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유햇살, 나이는 16살.

 음... 4살? 5살?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는 모임으로 아침 일찍 나가시고 아빠랑 내가 집에 같이 있었을 때 일이다. 낮잠자고 일어난 이후였나? 함께 TV를 보고 있던 중 아빠가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빠는 표정이 싹 바뀌더니 밖으로 황급히 나가버렸다. 나만 집에 두고. 무서웠다. 작은 토끼 인형을 끌어 안고 큰 곰인형의 배에 몸을 기대도 넓은 집 안에서 무서움이 떨쳐지지 않았다. 아직 더위가 꺾이지 않아 땀은 뻘뻘 났는데 피부는 차갑다 못 해 오싹했다. 다른 인형을 하나 더 가져와 눈을 가리고 한참을 벌벌 떨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눈을 가린 인형이 눈물 콧물로 범벅되고 있던 중 아빠가 돌아왔다. 나는 아빠에게로 울면서 달려가 와락 안았고 아빠도 나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지만 그때 그 순간은 기억에 또렷이 남는다. 가까이에서 본 아빠 얼굴은 눈물자국이 있었고 아빠 손은 서늘했다. 아빠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엄마는 그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빠에게 엄마는 언제 돌아오냐고 묻고 싶었지만 묻지 않았다. 나는 혼자서 해야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아빠는 예전보다 엄격하고 단호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매일 평소처럼 어린이집에 갔다 왔고 아빠를 보면 언제나 웃었다. 아빠도 많은 것을 혼자 하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았으니까.

 

 그러다 중학교 3학년 첫 학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됐던 날 저녁, 나는 새엄마가 생겼다. 스물... 몇 살이라고 하셨나? 거기에 의붓여동생도. 나이는 8살. 초등학교 입학할 나이였지만 사정이 있어 며칠 있다가 입학할 예정. 여동생의 이름은 이별빛. 음... 딱 듣자마자 참 예쁜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새엄마와 의붓여동생을 처음 만나는 날, 여동생의 붙임성에 기가 빨렸던 게 생각난다. 여동생은 나를 보자마자 뛰어 오더니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마구 말을 걸었다.

 

 그런데 의붓여동생의 모습은 다른 사람과 조금 달랐다. 귀가 머리 양 끝에 붙어 있었고 검정 바탕에 흰색 줄무늬 털이 복슬복슬했다. 그리고 엉덩이 쪽에는 마찬가지로 그런 줄무늬 털이 북실한 꼬리가 있었다. 마치 스컹크 같은...? 크기도 커서 쭉 펼치면 여동생의 상체를 모두 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여동생은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우리 아빠랑 재혼을 했다면 어린 나이에 분명 아빠와 이별한 것일텐데, 거기다 외형도 달라 사람들의 시선도 많이 받을텐데 전혀 상관 없이 매일매일 밝게 살아가는 모습이 정말 멋지다고 생각했다.

 

 그런 여동생과 어울리면서 나도 웃음이 생겼다. 우리는 붙어 있는 시간은 뭐든 함께 했다. 우리는 함께 밥먹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았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별빛이와 같이 있던 시간이 너무 행복했다. 별빛이는 변함이 없었다. 처음부터 나를 너무 좋아해주었다. 우리는 얼마 안 있어 남매이자 친구가 되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별빛이의 동물귀와 꼬리는 갈수록 오히려 매력 포인트로 느껴졌다. 별빛이 머리를 쓰다듬으면 부드러운 귀 주위 털이 손을 간지럽혔다. 꼬리털 정리를 위해 매일 빗질을 해야 하지만 꼬리털의 푹신함과 빗을 때의 부드러운 감촉이 정말 좋았다. 거리를 걷다가 가끔 꼬리털이 뻗힐 때를 위해 나는 빗을 가지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별빛이도 털 손질하는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았다. 가끔씩은 아직 털이 예쁜 상태인데 빗을 들고 내게로 쪼르르 와서 손질해달라고 어리광 피운 적이 있을 정도니까.

