랑 시장님이랑은 이야기 끝났어. 거기 종이 네 장은 우리 어머니, 언니, 나, 내 동생, 진씨 누님 두 분 모두 동의한 내용이야."


"그럼...네, 알겠어요. 결혼은 신도심 건축 끝나는대로, 그전까진 시은씨 집에서 동거, 저는 할 일이 딱히 없는거네요."


"집에서 하고싶은거 그냥 하면 돼.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웬만한 건 다 자동화니까 딱히 해야 할 거라던가 그런 건 없고, 밖에 나가고 싶거나 하면 붙여줄 수행원한테 말해. 데리고 다닐 거야."



내가 뭐라도 해야 할 줄 알았는데, 그냥 내 이름이랑 얼굴이 필요한 거였잖아.


게다가 시은씨는 날 어린애보듯 하는 거 같다.


내 침실을 따로 주겠다는 건 그냥 집에 손님을 받은 느낌이지 않은가.


'사이가 좋은 부부' 가 되려면 먼저 시은씨가 날 남자로 보게 해야 할 것 같다.


같이 살면서 사이가 좋아진 다음에 할 게 많다.


여자랑은 살면서 접점이 없었는데...공부할 게 또 생긴 것 같다.



"그럼...내일 보시죠."


"그래 앞으로 잘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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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겠다.


결혼한다는 것에 별 감정이 없다.


계약으로 가득한 관계라서 그런 걸까, 아님 실감이 나질 않아서 그럴까?


총수의 아들로 태어난 만큼 사랑이란 것에 의한 결혼을 기대하지는 않았기에 후자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결혼상대를 알아갈 시간은 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은씨가 많이...잘생겼다는 걸까.


얼굴 뿐만 아니라 키나 몸매까지...모든 남자들의 이상형 그 자체나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결혼에 대한 내 거부감이 적은 걸지도 모른다.


27이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남자들이 들이댔을까.


남자 경험도 많을 텐데, 날 애처럼 보고 있다.


여자 겅험 없는 내가 이 여자를 꼬셔야 한다.


내가 다른 남자들에 비해 성욕이 강하고 성행위에 대한 두려움이 적은 편인 것 같긴 하다.


누나들한테 조언을 구하던, 인터넷에 찾아보던 해야겠다.


앞으론 남는 게 시간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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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저녁, 평소처럼 우리 세 남매는 식사를 같이 한다.


진이는 나랑 같이 살고, 화는 시청건물에 살지만 일주일에 한 번은 같이 식사를 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 정한 것이다.


그러나 평소답지 않게 오늘은 진이와 화가 말이 없다.


참다못한 내가 먼저 입을 뗀다.



"진아...시은씨...그분은 어떤 것 같아? 난 항상 외교적으로만 본 사람이니까 뭐라 말을 못하겠네"


"시은씨? 어...아까 잠깐 본 걸론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아. 그렇다고 좋은 사람이란 것도 아니지만...그리고 나 할 말 있어. 내가 내일부터 그쪽에서 살아야 한다는 걸 시은씨 입으로 처음 듣는 게 말이 돼? 미리 언급이라도 해줬어야지."


"미안해...어차피 오늘 오전에 정해진 거라 시간이 없었어. 그리고 최대한 당사자들끼리 이야기하는게 나을 것 같았기도 하고."


"내가,"


"진아, 너 정말 괜찮은거야? 시은이 걔가 나쁜 애는 아니지만은, 싫으면 싫다고 해도 돼. 다른 방법이야 찾으면 되니까. 계약 파기한다고 죽기야 하겠어?"



화가 진이 말을 자른다.


그렇긴 하다. 정말로 진이를...팔아넘기는 게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차라리 우리 계열사 한둘을...


아니지. 선백야 그분은 한반도 도시국가 중 5위 안에 드는 선화의 왕이나 마찬가지인데 뭐하러 백운의 계열사를 탐내겠는가.


확실한 신뢰를 주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었다.



"아니야, 어차피 언젠가 결혼은 해야 했을거고, 그것도 결국 정략결혼일 거 아냐? 차라리 빨리 장가 가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어."



진이는 이 결혼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 같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싫어하는 상대에게 강제로 결혼당하는 것 보다야...



"누나들, 남자 경험 좀 있나?"


"갑자기?"


"연이 누나가 그랬잖아. 최대한 시은씨랑 사이가 좋아져야 한다고. 그런데 지금은 시은씨가 나를 애처럼만 보는 것 같단 말이야. 방도 따로 준다고 먼저 말을 꺼냈고. 그, 그래서 시은씨가 날...남자...로 보게 해야 할 것 같은데..."



진이의 얼굴이 붉어진다. 


시은씨...예비 올케를 생각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우리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부끄러운 걸까.



"누나들은 남자가 했을 때 설렜던 거라던가, 그런 거 없어?"



난, 난 내가 23일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기업 총수자리를 맡게 된 이후로 남자를 만날 틈 따윈 없었다. 


계열사나 다른 도시 대표들이 뇌물이랄까, 예쁘장하게 생긴 남자들을 보내온 적들은 많지만, 감정적 교류가 있었던 남자는 없다.


...뭔가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



"난...남자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뭐야, 언니 남친이 있었던 적이 없다고?"



화는 놀란 눈치이다. 


하긴, 30이면 결혼할 나이가 다 되었긴한데...난 결혼할 생각은 없다.


합병까지 결정된 지금, 내 후사를 남길 이유도 없고.


애초에 내 눈에 차는 남자도 없었긴 하다.


진이 얼굴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난 그럴 시간 없었지. 화 너랑 시은씨랑은 친했잖아. 좋아하는 거라던가 둘이 그런 얘기 한 적은 없어?"


"음...2년 전에 보고 안 보긴 했는데...걔는...오해말고 들어. 좀 지배적인 성향이랄까? 유학갔을때 남자만나는건 못보긴했는데, 애 성격상 그렇달까? 진이 너 남고였으니까 신랑수업 받았을거 아냐. 거기서 배운 거 해주면."


"아니면 너 백운 데이터베이스 접근권있지? 거기에 우리 시민들이 써놓은거 검색이라도 해봐."


"음...그거보단, 누나 나 신분 하나만 만들어줘. 저기 어디 부도심출신 남자로 하나만. 검색하는거보단 그쪽 커뮤니티에 질문이라도 하는 게 나을거같애서."


"그래? 밥먹고 가기전에 해줄게."



사랑하는 남동생이 다른 여자에게 따멱히기 위해 노력하는 꼴이라니...이 상황을 만든 나 자신이 너무 한심하다.



***



작은누나가 신분을 하나 만들어주었다. 


스프롤을 제외한 구역은 우리 백운에서 인구조사를 빡세게 하니까 허위신고가 불가능한데, 시장은 이런 것도 되는 것이다.


갓 생성된 가짜 주민코드를 인터넷에 등록한다.


보안 때문에 본인인증이 되지 않으면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다. 


가장 여성 유저가 많은 커뮤니티에 접속한 다음, 질문 글을 작성한다. 



"님...들은...남자들...이...뭐...해줄...때...꼴림?"


"이거면 되겠지? 사람 많으니까 금방 답이..."



토요일 저녁이니만큼 동시접속자가 십만을 넘어가는 대형 커뮤니티였다.


남자가 올리기에는 외설적인 글이라서 그런가, 글을 올리기 무섭게 댓글이 달렸다.


주로 내가 남자가 맞냐는 댓글, 성희롱 댓글 등.


나를 실제로 볼 것도 아니면서 성희롱해서 어쩌겠다는 걸까.


그래도 쓸 만한 댓글들 몇 개를 추려 정리해 놓았다.


평소엔 안그러다가 어느새 누나라고 부르기


속살 비치는 얇은 옷 입기


여친의 큰 셔츠 입기


허벅지 보여주기

 

무의식적인 척 스킨십하기



남자 맨살이 그렇게 좋은가...



"이거 믿...어도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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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동거를 시작한다. 


어제 저녁, 시은씨에게 짐은 어떻게 하냐고 물어봤는데, 신경쓰지 말라고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방 앞에 시은씨가 서 있었다.


들어 보니, 나는 시은씨 차를 타고 가고, 내 방은 모듈을 통쨰로 빼서 항공 화물로 옮겨 준단다.


그러니까 내 방 그대로 시은씨 집에 들어가는 거랄까.



"그래서 요즘 다 모듈형으로 짓는거야, 반중력장치 있으면 하중걱정은 안해도되니까."


"그, 그런가요"



선화건설 사장을 그냥 한 건 아닌가 보다.



"일단 누나분께 인사라도 드려야지?"



***



"누나? 나 이제 가볼게"


"그래...몸조심하고, 연락하고. 시은씨? 진이 좀 잘 부탁드려요"


"네네 걱정 마십쇼 대표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작은누나는 안 보고 가도 되겠어?"


"뭐 평생 안 볼 것도 아니고 계약상 처리해야 될 거 있으면 어차피 봐야 되잖아. 이제 갈게"


"진씨? 두 층 밑에 있는 착륙장에 차 대놨으니까 따로 챙길 거 있으면 챙기고 내려와. 차는 준비해놓을게. 방...은 내일모레면 옮겨줄테니까 그전까지 쓸것만 챙겨와."


"네. 조금만 기다려줘요. 금방 갈게."


"대표님이랑 할 말 있으면 하고 내려와. 어딘지는 알지?"



누나는 언제나 의지할 만한 여자였다.


키 크고, 몸 좋고, 잘생겼고, 능력 뛰어나고. 말 그대로 알파 피메일.


그런 누나가...날 배웅하는 지금은 어느 때보다 수척하다. 


쉴 새 없이 입술을 깨물고,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한다.


시은씨가 나가고 문이 닫히자 누나 눈가가 젖어든다.



"펴, 평생 안볼것도 아니잖아? 연락하고 지낼거야. 그, 그러니까..."



눈앞이 흐려진다.


결혼하러 가는 건 난데 왜...왜 미안한 감정이 드는 건데...


이별도 아니잖아...보고 싶으면 볼 수 있잖아...근데 왜...


누나가 다가와 무릎을 꿇는다.


내 어깨에 팔을 두르고 날 끌어안고 웅얼거린다.



"진아...진아...흑, 누나가, 누나가, 흑, 미안해애..."



살면서 처음 보는 누나의 모습.


누나 뺨에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머니 장례식에서도, 백운을 탐내던 외삼촌을 숙청할 때도 슬픈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언제나보다 약한 누나의 모습에 나도 누나를 끌어안고 눈물을 쏟는다.



"왜...흑, 왜 누나, 흑, 누나가 미안한데...어쩔 수 없었던...흑, 거잖아..."


"내가 미안해...내가, 흑, 내가 나쁜거야 내가..."


"아니야...아니야아...누나처럼, 히끅, 누나처럼 좋은 사람이 어딨다고..."



더 이상 대화는 오가지 않는다.


방 안엔 부둥켜안은 채로 눈물만을 쏟는 우리 둘뿐.


몇 분이나 지났을까, 누나가 울음을 추스리고 떨어진다. 



"나한텐 아직 어린애일 뿐인데...나한테 넌 아들이나 다름없는데...네가 성인이 되자마자 나 때문에 결혼당하는 걸 보면 나는, 누나는 너무나 미안해서..."


"미안하다고 그만해! 누나 잘못은 아무것도 없으니까..."



누나 방 통유리 창문 밖으로 아침 햇살이 내리쬔다.


누나 옷의 왼쪽 어깨가 내 눈물로 젖어 있다. 


내 옷도 마찬가지겠지.


햇빛에 누나의 눈에 맺힌 눈물이 빛난다.


내가 누나 얼굴을 잡고 말한다.



"누나, 나 봐. 나 이 결혼 억지로 하는 거 아니고, 우리 서로 보고 싶으면 볼 수 있어. 그리고 아무것도 누나 탓 아니야. 자책하면 나 화낼거야."


"그래...이제 가 봐..."


"사랑해, 누나."



누나를 다시 꽉 안아준 후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힐 때까지 누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일어나지 않았다.



어깨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이틀 치 옷을 챙겨 착륙장으로 향한다.



"왔어? 눈이 빨갛네...울었나..."


"네? 뭐라고 하셨어요?"


"아무것도 아냐. 타."


"차 이건 제가 모르는 브랜드네요? 선화도 아니고."


"취미로 만든거야. 기술자문은 받은거니까 걱정하진 말고."



시은씨 차에 타자 착륙장 문이 열리고 이륙한다. 


시은씨가 직접 운전대를 잡고 있다.



"직접 운전하세요?"


"자율주행은 재미가 없더라고. 운전기사를 써도 그렇고. 게다가 이거 내가 직접 만든거라 나 말곤 거의 운전하지도 못해."


"멋지네요. 저도 공학 좋아하긴 하는데 경영수업 듣느라 제대로 된 공부는 못해봤거든요."


"고맙네. 음...일단, 한 달동안 우리 살 집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선화건설 본사 펜트하우스야. 진씨 방은 아까 말한것처럼 내일모레면 옮겨줄거고."


"집 2층에 방 지금 하나 남는거 있는데 거기 진씨가 서재로 쓰던지 해. 펜트하우스에서 한 층만 내려오면 내 사무실이긴 한데 딱히 진씨가 올 일은 없을테고. 나 필요하면 그냥 호출하면 될거니까."


"저번에 저 수행원 하나 붙여주신다 하셨는데, 그분은 어떻게 되는건가요?"


"그 애는 일단 서류상으론 진씨 밑으로 들어가있긴 한데, 진씨 어디 나갈때 말곤 그냥 내 두번째 비서 하는거지. 뭐 진씨가 불러봤자 한층만 올라가면 되기도 하고."


"아이리스? 남진혁이 정보좀 띄워봐."


[네]



시은씨가 선화의 AI 아이리스를 부르자 내 눈앞에 화면이 띄워진다.


내 수행원...이름은 남진혁, 나이는 25이다.


임플란트는 전뇌수술과 오른팔, 양 발.


선화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 하는 학신대 조기졸업.


선화 경호팀 유일한 남성으로 입사한 후 2년만에 내 수행원자리까지 오른 엘리트.


경호팀 내 겨루기영상이 첨부되어 있어 한 번 재생해 봤다.



"우와..."


"대단하지? 나도 처음엔 남장 여자인줄 알았다니까?"



경호팀 내 다른 자신보다 덩치 큰 여자들을 두들겨 패는 남진혁. 


그냥 여자도 아니고 임플란트가 팔다리에 가득한 여자들이다.


더욱 놀라운 건 무작정 패는 게 아니라 자신의 임플란트를 굉장히 잘 활용한다.



"괜히 학신대가 아니구나..."


"그래, 학신대 경호학과는 체력실기뿐 아니라 필기까지 완벽해야 들어가는 곳이야. 게다가 남진혁은 선화 공인 비서시험도 수석이었어. 그랬기에 남자임에도 뽑힌 거지. 게다가 빈민가 출신이란 말이지, 완전히 개천에서 용 난...뭐 그런 거야."


"확실히 이분이면 마음놓고 맡길 수 있겠네요."


"그래. 진씨는 뭐 선화 오면 해 보고 싶은거라던가 없었어? 해보고 싶은거나 가고 싶은데나 있으면 남진혁이 불러서 말해. 데려가줄거야."


"시은씨는 오늘 일정 있으신가요?"


"음...오늘은 진씨 집에 내려주고, 한시간있다 본사건물에서 회의 하나 있고, 그거 끝나면 선백 신도심 건설지 가 봐야 돼서 저녁쯤 들어가겠네. "


"아, 그리고 미안한데 오늘은 남진혁이 부르지 말아주라. 앞으로는 이럴 일 없을 텐데, 오늘까지 휴가신청했었거든."


"네 그럼 오늘은 집에 있어야겠네요."


"집에 있는건 맘대로 써봐도 돼. 방 구경도 좀 해 보고. 집에 있을 땐 필요하면 아이리스 불러. 집에 있는 건 다 걔가 컨트롤하니까."



창밖으로 선화 중심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



선화의 중심부, 선화 메인스퀘어.


그 광장을 둘러싸는 수많은 마천루들은 전부 선화 계열사 건물들이다.


그 중 가장 높은 건 물론 선화 본사 겸 시청.


선백야 대표와 선시영 시장이 사는 곳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높은 곳이 선화건설 본사. 


그 꼭대기엔 시은씨와 내가 한 달간 살 집이 있다.


시은씨가 위에서 두 번째 층으로 차를 댄다.


착륙장에 들어서자, 우리 옆의 유리문이 열리며 시은씨 집의 거실이 드러난다.



"여기서 내리면 돼."


"고마워, 잘 다녀오세요"


"그래 갔다올게"



이 큰 집에 7~8시간동안은 나 혼자이다.


한 달간은 살아야 하니 좀 둘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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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현관엔 바로 직통 엘리베이터 두 대가 붙어 있다.


현관 앞엔 위층으로 가는 계단, 그리고 왼쪽엔 거실+부엌, 오른쪽엔 시은씨 방과 화장실이다.


화장실엔 큰 욕조와 그 옆에 붙어있는 통유리 창이 보인다.


사우나 좋아하는데...시은씨는 아닌가보다. 사우나는 없네.


거실은 2층높이이고, 통유리 창문이 발코니로 향한다.


발코니엔 나무가 한 그루 심겨 있다. 


요즘 살아있는 식물 보기가 힘든데, 게다가 선화는 바다 근처도 아니잖아.


확실히 돈이 많긴 한가 보다.


거실 뒤쪽으론 내 방이랑 같은 규격의 방 모듈이 두 개 있다.


2번 모듈은 아직 빈 공간인데, 여기 내 방이 들어올 예정인가 보다.


거실 옆엔 착륙장과 차고로 향하는 유리문이 있는데, 차고엔 시은씨 작업실까지 붙어 있는 모양이다.


아까 차를 직접 만드셨다 그랬지.


현관쪽으로 향해 윗층으로 올라간다.


3번, 4번 모듈은 아직 비어 있다. 혼자 산다고 했으니까 쓸 일이 없었나 보다.


차고 천장 위를 통채로 쓰는 큰 발코니가 하나, 아래층 복도 일부 천장을 쓰는 작은 발코니가 하나 있다.


발코니가 이렇게 많을 필요가 있나 싶기는 하다.


볼 건 다 봤고...시은씨 방을 멋대로 들어가볼 순 없으니까.


거실에 앉아 작전을 좀 짜야겠다.



시은씨 완전히 날 동생 취급 하잖아.


어제 올려놨던 질문글 댓글이 새로 올라왔나 좀 봐야겠어.


주접 떠는 거나 성희롱들을 필터링하니 쓸만 한 것들이 남는다.


이것들을 추려서 내 리스트에 추가한다.



"어디보자...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누나라고 불러주기. 


초면에 바로 말을 놓아버린 시은 씨, 아니 시은 누나면 별 생각 없을 것 같긴 하다.


누나라고 하면 바로 내 호칭은 '진씨' 가 아니라 '진이' 가 되겠지


그래도 해보는 건 나쁘지 않겠다. 언제까지나 시은씨 진씨 하며 살 순 없기도 하고.


그리고 어제 저녁에 댓글들 읽고 바로 배송시킨 옷들.


그것들 중 적당하겠다 싶은 것들 이틀치만 챙겨왔다.


반바지 몇 장에 반팔 하나, 나시 하나.


속옷 몇 장과 가디건 하나.


한 세트 골라서 입고 거울을 본다.


묶었던 머리까지 풀자 어제 댓글들 중 성희롱하는 사람들 프로필 사진에 있던 남자들과 닮은 것 같다.


여자들이 임플란트 없는 남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기계보단 맨살이 꼴린다나.


그리고 난 임플란트가 하나도 없다. 전뇌수술은 안하는 사람 없는 수술이고.



"...좀 있다 누나 올 때쯤 입어야지..."



이대로 몇 시간은 못 있겠다.


다시 내가 입고 온 옷으로 갈아입고 냉장고에서 물 한 병을 꺼내 거실 소파에 자리한다.


시은누나를 위한 리스트를 다시 읽어본다.



"추천 옷 리스트가 되게 많네, 한번씩 사 봐야되나?"


"직접 요리...오늘은 언제쯤 오실 지 모르니까 패스. 게다가 아까 냉장고에 물밖에 없던데. 좀 지내고 생활패턴이 좀 외워지면 해야겠다."


"같이 자자고 하기...누나는 분명 날 안방에서 재우고 자기는 다른 데서 잔다고 할 거 같은데...이따가 상황 봐서 시도해야지."


"헐렁한 옷 입고 살짝살짝 노출...부끄럽긴 한데...어차피 결혼할 사이니까...살짝씩 보여주면 그래도 신경이 쓰이겠지? 누나도 여자긴 하니까..."



믿져야 본전이지 뭐. 


시간이나 좀 때우고 있어야겠다.


"아이리스?"


[네]


"시은씨 오기 30분 전에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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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사 일요일 정기회의가 끝났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불참.


언니랑 나, 시담이 셋이서만 선백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머지 임원들인 사촌들은 언니 눈치만 보느라 듣고만 있고.


이럴 거면 굳이 임원들 다 모아야 되나, 우리 셋만 해도 될거같은데.


회의는 끝났지만 아직 할 일은 많다. 


선백 건설예정지에 문제가 많다고 한다.


분쟁지였던 스프롤 주거지를 밀어야 하는데 살던 사람들 반발이 심하다고 하네.


불법으로 주민등록도 안하고 사는것들 군대로 밀어버리지 않는 걸 감사할것이지...



***



건설예정지에 도착하니 꼴이 말이 아니다.


한창 철거하고 있어야 할 대원들이 시위 진압에 한창이다.



"하하...일요일부터 시위라니...부지런하시기도 하셔라..."



하...이걸 밀어버릴 수도 없고...


선화 등록인구가 천만, 백운 등록인구가 삼백만인데 양쪽 스프롤 인구를 합치면 추정컨데 이천오백만은 될 것이다.


이 시위를 무력진압한다면 이들이 한꺼번에 들고일어나겠지.


그러면 대량살상무기라도 떨어트려야 할 판이다.


어떻게던 건설예정구역 밖으로 시위대를 밀어내야지...


진씨한테는 공사 정리될 때 까지 한 달로 말했었는데, 시위대 밀어내고 공사 마무리하려면 세 달은 걸릴 것 같네...


결혼식을 그렇게 오래 미룰 순 없고...내 집에 살면서 해야 되나...


지금 시위진압에 힘쓰고 있는 건 우리 선화건설 뿐만 아니라 저쪽 백운건설도 마찬가지다.


백운건설 대표가 우리 쪽으로 와서 인사를 건넨다.



"선 대표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아 네 정 대표님. 저번에 중동쪽 프로젝트에서 뵙고 나서 처음이네요."


"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지금 우리가 있는 건설지휘본부를 제외하고는 아직 철거된 지역은 없습니다. 여기 자리잡는데만 해도 하루 꼬박 걸렸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해서 건설예정지를 다 철거해야 합니다."


"그럼 일단 지금부터 시위대를 밀어내야 하는데...병력은 충분한가요?"


"병력이야 충분합니다. 선화 쪽과 저희 백운을 합치면 가용 가능 병력은 차고 넘치죠. 그런데 문제는 무력 없이 해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네요...그래도 전 세 달이면 될 거라고 보는데, 계산 결과 나온 거 있습니까?"


"이곳이 스프롤 외곽지역이기 때문에 저희 백운팀에서도 처음엔 그 정도 산정했지만, 보니까 여기 주민들 무장수준이 웬만한 스프롤 중심부보다 더하더라고요. 여기 분쟁상황 지속된지 1년 반이나 되어 가니까 그런 걸지도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서로 싸우던 것들이...지금은 공동의 적이 생겼다 이건가...그럼 계산결과는 얼마나?"


"1년 이상은 걸리겠습니다."



아...이것들이 이렇게 저항이 거셀 줄이야...이건 예상 외인데.


분쟁 1년 반째 되어가는 지역이면 당연히 무장상태가 빡세겠지...그렇지.


게다가 우리가 철거해야 할 부분에 사는 것들만 해서 최소 십수만...지금은 아직 아니지만 나중에 가면 스프롤쪽에 지휘부도 생기고 나름대로의 군대도 생기겠지. 


아무리 우리가 수비적으로 나온다고 해도 언젠가 무력충돌이...



