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존재감 없는 나, 용사의 암부가 되다.

일어날 예정인 모든 일을 안다면, 그대라면 어떠할 것 같은가?

혹자는 좋다고 이야기 할 수도 있고, 다른 이는 어떤 연유에서든 끔찍하다 이야기 할 수 있겠지.


직접 경험해본 결과, 미래를 안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알고 있는 자에게 저주로써 작용한다.

정확히는 그 미래를 알고도 남들에게 알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틀림없는 저주다.

이러한 예지는 결코 긍정적인 결과를 내놓지 못하며, 어쩌면 알고있는 부정적 미래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 서론은 여기까지 하고, 우선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대한민국에 살았던, 평범한 남자 고등학생에 불과했다.

그러다 언젠가 보았던 이상한 소설의 도입부에서처럼 갑작스레 이상한 공간으로 끌려갔다.


그곳은 분명 빛으로만 가득차있었으나 눈이 부시지 않았고, 공간을 가늠하는 기능이 더이상 동작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중심으로 보이는 장소가 있었으니, 그곳에는 빛나는 은으로 치장된 드레스를 입은 거대하고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


그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로 같이 끌려온 이십명의 혼란을 잠재우고, 용건을 전달했다.


"여러분들께는 부디, 이곳, 스코피아에 자리잡기 시작한 마를 물리쳐주시길 간곡히 요청합니다."


요컨데 다른 세계로가 그곳에 있는 마라는 것들에 대항해 인류를 돕는 일을 해주길 바라는 것이였다.

그녀의 꽤나 예의바른 저자세의 무심코 자신이 초월적인 존재 앞에 서있다는 것을 잊어버린 무식한 자들이 생겨났다.


"당신이 뭔데 우리한테 이래? 당장 돌려보내 줘!"


하지만 애초에 그 존재는 우리의 말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은 단지 저 인지를 뛰어넘은 존재가 우리를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한 최소한의 배려일 뿐,

그때 우리 눈 앞에 있던 초월적인 존재가 미물의 하찮은 불평따위를 들어줄리 만무했다.


그것은 곧장 우리를 또다른 장소로 이동시켰다.


거대한 석조 구조물이 즐비해있는 도시였다, 그 도시는 광활하고 아름다웠으나 나를 제외한 그 어느 생명도 찾을 수 없었다.

또한 하늘은 청색이 아닌 오로지 하얀색만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태양 또한 없었다.

나는 진실의 힘을 수여받기 전에도 직감적으로 그곳이 인간이 사는 세계와는 동떨어진 다른 차원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분명 다른 이들 또한 다른 곳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기에, 나는 그들을 찾으려 넓은 거리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허나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껴지는 것은 인간도, 그렇다고 미물도 아닌 거대한 자의 시선 뿐.


계속해서 반복되는 거리를 걸으며, 내 머리속에는 자연스레 인간이 가져서는 안되는 지식들이 흘러오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극심한 공포와 불안감, 불쾌감이 반복해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어느센가 내 왼손에는 은빛 단검이 쥐어져 있었다.


'하찮은 자인 너가 이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


단검이 이리 말을 거는 것 처럼 느껴졌으나, 나는 어떻게든 그 감각들을 무시하며 계속해서 거리를 나아갔다.


영원할 것만 같던 이 짧은 고통속에서, 거리는 점점 그 형태가 무너져가고, 하늘과 지면의 경계가 흐릿해진다.

더이상 타일과 타일이 구별되지 않고, 더이상 벽과 벽이 구별되지 않고, 더이상 하늘과 땅이 구별되지 않고,

더이상 다른 것과 나라는 개념이 구별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내게는 인류의 진실, 신들의 정체, 스코피아의 수십억년의 역사, 나의 최후, 이 시련에서 살아남을 자들,

죽음이란 이름의 시작, 삶이라는 이름의 끝과 같은 인간이 도달하지 못했던 진실에 도달했다.


결국 길조차 빛에 흘러들어가 구별할 수 없게되고, 오로지 마지막 한걸음만을 남기게 되었다.

그때, 초월적인 존재가 더이상 허울로 모습을 감추지 않고, 진정한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났다.

그 모습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없었고, 길을 걸으며 온갖 지혜를 얻은 내게도 이해하기 벅찬 것이였다.

나의 영혼이 육체를 강제로 움직여 입을 열게하니,


"#@!$*!"


어찌 입에서 나왔는지조차 모를, 알아들을 수 없지만 분명히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한, 인간의 언어가 아닌 영혼의 의지로 그 존재와 대화하기 시작하니,

육신의 두뇌는 그것들을 도저히 처리해내지 못해 이미 기능을 멈추었으나, 내 영혼은 그것을 이해해냈다.

기나긴 대화 속, 나는 지금은 기억해내지 못하는 한가지 진리에 도달하고, 마지막 발걸음을 공백에 내디뎠다.


영혼이 먼저 공백에 형태를 담구자, 육신이 그를 뒤따랐다.

영원히 비어있을 것 같았던 내 영혼이 지혜와 지식, 그리고 빛으로 가득찼다.


그리고 그 존재가 친히 내 육신에게 인간의 언어로 말을 건냈다.


"진실의 사도여, 그대는 그대가 알고있는 단 하나의 진리로 다른 사도들을 이끌도록 하여라.

 진실 아닌 것을 입에 담지 말것이며, 진실된 것은 더더욱이 입에 담지 말라.

 진리로 이끄는 말이 아닌 것들은 무의미하니, 모든 의문에 그저 함구하라.

 그대가 할 일은, 의문을 가진 이들에게 답해주는 것이 아닌, 그들이 답을 찾는 것을 지켜보는 것이니라."


나는 더이상 그 어떤 의지도 나타내지 않았다, 그 존재는 내가 어찌하든 신경쓰지 않을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였다.

나는 나를 제외한 이들에게 빛의 신으로 불리우는 존재의 실상 또한 깨달았다.


허나 함구한다, 그대들에게도 함구한다.

이 전자 활자를 통해 나를 보고 있는 그대들이, 이 이야기의 답을 찾기를 간곡히 바란다.

내 이야기는 이미 이곳에서 끝났으니, 다음에는 용사들에 대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