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유랑 패러디


프롤로그


지구도, 우주도 아닌 어딘가.


신화속의 바벨탑과 같은 모양을 한 구조물의 최상층에 수많은 신들이 모여있었다.


“…결국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흔히 마법사의 모자라고 부르는 것을 쓴 노인이 힘겹게 말했다.


“..나는 아직도 이게 맞는 선택인지 모르겠군.”


인간의 머리가 거미의 몸통에 올려져있는, 기괴하게 생긴 자가 말을 받았다.


“….어쩔 수 없었던.. 희생입니다.”


이번에는 백익의 날개를 가진 여성이 읊조렸다.


시스템이란 것이 완성되었으나 신들은 결코 기뻐 보이지 않았다.


치지지직-


띠링!


[시스템이 완성되었습니다.]


[시스템의 목적을 설정해주십시오.]


“..외신들의 죽음.”


번개를 두른 사내가 덤덤히 답했다.


띠링!


[목적, 외신들의 죽음. 맞습니까?]


“그렇다.”


띠링!


[다시 한번 묻습니다.]


[목적을 외신들의 죽음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물론이다.“


띠링!


[마지막으로 묻습니다.]


[정말.. 목적을 외신들의 죽음으로 설정하시겠습니까?]


시스템의 명랑한 효과음이 분위기에 맞지 않게 울려댔다.


그러나 번개를 두른 사내, 제우스는 여전히 차분하게 답했다.


“당연히.“


[…설정되었습니다.]


[차원을 관조합니다.]


[명계, 확인. 천계, 확인. 인계, 확인. 정령계 확인……]


[…'탑', 확인.]


[세계를 분석합니다……]


[의도 파악 완료.]


[시스템 가동합니다.]


이내, 시스템이 가동하기 시작했고,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탑으로 소환되었다.



본편(1)



-으아아악!! 여긴 뭐야!?

-…..숲?

-씨X!! 면접 중이었는데!!


이건 무슨 상황일까.


드디어 돌아버린 건가.


난 분명히 소설을 읽고 있었을 텐데.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웹소설을 보고 있어야 할 나의 눈에 들어온 것은 울창한 숲이었다.


그곳에는 현실에 있다고 해도 믿기지 않을 만한 크기의 나무도 있었고 세상에서 가장 큰 꽃이라던 라플레시아보다도 큰 꽃도 존재했다.


문명의 흔적을 찾아보려 해도 결국 보이는 건 나와 같이 당황한 사람들뿐 이었다.


퍼엉-


효과음과 함께 귀여우면서도 어딘지 모를 위압감을 가진 요정이 등장했다.


….이건 정말 무엇일까.


“이건…꿈일까요?“


짝-!!


스스로 볼을 때려보아도 꿈에서 깨지 않았다.


….아무래도 소설을 너무 많이 읽어서 헛것이 보이나 보다.


「아하하하! 모두 반가워요!!」


파지지직-


주위에 파직거리는 전류를 퍼뜨리며 요정이 웃었다.


요정은 내리 꽃히는 번개의 모습을 취한 상태였다.


-너 뭐야!?

-이거 엄연히 납치인 거 알아!?

-씨발 빨리 돌려보내!!


「흐으음…상황 파악이 더럽게 안 되시는 놈들이구나.」


요정은 미간을 찌푸리고선 한마디를 내뱉었다.


「[터져 죽어.]」


퍽-


“……?”


무언가가 옆에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어떤 액체가 내 얼굴에 튀었다.


설마.


설마.


그럴리가 있겠어?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천천히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역시나일까.


내 눈에 들어오는 건 머리가 없는, 목에서 피가 줄줄 흘러나오는 시체였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악!!!!

-모..모두 진정해요!


손으로 내 뺨에 튄 피를 만져보았다.


따뜻했다.


“뭔..가…요? …이건..도대체.”


이런 건 소설 속에나 있어야 할 전개다.


현실에서 존재할 수 없는 장면이라는 거다.


그런데 왜 내 눈에는 이런 상황이 보이는 걸까.


꿈일까?


그런데 왜 내 감각은 이게 꿈이 아니라 속삭이는 걸까.