"일단 장기전이 될 거라면 언젠가 무력충돌은 일어날 수 밖에 없겠네요. 먼저 치는 건 우리 쪽이면 무조건 안되고...정 대표님? 선백그룹 만들어지기 전에 저희가 먼저 합쳐서 선백 건설로 만드는 게 이쪽 상황에 유리할 것 같은데요."


"그렇죠...저희 쪽 회의때 건의해보겠습니다. 선화 쪽도 부탁드립니다."


"넵 그러죠."


"아 그리고, 저희 백진 도련님 좀 잘 부탁드립니다."


"아, 물론이죠."



진씨한테 어떻게 말하지...안 그래도 내 집이면 불편할텐데... 


1달이면 되었던 게 1년으로 늘어났다.



어제 처음 보기 전에는 사실 그냥 여느 계열사 대표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처음 얼굴을 보고 '이정도면 어디가서 꿀릴 남자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 후부턴 배우자로써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이야기를 좀 하니 많이 어린 티가 나더라.


보니까 나랑 7살 차이, 올해 막 성인이 된 것이니 어떻게 보면 당연한 걸지도.


그때부턴 남자라기보단 동생처럼 보인다.


얼굴이 예쁘고, 몸도 아담하고, 성격이 착해도 느껴지는 건 예쁘고 착한 동생.


뭔가 챙겨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다.


진씨 입장에서도 강제로 온 결혼이나 마찬가지니까 내가 자기를 남자로 보는 건 싫어할 지도 모른다.


동생으로써 대하는게 베스트겠지.



"사장님? 이쪽으로 좀. 상황 정리될때까지는 서희 선화건설 이름으로 하는 모든 행위에 사장님 이름이 들어가야 해서, 시위진압 완료될때까지는 사장님이 현장에 필요합니다."


"매일? 이거는 원격으로 할게. 탐라쪽에 프로젝트 하고있는거도 한달에 한번은 가야되고."


"그...나중에 한반도 연방법상 문제생기지 않으려면 직접 하셔야됩니다. 그래도 매일은 아니고 1주일에 네다섯 번 정도."


"출근을 여기로 하라 이건가..."


"그래도 시위진압 끝나면 돌발상황 아닌 이상 건설만 하면 되니까...1년만 참아주십시오. 그 안엔 시위 정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래...어쩔 수 없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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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분 뒤 선 시은 님이 도착하실 예정입니다]


"으으으..."



어느새 잠들어버렸나...


어제 많이 못잤기도 하고 너무 심심해서 소파에 누운 채로 잠들어버렸다.


30분 남았다고?


지금이...6시 반...시은누나는 식사 아직 안하셨으려나?


옷부터 갈아입어야겠다.


반바지에...나시티는 아직 이른 것 같네. 반팔 티셔츠.


이제 앉아서 기다리다가...누나 오면 저녁은 먹었냐고 물어보고...'누나' 라고 불러보기.



***



몇시간동안 서류만 읽다가 이제야 퇴근한다.


어차피 아직 대치상태인데다 건물철거도 안 들어갔는데 뭐 그렇게 처리할 게 많은지...


진씨는 뭐하고 있으려나, 집에 먹을거 없는데 저녁은 못먹었겠지?


내가 평소에 답지않게 인스턴트만 먹고 산다고 진씨까지 그런 걸 먹일 수는 없으니...



"아이리스?"


[네]


"파스타할건데 2인분어치 재료 사서 집에 배송해놔."


[네, 알겠습니다.]



어렸을 때 취미삼아 다녔던 요리학원이 여기서 빛을 발하는구나.


진씨랑 같이먹는 첫끼인데 기계가 요리할 순 없지.



***



시야에 집이 들어온다.


외근나갔다 돌아올 때면 항상 불 꺼진 집이었는데, 


불 켜진 집을 밖에서 보니 어색하네.


착륙장 가까이 다가가니 문이 열리고 차고 불이 켜진다.


새로 만들던 차 옆으로 주차를 하고 내린다.


이것도 선백 해결될때까진 못만들겠네...


차고문을 열자 소파에 있던 진씨가 일어난다.



"오셨어요?"


"옷...갈아입었네?"



사진으로던 어제 만날때건 긴팔 긴바지였는데.


반바지에 반팔이라...흠칫하긴 했다.



"식사 하셨어요?"


"아직. 진씨도 밥 안먹었지? 내가 해줄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네~"



거실을 가로질러 내 방으로 향한다.


짐을 풀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후 택배함에서 식재료를 꺼내 주방으로 간다.


오랜만에 꺼내보는 조리도구들을 보며 기억을 되살려 내어 조리 시작.



얼마 지나지 않아 식사가 준비된다.



"진씨? 이리와서 먹자."


"요리도 잘하시네요 누나!"


"ㄴ, 누나? 진씨도 말 놓으려고?"


"뭐 언제까지나 시은씨 시은씨 할 수는 없으니까...존대는 해야겠지만요. 누나도 편하게 불러줘요."


"그, 그럴까? 진이라고 부르면 되나?"


"편한대로 불러주세요. 근데 누나는 원래 집에서 요리 해 먹어요?"


"평소엔 귀찮기도 하고 시간도 없어서 배달이나...인스턴트나..."


"몸에 나쁜거잖아요? 이제부턴 제가 할테니까 그런거 드시지 마세요."


"진씨, 아, 아니 진이 요리할 줄 알아?"


"고등학교때 남고라 그런지 가르쳐주더라고요. 큰누나 아침 만들어주기도 했고."


"뭐...아무튼 할 얘기가 있어."


"뭔데요?"


"그...선백 건설지 있잖아? 거기 스프롤 살던사람들이 반발이 심해. 그쪽에서 생각보다 훨씬 오래 걸릴거같다고 말이..."


"얼마나 오래걸리길래 그래요?"


"1년정도는 걸릴거래..."


"1년이요? 그러면 그동안은 여기 살아야 되는거네요?"


"아마 그러겠지. 완공 되자마자 우리가 들어가야 하는 건 변하지 않고, 다른 데 집을 또 구하기엔 애매하니깐 또..."


"저는 상관 없는데요? 왜 눈치를 보신대?"


"뭐...아냐. 네가 불편할까봐. 아무튼, 진이 방 올때까진 내방에서 자. 나는 이불깔고 자던 거실에서 자던 할게."


"이틀이면 뭐 그렇게 해요. 누나만 괜찮다면."


"그러자. 내일 월요일이니까 본격적으로 선백 합병작업 들어가는데, 나는 선백 건설때문에 좀 바빠질 거야. 웬만한 건 각 계열사 대표들끼리 처리할 건데, 진이한테 연락오면 나한테 얘기해."


"그럴게요."


"아 그리고 돈 쓸 일 있으면 아이리스한테 말해. 내 계좌 연결되어있으니가 거기로 청구될거야. 다 먹었으면 그릇 줘. 세척기 돌리게."



***`



1년...1년이라...


어차피 앞으로도 누나랑 살아야 하니 어느 집에 사느냐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나는 내가 불편해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보다.


뭐...내 방도 곧 오고, 이 집은 선화에서 두 번째로 좋은 집이기도 하니까, 따지자면 오히려 이쪽이 더 좋을지도.


누나는 지금 씻는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오늘 내일은 누나는 거실 소파에서 자고, 나는 누나 방에서 손님 대접을 받을 에정이다.


내 방이 오면 거기가 나에겐 가장 편하겠지.


그리고 누나가 불편하게 자는 건 나에게도 편한 건 아니다.


밖에 나가 일하는 사람이 편하게 자는 게 맞지만...호의를 베푸는데 거절하긴 뭐하기도 했다.



"진아? 씻을거면 씻어"


"전 아까 이미 씻었어요."


"그래? 그럼 난 내일 아침에 일찍 출근이거든? 먼저 좀 잘게. 내 방에 있는 건 다 써도 되니까 내킬 때 자고."


"넵, 고마워요."


"그래, 잘 자"


"누나도요"



누나가 방 문을 닫고 나간다.


남의 침대에 눕는 건 항상 불편하다. 


신체적으로가 아니라 심리적으로.


누나는 이제 남이 아니니 상관 없으려나.


그래도 언젠가 이 각방 상황을 해결해야 할 건데.


결혼 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그러고 보니 선백 건설 자체가 오래 걸린다 했지...결혼도 같이 미뤄지는 건가?


각방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나에겐 안 좋다.


동생같은 이미지만 굳혀 줄 뿐이니까.


일단...내일 아침 누나 일어날 때 쯤 일어나서 출근하시는 거 배웅부터 해 줘야겠다.


출근하는데 퍼 자고 있는 사람만큼 꼴뵈기 싫은 게 없으니까.



"아이리스"


[네]


"누나가 언제 일어나시지?"


[6:00 AM입니다.]


"그때 깨워줘"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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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침대가 통째로 진동하길래 깜짝 놀라 잠에서 깼다.


깨워준다는 게 이런 거일줄은 몰랐지.


시계를 보니 6시이다.


화장실에서 물소리가 난다.


누나가 씻고 있나 보다.


거실로 나가 물 한 잔 해야겠다.


아침이라도 해 주고 싶지만...식재료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아이리스? 내 옷 좀 준비해줘."



누나가 씻고 나오셨나보다.



"일어나셨...!"


"...!"



누나가...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꺄악!"


"이, 일어났어?"



나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가리고 뒤를 돈다.


누나가 당황하며 손에 들고 있던 수건으로 몸을 가린다.



"그...누나...옷 좀..."


"미, 미안해. 아이리스, 옷들 방으로 좀 갖다줘."



누나가 얼른 뒤돌아 옷을 입으러 방에 들어간다.


누나의 얼굴이 새빨갛다.


나도 그렇겠지, 여자의...벗은 몸을 실제로 본 거는 처음이었으니...


눈앞에서 누나의 몸이 떠나질 않는다.


어제부터 계속 옷 입은 누나의 몸을 봐 오면서 정말 몸매 좋다고 생각은 했지만, 저런...저런 몸매는 정말 예상 밖이었다.


190이라는 키는 이미 완벽한 캔버스인데, 큰 가슴에 넓은 어깨와 골반, 잘 갈라진 복근에...내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허벅지...


나 허벅지 굵은 여자 좋아하는구나...


도대체 어떻게 사무직이 저런 몸매를 유지하는 거야?


게다가 얼굴...이미 얼굴엔 익숙해졌다 생각했는데...이렇게 보니 새롭다.


내가 얼굴만 보고 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누나의 의외로 친절한 성격과 방금 전의 광경이 머릿속에서 합쳐지자......나 시은 누나를 좋아하게 되어 버린 것 같다.


물론, 호감이야 있었지만, 지금까지 선시은 유혹 계획을 시행해 온 건 누나, 큰누나의 당부 때문이 컸다.


이제 이 계획이...진심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지, 진아? 일찍 일어났네?"


"눈이 일찍 떠지더라고요..."



누나도 나도 눈을 마주칠 수가 없다.



"시, 식사는 안 하세요?"


"원래는...이런 물에 타 먹는 건조 스무디? 이런거 백운에서도 먹나?"


"먹긴 하죠..."


"하나 타 줄까?"


"네..."



누나가 컵을 하나 내밀고 내 옆 소파에 앉는다.


분위기가 너무 어색하다.



"그...아까 건 신경쓰지 않으셔도...누나 몸 정말 예쁘...다고 생각하니까..."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여자한테 예쁘다니.


이제 막 일어난 데다 스턴까지 맞아버려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나 보다.



"고, 고마워..."



다시 어색한 침묵.


누, 누나한테 내 몸이라도 보여줘야...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정신차려 백진.



"오, 오늘은 언제 퇴근해요?"


"봐야 알 것 같은데...대여섯시면 올 것 같아."


"저녁 해드릴게요. 만약에 늦으면 연락줘요."


"그래 고마워, 이제 출근해야겠다."


"다녀오세요."



누나가 차고 쪽으로 나간다. 어제와는 다른 차에 몸을 싣고 멀어져가는 걸 바라본다.



"오늘은 또 뭐 하고 있는담."



지금 시간이...7시.


큰누나 일어날 시간인데.


허구한날 늦잠자는 양반이...일어났으려나?


아침도 나 없으면 안챙겨먹는거 아냐?


전화라도 해봐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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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아침이다.


이 집에서 혼자 맞는 첫 번째 아침.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다.


마음이 허해서 그런가...



"7시 알람 취소해줘"



항상 진이가 아침밥을 차려줬는데...


부엌으로 향하자 수첩이 하나 있다. 


진이가 항상 해주던 식사 메뉴 몇 개의 레시피...



"이런 건 또 언제 써놓고 간 거야..."



다시 눈물이 나오려 한다.


아침...아침 먹어야 하나?


오늘부터 본격적으로 합병 진행이라 정말 바쁠 예정이다.


계열사들 합병 회의할 때 대표자격으로 참석해야 하니까.


아침은 건너뛰고 씻으러 가려는데,



[백 진 님으로부터 전화입니다.]


"어? 받아봐."


[누나? 일어났어?]


"어, 어 일어났지..."


[그렇게 늦잠 좋아하는 양반이 웬일이래?]


"아니, 그냥... 눈이 일찍 떠지더라."


[아무튼, 부엌에 수첩 봤어?"]


"봤지. 이런건 언제 써놓은거야"


[원래 내가 매일 쓰던거야. 아무튼, 그래서 아침은? 안먹으려 했지?]


"아, 아니야! 먹으려고..."


[거짓말하지 말고. 아침은 먹어야한다고 했잖아? 택배함에 오늘 아침 식재료 있을거야. 본사건물 급식실에 말해놔서 아침저녁으로 배송해주는건데, 그걸로 그 수첩 첫 페이지꺼 해 먹어. 오늘 건 요리라 할 것도 없긴 할 거야.]


"알았어..."


[아 생각해보니까 식재료 2인분이겠구나. 남은건 냉장고에 넣어놓던지 해. 연락해서 오늘 저녁부턴 재료 1인분으로 바꿔놓을테니까 앞으로 아침 거를생각하지 말고 해 먹어. 아침마다 전화할거니까 아침 먹는거 사진찍어 보내고.]


"그래 고마워...그 집은 어때? 그래도 한 달뿐이지만 괜찮아? 네 방은 어제 저녁쯤 해서 떼어갔어."


[아 아직 모르겠구나...오늘 회의하면 아마 들을텐데, 건설예정지 주민들 시위때문에 공사가 1년은 넘게 걸릴거라 그동안은 여기 살아야 될거래.]


"1년이나? 그 집에서? 넌 괜찮겠어?"


[뭐 어차피 시은누나랑 같이 살아야되는건 똑같은데, 집이 중요한건 아니잖아.]


"그래도..."


[아무튼! 밥 먹고, 씻고, 출근 잘 하고. 나 보고싶으면 영상통화 걸어. 여자가 돼갖고 나이가 몇갠데 울려고 그래?]


"아, 아냐 안울었"


[네네~ 거짓말하지 말고. 사랑해 누나, 끊을게]


"그, 그래... 나도 사랑해..."



하아...날 너무 잘 안다니까


아침부터 전화해서 잔소리라니...


택배함...택배함에...잘 포장된 식빵 네 조각과 합성향료 잼, 가루 커피 2인분이 들어 있다.


이런 걸 배송시켰던거구나...난 집에 있는거로 하는 줄 알았지.


거대기업 총수의 아침이라고 거창한 걸 먹는 건 아니다. 


다른 총수들은 몰라도 나는 따로 사용인이나 셰프를 쓰지 않기 때문에.


항상 귀여운 남동생이 손수 해주는 아침이 있는데 그것보다 더한 게 없지.


이젠 그것도 옛말이지만.


그래도 사진찍어 보내라니까 어쩔 수 없네. 


빵을 집어 토스터기에 넣고 나머지 두 개는 냉장고에 넣는다.


가루 커피 백에 뜨거운 물을 붓자 커피가 녹으며 비닐 백이 고형의 컵으로 변한다.


빵이 다 구워지자 잼을 바르고 사진을 찍어 진이에게 보낸다.


(사진)

[오전 7:13 나 : 지금 아침먹어요~칭찬해줘]


[오전 7:13 진이❤ : 오구오구 잘해써요]


[오전 7:13 진이❤ : 봐봐 어렵지 않지? 아침저녁으로 이렇게만 하면 되는거. 수첩에 적힌대로만 하면 돼]


[오전 7:14 진이❤ : 한달에 한번은 집에 갈꺼니까 건강관리 잘하고있어]


[오전 7:14 나 : 그래 고마워]



"하...먹자 이제"



분명히 평소 먹던 거랑 같은 거일텐데...


오늘따라 맛이 없다.


커피는 오늘따라 더 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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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아침 안먹으려 했었구만"



항상 늦잠 자서 내가 깨워서 밥먹이는게 일상이었는데, 오늘은 또 일찍 일어났네.


전화 안했으면 또 아침 안먹을뻔했잖아.


사진까지 보내놓고 안먹고 버리진 않겠지 뭐.


이제부터 아침마다 모닝콜을 해드려야겠구만.


시은누나가 7시 직전에 출근하면 나간 직후에 통화하면 되겠다.


...작은누나도 통화 해봐야되나?



[여보세요?]


"백 화씨 휴대폰 맞습니까?"


[너인거 뜨거든? 그리고 네 목소리가 어디 흔한 줄 알아?]


"흐흐흫 그래? 선화 네트워크에서 전화하는거라 내 이름 안 뜰 줄 알았지."


[갑자기 아침부터 전화야? 평소엔 전화 하지도 않는 놈이.]


"아니 뭐 연이 누나 전화하는데 생각나서. 아침은 드셨나?"


[아침이야 먹었지. 내가 언니인줄 알아? 그것보다, 언니 멘탈은 괜찮디? 너 가고나서 좀 힘들어하는 거 같던데]


"뭐...그건 예상했던 거니까. 그래도 아침마다 통화 해주고 그럴거야. 그쪽은 출근 하셨어?"


[뭐 내가 출근이랄게 있나. 내 집에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면 내 사무실이지. 뭐...시은이는 괜찮디?]


"괜찮은 사람이더라. 나한테 손대려는 것도 없고...어젠 나 안방에서 재우고 혼자 거실에서 주무시고"


[그래? 걔가 그럴 애가 아니긴 한데...뭐 친구 동생한테 손댈 정도로 쓰레기는 아니니까.]


"그른가...어...아, 큰누나한테 말할 거 있었는데. 깜빡하고 말 안했다."


[뭔데? 이따가 회의때 언니 봐야되니까 내가 말해줄게.]


"뭐 별건 아니고, 토요일 저녁마다 셋이 밥먹는거, 엊그제까진 가까이 살았으니까 상관없었는데, 이젠...밥 한 끼 먹자고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렇긴해. 출입국 절차 조금 걸리니까.]


"그래서, 그래도 아얘 안보고 살 순 없으니까 한 달에 하루는 백운쪽으로 갈 건데, 식사는 그때 하는거로. 연이 누나한테 좀 전해줘."


[그래 이따가 알려줄게. 오늘은 뭐 하나?]


"그르게...내 업무까지 시은누나가 다 한다하니까 내가 백수가 돼버렸네. 오늘은 여기 근처 좀 둘러보려고. 나한테 전담 수행원 붙여준다해서."


[그래 밖에 돌아다니려면 붙어다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요...오늘도 직장인은 수고하시고"


[시장도 직장인인가? 암튼 부러운놈...열심히 놀아라]


"고럼고럼"



작은누나한테도 아침마다 전화좀 해야겠구만


나 걱정하는 게 눈에 선하다.


뭐...오늘은 방금 말한거처럼 주변 좀 둘러보려 한다.


먼저 먹던 거 다 먹고, 씻고 나서.


가지고 온 외출복이 일단 세 세트뿐이라 아무 거나 들고 욕실로 간다. 


아침이니만큼 꼼꼼히 씻는다.



"아이리스? 나 머리 좀 말려줄 수 있나?"


[네]



샤워 부스 앞에 선베드 같은 것이 있다. 


눕듯이 앉자 벽쪽에서 빗질과 동시에 따뜻한 바람이 나온다,


백운 집에 있던거랑 같은 모델이네.


쓰리스타...아무리 다른 도시거여도 좋은 가전은 좋은 가전이다.


순식간에 마르는 머리.


옷을 입고 나온다.


8시라...8시면 출근 했겠지?



"아이리스, 남진혁 좀 불러줘"


[네, 남진혁 님을 호출합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현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처음 뵙겠습니다 도련님. 남진혁이라고 합니다."


"도련님? 그러지 말고 그냥 진씨라 해요. 내가 어색하니까"


"그래도 될까요? 그렇다면, 네 진씨 뭘 도와드릴까요?"


"여기 그래도 1년은 살아야 하는데 시내 좀 둘러보려고요."


"아직 차 받은 건 없으시죠? 멀리까지는 다음에 나가시고, 오늘은 여기, 선화 메인스퀘어 주변 돌아보시죠. 멀리 나가면 위험해지기도 하니 아마 여기 계실동안은 멀리 나가실 필요 없을 겁니다."


"그래요."


"그럼 가실까요?"



***



집에 다시 들어왔을 땐 세 시. 


종일 진혁씨와 함께 근처를 돌아다녔다. 


놀러 나온 게 아니니까 근처 계열사 건물들 위치랑 주변 식당들을 보고 들어왔다.


점심먹고 하는김에 진혁씨랑 친해지기도 하고.


오늘 본 것들로 보건데, 선화는 확실히 백운보다 기술력이 좋다.


확실히 길거리나 편의 시설이나 그런 것들의 수준이...높다고 해야 할까.


가정에서 사용하는 가구는 다른 기업 제품을 쓸 수는 있지만, 길거리 시설이나 인프라는 그 도시의 기술수준이 곧장 드러나는 부분이니까.


시은누나가 다섯 시에 온다고 했나?


저녁 준비를 좀 해 볼까.


냉장고에 먹을 것 밖에 없어서...좀 채워 놓던지 해야겠다.


식재료 배달도 되지만...메뉴 생각도 할 겸 식료품점이나 좀 가 볼까.


집은 212층, 선화직원 전용 편의시설 센터로 이어지는 통로는 52층이다.


이곳의 식료품점은 동결건조나 합성이 아닌 채소들과 배양육을 구할 수 있어 웬만큼 버는 사람이 아니면 오기 힘들다 했다.


그래도 사람들이 좀 있네.


저녁거리 사러 나온 남편들이겠지.


기본적으로 필요한 채소들, 뭐 양파나 대파, 당근, 감자, 마늘을 집고, 소금, 후추, 식용유에 몇 가지 향신료까지.


나머지 기본적인 식재료들.


빵이나, 버터, 우유 몇 팩, 치킨스톡이나 미원같은 조미료 뭐 그런...


진짜 인스턴트만 먹고 사는지 누나 집엔 물 말곤 아무것도 없었다.



"뭘...해야 할까나?"



내가 처음 해주는 식사니까 특별한 게 하고 싶다.


근데 누나가 뭘 좋아하는지 알던지 해야...


고기에 해산물이면 싫어하는 사람은 없겠지?


소 배양육 적당량에 가리비 네 개.


소스 만드려면 와인도 필요하다.


와인이라...누나 술은 좋아하시려나?


술은 많이 안 먹어봐서 내가 잘 모르는데...일단은 조리용 와인.


술 좋아하시면 마실 술은 집에 몇 병쯤 있겠지.


집에 기본적인 것들 채워 넣어야 해서 짐이 꽤 많아졌다.


집으로 배송을 시키고 올라간다.


이제 네 시 반. 


한 시간 가량 남았나?



"아이리스?"


[네]


"시은누나 스케줄은 언제끝나지?"


[17:20에 선화 본사건물에서의 회의 종료 예정입니다.]


"도착하시기 10분 전에 알려줘"



본사건물이면 끝나고 바로 오시겠네.


우선 씻고, 하루치 남은 실내복으로 갈아입는다.


어제보다 조금 짧은 반바지, 나시 티에 얇은 회색 가디건.


그리고 앞치마.


그럼 바로 시작해야지. 


메뉴는 스테이크에 관자, 거기다 감자샐러드.


감자를 삶고, 고기에 미리 소금 후추를 쳐 놓는다.


그리고는 가리비의 손질.


삶은 감자를 으깨 이것저것 섞고, 스테이크와 관자를 구워 낸다.


큰누나한테 자주 해주던 거라 손에 익은 조리법이다.


