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사인은 과로였다.



장례식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을 뿐 더러, 친구 하나 없는, 가족이 전부인 사람이었기에.

조문객은 없었다.



어머니는 본래 대기업에서 일하셨었지만,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알 수 없는 이유로 해고 당하셨고.

그 뒤로는 공사판을 뛰어다니셨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지켰던 사람은 아버지, 나, 그리고 이제 갓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쌍둥이 여동생 둘 뿐 이었다.


장례식장의 풍경은 변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으셨는지, 항상 화장실로 가셔서 눈물을 훔치셨고.


아직 나이가 어린 두 여동생들은 식장의 구석에 앉아 서로 게임이나 만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스마트폰으로 아동 만화를 보고 있었다.


아마, 어머니의 죽음이 실감나지 않은 것 이리라.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침착했다.


스스로도 소름이 끼칠 정도로.


나도 여동생들처럼 이 상황을 받아드리지 못하는 것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나는 언제나 처럼 구석에 앉아 놀고 있는 여동생들을 나지막히 바라보다가, 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는 느린 걸음으로 천천히 건물의 옥상으로 올라갔다.



낡은 쇳소리가 나는 문을 열고, 나는 곧장 난간까지 직행했다.


그리고 난간 앞에 선 체로, 주머니에서 담배와 라이터를 꺼냈다.



담배갑을 열어보니 한 개비 밖에 남지 않았다.



"아, 돗대네."



뭐, 상관은 없었다.


담배는 블랙데빌이었다.


항상 같은 담배였다.



연초를 꽉꽉 넣은 담배여서, 다른 담배 2~3개비가 타는 시간에 블랙데빌은 1개비가 탄다.


나는 담배를 그 자리에서 여러 개비를 피는 일이 많았기에, "그냥 한 개비 피고 끝내자" 라는 마인드로 블랙데빌을 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초콜릿을 좋아했기에, 초콜릿 향도 살짝 첨부가 된 이 담배를 보며, "이 담배는 나를 위한 담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할 정도로 내 취향인 담배였다.


물론, 초콜릿 향은 거의 나지 않았지만.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를 담배에 갖다 댔다.


그리고 나는 라이터의 불의 켰다.


ㅡ치직



딱히 만화에서 나올법한 극적인 구원은 바라지 않았다.


···애초에, 해줄 사람도 없고.



그냥, 이제는 죽은 사람이라는 느낌도 든다.


나는 얼마나 더 살아갈 수 있으려나.


오늘은 절망이요, 내일은 헤아릴 수 없나니.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래, 숨만 쉬는 시체.


이게 맞겠지.






···바람이 강하게 불어서 라이터의 불이 제대로 켜지지않았다.



ㅡ치지직


ㅡ치직


ㅡ칙, 칙, 칙, 치직, 치직


손으로 바람을 가려도, 라이터의 불은 켜지지않았다.



"···하아. ······되는 일이 없네 진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침착한 이유는 계단을 올라오면서 깨달았다.



나까지 무너지면, 우리 집은 더 이상 답이 없었다.


원래부터 가난했던 집안.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었으며, 생계는 오로지 어머니가 전부 다 책임지셨다.


아버지는 몸이 약했기에, 간단한 부업조차 하지 못하셨다.



그런데 지금 상황을 봐라.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죽어서, 곤란해졌다.


아, 이렇게 말하니까 어머니를 도구처럼 여긴 것 같네.



어쩌면 그랬던 것인 걸까?


어머니한테 제대로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나?


···모르겠다.



아무튼, 지금 우리 집안의 생계를 이어갈 사람은 나 밖에 없다.


이제 초등학생인 쌍둥이 여동생이 할 일 따위는 없을뿐더러, 시키지도 않는다.


아버지는··· 아마 이번 일로 몸이 더 안 좋아지실 것이고.



나 밖에 없다.

나 뿐이다.



남자여도 할 수 밖에 없다.


식당 서빙이나, 간단한 상하차 정도라면 수 없이 해왔다.


할 수 있다.



···그런 나의 결의를 조금 센 바람이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래, 이 뭣도아닌 바람 때문에.



앞으로의 일만 생각하면 숨이 턱턱 막혔다.



아래를 바라보면, 끝없는 칠흑이 내 하반신을 감싸고 있었고.


앞을 바라보면, 칼들이 내게 날아오고 있었으며.


뒤를 바라보면 나를 부여잡고 세상 서럽게 울고 있는 여동생과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는 아버지가 있었다.