뺨을 때려보아도, 피를 만져보아도, 너무나 생생한 감각이 나를 반겼다.


「[모두 아가리 닥쳐주세요~!]」


요정이 한번 소리치자 모든 소리가 사라졌다.


「하아…이딴 데 언령을 쓰다니..」


언령은 보통 드래곤들이 쓰던데.


이 세계는 약간 다른 모양이다.


자괴감이 든다는 듯 한숨을 쉰 요정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아무튼 여러분들은 신들의 후계자를 뽑기 위한 곳.」


「‘발할라’로 초대되셨습니다.」


「‘발할라’는 100층으로 이루어진 탑이고요.」


「그냥 대충 당신들이 판타지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거 다 있으니까 그렇게 아세요.」


「상태창! 하고 마음속으로 외치면 상태창 나오니까 잘 써먹으시고.」


「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는 25층마다 있는 휴식층 중에 첫 번째, 1층 시작의 층입니다.」


「이것만 알면 되니까 지급할 단검으로 알아서 잘 해보세요.」


후계자? 


왜 갑자기 그런 것을 뽑는다는 거지?


요정은 그렇게 내 의문을 풀어주지 않은 채, 대충 설명을 마치고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불친절한 요정이었다.


띠리리링-


[번개의 주인이 설명이 끝났는지 질문합니다.]

[속이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가 좋은 재목이 보인다고 환호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사도로 삼을 인간을 찾고 있습니다.]

[외팔의 검성이 언령 마법을 풀라고 말합니다.]


순식간에 많은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탑등반물에 성좌물이 섞였나 보다.


그나저나 이거 말은 언제 할 수 있는 거지.


파앗-


「아하하…깜빡했네요. [언령 해제].」


「이제 진짜로 갑니다. 잘 지지고 볶고 해보세요.」


파앗-


시스템 메시지가 떠오르자 요정이 민망하다는 듯이 웃음을 흘리며 돌아왔다가 언령을 풀고 되돌아갔다.


-허억…헉..

-사..상태창!!

-아니 씨발 진짜 뭐야!!


사람들의 당황한 반응이 보인다.


이건..정말로 꿈이 아닌 걸까…?


[모두에게 단검(E)가 지급됩니다.]


다시 한번 메시지가 떠오르자 바닥에 단검이 떨어졌다.


다이소에서 파는 싸구려 식칼 같은 게 아닌, 생물을 죽이기 위한 단검.


그런 물건이 내 눈앞에 있다.


정말로 이 이상적인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하…하…하하하하핫!!!”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오고야 말았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탑등반물’의 등반자가 되었는데.


”아아…이 어찌..“


이어서 말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도, 그 누구도 지금 나를 덮친 희열을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으리라.


”아아아..부디 이것이 꿈이 아니기를…“


이 얼마나 바라온 행운이란 말인가!


이 얼마나 꿈꿔온 상황이란 말인가!


더할나위 없다.


설령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내 얼굴엔 미소가 만연해 있을 것이다.


그럴수 밖에 없다.


꿈을 이뤘는데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그것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오던 꿈을.


“하으으으…몸의 떨림이 도저히 진정되지를 않는군요…아아..”


옆의 머리가 터진 시체는 이미 잊은 지 오래다.


‘머리가 폭발한 건 충격이긴 하지만…탑이니까 상관은 없겠지요.‘


내가 지금까지 읽은 웹소설만 수천 개.


이런것에 당황할 리 없다.


”앞으로..몇만의 사람이 죽어나갈까요… 인류가 전멸하는 베드엔딩은 아니면 좋으련만..“


”뭐….상관은 없지만요.“


몇천명이 죽어도, 몇만 명이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게 바로 탑이다.


그런 탑에서 죽음을 중히 여기는 것은 좋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람들의 죽음을 신경 쓰다간 언젠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러니 그딴 것보다는 나의 능력이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더 중요하다.


“제겐 무슨 스킬이 있으려나요..“


평균 이상만 되는 능력이라면 수월하게 탑을 올라갈 자신이 있다.


‘상태창!’


