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2병.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어쩌면 나는 중2병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중2병의 사전적 정의에는 꼭 들어맞지 않지만, 적어도 그렇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중2병이라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중2병은, 사춘기는 정신병일지도 모른다. 정확히는 중2병은 발현체일 뿐이고, 그 근원은 정신병인 것이다. 사람은 정신병을 온건하게 표출할 줄을 모른다. 감정을 눌러담아 글 적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사람은 남이 기어코 쌓아 올라온, 지옥에서 잡아 올라온 줄을 아무렇지도 않게 걷어차 버리는 것을 즐긴다. 나와 다르니까. 나와 다르니까.

나는 지옥에서, 불행하게도 정신이 망가지기에는 적절한 가정 환경과 주변 환경, 학교 생활을 병행했다. 나에게는 오로지 글과 문학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공부도 없이 책을 읽었고,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밤에는 글을 썼다. 모든 것을 쏟아붓고 나면, 내 속에 있는 고름을 전부 게워내고 나면 그제서야 조금은 편히 잠들 수 있었다.

나는 유약해서 곧잘 상처받기에, 말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알았다. 언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루는 글을 쓰고 하루는 자해를 하며 견뎠다.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어도 글을 쓰고 나를 다시 상처입히는 것으로 고름을 빼냈다. 흉터는 잊어버리면 되었다. 시간에 바람에 쓸려 닳아버리면 되었다. 그렇게 살았다.

몇 번이고 죽을 생각을 했다. 몇 번이고 배를 후려치고, 몇 번이고 칼을 빼들고, 몇 번이고 옥상 난간에 걸쳐 섰다.

몇 번이고 글을 썼다. 자살의 이점을 논하고, 종이를 생의 덧없음으로 가득 채우고, 단점으로 가득 채워진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상상하고, 내가 죽은 뒤의 세계를 상상하고.

가장 마지막을 소재로 쓰여진 글이 가장 많았다. 나는 세계에서 나를 도려냄으로써 나의 빈 자리를 관찰하고 그곳에 뚫린 구멍을 곧이곧대로 내 존재감이라고 느꼈다. 그러니 내가 죽었을 때 울 사람이 채 두명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느꼈을 때 상실감이 해일처럼 밀려온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되자, 살아야 할 이유를 세는 것이 점점 힘들어져만 갔다. 하나, 둘, 하나,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죽고 싶은 만큼의 글을 써내려갔고,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남들에게는 어떻게 비쳤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적어도 곱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의 밤은 불면과 우울으로 물들었고 눈두덩이 아래에 짙게 그림자를 남겼으니까. 공부도 잘 못하는 주제에 뭘 그렇게 피곤한 것이 많은지.

언젠가 그것이 조금 억울하다고 느껴져서, 글을 쓴다고 말을 했었다. 어른들은 오냐 그렇구나 하고서는, 내가 없는 곳에 가서는 사춘기가 온 것 같다고 했다. 아이들은 중2병이냐고 물었다.

그때 적잖이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시쳇말로 자아의탁, 글이 본체이며 나는 곁가지에다 의미없는 존재로 두었던 시기였어서 더 그렇다. 당시에 중2병의 사전적 의미는 검색해보아도 자의식 과잉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내가 자의식 과잉이라고." 나는 그렇게 중얼거렸을지 모른다. 모순이라고 느끼기에는 충분할 불행이었다.

어쩌면 사춘기가 맞았던 것 같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소위 발작버튼, 역린이 형성되기엔 충분한 시기였다. 중2병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는 습관은 여지껏 고쳐지지 않았다. 면전에 욕을 들어도 사과를 받았다면 참고 잊고 넘어가는 성격 또한 무용지물이 되기 십상이었다. 사는 세계가 다르다. 그저 그렇게 여긴다. 그것으로 부족하다면 죽이고 싶다. 죽이고 싶다. 별 문제 없는 사람, 가끔 과하게 밝은 사람으로 살아가던 세계에 금이 간다. 그래, 정신병이 도질 것 같다고.

하나의 세계를 무너트리는 일은 이토록 쉽다. 나의 꿈을 방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겹도록 불쾌한 판이니까 다들 도피처 하나쯤은 있을 거 아냐. 나를 부수려 들지도 말고 으깨려 들지도 마.

다만 내가 이러한 핍박을 견디는 것은, 글이란 것이 폭력성조차 박제하기 때문입니다. 울분도 분노도 텅 빈 상태로 나는 바깥에 나가서, 먼지와 각질 따위를 가득 담아 들어온다. 나는 종이 위에서 구른다. 온 세상이 하얀 것처럼 구른다.

하얀 세상에서 낱말이 떠오른다. 

모두가 지키는 것을 소중히 여긴다. 분명 다른 것의 반댓말은 같은 것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 같아야 하고, 어디까지 달라야 하는 걸까? 우리는 정녕 같은 것을 원하고 있을까?

시초가 되는 자극이 무엇이던 간에 생각이 어디로 흐를지는 점점 알 수 없어진다. 빗물에 따라 흘러가는 것 같고 바람을 따라 찾아오는 것 같다. 쓸모없는 고민일지도 모른다. 아무런 생각도 하려 들지 않으면 편해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람이고 싶다. 내가 생각하는 사람다운 사람이고 싶다. 사람이고 싶다.

여전히 하얀 세상에 살고 있다. 빗물에 일그러져도, 가위에 난도질을 당해도.

나는 하얀 세상에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