 

 별빛이가 입학한 후에도 학교 마치면 모든 시간을 함께 했다. 별빛이는 잘 때 말고는 방에서 나와 나랑 같이 있었다. 나도 별빛이랑 그저 같이 수다를 떨어도, 그냥 같이 거리를 걸어도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 한번씩 별빛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내게 자랑했다. 학교에서도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 나까지 기분이 좋았다. 별빛이는 항상 웃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면 나도 행복해졌다. 이러한 행복이 계속될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갈수록 별빛이의 얼굴이 말라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 움직이는 것을 힘들어했고 예전만큼 웃어주지 않았다. 나는 걱정이 되었다.

 

“혹시 학교에서 무슨 일 있어?”

 

“아... 아니야!”

 

“그냥 나한테만 말해줘. 누가 괴롭힌다거나...”

 

“그런 거 아니라니까!”

 

“아니면 고민이...”

 

“그만해.”

 

 별빛이는 딱 잘라 말했다. 하지만 표정은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단호했던 말과 달리 얼굴은 빨개져 있었고 입술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래. 나에게도 숨기고 싶은 게 있을 수 있지’라고 생각하려 했지만, 뭔가 있다는 것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별빛이는 여전히 웃는 얼굴을 유지했다. 하지만 나는 별빛이가 웃는 얼굴로 있으려 애쓴다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 안타까웠다. 어린 나이에 투정 부려도 되는데, 고민이 있다면 내게 다 털어놓아도 되는데. 나도 진심으로 고민을 같이 슬퍼할 수 있는데. 만약 누군가가 괴롭히고 있는 거라면 걔를 같이 미워하며 언젠가 참교육해줄 수 있는데...

 

‘내가 그 정도로 믿을만한 새오빠는 아니라는 건가?’

약간 섭섭한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다음 날,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더니 집이 허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내게로 달려와 와락 안으며 마중나와야 할 별빛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집을 구석구석 뒤져보았지만 별빛이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가방만 던져두고 밖으로 나가 정신 없이 별빛이를 찾았다. 놀이터, 골목과 같이 함께 갔던 장소는 모두 뒤져보았다. 하지만 별빛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더 이상 별빛이를 볼 수 없을 것 같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내년에는 고등학교 들어갈 남자인데 갑자기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울면서도 별빛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거리를 계속 뛰어다녔다.

 

그러다 뒷산으로부터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뿌부부와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나무 쓰러지는 소리, 새들이 날아가는 소리가 따라 들렸다. 본능적으로 별빛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뒷산을 향해 정신 없이 달렸다. 달리는 와중에도 굉음은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놀라 산 아래로 도망치고 있었고 오직 나만 인파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소리의 근원지는 등산로가 아닌 곳에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가파른 경사길을 거친 풀숲을 파헤치며 한참을 올라갔다. 그러다 마침내 별빛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뿌리째 뽑혀있는 나무들 사이에서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에 나는 힘들었지만 별빛이를 향해 뛰어갔다.

 

나는 큰 소리로 별빛이를 불렀다. 그러나 별빛이는 당황하더니 엉덩이를 붙잡았다.

 

“오지 마!!!!!!”

 

“별빛아 위험한데 왜 그래? 오빠가 갈게.”

 

“오지 말라니까!! 아앗?!!”

 

뿌바바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별빛이가 비명을 지른 직후 나는 지금껏 굉음이 무엇이었는지, 또 별빛이가 왜 오지 말라고 했는지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별빛이가 두 손으로 엉덩이를 꽉 막아도 방귀는 손 사이를 비집고 분출되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소리에 나는 귀를 손으로 막았다. 그럼에도 고막이 터질 것 같은 굉음이 들렸다. 별빛이 뒤에 이미 뽑혀 있던 나무는 방귀를 타고 세차게 날아갔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방귀소리는 메아리치며 증폭되어 갔다.

 

한참 후에서야 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고 어느새 잠잠해졌다. 아직 별빛이의 방귀가 채 멎지 않았지만, 나는 별빛이를 향해 달려갔다.

