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감자 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도구는 사용하지 않는다. 새까맣게 더러워진 손톱을 사용해 조금씩 감자 껍질을 벗긴다.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했다.

잠에서 깨어나고 기다리면 벽에 뚫린 작은 구멍에 감자가 몇 개 나온다. 그러면 남자는 감자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다.

시간이 좀 지나면 감자가 나온 그 구멍에서 질퍽한 무언가의 덩어리가 흘러 나온다. 그건 딱 1끼 주어지는 일용한 양식. 남자는 일을 멈추고 그것을 먹는다.

다 먹고나면 다시 감자 껍질을 벗긴다. 벗겨낸 껍질은 방의 왼쪽 바닥의 작은 구멍에. 껍질이 벗겨진 감자는 방의 오른쪽 바닥의 작은 구멍에.

그러고나면 다시 침대에 눕는다. 피곤할만큼 힘든 일도 아니고 그만큼 시간이 걸리지도 않는다. 단지, 이 외에는 할 것이 없다.

언제부터 이 생활이 시작되었는지 기억이 잘 안 났다. 1년? 10년? 100년? 뭐, 100년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그 정도로 오래 살지는 못하니. 아니, 살 수도 있나? 남자는 확신이 없었다.

남자뿐만이 아니다. 이 곳에 있는 그 누구도 자신이 언제부터 이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 명확히 기억 못 한다.

마치 감옥 같은 시설. 그 수 많은 방에는 전부 침대 하나, 벽의 구멍 하나, 바닥의 구멍 2개, 작은 변기 하나. 그리고 감자 껍질을 벗겨야 하는 사람 1명. 이렇게 똑같은 구성으로 되어있었다.

이따금 대화를 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도들은 전부 수포로 돌아갔다. 그도 그럴게,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대화하는 방법조차 없는 사람들이 의사소통을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나마 서로 보이기라도 하면 표정이나 몸짓으로 간단한 의사 전달은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방의 배치와 창살들은 이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결국 사람들은 의사소통을 포기했다. 이따금 들려오는 한숨이나 앓는 소리. 그 이외의 소리는 감자를 손톱으로 긁는 소리뿐이었다.



침대에 누워 지루한 시간을 보내던 중 드디어 잠에 들었다. 그리고 깨어난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는 모른다.

솔직히 피곤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잠은 귀중하다. 껍질을 벗겨야 되는 감자가 생기기 전까지의 시간을 단축한 것만으로 의미가 있었다.


그 날도 똑같이 감자 껍질을 벗겼다. 그러던 중 갑자기.

''흐앗!''

남자는 짧게 소리를 냈다. 손톱의 끝부분이 깨졌다. 이따금 있는 일이지만, 이번에는 꽤 큰 손톱 조각이 깨졌다.

깨진 손톱 조각은 껍질을 깐 감자를 넣는, 오른쪽의 바닥 구멍에 떨어졌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다른 손가락들을 사용해 감자 껍질을 깠다.

남자가 일을 끝내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리고 께어났다.

곧 감자가 벽의 구멍에 나와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밥이 나왔다. 언제나 그랬듯 질퍽한 무언가. 남자는 그것을 조금씩 입에 넣어 먹기 시작한다.

그런데 입 속에서 짧은 고통이 느껴졌다. 남자는 급히 입 안의 음식을 뱉었다.

그 곳에는 작지만 뾰족해 보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자세히 보기 위해 그것을 눈 앞에 가져 오는 남자.

손톱. 그건 분명 손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