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이라 짧음

3편 모아서 낼려 했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일단 이것만





우리 고등학교 최고의 인기스타는 아니어도, 확실히 최고로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끼쳤을 여학생 한가람은 꽤 특이했다. 평범한 긴머리에 화장도 거의 없는 수수한 얼굴, 튈 게 없는 베이지색 원피스나 남색 교복을 보고서는 전혀 눈치챌 수 없겠지만, 그 녀석과 같이 있다 보면 적으면 1분, 많아봐야 1시간 이내엔 알아차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추가로 한없이 덜 특이한 점이긴 하지만, 영화 보는 걸 좋아하고, 미래에 영화감독이 되는 게 꿈이다. 대부분의 경우엔 한없이 착하지만 화났을 땐 욕을 의외로 잘 던진다. 물론 십중팔구 화났을 때 곱절은 커지는 녀석의 시그니처에 묻혀 듣기도 힘들겠지만. 예전에 친구들에게 맨날 왕따를 당해 배운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제는 가람이 옆에 항상 붙어다니는 단짝친구 나루가 있다. 둘은 정말 자물쇠와 열쇠처럼 꼭 맞아 있어 만난 지 1년도 안되었단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이다. 이렇게 자신의 처지가 순식간에 바뀔 줄 알았을까. 거기다 비슷한 사정을 가진 사람들도 알게 되고, 거기다-

"누구라도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곳, 여기 하이고등학교에 온 걸 환영해!"

"컷-!"

이렇게 분위기 좋은 고등학교로 오게 되었으니. 박수소리와 함께 여학생이 스마트폰을 내리자, 두 남학생은 촬영한 걸 확인하러 빈 복도를 뛰어갔다. 가람이와 키가 비슷한 가을이는 옆에서 쭈그려 보았고, 머리 스타일은 같지만 키가 좀 더 큰 다른 한 소년은 가람이와 볼이 닿을 정도로 붙어 어깨동무했다.

"어때?"

"조합 딱 좋은 거 같아." 가람이가 웃었다.

우린 바로 학교 홍보 UCC 대회를 위한 방과후 촬영 중이었다. 총감독은 한가람, 나루도 당연히 합류했고, 가을이도 어쩌다 보니 끌려오게 되었다. 

"여름이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긴 한데, 여름이는 너무 딱 봐도 모범생 상이잖아." 가람이가 말했다. "모범생은 어느 학교에서든 적응 잘할텐데 여기 취지랑은 안 맞지."

"그럼 나는 모범생 아니고?"

"가을이 넌 솔직히 얼굴만 보면 조금... 학교폭력 피해자 상이야." 

"푸흡-" 웃음이 터질 뻔 한 가람이는 고개를 푹 숙이고 온 힘을 다해 교복치마 뒤편을 눌렀다. 다행히 본격적 시작도 하기 전 불상사가 터지는 일은 없었다.

"장난이야 장난!"

가을이는 그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름이 다음으로 날 잘 챙겨준 친구들로써 당연히 알았으니까.

프롤로그 촬영 후, 이제 본격적인 장면 촬영에 들어갔다. 첫번째는 가을가 '연기'한, 소심하고 왕따당했지만 여기 와서 잘 어울리게 된 학생. 가람이의 상태를 체크하러 오신 선생님까지 촬영에 잠시 합류해 잘 마무리되었다.

두번째로는 나루가 연기한 외국에서 온 학생. 하지만 나루의 되도 않는 외국어 연기를 보자마자 결국 촬영을 위해 쭈그려 앉아있던 가람이에게서 우려하던 일이 터졌다.

뿌푸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득~!!

일반인의 방귀와 가람이의 방귀의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압도감'이다. 일반인의 방귀가 아무리 지독하다 한들, 공기를 휘젓거나 옷에 코를 파묻거나 하면 금세 날아가기에 불쾌한 선에서 그친다. 하지만 가람이의 어마어마한 가스량의 방귀에 노출되면, 온 몸이 순식간에 뜨뜻한 썩은내에 완전히 휘감겨 정말 눈 앞이 노래지게 된다.

지금같이 바닥을 향해 뀌었다면 지진이 일어난 것 같이 교실 전체가 울리는 건 덤이다. 오토바이 배기구에 엉덩이를 연결한 듯한 우렁찬 소리, 처음 경험하는 사람은 정신이 나가 할 말을 잊기 일쑤이다. 하지만 가람이에게 이 머리칼을 휘날리는 진한 바람조차 '너무 작아 뀐 축에도 못 드는' 방귀였다.

"미안 - 푸아아아아아아라라락-!! - 너무 웃겨서..."

다행히 소녀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곧 웃음을 멈췄지만, 한 번 시동이 걸린 장은 돌이킬 수 없었다. 앞의 사건은 전쟁에서의 총알 한 발에 불과했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다다다다당~!!

푸푸푸우우우우우드드드드득!!

뿌푸우우우우우우우르르르르르르르르륵푸아아아아아아아아악~!!!

