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scottoberg/74646780


원래는 이거 2차창작을 써볼까 했다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냥 오리지널 캐들로 바꾼 글.

대충 비슷한 일을 겪은 뒤니까 이거 읽고 오면 이해가 빠를듯

로봇 파일럿 소재는 전에 이미 썼으니 이번엔 폴아웃 같은 데에 나오는 탑승형 강화복으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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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힘으로 가족들의 집을 지키고 우리의 고향을 안전하게 만듭시다!"


선전방송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었다.

알테라 행성계 제2행성, 플레아.

비교적 최근에 개척된 곳이지만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은 적도 지방뿐이다.


그 이유는, '벌레'다.

이곳에는 이미 벌레들이 먼저 살고 있었다.

과학자들이 밝혀낸 바로는 그들 역시 똑같이 우주에서 건너온 외계종족이니, 두 이방인들이 같은 땅을 두고 싸우는 것이다.

열에 약한 탓에 처음엔 이주해온 인류가 승기를 잡았으나 이곳 플레아는 여름이 짧다.

따뜻한 적도를 제외하면 1년 중 절반이 겨울인 플레아에서 인류는 영역을 넓히기 힘들었다.


그래서 이렇게, 겨울이 지나가고 나면 전문 훈련을 받은 벌레사냥꾼들이 벌레 영역으로 들어가 둥지를 소탕하고 소각하는 일이 매년마다 반복된다.

겨울엔 다시 둥지들이 확장되지만 필사적인 노력으로 인류 영역은 점점 확장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 플레아에서 태어나고 플레아에서 자란 한 명의 소녀가 사냥꾼이 되기 위해 훈련소에 왔다.


쿵!


"거기 신입, 비켜 봐."


갑자기 묵직한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스피커로 말했다.


"어이쿠, 귀여운 애가 왔네."


강철 거인이 말했다.

파워드 슈트. 누구든 이것을 입으면,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것을 '탑승'하면 누구든 2.5m 크기의 거인이 된다.

인간의 신체 움직임을 그대로 재현할 수 있고 슈트의 촉감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슈트 덕분에 겨울의 추위 속에서도 여름의 더위 속에서도 힘겨운 벌레 사냥이 수월해졌다.


"아, 안녕하세요! 오늘자로 훈련소에 전속받은..."

"인사는 나중에 하고, 가서 등록부터 서둘러."

"네!"


강화복을 입은 사람은 목소리로 봐선 여성일 것이다.

슈트 곳곳의 흠집은 숱한 전투의 역경을 보여주고, 어깨에 그려진 엠블럼과 킬마크들은 그녀가 베테랑임을 나타낸다.

사냥꾼은 그 힘겨운 사투 탓에 남성이 여성보다 많다.

같은 여성 대원을 만난 소녀는 감동받았다.


"아차, 이럴 때가 아니지."


감동에 젖어있던 소녀가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큰 기지에서 금방 길을 잃고 헤매다 도착한 곳은 커다란 중장비가 분주히 움직이는 격납고.

소녀는 급한대로 근처에 있던 정비원에게 말했다. 마침 정비원 역시 여자였다.


"저, 저....실례합니다."

"응? 아, 신입?"

"네. 등록 절차를 하러 왔는데, 어디인지 모르겠어서."

"등록 절차도 안 했다고? 그거 그냥 정문에서 바로 할 수 있는데, 못 봤어?"

"그게, 드디어 여기에 왔다고 생각하니 너무 신나서 무작정 달리다보니...."


머쓱해하는 소녀를 정비원이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면 일단..."


그 순간.


애앵!! 애앵!!


귀를 찌르는 경보 소리가 울렸다.


"수송선이 들어온다! 준비해!"


나이 든 남자가 소리치자 정비원들이 분주히 움직였다.

격납고 문이 열리고 굉음을 울리며 커다란 수송선이 허공을 날아왔다.


쿠웅!!


지지대에 고정된 수송선이 천천히 도크에 안착했다.

그리고 문이 열렸다.


철컥, 철컥, 철컥, 철컥.


금속이 땅을 두드리고 파워드 슈트들이 줄지어 걸어나왔다.


"신입이랬지? 오자마자 이 기지 명물을 보겠는데?"

"네?"

"저 녀석들은 지금 북쪽 지역에 있는 제타급 둥지를 소각하고 오는 길이야."

