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사람을 죽였다.


두 손에는 피를 뭍히지 않았다. 완벽한 살인이었다. 증거도 남지 않았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내가 죽인건 바로 나니까.


피대신 눈물이 두 뺨을 타고 흘렀다. 고통대신 공허함이 마음을 비틀었다. 

피부에서 느껴지는 이제 없다. 그저 공중을 휘적이는 바람빠진 풍선의 감각만이 손끝을 저릿하게 할 뿐.


무엇을위한 살인이었을까. 무언가 행동엔 항상 목적성이 따라와야 한다. 그래야만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니다. 우발적이었다. 충동적이라는 표현과는 다르게, 의식하지도 못한채 나는 나를 죽였다.


순식간이었다. 하지만 영원했다. 괴로움이었다. 하지만 후련함도 찾아왔다.


왜인가?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보려도 도통 생각이 나지 않았다. 목적은 이미 공중으로 흩어져 바스라져 내린다. 

남은건 나뿐이다. 모든 감정이 배제되고 골머리를 썩으며 구석에 틀어박힌, 바로 나.


왜 그랬을까?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조차도 몰랐기 때문이다. 

어째서 나는 내 자신을, 내 감정을, 내 존재를 살해한 것인가. 

감정이 사라지고, 존재가 사라지고, 자신이 사라진다면 더 이상 이전의 사고를 기억할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전의 기억은 생생하다. 난 분명-


그래, 난 분명 나를 보호하고 있었다. 나를 대변했다. 내가 나로 있음에 감사하고 있었다.

하지만 순간의 감정에 져버렸다. 나는 다른사람을 죽였다. 


어째서?


신경에 거슬렸다. 그렇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객관적인 생각은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차가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감정이 머리를 조종했다.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은 없었다. 나는 집행했다. 다른사람을 죽였다.


말로써, 대답으로서 다른사람을 죽여버리고 말았다.


그럼 왜 난 나를 죽였나.


그렇지 않겠다고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은 이성을 지배한다. 이성을 짓누른다. 이성을 집어 삼킨다.


나는 삼켜졌다. 끝이 보이지 않는 절망으로,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칠흙같은 감정의 심연으로.


심연은 사람을 홀린다. 나또한 홀렸다. 그들이 속삭이는 매혹적인 달콤함에 속아 넘어갔다.


'넌 그렇지 않잖아?'


'저 사람은 욕먹어도 돼.'


아, 이 공허한 속삭임, 간드러지는 귓가의 찬가.


그 누구도 이런 달콤함을 거부할 수  없을것이다.

이건 깊은 감정의 끝에서 나오게된, 잔악한 인간의 본성이니까.


나는 본성을 음미한다, 심취한다, 그리고 집어삼킨다.


게걸스러운 식사는 본성이 닳기 전까지 계속된다. 탐욕스럽게, 그리고 더럽게 먹어치우는 나만이 남게된다.


그러다 빛이 찾아온다. 반대편 이성의 구원. 내쳐진 이성은 나를 다시 심연의 구렁에서 겨우 끌어낸다.


끌어진 나는 잠시 눈 앞의 식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분노하다, 이내 살이 우스꽝스럽게 오른 날 바라보며 절망한다.


이러지 않기로 했는데, 이러려고 내가 중립을 유지하는게 아닌데.


실수는 반복된다. 실수가 반복되면 그건 잘못이라는 이야기가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이 유혹을 뿌리치지 못할것이다. 아마, 영원히 그럴것이다.


그렇기에 또 다짐을 했다. 다음부턴 남을 함부로 험담하지 않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