 

 별빛이에게 가까이 가자 엄청난 악취가 함께 났다. 강렬한 냄새에 맡을 때마다 코 끝이 찡할 정도로 피가 몰리는 게 느껴졌다. 입으로 숨을 쉬어도 코로 올라가는 약간의 냄새가 너무 힘들었다. 결국 전진하지 못하고 주저앉은 그때, 별빛이가 내게로 달려왔다.

 

 별빛이는 나를 낑낑거리며 조금이라도 거기서 먼 곳으로 옮기려고 애썼다. 그러면서 그냥 모든 걸 비밀로 해주면 안 되냐는 한 마디만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별빛이도 누구에게나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을 수 있겠지’,

‘나는 거기에 굳이 궁금해하지 말아야지’ 같은 생각을 끊임없이 되뇌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오빠로서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나도 꿈을 꾸었다고 생각하려 했고 이후에는 평소처럼 행동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날 이후, 별빛이를 보면 뭔가 무서워졌다. 그때 눈앞에서 본 별빛이의 방귀 위력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갑자기 별빛이의 동물귀와 커다란 꼬리도 이상하게 여겨졌다. 별빛이는 계속 웃으며 말을 걸고 내 주변을 맴돌았다. 나도 최대한 예전처럼 대하려고 애썼다. 예전만큼 텐션이 나오지 못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별빛이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점점 서운함이 얼굴에 드러나는 것 같았다. 별빛이는 점점 방에서 안 나오는 시간이 늘어났다. 우리는 점점 서먹해지고 있었다.

 

 유난히 아빠가 늦으시던 날, 나는 늦은 저녁까지 내 방에 박혀 나오지 않고 있었다. 별빛이와 새엄마랑 함께 저녁을 먹었지만, 별빛이하고는 대화를 한마디도 섞지 못했다. 나도, 별빛이도 각자의 방에 틀어박혀버렸다. 나는 내 방에서 공부나 게임을 하려고 했지만 그 어떤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러다 물이라도 마시기 위해 의자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왔다.

 

“햇살아.”

그때, 식탁 의자에 앉아 계셨던 새엄마가 나를 불렀다.

 

나는 새엄마를 마주하고 식탁 의자에 앉았다. 새엄마는 조금 뜸을 들이다 말씀을 하셨다.

 

“햇살아, 요새 참 고민이 많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 햇살아. 할 말이 있어.”

 

“나중에 얘기해요.”

 

“아니, 별빛이에 대한 건데? 물어볼 게 많지 않아?”

 

 나는 새엄마와의 시선을 피하는 것을 그만하고 오히려 새엄마의 눈을 꼿꼿이 쳐다보았다. 새엄마의 딱딱한 표정으로 하는 말이 한참을 이어졌다.

 

 내용은 충격이었다. 별빛이는 사실 100% 과학으로 탄생한 스컹크와 사람 사이 키메라였으며 새엄마는 연구원 중 한 명이었다는 것. 별빛이는 엄청난 악취의 방귀를 대용량으로 만들도록 설계되었다. 그리고 이를 채집해 전 세계 동시다발적 테러로 혼란을 야기하고, 높으신 분을 협박해 원하는 사상을 실현시키겠다는 것이 이 단체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별빛이는 철저히 개발 단계에서부터 모든 연구원에게 순종하도록 유전자 배열, 신경 조작, 세뇌를 시켰다. 별빛이의 웃음기 많고 낙천적인 성격도 다 설계였다. 그러다 1년 전, 완전한 복종을 위한 마지막 프로젝트가 시행되기 직전, 새엄마는 죄책감에 못 이겨 별빛이와 함께 연구소를 탈출했다. 원래는 별빛이로부터 언니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었지만 탈출 후에는 엄마라 부르도록 단단히 가르쳤다. 그리고 신분을 숨기며 과부로 위장하며 살아왔다.

