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여기에요. 여기 오늘 입사하기로 하신 신입사원 분이 맞으시죠? ...네. 확인했어요.


...아, 맞아요. 안내자가 접니다. 반가워요. 제 이름은... 에프티. 에프티라고만 불러주세요.


네? 아. 가명이랍니다. 회사 규정이라고 생각해주시면 고맙겠어요.


아직 당신은 정규직이 아니라서, 본명을 알려드릴 수 없어서 말이에요. 서운해도 참아줘요?


담당자분은 남자라고 소개받았다고요. ...아, 이 소식은 안 갔나 보네... 미안해요. 오늘 담당자분이 지금... 물질형 변칙개체의 오작동과 관련해서 각종 보고서를 쓰시느라 바쁘셔서 제가 대리로 나왔답니다.


...너무 말끝마다 존댓말 붙일 필요 없어요. 두어 살 정도 나이 더 많은 누나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대해요. ...지금은요. 안내가 끝나는 순간부터는 또 다른 이야기니까요.


그러니, 자! 긴장 풀고. 준비는 된거죠? 자, 들어가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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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사무실로 이동할거에요. 엘리베이터로 이동할거니 여기로 와요.


우리 빌딩은 31층이에요. 높죠? 그래서 엘리베이터도 제법 많아요.


(우우웅- 덜컹.)


...이상... 없음. 자, 어서요. 들어가요. 이 안에서 마저 이야기해줄테니까요.


(후우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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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입 분들은 3개월간의 수습 기간 이후 정직원으로 변경되는 걸로 아는데, 그렇게 통보받았나고요? ...응. 여전하네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어지간해서는 부서이동은 없어요. 거기가 당신 평생직장인거죠. 퇴사할때까지는요.


우리 회사 사무실은 17층이에요. 출퇴근은 문 앞에서 출입증이나 지문, 홍채 인식으로 할 수 있어요. 출입증 깜빡 놓고 나왔더라도 지문이나 홍채를 등록해놨다면 걱정하지 마요.


(띵-)


자, 여기로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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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은 보다시피 ㄴ 자 구조를 하고 있죠. 그리고, 여기가 사무실... 여기는 실험실, 여기는 정비실이에요. 사무실에서는 실험실에서 올라온 보고서, 그리고... 정비실에서 올라온 관리 기록들을 전산화하는 작업들이 주로 이루어지죠. 조금 좁더라도 이해해줘요. 큰 공간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저 뒤의 문이요? 음. 저건 탕비실이에요. 일하다가 배고프고, 선배들이 간식이나 같이 먹자고 부르면 같이 가서 먹어도 좋아요.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그 옆에 '관리자 외 출입금지' 라고 적혀있는 문 있잖아요? 거기는 들어갈 생각 마요. 관리자 '도' 들어가면 안되는데, 너무 수상하게 생겨먹었으면 오히려 사람 호기심을 자극하잖아요? 그래서 일부러 평범하게 출입금지만 달아놓은거에요.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궁금하게 생각하지 마요. 그리고, 보통 그런 닫혀 있어야 할 곳의 문이 열려있는 경우도 있는데, 무조건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눈동자를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리고, 여기 회사에서 마주하는 어둠은 죄다 해로운 것들 뿐이에요. 무조건 피해요. 피하지 않고 거기서 붉은 눈동자가 날아오르듯 다가온다면... 음...




거기서 나오는 건... 뭐가 되었든 간에 당신의 상상 이상으로 빠르고, 강하고, 감히 저항한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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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 여기 이거 받아요. ...당신의 직원 명찰, 건물 지도, 주의사항, 각종 안전도구, 작업복, 보호복과 방독면이 지참되어있고...? 또 보자. 각종 상비약이랑... 성욕 억제제 한 통. 받아요. 성욕 억제제는 남용하지 말아요. 완전히 없애는 게 아니라 잠깐 억누르는 것 뿐이니까. 당신의 자리는... 여기입니다. 좀 낡긴 했어도 관리는 늘 정상적으로 이루어지는 자리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개인 물품은 여기 사물함에 넣어둘래요? 아, 전 밖에 있을 테니까... 어서 보호복으로 갈아입고 나와요. 신입한테 첫날부터 위험한 작업실에 들어가게 할 일은 없으니까요. 한동안 보호복 입고 인수인계 받으면서 첫 업무를 시작할거에요. 안 볼 테니 어서 갈아입어요. 흠, 조금은 봐도... 농담이에요! 후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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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어울리네요. 참, 명찰에 새겨진 이름은 마음에 드시나요? 어디, 어떤 이름을 받았나 볼까요? ...레테? 문학적이고 시적인 이름이네요. 마음에 들길 바랄게요. 후후...


우리는 정식 직원이 되기 전까지는, 직원들끼리 서로 본명을 알려주거나 하지 않아요. 너무 섭섭하게 생각치는 마요. 사내 규정이니까. 그리고... 음, 이제부터는, 당신의 진짜 이름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도록 주의하세요. 특히, 혼자 있을 때 말이에요. 이유는 말 안할거에요. 3개월이라는 적응 기간을 거치면서... 알게 될 것이니까요. 한 가지 말하자면...




이 회사에서 일하는건 사람 말고도 많다는 것만 알아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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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내 정신좀 봐. 혹시, 그 가방 안에 있던 서류들... 어머? 가져오셨네요? 눈치도 좋으셔. 후후... 그거 보면서 제 설명 들으면 이해가 아주 잘 될 거에요.


우선, 우리 건물은 각 층마다 저마다의 역할을 하는 실험실이 있거나... 해요. 실험실 말고 다른 것이 있는 층도 있고 하지만, 아직 당신이 거기 갈 일은 없으니까요. 어지간해서는. 그러니, 우리는 이 실험실의 대기질과 완벽한 실험 환경 조성을 위해 24시간 항상 환기 시설을 작동시키는 중이에요. 그래서, 복도가 조금 쌀쌀할지도 모르거든요.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살짝 초가을 느낌이 나는 온도가 유지될테니 그... 저한테 기초적인 안내를 다 듣고 나면 우리 사복으로 분류되는 따뜻한 외투 하나를 받을 거에요. 다들 애용하더라고요. 따뜻하거든요. 아무튼 그걸 받을거에요.




하지만 주의사항이 몇 가지 있어요. 복도가 아무리 춥다고 해도, 갑자기 순식간에 바닥에 서리가 얼고, 벽면에 물방울이 달라붙어 얼음이 되고, 천장에서 고드름이 자라거나 하는 일은 절대 없어요. 설령 한겨울이라고 해도요. 만약 그런 일이 생긴 거라면, 그 주위에 '한기를 흩뿌리는'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고 해야겠죠. 우선 귀를 기울이고, 코를 한번 풀거나 해서 뻥 뚫린 상태로 만들어둬요. 부욱- 부욱- 하는 이상한 소리, 혹은 뿌르르릇-! 하는 황소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려올거에요. 그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냅다 도망가야 해요. 만약 소리만으로 듣기 헷갈린다면, 악취가 불어오는 방향을 등지고 도망쳐야 해요. 아무리 둔감한 사람이라도, 꽤 강한 바람이 불어닥치면 훅- 하고 뭔가 뒤로 넘어가는 느낌이 들 수 있잖아요? 그 방향의 반대 방향으로 도망쳐요. 도망친 끝에는 비상계단이 있으니, 안전한 층으로 대피하면 되거든요? 음. 만약 늦어서 그 한기를 흩뿌리는 누군가와 마주쳤다면...




