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4일 일요일



주말간 나는 계속 몸을 떨었다.

부모님에게는 감기라고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유리는 나한테 뭘 요구할 셈일까.

내일, 점심 먹고 옥상 문 앞.


지옥 문으로 걸어가는 느낌이야.


나, 어쩌면 사이코한테 잘못 걸려 버린 걸지도 몰라.


일기도 더 이상 쓰지 못할지도 몰라.


무서워.

무서워.





3월 25일 월요일



무슨 맛인지도 모를 밥을 억지로 삼키고, 도서실 문을 잠갔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옥상을 향해 올라갔다.

또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옥상으로 가는 문은 도서실 옆 계단 위였다. 아주 가까웠다.

한참 더 멀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유리는 용도 모를 파우치를 들고 문에 기대어 있었다. 

그 애의 얼굴을 보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어, 왔어?“

”빨리 왔네. 밥은 제대로 먹은 거야?“


그 애가 상냥한 말씨로 인사를 건넸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밥이 제대로 넘어갔겠냐고.


유리는 익숙하게 옥상의 자물쇠를 열었다.

보통의 두 배 크기인 무거운 자물쇠가 손쉽게 스륵 열렸다.


“…옥상, 출입 금지잖아.”

“학생은 열쇠 달라고 해도 안 주는데.”


“알아.”


“열쇠는 어디서…?“


“기회 봐서 바꿔쳤어.”

“아무 열쇠나 걸어 놨는데, 아무도 눈치 못 채더라.”


”뭐야 너, 진짜…“


“자, 그건 별로 안 중요하고.“ 

”어서 와.”


유리가 두꺼운 쇠 문을 활짝 열었다.

그녀가 내 손을 잡고 문 밖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옥상의 공기는 상쾌했다.


하늘이 티 하나 없이 맑았다.

겨울의 한기가 다 가시지 않아 조금 추웠지만, 제법 쨍쨍한 햇볕이 추위를 달래 주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혼자 산책이나 하면 좋았으련만.

여기도 좋은 산책 장소가 될 수 있었는데.


한가로이 산책을 할 수는 없었다. 내 앞에는 내 인생을 한 방에 끝낼 수 있는 버튼을 가진, 사이코 미소녀가 서 있었으니까.


유리는 햇볕이 잘 드는 자리에 다리를 쭉 펴고 앉아 뒤로 짚은 팔에 몸을 기대었다.


”앉아. 계단 올라와서 다리 아프잖아.“

”바닥이 깨끗하진 않은데, 뭐 어때.“


나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 약점을 쥔 이 아이가 날 어떻게 휘두르려 할지 몰라, 그저 무서움에 떨고만 있었던 것 같다.


어깨가 떨리는 것을 봤는지, 유리는 살짝 웃음을 흘렸다.


”후후후, 너무 떨지 마. 해코지하려고 부른 거 아니야.“

“너랑 좀 친해지고 싶기도 하고.”

”그냥, 서로 궁금한 게 많을 것 같아서.“

”이야기하려고 부른 거야.“


“….!”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어?“

”일단 하나만 대답해 볼게.“


당연히 궁금한 건 산더미만큼 있었다.


왜 똥을 누고 물을 내리지 않는 건지, 

왜 하필 도서실 옆 화장실인지, 

왜 녹음기까지 써 가면서 내 약점을 잡았는지, 

왜 하필 나에게 이러는 건지.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거야?”


“이런 짓이라니, 어떤 짓?”


“아, 알잖아.”


“모르겠는데, 말해 줄래?”


“으….”


뻔히 알면서도 날 놀리려는 게 분명했다.

입은 웃음을 참고 있었지만, 차마 그마저 감추지는 못했는지 그녀의 눈은 활짝 웃고 있었다. 


”…도서실 옆 화장실에서,“


”화장실에서?“


”…내, 내가…“


”후후, 네가?“


”자, 자위 하는 거, 찍었잖아.“


“…그냥 자위 하는 거?”


“그, 그게….”


“그냥 자위, 아니었는데…”


“그, 또, 똥…”


“똥?”


“똥 누면서, 자위, 하는 거…! 찍었잖아….!”


”아하하하. 응. 맞아. 찍었지.“


내가 지저분한 말을 입에 담으며 수치스러워하는 것이 즐거운 듯 했다. 교실에서 좀처럼 웃지 않던 그 애가 시원스레 웃었다. 