 

 새엄마는 별빛이가 행복하길 바랐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별빛이가 해달라는 것은 모두 해주며 별빛이가 삶을 즐겼으면 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깊은 친분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 사람을 찾던 중 우연히 나까지 찾게 된 것이다.

 

 새엄마는 나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내 과거, 나의 행동을 모조리 분석했다. 독립적이고 스스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 그러면서도 어릴 때부터 아빠의 마음을 헤아렸을 만큼 이타심 강한 성격. 새엄마는 나를 별빛이의 오빠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우리 아빠에게 접근했고 아빠와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전 그냥 소모품 정도였어요?”

 

“...”

 

“그리고 저희 아빠와 결혼한 것도 그저 계획 중 하나?”

 

“처음에는 그랬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해줘. 나는 너도, 그리고 너희 아버지도 지금은 진심으로 사랑한단다.”

 

“역겨워요.”

 

“...”

 

“아줌마가 저의 새엄마라는 게 역겹다구요.

차라리 얘기하지 말지, 왜 이런 말을 하신 거에요?”

 

“꼭 알았으면 해서...”

 

“아니, 됐어요. 제가 그냥 말을 잘못했네요. 그냥 갈게요.”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내가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새엄마는 갑자기 내 이름을 불렀다.

 

“햇살아.”

 

나는 새엄마를 등진 채 멈춰섰다.

 

“앞으로도 우리 별빛이를 잘 부탁해.”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마세요.”

 

“내일 아침부터 잘 챙겨줄 수 있지?”

 

나는 몇 초간 가만히 있다가 그대로 방문을 닫아버렸다.

 

 이후 몇 시간이 흘러 밤이 늦었는데도 이상하게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다. 밤 3시, 나는 침대에 누워 잠을 자려고 해도 도저히 잘 수 없었다. 그냥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에 스탠드 불만 키고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배신감 때문이었다.

 

 나는 예전에 새삼, 아빠가 가엽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빠는 커다란 슬픔을 표현도 하지 못하고 계속 삼키며 가슴에 품고만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내게는 죄책감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아빠가 나를 엄격히 가르칠 때, 언성이 높아지면 항상 목소리가 떨렸다. 아빠의 얼굴을 보면 표정은 분명 화를 내는 것 같아도, 입술이 떨리며 초점은 뭔가 흐릿했다. 커다란 죄책감이 언제나 아빠의 온몸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아빠가 재혼을 하시게 되었다. 내게 새로운 여동생이 생기고 또 걔와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서 아빠도 행복해진 것 같았다. 재혼하신 후, 정말 오랜만에 아빠가 껄껄 웃는 것을 보았다. 나는 새엄마가 정말 고마웠다. 아빠의 죄책감을 조금 덜어주신 분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모두 계획일 뿐이었다니. 또 생명으로 장난질을 쳤던 사람이었다니. 이가 갈렸다. 머리를 여러 차례 주먹으로 내려쳤다. 주먹과 머리 둘 다 얼얼할 때까지. 하지만 마음은 조금도 진정되지 않았다.

 

 아... 펑펑 울게 만든 다른 큰 이유가 하나 있다. 별빛이에 대한 안쓰러움이다. 별빛이를 철저하게 테러같은 짓에나 이용하기 위해 만들었음에도 거기에 복종하도록 설계했다니. 인간의 욕심으로 창조된 생명. 태어나자마자 사랑이 아닌 계획과 의도 속에서만 살아야 했던 별빛이. 그러면서도 그것마저 나쁘다고 생각하지 못하는 별빛이. 안타까움에 가슴이 저릿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우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죄책감. 나는 별빛이가 연구원 외에 처음 만나고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은 사람이다. 그런데 별빛이의 방귀를 보고 무서워하며 지금껏 피하고 있다니.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든다. 뭐가 되었든 내일 아침에 별빛이가 일어나면 그냥 싹싹 빌어야겠다.