나는 완전히 고립되어버린 것이었다.



"···빠져나갈 수가 없네······."



"어디를 못 빠져나가는데?"



"···!!"



대꾸가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나는 순간 놀라서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그녀」가 서있었다.



"불 필요해?"



그녀는 자신의 라이터를 꺼내며 말했다.


얼굴이 원래부터 웃는 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입꼬리만 올라가있는 그녀가 미소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내가 미쳤지.


상황이 이런데 여자 얼굴 보고 기분이 풀리려고 하고 말이야···.



"아··· 감사합니다···"



그녀의 라이터는 전기 라이터였다.


전원 버튼을 누르고, 라이터에 담배를 갖다 대면 불이 붙는 방식.


그래서 바람이 강하게 불어도 상관 없었다.



"오. 블랙 데빌이네?

이게 웬일이야."



그녀는 내가 나를 신기하다는 듯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주머니를 뒤적 거리더니, 나와 똑같은 담배를 꺼내보였다.



"나도 블랙데빌이거든."



나와 똑같은 담배였다.


그녀의 말대로, 이 담배는 피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에, 왠지 모를 동질감이 생겼다.




그 때 부터였다.


그녀, [박하린]과 연줄이 시작된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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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장례식이 끝났다.


나를 반긴 것은 어김없이 같은 날 이었다.




아, 그 날 이후로 자신을 박하린이라고 소개한 여자와는 빠르게 친해졌다.


사실 초면에 반말을 찍찍 하길래 첫인상은 좋지 못했지만, 어떻게든 되었다.



만난 지는 한 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통하는 게 많았다.


성격부터, 음식취향에,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리고··· 뭐 이것저것 더.




항상 그녀가 먼저 연락했다.


하필 대학생들의 종강 시즌과 겹치는 바람에, 아직 알바 자리도 구하지 못한 나여서, 그녀가 부르면 항상 응했다.



그녀와 보내는 시간은 나름 즐거웠다.


만나서 카페도 가고, 영화도 봤으며, 같이 옥상에 가서 담배를 피면서 좋아하는 밴드의 신곡과 관련된 이야기도 했고.


그리고 칵테일 바도 가보고, ···잔뜩 취한 나머지 호텔에서 자버리기도 했고. 아 물론 관계는 맺지 않았다. ···진짜로.



···아무튼 2주 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어느새 하린이와의 사이는 돈독해졌다.


마치 오래 알고 지내던 소꿉친구였던 것처럼. 정말 금세 친해졌다.


이제는 살짝 웃을 수도 있게 되었다.



하린이를 생각하면 뭔가 마음속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람이 솔솔 불어오는 숲 속에서 근심걱정없이 자는 느낌이라고 해아될까나···


···이런 감정을 느낀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다.


하린이의 집에서 같이 술을 마시다 그만 너무 취한 나머지 집안 사정을 다 털어놓았다.


어릴 때부터 힘든 건 절대로 말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어차피, 말해도 해결 되지 않으니까. 


어차피, 변하지 않을테니까.



"그럼 내가 도와줄게."



"···어?"




하린이의 얼굴을 바라봤다. 


늘 짓는 상큼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저 얼굴에서는 일절의 거짓도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기지개를 피며 말했다.



"흐으~~ 말만으로도 고맙다~"



"행동으로도 보여줄거야."





"···너 지금 술 취해서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일어나면 했던 말 후회할걸?"



괜히 화가 났다.


나는 이 문제 때문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데, 헤실헤실 거리면서 도와준다고 하니까.


지금 내 상황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화가 났다.


···사실 그냥 내가 추악하고, 찌질할 뿐이었다.


화내면 안될 상황인 것도, 애초에 일반인이라면 절대 화낼 포인트가 없었다.



"너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나랑 아빠, 동생들을 위해 피나는 노력을 했어."


추악하고.


"아빠는 또 스스로를 탓하면서 울고 계실 거야."


멍청하고, 찌질해서는


"동생들은··· 이제 초등학교 들어가는 애들이야.

부모의 소중함을 제대로 깨닫기 전인 애들이라고."



자신을 감싸주려는 사람에게 비수를 던지고 있는 나였다.




"···맞아."



그리고 그런 나의 비수를 모두 막아내고.



"난 남붕이 너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이제부터 알아갈거야."




다시 한번.




"그러니까, 열심히 살아가는 거야."



나를 안아주었다.



달콤한 말들에 기대고 싶었다.