물론 나는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터질 것 같았지만.


”으음, 그게…“ 

“재미있을 것 같아서 찍었어.”

“너랑 재미있는 거, 하고 싶어서.”


의미 모를 말로 그녀가 대답했다.


"대답이 됐을까?”


“...재미있는 거?”


“응. 재미있는 거.”


"...그게 뭔데?"


“으음…”

“으으으음….”


유리가 안경을 고쳐 쓰며 턱을 만지작댔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 생각 났다.”

“우후후.”


불길한 예감이 강하게 들었다.


유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왔다.


내 코앞까지 와서야 유리는 걸음을 멈추었고, 그녀는 그대로 쪼그려 앉아 서로의 숨결이 느껴질 만큼 얼굴을 가까이 댔다. 


”이연아…“

”점심시간, 이잖아…?“


“응…?”


“응가, 하고 싶지?”


“어…!?”


“나, 알아. 너 점심시간마다 응가 하는 거.”

“그것도 엄청 크고, 냄새 나는 응가.”

“특히 요즘은 거기서, 맨날 맨날.”


“으읏..!”


“하고 싶잖아..?”


꾸룩. 꾸루룩.


불행하게도 정답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대변 신호를 보내다니. 원망스러운 내 체질. 배가 울리는 타이밍도 정말 나빴어.


“있잖아, 이연아,”

“여기서, 응가 해.”

”내가 보는 앞에서.“


“히에엑!?”


무슨 소리야?

여긴 화장실이 아니잖아. 아무것도 없는 옥상인데? 

여기서? 그것도 이 애가 빤히 보는 앞에서? 진심이야?


이 애, 정말 제정신이 아니야.


“여, 여기서!?”


“응응. 여기서.”

“아, 비닐 봉투 정도는 깔아 줄게.”


유리는 자신의 파우치에서 곱게 접힌 검은 봉투를 꺼냈다.

그걸 보자 난 그 애가 진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시, 싫어!”

“이런 데서 똥을 어떻게…!”


“음…”


유리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

오싹했다. 소름이 돋았다.


“…이연아.”


”으, 응…?“


“너, 내가 응가 할 때 옆에서 자위 했지?”

“그것도 같이 똥 누면서.”


“으읏…”


“그런 거에 비하면, 이건 별로 안 이상한걸.”

“그리고, 내 말 잘 들어 주면…”


"....."


“그 영상, 지워 줄 수도 있어.”


웃기지만, 구원의 손길이 내려온 느낌이었다.

그 영상을 지울 수만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눈 딱 감고 응가 한 번 정도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응가라니…

정말 미쳤어.


유리의 얼굴을 돌아봤다. 

어느새 유리는 다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런 짓, 변태 같아…! 너, 변태야?“


”응. 변태야. 너랑 같은 변태.“


그녀는 당연한 것을 묻느냐는 듯 쉽게 내 말을 긍정했다.

칼 같이 나온 대답에 나는 그만 입을 다물었다.


“…할 마음, 생겼어?”


결정해야 했다.


내 약점을 쥔 그녀에게 거역할지, 아니면 화장실도 아닌 곳에서 나의 가장 부끄러운 것을 이 아이에게 보여 줄지. 

결정해야 했다.


“….”

“…대신, 찍지 말아 줘.“


”아하하하하, 안 찍을 거야. 걱정 마.“

”이런 건 눈으로 직접 봐 줘야지.“


”…진짜, 이상해.“


나는 침을 꼴딱 삼키고는, 유리가 깔아 놓은 봉투 앞에 쪼그려 앉았다. 교복 스커트를 걷어 올려 팬티도 드러냈다.


”후후, 팬티가 귀엽네.“


”…그런 말 하지 마.“


속옷을 벗는 데에는 생각보다 더 큰 각오가 필요했다. 

이미 말라버린 침을 애써 또 삼켰다.


”하아… 어쩌다 이렇게…“


유리가 뒤에서 내 엉덩이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팬티를 무릎까지 단숨에 내렸다. 


”우와, 이연이 엉덩이. 하얗고 예뻐. 깨끗해.“

”곧 조금 더러워지겠지만. 아하하.“


”조용히 해 줘… 제발…“


그녀는 눈에 띄게 들떠 있었다. 

저 애가 저렇게 밝을 때도 있구나.


