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카눔(Arcanum)》 



〈아르카눔 제1화〉 


“아, 원수 각하, 안에 계셨군요. 문을 여러 번 두드려도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아 안에 안 계신 줄 알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마가 보이는 흑발 단발머리를 한 알마 폰 아렌트(Alma von Arent)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너도. 네가 벌써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는 해구나. 시간 참 빨리 지나가네.” 

알마의 옆집에 사는 린 하렌(Lin Haren)이 힘없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꾸했다. 


린 하렌, 아르카디아 이후(아후) 2785년 1월 2일에 아마르나에서 태어난 인물로, 연합사관학교 수석 졸업 후 잠시 연합군 소위로 복무하다가, 아스완 혁명에 혁명 세력의 일원으로서 참가하고 연방군 원수가 되었다. 호국전쟁 시기엔 제국군의 후방을 급습하여 벌인 제1차 아헨 전투와 제1차 아우크스부르크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단숨에 멸망 직전의 연방을 구원하고 전세를 역전시켰다. 호국전쟁 후에는 수도와 국경을 번갈아 지키는 중이다. 


알마는 린이 사는 집 옆으로 이사하기 전부터 그녀를 동경하고 있었고, 이사를 마친 후엔 평일 아침마다 등교하다가 출근하는 린에게 인사를 건네며 그녀와의 친분을 쌓았다. 마침 서로 관심사와 성향, 취미도 같았고, 린도 알마에게 호감이 생겼기에, 알마는 주말이 되면 린의 집에서 그녀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원수님, 새해 첫날이라 휴일인데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입니다. 무슨 안 좋은 일 겪으셨나요?” 

“내가 겪은 건 아니고, 내 지인이.” 

“헉.” 

“자세한 얘기는 안에서 할게. 들어와, 밖은 춥다.” 

둘은 2층 주택에 들어오자마자 거실로 향하여 소파에 앉았다. 


“며칠 전인 아후 2887년 12월 26일, 연방사관학교 4학년 제인 도가, 생도들의 사생활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감시 카메라가 하나도 설치되지 않은 기숙사 내 자기 방에서 참수된 채로 발견됐어. 사건을 맡은 헌병대가 아직 언론에 알리지 않아서 너는 몰랐을 거야. 


제인 도의 혈흔이 묻은 단검이 동급생 사라 스미스의 방에서 발견돼 그녀는 지금 피의자 신분이 된 상태로 조사를 받고 있지. 헌병대는 전교 1등이었던 제인 도를 향한 전교 2등 사라 스미스의 시기심이 빚어낸 참사로 보고 있지만, 그녀는 매우 강하게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거짓말 탐지기는 사라 스미스가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다고 판단했고. 


내 지인인 사라 스미스의 양친은 계속 나에게 ‘무능한 헌병대 대신 영명하신 린 하렌 원수 각하께서 사건을 맡아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애원하고 있어서, 내가 나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이야.” 


이마가 살짝만 보이는 금발 단발머리를 한 린이 턱을 괸 상태로 알마에게 말했다. 



〈아르카눔 제2화〉 


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네, 갑니다.” 

린이 문을 열자, 대례복 차림의 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 스미스의 부친, 린다 스미스였다. 

“원수 각하, 근하신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염치를 불고하고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어서 이렇게 원수 각하의 집으로 찾아왔습니다.” 

“따님 일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일단 안에서 말씀하시죠.” 


린을 따라 안으로 들어간 린다 스미스는 소파에 앉아있던 알마와 눈이 마주쳤다. 그 모습을 본 린이 말했다. 

“이쪽은 알마 폰 아렌트, 저와 함께 반군국주의와 반인종주의 그리고 탐미주의의 길을 걷는 제 소중한 친우입니다. 알마, 이분은 내 지인, 린다 스미스. 호국전쟁 때 같이 싸운 전우라네. 현재는 연방군 제1방위대 소속 대장이며, 그대와 나처럼 모병제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네.” 

그러자 알마와 린다 스미스는 서로에게 가볍게 목례를 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소파에 앉은 린다 스미스는 매우 진지한 표정으로 린에게 말했다. 