글쎄요. 보험금은 나올거에요.




그리고 하나 더. 이 시설의 계단을 타고 쭉 아래로 내려가면, 환풍기 중앙 통제 시설이 있어요. 가끔 신입인데도 불구하고 그 아래로 내려갈 일이 생기거든요? 보통은 선배들 심부름, 혹은 이물질 점검 등을 이유로 선배와 함께 내려가거나 할 일이 생길거에요. 보통은 계단이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지만, 간혹, 간혹... 대충 한 새벽 1시에서 3시 사이에, 계단이 두 개로 나뉜다는 말이 있거든요. 괜찮아요. 무조건, 무조건 당신이 보는 방향을 기준으로 오른쪽 계단으로 내려가면 '올바른' 환풍기 중앙제어장치가 나와요. 반대편이요? 반대편에도 마찬가지로 환풍기 중앙제어장치가 있는데 말이죠, 그건... 흠... 뭐라 설명해야 하지. 환기를 하긴 하는데,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장치가 아니에요.




단번에 당신을 미쳐버리게 만들 어마어마하고 괴상한 바람이, 그곳에서 폭발적으로 만들어지며 '또 다른 우리 회사의 어딘가' 로 퍼져나가는 곳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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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우리 회사가 뭔 일을 하는지는 대강 알고 있죠? 우리는 외부에서 의뢰받은 각종 물품에 대한 성분, 안전성 등을 분석하는 회사에요. 식품, 물건, 생물... 가리지 않아요. 심지어 어떠한 현상을 조사할 때도 있죠.


...그럴 때는 우리 회사만의 인력으로 부족해서 모 연합과 협동 작전을 진행하지만. 뭐 아무튼요. 거기는 나중에 연차가 쌓이면 알게 될 거고... 여튼, 이러다보니 각종 주의사항이 있거든요? 잘 지켜주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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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엘리베이터, 그리고 비상계단. 31층이나 되는 건물이니까 이것들과 관련된 정보들은 꼭 알아둬야겠죠, 그렇죠? 우리 회사의 사무실은 17층. 지하는 창고나 각종 시설 설비들, 그리고 1층부터 5층까지는 복합시설이에요. 놀랍게도 거기서 거주도 할 수 있답니다. 집 구하기 힘들면 말해요. 편하게 회사에서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으니까. 이게 사내복지죠. 뭐. 안그래요? ...그리고... 나머지 층은 다 건너 뛰고, 신입인 당신이... 참, 당신 부서가 어디죠? ... 식품? 식재료? ...아, 식량자원연구시설? 네. 그러면 여기 18층, 19층... 그리고 20층이겠군요? 사무실이랑도 가까워서 나름 괜찮은 부서로 취급받죠. 비위가 좀 쎄야 하긴 하지만.


이유요? 뭐, 이유라면야... 식량 폐기물들을 봐야 하니까?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지는 건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죠? 월급 생각하면서 버텨봐요.


여튼, 당신이 일하게 될 층은 18층, 19층, 20층. 그리고 사무실은 17층. 넓게 봐서 주상복합시설 및 편의시설들이 입점한 1층부터 5층까지. ...여기 제외하고 나머지 층은 가지 마요. 이외의 층계에 머무를 일이 생긴다, 하면 5분 이상 그 층의 복도에 머무르지 마요. 차라리 복도에서 쉴 거면 계단에서 쉬던가 해요. 멍하게 있지 말고, 최대한 서둘러서 5분 이내로 다시 비상계단 쪽으로 피해요. 거기서는 5분 지나도 괜찮으니까.




그런데, 만약에 계단을 통해 이동하는데, 발걸음 소리가 들릴 수 있어요. 평범한 발걸음 소리라면 상관 없어요. 저를 비롯한 당신 상사, 선배들일거에요. 깍듯하게 인사하면 좋게 봐줄거에요. ...문제는 '일부러 당신과 발소리를 맞춰 걷는' 존재들이에요. 비상계단이 완전하게 안전한 곳은 또 아니거든요. 가끔, 무언가의 '타겟' 이 될 수 있어요. 진짜로. 그럴 때는, 인기척이 느껴지는 반대편 방향으로 이동해야 해요. 위에서 들린다면 아래로, 아래에서 들린다면 위로 올라가요.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멈추지만 말아요. 멈춰서 시간을 끌 수록, 다음에 들려오는 발걸음 소리는 더 가까운 곳에서 들릴 거에요.




아, 그 인기척의 근원은 어떻게든 당신을 뒤돌아보게 하려고 할 거에요. 누군가의 목소리를 흉내내거나, 특히 제 목소리를 흉내내거나... 아니면 도와달라는 소리를 내거나 할 수도 있죠. 철저하게 무시해요. 뒤돌아보지 말고 꿋꿋이 가요. 우리 회사 내규 중, '화재, 지진 등의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비상계단에서는 단 한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으며 혼잣말도 하지 않는다' 라는 규정이 있어요. 그러니 그건 우리 회사에 소속된 존재가 아니라는거죠. 무시해요. 잘못된 층계에 들어선 순간, 그 복도에 있는 건... 당신을 쫓는 무언가, 그리고 당신 뿐이에요. 그리고, 당신을 쫓는 존재는 매번 바뀌겠지만 행동양식까지 달라지진 않아요.


계속 무시하다 보면, 그건 약이 올라서 어떻게든 당신의 호흡을 무너트리고 그 틈을 타서 강제로 뒤를 돌아보게 하려고 할 건데, 혹시 악취에 대한 내성이 있나요? ...무례를 용서해줄래요? 잠깐 테스트 좀 해 볼게요.


뿌스스스슷-! 뿌부부북! 뿌웃!


...어머? 눈 하나 깜짝 안하네? 숨 안쉬는거 아니죠? ... 으앗! 그렇게 열정적으로 숨 쉴 필요 없어요! ... 하우... 이런 신입은 또 처음이네요. 이 정도면 좀 괜찮겠네요. 하지만 그 냄새 오래 맡아서 좋을 거 없으니까... 그냥 빨리 빠져나와요. 힘들다 싶으면 숨 참고, 걸음 빨리. 최대한 빨리 안전한 곳으로. ... 계속 킁킁거리지 말라니까요...?! 벼... 변태에요 신입 씨?! ... 흐...흐흥...! 냄새가 구수해서 정감이 간다는 말은... 조금 기분 좋게 들어주겠어요. 변태 씨. ...뭐에요! 그런 의기양양한 얼굴은?! ...모...몰라요! 따라오기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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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 맞아요. 왼쪽 끝, 그리고 중앙 엘리베이터 양 옆, 그리고 오른쪽 맨 끝. 이렇게 네 곳에 계단이 있고, 복도 양 끝단 계단 건너편 벽면에는 엘리베이터가 있죠.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중앙 엘리베이터는 화물까지 나를 수 있는 대형 엘리베이터지만, 양 옆 엘리베이터는 오직 인간만 탈 수 있어요.


