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작가는 그냥 연중해버렸네... 그럼 일단 리스트에선 빼고 연중 리스트에 넣어야겠다. 얘는 전에 그 작품 쓰던 애랑 필체가 비슷한데? 혹시 모르니까 나중에 찾아봐야지. 얘는 유료화 해버렸네… 그럼 일단 삭제."
화요일 아침 1교시부터 나는 강의실 맨 뒤에서 조용히 노트북을 끄덕 거렸다. 교수님은 아마 노트 정리를 열심히 한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정리는 맞으니까...
나는 나작소를 사랑한다. 뭐라고 해야 할까... 나만이 바라보는 별이라 그런걸까. 어쩌면 나만을 바라보는 별이라 그런걸지도 모르겠다. 아마 시작은 고등학생 때 유명한 독자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웹툰을 보고 나서였다. 그 웹툰 댓글창에는 끊임없는 스포들이 적혀 있었고 처음 본 웹툰에 푹 빠진 나로썬 그 스포 하나 하나가 마치 식재료에 파리가 올라간 것처럼 기분이 불쾌해졌다. 그 이후 내가 먼저 스포하겠다는 약간의 비뚫어진 마음과 혹시 모를 이세계 전이를 꿈꾸며 그때부터 나작소를 모으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모으는 기준은 항상 같았는데, 1. 유료화가 안된 작품 2. 궤도 오르고 난 후 부터 조회수가 한자릿수 미만의 작품 3. 양산형을 그대로 따라가지 않는 작품. 이 3가지다.
그때부터 시작된 모으기 활동은 재수와 3수 때도 이어져 지금 대학교 1학년에 입학하고 나서도 이어지는 중이다. 그것도 점차 발전해 지금은 엑셀 파일로 제목/작가/연재 시작일/연중 혹은 완결 여부/평점/특이사항/까지 정리해 문서로 가지고 있다. 한 4년 가까이 나작소를 모으면서 알게 된 거지만 작가들이 아무리 필명을 바꾸고 다른 장르를 쓰더라도 작가들의 문체나 가끔씩 나오는 부분들에서 티가 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소설 쓰는걸 접지 않는다면 찾으려면 찾아낼 수 있었다. 때때로 필명을 바꾸고 웹툰화 한 작가도 봤고 혹은 정말 연습용으로 대충 끄적이다 도망간 작가들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저런 나작소들을 읽으며 완결 날때 5만원을 후원하며 그동안 감사했다는 인삿말을 남기는 게 일종의 루틴이 되었다. 특히 나를 알아볼까봐 여러 계정으로 다른 말투로 남기는데 혹시라도 작가가 장문의 답글을 쓰면 그 하루는 왠지 모를 행복감으로 가득차 싱글벙글 하기도 했다.
“다음주부터는 말씀드린 대로 조별 과제가 시행되는 거 아시죠? 조는 제가 짜서 올려놓을 테니 꼭 확인하시고 제때 제출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이걸로 수업 마칠게요.”
가장 힘들었던 1교시가 끝나고 나니까 다른 교시 수업들은 훨씬 편하게 들을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과제를 하고 소설을 읽다 자는 게 하루 루틴이였기에 집에 가는 시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애초에 신입생 환영회도 MT도 안간 나이 많은 나를 부를 사람도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집에 와서 과제를 끝마치고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가장 화가 나는 일이 발생했다. 내가 최근에 빠져서 가장 좋아하던 소설이, 분명 올라와야 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올라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소설은 살인사건의 완결이라는 제목으로 주인공은 어느 날부터 꿈에서 살인범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했고 나중에 알고 보니 그 꿈은 일종의 예지몽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을 실제로 미리 본 것이였다. 그러나 수험생이자 일개 고3이였던 주인공의 말을 경찰도 믿을 리 만무했기에 주인공은 그저 증거 정도만 알려주자고 생각하여 경찰에게 메세지를 남겼지만 이를 오해한 경찰이 이를 살인마의 농락이라고 보았고 그 때문에 벌어지던 일들을 묘사한 심리 스릴러물이였다.
“설마 얘도 연중이야? 넌 아니지? 내가 일부러 댓글까지 남겼잖아 왜 안 올라오는데?”
같은 분노의 말을 속으로 삼키고 일단 마지막으로 올라온 회차를 확인하려고 최신화를 누른 순간 댓글이 하나 더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그건 작가의 답글이였다. 내가 남겼던 정말 잘 보고 있어요!! 벌써 100화네요! 축하드려요 라는 감사인사와 함께 보낸 5천원 후원. 그 밑에 작가가 남긴 답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mjlwg1129: 항상 제 소설을 봐주시는 유일한 독자분이 누군지 궁금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다만 안타깝게도 사정이 생겨 소설은 여기서 마무리 될 거 같습니다. 이 소설 역시도 다음 주 수요일 아침 8시에 삭제될 예정입니다. 앞으로의 결말은 독자님이 찾아내실 수 있을 겁니다.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결말은 이미 뒤로한 채 내일이면 사라질 소설을 몰래 복제할까 라는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한편에서는 그건 불법이라는 이성과 유일한 독자이자 후원까지 했는데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라는 자기 합리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시간의 고민 끝에 모든 회차를 몰래 복사한 다음 조용히 노트북에 저장시킨 채로 잠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  채널에서는 최근 이슈가 되고있는 살인사건에 대해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강남의 한 주택에서 30대 남성이 목이 매달려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사건 현장에서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사망한 피해자의 목에서 문양이 발견되어 경찰은 최근 7차례나 발생한 연쇄 살인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특징으로는 사망 후 피해자의 신체에 특정한 문양을 놓고 간다는 것 외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나오지 않아 경찰은 묻지마 살인의 가능성도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더 자세한 소식은 현장에서 이기자가 전해드리겠습니다."
벌써 8번째 발생한 연쇄 살인 사건. 내가 얼추 듣기로는 지금까지는 그 문양 말고는 전부 다른 수법으로 살인을 저지르고 경찰에 증거도 보냈었다고 했었나? 하여튼 미친 놈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직까지 우리 지역에서는 살인을 저지른 적이 없기에 안심할 수 있었다.
어쩌면 무지했던 걸지도 모른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금요일 3교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간의 범죄라는 수업이 있는 시간이다. 교수님이 마치 TV 프로그램처럼 여러 가지 사건을 통해 범죄학의 역사를 알려주시고 또 실제 사건의 이야기를 하며 흥미로운 주제들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자, 오늘은 여러분도 아실텐데, 요즘 뉴스에서 난리난 연쇄 살인에 대해 얘기해 볼까 합니다."
제가 항상 연쇄살인에 대해 하는 얘기가 뭐였는지 기억하시죠? 연쇄살인범들은 어떤식이든 그 흔적이 남기에 연쇄살인으로 본다는 점이였어요. 모두 아시다시피 저번에 알려드린 범인은 특정한 살인방법을 고수했고 다른 사건의 범인은 살인 후의 행동이나 자기과시용 메세지를 보내기도 했죠. 이번에 발생한 연쇄살인사건은 모두 문양을 남긴다고 알려져있을텐데 그 문양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르실거에요. 그러나 오늘은 다행히도 제가 아는 후배를 통해 알아냈기에 그거에 대해 한번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 이 사진이 바로 범인이 남긴 표식이에요. 알아보시겠나요? 학생이 한번 이거에 대한 특징을 말해볼래요? “