고기를 레스팅시키는 동안, 와인소스를 간단히 만들자, 멀리서 누나 차가 오는 게 보인다.



"타이밍 좋게 오시네. 아이리스, 차고 문 좀 미리 열어놔."


[네]



착륙장으로 차가 들어오고, 정장 차림의 누나가 내린다.



"이게 무슨 냄새야?"


"방금 한 거에요. 와서 먹어요."



누나가 가방을 거실 소파에 내려놓고 식탁에 와서 앉는다.



"이야...이런 건 어디서 배운 거야?"


"학교에서 배운 것도 있고...대부분은 큰누나 밥해주면서 독학했죠."


"진짜 셰프급으로 맛있는데? 재료는 장 보고 온거야?"


"그렇죠. 집에 아무것도 없길래 기본적인거랑 다 사왔어요. 근데 혹시 누나는 술 좋아해요?"


"술?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와인이 없구나? 집에 있는 게...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화학 양조 말고 진짜 와인 까봐야겠다. 아이리스? 그거 좀 가져다줘."



소파에 널부러진 누나 가방을 가져가던 가사 옴닉이 누나 서재로 들어가더니 와인 한 병을 꺼내 온다.



"이거 내가 선화건설 사장 달았을 때 어머니한테 받은거야. 요즘 와인은 수입까지 다 화학 합성양조인데, 이런 진짜 와인은 세계에서 몇 군데 안 만든다더라."



누나가 와인 잔 두 개를 가져와 와인을 따라 준다.


와인은 처음 먹어보는데, 이런 고급진 걸로 시작해도 되려나?



"제가 와인은 처음이거든요. 근데 향이 정말 좋네요."


"이런 거 아무때나 먹지 못하니까 많이 먹어."


"고마워요. 근데 오늘은 무슨 일 없었어요?"


"그러고 보니 말할 게 있었지..."



***



아까 현장에 있을 때 연락이 온 게 있다.


원래 오늘이면 왔어야 할 진이 방이 일주일 더 걸린다고.


화물 우선순위가 밀렸다고 한다.


돈 좀 더 주더라도 우선순위 VIP 등록 좀 해 놓을걸.


화물회사를 개인적으로 쓸 일이 없다 보니...


그러니까 진이가 일주일은 더 내 방을 써야 한다는 거다.


그리고 또 하나 더.


내가 진이 대행으로 업무처리를 하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진이와 내가 함께 참여하거나 진이가 직접 있어야 하는 자리가 몇 개 생겼다.



"그러니까...말할 게 두 가지 있는데, 일단...진이 방이 일주일은 더 있어야 온대."


"네? 어쩌다 그런..."


"선화물류 쪽에선 VIP 화물 우선배송을 해주는데, 난 여기를 개인적으론 쓸 일이 없으니까 등록이 안돼있어서."


"그럼 이대로 일주일은 더..."


"그리고, 하나 더 있어. 진이 일까지 내가 대행으로 한다고 했는데, 그...어쩔 수 없이 회의 몇 개는 나가 줘야 할 것 같아."


"어...회의는 하자면 하겠는데...그 방은 어떻게 해야하져? 내 짐이 다 거기있는데..."


"그...러게? 다른 건 상관없고...옷은 어떡할래? 내 옷이라도?"


"그럴까요? 흐흐...누나 옷이면 상관업는데..."



진이 얼굴이 빨개지나 싶더니 실실 웃으면서 얘기한다.


벌써 취한건가? 



"진아, 너 주량이 얼마나 돼?"


"나 아직 안취했는데..."


"아니아니, 취했다는 게 아니라,"


"아 더워어.."



눈이 풀린 진이가 걸치고 있던 가디건을 벗는다.


그 아래엔 나시티...이런 자극은 조금 무리인데.



"큭, 케흑! 콜록, 콜록"



사레가 들렸다.



"괜찮아 누나?"


"자, 잠깐, 가까이 오지 맛"



진이는 내 말이 안 들리는 건지 티슈를 뽑아 내 소매를 닦아 준다.


근데 진이 옷이...너무 자극적인데...


흘러내린 나시에 한 쪽 어깨가 드러난다.


진이가 앞으로 몸을 숙이자, 쳐진 목 구멍으로 진이 몸이...


여리여리하고 흰 몸에 예쁜 일자복근과...핑크빛...



꿀꺽-


"변태, 어딜 그렇게 빤히 보는 거야?"



진이가 고개를 홱 들고 나랑 눈을 마주친다.


삐진 표정.



"아, 아니, 그게..."


"흐흐...이런 거 좋아하는구나?"


"잠, 잠깐만 기다려!"



화장실로 뛰어간다.


얼굴에 찬물을 끼얹고 거울을 본다.


얼굴이 붉다.


진짜 와인은 도수가 더 높은가...원래 와인 세 잔으로는 안 취하는데...


진이가 자꾸 눈에 밟힌다. 


만난 지 사흘밖에 안 됐는데.


자꾸 저런 식으로 들이대면 안 되지...


친구 동생인데다 나한테 반강제적으로 장가를 오는 애인데.


게다가 이제 갓 성인이 되었고.


그런 남자애가 들이댄다고 손대는 건 가스라이팅으로 남자애들 손대는 쓰레기들이나 다를 게 없잖아.


동거 자체도 내가 제안한 거고...지금 심리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게 나밖에 없는 거라 저런 거겠지.


정신차리자, 선시은...


다시 거실쪽으로 나간다.



"갠차나 누나?"


"어, 어어..."



진이가 어느 새 식기들을 정리하고 나에게 엉겨붙는다.



"다 먹었으면 이제 자야지? 진이 빨리 자야할 거 같은데."


"안치했는데...쫌만 더 마시면 안대?"


"안돼. 빨리 씻고 잘준비해야지?"


"우웅..."



진이가 씻으러 들어간다. 


가져온 옷은 다 입은 거일 테니 방에서 내 티셔츠 한 벌을 꺼내 화장실 문 앞에 둔다.


저 나시부터 어떻게 해야지...남자 하나 만나 본 적 없는 나에겐 너무 자극적이다.


술까지 취했는데, 자제력이 떨어질 것만 같다.



"후우..."


"아이씨...내일 출근해야 하는데...와인이 이렇게 셀 줄이야.."


"아이리스, 숙취해소제 두 개만."


[네]



작은 주사기 두 개. 


이걸 자기 전에 꽃으면 다음 날 숙취에 좋다.


하나는 바로 쓰고, 하나는 진이 나오면 해 줘야지.


내일은 평소처럼 출근, 내일모레는 진이까지 필요한 회의가 하나 있다.


내일은 술 먹이지 말아야겠다.


진이가 씻고 나와 멍하니 서 있다. 



"진? 잠깐 이리 와봐."



내 큰 옷을 진이가 입자 원피스를 입은 것처럼 하늘거린다.


헤실거리며 내 옆에 서서 날 올려다본다.



"이거, 숙취해소제인데, 잠깐만 왼팔 좀 줘 봐."



진이 팔에 주사를 꽃자 움찔한다.


다시 내 얼굴을 올려다보더니 웃음짓는다.



"누나 씻고 와. 흐흫, 할 말 있으니까."


"할 말?"



일단 씻고 와야겠다.



"아이리스, 내 실내복좀 갖다줘."



할 말이라...뭘까?


뭐 해보고 싶은거라던가...아니면 아까 말한 회의 관련 내용이라거나...


딱히 진이가 할 말이 없긴 한데...


얼른 씻고 나가야지.



내 방쪽으로 나가니 진이가 침대에 앉아 있다.



"이리 와 봐 누나"


"할 말이라니, 뭐야?"


"누나. 소파에서 자면 불편하지 아나?"


"응? 침대보다야 뭐...그렇지?"


"그럼...나랑 같이 자자"


"응...응? 같이 자자고?"


"뭐...어차피 일주일은 이대로 살아야대기도 하구...나가서 일하는 사람이 불편하면 안대지...그리고 어치피 결혼할꺼자나?"


"아, 안돼...그것만큼은..."


"흐응...누나는 나 시러?"


"그, 그건 아닌데..."


"그럼 같이 자는거다?"


"잠깐만 잠깐만, 같이 자는 건 좀...히익?!"



진이가 갑자기 날 껴안고 침대에 눕힌다.



"아, 안돼, 진아! 아무한테나 이렇게..."


"으응...누나가 아무나야?"


"이거...놔야..."


"안돼 여기서 자."


"하아...."



진이가 온몸으로 내 오른팔을 껴안고 있다.


힘으로 빼고 싶지만 그러면 진이가 다칠 지도.


진짜 여기서 자야 하나...


진이가 자꾸 몸을 비빈다.


끈나시 위에 내 큰 흰티를 입고 있으니 너무...야해...


이걸 무시해야....무시해야 한다.


평정심을...


그냥 빨리 잠드는 게 최선이지. 


어차피 술도 마신 김에 그냥 자버려야...


그냥 빨리 자는 게...


눈을 감자 졸음이 몰려온다.



"이씨...줘도 못먹..."



진이가 뭐라고 하는데...


잘 안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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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취해소제의 성분 때문인지 새벽에 깨버렸다.


누나는 불편한 표정으로 내 옆에서 자고 있다.


생각보다 강적이다.


선시은...술 취한 척 슬쩍 선을 넘어보려 했는데...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넘어온다고?


아무리 내가 여자경험이 없어도 이러면 남자로써의 자존감이...


분명히 날 의식하고는 있는데 말이지...


어제 저녁 와인을 꺼내 올 땐 옳다구나 했다.


맨정신으로 갑자기 들이대면 의심할 수 있지만, 술에 취한 상태라면 괜찮으니까.


그래서 술 취한 척 말도 놓고, 슬쩍슬쩍 보여주고...


내 몸을 훔쳐보다 당황하기까지 했다.


뭘 어떻게 더 해야 완전히 넘어오려나...


하지만 이대로 관계를 요구한다면 오히려 역효과일 것이다.


충격에 정신차리고 진지하게 거절할지도


나도 아직은...실전은 망설여지기도 하고...


일단 일주일동안 내 방과 짐이 없는데, 그러려면 오늘 내 옷부터 사야 한다.


이왕 술 먹고 이렇게까지 한 거 좀 과감한 것들을 사 봐야겠다.


그리고...어렵게 잡은 동침의 기회.


오늘 밤에도, 그 후에도 같이 잘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일주일 후 내 방이 오더라도 멀어지지 않을 수 있겠지.


그리고 하나 더. 


그냥 추측이긴 한데, 누나는 남자가 처음인 것 같다.


어제 정도로 반응하는 건 남자가 익숙한 여자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처음엔 나이도 나이고, 선화건설 사장이라는 위치까지 생각해 남자 경험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우리 큰누나같이 남자라곤 모르고 살아왔던 것일 수도?


나에겐 오히려 좋다.



일찍 깬 김에 누나 출근하기 전에 아침이라도 해야겠다.


지금 장을 보러 갈 순 없으니 어제 산 거로 할 수 있는거...


흠...


프렌치 어니언 수프.


양파랑 버터, 간 할 소금 후추만 있으면 된다.


빵도 어제 샀으니 이거면 될 것 같다.


양파를 잘게 썰고 팬에 버터와 함께 30~40분 볶는다.


어느 정도 물이 나오고 양파가 갈색으로 변하면, 치킨스톡과 물을 넣는다.


여기에 곁들일 바게트를 썰어 토스터에 넣는다.


빵이 다 구워지자 6시.


식탁에 잘 세팅하고 누나를 깨우러 가야지.



"누나"


"으으응....."



누나 귀에 대고 속삭이자 간지럽다는 듯 고개를 돌린다.



"누나, 6시에요. 일어나셔야죠."



지금은 일단 존댓말.


다시 술을 먹거나 계기가 생기면 말을 완전히 놓아버릴 생각이다.



"헉!"



누나가 벌떡 일어난다.


날 보더니 눈을 피하려 한다.



"버, 벌써 일어났어? 어제는..."


"어제 일은...와인 마시기 시작한 뒤부턴 기억이 잘 안 나네요."



일단은 술 약한 척.


이러는 편이 누나를 공략하기엔 더 쉬울 테니까.



"아무튼, 나와서 식사하세요."


"어? 아침부터 무슨..."


"아침 해드리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인스턴트 드실 생각 마시고."


"그, 그래 일단."



누나가 거실로 나와 같이 식사를 한다.


맛있다고 칭찬 일색.


내일은 내가 필요한 회의가 있다고 했다.


어제 일은...내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니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진아, 너 혹시 정장 지금 있니?"


"정장이요? 정장이면...제 방에 있을텐데."


"그럼 지금은 없고...내일 회의니까...이따가 같이 맞추러가자. 오늘은 본사회의가 일찍 잡혀있으니까. 한 3시면 끝날거라."


"그럼 기다리고 있을게요."



아무리 모든 게 배송가능하지만, 이런 정장은 직접 가서 맞추는 게 좋으니까.


누나랑 약속을 잡고, 누나가 출근할 시간이다.



"잘 갔다와요~"


"그래, 이따봐"



7시, 누나를 보내고, 큰누나 작은누나한테 전화.


큰누나는 오늘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 것 같았고, 작은누나는 뭐 별 일 없다고 했다.


큰누나가 걱정이긴 한데...어차피 적응해야 할 일이니까...



오늘은 쇼핑을 해야 한다.


일주일간 내 짐 없이 살아야 하다 보니 이것저것 필요한 게 있다.


옷이라던가, 외출복이나...옷 말곤 뭐가 없네.



"으으윽.....크하아아아"



기지개를 편다.


몸이 뭔가 피로하네.


숙취해소제를 복용했다 해도 이건 어쩔 수 없나?


피곤한 몸을 소파에 뉘인다.


그리고 곧장 인터넷에 접속해 옷을 찾아야지.


이미 반바지에 나시티까지 진도를 나갔다.


이거보다 더 나가려면...돌핀팬츠라던가...크롭티라던가...


아니면 아예 누나 사이즈 정도로 큰 옷을 입어버릴까?


어차피 누나 아니면 볼 사람도 없는데...속이 비칠...정도로 얇은 옷이라거나...


그리고 여자라면 누구나 갖는다는 로망.


남자가 치마를 입어주는 것.


남자 입장에서는 아래가 허전해서 치마는 거부감이 있는데, 여자 입장에서는 치마만큼 꼴리는 게 없다고 한다.


실내용 치마도 반바지 정도 길이로 몇 장.


어차피 실내용이니 짧은 건 딱히 상관없을거라 본다.


그리고...외출복. 


공적 자리에선 이따가 맞추러 갈 정장을 입어야겠지만, 진혁씨랑 외출할때까지 정장을 입을 순 없다.


내가 패션에 눈이 있는 건 아닌데...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


음...진혁씨?


아무래도 나보다 다섯 살은 많은 만큼 사회생활도 더 해 봤을 거고...대학도 다녀봤고.



"아이리스, 진혁씨좀 불러줘."


[네, 남 진혁 님을 호출합니다.]



진혁씨가 올라온다. 



"오셨어요? 오늘은 어디 나갈 건 아니고 뭐 물어볼 게 있어서."


"뭔가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거라면."


"별 건 아니고...옷을 사려 하는데 좀 봐주실 수 있을까 해서요."


"그 정도면 제가 당연히 도와드릴 수 있죠. 그러면 어떤 옷을?"


"그냥 일상적인 외출복이요. 지금까지 입어봤던 건 다 교복, 정장, 아니면 평범한 티셔츠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이후 몇 시간 동안 둘이서 옷을 봤다.


홀로그램으로 옷 시착도 해 볼 수 있어서 이것 저것 입어보고, 진혁씨랑 얘기도 하면서 적당한 옷들을 골라 주문했다.


점심때가 다 되어서야 쇼핑이 끝나고, 점심 간단히 해서 둘이 먹은 후에, 진혁씨를 내려보냈다.


하의는 여름용 반바지 몇 개와 미디(무릎 아래까지 오는 길이) 스커트, 상의로는 박스티와 맨투맨 몇 장, 그리고 신발도 단화랑 구두 몇 켤례씩.


그리고 혹시 모르는 시은누나와의 데이트를 위한 '남성 데이트복장' 에 많이 나오는 옷들.


진혁씨는 내 체형이랑 스타일, 색까지 고려해서 상, 하의 조합까지 짜 주었다.


진혁씨랑 좀 더 친해진 느낌이랄까?


내일부턴 사무업무까지 맡겨야 하는데, 좋은 발판이다.


지금은 1시 반정도.


진혁씨가 내려가자 주문했던 옷들이 배송된다.


곧 있으면 누나가 날 데리러 온다.


그냥 정장 맞추러 가는 거라곤 해도 단둘이서 하는 첫 외출이다.


데이트...라고도 할 수 있겠지.


양복점 일정이 끝나면 아마 5~6시, 저녁 먹을 시간이니까.


아마 누나는 그것까지 계획에 있을 것이다.


일단은 데이트 복장을 골라 보자.


방금 배송 온 것들 중에...오프숄더 흰색 니트


하의는...바로 치마로 갈까? 


첫 데이트이니만큼 특별하게 하고 싶다.


무릎정도 길이의 청치마나....그냥 스커트.


청치마가 낫겠지?


이 정도면 누나가 좋아해줄 것 같다.


분명 처음부터 과감한 옷을 입으면 당장 갈아입고 오라고 할 게 뻔하다.


그러니 태클당하지 않을 정도의 옷으로 골랐다.


좀만 시간좀 때우다...누나 오면 외출해야지.



***



어제처럼 아침엔 건설예정지로 출근했다.


시위는 사그라들 기미는 없고, 아직은 무력충돌은 없으나 철거는 진척이 없다.


임시 사무실에서 몇 시간 앉아서 다른 지역 건설 업무를 보다 보면 현타가 온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돌발상황엔 내 직접재가가 있어야 한다곤 하지만...


하...


집 바로 아래층에 내 사무실이 있는데 이게 뭐하는건지...


그래도 오늘은 오전업무 끝나면 본사로 가서...선백건설 합병 회의 참여한 다음에...진이랑 외출.


그래 힘든 날에 이런 이벤트라도 있어야지.



***



회의가 끝났다.


선백그룹 합병은 아직 한참 남았지만, 선백 건설로의 합병은 많이 진척되었다.


오늘은 현재 선화건설과 백운건설이 수주하고 있는 프로젝트들 관련 회의.


아마 몇 번 정도 더 이 주제로 회의를 해야 할 것 같다.


선백건설로의 합병의 주체가 어떻게 되는지에 따라 현재 수주 프로젝트의 지분과 시공현황이 달라지기 때문에 의견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뭐...회의도 끝났는데 이 얘기를 더 할 건 아니고, 이제 진이 데리러 가야지.



"아이리스, 진이한테 이제 들어간다고 전해줘"


[네, 백 진 님에게 메시지를 전송합니다.]



본사건물에서 집까지는 걸어도 될 거리지만 차에 올라탄다.


차는 주차해놓고 진이랑은 걸어나갈 생각이다.


양복점이 그리 멀진 않아서.


그리고 미리 예약해 둔 저녁 식당도 근처이기도 하고.


차를 대고 차고문을 열자 소파에 앉은 진이의 뒷모습이 보인다.



"오셨어요?"



제대로 된 외출복.


진이가 이런 건 처음 본다.


오, 오프숄더는 좀 과감한데...



"옷, 옷 산거야? 예쁘네. 근데 내 돈 써도 된다니까 왜."


"누나 놀래켜줄려고요. 잘 어울리죠?"


"근데...오프숄더는 좀...다른 옷은 없어?"


"왜요? 너무 노출이 심해서? 그렇게 안 봤는데 의외로 유교적이시네? 흐흫"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아무튼! 그건 너무 노출이 심해. 어디 연회용 복장이나 그런 것도 아니고. 다른 옷 없어? 좀 보여줘봐."



진이가 옷들을 보여준다.


다 새거...오늘 바로 산 건가? 


치마가 여러 개네.


남자들은 치마 입기 싫어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진이는 아닌가?



"진이는 치마 입는거 괜찮아? 남자들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저는 아무래도 좋아요.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가 치마 입어주는 거 좋아한다면서요? 누나가 좋아해줄 거라 생각해서."


"나, 나야 진이가 편한 게 좋지."


"거짓말 진짜 못하시네. 헤헤, 사실은 좋죠? 제가 치마 입어줘서."


"그, 그래..."


"그럼 상의는 뭐 입을까요?"


"음...청치마에는...이거, 흰색 블라우스가 괜찮을 거 같은데, 안에는 어두운 색 반팔 정도? 여기 있네."


"좋아요! 잠깐만 기다려요. 입고 올 테니까."



진이가 옷을 들고 내 방으로 들어간다.


치마...어떻게 저렇게 여자 마음을 잘 알지...


그리고 나 거짓말할 때 티가 많이 나나? 


어떻게 저렇게 바로바로 알아채는 거지?



"어때요? 난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딱 좋다. 옷 잘 샀어."


"이제 갈까요?"



진이와 함께 1층까지 내려간다.


선화 메인스퀘어 광장 쪽으로 나와 5분 정도만 걸으면 명품 거리가 나온다.


그 중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감춰진 양복점.


CuO테일러샵.


선화가 제대로 자리를 잡은 후로부터 있던 선화에서 가장 오래된 의상점이다.


내 양복이야 다른 곳에서 맞췄지만, 남성 양복은 여기가 최고라 해서 와 봤다.



"어서 오십시오"



남성 양복으로 유명한 것 치곤 주인이 여자네.



"네, 이쪽 정장 몇 벌 맞추려고요."


"어떤 정장을 맞추려고 하시나요?"


"뭐...사무회의용 한두 벌이랑...연회용으로 두 벌 더."


"남성 정장이라면 아무래도 형식의 제한이 좀 더 적은 편이니, 우선 수치부터 재신 다음에, 거기 맞춰서 스타일 골라보도록 하실게요."


"네 알겠습니다."


"그...혹시 두 분 부부사이이실까요?"


"아, 아니요! 아, 아직이죠. 결혼 할 사이에요."


"저희 CuO에서는 전통을 중시하여 레이저 스캐너가 아닌 줄자를 사용해 치수를 재는데, 제가 직접 재 드리는 게 불편하시다면, 아내 분께서 직접 하시겠어요?"



지, 진이 몸에 손 대는 건 어색한데...


그렇다고 해도 다른 여자 손에 맏길 순 없으니까...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넵, 그렇다면 여기 종이와 줄자 있습니다. 치수를 재셔서 종이에 그려진 표를 채워 주시면 되구요, 이쪽에 있는 방 사용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진아? 내가 재 줘야 하니까 이리 와봐."


"네, 넷!"



두 평 남짓 되는 작은 방. 


작은 스툴 하나와 대형 거울이 있다.



"여기 표를 채워야 하나 본데, 어디보자..."



머리둘레, 목 둘레, 어깨넓이, 어깨 둘레, 가슴둘레, 복부둘레, 골반둘레, 위팔, 아래팔, 손목둘레, 허리-무릎뼈 길이, 다리길이, 허벅지, 종아리, 발목 둘레, 발 사이즈, 등등 수십 가지 항목들.


남자는 원래 이렇게 자세히 재나? 


나 양복 맞출 땐 안 이랬는데 말이지...


게다가 이건, 옷 입고는 못 재는 부위까지...이래서 결혼했냐고 물어본 거였구나.



"진아? 일단...그...바로 잴 수 있는 것 부터 재자."


"그럴까요?"



우선 옷을 입고 잴 수 있는 것들 부터.


이런 것까지 옷 입고 할 필욘 없으니까.



"한 번 뒤 돌아볼래?"


"다시 앞으로."


"허리 한 번 숙여봐."



그리고 남은 게...옷을 벗고 재야 하는 부위들.



"그...진아? 남은 게 옷을...벗고 재야 하는 부위거든? 그러니까 잠깐...그...옷좀..."


"다, 다 벗을까요?"


"아, 아니 당연히 속옷은 입어야지...그치..."


"...아무래도 그렇죠?"



진이가 옷을 벗으려 한다.


꿀꺽


먼저 청치마의 앞 단추를 풀고...



"그...누나?"


"어, 어?"


"그렇게 빤히 쳐다보시면 부끄러운데..."


"앗, 아, 그, 그게, 미안!"



이게 무슨 추태야.


대놓고 옷 벗는 걸 보려 하다니.


벽을 본 채 서서 


사라락


천 스치는 소리만 듣고 있자니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다.