...그러고 보니 이 이야기를 안했네요. 만일, 양 끝의 인간만 탈 수 있는 엘리베이터로는 절대 물건들을 나르지 않아요. 만약, 양 끝 엘리베이터 안에 짐이 한가득 들어차있다면... 당신은 아무 것도 못 본 거에요. 계단을 써요. 아니면 반대편 엘리베이터나 중앙 엘리베이터를 이용하거나.




아 참, 참고로 정말... 정말정말 희귀한 확률이긴 한데, 계단을 이동할 때 뭔가 내려가도 내려가도, 혹은 올라가도 올라가도 계~속 제자리를 빙빙 도는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럴 때는, 음, 한번 확인해 볼 필요가 있는데, 실수인 척 뭔가 표시가 될만한 물건을 흘려요. 단추든, 뭐든... 그걸 흘려서 계단과 계단 사이가 꺾이는 공간에 툭 떨어트리고 계속 자연스럽게 가던 길을 가 봐요. 만약 다음 루프 때 그 물건을 발견한다면... 그래요. 당신은 환각에 빠져서 계속해서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돌고 있는 것이 맞아요.




이럴 땐... 아, 긴급 연락처 있나요? ... 카톡으로 받았죠? 거기에 바로 연락을 취해요. 이 때는 전화를 해도 되고, 긴급 상황으로 분류되므로 말을 해도 괜찮아요. 차분하게, 가명으로 받은 이름을 말하고, 몇 층에서 내렸는지 말하고, 응시하는 자에 의해 환각에 빠졌습니다. 라고 말하고, 계단 사이 공간의 구석진 곳으로 가 눈을 감고, 코랑 귀를 막고, 기왕이면 최대한 입으로 숨을 쉬면서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요.


그 사람들은 당신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가명' 을 부르며 일어날 것을 종용할거에요. ...네. 가명이요. 본명을 부르는 존재가 당신을 일어나게 하려고 한다면, 절대 일어나지 마요. 그 상태에서는, 녀석들이 제 힘을 낼 수 없어서 상관없지만, 당신이 녀석들의 말을 듣고 일어나서 그녀석들과 접촉한 순간부터는...




...미안해요. 우리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요.


그러니까 조심해요. 뭔가 지켜보는 시선이 느껴져도 눈 뜨지 말고, 감은 눈 앞의 검은 시야에서 샛노란 눈동자가 보이는 것 같아도, 구릿한 냄새가 사방에서 풀풀 풍겨도 어떻게든 무시해요. 일어나, 일어나, 어서 일어나... 라고 하는 속삭임과... 크흠, 냄새나는 방귀 소리가 들려와도 무시해요. 그건, 그 종족들만의 추잡하고도 역겹지만 그 어느 무엇보다도 확실한 '사람을 홀리는 방법' 이니까요. 그쪽 세상에서도 되게 위험하고, 혼돈스러운 존재로 분류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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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렇게 비상계단에서 좀 좋지 않은 경험을 했다 해도, 그날만큼은 무조건 비상계단을 계속해서 이용해야 해요. 안전하게 대충 한 이틀에서... 넓게 사나흘 정도? 그 동안은 엘리베이터는 어지간해서는 쓰지 마요. 운동한다 생각하고 17층까지 걸어야죠 뭐. 30층까지 걸어다니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아무튼,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그 엘리베이터,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AI' 모델이 탑재되어 있거든요. 당신이 볼 수 없는 곳에서 엘리베이터를 조종하는 그것은, 이미 모두의 타겟이 된 당신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순간, 벽면의 거울을 부수고 나와 본색을 드러낼거에요.


도망칠 수 없을 거에요. 애초부터 인간을 보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계형 생물들이니 당연히도 힘으로 이길 수도 없고, 결정적으로 그 녀석의 몸 속에는, 평범한 공기를 '자신만의 필터를 거쳐서' 메탄과 유황, 수소, 그리고 각종 화학 성분들이 가득한 '특수한 기체' 로 만들 수 있고, 이것을 무한정 배출할 수 있거든요. 일종의 배기가스인거죠. 밀폐된 엘리베이터는 순식간에 그것의 배기가스로 가득 찰 거고...




당신은 그 존재의 충실한 노리개가 될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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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엘리베이터를 뒤로 하고 비상계단을 타려는데,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뒤를 돌아보세요. 크게 세 가지 경우로 분류할 수 있거든요?


첫 번째, 텅 빈 엘리베이터. ...이건 무조건 함정이에요. 타지 마요. 내가 아까 말했던 일이 그대로 일어날테니까.


두 번째, 작업복, 실험 가운, 혹은 보호복을 입은 우리 회사의 직원이 하나 이상 타고 있다면... 그 직원, 선배들은 당신의 보험이 되어줄거에요. 인사를 하고 들어가서 탄 다음, 당신이 내리고 싶은 층에서 내리고 나와요. 나올 때도, 인사를 하는 것을 잊지 말고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더더욱 엘리베이터를 조심하세요. 눈 앞에서 당신을 놓쳐버린 엘리베이터의 AI는, 약이 더 바짝 올라서 어떻게든 당신을 엘리베이터로 끌어들이려고 할 테니까요.


세 번째, 누가 봐도, 무조건, 확실하게... '사람이 아닌 무언가' 가, 그것도 매혹적인 여인의 모습을 한 무언가가, 그 안에 타서 당신에게 어서 올라타라고 유도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어떤 느낌이냐고요? 음... 팔 대신 날개가 달린 여자, 온 몸이 푸른색이나 연두색의 점액질로 뒤덮인 여자, 개나 고양이가 섞인 것 같은 여자, 아니면 절대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될 것 같은 어린 여자아이 같은 모습을 한 무언가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당신을 현혹한다면, 정중하게 거절하세요. 절대 무례하게 굴지 말고, 최대한 정중하게 거절하세요. 당신의 본명, 집주소 등은 개인정보니까 말할 필요가 없어요. 절대 그런 거 말하지 말아요.




당신이 할 일은 엘리베이터가 떠날 때 까지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무례하지 않게 거절의 의사를 표하는 것 뿐이에요.


그러면, 아쉽다는 듯 당신을 빤히 바라보겠지만... 해는 끼치지 못할거에요. 절대로. 계약의 일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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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근무부서가 식량자원연구시설이라고 했죠? 좋아요. 비위도 강하다고 하고... 네? 냄새도 잘 견딘다고요? ...읏...! 알아요! ...여튼... 제가 계속해서 비위 좋냐고 물어보는 이유는, 단순히 음식물과 관련된 폐기물들하고 씨름을 해야 하는것만은 아니거든요. 우리가 개발한 몇몇 식품들을... 먹고 테스트를 해야 하거든요.