장면 하나하나 촬영을 끝낼 때마다 녀석은 엉덩이를 살짝 들고 고구마와 고기를 푹 썩힌 냄새의 가스를 그득하게 뿜어내었다. 그 빈도 자체는 일반인이 바쁜 하루 후 집에 도착해 참은 가스를 배출할 때와 비슷했지만, 가람이의 방귀는 수십배는 길기 때문에 간격이 훨씬 좁게 느껴졌다.

만일 수업 중에 하나라도 새어나왔다면 그 아수라장은 불 보듯 뻔했다. '누가 뀌었어?'하고 단순히 철없는 유머로 웃음바다가 되는 게 아닌, 정말 교실을 꾸덕하게 채우는 농축된 구린내의 홍수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발버둥. 가람이의 반엔 너무 자주 있는 일이라 질서정연하게 대피하는 법을 알 정도이다.

"그리고 컷- 부푸푸아아아아다다다다다다다당~!!!"

2번째 씬 촬영이 끝날 즈음, 2층은 이미 녀석의 장에서 나온 가스로 그윽히 채워져 있었다. 총 20번도 뀌지 않은 거 같은데 그랬다. 이 모든 게 천진난만한 여학생의 치맛자락 밑에서 나올 수 있다는 게 상상이라도 되는가. 이제 왜 우리 셋만이 촬영하는지 납득이 갈 것이다. 

완전히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가람이의 얼굴은 어느때보다 활기가 띄어 있었고 촬영 감독 지시도 활발히 했으니까. 가람이와 나루는 어떻게 아직도 멀쩡했지만, 가을이가 결국 참지 못하고 기침하자 촬영 후 3층으로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잠시 가을이를 위해 재정비하는 시간, 나루가 도시락을 꺼냈다.

"간식이나 먹고 하자."

"우와, 뭐 가져왔어?" 가람이의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항문에서 뿜어져나오는 것과는 180도 다른 맑은 눈동자로.

"복숭아! 우리 부모님이 싸주셨어. 불량식품 먹으면 장 더 안좋아진다고..."

도시락 안에 가득 든, 약간 물렁해졌어도 여전히 탐스런 분홍빛 복숭아 조각. 소녀는 바로 이쑤시개로 찍어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가을아 너도 같이 먹어."

전혀 배려한 것이 아닌데도 나루와 가을이는 각각 4조각, 3조각밖에 먹지 못했다. 가람이는 마치 진공청소기처럼 깔끔하고 순식간에 몇십 조각을 해치웠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촬영을 다시 시작했다. 굳이 나루가 도시락을 미리 먹자고 한 이유가 있었다.
최고 고비, 바로 일진 연기를 해야 하는 가람이가 남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리 좋은 아이디어는 아니었다. 시험때도 그렇고 왜 이런 생각은 뒤늦게 나는 걸까.

평소와 달리 녀석의 얼굴에 진한 분장을 끝내고, 가람이와 제일 친한 여선생님 한 분도 데려왔다. (하이퍼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하진 않다.) 이번엔 나루가 카메라를 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가연아, 수업시간엔 집중해야지!

가람이는 턱을 삐딱하게 괴고는 최대한 불량학생 연기를 하였다. 과연 영화광다운 연기력이었다.

"아 뭔 상관 - 뿌푸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득~!!! - 이신데요!"

하지만 역시 내부는 조절하지 못했다. 장을 지나가는 기차 경적 같은 소리가 의자를 부술 기세로 울리며 동영상 음향을 꽉 채웠다.

"컷!" 나루가 급히 외쳤다. "가람아 못참겠어?"

감독 지망생 소녀는 얼굴을 붉히고는 이내 어색하게 웃었다. 반은 미안하다는 표정, 반은 뭘 기대했냐는 표정으로.

"일진이니까 방귀도 눈치 안 보고 막 뀌지... 않을까? 헤헤."

"너 방귀뀌는 모습 영상에 나와도 괜찮겠냐고."

"어차피 화장 진하게 해서 못 알아볼걸..." 가람이는 혼잣말과 함께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에 빠졌다. 물론 아랫배는 자동으로 할 일을 하며 말이다.

푸푸푸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으드드드드드드드득~!! 푸르르르르르르르르르푸으스스스스스스스슥!! 뿌푸우우우우우우푸라라라라라라라락~!!!

불쌍한 교실은 그대로 소녀 엉덩이의 가스 집중포격 대상이 되었다. 가람이-방호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결과는 참혹했다. 그나마 청소날이 아니라 책상과 의자는 무사했지만,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샛노란색 가스에 그 이하 크기의 물건은 모두 휩쓸려 똥냄새에 절여졌다.

"아, 그럼 이렇게 하자! 조금만 참아!"

2분이 지나서야 포격은 멈추었고, 교실 밖에서 기다리던 셋과 함께 드디어 자리를 옮겼다. 이제 남은 멀쩡한 교실도 얼마 없는 지금, 마지막 촬영이 시작되었다.

"가연아, 대화로 풀고 싶어서 그래. 진짜 그런 이유 있니?"