"다...됐어요. 뒤 도셔도 돼요."



뒤를 돌자, 진이가...흰색 나시에 흰 드로즈만 입고 서 있다.


진이 맨몸까지 보긴 했는데, 그땐 술 취한 채였고.


또 이렇게 부끄러운 듯 가만히 서 있으니 자꾸만 더 눈길이 간다.



"너, 너무 쳐다보지 말고 빨리 치수부터 재 줘요..."


"그, 그래 미안..."



이곳저곳 줄자로 치수를 재는데, 자꾸만 내 손이 진이 맨살에 닿는다.



"흣, 흐읏,"



내 손이 닿을 때 마다 들릴 듯 말 듯한 소리로 자꾸만 신음소리를 낸다.


진이 얼굴이 터질 듯 빨갛다.


거울을 보니 나도.


상체는 이제 다 쟀고...이제 하체를...



"하읏?!!"



진이가 비명을 지르는 듯 하더니 입을 틀어막는다.



"미, 미안해, 아팠어?"


"아니...그게 아니라....그...허벅지 안쪽은, 흣, 예민해서...자꾸 만지면..."



진이 드로즈가 뭔가 부풀어 오른 듯 하다.


이거...남자의 '그것' 맞지?



"그, 그, 그건...이건 생리현상이니까! 제가 맘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이런 거로 흥분한다거나 그런, 그런 남자는 아니란 말이에요..."


"으, 으응...."



한순간에 어색해진 방 안의 분위기.


힘겹게 나머지 치수를 재고 표를 다 채웠다.



"...다 잰 거에요?"


"으응..."



떨어져서 다시 보니 너무...음란하다고 해야 하나...


부끄럽다는 듯 나시 위로 가슴을 가리는 왼팔.


그 왼팔 사이로 보이는 나시 위로 튀어나온 유두.


튀어나온 드로즈를 필사적으로 가리려고 나시티를 끌어내리는 오른손.


그럼에도...진이의 그것의 윤곽이 선명하다.



"그, 그만 보고 뒤 돌아요! 옷 입을 거니까..."



평정심...평정심...


눈을 질끈 감아도 방금 본 광경이 눈에서 떠나질 않는다.



"그...이제 나가죠..."



***



눈을 못 마주치겠다.


어제는 술기운도 조금 돌고, 게다가 내가 주도적으로 들이대는 상황이어서 괜찮았는데...


방금처럼 누나 손에 이끌려서 여기저기 만져지는 건...너무 부끄러워.


허벅지에 손이 닿았을 땐...나도 내가 그렇게 예민한 줄 몰랐다.


나중에 언젠가라도 누나랑 관계...를 하긴 해야 할 텐데...


이 정도로 예민한 건 위험하지 않나?



탈의실 문을 열고 나가자 주인이 여러 옷 샘플들을 늘어놓았다.



"치수 잰 건 저 주시면 되고, 캐주얼 하나, 정복으로 하나, 그리고 연회용으로 둘 고르시면 되세요. 아니면 커스텀으로 주시면 해 드릴수도 있습니다."


"진아...그...이 중에서 골라봐."



그렇게 말해도 뭐...내가 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제가 패션에 눈이 있는것도 아니고...누나 남편으로써 입을 거니까 누나 맘에 드는거로 골라줘요."


"그러면...붉은빛 검은색으로 정복 하나랑...음...캐주얼은 블레이저에 셔츠. 같은 색으로. 연회복은 한복스타일 하나랑 드레스 하나로 하자. 색은 뭐가좋아?"


"색이요? 색깔은...드레스는 빨강이 낫지 않을까요? 그리고...한복이면 남색쪽으로."



한복은 생각 못 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중성적이고 예쁘다.


드레스는 입어 본 적 없는데...괜찮겠지?


누나가 점장을 부른다.



"저희...이거랑 이거, 이거로 해 주시고요, 이거 드레스는 와인색으로, 그리고 한복은 살짝 연한 군청으로 가능하나요?"


"네 당연하죠~3세트 이상 구매하셔서, 저희 전뇌 연동 옵션까지 넣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가격을 얼마나?"


"캐주얼 블레이저 하신 게 500, 포멀 정복 상하로 1,200, 와인 드레스가 1,300, 그리고 군청 남성한복 1,000으로 4,000 되십니다."


"결제는...선 시은 앞으로 달아놓으시고요, 언제쯤 완성되죠?"


"세 시간이면 됩니다. 배송해드릴까요?"


"그러면 여기 주소로. 내일은 입어볼 수 있는 거죠?"


"오늘 저녁에라도 가능합니다."


"넵 알겠습니다. 진아, 가자."



말없이 따라나선다.


누나의 손길 때문에 딱딱해진 내 물건은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 주변에 들키지 않으려면 허리를 뒤로 빼고 걸어야...



"진아, 어디 불편한 데 있어? 왜 걷는 모습이...?"


"그, 그게..."


"어디 다치기라도?"


"아, 아뇨...아까...누, 누나가 만진 거 때문에..."


"내가 만진...어?! 어... 미, 미안..."



누나가 뒤늦게 눈치챘는지 고개를 휙 돌린다.



"그...내 겉옷이라도 허리에 두를래?"


"아, 아뇨...치마라서 괜찮을 거 같아요오..."


"그럼...조금만 걸으면 저녁 예약한 곳 있는데, 얼른 가자."


"네에..."



얼굴이 뜨거워.


고개를 못 들겠어.


누나 손이 시야에 들어올 때 마다...아까 누나 손길이 생각나서...


상냥하고...부드럽고...그런데도 줄자로 조일 때의 적당한 압박감이...



"으읏..."



이, 이런 거 분명 정상적이지 않은데...


어제 아침 봐 버린 누나의 맨몸이 다시 떠오르려 한다.



시간 감각이 사라진 채 누나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예약장소에 도착했다.


광장이 한눈에 보이는 5층 창가 자리.


근사한 한식 코스요리 집이다.


음식이 나오고 누나가 이것저것 설명을 해 주는데...


음식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식사에 집중이 안 돼.


누나랑...오늘 해버릴까?


아니야...아냐 오늘은 좀 일러...


며칠 더 기다린 다음에 해야...나도 참아야지...



"진아, 진아? 괜찮아?"


"괘, 괜찮아요. 잠깐 다른 생각 하느라. 저 그, 그거 한잔만 마시면 안돼요?"



누나 앞에 놓인 청주 병을 가리킨다.



"너, 괜찮겠어? 어젠 와인 두 잔에 취했잖아. 이거 도수 꽤 높은데."


"한 잔만...한 잔이면 괜찮잖아요."


"그, 그럼 한 잔만이다? 그리고 다 마시려고 무리하진 말고. 이런 거 먹어서 좋을 거 없으니까."



누나가 한 잔 따라준다.


독한 향, 그런데 나쁘지 않다.


식사가 끝날때 쯤 되니 잔이 다 비었다.



"진아? 누나 잠깐만 화장실좀 다녀올게."


"네네 다녀와요."



한...잔만 더 마실까.


조금만 더 부어 한 번에 들이킨다.



"아으...써"



한 번에는 무리였나.


살짝 취기가 돌면서 기분이 좋다.



"진아, 다 먹었으면 갈까?"


"이제 가요."



집까지는 걸어서 10분. 


옆에서 말없이 걷다가...누나 손을 잡는다.



"흣?! 지, 진아?"


"손 정돈 잡고 걷자구요. 결혼할 사인데."


"크으읏..."



누나 손은 나보다 두 마디나 길고, 부드럽고...힘이 세다.


긴장했는지 꽉 쥔 손이 살짝 아플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그것마저 귀엽다...고 해야 할까.


수 목 금 토...일요일은 누나도 쉬는 날이라 했으니...토요일 밤인가.


사흘만 참자...그러고선 토요일 밤에는 누나랑...그...섹스를...하고...나 없으면 안되게 만들어주겠어.


아...다시 서버렸다...


치마인데다 어느 새 엘리베이터 안이라서 다행이다.


띵-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어서 오십시오]



아이리스의 음성이 반겨준다.



"누나 먼저 씻어요. 전 잠깐...할 게 있어서."


"그럴까? 아이리스, 옷 좀 화장실로 갖다줘."


[네]



누나는 들어갔고...이제 갈아입을 옷을 골라 봐야겠지.


점차적으로 노출을 늘려가자는 계획은 어제 술 먹고 들이댄 이후로 접기로 했고...


일단 상의는 나시티보다 노출을 늘리기엔...크롭티인데 그건 아직 내가 거부감이 있고...


바지는 곧장 돌핀으로 갈까.


일단 이렇게 하고...오늘도 같이 자자고 꼬신 다음에, 안된다고 하면...술 취한 척 해야겠다.



***



쏴아-


얼굴에 찬물이 쏟아진다.


안괜찮아 안괜찮아 안괜찮다고


저, 저런 귀여운 남자애가 이렇게까지 들이대는데...참기가 너무 힘들다.


이러다 진짜로 선을 넘어버릴거 같은데


하아...


이걸 뭐라 그래야 되지...


사이 좋은 남동생이 성적으로 자꾸 들이대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걸 뭔지 모를 책임감과, 보호욕과, 나에게 들이댈 때 마다 느껴지는 죄책감으로 억누르는 듯 하다.


찬물을 맞으며 서 있으니 머리가 좀 식는다.



"후우..."



몸을 대강 말리고, 거실로 간다.



"진아? 나 다 씻었어. 이제 들어가"


"네에~"



진이 말끝이 늘어지는데...설마 또 취했나?


으음...



"아이리스, 숙취해소제 하나만 더 갖다줘."


[네]



내일은 진이가 아침에 나와 같이 출근해야 한다.


최대한 진이가 얼굴 비춰야 할 상황 없도록 하려 그랬는데,


{선백신도시 백운대표}라는 직함이 자꾸 방해하더라.


어쩔 수 없지...어차피 진이가 대답해야 할 건 거의 없을 테고, 있더라도 내가 대신 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다음 주 토요일에 어머니, 선백야 회장님이 선백 합병기념 연회를 여신단다.


거기에도 당연히 진이와 함께 얼굴을 비춰야 할 테고.


스케줄 정리를 하다 보니 진이가 나온다.


그런데...또 옷이 짧아졌어.


돌핀팬츠는 어디서 배워온거야.



"으윽..."


"히히..."



또 실실 웃는거 보니...취했네.



"...진아 이리와봐."



진이 팔에 숙취해소제를 꽂아 준다.



"으윽..."



아픈지 팔을 문지르는 진이.



"내일은 아침에 나랑 같이 나가야 하니까. 그러니까 아침에 번거롭게 밥 하지 말고."


"네에...흐흐...그런데 무슨 회의길래 내가 필요한 거에여?"


"백운건설이랑 선화건설 합병 마무리 작업이야. 사실상 회의에서 결정할 건 별 거 없고, 회의 끝나고 있는 기자회견이 메인이지."


"흐음..."


"그리고...다음 주 토요일에 있지? 우리 어머니가 선백 합병 결정기념으로 연회를 개최하신다 하셔서."


"장모님이요?"



크흠


장모님이라니...장모님이 맞긴 한데...



"크음, 음, 으흠. 그래 선백야 대표님이. 그때 우리 둘이 같이 참석해야 돼."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그러니까....금요일에 진이 네가 참여해야 할 회의가 하나 있는데...내가 같이 있지를 못해."


"에? 나 혼자서여?"


"어...그렇지. 사실 회의라기엔 1:1로 보는 거라 미팅이지, 일단 상대는 광룡그룹. 혹시 아나?"


"어...만주 국경 3기업 중 하나였져...? 근데 거기랑 저희가 왜..."


"보니까 백운건설이 그쪽 군수공장 건설중이더라고. 그걸 선백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협의할 게 있어서."


"저...는 일 돌아가는 상황이라던가...그런 거 하나도 모르는데에.."


"그래서 말하는거야. 너 전뇌수술은 되어 있을 거 아냐?"


"네에"


"내가 금요일 너 회의시간에 시간이 비거든? 그래서....혹시 인격교환 해 본적 있니?"


"네? 그게 무슨..."


"그러니까, 내 전뇌에 전용 칩을 꽂으면 일시적으로 인격을 옮길 수 있는데, 그걸 진이한테 삽입하면, 한 컴퓨터에 사용자가 두 명인 그런 상황이 되는거야."


"으음..."


"거기서 나한테 신체 관리자 권한만 넘겨주면 내가 대신 회의할 수 있는 거지."


"잘은 이해가 안되는데..."



아 맞다, 진이 취했었지...너무 복잡한 이야기를 한 건가.



"그럼 오늘은 이만 자고, 내일 다시 이야기하자."



진이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곤 하품을 하더니, 내 손목을 잡아끈다.



"어? 아니야 진아 난 여기서 잘게."


"응? 어제도 같이 잤잖아요. 오늘은 왜..."


"어, 어제는 네가 놔주질 않아서..."


"나랑 같이 자기 싫은거야...?"



진이 눈에 눈물이 차오른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데...


으으윽



"아, 아니야! 진이가 싫은 게 아니라 내, 내가....아니다...자러 가자.."



내 방으로 향해 침대에 눕는다.


항상 자던 방인데...진이가 옆에 누워서 내 팔을 껴안고 있으니 다른 집에 와 있는 듯 어색하다.


얼굴이 빨개진 진이.


그리고 옆으로 누워서 흘러내린 나시티, 그 속으로 보이는....


눈을 질끈 감는다.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반사적으로 진이를 탐닉하려 하는 이 눈이 싫다.


이런 생각이 자꾸 나는 이 머리가 싫다.


눈을 감은지 얼마나 지났을까


진이의 숨소리가 규칙적으로 변한다.


진이 생각에 잠이 오질 않는다.


진이가 날 유혹하려는 건 맞는 것 같은데...내가 여기서 손을 대 버리는 건...


진이 제정신일 때 진지하게 이야길 해봐야겠어.


어느새 시간은 새벽 1시.


무방비한 옷차림의 진이가 자꾸만 신경쓰인다.


세 시간째 누워만 있는데...


이래선 밤을 새버리겠어.



"아이리스, 수면유도제 좀 갖다줘. 내일 6시에 깨워주고."



아이리스에게 속삭이자 침대 옆 서랍에서 알약 하나와 물컵이 튀어나온다.


이거라도 먹어야 잘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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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전 2차 한국전쟁과 그로 인해 촉발된 제 3차 세계대전으로 한반도는 황폐화되었다.


그 사막과도 같은 황무지 위에 세워진 수십 개의 기업도시국가들은 한반도 연방이란 이름 아래 묶여 있다.


그러나 연방은 그저 타 국가들이 영토를 탐내는 걸 막기 위한 것일 뿐, 도시국가끼리는 수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도시국가들 간 무력과 경제력은 비례하는데, 


현재 한반도 연방 내 권력 1순위는 폐허가 된 서울에서 한강을 기반으로 일어선 광화그룹


2순위는 한때 전자기술로 세계를 재패하고, 그 기술력으로 군사업을 일궈낸 삼진그룹


3순위는 압록강에서 만주국과 대치하며 무력을 기른 거대 군사기업 광룡


그리고 4순위가 선백야의 선화그룹이다.


그 아래로 해운, 한국, 탐라, 조선, 대록, 현재, 감화, 원강, 화성, 덕진.


우리의 백운은 15위에 그친다.


그러나 이번 합병으로 선백그룹이 탄생하고, 안정화에 성공만 한다면 단숨에 2위 자리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1위 기업 광화가 아니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전후복구를 위해 기업들에 손을 벌리고, 결국 기업들에 시/군 단위로 땅을 팔기 시작하자마자, 광화그룹은 전쟁으로 빈집이 된 서울, 그 한강 유역을 차지했다.


한강의 막대한 물자수송력을 이용한 무역으로 한반도 1위에 등극한 광화.


이어 두만강에 웬만한 도시 규모의 위성도시를 설립, [광룡, 원강, 광화]라는 국경 3국의 군사연맹을 주도하고, 군사무력과 경제력 모두에서 압도적인 1위를 달려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흘린 피는 한강을 물들이기에 충분했다.


그 광화의 대표, 광헌경(31)은 국경 3국의 밀회를 소집한다.


원강의 대표, 원해령(28). 광룡의 대표, 용운(34)



"...만주침공 안건은 이 정도면 되고...그....이번에 선화랑 백운 합병 소식은 다들 들었을거야. 그렇지?"


"예, 뭐...저번 주 일요일인가에 보고받았슴다."


"..."



광헌경을 언니 보듯 하는 사람이 원해령,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이는 게 용운.



"난 백운은 애초에 관심도 없었는데, 선화가 기어올라오는 게 그냥 마음에 안 든단 말이지. 선백야 이 노친네가..."


"...그래서 그쪽을 치기라도 하자는 거야?"


"서, 선제공격? 언니들 미쳤슴까?"


"해령아, 말조심해라."



광헌경이 원해령을 쏘아본다.


입을 다물고 다시 자리에 앉는 해령.



"당연히 대놓고 치면 안되지. 내가 병신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쪽이랑 선화는 평화협정 맺은 지가 30년이라, 굳이 우리를 드러내서 좋을 것도 없어."


"...그냥 합병 방해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그렇지. 우리 광룡 입장에서도 나쁘진 않아. 선화가 우릴 누르고 올라와봤자 좋을 것도 없으니까."


"저희 원강쪽도 딱히 빠질 이유는 없슴다. 경쟁자 하나라도 줄면 좋은 거니까."


"일단 지금은 테러나...암살이나 그런 쪽을 생각하고 있긴 한데, 어쨌든 지금 결정할 순 없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해산. 좋은 아이디어 있으면 연락하던가 해줘."


"...나"


"언니 무슨 아이디어라도 있나?"


"...이번 주 금요일이었지 분명...그 쪽...그...백운 쪽 대표랑 미팅이 있네."


"백운 대표? 백연 걔를 말하는 건가?"


"아니, 그런 대표가 아니라...그...뭐였지, 선백 신도시 백운대표? 그런 지위였던 것 같은데."


"음...그러면 언니랑은 초면이겠네...일단 어떤 사람인지 좀 알아봐. 선백 합병 백운대표? 그러면 테러던 암살이던 그쪽을 타겟으로 해야 할지도..."


"...일단 오케이."


"오늘은 여기까지. 한팀장? 운 언니랑 해령이좀 배웅해줘."



헌경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정보팀에 지시를 내린다.


[선화와 백운 밀정에 지시를 내려 '선백 신도시 백운대표' 가 누군지 알아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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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 새벽에 깼다.


누나한테 그 숙취해소제 좀 그만 달라고 하던지 해야...


뭐...술 취한 컨셉으로 밀고 나가고 있어 어젠 못 알아듣는 척 했지만, 다 듣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 나가야 할 회의는 그렇다 치고...금요일에 미팅?


그걸 인격교환으로 나가겠다고?


솔직히, 그런 게 가능한지도 몰랐다.


오늘 회의랑, 금요일 미팅, 그리고 다음 주 토요일 연회.


갑자기 스케줄이 늘어났다.


원래 스케줄이라고 할 것도 없었긴 하지만.


우선 일어났으니 씻고 나온다.


오늘 아침은 패스. 


이따가 회의할 자료 좀 읽어봐야겠어.


아무리 누나가 대답할 거라곤 했지만, 나에게 직접 묻는 건 대답할 수 있어야 하잖아.



"아이리스, 최근 1주일간 선화건설과 백운건설 사이의 회의록 좀 나한테 보내줘."


[네, 4 회 분량의 회의록을 전송합니다.]



4회 분량의 회의록을 받으니 양이 꽤 된다.


다 읽으면 누나 일어나실 때 쯤 되겠네.


보니까...웬만한 건 다 이해가 된다.


그래도 3년간 경영수업 열심히 받은 머리니깐.


그리고 언젠간 이 누나의 과보호 비슷한 걸 끊어내야 할 때가 올 것이다.


이번 주 금요일 미팅은 때마침 누나 시간이 그때 비어서 누나가 인격교환으로 참석할 수 있는 거지만, 언제나 그럴 거란 보장은 없으니까.


오늘 회의는 그 과보호를 끊어낼, 그러니까 누나가 말했던 '실무 경험' 의 첫 단추이니만큼 실수하면 안 된다.


곧 있으면 6시. 


아침 하지 말랬다고 진짜 아무것도 안 할순 없으니...


저번에 누나가 마셨던 분말 스무디 두 개를 꺼낸다.


찬물을 받아 섞어 놓고, 식빵 두 개를 꺼내 굽는다.


저번에 먹어 보니 과일 맛 나기에 빵이랑 잘 어울릴 것 같길래.



"벌써 일어났어? 빨리 나가야 하니까 밥 하지 말라니까."


"빨리 깨서요. 빵 굽는 건데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그래, 일단은 어제 저녁에 한 얘기는 기억 나?"


"기억은 나요. 오늘은 회의참석, 내일모레 금요일엔 미팅. 다음 주 토요일엔 연회."


"그래. 그 금요일 미팅은 내가 대신 할거라고 했지? 여기, 이 포트에 전용 칩을 꽂으면 돼."


누나가 우물우물 빵을 씹으며 뒷머리를 들어올려 목의 입력 포트들을 보여준다.



"일단...오늘 회의는 별 거 없는 건가요?"


"어...그렇지? 정해질 건 다 정했고, 오늘은 그냥 형식적으로 도장찍고 사인하고 기자들 앞에서 악수하고...뭐 그런 자리라."


"음...혹시 오늘 저희 누나들 볼 일이 있을까요?"


"어....아마...둘 다 오늘 참석은 아닐거야. 오늘은 나, 선화건설 대표 겸 선백신도시 선화대표로써, 그리고 너, 백운건설 대표, 그리고 그 밑에 건설사 임원들 몇 명씩이 다일걸?"


"음...알겠어요."



식사를 마치고, 누나가 씻는 동안 배송 온 정장을 꺼내 본다.


오늘 입을 건 기자들을 봐야 하니까 제대로 된 정복.


살짝 붉은빛이 도는 검은색이다.


붉은색은 선화를 상징하는 색.


누나가 요즈음 입고 다니는 푸른색은 백운의 색이다.


서로가 서로의 가문의 색을 바꾸어 입는 것.


그걸로 화친의 이미지를 돈독히 한다-라고 누나가 말했었지.


언론 첫 데뷔이니만큼 이미지가 중요하다는 것 같다.



누나가 단장을 마치고 나온다.


오늘 출근은 차고가 아닌 현관의 엘리베이터로.


평소처럼 건설예정지에서 회의를 했다간, 기자들의 접근성에도 좋지 않은데다, 너무 위험하기도 하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있는 이 건물, 선화건설 본사에서 마무리 회의와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다.


회의장소는 77층, 그곳으로 엘리베이터가 내려간다.



***



회의도, 기자회견도 별 일 없이 끝났다.


회의실로 가니 진혁씨가 기다리고 있었고, 앞으론 수행원답게 비서역할을 수행하기로 했다 한다.


뭐...회의는 딱히 나에게 시키는 말도 없고 그저 결정된 사항들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고, 


기자회견도 웬만한 건 전부 백운건설 사장님과 누나가 대답했다.


나는 누나랑 악수하는 사진 정도만 찍고.



선백건설으로의 합병은 선백 그룹의 합병의 첫 단추였다.


서로 겹치는 계열사들은 합병으로써 새로 태어난다.


겹치지 않는 계열사, 예를 들어 선화의 군사 계열사 '전선' 같은 경우엔 (백운엔 군사 계열사가 없다) 소속만이 바뀌어 그대로 운영된다.


선백건설 같은 경우엔 건설예정지의 시위대 구제라는 명목 하에 통상적인 합병보다 몇 배는 빠르게 진행되었기에, 첫 단추가 된 것이다.


그런데 누나가 말하길 그 때문에 문제가 생겼다 한다.



"선백으로 합병이 완료된 만큼, 현장엔 이제 나 아니면 백운건설 정 사장님 둘 중 한 명만 있으면 돼. 사장님이 배려를 해 주셔서 내가 주간, 사장님이 야간으로 비는 시간 없도록 조종했지. 자기는 혼자 살아서 상관없다고 하시더라고."


"그래서 문제가 뭔가요?"


"그러니까...합병이 급하게 진행된 만큼 양쪽 건설사에서 수주하던 프로젝트들 건축주랑 이야기가 덜 끝났어. 그리고 아까 회의 때 들었지? 건축주들이랑 재계약은 선백 백운대표랑 선화대표인 너랑 내가 맡기로 한 거."


