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14살 때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

낯선 사람 2명이 엄마와 함께 식탁에 앉아있었다.


턱수염이 더부룩하게 나있고, 쾌쾌하고 불쾌한 담배 냄새를 풍기는 아저씨

그리고 그 아저씨 옆에는 

아저씨와 정반대의 분위기를 가진

크고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여자애가 있었다.


"진우야. 앞으로 같이 지낼 새아빠랑 여동생이야"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나

우리 엄마는 재혼을 한 거였다.


물론 엄마가 재혼을 언젠가는 할 거 라는 걸 생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알게되니 기분이 이상해져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내 방에 들어와 문을 닫았다.


"애가 버릇없이! 인사 안 해?"

"괜찮아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럴거에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아저씨, 그리고 쩔쩔매며 그를 달래는 우리 엄마

모든 게 다 싫어서 나는 침대에 뛰어들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웠다.

'앞으로 우리 가정은 어떻게 되는걸까... 나는 어떻게 되는걸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괴롭혔고

괴로움에 지친 나는 스르륵 잠깐 잠에 들었다.


".....빠....."

?

"오.....빠....."


누군가가 나를 오빠라고 부르는 소리

눈을 떠보니

그 아이가 나를 흔들며 깨우고 있었다


"오빠..."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오빠'라는 단어에

내 몸에 소름이 돋았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나를 깨우던 그 아이의 손을 뿌리쳤다


"누가 너 오빠야!"

"그리고 너 내 방에는 왜 들어왔어!"

"당장 나가!"


갑작스러운 내 큰 목소리에

그 아이는 깜짝 놀랐고

똘망똘망하고 큰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히고 있었다.


"으애애애애"


곧 있으면 큰 소리로 울 것 같던 그 표정

이대로 있다간 그 아이는 큰 소리를 내며 울 것이고, 나는 그 아이를 울렸다며 크게 혼나겠지.


"미안 미안... 내가 잘못했어 울지마..."


내가 사과를 하며 그 아이의 손을 잡고 달래자

그 아이는 눈에 눈물이 맺힌채로 활짝 웃었다.


크고 똘망똘망한 눈

그리고 살짝 맺힌 눈물

활짝 핀 웃음

그리고 핑크색의 말랑말랑해 보이는 찹쌀떡 같은 볼


사랑스러운 그 아이를 보면서 어떻게 화를 낼 수 있을까


아직도 나는 그 순간을

마치 어제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된 건

그 아이를 처음 본 그날부터인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은 뭐야?"


"하민이!"


"성은?"


"성? 그게 뭐야?"


"그... 너 이름 세글자잖아. 세글자 다 말해줘"


"세글자...? 아! 이하민!"


"그럼 나이는 몇살이야?"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는 그 아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인해

아까까지 혼란스러웠던 내 머릿속이

한결 편해졌다


"8살이야!"


초등학교 1학년...

중학교 1학년인 나는 이렇게 혼란스러운데

초등학교 1학년인 이 아이는 얼마나 더 혼란스러울까...


생각에 빠져있던 나

그런 나의 손을 그 아이는 덥석 잡고는


"오빠! 오빠가 내 오빠 해줄거야?"

라고 기대에 찬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어봤다


"으응...? 오빠...?"


"응응! 아줌마가 집에 가면 오빠 있다고 했어! 오빠해줄거지?"


기대가 가득 찬 그 아이의 눈은 아까보다 더 커다랗고 똘망똘망해져있었고

더욱더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장담한데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면

내 장기를 다 내놓으라고 해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내놓게 될 것이다.


"알겠어. 내가 너 오빠야"


"헤헷! 오빠 생겼다!"


그 아이는 신이 났는지 꺄르륵 웃으며

잡고 있던 내 손을 막 흔들어댔다


"그래... 잘 부탁할게 하민아."


이게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그리고 이 뒤로 우리 둘에게 어떤 일이 생길지는

14살의 나도

8살의 그 아이도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