선별된 여성 직원만이 테스트에 참여해요. 특별히 더 미각을 날카롭게 끌어올리는 약물을 복용하고, 그 외에도 우리와 협력 관계인 그... 연합에서 지급받은 뭐 보조제들을 투여받은 채로 테이스팅에 참여할거에요. 보통은 우리 회사에서 만든 건 '맛' 부분에서는 실패하지 않아요. 민트초코코코넛워터데자와실론티냉면이나 마라로제허니버터멜론체리망고국밥같은 해괴한 음식이 가끔 튀어나오는 것 빼면 실패하는 일은 없어요. 다만, 영양학적으로 효과를 크게 증폭시키기 위해 이것저것 막 섞고 그래요. 보통은 별 일 없는데... 문제가 없으면 제가 따로 주의를 드리지도 않겠죠?




...여직원들 중, 한 명이라도 배를 부여잡거나 소화의 불편함을 호소하는 이가 있다면, 곧바로 방독면과 마스크를 착용하세요. 그리고, 이후 눈 앞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최대한 이성을 유지하세요.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성욕 억제제' 를 두 알 복용해요. 훨씬 나을테니. ...욕망을 이겨내길 바랄게요. 정 안되겠으면 일 끝나고 각 층에 하나씩 있는 휴게실에서 해요. 완전 방음에... 환기 설비도 신식이니까요.




네? 저는 해본 적 있... 무... 무슨 말이에요! 그렇게 헤픈 스타일은 아니라고요! ...네? 분명히 모두한테서 인기가 많았을 것 같... 다으... 그렇게 문란하지 않다니까요...? 신입한테 내가 무슨 꼴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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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각... 또각...)




...아 참, 지금까지 올라오면서 다양한 시설들을 봤었죠? 단백질자원 연구부서, 생체강화 특수강장제 연구부서... 이런 많은 부서들이요. 흥미가 생긴다고요? 미안하지만 그 마음은 접어두길 바랄게요. 그리고, 식량자원 연구시설과 부속 시설로 분류된 곳 이외의 장소는 들어가지 마요. 보통,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것저것 하던 다른 직원분들 방해하면 괜히 서로 얼굴 붉히고 싸우니까... 자, 여기다가 명찰 한번 찍어볼래요? [삐익-] ...네! 이렇게 들어오시면 되겠네요.


당신이 근무하는 부서는 이렇게 크게... 이정도 범위에요. 알죠? 지도 봐서? 이 ㄴ자 구조에서... 여기는, 물품 보관실. 여기는 종합적으로 연구 및 개발이 이루어지는 실험대와 실험실, 여기는 조금 큰 규모의 실험을 할 때 제한적으로 사용하는 격리실험실. 그리고 여기가... 폐기 시료 처리시설이에요. 은어로 다들 짬통이라고 부르던데, 가끔 비위 좋은 직원분들은 여기서 라면도 끓여먹고 그래요. 놀랍죠? 음식물 쓰레기 코앞에 쌓아놓고 뭐 먹는게?




...네? 요양시설에서 일하면서 어르신들 기저귀 쌓아놓고 그 앞에서 짜장면... 와... 어... 어어... 진짜 슈퍼루키네요...? ...욱... 아, 죄송해요. 상상하니 제가 토가 쏠려서 그만... 여튼, 여기 실험실에서는 환기시설이 필요한 곳과 아닌 곳으로 나뉘어져 있거든요? 보통 신입들은 비교적 덜 위험한, 그러니까 위험한 게 발생할 일이 별로 없는 '환기 시설이 없는' 실험대에서 주로 보조를 도맡아서 할 거에요. 그래도 혹시 모를 미량의 유독가스가 나올 수 있으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보고해주세요. 선배들이 다시 측정한다음 위험하다 싶으면 그 유황 가스 흘러나오는거 환기시설 아래로 옮길 거에요.




근데, 가끔 그 보고해도 실험하는 선배 직원들이 여자들이면 '고의적으로 옮기지 않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거 가끔 제대로 안전 마스크 안 써서 생기거나, 환기시설에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경우니 잘 보고 있다가 실험실 총괄하시는 이 분, 수석 연구원분한테 잘 설명해주시면 알아서 수습하실거에요. 걱정할거 없어요. ...눈빛 보니까 괜히 즐기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참아요. 알았죠? ...아니라고요? 흐응... 거짓말같은데? 푸훗... 자, 저쪽으로 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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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왜 이렇게 어두워? ...불... 불이... 아, 켜졌다. ...거기서 뭐해요? 어서 들어와요. ...어두운 건 별로 안 좋아한다고요? 그래서 불 켜질때까지 기다리셨다? 뭐에요~? 그런 면도 있었네?


아. 삐졌어요? 푸후후... 귀여운 구석도 있네요. 이래야 신입 맛이 좀 나지. 후후후... 아, 미안해요. 이 말은 무시해요?


아무튼, 여긴 뭐... 각종 실험에 쓰는 물품들을 종합적으로 보관해요. 알콜, 포르말린, 글리세린같은 시약들... 그리고 스포이드라던가, 알콜램프같은 소모품, 실험 도구들 전반이요. 원하시는 만큼 가져가셔서 사용하시면 됩니다만, 한 가지 명심해주셔야 하는게... 음, 여기 실험실은 이 팀만 쓰는 게 아니에요. 또 다른, 여기랑 조금 분리된 환경의 '식량자원 연구시설' 이 존재하거든요. A팀 B팀 이런 느낌? 그렇게 받아들이세요.


아, 뭔가 부족한 시약이나 그런 게 있으면, 보통 신입이나 짬 낮은 직원들이 지하 1층 시약 보관실에서 필요한 물건들 가져와요. 걱정 마요. 본인이 엘리베이터의 타겟이 되었다면, 그 내용은 선배들도 다 알고 있을거고, 모두 당신을 배려해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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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폐기 시료 처리시설이죠. 시료도 처리하고, 뭐... 썩은 음식들이나 맛탱이 간 물건들 전반적으로 다 여기서 처분해요. 분쇄기로 한번 잘게 갈고, 저기 펄펄 끓는 쇳물 속으로 풍덩 떨어지는거죠. 그 다음엔 아래층에서 적절한 공정을 거쳐서 결정화시킨채로 극비구역에 매립하죠. 아니면, 그것들을 '원하는' 사람들에게로 이송되거나요.


여튼... 그래서 여긴 진짜 사정없이 더워요. 후... 안 더워요, 그쪽은? 좀만 참아요. 신입은 규정상 교육 중에는 그 옷 벗으면 안되니까... 미안해요. 전 도저히 못버티겠어서.