 

 그날 밤은 울면서 지새워버렸다. 그러다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빠가 돌아오셨나 싶어 방을 나갔다. 눈앞에 보인 것은 텅 빈 거실 함께 식탁 위에 있는 한 장의 쪽지, 그리고 쪽지 옆에 있는 어떤 물건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무언가 큰일이 닥쳤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쪽지를 거칠게 들어 읽어보았다.

 

‘........’

 

 나는 반도 읽지 않고 쪽지를 내려두었다.

쪽지 옆에는 빗이 하나 놓여 있었다. 산속에 쓰러진 이후 보이지 않던 빗이었다. 나는 그 빗을 챙기고 바지 주머니 깊숙한 곳에 넣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별빛이 방문을 열었다.

 

“꺄악! 뭐야 오빠?!!”

 

 당황한 별빛이의 목소리와 함께 별빛이 방귀냄새가 확 덮쳤다. 생각을 해보니 별빛이 방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었다. 혹시 별빛이가 혹시 방에서 방귀를 계속 조금씩 뀌어 내보내야 방귀를 참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나…?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해서 지난번 산속에서 한번에 배출하려 했던 건가...? 


 별빛이의 모습도 꾀죄죄했다. 별빛이의 머리카락과 귓털, 꼬리털은 정리가 덜된 채 엉켜 있었다. 아무튼, 시간이 없었다. 별빛이의 방귀냄새는 눈코입 모두 시큰거리게 할 정도였고 별빛이의 모습이 생각보다 더 엉망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도 겨우 정신을 붙잡고 나는 별빛이에게 단호하게 말했다.

 

“빨리 나가야 해.”

 

“무슨 일인데...?

왜 아침부터 난리야? 어... 엄마는?”

 

“나가서 설명해줄게.”

 

나는 별빛이의 손목을 확 붙잡고 무작정 밖으로 뛰쳐 나갔다. 잠옷차림으로 마구 달리는 별빛이. 나는 달리면서 별빛이에게 말을 걸었다.

 

“별빛아, 숨바꼭질 알지?”

 

“어? 어.”

 

“우리 좀 오래 숨바꼭질을 해야 해.”

 

“어? 술래는 누구야?”

 

“음... 있어 그게. 혹시 뒷산에 다른 숨을 곳 있어?”

 

“뒷산 얘기는 꺼내지 마!!”

 

“진짜 미안, 하지만 거기서 숨을 곳 찾은 거 있어?”

 

“아 많이 있어.”

 

“거기서 가장 깊숙한 곳으로 가자.”

 

“...지금? 우리 둘이서?”

 

“어. 거기서 설명해줄게.”

 

“알았어...”

 

 별빛이는 앞장서서 길을 뚫어 나갔다. 지난번에 나왔던 등산로하고는 전혀 다른 곳에서 등산로가 아닌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작은 손으로 풀숲을 능숙히 해쳐 나가는 모습이 지금 갈 곳으로 가는 것도 처음이 아닌 것 같았다. 나는 별빛이 뒤를 계속 따라갔다. 살랑거리는 별빛이 꼬리를 보면서. 꼬리에 살짝 방귀냄새가 배여 뒤에서 냄새가 조금씩 흘러 나오고 있었지만...

 

 여기가 저기 같은 길이 반복되다 보니 평탄한 공간이 나왔다. 별빛이는 여기가 도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듯이 가는 것을 멈추고 나를 향해 돌아보았다. 나는 다리가 후들거려 바닥에 쓰러지듯이 엎드려버렸다.

 

“별빛아, 내가 미안해.”

나는 숨을 껄떡대면서도 사과를 먼저 하였다.

 

“오빠가 뭐가 미안해?”

 

“그냥... 요새 많이 못 놀아준 게 미안하네.”

 

“아니야... 내가 이상한 거야.”

 

“그런 말 하지 마.”

 

“오빠도 봤잖아? 난 다른 사람과 너무 달라. 모습도 이렇고 방귀도 너무 잘 뀌고...”