"제, 제타급이요?"


둥지는 그 규모에 따라 등급이 매겨진다. 제타급이면 굉장히 큰 둥지다.

그런 곳을 부수고 오는 길이라면 대체 얼마나 뛰어난 사냥꾼들일까?


"그리고 봐, 저기."

"네?"


정비원이 가리킨 방향에 이질적인 존재가 보였다.

남들은 오와 열을 맞춰 걷지만 딱 한 명, 다른 사람들과 거리를 둔 사람이 보였다.

색깔도 남들과 다르게 도색되어있다.


"저 녀석이 저기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녀석이야. 오늘의 성과는 어디보자.....혼자 300이 넘는군."


PDA를 확인한 정비원이 말하자 소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삼백? 혼자 300마리를 사냥했다고요?"

"그것도 절반 이상이 중형과 대형 개체지."

"저 사람 이름이 뭔가요?! 코드명은?!"


소녀가 기대에 가득 찬 눈빛으로 물었다.

그 눈빛을 보며 정비원이 쓴웃음을 지었다.


"카티아 프라우다. 코드명은, 아리아드네."

"아리아드네?! 그, 그 소문으로만 듣던?!"


인터넷에서 유명한 사람이다.

아리아드네. 이상할 정도로 군에서 정보를 밝히지 않지만 격전지마다 참전하고 수많은 전과를 올리는 미지의 에이스.

설마 그 소문의 에이스를 마주하다니, 소녀는 감동이 벅차올랐다.

하지만 의문이 들었다.


"그, 그렇다면....그렇다면 왜....?"


소녀는 혼란에 빠졌다.

그런 엄청난 인물의 슈트가 불가능한 색으로 도색되어있으니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샛노랗다.

어깨에 부대마크도 없다.

그것이 의미하는 건 단 하나.


슈트의 주인은, 아직 훈련 절차도 다 통과하지 못한 '훈련생' 신분.

이른바, '병아리'이다.


"잘 지켜봐. 이제 이유를 알 테니까."

"네....?"


철컥, 철컥....


어딘가 불편한 걸음걸이로 걸어간 병아리 슈트가 거치대에 몸을 기대고, 천천히 분리를 시작했다.


안에서 나온 사람은 아름다운 금발 머리의 여성.

그 미모에 저절로 시선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전투가 격했던 걸까, 땀에 젖은 모습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새하얀 바디슈트가 폭발적인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파워드 슈트와 일체화되기 위해서 탑승자는 반드시 연동 바디슈트를 착용해야한다.

피부와 달라붙는 재질은 아니고 고탄력 섬유이지만 충분히 몸의 라인이 드러나고 있다.

슈트의 섬유 속에는 미세한 센서와 연결장치가 피부의 신경과 연결되어 파워드 슈트의 세밀한 감각을 직접 느끼게 해준다.

아름다운 미모에다 아름다운 몸매까지 강조되는 모습에 도저히 시선을 뗄 수가 없다.

게다가 격추수도 혼자 압도적 1위.

말 그대로 선전영화에서 튀어나온 듯 동경의 대상 그 자체이다.


"저런 사람이, 어째서 아직도 병아리인 거죠? 전공을 살리기 위해 진즉에 정식 임관했어야 하지 않나요?"

"그러지 못했어."

"왜죠?"


소녀가 묻자, 정비원이 씁쓸하게 웃었다.


"훈련시험을 딱 하나, 통과하지 못했거든."


저런 베테랑이 통과하지 못하는 훈련이라니, 대체 무엇이길래?

소녀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었다.

정비원은 한숨을 쉬며 다시 한 번 병아리 슈트를 가리켰다.


"......"


슈트의 주인은 이상하게 말이 없다.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않고, 조용히 슈트가 분리되는 과정을 기다리고만 있다.

그리고 슈트의 점검을 위해 담당 정비사가 조용히 그녀의 뒤로 걸어갔고, 이후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정비사가 쓴웃음 지으며 코 막는 시늉을 하고 고개를 가로젓자 구경꾼들 사이에서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연민과 조롱의 시선을 받으며, 마침내 병아리 슈트가 완전히 열렸다.


'어....?'


분명 금발 여성의 바디슈트는 떼 하나 타지 않은 순백의 하얀색이다.

무언가 얼룩이 묻으면 누구나 알아챌 정도로.