아니, 아니. 잡념은 치우자.

빨리 끝내자. 최대한 빨리.

할 수 있어. 정이연.


“으으읏-!”


있는 힘껏 직장을 쥐어짰다.


뿌지지지직-

뿌득!

뿌오오오오옹-!!


“아!”


빨리 배변을 끝내고 싶은 마음에 힘을 너무 줬는지, 똥 한 덩어리를 내보내고는 아주아주 큰 소리로 방귀를 뀌고 말았다.  


“후후, 엄청 큰 방귀.”

“냄새 나. 이연아.”


“으으…!”


잊으려고 노력했던 수치심이 다시 불타올랐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다른 선택지는 없었기에 나는 다시 배와 엉덩이에 힘을 줘야 했다.


“으응-!”


뿌직, 뿌지직.

뿌르르륵-

투둑.


“흐으읏!”


뿌자자작!

뿌웃-! 푸스으-


두 덩어리째, 쓸데없이 큰 황갈색 똥이 봉투 안에 떨어졌다.

마지막 덩어리도 가스와 함께 순순히 나와 주었다.


다 나왔다. 해냈어.


“하아, 하아, 하아…”


아아, 내 똥은 왜 이리 큰 거야. 방귀는 왜 이리 냄새 나는 거야.

매번 그럴 필요는 없는데.


”와아아, 이연이 똥.“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두 번째네.“


“너무 가까이서 보지 마…!”

”냄새, 나잖아..!“


확산을 막아 줄 물이 없는 곳에 떨어진 내 똥은 정말 참기 힘든 냄새를 풍겼다. 구역질이 올라올 것 같았다. 그러나 유리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한껏 들떠서는 내 똥을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아아, 응가 냄새. 그때 냄새랑 똑같아.“

”아직 좀 추워서 김이 나네. 우후후, 이연아, 봐.“


정말로 방금 눈 내 똥에서 김이 풀풀 솟고 있었다.

똥 냄새가 퍼지는 게 눈에 보이는 것 같아 더 부끄러웠다.


이상해. 이상해.

기분이 너무 이상해.


이런 데서 봉투에 똥을 눠 버린 나도,

그걸 저렇게 들떠서 보고 있는 저 애도, 너무 이상해.


그녀가 파우치에서 여행용 티슈를 꺼냈다.


“아, 엉덩이, 내가 닦아도 될까?”


“절대 안 돼!”


“아쉬워라, 그러면 닦은 휴지라도 나 줄래?”

"이것도 안 된다고 하면 휴지 안 줄 거야."


"너...!"


“아하하, 농담이야. 자. 휴지 받아."


농담 같지 않았다. 유리는 다양한 패턴으로 나를 놀려댔다. 


그럴수록 내 부끄러움은 최대치를 향해 올라갔고,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아, 최고였어.“

”좀 짧아서 아쉽긴 했는데, 그래도…“ 

”이연이가 응가 하는 걸 이렇게 생생하게…!“


그러나 치솟는 수치심을 억누르고, 요구해야 할 것이 있었다.


”…됐지? 이제 지워 줘.“


”응?“


유리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또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 영상, 지워 준다고 했잖아.“

”내가 여기서, 으, 응가 하면.“


”…응?“

”내가 언제?“


“…!!”

”너가 분명히, 여기서 내가 응가 하면, 그거…“


“으으음…”

”지워 줄 수도 있다고는 했는데,“

”지워 준다고는 안 했어.“


무감정한 대답에, 뒤통수를 세게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구원의 손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나를 배신했다. 


”너, 너…!“

”그런 말장난으로…!“


화가 났다. 화가 나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면, 나는 왜 이런 곳에서 똥을 눈 거야?

저 애가 보는 앞에서, 방귀까지 크게 뀌면서….


검은 봉투에 쪼그려 앉아서… 엉덩이 드러내고, 꼴사납게…


그런 말장난에 속아서,

내가 너무 한심해.


또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주먹이 꽉 쥐어지고,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배어나올 정도로 세게 깨물었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거의 울지 않았는데…

이 애 때문에, 몇 번이나… 몇 번이나…


유리를 노려봤다.

울음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런 나를 비웃듯, 그 애는 다시 나에게 가까이 왔다.


그 애가 또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보았다.

코가 닿을 것만 같았다.


"......"


한참 뜸을 들이던 그녀가 입을 떼었다.