몇 마디 하던 별빛이는 감정이 복받쳤는지 주저 앉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어떻게든 별빛이를 위로하고 싶었다. 그러나 내게 별빛이를 위로할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었다. 나는 차라리 아무 말도 안 하기로 했다. 대신에 바닥에 앉아 별빛이를 조심스레 안아주었다. 별빛이가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어질 때까지 펑펑 울게 놔두었다.

 

별빛이가 실컷 울고 난 뒤 우리 둘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이 정적을 먼저 깬 것은 나였다.

 

“별빛아.”

나는 고민 끝에 결심에 찬 목소리로 말하였다.

 

“사실 엄마에게 들었어. 너는 어릴 때 하얀 옷 입은 사람이 많이 있었지?”

 

“응, 모두 멋진 삼촌들이었어.”

 

“그래?”

 

“응, 내가 방귀를 뀌면 칭찬해주었어. 더 많이 방귀뀌라고 힘내라고 하기도 했어. 가끔 방귀를 많이 못 뀌면 뭐라 하긴 했지만...”

 

“뭐라 했다고?”

 

“응, 왜 방귀를 이것 밖에 못 뀌냐고 했어. 가끔은 내 배를 누르거나 엉덩이를 때리기도 했어.”

 

“허.”

 

“그런데 언니.... 아니 엄마랑 나랑 둘이 살기 시작한 뒤에는 만나는 사람 앞에서 방귀를 뀌면 나를 엄청 싫어했어. 처음에는 웃으면서 귀엽다고 하시는 아저씨도 있었지만, 냄새를 맡으니 소리치며 뛰어가더라.”

 

“...”

 

“그리고 어떤 사람은 내 귀랑 꼬리가 이상하대. 날 정말 싫어했어. 난 그 하얀 옷 입은 삼촌들과 같이 살고 싶어. 엄마랑 사는 것도 재밌었지만. 다 같이 있으면 더 좋잖아?”

 

“별빛아.”

 

“왜?”

 

“착한 사람은 때리지 않아.”

 

“어?”

 

“착한 사람은 네가 잘못을 했어도 널 때리지 않아. 널 때린 그 삼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엣? 거짓말!”

 

“진짜야. 엄마가 네가 방귀뀌는 것에 더 많이 뀌라고 하거나 이것 밖에 못 뀌냐고 한 적 있어??”

 

“음… 아니.”

 

“널 때린 적은?”

 

“그것도 없었어.”

 

“착한 사람은 네가 뭘 하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야.”

 

“하지만 내 방귀를 좋아하는 사람은 삼촌들 뿐인걸... 오빠도 내 방귀가 어떤지 봤잖아?”

 

“나는 상관 안 해.”

 

“...어?”

 

“나는...”

 

내가 말을 덧붙이려는 순간, 우리 앞에 방독면을 쓴 몇 명의 사람이 나타났다.

 

“삼촌...?”

별빛이는 조금은 얼떨떨한 목소리로 말했다.

 

 삼촌이라. 저 사람들은 분명 별빛이를 만든 사람이자 별빛이를 이용해먹으려는 사람일 것이다. 한때 엄마도 저 사람들과 똑같은 사람이었겠지.

 

“잘 찾아왔구만. 익숙한 울음 소리가 들리더니.

네가 그 햇살인가 뱃살인가 하는 애냐?”

그중 맨 앞의 한 남자가 비웃듯이 말했다.

 

“이름 가지고 장난치지 마세요.”

 

“아 미안, 헷갈려서 말이야.”

그 남자는 여전히 뺀질거리듯이 말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정말 감동했어. 너도 그렇고, 그리고 너희 엄마도 그렇고. 아니 정확히는 새엄마인가?”

 

“엄마 들먹이지 마세요.”

 

“아 니 새엄마 말하는 거야. 솔직히 대단했다니까. 어떻게 우리의 추적을 이렇게나 피할 수 있었는지 아직도 미스터리다 미스터리! 뭐 그렇다고 해도 결국은 우리가 마무리했지만.

오, 다행히 AF-0831의 상태는 좋아보이네?”

 

“별빛이는 실험체가 아니야, 이 쓰레기새끼야.”