「이름: 손성윤

나이: 24

레벨:1


근력:4 민첩:4 체력:3 지력:8 마나:0

남은 스탯:0

포인트:0


직업: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 (EX)

스킬: 다시 쓰기 (EX)

특성: 천식(-), 다재무능(-), 광기(-), 자아 부정(-), 연기의 귀재(+), 연기의 달인(+), 빠른 성취(+) 」


“이게…뭔가요?“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


‘전투직이 아닌건가요?’


등급은 엄청나게 높지만 비전투직이라면 좋지 않다.


나는 뒤에서 일이나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누구보다 선두에서 탑을 공략하는 자가 되고 싶은 것이다.


”아….이러면 나가린데 말이죠…”


띠링-


그렇게 생각하자 눈앞에 직업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 (EX)]


「당신은 수천 개의 이야기를 읽고 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들은 누군가에게는 그저 소설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상이었습니다.


당신은 수천 개의 세상의 마지막을 보았습니다.


외신들에게 침략받는 세계의 마지막을.


게이트가 열린 세계의 마지막을.


끝없이 되돌아가는 세계의 마지막을.


무와 협을 쫓는 자들의 세계의 마지막을.


수많은 세상을 지켜본 당신.


그중에는 당신이 원하던 마지막도 비극으로 끝나는 마지막도 있었습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기에.


개입 할 수 없었기에.


이제 당신은 원하는 마지막을 볼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갖추었습니다.


이제 당신의 뜻대로 이야기를 다시 쓸 차례입니다.


부디 행복한 이야기를.」


“…..”


두루뭉술한 표현이다.


하지만 내게 가장 잘 와 닿는 표현이다.


“하하..참..”


 이 시스템은 마음이라도 읽을 수 있는 걸까?


”역시 시스템이란 대단하네요..“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스킬 확인.”


띠링-


[다시 쓰기 Lv 1 (EX)


당신이 읽거나 보았던 이야기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아바타를 사용해 들어가게 되며 그 세계에서 얻은 능력과 아이템들은 포인트를 지불해 가져올 수 있습니다.]


[다시 쓰고 있는 이야기]

[이야기의 힘]

[신체 관리]

[인연]

[랜덤 뽑기]

포인트:0


”잠깐.. 뭐라..“


쓱- 쓱-


..눈을 닦아봐도 똑같다.


이게 정말 그 능력이란 말인가.


포인트, 랜덤뽑기, 세계를 드나드는 힘.


너무나 유사한 것이 많다.


정말 그 사기적인 능력이 맞단 말인가.


정말로.. ‘그 유희생활’과 같은 능력이란 말인가.


밸런스 따위는 손쉽게 부숴버리는 그 힘이 내 손에 쥐어진 게 맞단 말인가.


“하하..”


아아..


존재할지 모를 진정한 창조주시여.


이것을..


감당하실수 있겠나이까..?


진정으로..


제게 이 힘을 주셔도 괜찮으시겠습니까..?


“흐으으…”


세계를 넘나든다.


그건 내가 읽었던 이야기들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아니, 무엇을 하지 못할까.


어찌하면 소설 속 주인공들을 농락할 수 있을까..!


‘살인…’


지금까지 몇 명이나 죽였지?


열셋..이었나?


현대에서는 고작 그 정도밖에 하지 못한 것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곳으로 갈 수도 있다.


무공을 쓰는 세계로 향할 수도 있다.


멸망이 닥쳐오는 사지에서 살아볼 수도 있다.


“하아..하아..”


가쁜 숨을 내쉰다.


하지만 전혀 진정되지 않는다.


어떻게 진정할까.


꿈만 같은 곳에서 바라고 바라왔던 능력을 얻었으니.


“흐으으..”


“정말.. 이게 꿈이라면…죽어서라도 다시 꾸고 싶군요…!!”


필시 모든 이가 나와 같이 생각하리라.


***


유희생활.


여러 창작물 속을 돌아다니며 힘을 얻게 해주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 창작물 속에 들어가 있는 동안 현실의 시간은 멈춘다.


창작물 속의 등장인물들과 어느 정도 이상의 인연을 쌓으면 그 등장인물을 불러올 수도 있는데, [인연]이라는 탭을 보면 그것까지 구현된 모양이다.