"...쌤, 사실은 제가 하이퍼라서 자꾸 딴짓하고 불량애들이랑 어울리는 거거든요. 어쩔 수 없잖아요."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다다다당~!!

자신의 특징을 기어코 작품으로 승화시키다니. 현명한 전략이라고 가을이는 속으로 감탄했다.

"왜 어쩔 수 없어? 선생님이 도와 줄게."

"맞아! 우리도!"

그리고 마지막 구호,

"왜냐하면 여긴 모두가 어울릴 수 있는 OO고등학교니까!"

"컷-!"

하지만 나루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전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걸.

앞의 '하이퍼 방귀'마저도 가람이에게는 최대한 조절하며 뀐 것이었으니, 촬영의 스트레스가 가시자마자 조절의 끈은 완전히 풀려버렸고, 대장과 바깥을 잇는 직통로가 훤히 뚫렸다. 핵분열처럼 연쇄반응은 이미 시작되었고, 가람이가 할 수 있는 건 그 열을 배출하는 것 뿐이었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당~!!!

히어로 만화의 주인공이 힘을 처음 얻어 조절하지 못할 때도 이러진 않을 텐데, 가람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자를 잡고 엉덩이를 살짝 내빼며 교실을 가스 수족관으로 만들 기세로 지독한 가스를 끝없이 뿜어내고 있었다.

그래도 변호를 해주자면, 지금은 아까처럼 완전 천진난만한 얼굴은 아니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던 화장실 볼일이 2라운드, 3라운드로 길어지는 느낌이랄까. 

"아 잠시만-"

청순한 여학생 가람이의 평범한...

뿌푸푸푸푸푸우우우우우우우우우드드드드드드드득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과일만 먹었는데-"

청소날도 아닌...

~뿌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다닥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다다다다다다~~!!!

"-이렇게 된다고?"

~다다다다다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러러러러럭~!!!

...방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루조차 코를 막고 기침하는 모습에 가을이도 이제 진짜 뭔가 잘못되었단 걸 직감하였다. 며칠은 썩은 것 같은 복숭아 냄새가 갈분홍색 가스를 타고 교실을 넘어 복도까지 터져나오고 있었다. 가람이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여전히 웃고 있긴 하지만 복숭아빛으로 물들었고 말이다.

"복숭아, 그 복숭아 상했던 거 아니야?"

"너희 간식으로 복숭아 먹었니?!" 그 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ㄴ...네..."

"복숭아는 가스 많이 만드는 음식인데..."

"맞다, 어디서 본 것 같아..."

그제야 가을이의 기억 속에 며칠 전 여름이를 위해 공부한 가스 많이 만드는 음식이 떠올랐다. 

"그걸 이제 말하면- 뿌푸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라라라라라라락!!!"

가람이는 정말 조금 서운한 표정으로 뭐라 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이내 과부하에 들어간 가스 분출을 제어하느라 말을 잇지 못했다. 소녀의 치마는 선풍기 강풍을 마주보고 있는 것처럼 거세게 휘날렸다. 그 뒤로 어떻게 눈을 뜰 수 있다면 복숭아빛 통통한 엉덩이를 볼 수 있겠지만, 이제까지 나루 외 성공한 사람은 없었다.

"빨리! 학교 뒤로!"

나머지 둘이 뒷수습을 하는 동안, 나루와 가람이는 있는 힘껏 달려 학교 뒤편에 도착했다. 그러자마자 가람이는 뒷산을 향해 조준하고, 손을 무릎에 대 바친 후 엉덩이를 빼 복숭아내를 마음껏 뿜어냈다.

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러러러러러러러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덩~!!!

학교 뒷산을 뒤흔드는 소리와 함께 가람이의 엉덩이는 과수원도 압도하는 복숭아내의 절정을 뿜어내었다. 물론 파리도 망설일 정도의 진득한 썩은내가 함께했긴 하지만, 뭐든 너무 많으면 그렇게 되는 거 아닌가. 나루는 그정도는 충분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간의 크기는 가람이의 배출에 비하면 터무니없이 작기에, 나머지를 다 받은 불쌍한 뒷산은 이미 가람이의 가스로 몇번이고 절여져 체르노빌과 같은 상황이었다. 소문에 따르면 이제 버섯과 곰팡이가 무성하고 새들조차 낮에는 오지 못한다고 한다. 하지만 긍정적으로 보면, 이번 배출로 조금이나마 복숭아 향이 더해진 것이었다.

대장이 분홍빛으로 부글부글 끓는 와중에도, 아랫배가 저주파로 요동치는 와중에도 가람이의 얼굴은 여전히 복숭아처럼 산뜻했다. 친구들과 함께라면 어떤 돌발상황이라도 침착하게 청소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 장장 3분 16초에 달하는 배출 후, 소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산뜻하게 치마자락을 정리하며 기지개를 폈다. 

"아, 상쾌하다."

"복숭아향도 좋은걸. 너한테 잘 어울리는 거 같아."

"맞아. 오늘 청소는 좀 색다른 향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