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존재감 없는 나, 용사의 암부가 되다.

사제와 카인의 사이를, 어둠이 가르고 어둠속에서 빛은 바래 주홍빛 황혼이 되어 더이상 그 힘을 발하지 못했다.

어둠은 카인을 속박함과 동시에 사제가 주문을 사용할 수 없도록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카인이 어둠이 쏟아져 나온 근원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어둠에 휘감겨있어 잘 볼 수 없으나 자세를 낮추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용사에게 통할만한 수준의 어둠의 신성, 그 신성은 필히 같은 용사만이 가질 수 있는 것이니,

그들의 싸움에 또다른 용사인 어둠신의 사도가 난입한 것이였다.


서서히 퍼져나가는 어둠 속에서는 침묵만이 들리고, 그 어떤 형태조차 느낄 수 없었다.

속박이 풀리고도 카인과 사제는 어찌할 도리를 알 수 없었다.

빛의 축복은 용사에게 어둠에 대한 저항력을 주었다만, 그것을 방출하는 것이 서툰 그였기에 어둠을 밝힐 수 없었으며,

사제는 경험하지 못한 극단적인 어둠속에서 이미 판단력을 잃은 채였다.


사도는 천천히 어둠속을 내다보며 그 둘의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허나 공격하지 않았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용사는 그의 벗이였으며, 그렇다하여도 어린 여자를 공격할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단지 그 둘의 싸움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였다.


그런 그의 바람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순간 압도적인 빛에 어둠이 밝혀졌다, 그 어둠을 밝힌 것은 용사도, 사제도 아닌 이단사냥꾼 듀알렘이였다.

아무리 수없이 많은 죄악을 저질렀다곤 하여도 그 또한 고위 성직자이자 아폴로네우스의 사도,

어둠을 밝히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였다.


"피라미보다 더 큰놈이 잡혔네?"


몸을 숨기고 있던 사도가 너무나 밝은 빛에 순간 행동하지 못하고 있을 때, 듀알렘은 그를 식별하고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카렌, 공격해!"


아마 전에도 사도를 상대해 본적이 있어서일까, 아니면 살인자로서의 본능이 외친 것일까.

그는 검을 내려치기 직전, 무언가를 직감하고 검을 멈추어 사제에게 공격 주문을 사용하라 외쳤다.

순간 빛의 창이 사도를 꿰뚫었으나, 너무나 허무하게 안개로 흩어졌다, 가짜였던 것이다.


듀알렘은 그 즉시 몸을 돌리며 자신의 뒤에 검을 휘둘렀으나 아무것도 베이지 않았다.


"듀알렘! 뒤!"


그 순간, 듀알렘의 목에 차가운 날붙이가 박혀들어왔다.


"?!"


듀알렘은 극심한 고통에도 침착함을 유지하며 사도의 팔을 잡아 내던져버렸다.

식도까지 날이 박혔던 것인지, 그는 조금씩, 아니 많이 피를 토해내며 어떻게든 회복을 시도하고 있었다.

이를 악물며 버티는 그의 입술 사이로 붉고 밝은 선혈이 세어져 나왔다.


"..."


사도는 낙법을 통해 던져졌음에도 별 피해 없이 착지했다, 허나 던져진 곳에는 검의 용사가 있었다.

어둠은 무조건 악이라는 사실만을 알고 있으며, 빛의 사도를 공격한 이 어둠의 사도는,

용사의 눈에는 적으로 인식됐을 것이였다.


서로 눈이 마주쳐지자 서로가 든 단검으로 합을 맞추기 시작했다.

평범한  였다면 몇수 맞추지도 않은채 죽일 수 있겠다만 서로의 상대가 같은 용사였기에 합은 계속해서 이어져 나갔다.


"네놈의 정체를 밝혀라!"


허나 사도는 응답하지 않고, 순식간에 카인에게 파고들어 약해져있는 어깨에 칼날을 박아넣었다.

순간 칼날이 목으로 향하려 했으나 목적이 죽이는 것이 아니였기에 우선 팔을 공격해 무력화시키기로 한것이였다.


허나 카인은 당황하지 않고 다른 손으로 칼을 넘겨 신성서린 칼날로 사도의 몸통을 베었다.

사도는 그 즉시 회피하여 스치듯이 베였다만, 휘성검의 힘인지 환부에 불타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두 용사가 서로 치명상을 입히고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사제 카렌은 쓰러진 듀알렘에게 달려가 그를 회복시키고 있었다.

어느정도 살이 붙고 출혈이 멈추자 듀알렘이 갈라진 목소리로 말하며 회복시키는 도중이였던 카렌의 손을 뿌리쳤다.


"이거면 됐어"


"아... 아직 회복이..."


"내가 됐다면 된거다."


본래 천성이 서글서글하여 화를 잘 내지 않는 이였으나, 꽤나 성질이 돋구어졌는지 진정된 말투로 말하기 시작했다.

듀알렘은 일어나 자세를 다잡고 두 용사가 싸우고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빛나던 그의 갑옷은 어째서인지 빛을 잃고 있었다.

카렌은 그 까닭을 알아챘다, 본래라면 방금 죽었어야 할 그가, 압도적인 신성의 양으로 버텨냈던 것이였다.

허나 죽음을 저항할 만큼의 신성의 양은, 일반적인 인간의 수용량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였기에 그것에 대해 의문이 생겼다.


듀알렘이 이내 두 용사가 싸우는 곳으로 도달했고, 합을 나누고 있던 둘 사이에 끼어들어 난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전투가 길어지자 소란을 느낀 사람들이 하나 둘 창으로 거리를 내다보기 시작했고, 도시의 군사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사도는 계속해서 상황이 늘어지는 것을 보고 빠져나갔고, 오로지 듀알렘과 카인의 전투가 계속되었다.


"멈추어주십시오, 이단사냥꾼이시여!"


듀알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 계속해서 카인과 칼을 맞대고 있었다.

경비들도 말려들까 두려워 적극적으로 제제하지 못하고 있던 차에, 둘 사이에 벼락이 쳤고, 

순간 자세가 무너진 둘을 붉은색 화염이 감쌌다.


"어디갔나 했는데, 여기서 이지랄 하고 있던거야? 귀찮게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