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 3 / 7

 

오늘 나는 생일을 맞자 저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시작했다. 딱히 의미가 있는 여행은 아니지만 그래도 타지로 이동하는 거라 그런지 살짝 떨려오는 마음에 나는 밤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오히려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잤으면 태평하게 꿈나라에 있다가 열차 시간에 못 맞췄을 테니까.

새벽의 공기는 아침보다는 가벼워서 숨쉬기가 편했다. 피부에 찰싹 달라붙으면 차가운 기분까지 내어주어서 나름 만족스러운 정신과 함께 일기를 적을 수 있었다.

 

일기는 여기까지 적기로 하고 나는 잠시 어딘가로 향했다. 바깥의 달빛은 끈적하게 빛줄기를 흘러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약간 꿀처럼 생겼었다. 별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 저 멀리 떠나버린다면 별을 훨씬 많이 볼 수 있겠지. 내가 여행을 떠나는 곳은 아주 외딴 시골이다. 딱히 시골에 가는 이유라면 그냥 도시에 환멸감이 느껴진다 해야할까. 도시의 혼잡한 네온사인처럼 서로 굽히지 않는 인간이 뒤섞여 내는 불쾌한 검은 소리때문에 나는 조용한 시골로 가고 싶었다.


저것 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방황에 끝을 찾아 나서는 여행. 진짜 내 삶을 다시금 알아가는 여행. 그렇기에 나는 가장 먼저 가야 하는 곳이 있다. 새벽에 이런 곳에 간다면 분명 부정을 타겠지만 나는 가야만 했다. 그곳은 내 오랜 친구의 묘였다. 어째서 묘를 가느냐 라고 묻는다면 나는 단언코 이 녀석에게 내 여행을 알리기 위해서 가야한다고 대답할 수 있겠다.


내 친구의 묘가 있는 곳은 옆 동네 절이다. 거기까지 가는 건 한참이겠지. 그래도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한걸음에 갈 수 있었다. 옆동네로 가는 길은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다. 그냥 쭈욱 앞으로 한 시간 동안 걸으면 툭 하고 튀어나온다.

 

1시간을 걷고 몇 분 정도 더 걸으면 성인 남자 3명을 쌓아 올린 높이의 나무가 나타난다. 거기는 옆마을과 지금 내가 사는 곳을 나눠주는 하나의 분단표다. 만약 저게 사라진다면 하나로 합쳐질까? 이런 궁금증도 가끔 나타나게 하는 나무였다. 옛 추억을 회상해보면 딱히 의미란 없었다. 하나로 합쳐지든 분단하든 그건 내 알빠가 아니었다. 기억도 없었다. 존재 자체가 내게는 무의미한 나무였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에겐 아주 예쁜 추억이 그려진 상징물이겠지. 오히려 내게 나무라면 내가 여행을 가는 곳에 있는 아주 거대한 나무에 추억이 있다. 오래전에 거기서 함께 죽은 친구와 놀았었으니까.


거대한 나무를 기점으로 오른쪽으로 꺾어 풀이 조목조목 자란 비탈길을 조금 오르면 조그마한 절이 나온다. 그리고 거기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나는 익숙한 듯 손에 바가지를 들고 물을 떠서 내 친구의 묘비를 찾아 나섰다. 친구의 묘비는 대나무와 제일 가까운 외진곳에 박혀 있다. 나는 물을 졸졸졸 뿌리고 녀석에게 참배했다.


잘 지내? 나 여행을 갈려고. 그게 다 끝나면”


뒤에 더 할말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목에서 튀어나오지 못했다. 그건 분명 아직 말할 수 없는 것이겠지. 어찌 되었든 너를 만나서 기뻤다. 여행가기전 꼭 네 모습을 보고싶었으니까. 나는 비석 뒤에 기대어 잠시 눈을 감고 기다렸다. 홀연히 나타나는 죽음의 소리. 너무나 조용하고 포근해서, 섬뜩하면서 사랑스러웠다. 나는 아직은 때가 아니야 라며 돌려보냈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먼지 따위를 훌훌 털어버렸다.


그럼, 잘 있어.”


나는 내 오랜 친구 곁에서 잠시 떨어졌다. 그날따라 바닥에 떨어진 잎사귀가 밟히는 소리는 더욱 크게 들려왔고 바람도 어쩐지 더 차가웠다.





지금은 미완이라

완성본은 출판된 책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