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에서 그랬지. 재능은 형벌이라.

끝없이 고뇌하고 절망하고 질투하고 이뤄내는

그 모든 행위는 연속되지 않고 하나의 삶 안에서 막을 내린대.


그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모든 재능은 똑같이 평등하리.

천재는 제 자신을 두려워하고

둔재는 세상을 두려워하니.

노력해 이뤄진 결과가 네 발목을 옭아매고

성취의 쾌락에 절여진 자들

결국 제 생명을 제물로 재능을 태운다네.


꿈에서 난 삶과 삶 사이 틈새에서, 다음 삶을 위해 바삐 돌아다녔어.

그들은 천국이기에 너무 잔혹하고, 지옥이기에 너무 체계적인 놈들이었지.


이전 삶을 보장하던 악마와, 경쟁입찰로 들어온 신입 엘프.

늙은 악마는 이렇게 말했어.

"다음 생에 이룰 작품을 다뤄보자고. 지금 이자로는 9.5%야. 이것도 잘 쳐준 거라네."


그들은 내생에 있을 재능을 산측해, 미리 재능의 정도를 정해놓고 빌려주는 사업이었어.

이자는 그들이 미처 생각 못한 업적. 재능이 아닌 노력의 성취. 예상값이 아닌 역사의 종잇조각 같은...


엘프는 내 표정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했지.

"저 노인네가 속이는 거에요. 지금 표준이자는 5% 대거든요.

고객님은 신용이 살짝 어려우시지만 바로 계약 진행해주시면 7.3%까진 맞춰드릴 수 있어요!"


그들은 내가 아닌 내 집착을 높이 평가했지. 나는 예민하고, 조그만 것에 쓸모없는 집착을 벌이는 놈이었으니.

그런 얼 빠진 놈들이, 이자로 재미 보기는 좋다고 하더라.


늙은 악마와 엘프는 말소리가 거세지더니, 서로를 죽일 듯 싸워대기 시작했어.


나는 조용히 자리를 나와

징벌방의 동료가 소개해준 친구를 보러 갔어.

그는 젤다의 전설에 나오는 링크처럼 작고 날랜 요정이었지.


그는 밝고 친근했거든. 우린 곧장 친해졌어.

그의 담당 악마는, 그가 안내한 편의점 안을 계속해서 서성거리고 있었어.

그가 말하길

"저치는 이자가 저렴해. 대신 기억을 가져가지. 중요한 기억도 아니야. 건망증, 아니면 산만한 정도일까. 우리야 좋지만... 대신 계약의 조건이 있지."


그는 저를 잘 보라 단단히 일러둔 뒤, 악마가 있는 편의점에 들어가 요상한 동작을 반복했어. 그리곤 악마와 악수했지. 그는 곧장 돌아와 말했어.


"맥스웰은 수많은 기억을 먹어치우는 악마야. 그 식탐에 져선 자기네 기억도 먹어치워버렸거든. 평범하게 접근해선 만날 수 없고, 내가 한 동작을 따라하면 맥스웰이 보일 거야."


나는 그의 호의를 받아들여 같이 편의점으로 향했어.

신기해. 편의점 밖에선 잘 보이던 악마가 인기척만 흘리며 눈에 뵈지도 않는다는 거.


어렵지 않게 동작을 따라하고, 셋은 사이좋게 대화를 나눴지.

맥스웰은 3.5%를 제시했어. 또, 그는 아주 사소한 기억을 뺏기는 특약사항을 내걸었지.


솔직히 좀 의심했어. 작은 기억이라도 언제든 중요해질 수 있을 테니.


맥스웰과 요정은 미소지으며 설명해줬어.

장기기억은 건들지 않고 단기기억과 집중력만 이체되니, 너는 성취감에 필요한 도파민 생성이 어려워지는 것 뿐이라. 삶에선 그것을 ADHD라 부르고, 그는 약물치료를 받으면 괜찮다고 다독였지.


맥스웰은 기억을 먹는 게 주요 목적이 아니야.

적은 이자를 내세워 성취감을 뺏고, 천재들에게 아주 약간의 성취만 주어서 계속 자신에게 계약하도록.

그런 계약이었지. 


그와 손을 잡고, 나는 꿈에서 깼어.

난 10년간 ADHD약을 먹고 있고

내 재능과 노력으로, 그리고 주변의 큰 도움들 덕에

내가 사랑하는 것을 사업으로 이뤄냈지.


그러나 내가 진정 사랑하는 집착적인 완성품은 점점 품을 떠나.

실망스러워서 깨뜨린 도자기만 만들어야 하는 신세가 슬퍼.

공부하고 분석하고 실험하고 창작하고...

이제 날 이해하고 토론하는 친구들은 여전히 저 밑에 있고

나는 결국 내 작품에 부딪혀 한계를 느꼈어. 단지 집착하는 것일 뿐이지. 절망할수록, 이상향에 더 집착하는걸.

이제까지 재능과 나는 동일하다고 생각했는데,

이 작달막한 성취로 나를 벼랑 끝으로 밀어놓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면 선택을 강요하는 재능이여

재능은 형벌이며 명성은 이자일 뿐이리

반복되는 고뇌를 잇는 삶은 없으리라...

이랫으면 그냥 편돌이로 살았지 씨발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