"그래서 나는 재계약 미팅이 있을 땐 현장에 대타를 세우고 갈 거고, 너는 따로 미팅을 다녀야 해. 이번주 금요일 광룡 미팅도 그것 중 하나고. 결국 이 백운건설 재계약 자리엔 내가 대신 설 순 없는 거고, 항상 너가 참석해야 하는 거야.


"또, 내가 항상 인격교환으로 참석할 순 없어. 그러니 네가 결국 백운건설 쪽 계약상황을 익히고, 재계약 할 때 최대한 선백에 유리한 쪽으로 끌고 오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거야."



언젠가는 이럴 줄 알았지만...이렇게 빨리 내가 직접 나서야 할 일이 올 줄은 몰랐다.



"그럼...제가 백운건설 쪽 자료를 싹 받아야겠네요. 교섭법은 고등학교 때 배웠으니까. "


"그걸로 괜찮겠어?"


"저 성적도 꽤 좋았다구요? 전교까진 아니지만 반에선 탑이었어요."


"흐음...그러면...일단 내일모레 광룡은 내가 하고, 그 다음 게 다음주 화요일일 거거든? 그때까지 자료 받아서 읽어놔. 자료는 정사장님한테 내가 요청드릴께. 화요일엔 원강 쪽 프로젝트라고 알고 있는데, 그때 결과 보고 앞으로도 진이 너한테 맡길 수 있을지 어쩔지 결정할게."


"넵, 그러면 누나는 지금 현장으로 가나요? 점심이라도 같이..."


"어차피 집이 바로 위기도 하고...먹고 갈까?"



누나와 함께 꼭대기층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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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백야 대표.


그녀는 이 합병과 함께 자신의 직무를 내려놓을 생각이다.


선화의 대표로써 30여년, 이쯤이면 되었다 싶은 생각이 들던 와중, 백운에서 제안해 온 합병이 결심의 기회가 되었다.


이제 선백의 대표를 큰딸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이제 놀고먹으면 되는 것.


그렇기에 자신의 은퇴식 겸 합병 축하식으로 연회를 계획한 것이다.


참석하는 건 양측 도시의 임원들 뿐 아니라 선화와 백운의 우방국들까지.


우선 백운은 금강 하구, 옛 군산의 땅에, 선화는 조금 더 상류에 자리잡았다.


그 주변 지리적으로 가까운 도시들인 태안반도의 대록, 충주호에 자리잡은 진형, 옛 대전 지역의 대청, 이 세 도시는 도시 개발 초기부터 선화, 백운과 사이 좋은, 말하자면 우방국들이었다.


또 지리적으로 말고 좋은 사이에 있던 제주도의 탐라, 옛 부산-낙동강 하구의 해운.


금강을 통한 무역에 큰 힘이 되어주었던 도시들이다.


친하게 지내던 이 도시들의 대표들에게 연회 초대장을 보내고.


선백야는 근 30년 중 가장 마음이 편안하다.


북부 지역의 갱단이라던가, 선백 신축지역의 시위라던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다 유능한 딸들과 조카들이 해결할 텐데 뭐.


얼마 전의 한반도 연방 대표회의에서 선백의 의제를 꺼낸 것에 이의를 제기한 도시도 없었기에 선백야의 편안한 은퇴 생활을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30년간 뼈빠지게 일만 한 걸 이렇게 보상받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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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첫 회의로부터 이틀. 


오늘은 금요일이다.


수요일 회의 후엔 별 일정이 없었기에 진혁씨와 앞으로의 일을 좀 이야기했고.


누나 퇴근하실 때 저녁 차려 주고, 자기 전엔 또 따로 자겠다는 누나와 실랑이 좀 했었다.


어제, 목요일은 별 일정이 없었기에 백운건설의 자료를 읽으며 보냈고.


오늘은 누나와 함께 한반도 저 북부, 압록강까지 올라가야 한다.


아무래도 이쪽의 사정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계약의 갱신이 필요한 거라, 우리 쪽에서 가야 한다.


누나는 현장에 직위대리를 세우고 함께 가기로 했다.


지금은 새벽 5시.


좀 이른 시간이지만, 나와 누나, 진혁씨, 그리고 경호3팀 전원이 이동해야 하기에 일찍 모일 필요가 있었다.



"국경쪽은 처음인가?"


"뭐, 웬만하면 갈 일이 없으니까요."


"앞으로 자주 가게 될 거야. 다음 주 화요일 원강 미팅도 국경이니까."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이곳은 선화의 항공장.


집에선 차로 10분거리이다.


경호팀의 장비를 누나의 전용기에 싣고 나자, 우리가 오를 차레이다.


비행은 2시간 반.


그 동안 인격교환을 해 보기로 했다.



"여기, 이게 전용 칩이야. 혹시몰라서 세 개 가져왔고."


"이걸...그럼 둘이 같이 써야 하는 거에요?"


"아니아니, 나만 쓰면 돼. 일단 내가 이걸 꽂으면 의식을 잃을 건데, 내 눈에 빛이 꺼지면 칩을 빼내고, 네 목 뒤에 삽입하면 돼. 그리고 나선...머릿속에서 내 목소리가 들릴 텐데, 하라는 대로 하면 되고."


"으음..."



누나가 망설임 없이 칩을 목 뒤에 꽂는다.



전뇌수술. 그것은 이 사이버펑크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필수적인 수술이다.


바이오공학과 기계공학의 결합체...라고 할 만한 물건으로, 무려 '성장하는 기계' 이다.


주로 수술을 받는 건 어렸을 때.


일반적인 임플란트는 순수 기계로 이루어져 있지만, 전뇌는 '전뇌 코어' 라고 불리우는 유기체를 중심으로 배양한 유기조직과 기계를 접합해 만든 특별한 물건이다.


그렇기에 착용자가 성장해 나감에 따라 함께 크기를 맞추어 '성장' 하는 것이다.


전뇌 수술은 우선 뇌를 들어 낸 후, 뇌의 정보를 데이터화, 전뇌 코어에 입력한다.


그 다음엔 안구와 경추 7마디를 기계화한다.


그 덕분에 목 뒷쪽, 그러니까 경추 부분에 입력 포트를 만들 수 있게 되어 정보라던가, 기타 것들을 효율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지금까지 기껏해야 영상이나, 데이터파일들 정도만 받아들여 보았던 내 머릿속에...


내 손에 들린 누나의 칩이 들어올 예정이다.


뭐 누나를 못 믿는 건 아니니까.


-삑



{진아, 진아 들려?}


"어, 어어? 느낌이 이상하네요."


{굳이 입밖으로 말하지 않아도 돼. 생각만 해도 들리니까.}


'그런가요?'


{그래, 잘 되네.}


'그래서 이제 어떻게 하면 되죠?'


{눈 감고, 제어화면 열어봐.}



전뇌수술의 일환으로 얻은 인공 안구.


그 기능은 눈을 감은 상태에서 VR처럼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눈을 감아야 하기에 일반적인 휴대폰이 더 애용되긴 하지만.


우선 눈을 감고, 제어화면으로 접속한다.



'됐어요. 누나도 이 화면 보여요?'


{아직. 너가 감각 접근권한을 허용해줘야돼.}


'이거, 여기 접속자 창에 두 명이라고 되어 있네요. 여기서 하면 되는 거 같은데.'


{아마 그럴거야. 우선 감각 접근권한.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하나씩 켠 다음에, 신체 관리권한 넘겨주면 돼.}


'음...등록번호를 입력하라는데요?'


{아 그거, 그건 진이 백운에서 썼던 주민코드로 쓰면 돼. 주민코드라는 게 전뇌코어 제품번호랑 같은거라.}


'감각은 다 켰고, 관리권한 넘겨주면 되는거죠?"



'신체 관리 권한을 넘겨주시겠습니까?' 라고 하는 창에 '예' 를 선택하자마자, 내 몸이 의자에 주저앉는다.



"음, 으흠...아, 아"



내 몸이 혼자 헛기침을 하네. 


분명 내 목소리인데 내가 한 게 아니다.


손끝 하나도 움직일 수 없다.



{누, 누나? 된 거에요?}


"어, 된 거 같네. 키가 30cm는 줄어드니까 시야가 어색하네 이거."



내 목소리로 누나 말투를 들으니 어색하다.


게다가 분명 감각이 느껴지기는 하는데, 반응을 할 수 없으니 공포감마저 든다.



{이거 제가 못 움직이는 게 마, 맞는 거죠?}


"진정해, 다 정상이니까."



시야가 반대편으로 돌아간다.


누나가 움직인 것이겠지.


전용기 내부 의자에 앉아 있는 누나의 모습.


마치 잠든 것 처럼 보인다.



{그...누나 몸은 괜찮은 거에요? 뭐 숨 쉬는 거라던가, 심장박동이라던가.}


"그건 신경쓰지마. 내 몸은 지금 말하자면 자고 있는 상태야. 의식만을 복사해서 칩에 넣은거니까. 이따가 회의 끝나고는 다시 덮어쓰기만 하면 돼."



으음...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건가...


그럼 내가 따로 생각하는 것도 들리는 건가?


내가 '말' 을 하려고 할 땐, 그러니까 입을 움직이려 할 땐 내 '말' 이 누나에게 전달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생각에 대꾸를 안 하는 걸 보니 내 '생각' 과 '말' 은 따로인 건가...



"음...진아?"


{네? 무슨 문제라도?}


"그...혹시 화장실이 가고 싶었니?"


{네? 그게 무슨........!!!}



이런


살짝 그런 감이 있긴 했는데.


이, 이러면 누나가 내 몸을 가지고 화장실을...



{빨리 권한 넘겨요! 내, 내가 갈 테니까.}


"그...문제가...이 칩이 일회용이란 말이지. 권한 다시 넘기면 못 써. 게다가 이거 꽤 비싼 거야."


{크으으...그 ,그럼...벼, 변기에 앉은 다음에 눈을 감고...}


"그...미리 말했어야 되는데, 미안하네."



내 몸이 한 층 아래 화장실로 향한다.


자꾸 휘청거리는 몸.



"키가 작아지니까 걷기가 어렵네 이거;;"


{조심해요, 다치는 건 난데.}


"회의가기 전에 좀 익숙해져야겠어."



그러고선 화장실로 들어서는데, 자연스레 여자화장실 문을 연다.



{누나! 화장실! 지금 남자화장실 가야죠!}


"아, 아아 미안미안, 신경쓸 게 생각보다 많네."


{조심하라구요! 지금 누구 몸인지는 자각하죠?}



이상한 사람으로 몰리는 건 나인데, 이 사람이 자꾸...



"미안하다니깐, 근데...남자화장실이라...흐흐...이건 처음이네."


{변태야, 빨리 끝내고 나와요.}



아무래도 이 누나는 처음인데 소변기를 쓰게 할 순 없으니...좌변기로 가 문을 잠근다.



{이제 눈 감고 바지 내려요. 눈 뜨면 이따가 죽여버릴거야.}


"아, 알았어;"


{입으로 말하지말고 생각으로 해요. 화장실에 사람있으면 어쩌려고. 이제 자리에 앉은 다음에...그...내보내면 돼요.}



앉아서 소변 보는 게 전립선에 안 좋다고는 하지만...서서 하라고 할 순 없으니...


그런데...누나의, 아니 내 손이 내 다리 사이로...



{지금 어, 어딜 만져요?}


'아, 아니 앞에 닿을 것 같아서...좀 누르려고...'


{그, 그렇다고 만지려고 그래요? 이..이번만 봐주는거야...}



물론 누나랑 분위기잡고 침대 위에서....뭐 그런 상황이라면 나도 환영이지만, 이런...원치도 않은 상황에서, 그것도 내 몸을 조종하는 누나가 내 물건을 만지는 건 사절이다.


다시 가장 윗층으로 돌아와 누나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지 한 시간.


기장이 도착을 알린다.



***



압록강 하류, 옛 신의주의 터.


연초인 지금, 이곳은 아직 눈발이 날린다.


상대적으로 덜 개발된 채로 기업들에 매각된 휴전선 북측의 땅.


게다가 이 곳은 중국과의 접경지역이기에 융단폭격으로 완전히 평탄화 된 땅이다.


그렇기에 도리어 광룡은 쓸 수 있는 땅이 많았다.


지금 우리가 내린 이 곳, 광룡공항은 광룡 도심에서 몇 km 떨어진 곳이다.


북방 지역이라 부족한 에너지를, 광룡은 십수 제곱km의 태양광 집전판으로 메꿨다.


지금 이 공항과, 광룡 도심 사이의 저 빛나는 유리의 바다, 저 시설이 바로 그것이다.



"어서 오십시오, 광룡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저는 광룡의 대표인 용 운입니다."



누나가 조종하는 시야로 보이는 저 사람.


백발, 한쪽 눈을 가리는 단발에 검은색 썬글라스, 모피 코트를 입었다.


키는 170정도? 그렇게 커 보이지 않는다.


뭐 그래도 나보다는 크지만...



"처음 뵙겠습니다. 현재 선백신도시 백운대표를 맡고 있는 백 진이라고 합니다."



내 목소리가 대답한다.



"일단 본사 사무실로 가시죠. 준비는 해 놓았으니."



용운, 나처럼 외자인 이름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나와 진혁씨, 경호3팀 팀장, 이렇게 셋이 준비된 리무진에 올라탄다.


아마 저 광룡 대표님이 타고 오신 것이겠지.


차가 이륙하고, 우리 뒤로 선화 경호3팀과 광룡의 경호팀이 뒤따른다.


전용기에 남아 있을 누나는 경호3팀 몇 명이 남아 지키기로 했다.



"...뭐, 제 입장에선 솔직히 남성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대표 자리다 보니."


"하하...요즘 그런 말 많이 듣습니다. 그래도 능력으로 올라온 자리니까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능력으로 올라오긴...한 마디도 지지 않고 쳐내려는 누나의 말빨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무시당한 것에 대한 누나의 빡침이 느껴질 정도다.



"...일단 일 이야기는 가서 하시면 되고, 뭐 저희 광룡은 첫 방문이십니까?"


"네 뭐...그런 셈이죠."


"...그럼 저희 광룡에 대해 뭐 궁금하신 점이라도 있으십니까? 답변해드릴 수 있는 건 답변해드릴 테니."


"저...보니까 광룡은 스프롤 지역이 없군요. 이건 어떻게 관리하신 건가요? 중-남부 도시들은 제어되지 않는 스프롤 때문에 항상 문제를 앓으니까요."


"...우선 광룡같은 경우에는 이 한반도 북부-만주 지역에서 광화의 위성도시를 제외하곤 가장 큰 도시입니다. 그런 만큼 만주나 화북지역, 또는 소비에트7국에서 흘러들어오는 불법 이주자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스프롤의 관리가 어려울 텐데요...?"


"...그건 이곳의 기후 때문입니다."


"기후...기후라...아, 그래서 스프롤이 없다..."


"예. 아마 짐작하신 듯 하지만, 이곳은 겨울엔 최저기온 -40°C까지 내려가는 지방, 시설이 미흡한 중-남부의 스프롤은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입니다. 아마 이곳의 기후가 이렇지 않았다면 광화 본(本)도시보다도 더 큰 스프롤을 가졌을 겁니다."


"하지만 스프롤이 없다고 난민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는 스프롤이 없다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보시면, 광룡 도시가 생각보다 작다고 느껴지시지 않습니까? 아마 눈에 보이는 모습은 백운보다도 작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렇군요...그런 천 이백만의 인구는...음...아마 지하이지 않을까..."


"...맞추셨습니다. 광룡의 지상은 빙산의 수면 위 부분이나 마찬가지, 대부분의 도시는 지하입니다. 그 지하에서 압록강을 따라 뻗어가는 선형의 국경, 그 선형의 도시에서 가지처럼 뻗어나가는 지하 스프롤이 존재합니다. 이 정도면 설명이 되었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묻고 싶은 게 하나 더 있습니다. 저기 저 태양전지 발전소, 저건 얼마 정도 되는 에너지를 뽑아냅니까?"


"정확히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면적은 12 제곱킬로미터, 도시 전체 필요 전력엔 한참 못 미치지요. 그 이상은 기밀사항입니다."



누나가 건축사 사장으로써 궁금한 점을 쏟아내고 있을 때, 나는 고정된 시야의 주변시로 광룡 도심을 바라본다.


도시 자체는 백운 정도, 확실히 백운의 네 배 정도 되는 인구에 비해 작다. 


그럼 이거의 세 배 규모로 땅속에 지하도시가 있다는 건가...


누나와 광룡 대표의 이야기가 조금 더 이어지나 싶더니, 차가 내려앉는다.



"이곳이 광룡 지상부의 중심지입니다. 오늘은 지하까지 가실 일은 없으실 거고, 이 뒤쪽 건물에서 회의하신 다음 건설예정지 가셔서 보시면 됩니다."


"넵 일단...알겠습니다."



지하 도시이에다 겨울이니만큼 지상엔 다니는 사람이 없어 눈이 두껍게 쌓여있다.


앞에서 눈을 치우고 난 길을 따라 안쪽 회의실로 향한다. 



"...일단 앉으십시오. 다시 자기소개를 하자면, 광룡의 대표 용 운이라고 합니다."


"옙 반갑습니다 백운쪽에서 온 백 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미팅을 요청하신 이유가?"


"네 이미 아시다시피, 저희 백운과 선화가 합병을 합니다. 그 전초로써 백운건설과 선화건설의 합병이 이루어지게 되었죠. 그래서...저희 백운건설에서 진행중이던 광룡 신(新) 군수공장 관련 재계약이 필요해서 찾아뵈었습니다."


"....그럼 저희 광룡 쪽에서 계약업체의 이름이 변하는 것 이외에 신경 써야 할 점이 있습니까?"


"...그래서 찾아뵌 겁니다. 저희 선백건설 내의 사정 때문에, 공사기간이 좀 길어질 것 같습니다. 이쪽 동절기 동안 공사를 중단하여 지금은 공사 진행 중이 아니지만, 4월달 쯤이면 공사에 다시 착수할 수 있을 것, 아니 그럴 수 있을거라 예상했었죠."


"그게 미뤄진다는 겁니까? 왜인지는 알려 주시는 게 예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미뤄지는 건 한두 달 정도. 11월이 되면 다시 동절기에 접어들어 공사가 중단되기 때문에, 그 전엔 끝낼 수 있게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


"그리고 공사 연기의 이유는...선백의 내부사정이라 쉽사리 말씀드릴 순 없겠군요. 외부에 알리기 힘든 상황이라는 것만 알아주셨음 합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에도 공사 연기라는 것은 저희 쪽에선 손해, 그런 만큼 계약사항의 조정이 필요할 듯 싶습니다만."


"설계에 건설까지 다 해서 40억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가격을 깎는다거나 그런 건 곤란합니다."


"그렇다면 늘어지는 한두달을 배상할 방법이?"


"다음 번 저희 백운, 아니 선백건설이죠 이제. 선백건설에 광룡 이름으로 건축수주를 하실 때, 5억을 빼 드리겠습니다."


"어차피 돈으로 하실 거면 이번 계약에서 빼던, 다음 계약에서 빼던, 상관 없는 것 아닙니까?"


"지금 이 40억은 회사 내부에서 이미 다 정해진 돈이라서요, 혹시 마음에 안 드신다면 금액은 고정하고 부분적으로 현물로 받아도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그럼 그 쪽이 낫겠습니다. 5억 규모로 저희 광룡의 상품들, 뭐 군수물자나, 전기라던가, 그런 것으로 받는 것으로 하십시다."


"그렇다면...대인용 비살상용으로 2억, 살상용으로 3억. 이렇게 받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저희 카탈로그가 여기, 방금 보내드린 파일입니다. 군수쪽 물품으로 가격맞춰서 주문해주신다면 저희쪽에서 제공해드리겠습니다."



내 휴대폰, 지금은 누나가 조작하고 있는 폰으로 파일이 날아든다.



"그럼 재계약은 완료된 것으로 알겠습니다."


"...그러시지요. 김비서? 계약서 작성은 됐나?"



대표님이 뒤쪽 비서에게 재촉한다.



"여기 있습니다. 다시 한 번 확인하시고 서명하시면 됩니다."


"선백건설로의 계약변경, 시공 일정 1개월에서 2개월 연기, 대금 중 5억을 현물거래로 한다. 다 됐네요."



내 몸이 서명을 하고 일어서 악수를 나눈다.



"...이제 점심시간인데 식사라도 같이 하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식사 하시고, 공사 진행중인 부지 확인하시고 싶으시다면 들르셨다가 돌아가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시간이...괜찮을 것 같네요. 가시죠."


{흐음...누나는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제가 다른 여자랑 둘이 밥 먹어도 괜찮은거에요?}


'공적인 자리잖아...대표님이 그런 맘을 먹으셨을 리가 없잖아. 그보다, 미팅을 본 소감은?}


{생각보다 빨리 끝나네요? 미리 정할 거 다 정해놓고 와서 그런건가?}


'그렇다기보단 처리해야 할 의제가 하나뿐이라 그렇지. 정해 놨던 건 다음 계약하면 5억 할인? 그 정도였는데 내키지 않아하시는 것 같아서 현물교환으로 바꾼 거야. 그 편이 선백쪽에는 할인보단 이득이기도 하고.'


"이쪽입니다. 광룡의 지상층에선 최고의 식당입니다."


"대표님께서 직접 대접해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손님에겐 당연한 처사입니다. 편히 드시면 됩니다."



만주 접경지라 그런가 대륙풍의 음식점이다.


고열량에 슴슴한 맛.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맛이다.



"...그래서, 아까도 말했지만, 남성 분이 대표직은 어떻게 올라가신 겁니까? 아직 어려보이십니다만."


"나이...는 20입니다만, 백운 쪽에서 경험을 쌓고, 그러던 와중 합병이 결정되게 되어 적임자로써 들어갔을 뿐입니다."


"음...뭐 제가 차별주의자라고 생각해 주시진 말아 주십시오. 한반도 전체에서 남성의 몸으로 대표직을 맏고 있는 건 아마 채 열 명도 안 될 테니 말입니다."


"그런가요? 제가 타 도시에서의 업무수행은 익숙치가 않아서."



누나는 순발력이 좋은가 보다.


'나' 에 대한 저런 개인적인 질문들도 곧장 생각해내어 답하는 걸 보니.


내가 대표님을 다시, 내가 내 몸으로 만나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누나의 이야기를 나 또한 듣고 있었다.


다음 번 만날 때 갑자기 이야기가 바뀌면 안 되니까.



식사가 끝날 때 까지 대표님은 나에 대한 질문을 쏟아내었다.


누나는 적당히 대답하다가 나에게 중간중간 물어보기도 하며 식사를 마쳤다.



군수공장 부지, 그곳은 관룡 도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일반적인, 백운이나 선화와 같은 도시는 생산공단을 도심 내에 두고 빠른 관리와 스프롤 거주민이나 갱단으로부터의 치안을 확보한다.


그러나, 관룡, 이곳의 지하도시에 공단을 만든다면 며칠 지나지 않아 공기는 숨쉴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다.


거기다 스프롤 걱정도 없기에 광룡의 생산공단, 군사기업 바탕인 광룡으로써는 군수공장들이 가득 찬 그 곳은 도시 외곽지역에 있었다.


누나는 주변 시설도 궁금했지만 지금 공사 진행중인 부지 외엔 나갈 수 없다고 했다.



'아무래도 군사시설이면 어쩔 수 없나...'


{뭐 우리쪽에서도 핵심시설 구경시켜달라면 거절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보다 이제 슬슬 제 몸 다시 받고 싶은데...}


'일정도 다 끝났으니까 이제 돌아갈 거야. 좀만 기다려'



공장 부지에서 곧장 공항 쪽으로 돌아온다.


리무진에서 내리니 우리 비행기가 이미 격납고에서 나와 대기중이다.



"안녕히 가십시오, 광룡의 방문은 편안하셨길 바랍니다."


"덕분에 재계약 해결이 잘 되어 다행입니다. 그럼, 다음에 뵙겠습니다."


"필요하시다면 비서실 통해 연락 부탁드립니다."



비행기에 타 제일 위층에 가 보니 누나의 몸이 그대로 누워 있다.