다소 땀에 젖긴 했어도 여전히 하얀빛인 상반신은 폭발적인 몸매를 야릇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아래, 하체가 열리자 하얀 도화지 위로 강하게 드러난 색깔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


기다렸다는듯이 금발 여성이 앞을 부여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몸매가 드러나는 바디슈트 차림으로 달리는 모습이 이상야릇하지만, 지금 그런 건 신경쓰이지 않는다.

신경쓰이는 것은 바로, 그녀의 하체.

고간부위부터 다리까지가 온통 샛노랗게....아니, 노랗다 못해 짙어져 거의 갈색에 가깝게 얼룩이 져있다.

그것은 마치....


"이제 알겠지?"


정비원이 말했다.

그리고 바로 소녀의 옆을, 금발 여성이 앞을 부여잡은 채 지나쳐갔다.

흔들리는 뒷모습을 바라보면 엉덩이에도 온통 젖은 얼룩이 가득하다.

그리고 그 뒤늦게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어째서....?'


소녀는 믿을 수 없었다.

하지만 뒷모습을 비웃는 정비반 모두가 익숙하다는 것처럼 행동하고있다.

소문의 에이스, 아리아드네의 병아리 슈트를 바라보았다.

단단하고 강인한 슈트의 활짝 열린 안쪽이 온통, '소변'으로 젖어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


소문이 자자한, 묵묵히 성과를 올려나가는 미지의 영웅 아리아드네가, 오줌을 지리고 돌아왔다.

그런 걸 여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자, 그럼 잠깐 구경을 가볼까?"

"네?"

"내기를 했거든."

"내기라니, 설마.....아, 아리아드네가 오줌을 쌀지 말지로 내기를 했단 건가요?"

"어? 아니, 그런 건 내기해봤자 아무도 반대쪽에 안 걸어서 의미가 없잖아. 이건 말이지..."


정비원은 다시 조롱의 눈빛으로 웃었다.


"오줌을 '몇 번' 쌀지로 내기한 거야."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드네의 흔적을 따라가는 정비원의 뒤를, 소녀도 홀린 것처럼 뒤따랐다.

여자화장실 앞에 흩뿌려진 액체가 지저분하게 널브러져있고, 물웅덩이가 유일하게 잠겨있는 개인칸막이 안쪽까지 흘렀다.

입구를 나온 정비원이 마지막 배려인지 화장실 문을 닫아주곤 말했다.


"오늘은, 3번이로군."

"푸하하하! 또 맞췄네."

"젠장...."


희비가 엇갈리는 반응이 복도를 가득 채웠다.


'....여긴, 이상해...'


소녀는 자신이 대체 어떤 곳에 오게 된것인지도 알 수 없어졌다.

분명한 것 한 가지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뒤뚱거리며 복도를 달리는 금발 여성의 노랗게 물든 옷차림은, 마치 서툴게 땅을 달리는 병아리와 같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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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이이이이이..... 

쪼르르르르르르.....!


화장실 변기칸에서, 한 여성이 새하얀 변기 위에 앉아 일을 보고 있었다.


".....후, 후우...."


부르르!


힘이 풀린 몸이 저절로 떨리자, 자신도 모르게 시원하다는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이름은 카티아 프라우다.

이 기지의 훈련병이며, 나이는 29세.

일반적이라면 지금쯤 위관 직급을 배정받았을 나이이다.


쪼르륵, 쪼륵......쪼륵.


그리고 지금은 이렇게, 벗지 못한 바디슈트를 입은 모습으로 얼룩 하나 없던 변기 위에 주저앉아 슈트의 천 너머로 소변을 싸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후우....."


처음 훈련병이 된 뒤로 어느덧 7년. 지금은 훈련생 부대의 대장.

이 기지에서 가장 많은 실전경험과 전공을 자랑하는 그녀는 이 기지의 남녀노소 누구나가 인정하는 '병아리 대장님'이었다.

언제나 병아리처럼 노랗게 물든 엉덩이를 흔들며 화장실로 달려가는.


7/19 체크리스트

출격: O

귀환: O

부상: X(이번달 19연속 갱신)

슈트 상태: 세척, 탈취 필요


(사용자 전용 항목)

이번 주

7/13 3회

7/14 1회

7/15 1회

7/16 3회

7/17 2회

7/18 2회

7/19 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