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덥다. 창문 좀 열어야지."
"철커덕!"
투박한 소리와 함께 열린 창문이 차가운 바람을 빈객으로 맞아들였다. 불청객은 맨 뒷자리에 앉아 꿈과 현실의 경계에 있던 흑발흑안의 알마 폰 아렌트(Alma von Arent)를 현실로 강제 귀환시켰다.

"아루 아민(Aru Amin) 선생, 창문 닫으면 안 됩니까?"
"안 돼. 너무 알맞은 온도에서는 잠을 잔단 말이야. 좀 추워야 안 자고 수업에 집중하지."
'차가운 바람 때문에 손이 얼어붙어서 연필 잡기도 힘든데 어떻게 수업에 집중하란 말인가?'
이마가 보이는 흑발 단발머리를 한 알마가 하품을 하며 불청객을 불러들인 장본인을 향해 무언의 야유를 보냈다. 그러고는 아직 덜 떠진 눈으로 전자시계를 바라보았다. 전자시계가 금일은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3월 21일 9시라고 알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고, 아루 아민 교사는 성큼성큼 걸어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몇몇 학생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아루 아민 교사의 뒤를 밟았다.

'마리아의 생일 하루 전이군.'
아루 아민 교사가 교실에서 나간 후에도 전자시계를 계속 바라보던 알마는 속으로 생각했다. 마리아는 2년 전에 사망한 아르카디아 제국(Arcadian Empire)의 황제인 마리아 폰 골트베르크(Maria von Goldberg)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아르카디아 연방(Arcadian Federation)의 언론에서는 얼마 전부터 제국이 마리아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연방을 향해 군사적 도발이나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열병식만 할 거 같다는 의견도 보도되긴 했다.

'전쟁이나 터져서 학교건 학원이건 대통령궁이건 전부 파괴됐으면 좋겠다. 이 지옥 같은 지긋지긋한 나날을 끝낼 유일한 방법은 바로 전쟁뿐이지.'
알마가 전자시계에서 눈을 떼고 속으로 생각했다.

지옥 같은 지긋지긋한 나날이란 협의적 의미로는 벌써 3년째인 종일 비좁은 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는 생활의 연속인 대학 입학 시험 준비 생활을 의미했다.

그리고 광의적 의미로는 아무도 위로해주지 않은 상처로 얼룩진 학창시절과 현재를 통틀어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가해자들을 향한 알마의 증오는 자신을 보호해주지도 않고 방치한 주제에 자신에게 병역의 의무를 강제로 부과하여 나라를 보호하라고 협박하는 연방으로도 향했다.

그렇기에 알마는 자신의 손으로든 제국의 손으로든 가해자들을 고통스럽게 죽여 복수를 완수하길 희망하고 있었다. 징병제를 시행 중인 연방과 달리 제국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모병제(All volunteer military system) 시행 국가였기에 알마는 제국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사색에 잠긴 상태로 자신의 흑발을 만지작거리던 알마는 고개를 돌려 창밖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자신의 눈으로 하늘에 물었다.

'제국에도 나와 비슷한 처지인 사람이 있을까? 아니면 혹시 나의 구세주가 있을까?'
무심한 하늘은 알마에게 답변해주지 않았고 알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리아 황제 폐하 만세!"
군인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아르카디아 제국의 초호화 음악회를 졸면서 보고 있던 사람은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Airin Graf von Zeppelin) 준장이었다.

'왜 군인은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가?'
이마를 가린 흑발 단발머리를 한 아이린이 졸린 표정으로 불평했다. 다행히도 속으로 한 불평이라 들은 사람은 없었다. 기나긴 공연이 끝난 후, 흑발흑안의 아이린이 하품을 하며 공연장에서 나와 주차장으로 향하자, 은발의 말비네 폰 티르피츠(Malwine von Tirpitz) 준장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왜 그리 울상이야?"
"말비네."
아이린이 피곤한 표정을 짓고 자신의 제국사관학교 동창에게 대답했다.
"졸린데 아무것도 못 하고 자지도 못한 채 몇 시간 동안 앉아만 있어보게나. 경도 나처럼 될걸?"
"그러게 눈 뜨고 자는 방법을 익혀뒀어야지."
말비네의 농담에 아이린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나는 공연장 오기 전에 충분히 자둬서 괜찮았네. 그건 그렇고 자네 그 소식 들었나?"
"무슨 소식?"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Daria von Goldberg)가 익일 수도에서 개최되는 마리아 황제 생일 기념 열병식에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Angelika von Goldberg)를 초청했다는군."
"다리아 황제는 앙겔리카를 혐오하기로 유명한데, 설마 살해하려는 건 아니겠지?"
"앙겔리카가 다리아 황제의 친언니니까, 자신의 제위에 위협이 되는 존재라고 느끼는 게 분명해. 보통 맏이가 후계자가 되는 것이 문제 많은 세습군주제의 불문율 아닌가."

말비네가 공공장소에서 화끈하게 자신의 지론을 펼치자 아이린이 놀라 자신의 친우를 만류했다.
"아직 차에 타지도 않았는데 경은 공공장소인 주차장에서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하나. 그런 말은 우리 둘끼리 있을 때만 해야지."
그러자 말비네가 자동차 문을 열고 잽싸게 운전석에 앉아 말했다.
"지금은 차 안이니까 상관없지 않은가. 운전은 내가 하지. 자네가 졸음운전을 하면 황제의 마수가 우리에게 닿기도 전에 세상을 하직하게 될 것 같으니."
"그래? 그럼 난 한숨 자도록 하지. 경의 운전 실력 때문에 다시는 못 일어나는 거 아닌가 걱정되기는 하지만 뭐 별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고는 뒷자리 문을 열고 바로 쓰러지듯 자리에 누운 아이린이었다.

가만히 운전하던 말비네가 갑자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골트베르크 가문의 시대가 시작된 후부터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누군가는 숙청당했지. 이번엔 누굴까?"
그러자 아이린이 눈을 감은 채로 대답했다.
"우리는 아니길 비는 수밖에 없지."
둘 다 한숨을 쉬었다.
"뭐, 우리가 숙청을 걱정할 정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말비네가 농담을 하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화제를 바꿨다.
"앙겔리카가 수도로 떠나는 건 내일일세. 친우가 떠나는데, 내일 아침에 잠깐 배웅이라도 가지 않겠나?"
"내일 오전에 일어날 수 있으면 그렇게 하세."
아이린이 하품을 하며 말했다.

"앙겔리카는 제국사관학교 재학 시절 모든 과목에서 항상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었지. 그런 우등생이 왜 불평분자에 불과했던 우리와 친하게 지냈는지 의문일세."
말비네가 자동차 뒷자리에 눈을 감고 누워있던 아이린을 힐끗 보고 말했다.

"앙겔리카도 우리처럼 불평분자였어. 애초에 그녀가 제국사관학교에 입학하게 된 이유도 그녀의 부친인 마리아 황제가 그녀에게 너는 너무 유약하니 제국사관학교에서 강해지라고 말하며 그녀를 강제로 입학시킨 것이었으니 말이야. 게다가 그녀가 제국사관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마리아 황제가 세습군주제의 불문율을 무시하고 장녀인 앙겔리카가 아니라 포악한 차녀 다리아에게 세습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앙겔리카는 우리와 다르게 생도 생활에 적응을 잘했고 공부도 잘했지."
"나도 못하는 과목은 있었지만 내가 잘하는 과목에선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았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말비네의 반발을 아이린이 가볍게 진압했다.

"집에 다 왔다. 운전을 하고 나니 나도 졸려서 침대에 바로 누워야겠어. 나오기 전에는 목욕했으니 또 할 필요는 없겠지."
"맞아."
집에 들어오자마자 말비네는 겉옷을 벗어서 거실 소파에 던진 후 바로 침대에 누웠고, 아이린도 말비네를 따라 했다.

"운전이라는 게 이렇게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것이었나. 자율주행자동차가 있으면 좋겠어."
말비네가 자신의 어깨를 어루만지며 불평했다.
그러자 말비네 옆에 누운 아이린이 말했다.
"그건 너무 비싸. 이 일인용 단독주택도 돈 아끼겠다고 같이 사용하는 우리 형편으로는 무리지."
"뭐, 그건 그래. 집을 주는 것도 아니고 약간 할인해서 빌려주는 게 전부라니, 이 나라는 참 인색해."
아이린도 말비네의 불평에 동조했다.
"골트베르크 가문이 사치만 좀 줄여도 하급귀족인 우리 같은 서민이 살기 편해질 거야. 자신들 전용 초호화 골프장 지을 돈과 과시용 열병식 그리고 연방을 향한 무익한 군사적 도발을 할 돈으로 사회복지를 확대했으면 좋겠어. 아르카디아 제국의 초대 황제인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Augusta von Amarna)도 골트베르크 가문을 싫어할 거야."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와 네테리카레 파라오 폰 케메트(Neterikare Pharao von Kemet)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이리나 폰 골트베르크(Irina von Goldberg)가 시작한 무능한 세습정치가 끝나는 날이 올까?"
"글쎄다, 앙겔리카처럼 좋은 사람이 황제가 되면 끝나겠지. 앙겔리카는 만약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절대 세습은 하지 않을 거라고 말했으니까."
"맞아. 골트베르크 가문에도 앙겔리카처럼 좋은 사람이 있는데 왜 황제가 된 이라나, 마리아, 다리아는 전부 명군이 아닌 군주인지 모르겠어."
"계속 앙겔리카 이야기를 하니까 일루미나티가 생각나는군. 나와 경 그리고 앙겔리카는 빌헬미나 폰 자이틀리츠(Wilhelmina von Seydlitz) 교장이 담당 교사였던 교내 동호회를 통해 친우가 됐지. 교장도 털털한 사람이라 우리와 잘 통했지. 그 교내 동호회 이름이 일루미나티였어."
"넷 다 나라에 불만이 많고 역사와 정치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넷이 만나면 항상 사회 비판적인 이야기를 주고받았지. 가끔 절대군주국에서 국가원수를 공직추첨제로 선출하는 직접민주주의 공화국으로 전환한다는 내용의 개헌이나 혁명에 대해 대화를 한 적도 있었네."
"그래. 적법한 절차를 걸치면 개헌을 통해 합법적으로 절대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은 아르카디아 제국 헌법에도 명시됐지. 그나저나 아주 졸립군. 이만 자도록 하지. 불 끌게, 잘 자."
"자네도."
아이린과 말비네는 소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잠에 빠졌다.

"아이린,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 빨리 일어나. 늦겠어."
이미 나갈 채비를 마친 말비네가 아이린이 덮은 이불을 펄럭이며 아이린을 재촉했다.
"알았어, 일어났다고."
아이린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
"어제는 내가 운전했으니 이번엔 자네가 하게나. 아른슈타트 공항으로 가는 길 정도는 알잖아?"
말비네가 아이린에게 자동차 열쇠를 건네며 말했다.

"말비네, 손에 들고 있는 건 뭔가?"
아이린이 가리킨 것은 황금색의 작은 상자였다.
"아, 이거? 자네도 잘 알다시피 요즘 대유행 중인 알파 아몬드 초콜릿일세. 앙겔리카가 꼭 한번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일찍 일어나서 사왔지."
"그거, 파는 곳은 제국백화점뿐이며 인터넷으론 구매할 수 없어서 굉장히 구하기 힘든 거 아닌가?"
"맞아. 이거 사려고 차 몰고 제국백화점 아른슈타트 지점으로 갔더니 개점 전인데도 입구 앞에 사람들이 잔뜩 있더군. 개점되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서 에스컬레이터 역주행까지 감행한 끝에 간신히 한 상자 얻었어."
말비네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 알파 아몬드 초콜릿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길래 다들 그거 사려고 난리인지 모르겠군. 그것 때문에 난투극까지 발생한 경우도 있다더라. 심지어 연방에서도 보따리상들이 정가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파는데도 유행이라 하더군. 참으로 신기한 일이야."
"굉장히 지미하고, 포장상자가 근사해서 대유행이라고 하더군. 앙겔리카는 나처럼 좋은 사람을 친우로 둔 것을 영광으로 알아야 해."