...후우. 좀 낫네요. ...거의 다 끝났으니 좀만 참아요. ...흠? 눈을 제대로 못 두시네? 자극이 좀 강하신가봐요? 그렇죠? 우리가 나름 외국계 회사라 말이죠, 은근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이니까요. ...문란한거랑은 다르니 오해하지 말아요. 알았죠? 자... 어디까지 했더라? 아, 여기 시설 설명이죠. 우선 분쇄기로 한번 잘게 간다고는 했지만, 바로 갈았다가는 분쇄기가... 좀 손상될 수 있어요. 말했죠? 식품같은 먹을 수 있는 것만 폐기처분하는게 아니니까요. 여기... 이 통 보이죠? (드르르르릉-) 보면 알겠지만... 이 액체가 특수처리된 전처리용 약품이거든요?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여기 세상의 물건으로 만든 건 아니고, 음... 특별하게 제작된 신물질이거든요? '슬라이미 드로스' 라고 하는 액체인데, 설명하자면 좀... 길어요. 그래서 여기서 다 말하진 않을건데...


네? 아, 걱정 마요. 사람 피부 녹이거나 하는 그런 일은 일절 없고요, 뭔가 피해를 끼치진 않아요. 그렇지만... 한 가지는 꼭 신경써주셔야 해요.




절대 입에 닿지 않게 해요. 한 방울이라도.


그리고 만약 계급과 관계없이 여성 연구원이 이 액체에 좀 많이... 비정상적으로 흥미를 막 보일 수 있거든요? 음, 이악물고 뜯어말려주세요. 아마 절대 제정신인 상태가 아닐거에요. 적극적으로 말리고, 그녀가 정신을 차리면 상황을 설명해줘요. 아무도 책임을 묻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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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처리 과정을 마쳤으면, 이제 분류를 해서 폐기를 할 차례에요. 아무렇게나 분류하면 안에 함유된 성분들끼리 엉켜서 예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날 수 있거든요. 요컨대 산업재해라고 할까요? 보시면... 이 부서가 식량자원을 연구하는 부서답게, 대부분은 이렇게 각종 식자재류는 027번, 동물 사체, 혹은 그와 유사한 것의 경우 029번, 그리고... 통조림을 비롯한 보존식은 별도로 030번으로 분류되니 잊지 마요. 일반 식료랑 다르게 특수한 처리 가공 과정이 더해지거든요. 아예 다른 쪽인거죠. 물품 등의 기자재류는... 002번이니까 여기로 보내면 하위 부서에서 한번에 모아서 다 처리할거에요. 별거 없죠? ...참, 이렇게... 어... 처음 보는 생물이죠? 징그럽거나 하진...


네? 집에서 하나 키우고 싶다고요? ...우와. 이런 평가를 예상한 건 아닌데...? 여튼, 이렇게 자체적으로 식품을 생산하는 식으로 개조된 생물처럼... 두 가지 형태가 섞인 동물도 있어요. ...조금 남은 원형 모습을 보면 아스라미스 해역 인근의 갈매기처럼 보이는데... 쇠오리인가? 아무튼, 이렇게 생물과 동물이 섞여서 027번과 029번으로 동시에 분류되는 경우, 두 개를 모두 쓰고, 둘 중 어디로든 대충 보내서 폐기하면 돼요. 헷갈리면 저기 DB에 접속해서 찾아볼 수 있으니 걱정 말고요.


아, 이건 폐기하는 생물이 아니에요. 여기서 기르는 생물이거든요. 인식표 보이죠? ...이런 생물들을 키우는 탓에 처음 오는 신입들은 기절할 것 처럼 놀라기도 하는데 말이죠. 후후...




...그래도 한 가지는 꼭 명심해줘요. 여기 글자 색들은 전부 다 검은색인거 보이죠? ...가끔 연보라색, 자주색 계통의 글자가 칠해진 정체불명의 약품 덩어리는 절대 폐기를 시도하지 마요.




그거, 폐기물 아니고 살아있는 무언가에요.




그거랑 같이, 일련번호가 이상하게 붙은 것들. 막 읽을 수 없는 숫자가 쓰여있거나, 한 글자로 빼곡히 채워져있다던가... 그런 거 말이에요. 딱 보면 느낌이 올 거에요. 이질적이고, 물렁한 약병에 대한 그 이상한 느낌이. 그리고 만약, 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는데, 만약... '글자하고 눈이 마주친 것 같은 기분' 이 들 수 있어요.




그거 착각 아니에요. 당장 거기서 당신 동료, 선배 데리고 다 빠져나와요. 만약 선배가 이유없이 병을 다시 내려놓거나, 팽개치거나 한 다음 당신을 끌고 나가면 군말없이 나가요. 제발.




병 속에 빨려들어가서 홀연히 사라지기 싫으면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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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걱정하지는 마요. 별 일 없으니까. 한 20분 있다가 들어가면 다시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있을거에요. 사냥에 실패한 그 녀석은 아쉬워하면서 돌아갈테니까요.




...단, 단... 만약 실수로라도 안에 누군가가 있었는데도 미처 함께 탈출하지 못했다면, 으으으으음... 그건 굳이 말하고 싶진 않네요. 사람이 무언가 형용할 수 없는 그... [■■■■] 로 변화하는걸 보는 건 절대 유쾌한 경험이 아닐거에요. ...네? 제가 뭐라 했는지 못들었다고요? 아, 일종의 인지 저해 필터라고 할까요? 신입분들은 연차가 안 쌓인 상태에서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면 좀... 정신 건강에 해악을 끼칠 수 있어서 말이죠. 나중에 경험이 샇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에요. 연합도 그렇고 말이죠.


당신이 할 건 별로 없어요. 바닥에 좀... 하얗고 탁하고 끈적이는 무언가가 잔뜩 흩뿌려져 있을 수 있어요. 그거, 특수 코팅 처리된 밀걸레... 네, 저거요. 저걸로 슥슥 문지르면 금방 사라지고, 환기만 잘 해주면 될 거에요.




순간 코를 칼로 푹 찌르는 것 같은 굉장한 악취가 푸왁-! 하고 밀어닥칠 수 있어요. 문을 여는 순간 말이에요. 그거... 잘 참아봐요.




네? 잘 참는거 보여줄테니... 바... 무슨 말이에요 대체! ...그... 그런 취향인거에요?! ...윽... 상부에서 당신이 오랜만에 나타난 우리 회사에 잘 맞는 적격자 신입이라고 하더니... 이런 뜻인거냐구요...


...나중에 맡게 해 줄게요. ...하지만, 이전에 맡았던 것 보다 진짜, 무진장 독한 냄새일테니 각오해요? 선배를 놀린 댓가를 치르게 해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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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종류의 작업은 두 명 이상으로만 진행된답니다. 예외는 없어요. ...화장실 가는 일 정도만 빼면. 그러니까 항상 당신을 담당하는 선배와 짝을 지어 다니세요. 혼자 있는 일은 어지간해선 피하세요. 어두운 쪽은 혼자일 때는 더더욱 피해야 하고... 그래요. 뭐. 왜 굳이 혼자 있지 마라고 강조하냐면... 으음...




