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왕성을 나서는 용사의 표정은 퍽 후련해 보여 너덜한 의상과 대비를 이루었다. 비록 주변에 흩뜨려진 건물의 잔재와 채 가라앉지 못하고 부옇게 주위를 덮은 매캐한 흙먼지가 전장의 참상을 적나라하게 성토하고 있었지만, 최소한 용사의 귀환을  '재앙 끝에 홀로 살아남은 생존자'라는 명목으로 손가락질을 할 생명체는 당장은 없을 터였다. 오히려 마왕을 물리친 희대의 영웅이라며 쌍수를 들고 환영한다면 모를까.


"며칠간 말린 빵이나 비린내 나는 육포로 배 채우며 뛰어다닐 일도 없고, 자는 시간을 반절씩 줄여가며 있을지도 모르는 야습을 견제할 필요도 없어."


주변을 배려하느라 강행군에 지친 기색을 보일 수 없었던 용사가 이따금씩 잠이 오지 않으면 모닥불 앞에서 장난처럼 투덜거리던 불만들이었다. 나야 그럴 때마다 대충 말 몇 마디 붙여주며 흘려넘겼지만.


"이제 집으로 가서, 엄마 아빠 동생 보고, 친구들도 만나고, 인스타 계정 파서 맛집 가고 스키장 놀러가고 사진 찍고 다 할 수 있는 거겠지?"


제 원래 살던 세상에는 하늘 나는 철덩이가 세계의 끝에서 끝을 하루만에 건너가고, 말 없는 자동 마차가 집집마다 하나씩은 있다고 했던가. 여고생이라는 직급의 레이디 넷이 모이면 용병단 숙박비 하나가 통째로 날아간다는 말에는 도대체 어떤 세상에서 살아온 건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퍽 상상력을 자극하는 맛이 있는 이야기들이었는데, 이제는 못 듣겠구나.


[어, 그래도 되지. 세상도 구했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


"흫, 누가 들으면 나 혼자 구한 줄 알겠다. 너도 같이 구했잖아?"


[나야 뭐, 너 가는대로 따라간 거고.]


정확히는 끌려갔지. 당사자는 전혀 동감하지 않겠지만.


"아하하. 생각해보니 진짜 오랫동안 같이 다녔네, 우리."


동감이다. 돌이켜보면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처음 야영했던 날 개울에서 했던 질문은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해.]


"뭇, 야! 그건 언제든 할 수밖에 없던 질문이었잖아! 정작 제대로 대답도 안 해줬으면서!"


용사는 붉어진 얼굴로 한 번 쏘아붙이더니, 이내 갑자기 떠올랐다는 듯 내게 물어왔다.


"그건 그렇고, 이제 넌 어떻게 할 거야?"


나인가. 글쎄, 딱히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럴 수밖에 없기도 하고.


[내가 뭐 다른 사람들이랑 말이 통해야 말이지. 아마 또 어디 구석에 처박힐 거 같은데.]


"뭐어? 네 말마따나 세상도 구한 몸인데 그런 취급은 너무하지 않아?"


아니, 그럼 뭐 어쩌라고. 방도가 없는데. 라는 눈치없는 말은 얌전히 목 밑으로 우겨넣었다. 난세에 뜨는 영웅이 있는 반면, 평화로운 세상에 활약하는 영웅도 있는 법. 나야 세상을 지키라고 있는 도구나 다름없으니 이제는 조용히 잊힐 때가 된 거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안 되겠다! 언제나 함께 있었던 친구를 위해, 소원 하나 정도는 특별히 써 줄게!"


그런데 내 친구는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계를 종말로부터 구해주신 용사님께, 여신의 언약을 이행합니다.-


-이제 원래 세계로 돌아가실 때, 마음 깊이 소망하는 것 하나를 가져가실 수 있답니다.-


-자, 무엇을 원하시나요?-


"얘요!"


[어?]


-……성검을요?-


이 말괄량이 친구는, 전쟁도 폭약 덩어리로 하는 세계에 기어코 나를 데려가려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조차 단 하나뿐인 '물건'인, 성검을.


-다음 화, 세계를 구한 성검은 이세계에서 인간으로 다시 살아봅니다...로 연재하는 꿈 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