차를 타고 아른슈타트 공항에 도착한 후 공항 내부로 들어온 아이린과 말비네는 앙겔리카가 대기석에 앉아 자이틀리츠와 화기애애하게 대화하는 것을 목격했다.
"오, 자네들도 왔는가? 반갑네."
"아이린과 말비네, 정말 반가워."
"앗, 앙겔리카와 교장, 반갑습니다."
"교장과는 우연히 만났네."
앙겔리카가 말했다.
"교장께서는 공항에 왜 오셨습니까?"
아이린과 말비네가 자이틀리츠에게 물었다.
"얼마 전부터 아른슈타트 공항 식당에서 새로이 판매를 시작한 포테이토 피자가 굉장히 지미하다고 텔레비전에서 소개하길래 먹으러 왔지. 공항과 공항 식당은 연중무휴니까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자네들과 만나게 됐지. 방금 먹어봤는데 정말 지미하더군. 아이린과 말비네, 자네들도 여기까지 온 김에 한번 먹어보게나."
"예, 그러죠."

"아, 맞다. 앙겔리카, 선물이야."
말비네가 앙겔리카에게 알파 아몬드 초콜릿을 건넸다.
"오, 이걸 어떻게 구했어? 정말 먹고 싶었는데."
"친우를 위해서 오늘 일찍 일어나 힘들게 구했지."
"고맙네, 정말 고마워."
앙겔리카가 감격한 표정을 짓고 말비네를 끌어안았다.
"뭐, 공짜로 주는 건 아니야. 돌아올 때 수도에 있는 제국백화점 아마르나 본점에서 파는 알파 아몬드 초콜릿을 사 가지고 돌아와."
"본점에서 파는 건 상자 하나에 초콜릿이 20개나 있다고 하더군. 지점에서 파는 건 초콜릿이 10개뿐인데 말이야."
"맞아. 당연하지, 말비네, 아이린, 그리고 교장 몫까지 본점에서 총 세 상자를 사 와서 꼭 보답하겠네."
"오, 기대되는군."
"앗,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군.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들 반가웠어요. 또 봅시다."
앙겔리카가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럼 나도 가보겠네. 다들 만나서 반가웠어."
이윽고 자이틀리츠도 작별 인사를 한 후 떠났다.

"본점의 알파 아몬드 초콜릿이 기대되는군. 자, 아이린. 우리는 조식으로 교장이 추천한 포테이토 피자를 콜라와 함께 먹자고."
"그러지."

아이린과 말비네는 공항 식당에 입장한 후 통유리창 바로 옆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 포테이토 피자를 먹기 시작했다. 둘 다 무척 배고팠던 상태였기에, 한동안은 대화 없이 포테이토 피자에만 집중했다. 그러다가 앙겔리카가 탄 우주선이 비행을 시작하자, 둘은 그 광경을 콜라를 마시며 유심히 바라봤다. 이윽고 말비네가 갑자기 아이린의 귀에 입을 갖다 대고 조심스레 말했다.

"이 피자, 맛은 괜찮은데 광고판에 있던 사진의 모습에 비해 실물이 너무 작아." 


금발의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가 수도로 오는 동안,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는 호화스러운 집무실에 마련된 옥좌에 앉아 측근들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내 부친께서는 연방과의 관계가 호국전쟁 전의 상태로 회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셨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정상회담에서 연방은 제국에게 푼돈을 준 후 제국에게 거의 군대 해산에 가까운 수준의 무리한 군축을 요구하려고 시도했지. 게다가 별로 쓸모도 없는 연락사무소를 구 제국 주재 연방 대사관 근처에 지어놓고는 자신들 돈으로 지었다며 무척이나 생색을 냈어. 연방 대통령인 루나 셀레네(Luna Selene)가 거들먹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금년 1월 1일에 화끈하게 폭파시켰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연락사무소를 보면서 참으로 상쾌했습니다."
"연방이 다리아 황제 폐하의 천재적 지략과 위용 앞에서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정말 유쾌했습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는 너절한 건물이 화끈하게 파괴되는 모습을 보니 무척이나 장쾌했습니다."
다리아의 측근들이 굽실거리며 다리아의 비위를 맞췄다.

"오, 경들도 그랬는가? 나와 마음이 통했군. 연방 국회의 동맹당, 농업당, 대안당 전부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은 족속이야. 하여튼 그 사건 후, 루나 셀레네와 여당인 농업당 지지율은 폭락해서 금년에 있는 대통령 선거에서 농업당은 패배가 기정사실화됐다더군. 쌤통이다."
다리아가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앙겔리카는 오고 있느냐?"
"네, 예정대로 아마르나 호텔 1408호에 묵을 예정입니다."
"앙겔리카, 항상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 가증스럽단 말이야. 짐은 알고 있다. 그녀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짐을 살해할 흉계를 꾸미며 면종복배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번 열병식은 생방송으로 실시간 중계되지. 앙겔리카가 앉은 곳을 빈번하게 촬영해서 잠에 취한 꼴사나운 모습을 모든 볼 수 있도록 하라. 그럼 앙겔리카의 명예는 실추될 것이다."
다리아가 잠시 눈을 지그시 감고 말했다.

"짐이 요구한 수면 가루는 가져왔느냐?"
다리아가 다시 눈을 뜨고 다리를 꼬며 물었다.
"예, 분부대로 가져왔습니다. 섭취 후 코를 요란하게 골고 침을 흘리며 자게 하고, 옆에서 깨워도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지게 하는 강력한 약입니다."
"좋아. 아마르나 호텔 요리사, 경은 이 수면 가루를 그녀의 중식과 석식에 잔뜩 뿌려라. 오늘 밤, 그녀를 체포할 것이다. 종신형에 처할지 사형에 처할지는 일단 체포하고 생각해보자고."
"알겠습니다."

"후우...이 공항은 언제나 사람이 많군."
앙겔리카가 인파를 헤쳐 간신히 아마르나 공항 건물 밖 버스 정류장으로 빠져나와 이마에 살짝 맺힌 땀을 닦으며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바퀴 달린 여행 가방을 끌고 버스에 탔다. 아마르나 호텔 앞에서 하차한 앙겔리카는 지체 없이 호텔로 들어가 안내 데스크에서 키를 받고 엘리베이터를 탄 후 1408호에 들어갔다. 앙겔리카가 잠시 겉옷을 벗고 침대에 누워 쉬고 있을 때,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네, 갑니다."
앙겔리카가 서둘러 일어나 황급히 겉옷을 입고 문을 열었다.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 공작 각하, 룸 서비스입니다. 오늘 중식은 화이트 스테이크입니다."
"오, 그렇군요."
"다 드신 후 식판은 문 옆 탁자에 놓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식판을 받은 후 문을 닫고 다시 방에 들어온 앙겔리카는 곧바로 식사를 시작했다.
"양이 좀 부족하군. 그나저나 화이트 스테이크? 아, 이 하얀 가루 때문인가? 약간 치즈 맛이 나는데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군."

식사를 마친 후 앙겔리카는 객실에서 나와 문 옆 탁자에 빈 식판을 두고 열병식이 거행되는 케메트 광장으로 버스를 타고 향했다. 버스에 탄 앙겔리카는 강한 졸음을 느끼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하차한 후 계단형 좌석을 발견한 앙겔리카는 하품을 하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자신의 지정 좌석 위치를 확인한 후 자신의 지정 좌석에 착석했다. 같은 시각, 다리아는 제일 높이 있는 좌석에 이미 착석한 상태였다.

"14시가 됐습니다. 지금부터 열병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앙겔리카가 착석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열병식을 알리는 소리가 광장 전체에 크게 울려 퍼졌다. 그러고는 군악대가 아르카디아 제국의 국가인 딸랑거리는 방울들(Jingle Bells)을 웅장하게 불렀다. 하지만 앙겔리카에게는 국가가 아니라 요람가로 들렸다. 앙겔리카는 잠을 참으려고 최대한 애썼지만 무리였다. 결국, 앙겔리카가 본 열병식의 마지막 모습은 국가 제창이 되었다.

"열병식을 마칩니다. 현재 시각은 22시입니다."
열병식을 끝낸다는 말이 나온 후에야 앙겔리카는 잠에서 깼다. 앙겔리카가 눈을 떴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장을 떠나고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23시 30분, 아마르나 호텔 1408호로 돌아온 앙겔리카는 얼마 후 직원이 준 석식을 받고 그것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석식은 중식과 동일한 화이트 스테이크였지만 굉장히 피곤하고 배고팠던 앙겔리카는 딱히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순식간에 다 먹었다. 식사를 마친 후 목욕을 끝내니 3월 23일 0시 10분이었다. 내복을 입고 침대에 누운 앙갤리카는 스마트폰으로 아이린과 말비네에게 오늘 꼭 일찍 일어나 제국백화점 아마르나 본점에서 파는 알파 아몬드 초콜릿을 사오겠다는 내용의 문자를 전송했다. 그러고는 이불도 덮지 않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

호텔 투숙객 대부분이 잠든 3시, 의문의 인물들이 마스터 키를 통해 1408호에 무단 침입했다.
"약효가 굉장하군."
"쉿, 조용히 하고 옮기기나 해."
의문의 인물들은 잠든 앙겔리카를 큰 자루에 담아서 들고 어딘가로 급히 사라졌다.

앙겔리카가 눈을 떠보니 천장에서 휘황찬란한 샹들리에 대신 낡은 형광등이 희미하게 빛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몸은 안락한 침대가 아닌 차디찬 맨바닥에 누워있었다. 입고 있는 옷은 그대로 내복이었다.
"여긴...어디지?"
앙겔리카가 고개를 돌리자 그녀를 독거감방에 가두고 있는 견고한 철문이 보였다. 그리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리자 이번에는 철창이 설치된 작은 창문이 보였다.
"여긴, 감옥인가...다리아, 기어코 나를 해하는구나..."

앙겔리카가 연거푸 한숨을 쉬는 도중, 제복을 입은 여자가 앙겔리카가 있는 독거감방의 철문을 벌컥 열었다. 교도관이었다.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 준장, 당신은 불경죄 위반으로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 황제 폐하의 행정명령에 따라 긴급체포되어 이곳, 아마르나 감옥에 수감됐습니다. 제3함대와 제3방위대에는 당신이 2주 동안 비공개 회의에 참석한다고 알려진 상태라, 제3함대와 제3방위대는 당신의 신변을 딱히 걱정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무슨 죄를 지었다는 겁니까?"
"다리아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주최하시고 참관하신 신성한 열병식 현장에서 코를 요란하게 골고 침을 흘리며 잠을 자서 다리아 황제 폐하를 모독한 것이 당신이 이곳에 수감된 이유입니다."
교도관은 그렇게 말하고 앙겔리카에게 아르카디아 제국의 국장인 아스테리스크(Asterisk) 내지 미자(米字)와 아마르나 감옥이라는 문자가 인각된 손목시계와 베개 그리고 이불을 준 후 철문을 잠그고 떠났다.
교도관이 준 것들을 받은 앙겔리카의 얼굴에는 체념의 빛이 역력했다. 앙겔리카가 받은 아스테리스크(Asterisk) 내지 미자(米字)와 아마르나 감옥이라는 문자가 인각된 손목시계는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3월 23일 9시를 표시하고 있었다.

한편, 앙겔리카의 아마르나 감옥에 수감됐다는 소식을 들은 다리아는, 집무실 창밖에 펼쳐진 제국 수도 아마르나를 뒷짐을 지고 내려다보며 독백을 하고 있었다.
"열병식 직전에는 과식하지 말걸..."
열병식 현장에서 앙겔리카의 자는 모습이 방송되긴 했으나, 다리아 본인도 앙겔리카와 똑같이 자는 모습이 카메라에 찍혀 방송됐기 때문에, 앙겔리카는 다리아의 기대와는 달리 제국 국민들에게 딱히 욕먹지 않았다.
"아무리 정적이라지만, 가족이기도 하니...살릴지 죽일지 정말 고민되는군."
그러다가 창밖을 보는 것을 멈추고 옥좌에 앉은 다리아는 자신의 하나뿐인 친언니 앙겔리카의 처분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기 시작한 것이다.

3월 31일, 드디어 다리아는 결단을 내렸다. 다리아는 아마르나 감옥의 교도관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짐의 말을 잘 듣고 앙겔리카에게 그대로 전하라. 짐이 특별히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짐의 앞에서 손수 사과한다면 사형시키지 않고 종신형에 처하기로 했다."
"네, 알겠습니다."