’원작‘의 주인공은 이걸로 여자를 후리고 다녔지만…


나는 적당히 원작의 주인공에게 최상의 절망을 안겨주는 정도로 만족해야겠지.


”흐으으… 정말 흥분이 가시지를 않습니다..“


그렇지만 역시 최고다.


나도 상상하지 못한 능력이 주어지다니.


이 세계의 창조주께서는 밸런스 따위 신경 쓰지 않으시나 보다.


-내가 왜 초보 검사야!!?

-A급 직업 떴다!!

-애매한데..


자신들의 직업에 일희일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차피 제가 가장 좋은 직업이겠지요, EX급에다 스킬도 엄청난데 이것보다 좋을 리가 있나요?‘


만약 나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이가 있다면 스스로 손에 장을 지지리라.


[영혼을 다스리는 그림자가 조용히 미소 짓는 당신을 주시합니다.]

[기만하기를 좋아하는 밤이 속이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를 불러들입니다.]

[속이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가 제안합니다.]


띠링-


[자신의 직업과 스킬을 공개하라.]

성공 조건: 자신의 직업과 스킬을 입 밖으로 외쳐라.

보상: 스킬- 기만(B)

실패 시: 없음]


“이건 또 뭔가요?“


나는 손을 휘저어서 퀘스트창을 치웠다.


굳이 사기 스킬을 가졌다는 걸 밝혀서 좋을 건 없다.


너무나 뛰어난 능력은 질투의 대상이 되기에 좋으니까 말이다.


그 질투도 짜릿하기야 하겠지만.. 힘을 숨긴 악당..이라든지 컨셉놀이를 하고 싶기도 하다.


[속이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가 광소를 터뜨립니다.]


[외눈의 현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외눈이라면….오딘?”


“아스가르드의 군주, 오딘이겠군요.”


북유럽의 최고신이 나를 왜 주시하는 거지.


단순히 현명한 선택을 해서..일까?


다른 이유는 생각나지 않는다.


“그러면 장난꾸러기는 로키인가요?“


로키는 소설 속에서는 대부분 선역이지만…


”..뭐, 그러니까 위험하지는 않겠죠.“


신들과 사이가 나빠서 좋을 이유가 없기도 하고, 일단은 친하게 지내 보자.


나는 이어서 스킬을 확인했다.


[다시 쓰고 있는 이야기]


[없음]

[없음]

[없음]


[선택 가능한 이야기]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템빨

명탐정 코난

나 혼자만 레벨업

화산귀환 

환생한 암살자는 검술천재

나노 마신

전지적 독자 시점

1레벨 플레이어

2레벨로 회귀한 무신

 

‘10개라..‘


처음으로 다시 쓸 이야기를 고르자면


난이도가 낮은 코노스바, 혹은 코난 아니면 게임판타지인 템빨 정도…..이려나


템빨은 파워인플레가 미치긴 했지만 겜판이니 위험하진 않겠지.


아니, 설마 NPC로 들어가게 되나?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니 템빨은 제외하자.


“흐음…”


‘그러면….역시 코노스바가 제일 괜찮으려나요.’


‘코난은 따로 강해질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아쉽군요.‘


개인적으로 코난은 굉장히 좋아하는 세계라서 아쉽다.


그 사신의 마수가 사람들을 덮치는 광경은 한번 쯤은 보고 싶었는데..


나중에 언젠가 꼭 한번 들어가 보도록 하자.


“후우…일단 가봅시다.”


좋아. 처음은 무력을 키울 수 있는 코노스바다.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바타가 로딩됩니다.]


-유스케 성윤-

25세, 자동차에 치여 사망

여신 아쿠아에게서 특전을 골라야 한다.


[선택 가능한 유일한 아바타입니다.]


[자동으로 선택됩니다.]


[세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물론…은 아니고.’


‘다른 능력도 확인은 해야하는데.. 흥분했네요.‘


유희생활이라는 능력 덕분에 너무 흥분해 무작정 다른 세계로 들어갈 뻔 했다.


적어도 다른 기능들은 확인하고 갔어야 했는데.


