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마침내 고대하고 고대하던 말을 내뱉자 그녀는 무너지듯 쓰러진다. 그녀의 모습에 당신은 무언가 약간의 구역질이 올라오는것도 같지만 그와 동시에, 함께 몰려오는 강렬한 해방감을 느낀다.

그녀는 괴성을 내지르며 당신에게 달려들지만, 당신의 곁에서 대기하던 독수리족 여자들이 그녀의 양어께를 붙잡고 밀쳐낸다. 이럴때는 힘없는 인간족이라는게 다행이다.



당신은 눈을 감고 그녀를 처음 만났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녀의 처절한 절규가 마치 배경음악처럼 당신의 사고 저변에 깔린다.




대학가를 거니는 당신은 새내기의 쾌락을 기대하며 변변한 술집을 오간다. 길가의 술집에서 흘러나오는 몽환적인 음악이 귀를 적시고, 가장 좋은 옷을 걸친 남자들과 가장 좋은 향수를 입은 여자들이 길가를 거닌다. 청춘의 푸르른 기억의 한 장이다.


당신은 친구들과 막 헤어진 참이다. 얼큰한 취기가 기운을 적시고, 뭐든지 해낼 수 있을것만 같은 자신감이 마음을 가득히 채운다.


그렇게 길을 거닐던 당신은 골목의 어느 길가에 문득 눈길이 간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어느 어두컴컴한 골목 어귀, 강아지귀를 쫑긋거리는 수인족 남자 몇명이 키득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누군가를 에워싸듯이 서있다.


당신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자세히 보니, 그 강아지 수인족 남자들이 둘러싼 원의 중심 한가운데에는 검고 흰 줄무늬의 털 귀가 불안한듯 쫑긋거리고 있다. 당신은 그 줄무늬만으로도 누군가인지 알 것만도 같다.

 

스컹크다.


검고 흰 복슬거리는 귀 아래로 시선을 내리니 눈을 내리깔고 움찔거리는 여자의 귀여운 얼굴이 당신의 눈에 보인다. 당신은 그녀를 자세히는 모르지만  대학교를 통틀어 스컹크족이 몇 명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 

당신은 술기운인지, 혹은 20대 남자 특유의 되도 않는 자신감인건지 강아지 수인들 쪽으로 다가가며 소리지른다.


"유치하게 뭐하는거야 이 자식들아!"


당신의 시끄럽고 짜증나는 외침에 강아지 수인들이 당신을 잠시 주목하더니


"뭐야..."


이내 투덜거리며 당신을 비켜간다.


"괜찮으세요?"


그것이, 당신과 그녀의 첫 만남이었다.



당신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붙잡고 그녀의 앞에 선다. 그녀는 그녀 특유의 귀여운 올려다보기로 당신의 눈을 응시한다. 꽤나 오랫동안 그녀를 만났지만, 아직도 당신은 그녀의 흰자위와 정수리에 약하다.


그녀는 결심한듯이 윗입술을 깨물고 당신의 앞에 서서 말을 내뱉었다. 


"전 더러운 스컹크에요. 냄새나는..."


"그래도, 제가 좋으신가요?"


당신은 반쯤은 웃음을 섞어서 대답했다.


"전 후각이 진짜 약해서요, 냄새는 잘 못 맡아요"


당신의 바보같은 대답에 그녀는 비웃음을 터트린다. 비웃음은 이내 웃음이, 웃음은 폭소로 변한다.


그렇게 만남은 참으로 한심하게 시작했다.


그녀와의 처음은 행복했다. 그녀는 배우자에게 방귀로 마킹을 하곤 하는 스컹크족 본래의 본능을 최대한 억눌렀고, 당신은 그녀를 더는 못할 정도로 사랑해주었다. 사랑을 주고 또 주었다. 그뿐이었다.


하지만 연애가 지속되며, 그녀는 점차 자신의 본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덤으로, 그녀는 당신과 그녀 사이의 힘의 격차를 꽤나 즐기게 된 듯 했다.



어느샌가 매일 밤마다, 당신은 그녀를 껴안고 사랑을 속삭이는 대신에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 아래에 깔려서 지독한 마킹을 온몸에 당하는것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어느새 당신의 친구들은 당신을 떠났다. 후각이 예민한 개들은 당신을 떠나는걸 넘어서서 아예 당신을 혐오했다.


아무도 스컹크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당신은 뒤늦게야 교훈을 얻었다. 적어도 당신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당신은 점차 고립되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어쨌건 사랑하는 스컹크 여자친구가 있었으니. 하지만 점차 그녀 또한 당신에게 폭력을 사용하기 시작하며 상황이 변했다. 가장 좋은 향수를 입고 향기로운 냄새로 자신을 감싸던 그녀는 점점 자신의 본능을 숨기지 않고 당신에게 발산하기 시작했다. 점차 그녀에게서는 향수보다는, 방귀의 향이 강해졌다.


당신은 바닥에 둥글게 누워 거숨을 쉬려 거칠게 발작한다.  하지만 매번 가슴을 피고 오므릴때마다, 신선한 산소보다는 당신의 여자친구의 지독한 방귀가 당신의 폐를 채운다.


하지만 당신이 고통속에서 발작하건 말건. 그녀는 엉덩이를 몇번 털고는 느긋하게 주방으로 향한다. 당신은 당신 자신이 마치 쓰레기처럼 버려졌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녀는 당신을 사랑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욕구를 해결할 존재 정도로만 여기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마침내 당신은 이별을 통보했다. 그녀가 또 폭력을 쓰려할 수도 있으니 이미 보호센터에 연락은 끝마친 뒤였다.


당신은 저 멀리서 쓰러져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스컹크족을 뒤로 하고, 대학 건물로 향한다. 나쁘지 않은 이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