교도관은 감옥으로 돌아와 철문을 가볍게 두드려서 인기척을 내고 독수감방의 철문을 열어 앙겔리카에게 다리아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앙겔리카는 교도관의 예상과는 아주 다른 반응을 보였다.
"식사 시간에 감옥 내부 식당에 있는 텔레비전을 보니까 다리아도 열병식 현장에서 저와 똑같이 자더군요. 마리아 황제 생일 기념 열병식 현장에서 잠을 잔 게 사과를 하지 않으면 사형당해야 할 중죄라면, 다리아도 마리아 황제를 모독하고 사과도 하지 않았으니 죽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리아가 먼저 제국 국민들에게 사과를 하여 국가원수로서의 모범을 보인다면 저도 사과하겠습니다. 다리아에게 방금 한 말 그대로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미 죽음을 각오한 몸입니다."
앙겔리카가 등을 쭉 펴고 공포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교도관을 바라보며 말했다.

교도관은 집무실로 가 사색이 된 표정을 짓고 다리아에게 앙겔리카가 한 말을 그대로 전했다.
"앙겔리카, 보자 보자 하니까 못 하는 소리가 없구나. 좋다, 소원대로 해주지. 그 주제를 모르고 날뛰는 버르장머리 없는 여자를 내일 1시에 단두대로 죽여 제국의 법도를 바로 세우겠다. 생방송으로 그 여자의 사형 장면을 송출하겠다. 교도관들과 앙겔리카에게 짐의 명령을 당장 알려라. 처형 직전에 그 여자가 카메라 앞에서 뭐라 지껄이든 그냥 송출하라. 그 여자 최후의 발악을 모든 국민에게 보여주겠다. 단두대의 줄은 네가 당겨라. 그리고 시신은 바다에 유기하라."
다리아가 책상에 있던 와인 잔을 바닥에 집어 던지며 소리쳤다. 교도관은 깜짝 놀랐다.

교도관은 아마르나 감옥으로 돌아와 먼저 교도관들에게 다리아의 명령을 알리고, 앙겔리카에게도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자신이 단두대의 줄을 당기게 됐다는 사실까지 포함하여 다리아의 말을 그대로 전했다.
"여기에 감금된 날부터 예상했습니다,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며칠 동안 쭉 유언을 생각해두고 있었습니다. 교도관, 제게 개인적인 원한은 없죠? 그렇다면 부디 제가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축원해주십시오. 저는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를 주신으로 숭앙하는 종교인 아마르나교의 신자입니다. 나름 선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사망한 선자만 갈 수 있다는 낙원인 아스가르드에 입성하여 영원토록 복덕원만을 향유하며 살고 싶습니다."
앙겔리카가 의연한 태도로 침착하게 교도관에게 말했다.
"...알겠습니다."
교도관이 고개를 떨구고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고는 힘없이 철문을 잠그고 떠났다.

'아이린이 혁명의 지도자로 가장 적합해. 그녀는 아직 수도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고, 내 친우들 중에서 민첩성과 침착성이 가장 뛰어나며, 달변가이고, 가장 작위가 높으며, 타인의 말에 경청을 잘하니까 말이야. 역시, 그녀에게 혁명의 지도자가 돼주길 부탁해야겠어. 그녀라면 이런 나를 기꺼이 이해해주겠지...말비네 폰 티르피츠, 빌헬미나 폰 자이틀리츠, 마르가레테 폰 나사우(Margarethe von Nassau), 부디 아이린을 도와주십시오...'
다시 혼자 남은 앙겔리카가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창밖을 쏘아보며 말했다.
"관객의 기대에 응해주는 것이 배우의 의무인 법. 네가 원하는 대로 실컷 날뛰어 나라를 뒤흔들고 네가 앉은 옥좌까지 쓰러뜨려, 너를 대학살의 피 위에서 춤을 추게 해주겠다."

4월 1일 0시 30분, 다리아는 측근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30분 후면, 앙겔리카는 죽는다. 골칫거리 하나 죽는 걸 구태여 내 눈으로 직접 봐서 밤잠 설칠 필요는 없지. 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무척이나 피곤하다. 짐은 이제 좀 자겠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해 뜰 때까지는 짐을 깨우지 마라. 명령이다."
그러고는 하품을 하며 주병을 품에 안은 상태로 침실에 문 닫고 들어갔다.

0시 50분, 제3함대와 제3방위대가 있는 행성 아른슈타트에서 아이린과 말비네는 보초를 서고 있었다.
말비네가 제국사관학교 졸업식 때 마르가레테 폰 나사우 부교장에게 받은 스마트폰을 보며 아이린에게 말했다.
"아르카디아 이후 2825년에 출발해 아르카디아 이후 2885년에 귀환한 제1차 지구탐사대의 말에 의하면, 항성 아르카디아에서 약 20광년 떨어진 지구라는 행성에도 지구인이라는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하더군. 우리 입장에서는 지구인들이 외계인이고, 지구인들 입장에서는 우리 아르카디아인들이 외계인이지. 지금이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일인데, 지구 시간으로는 지금이 1892년 4월 1일일세. 하여튼, 과학 기술 수준은 우리에 비하면 매우 낮지만, 의외로 우리와 유사성도 많다고 하더군. 지구인들은 우리와 유사하게 생겼는데, 단성, 그러니까 여자로만 이루어진 우리와 달리 지구인들은 여자와 남자라는 양성으로 구성됐다고 하네. 남자라는 성은 금수 세계의 수컷 같은 존재일세. 임신을 할 수도 있고 시킬 수도 있는 우리와 달리, 지구인 여자는 임신하는 것만 가능하고, 지구인 남자는 임신시키는 것만 가능하다고 하더군. 임신시키는 방식도 자신의 애액을 상대방의 질 안에 주입해서 상대방을 임신시키는 우리의 방식과는 다르다고 하더라고."
"...그래? 그나저나 경은 안 피곤한가? 나는 좀 피곤하네."
아이린이 하품을 하며 말비네에게 말했다.
"별로 안 졸려. 대신에 좀 심심하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런 곳에 적이 오겠어? 왜 철야 근무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군. 심심한데 뉴스나 보자."
그렇게 말한 말비네는 생방송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아이린도 잠 좀 깨기 위해 같이 보기 시작했다. 뉴스를 틀자마자 긴장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뉴스 속보입니다. 현장 연결해주세요."

아이린과 말비네가 보초를 서고 있을 때, 앙겔리카는 이미 단두대와 카메라 앞에 서 있는 상태였다.
"좀 피곤하군요."
"잠을 안 주무셨습니까?"
"네."
"왜 안 주무셨습니까?"
"어차피, 곧 영원히 자게 될 테니까요."
"현재 시각, 0시 55분입니다. 사형 집행은 1시에 합니다. 촬영...시작하겠습니다. 모든 국민에게 송출되는 생방송입니다. 유언...준비되셨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그럼, 촬영...시작하겠습니다."

"아이린, 갑작스럽지만 나,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가 자네의 친우로서 부탁하고자 한다. 비정상적인 시대에는 비정상적인 방법이 필요한 법이지. 부디 혁명을 일으켜 자네가 황제가 되어, 부패하고 무능한 골트베르크 가문의 세습정치를 타파하고, 건국자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의 숭고한 이상을 되살려주게나. 자네는 내 친우들 중에서 민첩성과 침착성이 가장 뛰어나며, 달변가이고, 가장 작위가 높으며, 타인의 말에 경청을 잘하니, 자네의 친우들과 함께 능히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 걸세. 부탁한다, 아이린! 아이린 황제 폐하 만세! 아이린 대원수 폐하 만세! 우리 성스러운 아르카디아여, 영원하여라!"

"...1시입니다. 집행...하겠습니다. 누우십시오."
앙겔리카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누웠다.
"줄...당기겠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
교도관의 말이 끝나자마자, 단두대의 칼날이 순식간에 마리아 폰 골트베르크의 장녀이자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의 친언니인 여인을 향해 떨어졌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일 1시,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는 현세를 떠났다. 


"방금 보신 바와 같이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 공작은, 다리아 황제 폐하께서 직접 주최하시고 참관하신 신성한 열병식 현장에서 코를 요란하게 골고 침을 흘리며 자는 불경죄를 범했기 때문에,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 공개처형됐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수도 아마르나에서는..."
아나운서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앙겔리카의 사망을 시청자들에게 재확인시켰다.
"...앙겔리카, 앙겔리카가 죽었어...? 아, 아이린, 보았나...? 이...이게 무슨 일이야..."
말비네가 무척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아이린에게 다급히 말했다.
"아이린,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 어디 가?"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는 방금,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에 의해 억울하게 사망했네. 여기서 낙루하고 있는 것보단, 원흉이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 쪽이 그녀의 친우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아니겠는가?"
아이린이 뒤돌아서 말비네를 눈에 누액이 고인 상태로 바라보며 말했다.
"자...자네 말이 옳아. 나도 같이 가세."
말비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자 아이린도 눈을 잠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말비네, 애곡은 복수를 완수하고 나서 같이 하세. 지금은 잠시 북받치는 애수를 자제하고 복수에 전념할 때니."
"...알겠네."
"제3함대와 제3방위대의 사령관을 만나 설득하여, 군사혁명을 시작해야 할 때네. 그분들도 우리와 같은 마음일 걸세."

아이린과 말비네가 아른슈타트 기지 안 제3함대 사령관 집무실로 들어갔을 때, 자이틀리츠는 이미 기립한 채로 한 손에 권총을 쥐고 있었다. 자이틀리츠 앞에 있던 퍼스널 컴퓨터는 모니터에 공권 자국이 남은 채 파괴된 상태였다. 자이틀리츠의 우수에는 약간의 출혈이 발생하고 있었다.
"...교장님도 보셨군요."
"...그렇다네. 지금은 지체할 시간이 없어. 군사혁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병력, 보안, 명분이 아닌 신속일세. 자네들도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이미 알고 있겠지? 나는 나사우 제3방위대 사령관을 설득하러 가겠다. 나와 성향이 유사한 오랜 친우이니 틀림없이 동참해 줄 거야. 자네들은 연병장에 병사들을 소집해주게나. 다들 철야 근무 중이라 기지 안 곳곳에 있는 텔레비전들 때문에 소식을 이미 접했을 거야. 모범생 앙겔리카가 자네를 낙점했으니 분명히 타당한 이유가 있겠지. 그러니 아이린, 이제 자네는 준장(Commodore Admiral), 소장(Rear Admiral Lower Half), 중장(Rear Admiral Upper Half), 상장(Flotilla Admiral), 대장(Full Admiral), 차수(General Admiral), 원수(Grand Admiral)가 아닌 대원수(Admiralissimo)일세. 즉 혁명군의 수반이다. 부디 이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어주게나."
자이틀리츠가 휴지로 우수의 피를 닦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아이린과 말비네가 비장한 목소리로 동시에 말했다.

아이린과 말비네는 기지 내 확성기들을 통해 급히 알릴 중대한 사항이 있다며 군인들을 기지 건물 밖 연병장으로 소집시켰다. 자이틀리츠가 제일 먼저 사열대 위에 올라서자 연병장에 모인 군인들의 시선이 온통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 자이틀리츠의 뒤를 따라 나사우, 말비네, 아이린도 사열대 위에 올랐다. 사열대에 마련된 마이크 앞에 있던 카메라가 녹화를 시작하자, 자이틀리츠가 마이크를 잡고 단연한 표정으로 말을 시작했다.

"군인 제위! 제3함대 사령관, 빌헬미나 폰 자이틀리츠다. 군인 제위 대부분이 철야 근무 중에 보았듯이 선한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가, 폭군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에 의해 억울하게 살해당한 것을 봤을 것이다. 그런데 다들 생각해보았는가, 우리가 철야 근무를 하게 된 이유를? 우리가 철야 근무를 하게 된 이유는, 다리아가 요즘 군인들은 군기가 빠졌다는 근거도 없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지껄이며, 정신 교육의 일환으로 한 달에 한 번 철야 근무를 하라고 명했기 때문이다! 가렴주구를 일삼고 사치를 일삼으며 제 친언니까지 살해하는 폭군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가축처럼 생각할 것이다! 이런 폭군이 국가원수일 필요가 있겠는가?"

"아니다!"

