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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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과거를 거울삼아


광장에 도착한 잔은 그 참혹한 광경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미 사건으로부터 만 하루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광장에는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고 곳곳에 핏자국과 그을린 자국이 있었다.


‘이런 끔찍한…”


잔이 무언가 말하려 할 때, 누군가 그녀를 불렀다.


“르블랑 양?”


잔은 목소리의 근원을 찾았다. 그는 바로 자신의 스승이자 대마법사인 ‘올리버 링케’였다.


“대마법사님, 오셨습니까.”


잔은 예를 갖추어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참혹하지 않나? 무고한 시민만 50명이 죽었네. 처벌을 받아야 할 용 숭배자들은 전원 자살했고 병사들 역시 부상자가 많아. 그 혼란 때문에 시체가 수습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네.”


잔은 어제 일을 떠올리며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어제 이곳에 있었습니다. 로베르트가 카이저님을 살해하려던 것을 저지했었지요. 그때만 해도 그가 순순히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오판이었습니다. 그때 그의 머리통을 날려버려야 했어요.”


올리버는 그런 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자신을 자책할 필요는 없다네, 나 역시도 아무런 의심 없이 로베르트를 보내주었지 않나? 모든 생명은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 그 누구든 말이야. 지나간 과거를 후회해 봤자 과거는 과거일 뿐, 절대로 되돌릴 수 없지. 그러니 우리는 오늘을 바라보며 과거를 거울삼아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네. 그러니 더 이상 자책하지 말게.”


잔은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표정을 풀고 미소를 지었다.


“예, 대마법사님.”


“그렇게 성장해 나가는 거지. 자네처럼”


올리버 역시 인자한 미소와 함께 잔의 지팡이를 잡았다. 한 순간 보석에 빛이 일더니 초록색의 보석은 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잔은 너무 당황해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이건…”


“정규 마법사가 된 것을 축하하네, 마나가 너와 함께하기를.”


올리버는 그렇게 그녀를 축복하고는 마법사의 탑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그 소년이 깨어나면 대마법사 올리버 링케가 자네가 그와 여정길에 오르는 것을 허락했다고 전하게.”


잔은 멀어져가는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마치 그에게 마음이 읽힌 것 같았지만 상관없었다. 그녀는 그녀가 마법사가 된 뒤로부터 동경해왔던 분에게 인정받은 것이니까 말이다. 그때, 누군가 뒤에서 그녀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잔은 중심을 잃고 쓰러졌다.


“누구야!”


잔은 땅에 쓰러지자 마자 몸을 돌려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그녀의 눈 앞에 있는 것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숨을 헐떡이는 마리였다.


“이 년이 정신이 나갔나, 어떻게 나를 거기 두고 오냐고!”


화가 머리 끝까지 솟구친 마리는 지팡이로 잔을 사정없이 때렸다. 잔은 이재서야 마리를 도서관에 놓고 온 것을 기억해 냈다. 잔이 자신만 놓고 가버리자 분노한 마리가 여기까지 한걸음에 달려온 것이다.


“미안해! 깜빡 했어!”


잔은 이 상황을 타계하고자 온 힘을 다해 마리를 말렸지만 이미 머리 끝까지 분노한 마리에겐 전혀 들리는 것이 없었다. 사정없이 얻어맞던 잔은 최후의 수단으로 마리를 얼려 버렸다.


“뭐야!”


마리는 바닥부터 시작해 몸 전체를 휘감은 얼음에 단단히 고정되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잔을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격렬하게 지팡이를 휘두르던 그때, 마리의 분노를 가라앉힐 사람이 나타났다.


“수녀님, 여기서 뭐하시는지요?”


연륜 있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리는 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목소리의 주인을 보고는 깜짝 놀라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대주교님 오셨습니까.”


마리는 여러모로 당황한 듯 보였다. 그야 그럴 것이 -그녀의 입장에서- 하늘 같은 대주교의 앞에서 난폭한 모습을 보인 것이 아닌가.

“마리 미테랑 테레사 수녀님, ‘빛의 아이들’에 소속되신 분이 친구 분에게 그렇게 거칠게 행동하시다니요. 본래라면 파면감입니다.”


대주교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날카로운 비수가 들어 있었다. 때문에 마리는 물론 빛의 아이들에 대해 거의 모르는 잔 마저도 그의 말에 위압당한 채 자기도 모르게 마리를 결박한 얼음 마법을 해제하고 말았다. 마리는 다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 대주교님, 하지만…”


대주교는 슬쩍 미소를 지었다.


“요즘 빛의 아이들의 상황도 상황이니만큼 파면만큼은 면해드리겠습니다.”


마리는 기뻐 되물었다.


“정말입니까!”


“하지만.”


대주교는 다시 진지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당신의 솔리스 님에 대한 믿음과 나라를 위한 충성심을 입증한 다음입니다.”


그의 말에 의문이 든 마리가 물었다.


“믿음은 잘 알겠지만 충성심이라뇨?”


“모르셨습니까? 얼마 전에 나타난 용 말입니다.”


그의 말에서 용이 언급되자 마리와 잔의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카이저께서 조금 전에 명을 내렸습니다. 용의 입 협곡으로 진군할 병력이 필요하니 사제 20명을 징병 하라더군요. 이번 원정에 넣어드릴 테니 전투에서 충성심을 증명하세요.”


대주교는 엄숙하게 마리에게 명령했다. 마리는 한치의 망설임 없이 빛의 아이들 특유의 경례를 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모래 아침 종이 울릴 때 남쪽 성문입니다.”


대주교는 그렇게 말하고는 대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마리는 다리가 풀린 듯 주저앉았다.


“으아! 끝나는 줄 알았네!”


“마리, 그나저나 진짜로 가는 거야? 보통 위험한 게 아닐텐데.”


잔은 마리를 보며 말했다. 그러나 잔은 마리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답을 알 수 있었다. 그녀의 눈빛은 이미 모든 것을 다짐한 사람의 눈이었다.


“하, 어쩔 수 없지. 일단 황궁으로 가자. 카이저께 무어라도 보고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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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 신이요, 내 필력은 병신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