“하하…오늘은..유난히 저답지 않네요..”


사실 이렇게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도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너무나 꿈만 같은 상황인지라.


아직도 자고 일어나면 원래와 같은 침대에서, 방안에서 깨어나는 게 아닐까 하고 걱정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바라고 바랄 뿐이다.


“꿈이라면 영원히 깨지 않기를…”


….하하.


나도 주책이구나.


갑자기 우수에 잠겨서는 뭔 짓인가.


..아니지.


그래도 이게 가장 ‘나‘ 다운 것 같네.


나는 고개를 저어 상념에서 깨어나 다른 능력들을 확인했다.


’다른 기능들은…이 정도군요.‘


다시 쓰기의 여러 항목들을 모두 확인해보았지만 지금 당장 사용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이 랜덤뽑기 하나만 빼고.


[일반 뽑기]

1회에 1포인트 사용.

11회에 10포인트 사용.


[고급 뽑기]

1회에 100포인트 사용.

11회에 1,000포인트 사용.


[최초 열람! 고급뽑기 11회권 지급!]


“흐음…최초 열람이라..좋군요.“


공짜로 1,000포인트를 번 셈이나 다름없다.


’바로 사용한다.‘


띠리리릭-


천상의 티슈 x2

정력옥 x1

정령옥 x1

질 좋은 셔츠 x1

성스러운 물 x1

스킬-혼란(B+)

근력 상승의 가루 x1

스킬-정신방벽(A)

장검 x1

스킬-검술(F)


“호오..“


뽑기가 끝나자 결과 창이 띄워졌다.


결과엔 ‘원작‘에는 없었던 처음 보는 아이템도 있었다.


[정력옥 (Unknown)

뛰어난 정력제다.]


”허…정령옥도 아니고 이게 뭡니까.“


….그래도 나쁘진 않다.


[근력 상승의 가루 (Unknown)

코로 들이마시면 근력이 1 증가한다.]


”아니…흰 가루를 코로 들이마셔야 한다고요?”


마약중독자로 오해받기 딱 좋다.


정말 좋은 물건이다.


[장검 (E)

철로 만들어진 평범한 장검이다.]


[검술 Lv 1 (E)

아주 약간 검술에 보정을 받는다.]


“이건 좋네요. 레벨을 올리면 등급도 올라가는 걸까요?“


[혼란 Lv 1 (B+)

상대방과 대화할 때, 상대방의 이성을 흐리게 하고 감정적으로 만든다.]


이것도 상당히 도움이 될만한 스킬이다.


설명은 약간 애매하지만, 등급을 보면 큰 도움이 될 터다.


어쩌면.. 이 스킬이 의도치 않은 기회를 만들어낼지도 모르고 말이다.


[정신방벽 Lv 1 (A)

강력한 정신방벽이 세워집니다. 대다수의 정신계 공격에 저항합니다.]


이건 든든한 패시브 스킬이다.


웬만한 정신계 스킬에는 면역이겠지.


앞으로는 마음 편히 차원을 유랑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수의 신들이 당신이 보고 있는 화면을 궁금해합니다.]


“신들이란 분들은 그걸 왜 궁금해하는 건지…“


라고 대꾸한 나는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언노운…불명이라…‘


왜 일부 아이템만 등급이 불명일까.


‘….탑에 등록되지 않은 아이템..이라는거려나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아이템을 만들어낸 시스템은 탑과는 다른, 별개의 존재라는 뜻인 건가?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건 다른 아이템을 더 확인해보고 생각하자.


-오오 인벤토리다!

-오 장풍!!


’인벤토리? 뽑은 게 그쪽에 소환된 건가요.‘


“인벤토리.”


그렇게 말하자 허공에 다른 공간과 연결된 포탈이 생겨났다.


”생각보다….크네요?“


작은 방크기의 인벤토리에는 내가 뽑은 물건들이 쌓여있었다.


“흠…이런 식인가요.“


’……‘


씨익-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다.


”진짜로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불가능해도 재미있겠어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아쉽다.


언젠가 꼭 해보도록 하자.


-오빠..저 사람 뭐야..?

-가까이 가지 말자..