"경들의 말대로, 절대 아니다! 그런 폭군은 죽여야 한다. 그렇기에 나는 경들에게 제안하고자 한다.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의 유언대로, 혁명군을 구성하고자 한다. 메마른 대지가 비바람을 갈망하듯 단 한 사람을 원한다! 단 한 사람! 폭풍을 불러올 자! 그자는 바로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라는 자다!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의 선택을 받은 현명한 천재! 그렇기에 나는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을 혁명군의 최고사령관이자 대원수로, 새로운 황제로 추대하고자 한다. 나와 마르가레테 폰 나사우 제3방위대 사령관은 사령관직을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에게 양여한 후,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을 도울 것이다. 경들도 혁명군의 성원이 되길 바란다. 나의 제안에 동의한다면, 왼쪽 팔을 높이 뻗으며 아이린 만세라고 외치길 바란다."

"아이린 만세!"

"전원 찬성이군. 그렇다면 아이린 대원수 폐하, 기조연설을 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입니다. 엄숙한 마음으로, 제위의 지명을 수락하겠습니다.

군인 제위!

골트베르크 가문과 그들의 비호를 받는 제국익찬회는 국민들을 착취하여 온갖 악행과 사치를 일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국민들을 보호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음에도 그들이 독점하는 권리 하나 누리지 못했습니다! 사치는커녕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입니다!

평민들의 삶은 더 끔찍합니다. 초근목피를 먹어가며 간신히 연명하는, 너무나도 열악한 의식주로 생계를 이어가는 평민들의 현실에, 그들은 아무런 관심이 없고 오히려 평민들을 대상으로 가렴주구를 일삼기까지 합니다!

심지어 다리아는 자신의 친언니까지 끔찍하게 살해했습니다! 혈육도 가차 없이 죽이는 비정한 자가, 자신의 혈육도 아닌 국민들을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금수만도 못한 존재로 생각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골트베르크 가문과 제국익찬회의 학정을, 끝장냅시다!

제가 저의 생명을 기꺼이 혁명을 위해 바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제위에게도 이와 같은 각오를 다지기를 요구하는 바입니다.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습니다. 그렇기에, 누구라도 이 국가적 사명에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거부하려 드는 사람들은 비참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금수만도 못한 반대자들 앞에는, 오직 참살만이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하고 마치겠습니다.

하늘이 벌하지 못한 그 죄악을, 어둠 속에서 처단한다!

혁명군, 승리 만세!"

"승리 만세!"

연설이 군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성공적으로 끝난 후, 아이린, 말비네, 자이틀리츠, 그리고 나사우는 즉석에서 작전 회의를 시작했다.
"빌헬미나 폰 자이틀리츠 대장, 각하께서는 제3함대의 부사령관 겸 분함대사령관이 되어주십시오. 말비네 폰 티르피츠 준장, 경은 제3함대의 분함대사령관이 되어주게나."
"알겠네."
"곧장 제3함대를 이끌고 아헨 요새를 지나 수도 아마르나로 진격해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를 주살합시다. 현재 병력은 50,000명이고 군함은 5,000척이 있는 제3방위대의 병력 48,000명과 군함 4,800척을 제3함대에 편입시키겠습니다. 이러면 제3함대의 병력은 148,000명, 군함은 14,800척이 되는 것이죠. 마르가레테 폰 나사우 대장, 각하께서는 제3방위대 부사령관이 되어 이곳 아른슈타트를 견수해주십시오."
"알았네. 꼭 성공하게나."
혁명군의 제3함대는 서둘러 아른슈타트를 떠나 아헨 요새로 향했다. 이때 시각, 1시 50분이었다. 아이린은 진격하는 동안에도 기함인 항공모함 뇌르틀리헤 뢰빈(Noerdliche Loewin)에서 말비네, 자이틀리츠와 통신기계를 통해 작전 회의를 이어갔다. 뇌르틀리헤 뢰빈은 북방의 암사자라는 의미다.

"돌발 상황 발생!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입니다!"
아헨 요새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가 중앙관제실에서 달콤한 꿈을 맛보고 있던 제국정부군 제2함대 사령관 파울라 폰 브라운(Paula von Braun)에게 쓰디쓴 현실을 맛보도록 강요했다. 2시 50분의 일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브라운은 옆에 졸지 않고 있었던 제국정부군 제2방위대 사령관 트라우들 폰 훔프스(Traudl von Humps)에게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갑자기 정체불명의 함대가 신원도 밝히지 않은 채 우리 요새로 접근 중입니다."
"그렇다면 반란..."
브라운이 말을 미처 끝내기도 전에 정체불명의 함대는 더욱 가까이 접근하여 모든 군함이 요새를 향해 전탄발사를 했고, 이를 알리는 오퍼레이터의 다급한 목소리는 다시 한번 브라운의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갑자기 연방군이 순간이동을 해서 침공한 것은 아닐 테니, 반란인 것이 분명합니다. 저는 바로 출격할 테니, 훔프스 대장 각하께선 제2방위대 병력 대부분을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요새 내 출입구 밑 이착륙장에 소집시켜주십시오. 그리고 수도에도 소식을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제2함대를 이끌고 아헨 요새 밖으로 나온 브라운은 기함의 함교에 마련된 상석에 앉은 상태로 부관에게 물었다.
"지금 적군의 병력은 어느 정도인가?"
"약 4,800척으로 추정됩니다."
"확실한가?"
"예, 거의 확실합니다."
"그렇군. 그럼 우리 함대는 적 함대를 맹추격한다."
"어째서입니까? 함정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순식간에 나타나 전속력으로 진격해 갑자기 모든 군함이 전탄발사를 했다? 이는 저것들이 매우 다급한 상황이라 전격전을 시도했다는 증거야. 동시에 4,800척이 선봉대가 아니라 적군의 전 병력이라는 증거이기도 하지. 선봉대는 정찰만 하고 귀환하는 것이 일반적이지 저렇게 다짜고짜 총공격을 퍼붓는 경우는 없어. 군사혁명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신속이긴 하지만, 저것들은 하나만 알지 둘은 모르는군. 병력이 너무 적어선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야. 함대를 이끌고 군사혁명을 성공시킬 생각이었다면 병력이 최소한 10,000척은 됐어야지."
"듣고 보니 사령관 각하의 판단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10,000척의 제2함대, 전속력으로 진격해 저 반란군을 하나도 남김없이 전멸시켜라! 함정 따위 없다! 4,800척이 저들의 전 병력이다! 전진하라!"
이 말을 외친 후 브라운은 손쉽게 진급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여 흥분을 감추지 않았다.
"반란군의 만용에 철퇴를!"
다시 한번 호기롭게 외친 브라운이 이끄는 제2함대는 도주하는 정체불명의 함대 뒤를 맹렬히 추격했다.
"꼴사납게 도망이나 치는 꼴이 참으로 우습구나!"
이미 브라운의 마음은 함교가 아닌 개선식에 가 있었다.

그러다가 소행성들이 잔뜩 있는 영역에 도달했고, 정체불명의 함대는 갑자기 도주를 멈추고 제2함대를 향해 발포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뭐하는 짓이지?"
브라운이 잠시 당황한 순간, 갑자기 소행성들 뒤에서 제2함대를 가뿐히 압도하는 병력의 함대가 등장하여 순식간에 제2함대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포위하여 궁지에 빠뜨렸다.
"함...함정입니다!"
부관이 브라운에게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비겁한 술수를...! 일단, 요새로 후퇴한다!"
하지만 제2함대가 왔던 길마저 이미 가로막힌 상태였다.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진 것이었다.
"전 군함, 전탄발사 개시!"
조금 전까지 제2함대에 뒤쫓기던 아이린의 분함대가 전탄발사를 시작하자, 말비네와 자이틀리츠의 분함대들도 뒤이어 전탄발사를 개시했다.
제2함대는 살벌한 화염에 휩싸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브라운으로부터 만용을 부린다는 비난을 받은 혁명군은 그 분풀이라도 하듯이 제국정부군을 철저히 섬멸하였다.
"중과부적! 나에게 무운만 있었더라면..."
브라운의 탄식이 끝나자마자 기함은 처참히 파괴되었다.

제2함대가 전멸한 것을 확인한 혁명군 제3함대는 곧장 아헨 요새를 향해 위풍당당하게 진격했다. 혁명군은 요새포의 사정거리권을 회피하며 구형의 요새 상부에 있는 요새 출입구로 접근했다. 요새포가 혁명군을 포격하기 위해 따라 이동했지만 이동 속도가 너무 느려서 혁명군을 공격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요새 출입구 위에 도달한 혁명군은 맹공을 퍼부었고, 꽤 견고했던 출입구는 속절없이 파괴되어 침략자들에게 내부를 개방하는 것을 강요당했다.
"으악!"
갑자기 파괴된 출입구 위에서 혁명군의 공격이 무자비하게 이착륙장으로 직하하자, 소집된 제2방위대 병력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미처 피하지도 못한 채 즉사했다. 제2방위대 소속 군함들도 전부 파괴되었다. 이후 혁명군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히 파괴된 군함들의 잔해와 제2방위대 소속원들의 시산혈해 위에 착륙하여 제2방위대 병력 일부가 잔존한 중앙관제실을 향해 달려갔다. 중앙관제실 문 앞에 있던 제2방위대 소속 병사 2명은 아이린과 말비네가 날아올라 발로 걷어차서 넘어뜨린 후 총살했다.
"쾅!"
굳게 닫혀있던 중앙관제실의 문이 굉음과 함께 폭파되었고, 곧바로 혁명군과 제국정부군은 블래스터를 쏘며 교전했다. 그러나 병력이 워낙에 압도적으로 차이가 났던지라, 교전은 단시간에 혁명군의 승리로 끝났다.
"제국...만세!"
단말마적 비명을 내지르며 훔프스는 전사했다. 이로써 병력 50,000명, 군함 5,000척의 제2방위대는 제2함대의 뒤를 이어 전멸하고, 혁명군은 행성 아른슈타트에 이어 아헨 요새도 장악하는 데 성공하였다. 아이린은 요새포를 수도 방향으로 향하도록 이동시키고, 병력 대부분을 이착륙장에 소집시켜 언제든지 출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제3방위대 일부를 아헨 요새로 오게 하고, 통신기계를 통해 골트베르크 가문과 제국익찬회 타도를 목표로 한 혁명군이 제2함대와 제2방위대를 전멸시키고 행성 아른슈타트와 아헨 요새를 점령하였다는 소식을 제국 전역에 알렸다.

4시, 제2방위대가 발송한 소식을 접하고는 아헨 요새로 접근하던 제1함대는 혁명군이 송신한 소식까지 추가로 받자 무척이나 당황했다.
"벌써 반란군에 당했다니...지체할 새가 없군. 제1함대, 아헨 요새를 향해 최대 속도로 돌격하라!"
제국정부군 제1함대 사령관 헬레네 폰 리펜슈탈(Helene von Riefenstahl)이 조급한 마음을 품고 외쳤다. 병력 100,000명, 군함 10,000척의 제1함대는 요새포의 사정거리권도 망각한 채 아헨 요새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제1함대가 사정거리권에 들어왔다. 요새포 발사!"
아이린의 짧은 명령이 끝나자마자 요새포가 발사됐고, 제1함대 군사력의 8할이 리펜슈탈과 함께 순식간에 소멸했다. 간신히 생존한 제1함대 일부도 요새에서 출격한 제3함대의 공격에 의해 전멸하였다. 아이린은 제1함대가 전멸했다는 소식도 통신기계를 통해 제국 전역에 알렸다.

5시, 에리카 폰 만슈타인(Erika von Manstein) 준장이 이끄는 제3방위대의 일부가 아헨 요새에 도착했다. 병력 1,000명, 군함 100척이었다. 아이린과 만슈타인은 만나서 짧은 인사를 나눴다.
"아이린 대원수 폐하,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 요새의 점령으로 군사혁명의 성공이 가까워졌습니다.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 준장 각하께서도 아스가르드에서 무척이나 기뻐하실 겁니다."
"동감합니다. 에리카 폰 만슈타인 준장 각하께서도 이곳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인사를 주고받은 후 아이린은 제3함대를 이끌고 수도 아마르나로 진격했다.