"진아? 내가 권한 다시 너한테 줄 건데, 그러면 몸 제어권이 돌아오면서 목 뒤쪽으로 칩이 다시 나올 거거든? 그거 그냥 내 몸에 넣으면 돼."


{네, 네 알겠어요.}



다시 내 몸이 의자에 주저 앉는가 싶더니, 몸이 내 의지대로 움직여진다.


누나의 인격 칩을 다시 누나 목에 넣으니, 누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일어난다.



"음, 이제야 좀 익숙한 몸이네. 키도 작고 임플란트도 없으니까 느낌이 이상하더라."


"저도 다시 몸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편하네요."


"그러고 보니...나는 점심을 안 먹었구나? 아이리스? 나 점심좀 갖다달라고 아래층에 얘기해줘."


[네]


"그...누나?"


"왜?"


"아까 현물거래로 무기 받는다고 그러셨잖아요?"


"그랬지?"


"갑자기 무기는 왜...? 어디에 쓰시려고요?"


"일단은...지금 선백 예정지 시위는 얘기했지?"


"네"


"거기 진압을 하는데 아직 무력충돌은 없거든? 그래서 아직은 괜찮은데,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게다가 지금 선화쪽에 비살상 무기가 너무 부족하기도 하고."


"거기가 그 정도로 위험한 거에요?"


"아니...뭐 아직은 아니지. 시위대 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는 이상은 지금처럼 방패 말곤 별 거 없어."


"흠..."



시위가 무기가 필요할 정도로 거세질 수도 있다니...


진압에 1년이면 그럴 만도 한가?


어찌됐든, 아침에 일찍 일어난데다 광룡을 계속 돌아다닌 피로감이 몰려온다.



"누나 저 피곤해서 그런데 잠깐 눈 좀 붙일게요."


"어? 어어 편히 쉬어. 도착하면 깨워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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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어, 누구지? 운 언니야?]


"...어, 방금 개, 백운 남자애랑 미팅 끝났어."


[그래서, 어땠어?]


"음...뭐라 그래야 되지? 일단...나이는 20이랬고, 귀엽고, 예쁘게 생겼고, 말도 잘하고. 뭐 그 정도? 그리고 말하는게 좀 여성스럽다 해야 하나? 되게 사무적으로 대답하는데 그런 느낌이 나더라."


[으음...여성적이라...뭐 일단 타겟으로는 괜찮은 거 같은가?]


"...그냥 테러를 하게? 하긴, 합병 방해로는 그게 제일일 거 같긴 하네...뭐, 자세한 계획은 있고?"


[언니 내일 볼 수 있나? 해령이하고 얘기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


"...그냥 화상으로 하지? 굳이 얼굴 대고 말할 필요 있나?"


[일단 알겠어. 그럼 쫌 이따 전화걸면 받아.]



광헌경이 전화를 끊는다.



"싸가지 없는..."



언니한테 말버릇이 무슨...


일단, 헌경의 테러 계획은 광룡의 이름만 드러나지 않는다면 나쁠 일 없는 방법이다.


원강쪽도 같은 생각이기에 해령이도 동의한 거겠지.



"백진...그냥 죽이기엔 아까운 놈이긴 한데..."



그렇게 일 잘하고 대표자리까지 있는데다 예쁘게 생긴 남자가 어디 한둘인가...


뭐, 백진은 곧 죽을 운명이고, 광룡에 저런 남자 어디 하나 있겠지.


저녁쯤 테러계획이 잡히면 아마 바로 내일 시행에 들어갈 것이다.



[광 헌경 님으로부터 연락입니다.]


"...어, 받아"


[언니, 들리지?...이제 계획 얘기를 좀 해 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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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루가 지난 토요일.


오늘은...계획했던 거사의 날.


어제 금요일은 광룡에서 돌아온 후, 누나는 다시 선백 현장으로 가 저녁까지 일을 보고 왔다.


돌발상황이 생겼는지 밤 늦게 술을 먹고 들어와 날 붙잡고 하소연했다.


처음으로 본 만취한 누나의 모습...


술냄새 풍기면서 날 껴안고 질질 짜는 누나의 모습을 보니, 


갭모에...라 해야할까? 


귀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누나가 맨정신이었다면 내가 못 참았을 수도 있었겠지만...첫경험은 둘 다 맨정신일 때 하고 싶다.


첫 경험이라...나는, 뭐 내가 남자답지 못하다-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로맨틱한 그런...분위기는 싫다. 


뭔가...그런 분위기를 잡는 건 '선시은' 답지 않다고 해야하나...


일단 계획은 완벽해.


오늘 아침 주문한 이벤트용 속옷.


거기다 미니스커트, 그리고 배를 보여주는 크롭티.


저번에 질문글을 올렸던 게시판의 여자들이 보면 눈이 뒤집힐...뭐 그런 복장이다.


사실...이런 옷은 미치도록 부끄럽다.


그래도 누나...누나는 이쪽에서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또 철벽을 칠 게 뻔하다.


나머지 계획은...보면 알 거다.



어느 덧 누나의 퇴근시간.


저녁으로는 우나기쥬(うなぎ重) 장어덮밥, 그리고 굴보쌈, 생마늘.


장어, 돼지고기, 굴, 마늘, 전부 여자의 정력에 좋다는 '소문' 만 있는 음식이지만, 과학적 효능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지금 이걸로 전하려고 하는 건 '메시지' 니까.



"다녀왔어~...어? 갑자기 무슨 장어덮밥?"


"왔어요? 방금 한 거니까 식기 전에 먹어요."


"진이 너...옷, 옷이..."


"으음~? 옷이 왜? 왜 그러실까~?"


"아, 아니야..."



생글생글 웃으며 누나 쪽으로 몸을 숙인다.


이 크롭티는 목 구멍이 좀 큰 것.


그런 만큼 누나의 시선은 앞쪽으로 늘어진 목 구멍으로 향해 있다.


그래, 더 봐, 더 욕정하란 말이야.



"너, 너는 안 먹어?"


"난 이미 먹었지요~빨리 들어요, 따끈따끈할 때 먹어야지."


"으, 으응..."



됐어!!!


메시지는 전해졌다.



"그...아, 아이리스? 소주 한 병만..."


"안 돼요, 아이리스, 가져오지 마. 이따가...밥 먹고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술은 안 돼."


"그 , 그래도..."


"어제 술 먹고 들어와서 어땠는지 기억 안 나요?"



더 이상 반박하지 못한다.


누나가 식사를 하며 자꾸만 내 쪽으로 시선을 보낸다.


내...크롭티가 그렇게 꼴리나?


이거 원 자린고비도 아니고.


밥 한 번, 내 배 한 번, 밥 두 번, 내 얼굴 한 번.



"흐흫..."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맛있어요?"


"어? 어어 당연하지, 누가 한 건데. 그, 그보다 양이 좀 적은데, 조금 더 있나?"


"흐음...많이 먹으면...이따가 좀 힘들텐데..."


"ㅇ, 어어?"


"일단! 그렇게 알고, 내일은 맛있는거 해 줄 테니까, 오늘은 여기까지~"


"무, 무슨.."


"누나, 일단 씻고 나와요. 할 얘기 있으니까."



누나가 빨갛게 달아오른 표정으로 욕실로 도망치듯 향한다.



"아이리스, 누나 옷 말고, 흰색 샤워가운 하나만 갖다줘."



그리고...이제 누나 방 소파에서 기다린다.



"아이리스, 내 옷 어딨어? 아이리스? 얘는 왜 갑자기 대답이 없어..."



누나가 화장실에서 방 쪽으로 나온다.


아이리스가 가져다 놓은 샤워가운을 입은 상태.



"누나, 여기 와서 앉아 봐요."


"잠깐만, 나 옷을 먼저..."


"여기 와서 앉아 누나, 할 말 있으니까."



내 옆에 누나를 앉힌다.


그리고선...준비했던 말들.



"누나, 누나는 나 어떻게 생각해?"


"지, 진이?...나는...그...하아...어떻게 말해야 하지..."


"그거 알아? 나는 누나 진짜 좋아한다?"


"나, 나도 진이 좋아해..."


"흐음...근데 그런 '좋아해' 수준이 아니란 말이지 나는..."


"그, 그보다 진이 너, 술 마신거야? 갑자기 반말을..."


"누나, "



오른 쪽에 앉아 있던 누나의 무릎에 올라 탄다.


그대로 누나 얼굴을 마주보고 말을 이어간다.



"누나, 나 있지, 술 되게 세다?"


"어? 저, 저번엔 와인 한두 잔에 취했잖아, 무슨 소리를.."


"나 연기 되게 잘하지? 헤헤.."


"어? 어어? 연기?"


"그래 연기. 나 원래 소주 세 병은 그냥 마실 수 있어. 맨정신으로."


"그럼 그때 그게 다 맨정신으로..."


"그래, 당연하지, 술 취한 척 한 연기였다니까?"


"그, 그럼 연기를 왜.."


"흐흐...누나"



누나의 오른쪽 귀로 입을 가져간다.


내가 누나 허벅지 위에 앉아있는 만큼 자연스레 껴안는 포지션이 되었고,



"진짜 모르는 거야~아니면 내가 말해주길 바라는 거야~?"


"뭐, 뭐를..."


"남자가 이렇게까지 하는 데 진짜 모르겠다고~?"



그대로 팔을 누나 목에 둘러 당겨 안는다.


그리고 그 팔로 자꾸만 내 입에서 벗어나려 하는 머리를 잡고 왼쪽 귀에 속삭인다.



"나, 따먹어달라는 거잖아❤"



내 몸을 누나에게서 떨어트린 후, 잡고 있던 머리를 당겨 키스



방 안이 우리의 타액이 뒤섞이는 소리로 가득 찬다.


자꾸만 뒤로 빠지려던 누나의 머리는 어느 새 내 손에 힘을 맡긴 상태.


몸 안에서 뜨겁게 응어리진 무언가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기분이다.


누나도 어느새 눈을 감고 나의 몸에 팔을 두른다.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 둘은 동시에 입을 뗀다.


누나의 눈이 풀려 있다.


아마 나도 그렇겠지.



"파하-"


"누나...나 이거 첫키스야아...이제...책임 질 수 밖에 없겠지이...?"


"...으응..."


"침대로 가자 누나."



누나가 허벅지 위에 올라탄 나를 그대로 들어올린다.


엉덩이에 스치는 누나의 손길이 음란해.


누나가 날 침대에 뒤로 눕힌다.


그러곤 내 위에 엎드려 귀에다 대곤...



"진아...내가...지금까지 너무 많이 참았어...사장이라고...대표의 딸이라고...너무 많은 걸 희생해왔단 말이야...근데 이제, 이제는 안 참아도 되지? 그렇지?"


"난, 나는 누나 거야. 그러니까 나한텐 아무것도 안 참아도 돼.."


"..."



누나의 눈에 안광이 비친다.


저건 진짜 빛일까, 아니면 누나의 분위기에 내 눈이 착란을 일으키는 걸까.


이런 눈, 본 적 있어.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


누나가 두 손을 내 크롭티 아래로 가져간다.


그러고선...내 배와 옆구리를 끈적하게 만지기 시작한다.


내 성감대를 찾는 것인가.



"흣...흐읏...누, 누나아..."



자꾸만 배에 압박이 가해지자 나도 모르게 신음이 흘러나온다.


내 아랫배를 꾹꾹 누르던 손이 위로 점점 올라오더니...겨드랑이 쪽으로 향한다.



"누나아...간지러워.."


"조용히 해. 손 위로 만세."


"흐읏..."



두 손을 들자 내 상의가 간단히 벗겨진다.


누나의 두 손은 멈추지 않고 내 몸을 탐해 간다. 


자꾸만 유두를 스치는 누나의 손.



"젖...젖꼭지 하지 마아...헤윽?!"


"조용히 하라 했지"



내 반항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양쪽 유두를 꽉 쥔다.


자, 자극이 너무 세에...



"재, 재송해여어..."



손을 내려 누나의 손을 쳐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누나에게 압도당한 몸은 말을 듣지 않는다.


계속되는 키스와 유두 애무.


그러다 한 쪽 손이 치마 아래로 들어간다.


어느 쪽인지는 몰라.


내 자지를 살살 긁어주는 누나의 한쪽 손.


세 곳에서 동시에 자극이 들어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어.



"으음...팬티 좋은 거 입었네...일어서봐."



누나의 명령에 따른다.


상의는 알몸, 아래는 야한 팬티에 미니스커트.


누나가 팔짱 끼고 보는 앞에서 침대 위에 일어선다.



"진아"


"누나아..."


"치마 들고, 팬티 보여줘봐."


"흐읏..."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치마를 들어 누나에게 보여준다.


이미 자지는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 팬티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진이...자지 섰네? 이런 거 보여주면서 흥분하는 변태였어?"


"아, 아냣..."


"아니야?"


"흣...흐읏...마자요오..."


"그럼...결혼할 상대가 있는데도 그런 변태짓하면서 흥분하는 새끼면 교육을 좀 받아야겠네?"


"교, 교육...교육이라면..."


"치마 내릴 생각하지 말고. 으음...뭐가 좋을까? 아까 참지 않아도 된다고 했지? 그럼 이제부터 내가 만족할때까지 할 거야."


"으읏..."



위험해.


분명 내일 아침까지 할 생각이다.


이, 이거는 좀...



"그, 그건..."


"반항하는 거야? 참지 않아도 된다더니?"


"누나아..."



누나가 천천히 샤워 가운을 벗는다.


저번에 실수로 본 누나의 몸...


풀린 얼굴로 누나를 쳐다보다가...눈을 마주친다.


-털썩


저...저 '여자'의 눈빛, 다리에 힘이 풀릴 수밖에 없잖아.



"흐음...누가 앉아도 된다고 했지?"


"재, 재송ㅎ...?!"



다급히 일어나려고 하는 날 밀어 넘어뜨리는 누나.


치마와 팬티를 한 번에 벗겨내고는, 아까 멈췄던 애무를 계속한다


하지만 입술과 혀까지 사용해서, 


더 추잡하고, 강하고, 자극적이게.



"흐으으읏, 흐윽, 크흐으윽, 그, 그만..."



너무나 심한 자극에 머리는 누나를 밀어내라고 명령을 내리지만, 팔과 몸은 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누나의 애무에 몸을 맡기는 수 밖에.


골반에서부터 옆구리, 배꼽 유두, 쇄골까지 타고 올라오는 누나의 입술.


마지막으로 목덜미에 키스해 주자 정신이 날아갈 것 같다.



"좋아?"


"네, 녜에엣..."


"변태새끼."



누나 때문이잖아, 하고 반박하고 싶어도 그럴 겨를이 없다.


누나의 손과 입술이 자꾸만 꼿꼿이 선 자지만을 피해 자극하고 있어 온 신경이 도리어 그곳으로 쏠린다.



"만, 만져줘어..."


"어디를?"


"자지이..."


"똑바로 말해"


"누, 누나 손으로 제...제 발기자지 만져줘어..."


"으음...싫어."



어째서.


이대론 안되겠어, 내 손으로라도..



"흐윽?"



누나가 한 손으로 내 양손을 잡아 머리 위로 구속한다.



"이거...진이 그런 줄 몰랐는데 손버릇이 안 좋네?"


"놔, 놔줘..."



내 말을 들은 척도 안 하는 누나.


어째서 그게 거기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침대 옆 서랍에서 테이프를 꺼내더니 내 두 손목을 감아버린다.


그리고는 침대 머리쪽에 고정 후 내 위에 올라탄다.


무, 무거워...



"손버릇이 이렇게 안 좋으면...이것도 같이 고쳐야겠다 그지?"


"푸, 풀어ㅈ,"


"조용히 하라고 그러지 않았나? 입을 좀 막을 게..."



침대에 묶인 나를 놔두고 잠시 화장실로 향하는 누나


뭘 가져오려 그러나...싶은데 천쪼가리를 들고 온다.



"이거, 내 팬티거든? 이거라도 물면...좀 조용해지려나?"



그러고는 팬티를 내 얼굴에 문지른다.


야, 야한냄새애...


뇌를 찌르는 듯한 누나 냄새에 눈이 뒤집히려 한다.


그대로 내 입에 팬티를 쑤셔 넣고, 테이프로 고정.



"으으읍, 으윽! 읍!"


"좀 낫네..."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입에 누나의 맛이 가득한데다 비강을 타고 넘어온 냄새가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든다.


두 손은 묶인 상태, 입은 막히고, 누나가 내 위에 올라타 꼼짝할 수가 없다.


무, 무슨 짓을 하려고...



"진아...좀, 잘 견뎌봐?"



두 손이 내 유두로 향한다.


부드러운 손길로 유두...는 건드리지 않은 채 유륜만을 살살 돌리며 긁어준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가슴이 뜨거워지며 답답하다.


유두만 건드려주면 갈 수 있을 거 같은데...!


몸이 저절로 덜덜 떨리고, 미친 듯 흘러나오는 침으로 입에 문 누나의 팬티가 축축히 젖어드는 게 느껴진다.



"으흑...으으윽..."


"으음...만져줬으면 좋겠어?"



누나가 뭐라고 하는데...잘 들리질 않는다.



"안 들리는 건가..."



-틱


유륜만을 집요하게 괴롭히던 손가락이 드디어...유두를 튕긴다.


검지와 엄지로 잡고서는, 강하게 비빈다.



"으끅....으으윽...끄으으윽.."



가슴이 답답하던 게 한번에 터져나오는 듯 하며 엄청난 쾌감이 몰려든다.


머리가 하얗게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막힌 입에선 신음이 비집고 흘러나오고, 두 눈이 뒤로 뒤집힌다.


방울방울 쿠퍼액이 흘러나오던 자지에서 단번에 쿠퍼액이 왈칵 터져나온다.



"흐음...아직 안 싸네? 아니면 아직 싸 본 적이 없나?"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지금까지 자위는 해 보고 살았지만, 정액이 나온 적은 없다.


몇 분 동안 상하운동을 하다 보면 방금처럼 쿠퍼액이 터져 나오며 머리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흰 정액을 싼 적은...아직이다.



"진짜? 아직 싸 본 적이 없다라..."



누나가 내 위에서 내려온다.


누나의 애액 때문인지, 아니면 한계까지 젖어든 누나의 팬티를 뚫고 줄줄 흘러나오고 있는 내 침 때문인지 축축히 젖어든 내 배에 시원한 느낌이 든다.


누나가 내려왔지만, 움직이며 저항하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그럴 힘도 없다.



"...이제 입은 열어줄게."



-찌익


테이프를 떼고 입에 든 팬티를 꺼내 준다.


내 침으로 푹 젖은 팬티를 가지고 아직 서 있는 내 자지를 감싸더니, 그대로 왕복운동을 시작한다.



"헤윽, 흑, 흐윽, 흑, 사, 사, 살려줘어어..."



몇 초 지나지 않아 또 쿠퍼액이 터져 나오고, 내 몸은 다시 경련한다.



"이래도 안 싸네...어쩔 수 없나...? 진아, 빨아."



누나가 몸을 일으켜 보지를 내 얼굴에 문지른다.


방금까지 입 안에 있던 냄새.


그런데 그것보다 수십 배는 강렬하다.


그 향기를 농축해 액체로 만든 것 같은 애액이 입에 들어온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와중...내 혀는 스스로 누나의 마중을 나간다.


자동으로 움직이는 내 혓바닥.


누나의 보지를 한 겹 한 겹 음미하듯 천천히 핥아 나간다.



"흐아아...하아...개좋아아......진아, 핥지만 말고 빨아봐."



누나의 말에 따라 입술을 모아 쪽쪽 빨기 시작한다.


내 입과 코 일부분이 누나의 대음순에 잡아먹힌 듯 하다.


코 끝에 작은 콩알 같은 것이 닿아 살살 비벼주니 누나가 몸을 부르르 떤다.



"흣?! 크흐으읏..흐으읏...흐윽......이, 이제..."



누나가 몸을 나에게서 떨어뜨린다.


내 두 손을 풀어 주자 내 몸이 축 늘어진다.



"왜..왜 가라앉은 거야? 빨리 세워"


"두, 두번이나 갔으면 무리, 무리에요오..."



평소엔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할까 말까 했는데, 갑자기 두 번 연속이면...무리인 게 당연하잖아....



"크흣, 안돼, 빨리.."



그러다 누나가 뭔가 생각난 듯한 표정으로 오른손 검지와 중지를 내 입에 집어넣는다.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지만, 일단 정성껏 빨아 준다.


어느 정도 손가락이 젖었다 싶더니, 손가락을 입에서 빼내곤, 



"헤윽?"



내, 내 뒷구멍에 손가락을...



"거, 거기는...거기는, 헤윽, 거기는 더러우니까아..."


"씻었으니까 괜찮잖아. 가만히 있어봐, 찾을 게, 찾을 게 있어."



필사적으로 반항하는 내 손을 쳐내고, 누나는 계속 내 뒷구멍을 쑤셔댄다.



"여기, 여긴가? 아니, 손가락 세 마디...아니지 너는 몸이 작으니까 두 마디..."


"오오옥?! 헤윽, 누, 누나 무슨..."



누나가 어딘가를 꾹 누르자 쾌감이 척추를 타고 뇌를 덮친다.


그리고 축 쳐져 있던 내 자지가 꼿꼿이 일어선다.



"여기, 여기가 남자의 약점...전립선이야."


"알, 알겠으니깐....그만, 호옥?! 그만 눌러어...헤윽, 요오..."



힘없이 늘어진 내 몸과는 대비되는 빳빳한 자지, 그 위로 누나가 올라선다.



"준비됐어?"


"흐윽...흑, 네, 네엣..."


"그럼..."



누나의 젖은 보지가 나의 귀두와 맞닿는다.


우리는 서로 신음을 흘리며 눈을 마주치고, 


-푹


누나가 단숨에 끝까지 꽂아 넣는다.



"흐으으..."


"잠, 잠깐만, 누나아..."


"이제 움직일게?"



넣은 상태로 하나가 된 것만으로 쾌감으로 죽을 것 같은데..움직인다닛...


-찔꺽


-찔꺽


-퍼억


-퍼억


살과 살이 부딪치는 소리, 그리고 찔꺽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점점 리듬이 빨라진다.


키 190에 90키로가 넘는 여자가 위에서 전력으로 찍어대는데, 아프기보단 찌릿찌릿한 쾌감이 너무 강렬하다.



"누, 누나아아, 헤으윽... 사, 사, 살려줘어어어.."


"흣...흣...흣....흐흣..."



뇌가 타버릴 것만 같다. 


한 번 왕복할 때마다 질벽에 비벼지는 귀두, 그 자극이 너무 세다.


갈 것 같애.


하지만 익숙한 그런 쿠퍼액이 쏟아져 나오는 그런 오르가즘이 아니야.


아랫배에서부터 근질근질한 느낌이 점점 커지는 느낌이 들더니, 허리가 자꾸만 위로 뜨려고 한다.



"누, 누나아아...나, 나 이제 가아, 가아아"


"흐읏...가, 가버려어.."



누나가 마지막으로 강하게 내려찍는가 싶더니, 내 허리를 꽉 잡고 혀를 섞는다.


-아아


온몸이 덜덜 떨리는가 싶더니, 눈이 뒤집혀 올라간다.


자지의 뿌리에서부터 요도의 안쪽을 살살 긁어주며 올라가는 느낌이 들더니,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쾌감이 척추와 뇌를 덮친다.



"오오윽?! 오옥? 오호옥, 오옥!"


"으흐으읏...으윽..."



뒤로 자동으로 젖혀지는 허리 때문에 키스하던 입술이 떨어진다.


내 입에서 나온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할 천박한 오혹거리는 신음이 터져 나온다.


경련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누나의 등을 긁어 댄다.


싸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첫 사정의 양은 굉장하다.


이 정도면 남은 게 없겠다 생각될 정도로 쏟아내고 난 후에야 누나가 내 허리를 놓아준다.



"후우...빼, 뺄게.."



첫 사정의 여운으로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다.


간헐적으로 몸을 떨며 남은 정액을 허공에 쏟아낸다.



"하아...하아..."



이제 끝난 건가...


어디서 가져왔는지 누나가 물을 마시곤 움직일 수 없는 나에게도 먹여준다.



"이거, 마셔."


-꿀꺽-꿀꺽


"파하앗..."


"좀 괜찮아?"


"괘, 괜찮아아.."