“제 딸아이는 학교에 관한 이야기라면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제게 하는데, 피해자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었을 정도로 피해자를 증오하긴커녕 피해자에게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제가 딸의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지인들은 딸이 피해자를 험담하는 모습은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피해자를 살해하는 데 사용된 단검이 딸아이의 침대 밑에서 발견됐는데, 어떤 멍청이가 그런 남들에게 들키기 쉬운 곳에 범행에 사용한 흉기를 숨기겠습니까?” 

“확실히, 이상한 점이 많네요.” 

린이 말했다. 직후, 린다 스미스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린의 손을 잡으며 통사정하였다. 

“원수 각하! 수차례의 유산 끝에 힘겹게 만난 하나뿐인 딸아이가, 흉악범이라는 누명을 쓰는 끔찍한 모습을 저는 도저히 볼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시면 사례금으로 1000만 알을 드리겠습니다! 제 딸아이의 억울함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동방의 아세트 아무네트이신 원수 각하뿐입니다.” 


아세트 아무네트 황제는 최고의 천재라 칭송되는 위인으로, 이 인물이 아후 1년 1월 1일에 세운 모병제와 군주제 그리고 국교가 있는 다민족국가 아르카디아 연합은 한때 아르카디아 행성계 역사상 최초로 복수의 행성을 지배했을 정도로 번성한 나라였으나, 아마르나 혁명과 아스완 혁명을 겪고 아후 2810년 1월 31일에 멸망하였다. 


“아이고, 일어나십시오, 대장 각하.” 

린은 ‘내가 어찌하면 좋겠나?’라고 알마에게 눈으로 물었다. 

“원수님, 수락하시죠. 제가 성심껏 돕겠습니다.” 

알마가 조용히 말했다. 린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장 각하, 일어나시죠. 그 사건, 제가 직접 해결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원수 각하!” 

린다 스미스가 반색하며 말했다. 

린은 린다 스미스가 안도하며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알마에게 말했다. 

“나를 도와준다고 했지? 다행이다. 지금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너뿐이야. 너를 제외한 다른 동료들은 다 바쁜 상태거든. 아, 사례금의 절반은 네게 주마.” 

“감사합니다, 원수님.” 

“같이 헌병대 본부로 가자. 수사위원회가 그곳에 있어. 이런 중대한 일은 수사위원장과 실제로 대면하여 논의해야 하거든.” 

린이 알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아르카눔 제3화〉 


린은 집 밖으로 나가기 전, 탁자 위에 있던 권총형 블래스터를 손으로 집어서 주머니에 넣었다. 그러자 알마는 탁자 위에 놓인 손전등과 조명탄 발사기를 손으로 가리키며 린에게 물었다.

“저는 블래스터 대신 저것들 가져가도 되나요?”

“그래.”

나갈 채비를 마친 두 사람은 지체 없이 곧장 차고로 가 자동차에 탔다.


린이 자동차의 시동을 걸자 갑자기 라디오가 켜지더니 뉴스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금일 오전에 이리나 폰 골트베르크 황제의 손녀인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가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란 자와 함께 특례생 신분으로 제국사관학교에 입학하였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새해 첫날인 오늘, 수도 아벤트에선⋯.”

“차가 오래돼서 그런지 맛이 갔어. 그래서 이렇게 라디오가 멋대로 켜져.”

“이참에 새 차를 사시죠?”

“귀찮아. 차가 굴러가기만 하면 되지 뭐. 자율주행자동차는 별로야. 차는 내가 직접 몰아야 안심이 되더라.”


차에 탄 두 사람은 피해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피해자의 성명은 제인 도, 출생지는 아벤트 특별시, 신장은 195cm, 체중은 80kg, 혈액형은 O형, 취미는 우표수집. 지금 내가 피해자에 대해 아는 거라곤 이게 전부야.”

“딱히 특이한 점은 없네요. 취미인 우표수집은 저나 원수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이 즐기는 대중적인 취미니까요.”

“그렇지⋯. 아, 하나 무척 특이한 점이 있다. 피해자는 무릎 밑 다리가 없이 태어났어. 내가 방금 말한 신장과 체중은 의족을 착용한 상태로 측정한 결과야.”


피해자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꽤 빠른 속도로 달리던 린의 차는 갑자기 주행을 멈췄다.