 

“야, 얘 조용히 시켜.”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내 머리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누군가 몽둥이로 날 가격한 것 같았다. 앞으로 털썩 쓰러졌다. 머리에 피가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날 부르는 별빛이의 울음소리와 비명소리가 들렸다.

 

“별빛아, 삼촌이야. 기억나지? 같이 가자.”

 

 희미해져가는 의식 속 별빛이를 향해 접근하는 발소리, 별빛이를 꼬시고 다시 데려가려는 그 새끼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겨우 의식을 붙잡고 말을 했다.

 

“별빛아, 저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야. 너도 알고 있었잖아.”

 

“…”

 

 별빛이는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불안한 침묵이 이어졌다. 나는 여기서 별빛이가 저 사람들을 따라가면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알고 있다. 세계 곳곳에 끔찍한 악취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싫은 것은 살아있는 무기로 이용당하고 있는 별빛이의 모습이었다. 생각만해도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별빛아!!”

마지막 남은 힘을 짜내 별빛이를 불렀다. 별빛이는 나를 돌아보았다.

 

 이런….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머리를 맞은 것이 너무 컸던 것 같다. 순간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별빛이의 눈을 보며 주머니에 있던 빗을 별빛이 앞으로 던졌다.

 

 별빛이는 빗을 보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 이윽고 결심에 찬 표정을 지었다. 별빛이는 나를 바라본 채 몸을 살짝 숙였다. 꼬리를 치켜들더니 저 사람들을 향해 방귀를 뀌기 시작했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예전에 산속에서 보았던 별빛이의 방귀 파워를 가뿐히 뛰어넘는 방귀를 보았다. 어마어마한 방귀량에 별빛이 뒤에 있던 모든 것이 날아가버렸다.

 

뿌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이 정도 위력의 방귀가 정말 긴 시간 동안 끊임 없이 이어졌다. 나는 별빛이 앞에, 즉, 방귀가 나가는 방향과 반대편에 있었지만 풍압에 의한 반작용으로 나에게도 압력이 느껴졌다. 나는 사람이든 나무든 종이 날리는 듯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별빛이 잠옷바지, 나뭇잎, 사람의 피부같이 연약한 것은 풍압에 찢겨졌다. 별빛이는 울먹이는 표정을 지었다. 본인이 잘하고 있는 건지 방황하는 듯 하였다. 별빛이는 그 후 한참동안 방귀를 그 사람들이 있는 쪽으로 뀌어댔다.

 

방귀배출이 끝난 후, 별빛이는 울면서 주저 앉았다. 이런 내가 정말 좋냐, 내가 정말 잘한 일을 한걸까 하는 탄식이 쏟아졌다. 하지만 나는 그런 별빛이를 꼭 끌어 안았다. 나는 너가 어떤 모습이더라도 좋아할 거라고, 언제나 옆에서 지켜줄 거라고 말하였다. 우는 별빛이 얼굴이 귀여웠다. 한편으로는 짊어져야 하는 책임감이 무거웠다. 여전히 머리는 아팠고 핏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압도되어 페닉에 빠질 것 같았다. 하지만 오늘은 거기에 대해 생각하지 않아도 되겠지.

 

나는 바닥에 있던 빗이 보였다. 신기하게도 빗은 거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한 손으로 별빛이를 끌어 안은 채 다른 한 손으로 빗을 챙겼다. 그리고 이제는 바지 주머니가 아닌, 가슴 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우리는 방금 전까지 무성했지만 지금은 황무지가 되어 버린 산 한가운데서 서로를 끌어 안았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뜻한 심장 고동 소리를 들으며 이대로 땅바닥에 누워버렸다. 별빛이는 꼬리로 자신과 함께 나도 슬쩍 덮어주었다. 털은 정돈되지 않아 까슬까슬했고 어마어마한 방귀를 뀐 탓에 조금 뜨거웠다.

 

별이 조금씩 드러나는 시간대. 따스한 저녁햇살과 은은한 별빛 모두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