"그럼...좀 더 할거야, 괜찮지?"


"더, 더는 무리인데에.."


"그냥 누워만 있어, 내가 할 테니까."


"흐으읏..."



힘이 다 빠진 나를 가지곤 얼마나 더 할 생각인지...


전립선을 자극해서 자지를 다시 세워낸다.


누나는 지치지도 않는지 계속 내 위에서 허리를 돌려댄다.



그 후로 몇 시간..


계속 이어지는 섹스에 난 정신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반쯤 잠든 상태로 몇 번이나 쥐어짜였을까.



"진아, 씻고 자자. 그냥 자면 감기걸려."


"...흐에에..."


"진아, 들려? 너무 심하게 했나..."



누나가 날 집어들고 욕실로 향한다.


따뜻한 물을 틀더니 욕조에 어느 정도 물을 받아 놓는다.



"진아, 일어설 수 있겠어?"


"무리에요오..."


"그럼 일단...여기 들어가 있어."



따뜻한 욕조에 날 눕혀 주곤 누나가 먼저 씻기 시작한다.


누나의 다리 사이로 내가 몇 시간 동안 쏟아낸 정액이 덩어리째로 주륵주륵 흘러나온다.


씻는 누나 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려니,



"흐흫, 이게 여자한테 그렇게 좋다는데, 좀 아까운가?"


"...헤헤, 그런가...?"


"뭐...앞으로 먹을 일 많을 테니까"



누나가 씻는 걸 마치고, 한 팔로 내 허리를 감아 올려 정성스레 내 몸을 씻어 준다.


아까와는 대비되는 누나의 부드러운 손길에 노곤노곤한 기분이 든다.


체력적으로도 이미 한계에 다다랐기에...잠이 솔솔 온다.


몸과 머리를 말리고, 밖으로 나간다.


우리의 체액으로 푹 절은 침대 시트와 매트리스를 아이리스가 미리 교체해 놓았다.


누나가 나를 보송보송한 침대에 눕히고, 자기도 옆에 눕는다.


배게에 머리가 닿기 무섭게, 잠에 빠져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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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섹스 이후로 닷새, 장모님의 연회까지 앞으로 이틀이다.


화요일, 원강과의 미팅에서 내 능력을 누나에게 증명해 내어 신뢰를 얻고, 그 이후론 선백신도시 백운대표로써의 역할을 해 내고 있다.


내 방도 드디어 배송이 왔지만, 어차피 잠은 누나 방에서 자니까 내 방은 사무실...정도로 사용하고 있다.


누나의 차들 중 한 대를 받아, 진혁씨와 함께 미팅과 회의 장소들을 돌아다니고 있다.


오후 4~5시쯤 내가 먼저 퇴근하면, 저녁을 준비한다.


누나의 명령...이라 해야 할까, '제안' 때문에 집에선 항상 알몸 아니면 알몸 에이프런.


덕분에 눈에 띌 때 마다 누나가 내 몸을 만져댈 수 있다.


누나의 퇴근 후, 저녁식사가 끝나면, 매일같이 계속되는 긴 착정섹스.


확실히 선화제약의 스테미너제가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낮엔 미팅 한두 개에 저녁엔 두세 시간의 착정.


이 가혹한 스케줄 속에서도 기운찰 수 있으니 말이다.


또, 누나의 집요한 조교 때문에 엊그제부턴 스포츠 브라를 차고 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상상했던 생활은 아니지만, 요즈음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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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주 토요일...엔 내가 이성을 놓아 버리고 진이를 죽기 직전까지 몰고 갔었다.


진이의 말에 흥분하기도 했고...진이가 참지 않아도 된다-라고 하기도 했으니...


그 덕분에 일요일엔 진이가 하루 종일 일어나질 못했다.


발기를 유지시킨답시고 쑤셔댄 전립선이 예민해져서 앉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비벼댄 유두 때문에 웃옷을 걸치지도 못한 채로..


나도 미안해져서, 그 이후론 살살 하고 있다.


아직 출시 전인 스테미너제까지 구해줘 가면서.


진이는 나에게 자기 능력을 보여 주었고, 어느 정도는 일을 믿고 맏길 수 있게 되었다.


진이와의 생활은 플라토닉...에서 살짝은 왜곡된 듯하지만, 부부로써 가져야 할 생활의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런데...문제는 시위.


일주일이 더 지나자 시위는 점점 격해진다.


아직은 고성이 오가고 방패를 몸으로 밀치는 정도이지만, 언제 유혈사태가 일어날지 알 수가 없다.


실제 방패를 들고 있는 건 대부분 옴닉이지만, 방어선이 뚫린다면 우리들이 있는 지휘부까지 들이닥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스프롤 쪽에 지금 지휘부가 있는지 어떤지, 저쪽의 정확한 인원과 무장 상태가 어떤지 아직 아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대비가 제대로 안 되는 것도 걱정이다.


광룡에서 받아온 무기들 중 비살상은 배치 완료, 살상용은 아직 배치 전이다.


이걸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저쪽은 잃을 게 아무것도 없지만, 내 쪽은 너무나도 많단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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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되었던 연회의 날.


누나들을 다시 보는 날이기도 하고, 장모님이나 다른 도시 대표님들을 처음으로 뵙는 자리이기도 하니 신경써서 꾸미지 않으면 안 된다.


저번에 주문한 후, 처음 입어보는 드레스는 마음에 든다.


누나랑 살며 치마에 좀 익숙해진 것도 있고, 내가 보기에도 이게 정장보단 나은 것 같아서다.



"진아, 준비 다 했나?"


"다 했어, 잠깐만, 이제 나갈게."



머리까지 세팅을 끝낸 후 거실로 나간다.



"역시 이쁘네 드레스. 그걸로 사길 잘했다."


"이제 슬슬 가야지?"


"그래그래."



나는 누나 차로 누나와 함께, 진혁씨는 내 차로 따로 연회장에 향한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나는 내 차로, 누나는 누나 차로 따로 가야 하지만, 아무래도 누나랑 같이 가는 게 더 편하기도 하니까.


연회장은 선화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계열사 본사건물.



도착하고 보니, 처음 뵙는 선백야 대표님(장모님), 그리고 처형과 처제가 있다.



"아, 안녕하세요~"


"음? 아 사위 왔구만. 얼마나 됐다고 벌써 시은이하고 사이가 좋아졌대?"


"하하...누나가 잘 챙겨주셔서요."


"난 내 동생이 남자를 끼고 돌아다닐줄은 상상도 못했다 야."


"언니는 애 앞에서 무슨..."



장모님과 처형이 한 마디씩 거든다.


처제-처제라 해도 나보다 6살은 연상이긴 한데-는 벽에 기댄 채로 나에게 웃음만 지어 보인다.


처형과 처제는 누나랑 많이 닮았다.


누가 쌍둥이라면 그럴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그 덕분인지 초면임에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다.


뭐 이것저것 물어보시고, 처형이 누나를 좀 놀리기도 하고...그러다 처제가 입을 뗀다.



"그래서, 했나?"


"네, 네?"


"하하, 뭐 말하는지 알잖아? 뭐 시은언니가 연애하는 걸 본 적은 없기는 한데, 남자를 그렇게 안 건들고 놔둘 정도로 참을성 있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지."


"그, 그게.."



누나의 눈치를 본다.



"야 선시담, 너 형부한테 무슨 소리를..."


"아, 아직은...안했어요."


"흐흐...아직은...이라...뭐 언니가 부럽긴 하네."


"...야!!"


"시담아...적당히 해라."



결국 장모님이 중재에 나선다.



"저, 저희는 다른 손님분들 오시기 전에 백운 쪽에 인사 좀 드리러..."


"어어 그래그래 편한대로 해."



연회장 반대편에는 작은누나와 큰누나가 얘기를 나누고 있다.



"누나? 나 왔어."


"푸핫! 크크크...백진 너 옷이...어우...야 좀 새롭다?"



백화, 작은누나가 내 드레스를 보더니 웃어 댄다.


뭐 이 누나 앞에서 입은 거라 해 봤자 교복이나...긴바지에 반팔 정도가 다니까.


백연, 큰누나는 놀랐는지 눈이 휘둥그레져 날 쳐다본다.



"옷...옷 이쁘네. 요즘은 잘 지내?"


"둘이 얘기좀 해. 나 시은이 데리고 빠져있을테니까. 야 오랜만이다? 사돈관계가 될 줄은 몰랐는데 이게 이렇게 되네."



작은누나가 시은누나를 데리고 옆으로 빠진다.


큰누나와 둘만 남았다.



"요즘...은 잘 지내지. 최근 아침에 전화 못한 건 미안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할 일이 많아져서."


"어어, 회의 다니고 미팅 다니고 하는 건 들었어. 그건, 좀 할 만 한가?"


"어차피 학교에서 배운 거니까.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는 거 보다야 나은 거 같아."


"시은씨는 어때? 어떻게 사이는 좀..."


"이젠 정략결혼...때문에 결혼한 거라기 보단 그냥 일반적인 부부사이 정도? 서로 말 놓고...나는 시은누나 퇴근하면 밥 해주고, 같이 자거나..그 정도?"


"가, 같이 자? 혹시 시은씨가 너한테 손 대기라도...그러고 보니 옷도..."


"무, 무슨 소리야! 손 대긴 무슨...결혼도 안 했는데. 시은누나도 결혼할 때 까진 생각 없는거 같기도 하고...그리고 옷은 내가 고른 거야. 아무래도 드레스는 이런 게 맞지 않나 싶어서."


"그럼...다행...이고."


"내 걱정이 왜 이렇게 많아, 흐흫, 난 누나가 더 걱정되는데. 아침저녁 먹는건 나한테 보고하니까 괜찮은데, 뭐 일이 늘어난 거나, 그런 거 힘들진 않아?"


"으, 으응.."


"아니면...내가 그렇게 그립다거나..."


"..."


"아, 저번에 작은누나한테 들었지? 토요일 저녁에 밥 먹는 거, 그거 한 달에 한 번으로 옮긴다고."


"어어 저번에 들었어. 그럼...다음주 토요일인가?"


"다음 주 토요일이....마지막 주구나? 그렇지, 그러면. 저기, 이제 손님들 오시는데 일단 가 볼게. 이따가 다시 얘기하자."


"...그래, 나도 작은누나랑 할 게 있긴 해."


"시은누나! 손님들 오시는데, 갈까요?"


"어? 어어, 그래. 야 백화, 이따가 얘기하자."



백운과 선화의 우방국들의 대표들, 또는 거기서 보낸 대리참가자들.


몇 명은 저번 주부터의 회의들에서 본 적 있는 분들이다.


가서 인사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다가, 선백야 대표, 장모님의 목소리에 모두가 주목한다.


와 주셔서 감사하다, 선백의 탄생을 기념한다, 앞으로 우리 선백과의 관계를 잘 이어나가자, 하는 연설을 하시곤, 나와 누나에게 마이크를 넘겨 주신다.



"네 선시은입니다. 뭐 저희 어머니가 말씀하신 대로, 와 주셔서 감사하고요, 이제 선백 합병 작업이 길을 타기 시작했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합병이 안정될 거라 봅니다. 여기 분들 다 제가 아는 분들이고, 좋은 분들이시니 앞으로도 선백,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잘 즐기고, 서로 못 다한 이야기도 나누시고 가십시오, 감사합니다."


-짝짝짝


"넵 백운쪽 대표 백진입니다. 이번 합병이 계기가 되어 저희 백운과의 관계를 맺게 된 도시 분들도 많은 걸로 아는데, 선백의 이름 하에서, 잘 부탁드립니다."


-짝짝짝



다시 음악이 흘러 나오고,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눈다.


해운 대표님, 대림 대표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연이 누나랑 화 누나랑도 못 다한 이야기를 나눈다.


잠시 시은 누나와 구석의 소파에 앉아 쉬는 도중 내가 이야기를 꺼낸다.



"광룡이랑 원강 대표님도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좋은 분들 같아서."


"뭐...그쪽은 어디까지나 계약상대니까. 우방국...이라기엔 무리가 있지."


"그런가? 그래도 그쪽이랑은 친하게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 군사기업 쪽 친한 도시가 없으니까 지금은."


"그렇기도 하지...어? 잠깐만 나 전화 좀"


"다녀오셔요~"



급한 연락인지 누나의 개인 번호로 연락이 온다.


통화 시간이 길어지며 동시에 누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진다.


심각한 일이라도 생긴 건가?



"그...진아? 건설예정지 일인데, 잠깐 가 봐야 할 거 같애."


"심각한 거야 누나?"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는 말고. 될 수 있으면 다시 올 거야."


"그래 그러면, 누가 물어보시면 내가 장모님이랑...손님들한테는 말씀드릴 테니까."


"미안해. 잠깐 갔다올게."



누나가 급히 주차장으로 향한다.


주변 손님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본다.


누나는 별 일 아니라 했지만, 누나의 얼굴은 별 일 아닌 얼굴이 아니었다.


우선 장모님께 말씀을 드린다.


별 일 아니라는 반응이지만, 분명 걱정하고 계신다.


그러고선 누나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으려니, 진혁씨가 다가와 말을 건다.



"진씨? 시은씨가 연락하셨어요. 잠깐 현장에 진씨가 필요하다 하시는데."


"그래요? 그럼...가 봐야지. 그, 일단 주차장으로 가 있어요. 누나들 인사만 드리고 나갈 테니까."


"넵"



큰누나 작은누나 쪽으로 향한다. 



"누나들, 나 먼저 가 볼게."


"어어? 왜 갑자기?"


"잠깐 긴급한 일이 생겼는데 내가 필요하다 해서. 그 시은 누나가 별일 아니라 했으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몸조심하고."


"갔다올게.'



곧장 두 층 아래 주차장으로.


진혁씨가 내 차를 빼 놓고 대기하고 있다.


어디론가 무전을 하는 진혁씨, 신도시 쪽하고 연락하는 걸까.


차에 올라탄다.



"오셨네요,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어서 가죠."



앞쪽 격납고 문이 열리고, 차가 출발한다.


조금 가니 백미러로 연회가 진행 중인 최상층의 모습이 비친다.


누나가 무슨 일로 날 부른 걸까-생각하는데,



-쾅



폭음이 들린다.


차가 공중에서 오른쪽으로 쏠린다.


내 쪽 문이 통째로 떨어진다.


대시보드 쪽에서 연기가 치솟는다.


이미 오른 쪽으로 90도 회전한 차, 내 아래는 까마득한 바닥, 날 지지하는 건 이미 덜렁거리는 문짝을 붙든 내 얇은 두 팔뿐이다.


귀가 먹먹하다.


진혁씨가 뭐라 소리치는 것 같은데.


고개를 위로 들자 진혁씨가 심각한 얼굴로 나에게 손을 뻗고 있다.


손에 힘이 풀리는가 싶더니-중력이 느껴지지 않는다.


무언가 내게 가까워지는가 싶다.



저게 바닥인가





이게 끝인가?







누나...










-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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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연과 백화는 남동생이 갑자기 어딘가 가 봐야 한다고 하고 떠난 후 줄곧 연회장의 발코니에 나와 있었다.


어느 정도 지나자 차 한 대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날아간다.


어, 


저게 뭐지


빛나는 꼬리를 단 무언가가 백진의 차 방향으로 날아가더니, 



-쾅



"어? 어어? 지, 진아?"


백연의 다리에 힘이 풀린다.


백화의 얼굴이 창백해지며 이빨이 떨린다.


순식간에 연회장이 조용해지며, 추락하는 차로 모든 시선이 쏠린다.



-덜컹


그 순간, 연회장의 문이 강하게 열어젖혀진다.



"여기 여러분 전부 대피해 주셔야 합니다! 건물 내에서 테러리스트를 검거했습니다! 폭탄의 제거는 완료되었지만, 폭탄이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선화 경호팀장이 소리친다.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 선화 경호원들의 안내에 따라 벙커로 이동한다.


그러나 백연과 백화의 발은 떨어지지 않는다.



"어어어언니, 지, 지금 가야, 지금 저기로 가야 돼."



백진의 차가 떨어진 곳을 가리킨다.



"차, 차, 차는 안 돼. 위험해. 빨리, 사돈어른, 백야 대표님 어딨어."



백연이 굳어 있는 선백야를 발견하곤 달려간다.



"사돈어른! 제, 제발, 저거, 저거 보셨잖습니까. 진이, 진이가, 빨리 치안국 차를 불러서 저희 좀, 저희 좀 저쪽으로..."


"아, 알았네, 나, 나도 같이 가지."



선백야가 경호원 하나를 붙잡고 소리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선화 치안국 중갑차가 연회장의 발코니에 와 서고, 심장이 터질 듯한 사람 셋을 싣고 추락지점으로 향한다.




***




같은 시각, 선백 건설 예정지.


백진의 차와 정확히 같은 시간에, 시위대 앞 1차 방어선에서 폭발이 일어난다.


-쾅


최전선의 시위대가 피떡이 된 채 날아간다.



"씨발!"


"사장님, 괜찮으십니까?!"



선시은의 사무실로 총괄팀장이 들이닥친다.


발코니로 나가는 선시은,


3층 높이밖에 되자 않았기에, 시위 전선에서 타오르는 불길의 열기가 그대로 느껴진다.



"읏...씨이발..."



딱 보기에도 지옥도가 된 풍경.


여기저기에 시체조각들이 널려 있다.



"야! 총괄! 빨리, 쟤들 곧 들이닥칠 거거든? 우리가 했을 거라 생각할 테니까. 일단 내가 광룡에서 가져온 거, 비살상으로 최대출력으로 틀어, 우리가 한 거 아니라고 계속 방송하고."


"네, 넵!"



총괄팀장이 뛰쳐나간다.


그러자 선시은에게 전해지는 연락, 백진의 차가...미사일을...



"...어?"



연회장에 있어야 할 진이가 왜? 


미사일?


갑자기 왜 차를?


남진혁이 진이를 데리고 나갔다고?


이 씨발?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된 선시은, 문을 세게 열어젖힌다.


-쾅


문이 통째로 날아갔지만 시은에게 그런 건 신경쓸 게 아니었다.



"야, 총괄! 일시적으로 이곳에서의 내 모든 권한을 너에게 위임한다. 나 지금 갈 곳이 있다. 사리분별 잘 해서 하고, 저것들이랑 전쟁은 최대한 피하고."


"네, 네? 갑자기 어딜..."



그러나 경악으로 물든 얼굴로 뛰쳐나가는 사장을 총괄팀장은 막을 수 없었다.



"제발제발제발제발"



본래라면 지정 항로로만 다녀야 하지만, 벌금은 중요하지 않다.


건설예정지에서 연회장까지 직선 코스로 풀 악셀.



연회장에 다다르니 저 아래 도시의 바닥에 선화 치안국의 붉은 빛과 푸른 빛이 보인다.


그 가운데선 불길이 치솟는...시은이 직접 제작한 차.


백진에게 선물해 주었던 그 차다.


시뻘게진 눈에선 눈물이 흐르고,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악문 입에선 빠득빠득 소리만이 들려온다.



"제발...씨이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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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전, 금요일.


광헌경, 용운, 원해령의 통화방.


[광 헌경 님으로부터 연락입니다.]


[...어, 받아]


[언니, 들리지?...이제 계획 얘기를 좀 해 보자고.]


[...해령이도 있나?]


[저 있슴다. 계획...이라면 저번에 그거...]


[그래, 그거야.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운 언니 말도 들어 보고. 그 백운 남자애나, 선화 걔, 누구냐...선시은이었나, 거기만 때리는 건 별 타격이 없을 것 같단 말이지.]


[...그런가?]


[그래. 저기, 선화 쪽에 있는 우리 스파이들이 말하기를, 지금 스프롤을 밀어버리고 선백의 신도시를 건설하려는데, 시위가 심하다 했단 말이지.]


[시위 말씀이심까? 시위 진압이나 촉진이라면...]


[그게 아니야. 우리가 어디 한 쪽 편을 들 필요는 없어. 그냥, 중간에서 한 쪽씩 때려 주고, 슬쩍 빠지면 저 병신들은 서로가 때린 줄 알고 싸워댈 거야.]


[확실히...그러기에는 암살보단 테러가 확실할 거 같긴 함다. 뭐 임팩트도 있고.]


[...테러 대상은 그래서?]


[그걸 정해야지.]


[아, 그러고 보니 다음 주 토요일인가 선백야 대표가 연회를 연다는 듯 함다. 그때 관련 인원들 다 모일테니 거길 때리는 건 어떰까?]


[그거 좋네, 우리 짓인 것만 감추면 다른 피해 도시들도 스프롤 대 선백 전쟁에 불을 당겨줄 테니까.]


[...아니면...그 시위 전선에다가도 하나 터뜨려도 되고. 양쪽 한 번에 때리려면 그게 베스트 아닌가?...시위하는 것들은 건설사에서 그랬다고 생각할 거고...]


[선시은하고 백진도 치기는 해야 하는데...]


[아니면 둘 중 하나만 때려서 나머지 하나가 전쟁을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게 하는 건 어떰까? 전쟁이 확실시되면 선백 안정화까지 년 이상은 걸릴 거고, 잘되면 아예 와해될 수도 있슴다.]


[그럼...일단 그 연회장, 거기가 어딘지 알아낸 다음에, 거기 있는 선시은을 시위현장으로 끌어낸다. 그리고 백진을 따로 불러낸 다음, 백진, 시위현장, 연회장에 각각 테러를 가한다...정도면 될 거 같네.]


[어디에다 시키실 생각이심까?]


[...그 선화 쪽 북부 갱단 있잖아? 이름은 기억이 안 나긴 하는데...일단 거기 대가리랑 내가 연락이 닿긴 해.]


[그럼 됐네, 나한테 그쪽 연락처좀 알려줘. 이번 기회에 선백야를 죽이든 짜져 살게 하든 해야겠어.]


[그럼 일단 그렇게 알고 있겠슴다. 필요하신 거 있음 연락주십쇼.]


[...나도 간다 이제]


[어어 들어가들어가.]



**



그렇게 테러가 시행되었다.


백진은 혼수상태, 왼쪽 반신이 복구불가능할 정도의 중태.


그리고 남진혁은 하반신 불수가 되었다.


연회장의 테러는 진압, 그리고 선시은이 테러를 시위대의 짓이라 생각하지 않은 것, 이 두 가지의 실패점이 있었지만, '선백 합병의 저지' 라는 국경3국연맹의 목표는 성공이나 마찬가지였다.


선시은은 오해를 하지 않았으나, 눈앞에서 시위대가 고깃조각이 되어 버리는 걸 목격한 스프롤의 사람들은, 이것이 분명 선백건설의 짓이라 단정짓고 말았다.


거기다 시위 진압용 음파무기를 계속해서 쏘아대고 있는 건 오히려 무력분쟁을 부추길 뿐이었다.


또, 테러의 두 가지 실패점 중 하나는 다시 성공으로 돌아서려 한다.


연회장에서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은 선시은 본인이 행하는 고문에, 미리 준비해놓았던 '거짓' 뒷배경을 털어놓는다.


그것은 자신들은 소비에트 7국의 용병부대, 스프롤 시위대 쪽의 지휘부에 의해 고용되었다는 것.


시위대의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테러를 가한 것이라고, 그리고 선화의 엘리트 경호원 남진혁이 자신을 희생하며 백진의 사살계획을 세웠다고.


사랑하는 백진의 혼수 상태에 이미 정신이 나가 버린 선시은에겐 이게 거짓 진술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테러리스트의 머리에 주먹을 한 대 꽂아 넣어 기절시키고, 그 길로 병실에 누워 자책하던 남진혁에게 향한다.


-콰앙


병실 문이 떨여져 나갈 듯 열린다.




"대, 대표님...제가-"


-퍼억



무방비 상태의 남진혁의 배에 주먹을 꽂아 넣는다.


임플란트가 장착된 왼팔로.


190의 큰 키에 따라오는 긴 팔로.



"끄으윽...으윽...꺼억..."



앞으로 엎어진 남진혁의 머리를 잡아끌고 고개를 들게 한다.



"이 씨발롬아, 빈민가 출신 쓰레기 채용해줬더니 뒤통수를 쳐?"


"...끄어억...대, 대표님...제, 제가...흐어억..."



-짜악


뺨을 한 대


남진혁의 몸이 왼쪽으로 쓰러진다.