같은 시각, 자신의 친언니 앙겔리카를 공개처형한 후 돌연 양심의 가책을 느낀 다리아는, 만취할 정도로 술을 마신 후 침대에 누워 자신의 앞에 거울을 두고 그것을 음주하며 계속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황제 폐하..."
"좋은 두상이로다. 이 머리를 가질 자 누구인가?"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을 마셔 만취한 상태에 빠진 다리아의 헛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측근인 자스키아 폰 에스켄(Saskia von Esken) 후작은 말을 계속했다.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라는 자가 수괴인 반란군이 행성 아른슈타트와 아헨 요새를 점령하고, 제1함대, 제2함대, 제2방위대를 전멸시킨 후, 현재 이곳 수도 아마르나로 진격 중입니다."
측근의 다급한 말을 들은 다리아는 무심하게 이야기했다.
"아직 우리에겐 제1방위대가 있지 않은가? 그리고 제국 각지에 있는 함대들에게도 구원 요청을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이미 구원 요청을 보냈으나, 아직 아무 회답도 받지 못했습니다."
측근에게서 비보를 들은 다리아는 자포자기한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다들 구원 요청을 받고는 마시던 커피를 통신기계에 뿌려 실수를 가장한 고의로 고장 낸 게 아닐까?"
"설마 황제 폐하의 충성스러운 군인들이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다리아의 추측은 놀랍게도 정확히 사실이었다. 다리아의 총애를 받은 제1함대, 제1방위대, 제2함대, 제2방위대, 제국익찬회 회원들을 제외한 제국군과 민간인들은 다리아의 자신들을 향한 괄대와 폭정 때문에 혁명군을 소극적으로나마 지지하는 상태였다.
"...자스키아 폰 에스켄 후작, 이만 퇴근해도 좋네. 반란군이 원하는 것은 짐의 목이지 경의 목이 아니야."
"황제 폐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경에게는 함께하고 먹여 살려야 할 가족이 있지 않은가, 혼자인 짐과는 달리. 골트베르크 가문은 오늘로 끝이다. 누구와 동반자살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네. 짐은 이왕 죽는 거 품위 있게 죽고 싶다. 이만 가보게나."
"다리아 황제 폐하..."
측근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자가 평소에 내가 알던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가 맞느냐는 의문을 속으로 품은 채 놀란 표정으로 다리아를 바라보았다. 다리아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자, 측근은 다리아의 배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부디...강녕하소서..."
측근이 정중히 인사를 한 후 천천히 다리아가 있는 침실에서 빠져나왔다. 측근이 아마르나 궁전 밖으로 나간 것을 침실 창문을 통해 확인한 다리아는, 침실에서 터벅터벅 걸어나와 집무실 옥좌에 앉았다. 그러고는 하염없이 기다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초대하지 않은 빈객들과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순간을.

6시 30분, 혁명군은 마침내 수도 아마르나에 도착했다. 행성 상륙 전, 제3함대는 제1방위대 기지, 제국익찬회 회관, 아마르나 부촌을 폭격하여 초토화했다. 제국익찬회 회원들은 전부 아마르나 부촌에 거주 중이었기에, 제국익찬회 회관과 아마르나 부촌만 파괴하면 제국익찬회도 완전히 파괴되는 것이었다. 하나 폰 라이치(Hanna von Reitsch)의 제1방위대와 제국익찬회가 전멸한 것을 확인한 혁명군은 다리아가 있는 아마르나 궁전 앞에 상륙했다. 아마르나 궁전으로 들어가 집무실까지 다다른 혁명군은 자신들 앞에 옥좌에 앉은 다리아가 있는 것을 목도했다.
"폭군 다리아! 앙겔리카 폰 골트베르크 공작의 시신을 어떻게 했지?"
아이린이 다리아를 살벌한 눈빛으로 노려보며 목청껏 물었다.
"다른 사형수들의 시체처럼 바다에 유기했다."
다리아의 무미건조한 대답을 들은 아이린은 격분하여 다리아 앞으로 달려가 다리아의 안면에 주먹을 갈겼다. 다리아는 옥좌에 앉은 채 뒤로 쓰러졌다. 말비네와 자이틀리츠가 화염방사기를 든 상태로 아이린의 옆에 섰다. 아이린의 뒤에는 다리아를 동영상으로 촬영하는 군인들로 가득했다. 이 모습을 본 다리아는 완전히 겁에 질린 채 손사래를 치며 애원했다.
"제...제발 사, 살려줘..."
"당신은 단 한 번이라도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을 살려준 적이 있었나? 지금의 당신처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들을 단 한 번이라도 살려준 적이 있었냐고?"
"허...헉..."
다리아는 그저 벌벌 떨 뿐 아이린의 말을 반박하지 못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이린은 품속에서 꺼낸 종이와 책상 위에 있던 옥새를 다리아 면전에 던지고 말했다.
"나를 국왕으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적힌 종이다. 이 종이에 옥새를 찍어라. 그러면 내가 자비를 베풀어 당신을 살려줄 수도 있다."
그 말을 들은 다리아는 허둥지둥하며 떨리는 손으로 종이에 옥새를 찍은 후 아이린에게 종이를 건넸다.
종이를 받은 아이린은 싸늘하게 말했다.
"살려줄 수도 있다고 했지, 반드시 살려준다고 한 적은 없다."
그러고는 뒤에 있던 군인으로부터 기름통을 건네받은 후 다리아에게 기름을 잔뜩 뿌렸다.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어라."
아이린의 말이 끝나자마자 말비네와 자이틀리츠가 들고 있던 화염방사기를 다리아에게 발사했다.
"끄아아아악!"
다리아의 육체는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다리아는 엄청난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고, 금수의 울음소리와 다를 게 없는 다리아의 단말마적 비명이 집무실에 울려 퍼졌다. 그렇게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는 아주 고통스럽게 분사했다.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의 사망은 곧 골트베르크 가문의 폐가이기도 했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일 6시 50분의 일이었다.

다리아가 사망한 후, 뒤에 있던 군인이 아이린을 보며 말했다.
"황제가 퇴위하면 국왕이 자동으로 차기 황제가 됩니다. 모두 외칩시다. 아이린 황제 폐하 만세!"
"아이린 황제 폐하 만세! 4.1 군사혁명 만세! 4월 혁명 만세! 아이린 유신 만세!"
"감사...합니다."
아이린은 말비네를 끌어안고 낙루하며 말했다. 그러자 말비네도 낙루하며 말했다.
"아이린...이제 다 끝났어. 아헨 전투와 아마르나 전투에서 승리한 우리가 성공한 거야. 아스가르드에서 앙겔리카도 이 모습을 보고 틀림없이 기뻐할 거야."
아이린과 말비네는 서로를 끌어안은 채 낙루를 멈추지 않았고,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자이틀리츠도 조용히 낙루했다.

혁명군이 촬영하고 유포한 동영상을 통해, 골트베르크 가문과 제국익찬회의 악정 종식과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의 황제 즉위 소식은 삽시간에 아르카디아 행성계 전역으로 퍼졌다. 제국 국민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리고 이날 발행된 관보 제국신문의 호외 1면에는 다음과 같은 표제가 큼지막하게 쓰여있었다.

북방의 암사자가 힘차게 포효하노라! 


최근 몇 주 동안 알마 폰 아렌트는 최악의 나날을 겪었다. 몇 주 전 알마는 갑자기 구내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져 동네 치과에 갔더니, 지치 4개가 전부 충치가 되어 발치가 시급한 상태라는 것과, 구내에서 반드시 발치해야 할 과잉치가 4개나 발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동네 치과에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였기에, 결국 알마는 대학병원에 입원하여 문제가 있는 치아 8개를 한꺼번에 발치하는 대수술을 받아야 했다. 알마는 퇴원한 후에도 극심한 후유증으로 고통받았고, 수술 부위의 실밥까지 제거한 후에야 가까스로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9일은 항상 공휴일인 일요일이 아닌 토요일이라 원래대로라면 대입학원에 등원해야 했지만, 작일은 대통령 선거일이었고 금일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9일은 대통령 취임일이라 공휴일이었기에, 삼수생인 알마는 책상 의자가 아니라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르카디아 연방 대통령 선거의 승자는 동맹당의 극우 군국주의자인 이다 페타치(Ida Petacci)였다. 투표율은 20퍼센트였고, 이다 페타치의 득표율은 80퍼센트였다. 동맹당 후보의 득표율은 18퍼센트, 중도좌파 성향의 대안당 후보 득표율은 2퍼센트에 그쳤다.

알마는 작년 아르카디아 이후 2891년에 대안당에 입당하여 당내 위원회들 중 하나인 모병제 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알마는 선거 결과에 낙담하여 근심 어린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파묻고 텔레비전을 틀어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일에 갑작스레 아르카디아 제국의 황제가 된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은 황제 즉위 당일에 소득세, 면허세, 사치세, 기본소득제, 최저임금제, 부가가치세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수도 아벤트에 비가 내립니다. 그래서 원래 야외에서 진행하기로 예정됐던 대통령 취임식이 대통령궁 내부에서 진행됐습니다. 금일 취임한 이다 페타치 대통령은 아르카디아 연방의 국가인 대통령 만세(Hail to the Chief)를 부른 후 취임사에서 제국을 향해 강경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제 부친께서는 아르카디아 이후 2820년 2월 5일, 이리나 폰 골트베르크 집권 시절 제국의 선전포고 없는 기습에 의해 발발한 호국전쟁에서 제국군과 교전 중 전사하셨습니다. 동맹당 소속 세트 네프티스(Set Nephthys) 대통령과 제 부친 같은 군인들의 수많은 희생 덕분에, 호국전쟁은 아르카디아 이후 2823년 2월 10일에 무승부로 끝나 우리 연방은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국은 호국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과하지 않았고, 오히려 수많은 군사적 도발을 일삼았습니다. 그리고 금년 1월 1일에는 우리 연방의 돈으로 지은 연락사무소를 폭파하는 만행을 저지르고도 역시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았습니다. 연락사무소 폭파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적대 행위입니다.

얼마 전에 다리아 폰 골트베르크를 살해하고 황제가 된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 호국전쟁과 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면, 그녀 역시 그녀가 혐오하는 골트베르크 가문의 위정자들과 다를 바 없는 인물인 것입니다. 제국이 금년 안에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다면, 저는 내년 1월 1일에 제국을 공격하여 제국이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다 페타치 대통령은 반군국주의는 제국이 지지하는 사상이고 모병제는 제국이 시행하는 제도이므로 이것들을 지지하는 자는 적국인 제국을 추종하는 역적이며 인간이 아닌 금수라고 주장하며, 취임 전부터 공약으로 내세웠던 반군국주의자 처단법 제정을 위해 반군국주의자 처단법 발의안을 국회에 제출했습니다.

반군국주의자 처단법은 모병제 지지자와 징병제 반대자를 즉결 처분으로 사형시키고, 반군국주의 성향의 단체는 강제 해산시킨다는 내용의 소급 적용되는 법입니다. 반군국주의자 처단법이 제정되면 반군국주의를 지지하고 징병제 폐지와 모병제 시행을 주장하는 원내 제2야당인 대안당은 강제 해산되고, 현재 대안당 당원이거나 과거 대안당 당원이었던 자는 사형됩니다. 반군국주의자 처단법 발의안에 대한 표결은 명후일 월요일 오전에 시행될 예정입니다.

한편, 현재 대안당 당원들은 발의안에 매우 격렬히 반대하며 대안당 중앙당사에 집결하여 발의안 철회를 요구 중입니다. 대안당 측은 피지배층에겐 이득이 되지 않고 지배층에게만 이익이 되는 무모한 전쟁을 강행하려는 이다 페타치 대통령의 발의안이 철회될 때까지 농성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리고 경찰 측은 발의안이 채택되는 즉시 대안당 중앙당사에서의 농성을 제압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습니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대는 소식을 접한 알마는 한숨을 쉬며 기분이 착잡해진 상태로 고민에 빠졌다.

'여당인 극우 성향의 동맹당이 국회 의석 300석 중 220석을 차지하고 있으니 발의안은 채택될 것이 확실하다. 75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인 농업당도 중도우파 성향이라 자당과 반대되는 성향을 가진 경쟁자인 중도좌파 성향의 대안당이 제거되는 것에 딱히 반대하지 않을 것도 분명하다. 그리고 5석을 차지하고 있는 당원 수가 5만명에 불과한 소수 정당 대안당에게 연방경제협회, 거대 양당, 군대, 경찰의 폭력을 막아낼 힘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여기까지 생각한 알마는 잠시 눈을 감고는 동맹당이 서방반란군이라는 멸칭으로도 부르는 고유명사를 생각해냈다.

