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골목길에 처음으로 설치된 죽음자판기는 철로 만들어져 서늘하고 차가웠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것만큼 차갑진 않았다. 그 속에는 죽음이 들어있었다. 모든 사람은 동전만 있다면 타인의 기록된 죽음을 체험할 수 있었다. 당연히, 노약자와 어린이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모든 이들은 이런 발명품에 무슨 가치가 있냐고 폄하했다. 물론 처음엔 죽음의 종류가 많지도 않았으니 상품가치가 떨어지긴 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우스운 농담이나 담력시험으로 사람들이 사용했다. 그리고 뒤이어지는 비명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었으니, 뒤에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기 위한 이유로 유행을 탔다. 그것도 길게.


그런 과정에서 사람들은 계속해서 죽었다. 원래 사람은 하루에 수십만명이 죽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이 자판기는 다른 자판기가 그러하듯 계속해서 새 죽음을 기록하고 채워넣었다. 사람들은 새 죽음을 경험하기 위해서 계속 죽음 자판기를 사용했다. 어머, 새 죽음이 나왔네. 이번에는 누가 또 죽었을까... 무신경하고 차갑게 읊조리면서.


물론 잘 팔리는 죽음들은 정해져 있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경험해보았자 숭고하지도 않고 더럽고 추악했다. 늙는다는 것은 유쾌하지 못하니까. 그래서 잘 팔리지 못했다. 하지만 일명 끝내주는 죽음들, 복상사라던지 쇼크사라던지, 전투를 통한 출혈사라던지는 사람들에게 잘 먹혔다. 섹스와 야만성은 놀이의 본질이니까. 그렇게 놀이로 죽음을 소비하는 시대가 되자, 죽음의 값어치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죽음이 흔한 사회는 죽음의 숭고함을 고려하지 않는다.



 천천히 죽음에 대한 사람들의 경계심이 옅어지자, 현실의 자산가와 환경보호론자들은 사람들의 자살을 도왔다. 이 세계는 병들어가고 있었고 이를 치유하기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람들의 수는 줄어야 했다.정치가들은 자신들의 당선을 위해 죽음을 부추겼고 복지가들은 복지를 포기하고 죽는 것만이 최고의 복지라 부추겼다. 많은 이들이 그 말에 속아 자살했고 그 과정 속에서 또다시 수많은 죽음이 기록되었다.



그렇게 죽음이 무한정 추가되어 판매되는 과정에 사람들은 자신의 죽음에 일련의 특별함을 추구하고자 했다. 죽음은 쉽게 판매되었고 죽음의 판권은 돈이 되었다. 누구든 타인과 다른 자신을 뽐내고 싶어했다. 그러니 유명한 죽음은 유명한 자아추구이기도 했다. 나는 모 유명인의 죽음을 체험했어, 어머. 난 다른 정치인처럼 죽었어. 그렇구나. 다음엔 나도 그 사람처럼 죽어봐야겠네. 누구나 다른 사람들이 동경할만한 죽음을 추구하였고 동경하는 죽음을 체험했다. 잘 죽은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었으며, 고리타분한 죽음은 사회적 재악이 되었다. 그렇게 사람이 죽어 유명해지는 것이 흔해졌다.



 염산통에서 열 시간 동안 녹는 죽음은 트렌드가 지났다. 사람들은 보다 특별한 죽음들을 추구했고 그렇게 죽기를 원했다. 예수처럼 죽기를 거부하고 붓다처럼 죽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공룡처럼 죽고 짐승처럼 죽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들은 잘 자살했다.


https://arca.live/b/skfro/104132940?p=1

소재 꽤 재밌길래 따라 써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