...혼자 있을 때는... 당신이 어디에 있든 간에, 모두에게 외치는 셈인 거에요. '날 잡아먹어주세요~' 라고 말이에요. 보통, 녀석들은 1:1을 선호해서 당신이 혼자가 아니라면 어지간해서는 튀어나오지 않아요. 가끔, 정말 가끔이지만 다수가 모여있는 경우 두명, 세명이 있더라도 막 덮치려 들긴 하지만 말이죠. 그러니 조심해야해요. 그리고, 어두운 곳에 있을 때도 마찬가지에요.




근데... 뭐라고 할까요? 만약 당신이 모종의 사유로 혼자 있게 되었는데, 갑자기 창문이 닫히고 문이 닫히고...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하던 짓을 모두 그만두고 곧바로 탈출을 시도하세요. 여기 손잡이 쪽을 봐줄래요? ...아무런 흔적도 없죠? 그렇다면 아직 늦지 않았다는 거에요. 바로 탈출하세요.




그런데... 여기 이렇게 손자국이 무수히 찍혀있거나, 뭔가 끈적한 액이 묻어있고, 동시에 구역질나는 향기가 훅- 하고 올라오면서 코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냄새가 당신을 공격하기 시작했다면... 늦었네요. 누가 되었든 간에, 당신을 먹잇감으로 생각하고 잡아먹으러 오고 있는거에요. 그렇다면, 바로 여기로 가세요. 여기 그 슬라이미 드로스 보관통 옆에, 여기 책상 있잖아요? 이 아래, 공간이 엄청 넓어요. (드르르륵-) ...어때요. 사람 두어 명은 너끈히 들어갈 만한 사이즈죠? 거기로 들어가서, 문을 굳게 꼭 닫고, 숨죽이고 버텨요. 조용하게.




밖에서 야릇한 신음소리가 어서 나오라고, 다 찾았으니 얼른 나오라고 아무리 말해도, 즐거운 일을 시켜주겠다며 유혹해도, 당신이 숨은 책상 주위에서... 크흠... 바... 방귀를 잔뜩 뀌면서 유혹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나올 생각 하지 마요. 모든 소리가 완전히 잦아들었다고 생각할 때 즈음, 그때 나와서 주위를 살펴보도록 해요. ...내 말 명심해요. 녀석들은 이 특수하게 처리된 책상 속에 있는 당신을 인지하지 못하지만, 당신이 이 안에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아내면...




끝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을 찾아낼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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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마지막. 분쇄실에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물건들이 있곤 해요. 그런 물건들이라고 하는건... 음, 뭐같아요?


...칼이나 망치같은 공구? 아니면 신선한 식품? 둘 다 아니에요. 여기는 '성적인 용도로 사용되는' 물건들은 죄다 반입금지에요. 콘돔, 피임약, 딜도, 오나홀같은... 그런 거, 그리고 '가스 분비 촉진제' 라고 적힌 특수 목적의 약품 또한 절대로 반입되지 않아요. 여기만의 특수한 규칙이거든요. 나름대로 자유로운 회사인데 왜 굳이 이런 규칙을 제한했느냐고요?




...그 물건을 '따라하는' 녀석들이 있기 때문이죠. 기계일수도 있고, 혹은 함정일수도 있고요. 만약, 섣불리 그것들을 가져갔다가는 '날 마음대로 해도 좋아요' 라고 그것들에게 선언하는 셈이나 다름없어요.




...눈길도 주지 마요. 그냥 무시하고 할 일 하면, 어느 새 사라져있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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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손은 잘 씻고 나왔어요? 이제 19층, 식품보관소 시약보관실로 가죠. 일반적인 시약 보관실은, 모든 약물들을 보관하는 곳으로 지하 1층에 있다고 말했죠? 거기서 가져온 시약들을 한번에 다 쓸 수도 있지만, 한번에 많이 가져와서 그때그때 꺼내서 써야 하는 물건들 같은 건 한번에 대용량으로 가져와서 이웃한 보관층에 넣어놓고 필요할 때 마다 일정량 가져와서 쓰는 느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19층에는 '창고' 역할을 하는 시료 보관실이 별도로 있어요.


식품보관소의 시약보관실 같은 경우, 사람이 온 것이 센서에 감지되면 자동으로 조명이 들어올거에요. 출입증 찍고 출입하면 된답니다.




[삐빅-]




...조금 서늘하죠? 후후... 습도, 자외선, 온도 등으로 인해 시료들이 변질되면 안 될 일이잖아요? 그래서 여긴 특수한 설비를 이용해서 언제나 동일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어요. 자, 여길 봐줄래요? 온도는 늘 영상 8도, 그리고 습도는 13% 미만. 조금 건조할테니 목이 탄다 싶으면 여기 정수기에서 물을 마셔도 좋아요.




단, 온도와 습도가 비정상적으로 느껴진다면 곧바로 빠져나와서 선배들과 수석 연구원분에게 상황을 설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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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비정상적으로 덥게 느껴진다면... 화산 지역의 악동이 당신을 먹잇감으로 선택했다는 거에요. 머지않아 홀연히 어딘가에서 나타난, 당신의 명치 부근까지 오는 키의, 건강한 구릿빛 피부의 한 어린 여자아이를 만나게 될 거에요. 어떻게 나타났는지도, 왜 여기 있는지도, 그 아이는 절대 말해주지 않을 거고, 오히려 당신을 힘으로 제압한 다음 자신의 뜻대로 가지고 놀 거에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정수기 옆의 냉수 출수구 옆의 푸른 시약통을 들고 방바닥에 냅다 던져버려요. 한겨울 추위보다도 더한 한파가 순식간에 몰아치며, 녀석이 당황하며 그 곳의 온도를 다시 올리려 할 거에요. 추운 곳에서는 맥을 못 추는 아이니까요. 그러니, 그 틈에 도망치세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요. 장난을 치러 왔다가, 오히려 한 방 먹었다는 사실을 인지한 그 녀석은, 약이 잔뜩 올라서 더욱 당신을 가지고 놀려고 할 테니까요.




한 가지 조언해주자면, 그 아이는 이 시설... 아니, 저희 회사와 연이 닿는 각종 인간적, 비인간적 존재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구릿한 유황 냄새를 풍길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드리죠. ...버티기 힘들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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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는데도, 서늘한데도, 피부라던가, 벽면에 물방울이 맺히는 것 처럼 습도가 매우 높을 경우, 바다에서 온 녀석들이 당신을 먹잇감으로 선택했다는 이야기에요. 귀를 막아요. 귀마개가 있다면 더더욱 좋겠죠? 그러니 여기 들어오기 전, 입구에서 귀마개를 챙겨요. 사격장에서도 무리없이 소음을 막아줄 수 있는 수준이니 방음 효과는 확실할거에요. 그렇게 다 했다면, 볼 일을 보면 된답니다. 단, 이 경우, 3분 이내로 시약 보관실을 떠나요. 설령 원하는 물건을 찾지 못했다 해도 상관없어요. 그냥 문을 닫고 나간 다음, 다시 18층으로 돌아가서 선배들한테 상황을 설명하세요. 그리고, 5분 정도 기다렸다 올라가면 녀석들은 포기하고 돌아간 상태일 거에요. 마저 일을 보면 문제 없답니다.