"제, 제 잘못입니다....진씨를...경호하지 못한...흐어억"



-짜악


한 대 더.


피로 가득 찬 입에서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끄륵...끄르륵"


"쳐 닥치고 들어. 이 좆같은 새끼야. 경호는 씨발, 경호원이 씨발 테러리스트면 무슨 씨발 상관이 있니 어?"


"으으윽...테러...라니이...무슨..."



배에 한 번 더.


앞으로 엎어진 남진혁이 정신을 잃는다.


선시은이 복도로 나가 지나가는 남의사를 붙잡아 세운다.



"야! 의사! 나 누군지 알지? 이 씹새끼, 테러리스트거든? 치안국 연락해놨으니까 곧 구속하러 올 텐데, 이 새끼 어떻게든 살려 놔라. 돈은 신경쓰지 말고."


"네, 넵! 간호사! 원장님 호출해!"



***



테러 이후 며칠이 지났을까.


선시은은 집의, 백진의 방의 침대에 누워 있다


시위...시위 지휘부가 고용했댔지?


바로 살상용 배치를-하고 생각하는 순간, 현장 총괄팀장에게서 연락이 온다.



[대표님! 지, 지금 지휘본부에 테러가]


"뭐? 총괄, 총괄, 괜찮아?"


[저, 저는 괜찮습니다. 대응을 어떻게 할까요, 대표님.]


"살상용 꺼내. 저번에 테러 그거 있지? 그것도 시위대쪽에서 한 거더라. 옴닉부대 살상용 무기 장착시키고 대기시키고, 지금 치안국 병력 보낼 테니까, 치안국 병 한 명에 옴닉 10대씩 붙여서 나 갈때까지 기다려."


[넵! 알겠습니다!]



지난번의 시위가 선백건설의 짓인 줄 아는 시위대 쪽에서 테러를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내막을 알 리 없는 선시은은 바로 언니, 선시영에게 연락, 선화 치안국 병력의 파견을 요청한다.


그리곤 곧장 현장으로 향하는 선시은.


현장에 가자 소방대가 진화에 여념이 없다.



"총괄! 준비는 다 끝났나?!"


"넵! 옴닉 400기, 치안국 정에병력 40인, 총 440인 분의 전투병력 대기중입니다!"


"밀고 들어가."


"넵! 전달하겠습니다!"



방패를 든 옴닉들로 이루어진 1차 저지선과 2차 저지선이 해체된다.


방패에 가린 시야가 트이자 보이는 총을 겨눈 옴닉들, 시위대는 당황한다.



[마지막 경고다. 5분 주겠다. 5분 안에 해산하고 물러나지 않는다면, 발포하겠다.]



설치된 선전용 스피커로 총괄팀장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시위대를 향한 전광판에는 5분 타이머가 돌아간다.


겁을 먹고 뒤로 빼는 사람들, 설마 진짜 쏘겠어-하며 버티는 사람들, 그리고 죽을 각오를 하고 맞서는 사람들이 뒤섞인다.



약속의 5분이 지나고, 아직 남아 있는 백수십 명의 사람들.



"흐음...뒤에서 폭탄이나 터뜨리는 쓰레기들이라 도망갈 줄 알았는데 말이지...총괄? 밀고 들어가."



쏟아지는 발포음.


앞쪽에서부터 차례차례 시체가 쌓여간다.


이제야 상황을 알아채고 도망가는 것들, 또는 엄폐물 뒤에서 대응사격하는 것들.


그러나 옴닉에게 대인용 무기가 통할 리가 없다.


또한, 군사의 띠와, 그 띠가 펼쳐 나가는 탄막 앞에선 엄폐물이란 아무 소용 없는 것이었다.


2주 이상 아무 진척이 없던 건설예정지 수복 지역이 점차 넓어져 갔다.


일곱 시간이 걸려 전 방향으로 백 미터씩 진격한 후, 바리케이드를 친다.



"오늘은 여기까지. 그렇지만 저쪽에서 대응해 올 경우, 그대로 갚아준다."


"넵!"



퇴근하는 선시은. 


밤에도 쉬는 일은 없다. 


그 '소비에트의 용병 부대' 의 뿌리를 찾아낼 생각이다.


이런 생활이 몇 주간 이어지자 선시은은 점점 폐인이 되어 간다.


'복수심' 이라는 연료를 태워 가는 기관차처럼.


그 '복수심' 이란 게 사실은 자기 몸을 이루는 나무판자인지도 모르고 스스로를 태워 가며 폭주하는 기관차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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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윽


머리가 깨질 것 같다.


여긴...병실?


마지막으로 기억나는 게....


나를 향해 손을 뻗는 진혁씨와...가까워지는 바닥.


와...그 높이에서 떨어졌는데 살았다고?


선화의 메디컬 케어는 매번 상상이상이다.



"어? 어 일어나셨어요?"


"어...네 방금..."



간호사가 방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뛰쳐나간다.



"원장님!! 원장님!! VIP 일어나셨습니다!!!"



복도에서 간호사의 외침이 들려온다.


그러더니 곧 금발 단발의 의사가 들어온다.



"그...백 진씨? 기억은 나시나요? 기억에 이상이 있으시거나 그런 건...?"


"아, 아마 없는 것 같은..데요? 그, 그보다 지금 제가 얼마나 누워 있었죠? 여긴 어디에요? 지, 진혁씨, 저랑 같은 차에 타고 있던 남자, 그 사람은..."


"이. 일단 하나씩, 김간! 선 사장님 빨리 불러, 남편분 일어나셨다고!"


"네, 넵!"


"일단...누워 계신 지는 한 달이 지났습니다. 오늘이 딱 4주째 토요일이네요."


"하, 한 달이요? 그러면..."


"그리고...여기는 선화중앙메디컬센터, 저는 센터 원장 카라 장 입니다."


"저, 저랑 같은 차, 아니지 난 따로 추락했으니...일단! 그 추락한 차에 다른 남자도 한 명 있었을 텐데, 그 사람은 어딨죠? 살아는 있나요?"


"그...분, 아, 남 진혁씨 말씀이십니까?"


"아, 네, 네"


"그 사람은...살아는 있습니다. 백 진씨처럼 혼수상태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지금은 구금 중입니다."


"구금이요? 왜, 왜요?"


"아 지금 오시네, 보호자 분이 아마 설명해 주실 겁니다."



"진, 진아? 일어났어?"



시은누나.


누나가 병실 문을 벌컥 열더니 뛰쳐들어온다.


곧장 나에게 달려와 나를 꽉 안아준다.



"나, 나는 네가...흐윽, 다시, 다시 못 일어나는 줄 알고...흐으윽..."


"이제 괜찮아, 괜찮아, 다시 일어났잖아? 나 안 죽었어 누나."



누나가 눈물을 폭포처럼 쏟아낸다.


한참 껴안고 운 뒤, 누나의 기분이 좀 추스려진 것 같자, 물 한 잔을 건넨다.



"이거 마셔, 진정하고. 물어볼 게 좀 있으니까."


"...흐윽, 어어, 물어볼 게 뭔데?"


"그...왜 갑자기 내 차가 폭발한 거야? 그냥 사고였어 아니면..."


"하아...그래, 이젠 말해도 되겠지. 테러였어. 너만을 노린 게 아닌, 나, 연회장의 사람들까지 타겟으로 한."


"누, 누나까지? 그리고 연회장? 사람들은 괜찮아? 누나는?"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거야 지금. 연회장은 폭탄 터지기 전에 체포했고, 내 쪽에선 나를 노린 거라기 보단, 시위대 쪽에서 터져서, 난 멀쩡해."


"그럼...진혁씨는? 갑자기 웬 구금..."



-빠득


누나가 이를 간다.



"...그 새끼...내가 너한테 그 새끼를 붙여 주는 게 아니었는데...내 잘못이지..."



누나의 얼굴이 썩어들어간다.



"걔였어. 그 새끼가 널 타겟으로 잡고 자살테러를 한 거라고. 너, 남진혁이 내 연락 받고 널 데리고 나왔다며? 난 그런 연락 한 적도 없어. 내가 널 위험한 현장에 왜 부르겠니."


"..."


"걔가 널 데리고 탁 트인 곳으로 나오자, 근처 건물에서 대기하던 저격수가 네 차에 미사일 사격을 했고, 그대로...맞아 버린 거지."


"무, 무슨...진혁씨랑 이야기를 좀..."


"안 돼. 그 새끼가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이거 다 연회장에서 체포한 새끼 입에서 나온 거니까, 의심할 여지는 없어."


"하, 하아...진혁씨가 그, 그런..."



마음을 다잡는다.


테러리스트에게서 공범 이야기가 나왔다는 건...아마 사실일 가능성이 높겠지.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누명이란 건데, 일개 경호원인 진혁 씨, 아니 남진혁에게 누명을 씌워 뭘 하겠다고 그러겠는가.



"지, 진아"



옆을 바라보니 누나가 진지한 얼굴로 무릎을 꿇고 있다.



"어? 옆에 의자 있는데.."


"아니야 그런 거. 지금 이 상황에서 말하긴 좀 이상하긴 한데, 들어줘."


"어어..."


"내가 너 없이 한 달을 살았어. 매일같이 일에 몰두하고, 테러단체 잡고...아무리 잊으려 해도 너랑 같이 살았던 2주가 안 앚혀지더라. 난 역시 너 없으면 안되는 것 같아."


"..."


"이미 결정된 것이긴 하지만, 이건 계약 따위가 아니라 내 진심이야."



"백 진, 나랑 결혼해 줄래?"



누나가 자켓 품 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열어 보여준다.


작은 반지.


프러포즈...라니.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려 한다.



"흑, 흐읏, 흑, 다, 당연하지..."


"사랑해, 진아."


"...흐윽, 나도, 나도 사랑해, 선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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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후, 


테러 때문에 왼쪽 반신이 망가진 나는 누나의 프러포즈를 받고서도, 한 차레 수술을 더 받았다.


날아간 왼팔과 왼쪽 다리, 그리고 감각이 사라진 오른쪽 다리를 기계로 대체하고 전뇌에 연결하는 수술, 임플란트 수술이다.


의료기술로는 최고인 선화에서 나에게 맞춤으로 제작해 준 임플란트에다, 그 선화에서 최고로 치는 병원이 수술을 했으니 적응기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걷는 연습과, 왼팔을 쓰는 연습 몇 주간, 그것만으로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로 재활되었다.


내가 걸을 수 있게 되자, 누나와 함께 곧장 결혼식 준비를 하러 다녔다.


식장은 백운 본사건물 내의 가장 큰 홀. 


주례는 일주일에 걸친 대수술로 날 살려주신 선화 메디컬센터 원장님, 카라 장.


나의 발목까지 오는 흰색 웨딩드레스와 누나의 새까만 턱시도는 저번, 내 정장을 맞춘 가게, CuO에서 손수 제작해주었다.



내가 깨어나고 나서 두 달. 누나를 처음 만난 지는 세 달 반째 되는 날이다.


좀 빠른 감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래도 좋다.


봄철에 접어들며 날씨가 조금 씩 풀리는 토요일, 수많은 하객들이 백운으로 모여들었다.


사실...저번 테러 미수 사건도 있고 해서, 선화와 백운에서 가족들과 친척들만 모여 식을 올릴 예정이었는데, 다른 도시들 대표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연락하여 청첩장에 대해 물어보기에, 결국 연락해 주신 분들은 초대하기로 했다.


그래서 주변 경계를 철저히 해 저번 같은 사건이 일어나지 않게 대비를 했다.



양 가 아버지께서 초를 켜실 차레엔...뭐 양쪽 다 아버지가 없으니, 누나 쪽에선 장모님이, 내 쪽에선 작은누나가 나가 대신 했다.


사회는 내 고등학교 시절 경영수업 선생님이 봐 주신다.


주례로 병원장님이 올라가시고, 박수가 터져 나온다.



"다음으론 신부 입장이 있겠습니다! 누구보다도 듬직한 아내가 될 신부 선 시은 양이 입장할 때,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힘찬 박수로 신부를 맞아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입장!"



신랑 대기실의 화면으로 누나가 걸어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내가 깨어나고 난 뒤, 어느 때보다도 힘찬 모습에 눈물이 나온다.



"어어, 신랑분, 우시면 화장 다 지워져요."


"앗, 네네."


"이제 준비하셔야지."



"이어서 오늘 예식의 하이라이트, 꽃 보다 아름다운 신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을 어릴 적 부터 너무나도 소중히 업어 키운 누나분과 함께 입장할 텐데요, 하객 여러분들께서는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축하의 박수로 환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 신랑, 입장!"



옆에 긴장해서 서 있는 큰누나를 바라본다.



"누나, 가자."



누나의 손을 잡고 버진로드를 걸어나간다.


누나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울음을 참고 있는 게 보인다.



양쪽에서 터져 나오는 박수를 받으며 단상 앞에 서 있는 시은누나에게 다가간다.


몇 번 연습한 대로 누나는 내 보조를 맞춰 잘 걸어 주었다.


연이 누나가 날 보내 주고, 작은누나 옆에 가 앉는다.



"이어 두 주인공이 부부가 되는 예를 갖추는, 신부, 신랑의 맞절 순서입니다. 신부, 신랑은 마주보시길 바랍니다."



옆으로 돌아 서 누나를 올려다본다.


긴장해 굳은 얼굴, 하지만 확실히 웃고 있다.



"신부, 신랑, 맞절! 여러분 뜨거운 박수 부탁드립니다."



서로에게 맞절.


몇 번이고 몸을 맞댄 사이지만, 이런 상황에선 서로 어색할 수 밖에 없다.



"다음은 두 사람이 하객 여러분들이 증인이 되는 혼인 서약을 하겠습니다."



도우미로부터 미리 적어 놓은 혼인 서약서를 받아 든다.



"저희 두 사람은 부부가 되는 이 자리에서 참석해 주신 여러분들 앞에 다음과 같이 서약합니다."


"나 신부 선 시은은 신랑 백 진을 남편으로 맞아 다음의 서약을 지키며 함께 하겠습니다."


"나 신랑 백 진은 신부 선 시은을 아내로 맞아 다음의 서약을 지키며 함께 하겠습니다.


"하나, 나 선 시은은 아내의 도리로써 남편을 예절로써 대하겠습니다."


"하나, 나 백 진은 남편의 도리로써 아내를 존경하며 봉사하겠습니다."


"하나, 나 선 시은은 남편 백 진이 어디에서든 꿀리지 않는 남자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나 백 진은 아내 선 시은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남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나 선 시은은 선백의 어머니로써 선백을 위해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나 백 진은 선백의 아버지로써 선백을 위해 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 나 선 시은은 남편 백 진의 아내로써 평생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하나, 나 백 진은 아내 선 시은의 남편으로써 평생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둘은, 부부로써 새로운 시작으로,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을 하객 여러분들 앞에서 맹세합니다."


"2170년 4월 21일, 신부 선 시은, 신랑 백 진."



박수가 터져 나온다.



"이로써 신부 선 시은 양과 신랑 백 진 군은 양가 친척들과 소중한 지인분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평생을 함께할 부부가 되었습니다. 이 순간에 이곳에 참여한 모두가 증인이 되어 이 결혼이 이루어짐을 엄숙히 선언합니다."



주례 선생님의 성혼 선언.



"이어 존경하는 주례 선생님으로부터 주례사가 있겠습니다."


"먼저, 이 자리를 빛내 주신 하객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올리겠습니다. 저는 신랑의 사고 이후 신랑의 목숨을 살린, 선화 메디컬센터의 원장, 카라 장 이라고 합니다."


"어차피 길게 해서 이미 엄청나게 끈끈한 사이인 신부 신랑의 사이에 더 도움이 되지는 못할 거라 생각되니, 당부의 말만 올리겠습니다. 제가 올해 결혼 10년차입니다. 12년 전, 학신대에서 의과생활을 하던 중, 동기였던 제 남편과 눈이 맞아 결혼까지 이어졌습니다."


"제가 이런...주례를 설 정도로 오래 산 건 아니지만, 서른 중후반의 나이에, 인생의 거의 1/3을 지금의 남편과 함께 살면서 단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간단한 이야기이지만, 서로를 이해 하려 노력한다, 그것 만으로 서로 얼굴 붉힐 일은 없어집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어떨지, 왜 그런 행동이나 말을 했는지 곰곰히 생각해보면, 싸울 일이라는 건 없다고 단언드릴 수 있습니다."


"신랑, 신랑은 제가 준 새 삶과, 이 멋진 신부가 준 새 삶을 허투루 쓰지 않도록 하시고, 신부, 신부는 이런 이상적인 남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앞으로 두 사람의 결혼 생활에 빛이 비추기를 바랍니다."



"주례 선생님께서 앞날의 귀감이 될 좋은 말씀 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지금까지 신부, 신랑을 보살펴 주신 양가에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먼저 신랑 측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단상에서 내려와 큰누나와 작은누나 앞에 선다.


큰누나는 방금까지 울었는지 눈이 빨갛고, 작은누나는 친구인 시은누나가 앞에서 절을 한다는 것에 재미있어하는 눈치이다.


내가 큰누나 앞에, 시은누나가 작은누나 앞에 선다.



"신부, 신랑, 인사!"



같이 큰절을 올린다. 


그러고선, 큰누나에게 다가가 안아 준다.



"누나, 내가 그렇게 감동적이야? 흐흫, 잘생긴 얼굴에 눈 부으니깐 웃기네, 이따 다시 안아 줄게."



그러는 동안 옆에서 시은 누나와 작은누나가 서로 안으며, 



"야 선시은, 너 진이 울리기만 해, 잘 하자?"


"백화 넌 이따가 보자 임마."



친구끼리의 담소...같은 분위기이다.



"다음으론 신부 측에 인사드리겠습니다."



단상을 건너 반대편으로 간다.


이쪽은...아버지 석은 비어 있고, 장모님만 앉아 계신다.


항상 선글라스를 쓰고 계시는 장모님의 표정은 읽을 수가 없다.



"신부, 신랑, 인사!"



이쪽에도 큰절.


장모님이 다가와 안아 주신다.



"어우 야, 난 시은이 얘를 누구한테 시집보낼지...너무 걱정이었는데, 진이면 충분하지 안 그래? 하하"


"엄마는 또 무슨 소리를..."



뭐...연회 때도 그러긴 했고 뭐...날 잘 맞아주시는 것 같아 기쁠 따름이다.




"다음은 오늘 두 사람을 축복해주신 내빈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내빈 여러분들께서는 큰 박수로 답례하여 주십시오."


"신부, 신랑 내빈께 인사!"



뒤를 돌아선 후 인사.


큰누나는 결국 울고 있고, 작은누나는 그런 큰누나에게 손수건을 건네 준다.


처형은 무표정, 처제는 그런 처형에게 웃으라고 뭐라뭐라 하며 박수를 쳐 주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도 보이고, 백운 계열사 사장들인 친척들도 보인다.



"이제 마지막으로 두 사람의 힘찬 행진이 있겠습니다! 오늘 새로이 하나가 된 두 사람이 첫 발을 내딛는 순간입니다. 하객 여러분은 어느 때보다도 큰 박수로, 행진이 끝날 때까지 축하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부, 신랑, 행진!"



마지막으로, 양쪽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버진 로드를 걸어 나간다.


누나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만, 우리 둘의 발걸음은 가볍다.


버진 로드의 끝에 선 후, 양쪽에서 꽃잎이 흩뿌려지는 가운데, 계획에 없던 사회자의 말이 들려온다.



"정말로 마지막 순서! 신부 신랑의 키스가 있겠습니다! 신부와 신랑은 서로를 바라봐주시고, 준비되는대로 키스를 해 주시길 바랍니다! 신랑, 부케로 가리는 건 안 됩니다!"


"이, 이게 무슨...진아, 너가 한 거야?"


"아, 아니 이건...나도 몰랐는데..."


"키, 키스라니, 사람들 다 보는데..."



누나가 계속 망설인다.



"누나가 할 거야? 아님 내가 해?"


"어어..."



이게 뭐하는 짓이야, 


그냥 누나 얼굴을 잡아 끌어내린다.


그러곤 입을 맞춘다.


첫 경험의 날, 그때의 키스와 같이 끈적한 키스.


환호성이 터져 나온다.


누나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오늘...오늘 밤이 첫날밤이지? 나 일어난 뒤로는 한 번도 못했으니까...오늘 밤엔, 마음대로 해도 돼❤"


누나와 함께 붉게 물들인 얼굴로 식장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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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logue.




결혼 1주년 기념일.


누나와 만난 지 두세달 만에 죽을 뻔 하기도 하고, 결혼까지 한 것에 비하면, 지난 일 년은 별 일 없이 지나갔다.


우리 결혼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남진혁의 처분이 결정되었다. 


그건 하반신 불수인 상태에서 기초적 다리 임플란트, 즉 걸을 수 있을 정도로만 만든 다음 스프롤 바깥의 황무지로 추방하는 것.


죽이는 건 너무 자비로운 처사라고 누나가 강력히 주장해서 그런 처분이 내려진 것 같다.


뭐...나머지 테러리스트들은 바로 사형이긴 했는데, 남진혁은 제대로 찍힌 것 같았다.


그 이후, 스프롤에서의 전쟁...은 좀 심해지긴 했서 얼마 전에야 완전히 끝났다.


다행인 건 그래도 철거구역 바깥의 스프롤 주민들은 참전하지 않았던 것 정도?


총격전과 테러를 주고받고, 조금씩조금씩 전선을 넓혀 나갔다.


그래도 내 테러 때문에 누나가 인정사정없이 계획되었던 지역 내에 있던 스프롤을 전부 밀어냈다고 한다.


한동안 선화와 백운 도심에선 치안부가 돌아다녔었다.


그걸로 테러 미수도 몇 번 잡아내기도 했고.


그래도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스프롤 지역에 벽을 치고, 선백 신도시의 착공에 들어간다.


곧 있으면 이 선화건설 펜트하우스에서 우리 둘만을 위한 집으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선백 그룹으로의 합병은 완료, 선백 신도심 건설만 완료된다면 선백은 영토로든, 경제력이든 한반도 연방 내 2위로 올라서게 될 것이다.


누나와의 생활은 최고, 이보다 더 나을 수가 없을 정도이다.


누나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 난 다 받아줄 수 있다.



'정략 결혼' 으로써는 이보다 더 좋은 엔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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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 : 와 시바 이게 한 달 통째로 걸릴 줄은 몰랐네.


주제가 정략결혼이길래, 다들 중세판타지나 현대 기업물 쓸거라 생각하고, 좀 다른 걸 쓰고 싶었음.


그래서 정략결혼...그룹과 그룹 사이의 계약 관계로 묶을 수 있는 주제를 생각해 보다가, 기업도시국가, 그 둘의 합병이 먼저 생각났고, 


그 뒤로 따라오는 기업도시국가 하면 사이버펑크지 하는 생각이 나왔음.


그래서...이것저것 설정 짜고, 짜다보니 재밌어져서 계속 살 붙이고, 그러다 보니 너무 일이 커져버린 거임.


이 세계관 여기서 갖다버리기엔 아까워서 글쓰기 연습도 할 겸 남역챈에 연재할 다음 작품에 쓰기로 했음.


주인공은 누명을 쓰고 추방당한 남진혁. 


상층 로얄패밀리 이야기를 쓰다보니 사이버펑크 맛이 많이 안 나서 완전 하층민으로 시작하는 걸 써보고싶음.


사실 지금 이것도 많이 줄인 건데, 중간에 인격교환하고 섹스하는거나, 너무나 외로워하고 힘들어하는 큰누나 백연한테 대 주는 거나, 처형 선시영하고의 갈등이나 그런 거 잘라냈음.


사실 시간만 있었으면 썼을텐데, 마감이 며칠 안 남았길래 그냥 결말까지 달렸음.


이거 글자수 돌리니까 70,567자, 공백포함 9만5천자 나온다.


보통 웹소가 한 화에 4~5천정도인 걸로 아는데 거의 십몇회차를 쓴거네.


이러니까 손목이 맛이가지.


그리고 여긴 진이 옷들.

이게 실내복


연회때 입은 와인 드레스


첫경험날 승부복


누나의 '부탁' 에 입은 알몸 에이프런


마지막으로 웨딩드레스까지.




뭐 궁금한거 있으면 댓글로 물어봐주시고, 끝까지 읽어줬으면 감사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