"이상하네."


"...."


"그렇게 창피했어? 싫었어?"


"...당연...하지...!"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야.

거짓말이 아닌데, 왜 말이 안 나오는 거야.


“이연아, 정이연. 아직도 못 받아들이겠어?”

“왜, 계속 싫은 척을 해?”


뾰족한 것이 가슴을 찌르는 듯 했다. 식은땀이 줄줄 났다.


그녀가 더이상 입을 열지 않기를 바랐다.

그 뒤의 말을 더 들으면 무언가 잃어버릴 것 같았다.


”너, 좋았잖아.“ 


더 말하지 마.


”나는 봤는데.“


더 말하지 마. 제발, 제발!


내 바람이 무색하게, 그녀는 거침없이 다음 말을 내뱉었다.


“너, 방금 응가 할 때 흠뻑 젖어 있었던 거.”

”나는 봤는데.“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이 애 앞에서, 똥을 누면서, 방귀를 뀌면서,

그런 더러운 짓을 하면서… 젖었을 리가…!


결국 난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흐윽, 윽, 으으….“

 

”후후후,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흑, 흑…“


”괜찮아. 이연아, 변태인 건 나쁜 게 아니잖아.“

”억지로 부정할수록, 너만 힘들어질 거야.“

”…이건 진심이야. 나도…”


“흑, 으윽…”


“하아, 아니다.”

“자, 이제 내려가자. 점심시간 다 끝나겠어.“

”아, 네가 눈 똥은 알아서 처리할게. 신경 쓰지 마.“


유리는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날 건물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가 된 기분,

그 애 앞에서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이연아.”

“내일 방과 후에, 여기서 또 보자.”


그 애는 또 그 은은한 웃음을 띄우고는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변태끼리, 또 놀자.”

”내일은, 내 거 보여 줄게.“


그 말을 끝으로, 유리는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두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나는 교실로 돌아가지 않고 조퇴를 했다.


집에 와서 혼자 한바탕 울고 나니 차분해질 수 있었다.


그 애의 말대로였다. 그곳에서 똥을 누고 다시 입었던 내 팬티는 차마 봐 주기도 어려울 정도로 푹 젖어 있었다.

나는 그 애 앞에서 배변하고 더할 수 없이 흥분했던 것이다.


물을 내리지 않았던 범인이 유리였다는 걸 알았을 때도,

유리가 똥 누는 소리를 듣고 냄새를 맡았을 때도,

유리의 설사 소리를 들으면서, 똥을 누며 자위를 했을 때도,


그렇게 흥분했던 것이다.


‘응. 변태야. 너랑 같은 변태.’


그 말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고 있었다.


맞다. 나는 유리의 똥과 방귀로 자위한 변태녀다.

나는 똥과 방귀로 흥분하는 변태녀다.


그 애는 나쁜 애일 수도, 어쩌면 사이코일 수도 있어.

하지만, 최소한 그 애는 틀리지는 않았어.


나는 틀림없이 유리를, 유리의 더러운 것을…


원하고 있어.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야 마음이 편해졌다.





3월 26일 화요일



아침에 일어나서 거울을 봤더니, 눈이 탱탱 부어 있었다.

최근 본 내 얼굴 중 가장 못 생겼다고 생각했다.


두세 명밖에 오지 않은 여유 있는 시간에 등교하여 내 자리로 가다가, 옆 자리의 유리와 눈이 마주쳤다.


유리는 자기 노트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더니, 그것을 내 쪽으로 내밀어 샤프펜슬로 톡톡 두드렸다.


‘와 줘서 고마워.’

‘안 오면 어쩌나 했는데’


그걸 읽은 나는 대꾸 없이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유리는 나를 보고 빙긋 웃었다.


방과 후 나는 유리가 기다리고 있을 옥상으로 올라갔다. 

어제보다는 발걸음이 가벼웠고, 곧 그녀가 보였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어제는 여유가 넘치던 유리가,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였다.


엉덩이에 한 손을 얹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게, 저건 분명…


“아아, 이연아.. 왔어?”

"으윽..!"


이거, 누가 봐도 큰 볼일이 급한 거잖아.


“…너 괜찮아?”


“그, 빨리 가자. 나 우유를 좀 많이 마셨는데…”

"종례, 때까지, 괜찮다가... 갑자기..."