...시간 내로 빠져나오지 못했다면, 귀마개를 벗어도 좋아요. 더 이상 귀마개가 소음을 막아주지 못할 거에요. 아, 소음이 아니라 선율로 들리겠지만요. 아름답게 들려오는 선율 사이에 들려오는 추잡한 멜로디, 그리고 당신을 어디론가 인도하는 악취의 흐름에 이끌려 다가간 당신은, 당신을 기다리는, 바다 속 세상에서 올라온 괴이들과 마주하게 되겠죠. ...당신의 취향이 좀 변태적인 건 이해하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코에 격통이 느껴질 정도의 지독한 바닷물 썩은내는 감당하기 힘들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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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시약병에 성에가 끼고, 입김이 보일 정도로 급격하게 기온이 낮아질 때가 있어요. ...아, 이전에 말해줬던 복도에서의 그것들이 생각난다고요? 궤를 같이 하는 녀석들이죠. 설산의 주인들이라고 불리는 이계의 존재들인데, 복도에서 마주치는 녀석들은 보통 글라키에스... 라고 하는 종족이죠. 살아있는 얼음 덩어리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아무튼, 그 추위를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그녀들의 지배 하에 놓인 당신은, 어느새, 설산 한복판에 던져진 것 같은 추위를 마주하게 될 거에요.


절대 굴복하지 마요. 실제 온도는 1도에서 0도 사이에 불과해요. 수십 도의 영하로 느껴지는 건 환각, 착각에 불과해요. 정수기로 가서, 따뜻한 물을 만들어서 품에 끌어안고, 홀짝거리면서 마셔요. 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 거에요. 에베레스트, 칸첸중가를 비롯한 해발고도 8천미터 이상의 14봉우리를 등반하던 등산가들도 밤의 추위를 이렇게 견뎌내곤 했죠. 어떻게든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고 2분을 버틴다면, 그들은 당신의 정신력을 인정하고, 돌아갈 거에요. 그 뒤에는 일을 마저 보면 됩니다. ...아, 18층으로 돌아갈 땐 머리카락에 묻은 얼음 조각이나 고드름 같은거 다 털고 들어가는게 좋을 거에요. 몰골이 많이 아니라 선배들이 빵 터져버릴지도 모르거든요. 후후...




...추위에 굴복하면 어떻게 되느냐고요? ...글쎄요. 착한 아이에게는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을 준다고 하잖아요? 선물 보따리에서 선물을 꺼내가지고. ...근데, 산타 할아버지랑 반대되는 개념의 무언가가 있어요. 전승 속 '크람푸스' 라고 하는 존재인데 말이죠, 나쁜 아이들을 자루에 담아 납치해서 짓궃은 장난을 치고 다시 되돌려놓는다는 그런 전승이 있거든요.




...자루 속에 들어간 나쁜 아이는 당신이 될 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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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문을 열고 들어가기 전에, 문 안쪽에서 뭔가 열어줘! 살려줘! 하는 식으로 막 우는 소리가 들릴지도 몰라요.




열어주지 마요. 그거 이제 우리같은 사람이 아니거든요.




...뭐, 설령 사람이 맞다고 해도 저나 당신이나 도와줄 수 있는 일은 없어요. 걸레 가지고 와서 바닥에 흘린 끈적한 액체나 닦아야죠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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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시약 보관실의 깊은 곳에 들어가서 약품을 꺼내야 할 때가 와요. 그런데, 시료를 가지고 돌아가려고 한 순간, 세 칸 너머의 입구가 사라지고 영원히, 끝없이 지속되는 시약 보관실의 다른 방만이 보일 경우, 허둥대지 마요. 절대 당황하지 말고, 아무렇지 않은 척 행동해서 이 비상 연락용 신호기를 들어요. 신호기를 들고, 19층 시약 보관실 3번 방에 갇혔습니다. 라고만 해주세요. 관리실에서는 모든 것을 감시하고 있고, 당신이 19층에 들어선 순간부터 그 순간까지 모두 눈에 담고 있었기 때문에, 곧바로 이상상황을 감지하고 당신을 구조할 인력을 파견할거에요.




...근데 허둥대면서 당황하고, 어디로 도망치고 싶고, 그런 마음을 억누르지 못하고 이리저리 허둥거리다가 우리조차 알 수 없는 깊은 어딘가로 이동해버린다면...




음, 그땐 우리도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겠네요. 흑마법의 대가인 마녀들이 아주 행복하게 웃으면서 당신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참고로 말하자면, 흑마법을 연구하면 연구할수록... 부작용으로 '방귀냄새' 가 독해진답니다. ...네? 흑마법 좀 보여달라고요? 저는 사람이거든요?! ...냄새 보면 아니라고요!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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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헴! ...선배한테 장난 치는 것도 정도껏 해요. 정말... 흥... 안 삐졌으니까 저리... 그건 줘요. 마침 입이 심심했던 참이었으니까. ...이번만이에요. 알았어요, 바보 변태 신입 씨? (오물오물...) ...여튼...


네? 애초에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느냐고요?


...흠. 설명하기 좀 복잡하지만... 이 위치는 뭔가 특별한 자리거든요. ...영적으로. 오컬트적인 이야기이긴 한데, 다른 차원...의 좌표와 반쯤 겹쳐있는 특이한 자리에요. 수학적으로 비유하자면 두 직선이 교차하는 한 점에 위치한 회사라고나 할까요? 그래서 가끔, 이곳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 의 무언가와 연결되는 경우가 있죠. 이전에 말했던 A팀, B팀 비유 있잖아요? ...그게 이거에요. A팀은 우리, 이쪽 세계에서 일을 하는 직원들, 그리고 B팀은... 그렇지 않은 '것' 들.


그래도 여긴 적절한 통제가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이런 통제를 벗어난 연결, 혹은 동화... 아니, 이쪽 세계에서 '이상현상' 이라 부르는 현상이 발생하는 경우, 이 뒤틀림을 해결하기 위해 IACU라는 범국가적 연합에서 인력을 파견하곤 하죠. 이 회사는 그 연합의 산하 단체고요. ...신입에게 허락된 정보는 여기까지! 궁금해도 참아요. 후후... 나중에 다 알게 될 테니.


자, 이제 나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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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층은 간략하게 보고 갈 거에요. 왜냐면... 여긴 우리 구역보다는 '저쪽' 의 구역에 더 가깝기 때문이에요. 19층, 혹은 18층에 직접적으로 보관하기 힘든, 반응성이 높은 시약들을 여기에 일부 보관하고 있거든요. 여기는 보안이 좀 철저해서... [삐빅-! ... 삐빅-!] ...출입증의 양면, 그리고 사원증과 어플리케이션이 연동되어 만들어지는 OTP 번호를... [삑-삑삑-삑-삑-삑! ... 철컹-] ...입력해야 들어갈 수 있거든요.


뭐, 귀한 물건이 있는 건 아니에요. 밖으로 나가면 큰일 나는 물건들이 많아서 그렇지. 신입 분들은 여기 올 일은 거의 없을거에요.