바로 동맹당 시위대가 앞을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위대는, 사각형 백지 위에 흑색 십자가 있고, 그 흑색 십자의 겉을 백색 십자가 감싸고, 그 백색 십자의 겉을 흑색 십자가 감싸는 모양의 중앙 위에 미자(米字; Asterisk)가 안에 있고 테두리가 흑색인 백색 사각형이 있는 모양의 흑백 깃발, 즉 아르카디아 제국의 국기인 미자기(米字旗; Asterisked Flag)를 불태우며 경박하게 환호하고 있었다.


미자기 소각이 끝나자, 은발벽안의 미인이 아르카디아 연방의 국기인 오색기(五色旗)와 동맹당 당기를 손에 든 채 큰 소리로 연설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친애하는 당원 동지들. 아르카디아 동맹당 총재, 이다 페타치입니다!”

그러자 시위대는 열렬하게 환호했다.

“와아아아아!”

“이다 페타치 만세!”

“이다 페타치 동지를 대통령으로!”


“감사합니다! 여러분, 루나 셀레네 대통령은 지금 선천적 장애인들에 대한 나라의 지원을 확대하려 합니다! 선천적 장애인들을 나라에서 지원하는 세금 낭비 짓거리는 아르카디아 제국이라 자칭하는 서방반란군이나 벌이는 추잡한 짓입니다! 선천적 장애인들은 우월한 사피엔 민족으로만 구성된 단일민족국가인 우리 나라를 더럽히는 이민족들, 혼혈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선천적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구명줄이 아니라, 채찍입니다!”

이다 페타치의 연설이 끝나자마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그렇다!”

“그것들을 깡그리 학살하자!”

“선천적 장애인들에게 구명줄 대신 채찍을! 또한 열등민족들과 민족반역자들의 야합의 산물인 서방반란군에게 죽음을!”

“우생학 만세, 인종주의 만세, 군국주의 만세! 그리고 우리 위대한 아르카디아 연방 만세!”


이 광경을 본 알마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런 쓰레기들이 원내 제1야당이라니, 이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네요.”

“그러게 말이다⋯.”

린이 시위대에서 팔에 찬 아리아 아벤트의 성명이 인각된 손목시계로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아리아 아벤트는 연방 초대 대통령이자 린의 친우이며, 호국전쟁 전에 사망한 인물이다.


알마와 린은 시위가 완전히 끝난 후에야 주행을 재개하여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르카눔 제4화〉 


차에서 나온 알마와 린은 안내 데스크를 거쳐 수사위원장 집무실 앞에 도달하였다. 

“올리비아 모건 대장, 안에 있소? 나 원수 린 하렌인데 들어가도 괜찮겠소?” 

“아이고, 원수 각하! 예, 들어오시죠.”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귀관도. 본론만 간단히 말하겠소. 내가 요즘 한가하기도 하고, 내 지인의 요청이기도 해서 말인데, 무척 바쁜 귀관 대신 내가 수사위원장이 되어, 연방사관학교 기숙사 살인 사건을 여기 있는 내 조수와 함께 수사해도 되겠소?” 

“아휴, 물론입니다.” 

모건이 누가 봐도 귀찮은 일에서 해방되어 기뻐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집무실에서 나온 알마와 린은 안내 데스크에서 조사위원회 소속 신분증을 받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탔다. 

차를 몰고 연방사관학교 기숙사로 가던 린이 조수석에 앉은 알마에게 말했다. 

“그 인간, 마음에 안 들어.” 

“모건 대장이요?” 

“응. 상관들에게는 굽실거리면서 자기 부하들에게는 폭언과 폭행을 일삼는 저질이거든.” 

“정기적으로 고아원 및 병원을 후원하시며 헌혈도 하시는 선한 원수님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악질이네요, 그 사람.” 


차가 연방사관학교 기숙사에 도착하자마자, 알마와 린은 차에서 내렸다. 린이 알마에게 말했다. 

“여기선 아무도 믿지 마. 누구든 범인일 수 있으니까.” 

“네, 명심하겠습니다.” 

잠시 후, 흑색 인민복 차림의 사람이 자신과 같은 차림의 알마와 대례복을 입은 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새해를 축하합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새 조사위원장 신분으로 여기 왔습니다. 아, 이쪽은 조사위원이자 제 조수인 알마 폰 아렌트입니다.” 