“설사가, 샐 것 같아서…!”

“아앗..!”


뿌우웅-

뿌룩-


"아, 방귀가..."


그렇게 급하면 그냥 화장실에 가면 될 텐데.

이 아이는 정말 구제불능의 변태구나.


재빨리 유리에게서 열쇠를 빼앗아 자물쇠를 풀려 했다. 


유리의 엉덩이에서 나는 배탈 난 방귀 냄새가 너무 독한 나머지, 나는 열쇠를 자물쇠 구멍에 몇 번이나 더듬어야 했다.


문을 열고 옥상 위로 달려나간 유리는 또 자기 가방에서 무언가 꺼냈다. 이번에는 둘둘 말린 애견용 배변 패드였다.

…쓸데 없는 준비성이 놀라워.


”하아, 하아, 더 못 참겠어.“

”봐 줘. 이연아. 내가 응가 하는 거.“

”꼭, 봐 줘…!“


어제의 유리와는 너무 달랐어.

버튼을 눌러서 모드를 전환한 것 같았다.


특히 그녀의 눈빛은 어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같았다. 

시종일관 여유가 흐르던 눈웃음은 흔적도 없이, 쾌락만을 쫓는 짐승 같은 눈만이 남아 있었다. 


그 애는 상상 그 이상의 변태였다.


”알았으니까 빨리 누기나 해!“

“진짜, 적당히 변태여야지.”


”아흐윽!“


유리가 신음하며 팬티를 내렸고, 그와 동시에 젤 같은 설사 똥이 유리의 항문으로부터 세차게 분사되었다.


푸더더더더더더덕!

푸드덕! 푸덕-!


“흐읏, 하아-”

"흐으읍-"


쁘뤼이이이익-


황갈색 설사 똥 줄기가 패드를 때렸다.


얼마나 참았는지, 설사 똥 한 무더기가 나오자마자 마개가 빠진 것처럼 습기 찬 방귀가 터져나왔다. 엄청난 소리가 났다. 

엉덩이 사이에서 더러운 거품이 일었다.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광경에 저절로 눈이 찡그려졌다.

하지만 역시 내 아랫도리는, 또 흠뻑 젖어가기 시작했다.


“하아아, 아아아아, 기분 좋아…”


뿌더더덕-

푸직-


"하으으읏...!"


유리의 신음이 야하다.

유리의 새하얀 엉덩이가 야하다.

유리의 환희에 찬 얼굴이 야하다.


뿌루루루루룩-뿌웅! 

뿌우우웅-!


유리의 설사 냄새가 야하다.

유리의 방귀가 야하다.

유리의 묽은 똥이 야하다.


역시 나도, 유리와 같은 변태다.


뿌뤼리리릭! 프쉬익-


“하아아-”


피날레를 알리듯, 유리는 힘껏 큰 소리의 방귀를 뀌었다.


그러고 보니 나, 이 애의 똥은 몇 번이고 봤지만, 배변 장면을 보는 건 처음이구나. 


말도 안 되는 냄새,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도 안 되는 똥의 양. 


내가 자위를 하며 상상했던 유리의 배변 장면보다 몇 배는 더 더럽고, 냄새 나고, 동시에 자극적이었다. 


체질이 이렇다 보니 지저분한 것에 익숙한 나지만, 내 앞에서 그런 배변을 한 게 유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토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을까?


“하아, 하아…”

“닦아 줘…”


숨을 몰아쉬던 유리가 내 쪽으로 돌아 앉더니, 그렇게 말했다.


“…진심이야?”


“으,응. 엉덩이, 닦아 줘.”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누군가의 똥을 닦아 주는 게, 내 자식이 아니라 옆자리의 예쁜 여자아이라니. 말도 안 돼 정말.


나는 유리의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엉덩이의 끈적한 설사 똥을 닦아냈다. 휴지에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얼마나 화려하게 눴는지, 엉덩이 골을 닦아도 닦아도 휴지에는 끊임없이 걸쭉하게 갈색이 묻어 나왔다. 


내가 유리의 엉덩이를 꼼꼼히 닦는 동안, 그 애는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꼭 끌어안고 있었다.


차가운 인상의 유리지만, 역시 체온은 따스했다.


"하앗.."

"아읏...!"


날 안은 채 귓속에 불어 넣는 신음이 너무 야했다.

젖꼭지와 클리토리스를 만지고 싶어졌다.