잘한 게 뭐가 있다고, 눈물이 흐르는 지 모르겠다.


그냥. 정신적으로 너무 한계에 몰려있었나 보다.


힘내··· 같은 한 마디를 너무나도 듣고 싶었다.

아니, 그냥 눈 앞에 있는 나쁜 일들을 전부 다 해결해주고, 나를 감싸주는 백마 탄 공주님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공주님은 내 앞에 있었다.


한 달 이라는 시간 동안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나도 하린이를 안았다.


큰 체격 탓에 마치 갓난 아기가 엄마의 품에 안기는 듯한 그림이 머리속에 피어올랐지만, 금세 사라졌다.


그리고 사과했다.



"···미······안······지짜로···미아내······"



술을 너무 많이 들이켜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잘 됐었는데···.



"미안하면 열심히 살아가자."



"흑······응······열씨미살게에······"



어쩌면 나는, 그토록 바라던 구원을 받을 걸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나는, 하린이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을 느끼며, 닥쳐오는 수마에 그대로 빠져 잠에 들었다.






"······라니까···."



하린이가 뭐라고 말한 것 같은데···


내 귀에 닿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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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하린이는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지켰다.


하린이는 엄청난 재산의 소유자였다.


하지만 재산으로 인해 사람들이 갖는 시선들에 선입견 때문에 일부러 쓰지 않았다고···



하린이는 전력을 다해서 나의 가족을 도와주었다.


덕분에 아버지의 병도 많이 나아지셨고, 여동생들에게도 용돈을 주고, 장난감, 게임기, 학용품 등등을 사주며 챙겨주었다.


그 덕에 하린이와 우리 가족들의 사이는 정말 돈독해졌다.



아버지와 동생들이 웃으며 행복하게 많은 음식들을 먹는 모습을 보니, 마음속에서 행복감이 피어올랐다.


아, 그리고 아버지와 여동생을 자신의 남아있는 단독 주택에 살게 해주어서 우리 가족들은 좁은 집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하린이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지게 되었다.


하린이는 괜찮다고 하지만, 어떻게 그 말을 듣고 "진짜? 그럼 안 갚고 연락도 잘 안해야지~" 라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린이의 집에서 같이 살게 되었다.


연인 사이니까, 당연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고 여느 때 처럼, 하린이와 몸을 맞대고 잠에 들었다.




"남붕아. 자?"



···들려고 했다.

잠에 빠지기 직전 들린 하린이의 목소리로 인해 깼다.



"······"


대꾸는 하지 않았다.


그··· 뭐라할까, 그냥 그럴 때 있잖아.


뭔가 자는 척 하고 싶고···그럴 때······.



"후··· 정말이지,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라니까?"



목소리만 들어도 그녀가 싱긋 웃고있었다는 게 느껴져서, 나도 덩달아 웃을 뻔했지만, 자는 척을 하고 있는 나였기에, 웃음을 참았다.



"여기까지 오는 게 마냥 순탄치는 않았어.


그래도, 마지막에는 내가 이겼어.




···그나저나, 다시 만났을 때, 조금 실망이었지.


어떻게 나 같은 소꿉친구를 잊어버릴 수가 있는 거야?"



하린이는 놀라운 말을 하며 내 볼을 검지손가락으로 살짝 눌렀다.


내가 하린이와 소꿉친구였다니···.


나중에 이걸로 한번 놀래켜줘야겠다.


처음부터 소꿉친구였던 걸 알고 있었다면서···.


뭐, 조금 양심에 찔리기는 하지만··· 하린이가 좋아할테니까.



"바보. 남붕이는 바보야.



···인생이 불행해진 원인이 나인지도 모르는 바보."



······뭐?

···지금 무슨 소리를······



"사실 학생 때 부터 사귀고 싶었는데, 다가갈 용기가 없었어.


근데 자꾸 너한테 벌레새끼들이 붙으니까. 진짜 개좆같았어. 알아? 응?


아아, 모르겠지. 애초에 내 존재 자체를 잊고 살았을테니까, 내가 어떤 감정을 가졌을지 알고싶지도 않았겠지.


그 벌레새끼들 하나하나 처리할 때, 그 새끼들이 짓는 표정을 남붕이 너가 봤었어야 했는데··· 진짜 가관이었거든 킥킥······


벌레새끼들을 다 처리하고 나서, 난 생각했어.


"어떻게하면 남붕이 너를 완벽한 내 남자로 만들 수 있을까" 라고 말이야.