'...역시, 내가 살고 대안당도 살기 위해선 아르카디아 제국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건가.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라는 황제가 말이 잘 통하는 인물이길 바라야겠군. 연방, 너희가 나를 금수 취급한다면 나도 너희를 인간이 아닌 금수로 취급하겠다.'

제국은 연방의 군수품을 가지고 망명한 자에게 남작 작위와 포상금을 수여하고 망명자가 원하는 경우 제국군 준장으로 특별임관시켜주는 특별 망명자 우대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연방도 이와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고 있었다. 이 제도를 알고 있었던 알마는 장고를 거듭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결심했다, 연방군 전함을 나포하여 보따리상들이 은밀히 다니는 길을 통해 제국으로 가기로. 가만히 앉아 죽음을 기다리는 것과 농성하다가 허망하게 사망하는 것보단 훨씬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거사를 거행하기로 의연히 결단한 알마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거사에 필요한 필수품들을 준비하고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아비도스행 우주선 탑승권도 예매하였다. 거사를 거행하기로 정한 날은 바로 내일이었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0일 일요일,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아침에 알마는 블랙 라이더 슈트를 입고 책가방을 멘 후 조용히 집을 빠져나와 집 근처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알마가 버스 정류장으로 가는 길에는 담배를 핀 후 박력 있게 땅에 있는 비둘기들을 향해 침을 뱉고 욕설을 내뱉는 화끈한 사람들로 가득했다. 정 많은 연방인들은 비둘기에게까지 관용과 배려를 베풀었다. 가지고 있는 것이 없다면 몸속에 비축해 둔 식량까지 몸소 비둘기와 공유하는 선량한 모습, 이는 가히 오랜 세월에 걸쳐 계승되어 온 연방만의 우수한 전통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뿐만 아니라 길바닥은 다른 사람이 길 가다가 씹을 수 있게 바닥에 본인의 껌을 붙여두는 자상한 배려심으로 가득했다. 이는 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연방인들의 배려심이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강해진다는 것은 연방 국민성의 위대함을 당당하게 과시하는 것으로 봐도 좋으리라.

버스 정류장에서 한껏 연방의 숭고함과 연방의 자랑스러운 특산물인 미세먼지를 듬뿍 만끽하던 알마는 30인승 버스가 와서 문을 열자 사뿐히 올라탔다.

버스 탑승 중 알마는 우연히 자신의 손에 붙어있던 반창고를 “아, 이젠 피 멈췄네?”라고 말하며 지하철 손잡이에 붙이는 연방인을 보게 됐다. 매일매일 수많은 탑승객에 의해 더럽혀지는 국산 버스가 아플까 봐 반창고까지 붙여주는 아름다운 배려심, 무생물에게도 연민을 느낄 정도로 사려 깊은 연방인을 본 알마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이 뿌리내렸다. 연방의 우월함을 또다시 깨닫고, 또 연방의 미래가 청천백일과 같음을 다시금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벤트 공항에 도착한 알마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공항 안에 있는 현금자동입출금기로 가서 자신의 통장에 있던 잔액을 모두 인출했다. 120만 알이었다. 연방의 1알은 제국의 1안으로 환전할 수 있고, 1안도 1알로 환전할 수 있기에, 알마가 인출한 120만알도 당연히 제국에서 제값대로 사용 가능했다.

알마가 탑승구 앞으로 가자 제복 차림의 데스크 직원이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안녕하십니까. 탑승권과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알마는 스마트폰을 켜서 온라인 탑승권을 직원에게 보여준 후 신분증도 보여줬다. 알마가 직원에게 보여준 신분증에는 흑발흑안인 알마의 증명사진과 다음과 같은 개인 정보가 있었다.

성명: 알마 폰 아렌트(Alma von Arent)
출생일: 아르카디아 이후 2872년 8월 11일
출생지: 아벤트 특별시
국적: 아르카디아 연방
신장: 191cm
체중: 85kg
두발색: 흑발
홍채색: 흑안
혈액형: O형
스리 사이즈: B102J W62 H92

"네, 확인됐습니다. 탑승하셔도 됩니다."
직원이 말했다.

알마는 탑승구로 들어가 30인승 우주선의 맨 뒷자리에 착석했다. 알마가 탑승한 우주선은 문이 1개인 것과 화장실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버스와 유사했다. 그리고 조종석과 승객석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착석한 알마의 앞에는 조종사밖에 없었고 그녀와 동류인 인물은 없었다. 그녀 뒤에 있는 화장실에도 아무도 없었다.

알마가 탑승한 비행편은 아비도스 공항에서 아벤트 공항으로 가는 비행편에 비해 탑승객이 워낙 적어서 하루에 1번만 운항하는 비행편이었다. 그래서 탑승객이 1명인 경우도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조종사가 입은 제복의 칼라에는 동맹당 당원이 착용하는 배지가 부착된 상태였다. 조종사들 중 동맹당 지지자가 많다는 사실을 두 눈으로 직접 깨닫게 된 알마는 그 배지를 보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 우주선은 아벤트 공항에서 출발하여 아비도스 공항에 종착하는 논스톱 플라이트입니다."
조종사가 마이크를 통해 말했다. 그리고 7시가 되자 우주선은 끝없는 어둠이 펼쳐진 시공간을 향해 날아올랐다, 서로 다른 종착지로 향하려는 조종사와 탑승객을 태운 채로. 우주선을 타고 행성 밖으로 나온 알마는 창밖에 펼쳐진 별들의 향연을 보며 사색에 잠겼다. 이윽고 영원이라는 제목의 자작 시를 읊조렸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애장품이 사라지더라도,
그것은 소유자의 뇌내 기억으로 남고,
소유자의 뇌가 사라지더라도,
소유자의 뇌는 이것이 매장된 대지의 일부가 되어 남고,
대지가 지구가 멸망하여 사라지더라도,
대지는 우주의 소립자가 되어 남고,
우주가 멸망하여 소립자가 사라지더라도,
그것은 애초부터 무인 것이 아닌,
유에서 무로 변한 진공이 되어 영원히 남는다.

시간이 흘러 11시, 우주선이 행성 아바리스와 행성 아비도스 사이에 있는 아비도스 항로를 비행하고 있을 때, 조종사는 갑자기 졸음이 몰려오자 정신을 차리기 위해 웅장한 교향곡을 큰 음량으로 재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알마는 원래 앉아있던 맨 뒷자리에서 일어나 조용히 맨 앞자리로 옮겨 앉았다. 조종사는 알마가 이동한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알마는 몹시 긴장한 상태로 잠시 가슴을 두근거리며 조종사를 지켜보다가 조종사가 뒤돌아보지 않자 책가방에서 도끼를 꺼냈다. 그러고는 곧바로 도끼를 들고 전속력으로 조종석을 향해 달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조종석에 앉아있던 조종사를 일격에 참수하여 살해했다. 직후 조종기에 있는 정지 버튼을 누른 알마는 물티슈로 도끼에 묻은 조종사의 혈흔을 닦은 후 도끼를 다시 가방에 넣었다. 곧이어 문을 열고 조종사의 머리와 몸을 문밖에 펼쳐진 암흑세계로 투기한 후 서둘러 문을 닫았다.

이후 조종기를 통해 근처에서 항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연방군 제6방위대 소속 전함에게 우주선이 갑자기 고장이 나서 멈췄으니 문제 해결을 부탁한다는 내용의 전보문을 보냈다. 공휴일에는 평소와는 달리 항로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전함이 항로 하나에 1척밖에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알마는 다시 우주선의 문을 열고 재빨리 객실보다 어두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매직 미러가 설치된 화장실 문을 잠그고 전함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알마가 몸을 숨긴 화장실에는 객실에 화재가 발생했을 때 화재를 단숨에 진압하기 위한 용도의 할론 가스 대량 방출 버튼이 존재했다.

11시 30분, 드디어 전함이 우주선과 도킹하고 전함 승무원 10명 전원이 우주선에 발을 디디었다. 함장은 백색 제복을, 나머지 9명은 회색 제복을 입고 있었다. 함장의 가슴에는 아덴 잭슨(Aden Jackson) 준장이라고 적힌 명찰이 달려있었고, 우수 약지에는 블랙 다이아몬드가 박힌 임관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매직 미러를 통해 전함 승무원들이 우주선 내부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을 확인한 알마는 곧장 할론 가스 대량 방출 버튼을 눌렀다. 알마가 버튼을 누르자마자 객실 천장에서 할론 가스가 대량으로 방출되어 객실에 있던 전함 승무원 전원을 순식간에 기절시켰다.

이 모습을 확인한 알마는 조용히 화장실 밖으로 나와 회색 제복을 입은 전함 승무원 9명을 뾰족한 도낏자루 끝으로 척살했다. 그러고는 블랙 다이아몬드가 박힌 임관반지와 함장의 주머니에 있던 블래스터를 자신의 전리품으로 삼은 알마는 함장을 전함 조종석까지 질질 끌고 가서 앉힌 후 함장의 몸을 자신의 책가방에 있던 밧줄로 묶어 양팔을 제외하고는 움직일 수 없도록 결박했다. 그리고 조종석에 딱히 무기가 없는 것을 확인한 알마는 조종석 뒤에 마련된 좌석에 앉은 후 함장의 종아리에 블래스터를 발사했다.

"끄아아악!"
총격에 의한 고통 때문에 함장은 기절 상태에서 깨어났다.
"나는 반정부군의 최고사령관이자 대원수인 알마 폰 아렌트다! 아덴 잭슨! 지금 당장 아르카디아 제국 아우크스부르크 요새를 향해 전속력으로 가라!"
함장이 뒤를 돌아보자 블래스터를 들고 있는 여인이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물었다.
"너, 너는 누, 누구냐? 우주해적이냐?"
"아, 우주해적? 그래, 우주해적이다. 하지만 평범한 우주해적이 아니야. 나, 알마 폰 아렌트는 적의 뼈를 붓으로 삼고 적의 피를 물감으로 삼으며 우주를 도화지로 삼아 그림을 그리는 아티스트 우주해적(Artist Space Pirate)이다."
"아티스트 우주해적이라니, 도대체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죽고 싶지 않으면 반정부군의 최고사령관이자 대원수인 나의 명령에 복종해라."
알마가 함장을 향해 블래스터를 겨누며 말했다.
"워, 원하는 게 뭐냐?"
"우주선을 폭파시키고 보따리상들이 다니는 항로를 통해 아우크스부르크 요새로 가라."
"그...그 항로에는 소행성들이 너무 많다."
"지금 당장 죽고 싶나?"
"아...알겠다."
알마의 명령대로 함장이 우주선을 폭파시켰다. 알마는 자신의 명령에 의해 우주선이 흔적도 없이 폭파되는 광경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예술은 폭발이고 폭발은 예술이다."

전함이 수많은 소행성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간 끝에 마침내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앞에 당도했다. 정체불명의 전함 1척을 발견한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중앙관제실이 전함을 향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문을 보냈다.
'정체를 밝히십시오.'
그러자 알마가 이렇게 회답했다.
'아르카디아 연방의 대안당 당원인 알마 폰 아렌트입니다. 연방의 정치적 탄압을 피해 제국에 망명하기 위해 연방군 제6방위대 소속 전함 1척을 나포하고 이곳까지 왔습니다. 부디 제 망명 신청을 받아주십시오. 이 전함은 제가 제국에게 선사하는 선물입니다.'
이윽고 요새의 출입구가 열렸고, 동시에 알마가 있는 전함에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중앙관제실이 보낸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전보문이 도착했다.
'알겠습니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요새 안에서 듣겠습니다. 일단 요새 이착륙장에 착륙한 후 무장을 해제하고 전함 밖으로 나오십시오.'
전함이 요새 이착륙장에 착륙하자 알마가 함장을 블래스터로 총살한 후 블래스터를 좌석에 두고 전함 밖으로 나왔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2년 4월 10일 일요일 16시의 일이었다. 이 사건을 아렌트 전투 내지 아렌트 사건이라고 부른다.

연방은 아렌트 사건을 우주선과 전함이 고장 때문에 폭파되어 발생한 사망 사고라고 발표하고 수사를 마무리 지었다.

전함에서 나와 장시간 신원 조사를 받고 이상이 없다는 것을 인정받은 알마 폰 아렌트는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에서 행성 알텐슈타트에 있는 알텐슈타트 호텔의 1509호 객실로 이송됐다.