"아...! 안쪽은...!"

꾸르르- 쿠르르르르-


"어, 이 소리...." 


“앗..! 미안…! 이연ㅇ…”

“손 떼!”

"아앗!"


푸지직!

뿌뤽! 뿌웅-


경고를 듣자마자 손을 뗐지만, 결국 내 손은 유리의 누런 설사 똥으로 범벅이 되었다. 갓 나온 똥의 열기는 따끈했다.


”미, 미안 이연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


유리가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입과 코를 가렸다.

부끄러워하는 유리는 조금 신선했다.


”가방에, 생수… 있으니까, 그걸로 씻자.“


”얼른 다 누기나 해.“


”으응…“


처음으로 부끄러움을 내비친 유리는 생각보다 귀여웠다. 내 손에 남의 냄새 나는 설사 똥이 묻었는데도, 이상하게 짜증이 나지 않았다. 짜증이 나긴 커녕, 그것마저도 야하게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그 손을 콧구멍으로 가져갈 뻔 한 것을 유리가 보지 못해서 다행이다. 그걸 봤다면 분명 질리도록 놀려댔겠지. 





유리가 설사를 워낙 격렬하게 뿌려 놓은 탓에, 우리는 뒷정리를 하는 데에 몇십 분을 들여야 했다.


설사 똥으로 가득한 패드를 접고, 패드 주변에 튄 똥을 휴지로 닦아냈다. 오물 묻은 쓰레기를 모두 봉투에 넣어 묶은 유리는, 학교 뒤의 쓰레기통에 그것을 멋지게 던져 넣었다. 


그 애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초등학교 때 농구를 했다고 자랑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뒷정리를 마치고, 우리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았다.


나는 짧은 소감을 말했다.


"...더러워."


"아하하. 너도 어제 똑같이 똥 눴으면서."


어느샌가 유리는 어제의 여유를 되찾았다.

어제는 무서웠던 그 애의 미소가, 오늘은 그냥 예뻐 보였다.


"그래도 난 얌전하게 눴잖아."


"나도 우유만 안 마셨으면 괜찮았을 텐데."


“…우유, 소화 못 해?”


“응." 


"근데, 왜 마셨어?"


"오늘 내 거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안 나오면 어쩌나 해서.”

“점심시간에 두 팩 사서 마셨어.”


어딜 봐도 보이는 쓸데없이 철저한 준비성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생각했던 신비주의 미소녀 유리는 어디 간 거야.


"후후, 정이연 웃었다."


“너 진짜 구제불능이구나…“


”아하하하.“

"사실, 그 녹음기에 응가 하는 소리 녹음할 때도..."


"유리야."


"응?"


"왜, 거기 똥 누고 물 안 내렸어?"


나는 묵혀둔 질문을 했다.


"응? 아아- 거기?"

"으음.... 뭐라고 말하지?"

"그냥...."


"그냥?"


"그냥 네 관심 끌고 싶어서."


그러자, 어이 없는 답변이 튀어나왔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 없어. 바보야? 머리 이상한 거 아니야?

관심을 끌고 싶으면 그냥 말을 걸라고!


'저 애가 쓰는 화장실에 똥 누고 물을 안 내리면, 저 애가 그걸 보고 내게 관심을 가지겠지?'라니.


이 세상 사고방식이 아니잖아.


“….말을 걸면 될걸.”


”후후, 나도 내 방식이 있는걸.”


”내 방식 같은 소리… 하아, 아니야.“

”근데… 왜 나야?“


”왜 이연이 너냐고?“


”응.“


”….너가 예뻐서.“


”어!?“


별안간 꽂힌 직구에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갑자기 그런 소리를 하다니. 반칙이잖아.


”빨개졌어. 아하하하하!“


”놀리지 마…“


”놀리는 거 아니야. 진심이었는걸.“

”그리고, 예뻐서 그런 것도 있었는데…“

”중학교 때 네 소문을 들었거든.“


”어…!? 내 소문?“


나, 그 정도로 유명인이었어!?

똥쟁이, 똥녀 별명이 중학교 때까지 잊히지 않았던 거야!?


그럴 수가…


”혹시, 그… 똥쟁이 같은 거…?“


”후후, 그것도 들었고. 의자로 네 명 병원 보낸 얘기도.“


”윽…!“


”너 그걸로 되게 유명했는데, 몰랐어?“

”체어샷 정이연, 모르는 사람 없었는데.“


그 흉악한 별칭은 뭐야, 대체…!