많은 생각을 해봤어.

약을 써서 중독시켜버릴까? 전문의들을 고용해서 세뇌시켜버릴까? 돈으로 매수할까? ······아니면 폭력으로 굴복시킬까?



근데, 아주 쉬운 방법이 있더라고?


남붕이 너가 나한테 의지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드는 거야.


뭐, 조교는 그 뒤에 해도 늦지 않으니까.


나는 너희 집의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어.


그리고 정보를 모으다가 마침 너희 어머니가 우리 부모님 직장에 다니시는 것을 알게 되었어.


덕분에 정말 수월했지.


우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서 너희 집안의 돈줄을 끊게 했어.


아버지께서는 편찮으셔서 일도 못하고, 여동생들은 어리니까, 아마 너와 어머니가 허우적대면서 일을 하기 시작할테지.


거기서 내가 구세주처럼 등장하는 거야.


아,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건 정말 유감이었어.


그건 계획에 없었는데···.


뭐, 아쉬울 따름이지.


어쨌든 계획이 꼬이지 않고, 너와 눈물겨운 재회를 했지.


그 뒤로는 참 쉬웠어.


너희 아버지도, 동생들도, 이젠 내가 없으면 못 살 지경까지 와버렸으니까."




······미쳤다.

미쳤어··· 미친새끼··· 내 앞에 있는 이 존재는 미쳐있다.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편안했던 이 자리가, 지금은 너무나도 불편했다.




"남붕아. 너 안자고 있는 거 알아.

너가 자는 모습을 몇 번이나 봤는데, 내가 구분 못할 줄 알고?"



···!!



"아. 눈은 굳이 안떠도 돼.


그냥 내가 하는 말 계속 들어.


애초에 너가 이제 할 수 있는 건 없으니까.


만약 너가 이 이야기를 가족한테 하면, 모든 지원을 끊어버릴 거야.


그럼 다시 그 좁아터진 방 아니면 길바닥을 나뒹굴겠지.


과연 네 가족들이 버틸 수 있을까?


너가 나한테서 벗어나 혼자 일한다고 해도, 애초에 알바 따위로 4인 가족을 책임질 수 있을리가 없잖아.


벗어나고 싶으면 벗어나. 이제 행복을 찾은 네 가족들이 다시 불행해지는 꼴 보고싶으면.


아, 그리고 내 심기 불편하게 해도 지원 끊어버릴 거니까, 잘 생각하는게 좋을 거야."



나는 눈을 조심스럽게 떴다.

그녀는 싱긋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한 말··· 다 사실이야···?"



"응. 전부 다."



"너 진짜···"



"그래서?"



"······?"



"그래서 니가 뭘 할 수 있는데?"



"······"


박하린의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무엇도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무력감을 느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것 밖에 없었다.


그녀가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었다.



"우는 것도 너무 예뻐. 완벽해.

대체 어디서 이런 생명이 나온 거야? 응?"



그녀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녀의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


"하아··· 정복감 미쳤네 진짜.


빨리 너가 내 밑에 깔려서 헐떡이는 걸 보고싶다···.


아, 지금 그냥 해버릴까?


하지만, 그전에 해야할 게 있지."



그녀는 힘이 잔뜩 빠져버린 내 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2주 뒤에 결혼식 올릴 거야.


물론 거절해도 돼. 할 수 있으면 말야 킥킥···"



사악하다.


너무나도 사악했다.


남의 가정을 파탄 내놓고 어찌 저리 당당하게 웃을 수 있는 건가···?


어떤 말을 하고 싶었지만, 뇌가 멈춰버렸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거나, 놀라는 일이 생기면, 생각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신호를 건너는 도중, 신호를 지키지 않는 거대한 트럭을 맞닥뜨린 상황처럼.


나는 내 앞에 있는 악녀의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사악함에 놀라서, 뇌가 멈춰버렸다.



"지금 표정. 엄청 얼빠져있는 거 알아?



응. 이 표정도 너무 예뻐. 흐흐흐흣~"



아···



"자 그럼, 2주 뒤 결혼식을 위한 예습을 해볼까?"



아아······



"신랑 이남붕 군은 신부 박하린 양을 아내로 맞아,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사랑하고, 존중하며, 존경하고, 배려하면서 일생을 함께 할 것을 맹세합니까?"



이거······



"야, 이남붕. 대답해야지."



개좆됐네···



"······네···."



"꺄하하하! 너무 좋아!! 너가 내 남편이라니~ 정말 꿈만 같아!


