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었다.


몇 십 분을 가만히 앉아있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겨, 내가 쓰고자하는 바를 명확히 하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힘겹게 도입부를 완성해보았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제법 괜찮아보이는 모양새에, 써내려간 글을 다시 읽어보게되었다.



..그런 말이 있었다.


초고를 마치고, 냉정한 시각에서 자신의 글을 바라보기위해선 적어도 하루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쓰고난 직후에는 아무리보아도 자신의 글이 마치 자기 자식같이 느껴져 모자란 것이 없게 느껴질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자칫하면 이불킥감이 될 수도 있는 글을, 순간의 감상에 휘둘려 섣불리 판단하지않기 위함이었다.


동감하는 이야기였다.


쓰고난 직후에는 '와.. 이건 내가봐도 잘썼다'했던 글이 삽시간내로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던게 도대체 몇번이던가.


그후로는 퇴고를 할때마다 시간을 어느정도 두는 것이 습관이 됐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엔 갑자기 곧바로 보고싶어졌다는 것이었다.


딱히 잘썼다고 느낀 것은 아니었다.


다만 일종의 강박으로, 의무감에 그렇게 뒤를 돌아보았던 것 같았다.



끔찍했다.


아니 끔찍한걸 넘어서 경멸스러웠다.


수 시간, 분명 귀중한 시간을 쏟아부었음의 결실이었을 것이 어느새 차마 마주할 수 없는 것으로 변해있었다.


충동적으로 마우스에 손이 올라갔다.


Ctrl A. 순식간에 파란색 박스가 검은색 글자들을 모두 집어삼켜버렸다.



..지우고싶다.


당장 드는 생각은 그것뿐이었다.


순식간에 글의 문제점들이 나의 눈에 떠오르고, 글이 부족한 이유에 대한 단상들도 마구 샘솟았다.


이 이상 써내려가면 안된다.


이럴거면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편이 좋다.


그렇다고 지울 필요까지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런건 생각할수록 더 답답한 심정이 들어올 뿐이었다.


더 깔끔하게, 더 재미있게. 이것이 부분일지라도 나는 가능한 완벽하게 그것을 써내려가야했다.



딸깍. 


몇 시간의 노력이 사라지는 것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었다.


화면은 처음의 백지 상태로 돌아갔다.


처음 내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들었을 때의 그 모습 그대로, 똑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다만 나는 그때와 사뭇 달라진 모양이었다.



나는 다시 몇 십 분을 가만히 앉아있기 시작했다.


완벽한 첫 문장과 도입부를 써내기위해서.


쓰고난 직후에도, 시간이 지나고난 후에도 괜찮아보이는 글을 쓰기 위해서.


고뇌. 어쩐지 글 한 줄 써내려가는 것이 버겁도록 무거운 고뇌를 해야할 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아직도 한 줄을 고민하고 있다.


생각보다 그리 완벽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엔 무언가가 마음에 걸려 방금 쓴 단어조차 다시 한 번 고쳐쓰고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