으, 친구가 안 생겼던 이유는 확실히 저거였구나.


”으음, 나는 똥쟁이 쪽에 더 관심이 가긴 했어.“

”어떤 애인지 궁금했는데, 이번에 같은 반 돼서.“

”처음 봤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관심이 더 가더라고.“


”그러니까 놀리지 말라니까…“


”그러니까 놀리는 거 아니라니까.“

”그런데 솔직히 네가 조금 무섭긴 했어." 

"괜히 말 걸었다가 의자로 맞을까 봐.“


”야, 내가 무슨…“


”후후, 이건 농담 맞아.“


유리가 입을 가리고 쿡쿡 웃었다.


”사실은 그때까지도 그냥 관심이 가는 정도였는데,"

"도서위원 뽑을 때, 너한테 확 꽂혀 버려서.“


”어? 그때?“


"알았거든. 너가 소문이랑 다르게 착하다는 거."


"응? 나, 그때...."


”너, 그때 뽑히고 나서 선생님 위로했잖아. 그것도 웃으면서.“

”너도 도서위원 하기 싫었으면서.“


“….”


”정이연이 무지하게 착한 애라는 거, 그때 알았어.“


”…그래서 나한테 관심 받고 싶어서 그 화장실에 응가 하고.“

”물 안 내리고, 너가 눈 똥 보여 주고?“


”응. 네가 나한테 말 걸어 줄 때까지 계속 그럴 생각이었는데,“ 

“흐흐, 내 응가로 자위 해 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네.”

”이연이가 이런 변태일 줄은, 몰랐지.“


”으읏…!“


“변태. 변태래요.”

“내 똥 냄새 맡고 젖었대요.” 

“응가 하면서 자위 했대요.”

“아하하하.”


유리가 나를 놀리며 내 어깨를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댔다.

솔직히, 싫지 않았어. 그 애가 즐거워 보이는 것도.


유리뿐 아니라, 나도 내가 이런 변태일 줄은 몰랐다.


변기에 그대로 남아 있던 엄청난 똥이 유리의 것이라는 걸 알기 전에는, 똥과 방귀는 그냥 더러운 거였으니까. 


유리의 배변을 상상하다가 아랫도리가 푹 젖어버리기 전까지는, 그런 걸로 흥분할 수 있다는 것도 몰랐으니까.


어제까지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막상 받아들이고 나니 마음이 너무 편해져서 내 자신에게 놀랐어.


”다 너 때문이야. 이렇게 된 거.“


”그래도, 오늘 기분 좋았지?”


“….”

“응.”


이런 나도 괜찮을까.

유리 같은 중증 변태라면, 나 같은 애도 품어 줄까?

나는 앞으로…. 


“그, 이연아, 나…“


”응?“


”바, 방귀 뀌어도 될까?“

”아까부터 배가 좀…“ 


유리가 볼을 살짝 붉히며 멋쩍게 웃었다.

내 사고가 또 정지했다.


…얘 뭐야?

한 시간 전에 내 앞에서 배변 패드에 설사 한 애가,

내 관심 끌겠다고 그 화장실에 똥 누고 물도 안 내린 애가,

이제 와서 방귀 뀌는 게 부끄러워?


“…진짜 알 수가 없다.”


뿌오옥-

푸스으으-푸슷-


“아, 나와 버렸다. 미안해.”


”..이럴 거면 왜 물어봐?“

“으에엑, 냄새. 설사 냄새 나. 엄청 구려.”


”그렇게까지 구리진 않은데…“


우리는 한참 수다를 떨고, 옥상을 내려와 교문에서 헤어졌다.


유리는 손을 작게 흔들며 ”내일 또 놀자“라고 말했다.


그 애는 심성이 나쁜 아이도, 사이코도 아니었어.

그냥 조금 이상한, 아니 많이 이상한 여자아이일 뿐이었어.


…역시 영상을 찍고 협박까지 한 건 너무했지만.

그냥 말을 걸어 줬으면 편했을 텐데.


유리,

유리...


나, 지금 그 애와 키스하는 상상을 하고 있나 봐.

그 애의 엉덩이를 주무르는 상상도.


내일도 유리랑 만날 수 있어.

흥분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