[덜컹-!]




네? 뭐가 들어온 것 같다고요? ...그러네요. ...쉿. 곧 나갈 거에요.




[덜컹-!]




...좀 위험하게 느껴졌죠? 어떤 느낌이 들었죠? 살기는 아니고, 뭔가 위험한 욕망이 흐르는 것 같았죠? 그리고 등에 날개가 돋아나있었고? ...저 직원은 윈디라고 하는 직원이랍니다. 종족은... 천둥새라고 불리는 썬더버드. 나중에 차차 알게 될 거에요. 윈디는 저쪽에서 일하는 녀석들 중 '제일' 얌전한 축에 속하는 녀석이에요. ...다른 녀석들은 대강 어떤 느낌인지 감이 잡히죠? ...그리고, 지금 당신이 저와 함께 있어서 망정이지, 아마 당신 혼자였다면, 제 기운에 가려지지 못한 당신의 인간의 기운을 감지하고 옳다구나 하고 달려들었을걸요?


 


자, 이제 왜 제가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좀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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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도 너무 무작정 두려워하지만은 마요. 20층, 13층, 27층, 30층... 이렇게 몇몇 층은 여기처럼, 경계가 굉장히 희미해서 의외로 빈번하게 두 세계의 구성원들이 만날 수 있거든요. 여기서는 어느 쪽이 되었든, 상대방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기로 협약을 맺은 상태니까요. 법으로 보호받는다고 할까요? 덮쳐지는 건, 이런 층이 아니라 다른 층에 있을 때의 이야기고요. 그러니까, 당신이 무례하게 대하지 않는다면 그쪽도 당신에게 무례하게 굴지 않을거에요. 시약을 찾아달라거나 하는 간단한 부탁 정도는 들어줘도 된답니다.




단, 성적 욕망을 반영하는 부탁은 절대 들어주지 마요.




절대 끝이 없을 거에요. 그리고, 그 성욕의 범람과 함께 이 존재들의 뱃속에서는 가스가 끓어오르기 시작할거고요. ...아무리 즐거운 쾌락도 몇 시간 지속되면 피로와 고통으로 느껴질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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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층의 시약 보관실도 그렇지만... 아차, 이 설명을 까먹었었네요. 시약을 꺼내간 다음에는, 몇 층의, 어디에서, 얼마만큼의 시약을 몇 시에 꺼내갑니다. 하는 장부를 작성해야 해요. 관리자가 보고 확인할거에요.




단, 필기를 위해 볼펜을 딱 잡았는데 볼펜이 끈적하게 손에 달라붙는 느낌이 든다면, 볼펜을 냅다 팽개치고 당장 그 자리를 벗어나세요. 그리고, 관리자에게 문자로 해당 내용을 보고하고 시약의 사용 내역을 문자로 보내세요. 관리자가 이해하고 나중에 반영해서 정식으로 보고서로 작성할거에요. ...그 보라색 덩어리같은 녀석들, 유독 지능도 높고 사람의 심리를 잘 꿰뚫어서 말이죠, 은근슬쩍 규칙의 경계에 서서 당신을 위험한 곳으로 끌어내리려고 하니까 말이에요. 조심해요.




...당신이 당신의 몸을 잃어버리는 건 꼭 즐겁지만은 않을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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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지?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인수인계만 받다가 벌써 퇴근 시간이 다 되었네요. 어땠나요, 회사를 둘러본 소감은? ...평생직장 찾은 기분이라고요? 후후... 패기와 열정이 참 보기 좋네요. 그 마음, 오래 가길 바랄게요. 신입사원 김방붕 씨.




...




...아.




...




...이런.



거의 다 왔는데.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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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기억은... 마땅히 없다. 나는 당황해서 사무실이 있는 17층으로 기를 쓰고 도망치려고 했고, 나를 이끌어줬던 '선배' 라고 여겼던 존재는 등에 날개가 돋고, 머리에 양뿔같은 형상의 뿔을 달고 나를 기를 쓰고 쫓고 있었다. 계단을 통해 이동하는 사이, 내 목소리를 따라하는 흰색 머리카락의 여인과, 벽과 바닥을 얼리며 빠르게 쫓아오는 웬 미친년까지 하나 따라붙었고, 꾸물거리며 보라색 웅덩이가 되어 철퍽이며 나한테 달려오는 무슨 콧물 덩어리같은 괴물... 이 외에도 온갖 지랄맞은 괴물들이 날 어떻게 해보려고 따라붙은 상태였다.




사람은 죽을 때가 되면 진짜 기적같은 힘이 나온다고 할까, 그렇게 미친듯이 달리고 달려 17층 문짝을 때려부수듯 발로 걷어차며 회의가 진행되던 곳에 난입한 나와, '선배' 그리고 그 외 11개의 개체를 본 정 대리님, 그리고 박 이사님, 그리고... 뭔가 밝은 청회색의 피부를 가진 날개가 달린... 아, 데몬이라고 하셨나. 데몬 부장님은 우리들을 보더니 한 마디 하셨다.




...신입? 신고식 한번 진짜 요란하게 하네. 반가워. 난 셰리. 종족은 데몬. 직급은 부장이다. ...에프티? 긴장감 심어줄 겸 살짝 겁만 마지막에 주라고 했는데, 대체 뭘 했길래 신입이 여기까지 죽자살자...


(쿵-)


...신입?


신입! 어이!


...참으로 아찔한 광경에, 나는 그만 다리에 힘이 풀려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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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존나 스펙타클하네. 소설을 이렇게 써도 개연성 지랄났다면서 사람들이 욕하겠다."


"그치만 사실인걸? 방붕아. 안그래? 푸후후..."


"...예. 당연하죠. 존나게 당연하죠. 에프티 선배 나으리."


"에이...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말구. 다르게 보면 난 처음부터 네가 마음에 들어서 내 본명을 알려준 것 뿐인걸?"


"그리고 진짜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날 속였고 말이지. ...참. 지금 생각해도 웃기다니까. 사기를 당했는데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은 이 감정은 뭘까?"


"글쎄... 같이 알아가볼까?"


"...대신 오늘은 짧고 굵게. 내일 우리 출근해야 하니까."


"치. 알았어. 그럼 오늘은... 더 강하게 내 배를 꾹꾹 눌러줘. 잔뜩... 들어있으니까...?"


나는 말없이 웃으며 에프티와 함께 침대에 누웠다. 자장가처럼 들려오는 그녀의 꾸륵거리는 뱃소리를 즐기며, 오늘도 육욕으로 가득한 밤을 보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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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만들어진 폐기물이나 보고 가렴... 존나 못쓴거 맞긴 한데 그래도 여러군데에서 참고해서 최소한 괴담 형태처럼은 보이게 어떻게 만들어봤다... 그래도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즐겨다오... 뭔가 어디서 본 것 같다면 그 기억이 맞을거다... 여기저기서 긁어온 나폴리탄 괴담을 적절히 다듬어서 병합하고 방구를 끼얹은거라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