앞으로도 쭉~~ 행복하게 살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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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나 왔어요~"



나는 재빠르게 거실로 나가며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어서와!!"



"으음? 조금 늦게 나왔네? 그게 아내를 맞이하는 남편의 행동이 맞아 자기?"



"아, 그, 그, 그게에···"



"하아···. 야. 씨발 또 귀두고문 해줄까?"



얼음같이 서늘하게 바뀌어버린 하린이의 목소리와 '귀두고문'을 듣자 반사적으로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으···. 죄, 죄송합니다···."



"음~ 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특별히 용서해줄게~"



"감, 감사···합니다······."



하린이와 반 강제로 결혼 하고 난 후, 나는 매일매일 조교를 당했다.


시도 때도 없이 맞고, 토하고, 맞고 토했으며.


무리하게 연속 절정 당하다가 기절하고, 그런 나에게 찬물을 쏟아 부어서 강제로 깨우고, 다시 절정 시켰고.


칫솔로 귀두를 쓱싹쓱싹 문지르기도 했고.


전립선이 꾹꾹 눌려지면서 더 이상 서지 않는 자지가 강제로 발기 됐고.


하린이의 목소리와, 냄새만 맡아도 발정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또··· 그리고······ 어···


아. 이상한 약들도 정말 많이 먹었다. 



처음 한 달 정도는 계속 저항했다.


쾌락에 굴복할 정도로 나약한 사람이 아닌 걸 아니까. 버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린이가 내게 '생각을 올바르게 할 수 있는 약' 이라는 것을 먹이고 난 후.

나는 깨달아버렸다.


이길 수가 없다.


죽었다 깨어나도 절대로 이건 못 이긴다.



애초에 왜 하린이를 이기려고 들었는 지도 모르겠다.


옛날 기억은 잘 나지 않았지만, 하린이가 날 도와준 건 확실했다.


가난한 나와 가족들을 구원해준 건 하린이였는데?


왜 나는 하린이를 이기려고 한걸까···


그 때의 나는 정말 미쳤던 것 같다.


아마 하린이의 약이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자신을 구원한 사람을 적대하려는 미친놈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가족들도 구해주고, 정신적으로 아픈 나도 구원해준 하린이를 이겨 먹겠다니··· 응! 정말 멍청하고 나쁜 놈이었다!


내가 지은 죄를 전부 용서해준 하린이가 너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



아··· 또 서버렸다아···


나는 고개를 조금 숙이고, 하린이의 옷을 오른손으로 살짝 잡아 당겼다.



"저··· 하린아······"



"응? 왜애~?"



아마 지금 내 얼굴은 엄청 빨개져 있겠지···?



"나아··· 하, 하고 싶어···"



"음? 뭘 하고 싶어?"



하린이는 모든 게 완벽했다.


하지만, 단점을 뽑으라면 딱 하나 있었다.


자꾸 내 말이 무슨 뜻인지 눈치 챘으면서, 모른 체 하면서 날 부끄럽게 만드는 거···


지금은··· 그것 마저 쾌락으로 느껴져 흥분되지만···



"하린이가··· 내 발정난 자지를 마구마구 쓰담아줬으면 좋겠어어···"



"부탁할 때에는 높임말을 써야 한다고 하지 않았었나?"



아! 맞다아아······


이런 중요한 상식을 까먹어버렸다니···


나 진짜 어떡해······


하린이가 없었다면 진작에 어디선가 죽어버렸을거야···



"주인님이··· 제 발정난 자지를 마구마구 쓰담아줬으면 좋겠어요오······"



"하아··· 씨발놈. 질리지도 않고 맨날맨날 존나게 꼴리네."



하린이는 흥분을 하면 항상 욕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너무 좋았다.


나도 덩달아 흥분됐으니까···.



"오늘 안 재울거니까, 그렇게 알아."



"···히끅."



하린이의 말을 듣자, 몸이 반사적으로 떨리고, 멍청한 소리가 나왔다.


하린이의··· 아니··· 주인님이 날 껴안았다.


좋다··· 좋아······.


아마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아니, 수캐가 아닐까?


사랑하는 주인님과 섹스를 할 수 있다니··· 정말 행복해.



"···녜헤······"


아··· 벌써 혀가 풀려버렸다아······



"키스으··· 해쥬세요···"



"사랑하는 상시발정개변태걸레남편님의 부탁이니까 들어줄게."



응··· 내가 제일 행복해···



이 세상에서 제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