이 소식은 4월 12일 화요일 13시에 아마르나 궁전에 있던 백작에서 황제가 된 아이린에게 전달됐다.
"망명자라, 오랜만이군. 연방의 민간인인데 연방군 전함을 나포해서 제국으로 온 망명자라...역사상 최초의 사례 아닌가? 궁금증을 자아내는 인물이로군."
아이린이 알마가 나포한 연방군 전함의 외부와 내부에 설치된 카메라가 촬영한 아렌트 전투 장면 동영상을 보며 말했다.

"맞아. 아이린, 궁금증 해결도 하고 기분 전환도 할 겸 알마 폰 아렌트라는 망명자를 일면하지 않겠나?"
옆에서 동영상을 같이 보고 있던 자작에서 공작이 된 아르카디아 제국군 원수 말비네가 아이린에게 물었다.
"좋은 생각이군. 지금 그렇게 하세."
"망명자는 이미 여러 번 비행한 상태라 피곤할 텐데 아마르나까지 또 비행해서 오게 하는 것은 실례라고 생각하네. 우리가 직접 대면하러 가는 것이 좋지 않겠나?"
"동의하네. 그런데 기함과 전용기가 고장이 나서 민간 우주선을 타고 가야겠어. 아마르나 공항으로 가세."
"나는 잔무를 처리해야 하니 자네 먼저 가게. 곧 따라가겠네."
"알았네."

아이린과 말비네는 알텐슈타트행 우주선 탑승권을 예매했다. 그리고 아이린이 먼저 아마르나 궁전에서 나와 아마르나 공항으로 향했다.
아이린이 탑승구 앞으로 가자 제복 차림의 데스크 직원이 그녀를 보고 깜짝 놀라 말했다.
"화, 황제 폐하, 무,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알텐슈타트에 체류 중인 빈객을 대면하려 하는데, 기함과 전용기가 고장이 난 상태라 민간 항공기에 탑승하려고 합니다."
아이린이 정중한 어투로 대답하며 당황한 직원을 진정시켰다.
"그, 그렇군요. 그렇다면 탑승권과 신분증을 보여주십시오."
아이린은 스마트폰을 켜서 온라인 탑승권을 직원에게 보여준 후 신분증도 보여줬다. 아이린이 직원에게 보여준 신분증에는 아이린의 증명사진과 다음과 같은 개인 정보가 있었다.

성명: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Airin Graf von Zeppelin)
출생일: 아르카디아 이후 2868년 8월 21일
출생지: 아마르나 특별시
국적: 아르카디아 제국
신장: 191cm
체중: 80kg
두발색: 흑발
홍채색: 흑안
혈액형: A형
스리 사이즈: B100J W60 H90

"네, 확인됐습니다. 탑승하셔도 됩니다."
직원이 말했다.
이마를 가린 흑발 단발머리를 한 아이린은 탑승구로 들어가 30인승 우주선의 맨 앞자리에 착석했다. 이윽고 말비네도 아이린의 옆자리에 착석했다. 아이린과 말비네가 탑승한 우주선은 14시에 이륙하여 18시 30분에 알텐슈타트 공항에 착륙했다. 버스를 타고 알텐슈타트 호텔에 도착한 아이린과 말비네는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알마 폰 아렌트에게 20층에 있는 회의실로 오라고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곧장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의 벽면에는 카메라와 제국의 국기가 있었다. 아르카디아 제국의 국기인 아스테리스크트 플래그(Asterisked Flag) 내지 미자기(米字旗)는 사각형 백지 위에 흑색 십자가 있고, 그 흑색 십자의 겉을 백색 십자가 감싸고, 그 백색 십자의 겉을 흑색 십자가 감싸는 모양의 중앙 위에 아스테리스크(Asterisk) 내지 미자(米字)가 안에 있고 테두리가 흑색인 백색 사각형이 있는 모양의 흑백 깃발이다.

19시 30분, 회의실의 문이 조용히 열렸고, 곧이어 이마가 보이는 흑발 단발머리를 한 알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황제 폐하와 원수 각하, 저를 부르셨습니까?"
알마가 긴장한 표정으로 아이린과 말비네에게 말했다.
"그렇습니다, 아티스트 우주해적. 일단 여기 앉으시지요."
"알겠습니다."

"아렌트 선생에 대해 알게 된 후 궁금증이 증폭되어 이렇게 대면을 청했습니다. 아렌트 선생이 작년에 연방에서 집필하고 출판한 책인 반군국주의 시대도 독파했습니다. 아, 작일 연방 수도에서 발생한 참사에 대해 진심으로 애도를 표합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된 흉보입니다."
아이린이 말한 참사는 작일 반군국주의자 처단법 발의안 채택 직후 대안당 중앙당사에서 농성하던 대안당 당원들이 경찰에게 대거 살해당한 사건을 의미했다.
"네, 탐미주의자이고 반군국주의자이며 사회자유주의자인 저도 텔레비전을 통해 알게 됐습니다. 이미 예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충격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아, 탐미주의는 아름다움에 탐닉하는 것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이라고 주장하는 사상이고, 반군국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제일 중요한 권리라고 주장하며 군국주의에 반대하는 사상이며, 사회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 증대, 사회복지 확대, 약자 인권 향상, 정부의 시장경제 개입을 옹호하고, 검열에 반대하는 사상입니다."
"저희도 탐미주의자이고 반군국주의자이며 사회자유주의자입니다. 어쩌다가 이다 페타치와 동맹당 같은 사악한 족속이 연방의 권력을 손에 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고액 기탁금 제도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액 기탁금 제도요?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현재 아르카디아 연방의 고액 기탁금 제도 때문에 서민층은 감당할 수 없는 거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선거 후보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부유층만이 선거 후보가 된 후 정치인이 됩니다. 이렇게 정치인이 된 부유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기 위해 금권주의자가 됩니다. 금권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금권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들의 권력으로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은 정의라고 서민층을 세뇌합니다.

그리고 서민층이 천박하고 자극적인 문화에 중독되게 하여 서민층을 정치적 무관심에 중독되게 하거나 노예나 우민이 되게 합니다. 제국의 서민층에겐 참정권이 없으므로 만약 서민층이 노예나 우민이 되더라도 정치에 악영향을 주지 않지만, 연방의 서민층에겐 선거권이 있기 때문에 노예나 우민이 된 서민층이 정치에 큰 악영향을 줍니다. 애초에 제국의 서민층에겐 참정권이 없어서 굳이 세뇌시킬 필요가 없으니 제국의 서민층은 노예나 우민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무튼, 연방의 사악한 금권주의자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바로 연방경제협회입니다. 연방경제협회는 제국익찬회와 유사한 단체입니다. 동맹당, 농업당, 군대, 경찰, 대형 언론사들은 연방경제협회의 끄나풀에 불과합니다."

"동맹당과 농업당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동맹당은 연방경제협회의 지원을 많이 받는 극우 정당이고, 농업당은 연방경제협회의 지원을 적게 받는 중도우파 정당입니다. 참고로 농업당은 원래 동맹당 당원이었던 자들이 공천에서 탈락한 후 탈당하여 만든 정당입니다."

"현재 연방의 민주공화제에는 문제가 많은 것 같군요. 엄벌주의와 계몽의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맞습니다. 현재 연방에서는, 인권과 노동권 침해 그리고 약자 대상 범죄가 만연하고, 식감이 이상하고 악취가 나며 토사물처럼 생긴 악식과 천박하고 자극적인 문화가 유행하며, 고성방가, 소란, 시비, 욕설, 육담, 음주, 이간, 타매, 흡연을 자행하는 다수의 무뢰배가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이런데도 연방의 공권력은 무뢰배의 악행을 방관하고 있습니다.

민주공화제는 만능이 아닙니다. 민주공화제는 모든 국민이 반군국주의적이고 선량하며 성숙한 국민성을 갖춘 상태일 때만 비로소 자신의 장점을 발휘합니다. 군국주의적이고 사악하며 미개한 국민성을 가진 대다수의 연방인들은 절대 민주공화제의 장점을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연방이 미개하다고 무시하는 지구에서조차 원래 시행하던 징병제에 문제가 발생하자 로마 공화국의 집정관 가이우스 마리우스와 당나라의 황제 이융기가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시행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연방은 모병제를 시행하지 않고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인권 유린 범죄를 야기하는 징병제를 억지로 시행 중입니다. 모든 국민은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집니다. 이제 연방엔 희망이 없습니다. 연방은 그냥 망해버리고 연방인들은 고통스럽게 죽어야 합니다."

"그렇군요. 아렌트 선생이 속한 대안당의 아리아 아벤트(Aria Avent)는 아르카디아 연방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아벤트는 초대 제국 황제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와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아렌트 선생도 이 둘에 대해 알고 계십니까?"

"네, 알고 있습니다. 초대 제국 황제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와 초대 연방 대통령 아리아 아벤트는 반군국주의자이자 사회자유주의자였습니다.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는 제국 헌법에 반군국주의와 사회자유주의를 명기하기도 했습니다. 둘은 전 국민의 완전한 반군국주의화와 사회자유주의화라는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은 달랐습니다. 아우구스타 폰 아마르나는 전 국민의 완전한 반군국주의화와 사회자유주의화가 달성되기 전까지 공화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시기상조라고 주장하며, 군주주의와 계몽절대주의를 수단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아리아 아벤트는 어떤 이유로도 독재는 용납될 수 없다고 주장하며, 공화주의와 간접민주주의를 수단으로 삼았고, 후일에 국가원수를 공직추첨제로 선출하는 직접민주주의 공화국을 만들 생각을 하였습니다."

"잘 알고 계시는군요. 그것이 바로 제국이 선거군주제를 시행하는 절대군주국이고, 연방은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민주공화국인 이유이죠. 그나저나, 선생의 성명에는 귀족성씨조사 폰이 있던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제 조부가 제국 남작이었기 때문입니다. 조모의 양친이 조모가 제국으로 이주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해서 조부가 연방으로 이주했습니다. 호국전쟁 전이라 서아르카디아(West Arcadia)와 동아르카디아(East Arcadia)를 왕래하는 것이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지요. 아렌트는 흔한 성이고 알마는 흔한 명입니다만, 귀족성씨조사 폰이 성명에 들어간 경우가 연방에선 드물죠. 그래서 저는 제 성명이 이상하다, 제가 수업 시간에 질문을 많이 한다, 쉬는 시간에 책을 읽는다, 대중문화에 관심이 없다, 제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 무뢰배에게 대항한다는 이유로 집단 괴롭힘에 시달려 왔습니다. 아무튼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를 해서 익년에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고졸자가 됐고, 현재는 대학 입학 시험을 준비하는 삼수생입니다."

"그렇군요. 아렌트 선생, 참 어이없는 이유로 부조리한 일을 겪으셨군요. 고생 많으셨습니다. 듣기만 해도 저희가 다 화가 날 정도입니다."
아이린과 말비네가 동시에 알마가 겪은 불의에 분노하며 말했다.
"저는 초중고 교육 과정을 전부 검정고시로 통과한 후 제국사관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 저와 같은 검정고시 합격자를 보니 동질감이 느껴져 반갑군요. 아, 제 옆에 앉은 말비네 폰 티르피츠 원수는 사수생이었습니다."
"네, 저는 사수 끝에 제국사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다행히 졸업은 지체 없이 했습니다.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 황제와 저는 제국사관학교 동창생입니다. 저도 선생에게서 동질감이 느껴져 반갑습니다."
"그렇군요. 저 역시 반갑습니다."

"그나저나 대단하십니다. 민간인인 아렌트 선생이 동맹당 당원 1명과 연방군 군인 10명을 주살하고 연방군 군함을 나포한 일은 전례가 없는 굉장한 일입니다. 아렌트 선생 같은 분이 바로 제국군이 원하는 인재입니다. 제 제안을 거부하셔도 괜찮습니다만, 혹시 제국군 제독이 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황제 폐하의 제안, 겸허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에게 남작 임명장과 제국사관학교 졸업장을 수여하겠습니다. 선생은 이제 어엿한 대졸자입니다. 기나긴 대학 입학 시험 준비 생활에서 해방되신 겁니다. 그리고 선생을 아르카디아 제국군 제1함대 소속 헌병대원으로 특별임관시키겠습니다. 헌병대원의 계급은 준장부터 시작하니 선생은 준장입니다. 제가 말비네 폰 티르피츠 원수와 함께 헌병대원이었기에 헌병대에 대해 잘 압니다. 아무튼 선생은 이제부터 제 부관이 되어 저와 말비네 폰 티르피츠 원수와 함께 아마르나 궁전에 거주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알마가 밝은 표정을 짓고 아이린과 악수하며 말했다. 말비네는 이 모습을 보며 손뼉을 쳤다.

