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방패의 전설 모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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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출정


전설에 따르면 창조신 솔리스가 태초의 거인 이미르를 죽이기 위해 바다의 힘을 담은 신비한 금속 아쿠아메탈로 무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불멸의 몰락’은 그 무기들 중 하나이자(총 3가지 무기였다고 하지만 전해지는 것은 ‘불멸의 몰락’ 하나뿐이다.) 초대 카이저 미카엘 드레곤베인이 용들의 전쟁에서 사용했다고 알려진 무기로 무려 3미터에 달하는 길이를 자랑하는 대검이다. 

신기하게도 10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녹이 전혀 슬지 않아 왕가에서 보물로 계속 보관하고 있지만 모든 카이저들이 이 칼을 조금이나마 드는 것 이상은 하지 못할 정도로 무거워 오랜 시간 왕가의 창고에서 잠들다 작위나 지휘관 임명 등에서나 관례에 따라 사용되고 있다. 특히 전쟁에 임할 지휘관을 임명하는 자리에는 오래된 전통이 있는데, 임명 받은 지휘관이 그 칼을 드는 것이다. 사실 그 누구도 제대로 들지 못해 드는 시늉만 하는 관례로 남아 있지만.


카이저 역시 자신의 키를 한참 초월한 칼을 젖 먹던 힘까지 다하여 들고는 자신의 앞에 꿇어 앉은 알프레트의 왼쪽 어깨에 가져다 두고 -사실 ‘올려두고’라는 말이 좀 더 어울렸다- 관례대로 읊기 시작했다.


“…그대는 카이저의 선택으로 군대를 통솔하게 되었다. 그대에게 솔리스의 가호가 함께하여 불굴의 의지로 전투에 임하게…”


곧이어 카이저는 전통에 따라 검을 알프레트에게 넘겼다. 알프레트는 칼을 받자마자 그 무게에 균형을 잃고 휘청이다가 이내 다시 중심을 잡고 겨우겨우 칼을 아주 조금 든 뒤 다시 카이저에게 칼을 넘겼다.


“좋네 알프레트. 경에게 내려진 병사는 궁기병 300명, 마법사 30명, 사제 20명 일세. 위치는 용의 입 협곡, 자네의 곁에서 도와줄 사람도 있네.”


카이저는 칼을 다시 하인들에게 맡겼다.


“도와줄 사람 말입니까?”


“현재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유일하게 용과 싸워본 사람일세.”


이틀 후, 여명이 밝아 오기 직전, 남쪽 성문에 모든 군사들이 모였다. 알프레트는 단상 옆에 앉아 아무 말없이 카이저가 말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알프레트 폰 리히트호펜 님이십니까?”


알프레트는 소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가 카이저께서 말씀하신 용과 싸워본 사람인가?”


아인은 그에게 경례를 하며 답했다.


“네, 그렇습니다. 카이저 님의 명령에 따라 사령관 님을 보좌하게 된 ‘아인 발터’입니다.”


알프레트는 아인을 지긋이 쳐다보았다. 난전을 겪어본 듯 성숙하지만 아직 여러 구석에서 소년의 티를 완전히 벗지는 못한 얼굴이었다.


‘아직 어린 것 같은데… 이런 놈이 용과 싸웠다고?’


“환영하네 아인, 앞으로 잘 부탁하네.”


알프레트는 말로는 아인을 환영하긴 했지만 속으로는 아인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병사 하나가 다가왔다.


“알프레트 사령관 님, 시간이 되었습니다.”


알프레트는 단상 위로 올라가 병사들을 바라보았다. 생애 처음으로 지휘하는 군대지만 그의 마음속에 묘한 자신감이 끓어올랐다.


“전군 집합!!”


알프레트는 자신에게 내려진 군대 350명을 불렀다. 모든 병사들이 알프레트를 바라보며 정렬했다.


“지금부터 우리는 카이저님의 명에 따라 용의 입 협곡으로 진군한다. 전원 각오는 되어 있는가!”


“예!”


알프레트는 정렬된 군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동쪽에서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자 말에 오른 알프레트는 진군명령을 내렸다.


“전군 진격! 드레곤베인의 명예를 위하여!!”


“드레곤베인의 명예를 위하여!!”


함성과 함께 알프레트의 군대 350명은 남서쪽을 향하여 진격했다.


트리움피한에서 용의 입 협곡까지는 말을 타고 하루하고 반나절이 걸린다. 협곡으로 가는 길목에는 수확자의 요새가 있으므로 군대는 요새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그곳에서 보급을 받으면 다음날 낮 무렵에 협곡에 도달하게 된다. 군대가 평원을 달리는 동안 아인은 아무런 말이 없었지만 머리 속으로는 그 용을 어떻게 쓰러뜨릴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날 밤, 아인은 요새 안에서 지도를 보고 있던 알프레트에게 가서 용을 상대할 방법을 물어보았다.


“사령관 님, 용을 상대하실 계략이 있습니까?”


“계략이라고? 당연하지! 아무리 용이라고 해 봤자 갑옷 같은 비늘을 둘렀을 뿐인 일개 축생 아닌가. 마법사를 이용해 용을 하늘에서 끌어내리고 궁병을 이용해 날개나 눈, 입 안 같은 약점에 집중사격 하면 그만이야.”


아인은 단순하다 못해 너무 엉성해 보이는 전략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 용이 쉽게 당해주었으면 지금 아인이 여기 있지 않았으리라.


“사령관 님, 용은 단순한 짐승이 아닙니다. 게다가 저 용은 인간으로 3년동안 모두를 속인 교활한 자이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알겠네. 하지만 발터, 자네는 그 놈을 상대할 방법이 있는가? 내가 경험이 일천하다 해도 정식으로 교육을 받은 엘리트야. 전략을 짜는 데에 있어 자네보다는 뛰어날 것 같은데.”


“사령관 님, 비록 제가 사령관 님 같은 교육은 받지 않았더라도 저는 그 자와 맞붙었기에 알 수 있습니다. 그자의 교활함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투가 시작되는 순간 저는 물론이고 사령관 님 머리 위에서 놀겠죠.”


“알았네, 알았어. 이제 가보게. 자네가 초대 카이저 님이라도 된다는 듯이 해준 충고, 잘 받아들이겠네.”


아인은 더 이상의 대꾸 없이 요새 밖으로 나갔다. 요새 앞에는 알프레트가 개인적으로 데리고 온 호위병 10여명을 제외한 나머지 병사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정처없이 걷던 아인은 잔과 마리를 만났다. 


“아인!”


아인은 모닥불 앞에 앉은 둘의 옆에 앉았다. 잔이 물었다.


“뭐하고 있었어?”


아인은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모닥불을 바라보다가 돌연히 옆구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보았다. 아버지의 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왔다던 오래된 칼은 깊은 바닷물처럼 새파랗게 빛나고, 손 때 묻은 칼자루는 고풍스럽게 반질거렸다. 한참동안 칼을 바라보던 아인은 대뜸 칼을 모닥불에 집어 던졌다.


“이렇게까지 말이 안 통하는 상관이라니…!”


마리가 물었다.


“아인, 무슨 일 있었어?”


아인은 조용히 둘에게 요새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주며 분노와 서글픔에 잠겼다.


“아인, 그만해. 주변에 사람이 많아.”


그렇게 말한 잔은 마법으로 불구덩이에 있던 칼을 꺼냈다. 불 속에 놓였던 아인의 칼은 불에 달궈져 더더욱 푸르게 빛나며 하늘의 별들을 비춰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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