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손톱을 보며 혼란에 빠졌다. 분명 전 날 부서진 손톱. 그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껍질을 거의 다 벗긴 감자. 남자는 그 감자를 핥아 본다. 손의 땀이 묻어 조금 짠 맛이 난다. 그 외에는 특별한 맛이 안 났다.

이번에는 감자를 이로 베어 먹어 본다. 맛있다고 하기 힘든 맛. 비교 대상이라고는 매일 먹는 질퍽한 그 무언가 뿐이지만, 그것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맛 없었다.

남자는 감자를 넣던 구멍 안을 보기 위해 바닥에 얼굴을 붙여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고민한 뒤, 남자는 남은 감자들의 껍질을 벗기지 않고 전부 바닥의 우측 구멍에 넣었다.

이 행위는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기억이 나는 한 예전부터 단 하루도 빠짐 없이 남자는 오직 껍질이 벗겨진 감자만을 우측 구멍에 넣었다.

'습관' 같은 단어로는 설명이 안 된다. 그 행위를 뭐라고 설명해야 되는가. 의식? 강박? 의무?

그런 단어로는 부족하다. 삶. 남자에게, 그리고 그 시설의 모두에게 감자의 껍질을 벗긴 감자를 우측 구멍에, 벗긴 껍질을 좌측 구멍에 넣는 건 삶 그 자체였다.

남자는 자신의 삶을 배신한 것이다.


시설에 갇혀 있는 지루한 시간도, 감자의 껍질을 벗기는 동안에는 조금은 괜찮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험의 대가로 지루함의 연옥에 빠져 있었다.

이번 모험이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이었는 지는 내일... 아니, 다음에 식량이 나올 때. 그때 알 수 있을 것이다.


얼마가 지났을까. 남자는 자고 일어났다. 언제나 그랬듯 감자가 벽의 구멍을 통해 몇 개씩 떨어졌다. 하지만 남자는 감자를 건들이지 않았다.

긴장감과 기대. 정말 오랜만에, 어쩌면 처음으로 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다. 과연 오늘의 식사가 어떻게 나올까. 남자는 그것만이 머릿속에 있었다.



항상 나오던 질퍽한 무언가. 그런데 그 사이에 무언가 듬성듬성 껴 있었다.

감자 껍질. 명백히 감자 껍질이다.

남자의 가설은 이걸로 확신이 됐다.

남자가 지금껏 먹던 것은 감자다. 그 질퍽한 무언가는 남자가 바닥의 구멍에 넣는 감자로 만든 것. 이제 남자는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무언가를 알아냈다는 기쁨도 잠시. 이 사실로 남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보다, 한 가지. 이해가 안 되는 사실이 있었다.

정확히는 몰라도, 감자 껍질을 벗기는 이 행위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남자가 껍질을 벗긴 감자를 다시 남자에게 먹인다. 그리고 그것을 먹은 남자는 다시 감자의 껍질을 벗긴다.

이 사이클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래도 무언가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은 가지고 있던 의욕. 그것이 사라져 가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보내 온 시간은 무의미한가. 남자의 삶은 무의미한가. 남자의 존재는 무의미한가.

아니. 무의미하지 않다. 남자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그렇다면 남자의... 시설 인원들의 이 감자 껍질 벗기는 행위. 그 어디에 의미가 있는가.

껍질 벗긴 감자에 의미가 없다면...

어느 순간부터 남자는 버닥의 좌측 구멍. 껍질을 버릴때 사용하는 구멍을 쳐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