남작 임명장과 제국사관학교 졸업장을 받은 알마는 아마르나 궁전에서 아이린, 말비네와 함께 노동하고 생활하며 아이린과 말비네에게 친우 앙겔리카의 비극적인 사망으로 인해 생긴 상실감을 없앴고, 아이린과 말비네는 알마의 고독감을 없앴다. 그래서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린, 말비네, 알마의 우애는 깊어져 갔다. 그리고 알마의 성명은 가끔 관보 제국신문이나 제국에서 발행된 책들에서 언급되기도 했다.

그러나 연방은 그녀들의 우애와 제국을 해치려는 특별 군사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연방은 이다 페타치 대통령의 명령대로 아흐터슈테른 요새를 이동요새로 개조하고, 개조가 끝난 후에는 총동원령을 선포하여 제국을 침공할 준비를 하였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제국도 총동원령을 선포하여 연방의 침공에 대비했다. 바야흐로 아르카디아 행성계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긴급사태 발생! 동방반란군이 아르카디아 이후 2823년 2월 10일에 체결된 휴전협정을 위반하고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와 대규모 병력을 동원하여 아르카디아 제국령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침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군의 현재 병력은 무려 적군 총병력의 80퍼센트로 추정됩니다! 전시상황 돌입!"
아르카디아 이후 2893년 1월 1일 1시에 오퍼레이터인 리로린 폰 라벤마르크(Rirorin von Rabenmark)의 황급한 목소리가, 얼마 전에 인두세를 폐지하고 소득세를 도입한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과 알마 폰 아렌트, 그리고 말비네 폰 티르피츠가 있는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중앙관제실에 울려 퍼졌다. 동방반란군은 아르카디아 연방과 아르카디아 연방군의 멸칭이었다.

"이다 페타치, 기어이 사고를 치고 말았군."
제복 차림의 아이린이 옆에 있던 알마와 말비네에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요새포들은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위력을 보유하고 있어서 아주 위험해. 제국령에 더 깊숙이 침공하기 전에 얼른 막아야 해. 연방의 총동원령 선포 직후 제국도 총동원령을 선포해서 그나마 다행일세."
알마와 말비네가 심각한 표정을 짓고 동시에 말했다. 직후 아이린이 이렇게 외쳤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겠군. 전부, 바디슈트로 개의하십시오! 실행하기 몹시 어려운 작전이긴 하지만, 지금까지의 훈련 경험을 되새기며 미리 세워 둔 계획대로만 행동한다면, 아군은 승리할 것입니다!"
"네! 악랄한 연방인들을 이 우주에서 깡그리 멸종시키겠습니다!"
아르카디아 제국군 군인들이 목청껏 소리쳤다.

제국군 소속 함대들은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밖으로 나와 연방군 소속 함대들과 격렬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연방군 함대들 뒤에 있던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는 제국군과 연방군이 뒤섞인 상황이라 요새포를 발사할 수 없었다. 열투로 인해 양측에서 다수의 전사자가 발생하던 중, 연방군이 제국군 군함들 사이에서 오고 가던 전보문을 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 전보문은 제국 수도 아마르나에서 제국익찬회 잔당이 반란을 일으켜 제국군의 대원수이자 최고사령관이며 제국 황제인 아이린의 신변에 이상이 발생했으니 제국군은 서둘러 제국 수도 아마르나로 향하라는 내용이었다.

연방군이 제국군의 전보문을 규견한 후, 제국군은 제국 수도 아마르나 방향으로 후퇴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연방군은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에서 연방군에게 보낸 전보문을 받았다. 이 전보문에서 자신들을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에 제국군으로 위장해 침입한 연방군 공작원이라고 밝힌 발신인들은 자신들이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에 남은 소수의 제국군을 전멸시키고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점령에 성공했으니 아우크스부르크 요새를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와 도킹시켜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에 있는 다수의 군수품을 차지하라고 연방군에게 권유했다.

연방군이 이 전보문을 수신하자마자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의 요새포는 제국 수도 아마르나 방향으로 가던 제국군을 향하여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고,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의 출입구가 개방됐다. 이 모습을 보고 전보문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한 연방군은 병력 대부분을 제국 수도 아마르나로 가는 제국군을 추적하게 하고 병력 일부가 있는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를 아우크스부르크 요새와 도킹시켰다.

그러나, 연방군이 수신한 두 전보문 모두 아이린이 발신한 허보였다.

아이린은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가 도킹하자 연방군이 도킹을 해제할 수 없도록 조치를 취했다. 아이린의 행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한 연방군 군인들은 전부 기탄없이 아우크스부르크 요새 이착륙장에 발을 디뎠다.
"돌격! 착한 연방인은 죽은 연방인 뿐입니다!"
아이린의 호령이 떨어지자마자 이착륙장의 문밖에서 잠복 중이던 제국군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연방군 군인들을 공격했다. 제국군의 병력은 연방군의 병력보다 월등히 많았다. 아이린, 알마, 말비네가 제일 앞에서 돌격했으나 이내 그녀들의 뒤에 있던 제국군 군인들이 그녀들을 추월했다.
"서, 서방반란군의 급, 급습이다! 퇴, 퇴각하라!"
갑작스러운 제국군의 기습에 당황한 연방군 군인들은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로 도망쳤다. 서방반란군은 아르카디아 제국과 아르카디아 제국군의 멸칭이었다.

바디슈트를 입은 제국군 군인들은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를 향해 날아오르는 연방군 군인들을 바짝 추격했고, 바디슈트를 입고 날아오르던 연방군 군인들 중 상당수가 제국군에게 피습돼 땅으로 추락하여 즉사했다.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에 발을 내디딘 제국군 군인들은 곧장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중앙관제실을 향해 돌격했다. 직후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중앙관제실은 급히 제국 수도 아마르나로 가는 제국군을 추적하던 연방군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그리고 제국군 군인들의 돌격을 복도에 있던 연방군 군인들이 필사적으로 막으면서 유혈극이 시작됐다. 블래스터가 여기저기서 난사됐고, 블래스터를 분실하거나 손에서 놓친 군인들은 도끼나 칼을 휘둘러 적의 몸을 갈랐다. 복도 벽면은 피범벅이 됐고, 복도 바닥 위에는 훼손된 시체가 가득 쌓였다. 이윽고 제국군 군인들의 진격을 복도에서 막았던 연방군 군인들은 전원 전사하였고, 시산혈해를 이룬 피비린내 나는 격전장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제국군 군인들의 바디슈트와 무기도 피투성이가 되었다.

힘겹게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중앙관제실을 점거하고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내 연방군 군인들을 전멸시켜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점령에 성공한 아이린은 이 성공 소식을 제국 수도 아마르나 방향으로 가던 제국군에게 전보문을 통해 알렸다. 구조 요청을 받고 뒤늦게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로 향하던 연방군 함대들도 자신들의 앞뒤를 포위한 제국군과 제국군이 장악한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의 맹렬한 공격을 받고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를 지키다 패배한 전우들을 따라 전멸했다. 연방군은 통일대전 개전 후 첫 전투인 아우크스부르크 전투에서 무려 총병력의 80퍼센트를 잃고 대패한 것이다.

승기를 잡은 제국군은 기세를 몰아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와 대규모 병력을 앞세워 연방령으로 힘차게 진격했다. 제국군은 압도적인 병력으로 연방의 아스완 요새를 공격했다. 요새 출입구는 손쉽게 파괴됐고, 제국군은 단숨에 연방군을 전멸시키고 아스완 요새를 점령하여 아스완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발사!"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제국군은 아이린이 명령할 때마다 행성 아비도스, 행성 아바리스, 행성 아코리스, 그리고 연방 수도 아벤트를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의 요새포로 파괴했다. 알마 폰 아렌트를 박해하던 무뢰배, 시정잡배, 우민들, 지배층의 주구 노릇을 하던 군경, 군국주의에 경도됐던 방위산업체들, 이전투구를 일삼던 동맹당과 농업당, 서민층을 착취하던 연방경제협회, 그리고 약육강식과 우승열패는 정의라고 짖어대던 연방 대통령 이다 페타치까지 모두 사이좋게 제국군의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가 발사한 열광선이 만들어 낸 대초열지옥 속에서 꼴사납게 허우적대며 오래도록 각기삭골을 느끼다가 분골쇄신했다. 반수기앙의 결과였다.

"전쟁 끝났다! 승리 만세!"
아벤트 전투에서 연방군을 전멸시키고 승리한 아이린, 알마, 말비네가 아흐터슈테른 이동요새 중앙관제실에서 대초열지옥을 내려다보며 일제히 환성을 질렀다.
"만만세!"
그녀들의 뒤에 있던 제국군 군인들도 따라 외쳤다.

아르카디아 이후 2893년 1월 10일 13시에 통일대전은 제국이 아르카디아 이후 2810년 2월 1일에 건국된 연방을 멸망시키고 아르카디아 행성계를 통일하면서 막을 내렸다. 통일대전의 승리를 통해 우주통일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한 아이린에게 제국 국민들은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이 퇴위한 후 황제가 된 알마 폰 아렌트는 면허세를 도입한 후에 퇴위하여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과 결혼했고, 아르카디아 이후 2921년 8월 1일에는 둘 사이에서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Ansolet Jeanette von Arent)가 탄생했다. 퇴위한 알마 폰 아렌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말비네 폰 티르피츠는 사치세를 도입했다. 말비네 폰 티르피츠의 뒤를 이은 황제는 알렉스 아리엘 폰 아렌트(Alex Ariel von Arent)라는 성명을 가지게 될 뻔했던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였다. 흑발흑안의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는 기본소득제를 도입하고, 고성능 스리디 프린터를 전 국민에게 배급하였으며, 아르카디아 찬가(Arcadian Anthem)라는 제목의 곡을 제작하여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내용인 아르카디아 찬가를 아르카디아 제국의 새로운 국가로 제정했다.

아르카디아, 장엄하고도 아름다운 대자연.
번영의 광명 속에서 찬란히 탄생한 대지.
자유와 평등의 영광이 언제나 함께하리라.
영원불변하여라, 완전무결한 아르카디아.
찬양하여라, 탐미주의자들의 낙원을.
위대한 우애는 금성철벽이요,
모병제의 힘은 일기당천의 힘이다.
반군국주의를 확고히 관철해 가리라.

아이린 그라프 폰 체펠린과 알마 폰 아렌트의 독자인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된 아리카 폰 아들러(Arika von Adler)는 최저임금제를 도입했다. 그리고 아르카디아 제국이 지상낙원이 되자, 아르카디아 제국 헌법에서 아르카디아 공화국(Arcadian Republic) 헌법으로 개헌한 후 부가가치세를 도입했다. 아르카디아 제국의 시대는 아르카디아 이후 2810년 1월 1일부터 아르카디아 이후 2960년 12월 31일까지 지속되다가 막을 내렸고, 아르카디아 이후 2961년 1월 1일에 아르카디아 공화국 헌법이 공포 및 시행되고 아리카 폰 아들러가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되면서 아르카디아 공화국의 시대가 막을 올렸다. 아르카디아 제국과 아르카디아 공화국을 통틀어 아르카디아 방국(Arcadian State)이라 부르고, 아르카디아 제국 헌법과 아르카디아 공화국 헌법을 통틀어 아르카디아 방국 헌법이라고 부르며, 국가원수인 황제와 대통령을 통틀어 알파(Alpha) 내지 수반(首班)이라 부른다.

아르카디아 이후 2970년에는 아르카디아 이후 2910년에 출발했던 제2차 지구탐사대가 귀환하여 독일이 징병제를 폐지하고 모병제를 시행하게 만든 베르사유 조약을 소개했으며, 아르카디아 이후 2975년 12월 1일에는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가 참가한 제3차 지구탐사대가 아르카디아 행성계에서 지구를 향해 출발했다. 안졸레트 예아네테 폰 아렌트는 아르카디아 행성계를 떠나 지구로 가기 직전에 이렇게 말했다.

"역사라는 우주선은 사도에 빠지기도 하지만 영웅이라는 선장이 있는 한 정도로 돌아와 끝끝내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