“안녕하세요, 아렌트 선생. 저는 연방사관학교 교장, 루시 밀러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자, 두 분 다 안으로 들어오시죠. 사건 발생 장소로 안내하겠습니다. 사건 발생 직후의 현장을 거의 그대로 보존 중입니다. 피해자는 엎드려 누운 상태로 자다가 살해된 것으로 보입니다.” 

밀러를 따라 1층에 있는 피해자의 방으로 간 알마와 린의 눈앞엔, 다량의 피로 얼룩진 침대와, 거기에 누워 있는 잠옷 차림의 머리 없는 육신, 그리고 그 육신 위에 참수된 제인 도의 머리가 피범벅이 된 상태로 있는 광경이 펼쳐졌다. 



〈아르카눔 제5화〉 


“칼에 베인 부분이 깔끔하지 않고 지저분한 것을 보니 장검으로 단번에 참수한 것이 아니라, 단검으로 여러 차례 베어서 참수한 것이 분명하군요. 그나저나 저 창문은 사건 현장 최초 발견 당시에도 저렇게 열려 있었습니까?” 

린이 밀러에게 말했다. 

“네.” 

“이렇게 추운 겨울에 창문을 열고 잤다니, 이상하네요.” 

“지나친 난방 때문에 너무 더워서 다들 창문을 열고 잤었다고 생도들이 말하더군요.” 

“난방을 중앙관제실에서 관리합니까?” 

“예. 생도들의 투표로 선출된 4학년 생도 2명이 관리합니다. 그들은 베티 브라운과 리사 테일러입니다.” 

“그렇군요. 지금부터 그 2명을 회의실에서 신문하겠습니다. 그들을 호출해 주십시오.” 

“네.” 

“그럼 그동안 저는 그들의 방을 조사해도 되겠습니까?” 

알마가 물었다. 

“예, 그러십시오.” 

밀러가 알마에게 마스터 키를 건네며 말했다. 


린과 밀러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윽고 브라운이 회의실에 입장했다. 

“사건이 벌어질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 

“사건이 벌어질 때, 어디에 있었나?” 

“⋯.” 

“사건에 대해 뭔가 아는 게 있나?” 

“⋯.” 

브라운은 묵묵부답이었다. 

“계속 묵비권을 행사할 생각인가?” 

“⋯네.” 

브라운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친구는 현재 전교 3등이며, 평소에도 굉장히 과묵하고 내성적인 것으로 유명한 생도입니다.” 

밀러가 린에게 귀띔했다. 

“⋯브라운 생도, 신문은 끝났다. 나가 보도록.” 

린이 말했다. 


브라운이 나간 직후, 테일러가 들어왔다. 

“브라운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 그 당시에 브라운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아나?” 

“제 옆에서 졸고 있었습니다. 정신 좀 차리게 하기 위해 제 냉수를 마시게 했는데도 계속 졸다가 결국엔 자더군요.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라도 생겼나 걱정이 돼서 의무실에 갔습니다. 의무실에 있던 의사와 함께 돌아오니 제일 뜨겁게 난방을 하는 버튼에 머리를 대고 자고 있었습니다. 아, 제가 의무실로 갈 때 분명히 문을 닫았는데, 돌아오니 문이 열린 상태였습니다.” 

“⋯알았다. 신문은 이걸로 끝이다.” 

테일러가 회의실 밖으로 나가자마자, 교장이 린에게 말했다. 

“브라운이, 전교 1등과 전교 2등이 학교에서 사라지면 자신이 전교 1등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테일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제인 도를 살해한 후, 그 범행을 사라 스미스가 벌인 것처럼 꾸민 거 아닐까요?” 

“글쎄요,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린이 말했다. 회의실의 전자시계는 아후 2888년 1월 1일 21시를 표시하고 있었다. 



〈아르카눔 제6화〉 


“아르카눔(Arcanum) 같은 사건을 해결 중인 원수님께 도움을 드리고 싶어서 왔습니다.” 

“하핫, 감사합니다.” 

린다 스미스가 회의실에 들어오자마자, 알마도 들어왔다. 