“음.. 일단 원형고리 여러개를 접착시켜 만든 문양인거같습니다. 문양의 의미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은 기하학적인 형태가 보인다는 점에서 일종의 단체 심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

“잘 말했어요. 이러한 일관된 형태를 사용한다는 것은 특정한 목적이 있는 살인일 가능성이 높아요. 죽은 피해자들에게서는 어떠한 성범죄의 징조나 약에 대해서도 음성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일단은 복수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다른 의견이 있는 학생? “

나는 차마 답할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복사해놨던 소설 살인사건의 완결에서 주인공이 다녔던 학교의 엠블럼이였으니까.

내가 봤던 회차는 100회가 마지막이었다. 90화 즈음에서 주인공의 신변을 알아챈 범인이 주인공에게 경고하고자 주인공 학교의 학생을 살인하게 되고 이걸 보고 경찰들은 주인공 학교내에 범인이 있다는 오해를 하게 된다. 심리적인 긴장감을 더 주기 위해 죽은 학생의 피에 젖은 교복이 소설에 삽화 되었는데 워낙 특이한 문양이였기 때문에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마 작중에선 학교의 교훈이 원만하고 둥근 사회가 되도록 이바지 하자 였기에 저런 문양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설속 엠블렘이였다는걸 깨달은  순간 알 수 없는 소름이 내 몸을 감쌌다. 무슨 목적으로 소설을 올린건진 몰라도 지금 그 소설은 삭제 되었고. 아마 작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 소설을 가지고 있고, 읽은 유일한 독자였으니까. 만약 그 소설이 일종의 연습장이였다면 나는 살인의 유일한 독자이자 살인자의 회고록을 가진 유일한 인간이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