“원수님, 조사를 마쳤습니다. 조사를 했다는 표시로 방문을 열고 왔습니다.” 

“오, 그래? 혹시 수상한 점 있었니?” 

“브라운의 방에는 그런 거 없었는데, 테일러의 방엔 투명한 액체 형태의 수면제가 잔뜩 있었고, 대형 동맹당 당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알마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란 린은 알마와 함께 테일러의 방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알마의 말대로 테일러의 방 탁자 위에는 투명한 액체 형태의 수면제가 잔뜩 있었고, 벽에는 대형 동맹당 당기가 걸려 있었다. 

“이제 알았다! 테일러는 투명한 액체 형태의 수면제를 평범한 냉수로 위장하여 그걸 브라운이 마시게 하고, 브라운이 잠든 사이에 지문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장갑을 착용하고 열린 창문으로 침입해 제인 도를 단숨에 살해한 후, 살인에 사용한 단검을 1층에 있던 사라 스미스의 침대 밑에 열린 창문을 통해 유기한 거야! 즉, 테일러가 진범이란 뜻!” 

상승의 천재라는 별명을 지닌 금발벽안의 근육미인인 린이 외쳤다. 

“저, 저기! 테일러가 마구간에서 말을 타고 학교 밖 설원을 향해 도망치고 있습니다!” 

알마가 손가락으로 창밖을 가리키며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뭐라고? 알마, 당장 뒤쫓자! 우리도 말을 타는 거다!” 

“네!” 


알마와 린은 마구간으로 달려가 말에 올라탄 후 테일러를 뒤쫓기 시작했고, 밀러와 린다 스미스, 그리고 헌병대도 알마와 린을 돕기 위해 말을 타고 뒤따라갔다. 

“알마, 날 꽉 잡아! 전속력으로 간다!” 

린이 자신의 뒤에 앉은 알마에게 외쳤다. 

“네!” 

알마가 말했다. 거센 눈보라를 헤치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알마와 린은 말에 올라탄 채 동야의 설원 위를 힘차게 달렸다. 

“크으윽, 밤이라 어두운데 눈보라까지 휘몰아쳐서 앞이 제대로 안 보여!” 


그러자 알마가 품에서 조명탄 발사기를 꺼내 창공을 향해 조명탄을 발사했다. 밤하늘에 갑자기 생긴 작은 항성은 테일러의 모습을 알마와 린이 다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린은 테일러에게 곧장 권총형 블래스터를 쐈고, 직후 테일러는 낙마했다. 그 모습을 본 알마와 린은 말에서 내려 테일러에게 달려갔다. 

“으윽, 이게 무슨 짓이냐⋯.” 

테일러가 총격으로 인해 생긴 상처에 손을 대며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알마는 스마트폰으로 테일러가 내는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고, 린은 테일러의 상처를 발로 짓누르며 말했다. 

“리사 테일러, 제인 도를 살해한 너를 체포한다.” 

“그래, 내가 죽였다! 열등한 선천적 장애인 따위가 내 동기이고, 이 학교의 전교 1등이라는 추악한 사실에 비분강개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위대한 동맹당의 숭고한 전사로서 죄인을 주살했을 뿐이다! 뭐가 문제인가?” 

“뭐가 문제냐고? 네가 아직 살아 있는 게 문제다.” 

린이 테일러의 상처를 더욱 강하게 짓누르며 말했다. 

“끄아아아악!” 

테일러는 비명을 지르다가 사망했다. 이윽고 뒤따라온 헌병대 일행에게 알마는 자신이 스마트폰으로 녹음한 것을, 린은 사망한 테일러를 인계했다. 


밀러와 린다 스미스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알마와 린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린다 스미스는 사례금으로 꽤 거액인 1000만 알을 린에게 줬고, 린은 알마에게 500만 알을 줬다. 

“그 돈으로 뭘 할 거야?” 

린이 알마에게 물었다. 

“이 돈은, 동맹당에 대항하는 전사에게 필요한 무기를 구할 때 사용하겠습니다.” 

알마가 외쳤다. 

“아하핫, 장하다. 역시 내 수제자답구나.” 

린이 우렁찬 목소리로 껄껄 웃으며 알마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