-악당 같아..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아..


짜릿하다.


이런 반응이라니…


지금 나는 실눈에 비열한 미소를 지은 모습일 것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기억하지 못한다고.


아니, 기억하지 않는다고 답하겠다.


“..흐으..”


나는 그 누구보다 비열한 미소를 지은 채 바닥의 단검을 인벤토리에 던져 넣었다.


물건이 제대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 인벤토리에서 한 물건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있네요.“


나는 포탈 안의 작은 방에서 작은 봉지에 포장된 가루를 집고 꺼내 연 다음 바로 들이마셨다.


[번개 맞은 의술사가 마약은 안된다고 소리칩니다.]


“후훗..마약이라니요..?”


앞으로도 그렇게 생각해주면 좋으련만..


[근력이 1 증가합니다.]


가루에서 딱히 특별함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다행히 능력치는 올라갔다.


중독 같은 건 없겠지?


‘세계 입장.’


띠링.


[시간이 정지합니다.]


마음 속으로 외치자, 시스템 창이 울리며 주변이 완전히 멈춰버렸다.


솔솔 불던 바람은 사라졌고, 사람들의 말이 멈췄다.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았고, 나 자신 조차도 움직이거나 말할 수 없었다.


[기억이 전이됩니다]


두 번째로 메시지가 떠오르자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다.


약간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올 뻔 했으나, 성대마저 멈춰버려 여전히 정적만이 공간을 채웠다.


이내, 무언가 이질적인 것이 나에게 흘러들어 왔다.


‘..유스케 성윤의 기억이군요.’


평범하게 자라와 블랙 기업에 입사.


피로 해소제를 구매하러 가던 중 차에 치여 사망.


그의 삶은 불운했었다.


‘..뭐, 부럽네요.’


[세계가 로드됩니다.]


츠츠츠츳—


‘후우…여긴?’


기억의 전이가 끝나자 변화가 일어났다.


잠시 공간이 뭐라 표현할 수 없게, 이질적으로 바뀌는 듯하더니 이내 안정되었다.


눈에 보이는 풍경은 넓은 대수림에서 검은 공간으로 바뀌었고 곧 여신의 말이 들려왔다.


“저기, 빨리 좀 할래? 어차피 너 같은 일반인한테는 별 기대도 안한다구.“


아, 코노스바 세계관에 왔구나.


”뭘 멍때리고 있는 거야? 빨리빨리 고르라니까?“


왠지모르게 빡치는 목소리.


그러면서도 아름다운 외모.


여신, 아쿠아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저도 그냥 아쿠아를 고를까요…‘


그러고는 싶지만, 이 중요한 특성을 날릴 수는 없다.


“하아….그러면 이걸로..부탁드리겠습니다…?“


[재생

심장과 뇌가 모두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재생합니다.

신체결손도 수복할 수 있습니다.]


가장 무난한 특전을 골랐다.


이걸로 적어도 비명횡사할 일은 없을 것이다.


‘지금은 이게 가장 좋은 선택입니다.’


아쿠아는 내가 고른 특성을 쳐다보더니 상관없다는 듯 말했다.


“흐으음….뭐 좋아. 유스케 성윤, 이제부터 널 이세계로 보낼 거야. 마왕토벌을 위한 용사 후보중 한 명으로 말이지.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만약 마왕을 죽이면 신들이 포상을 내릴 거야.“


“네 소원을 하나만, 설령 그것이 어떠한 소원이라도 이뤄주지.”


“소원이라…”


만약 마왕을 죽이게 되면 무슨 소원을 빌까.


사기적인 특성을 달라고 해야 하나.


 “자 용사여! 수많은 용사 후보들 중에서 네가 마왕을 쓰러뜨리길 응원할게. 어차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말이야. 이제 빨리 가.“


“…..”


어떻게 저렇게 말을 얄밉게 할 수가 있지.


[혼란]때문에 본성이 드러나는 건가.


카즈마와 같이 이세계에 떨어지면 골탕을 좀 먹여야겠다.


슈유우웅-


***


어느새 내가 서 있는 공간이 바뀌었다.


“여기가..베르제르그의 엑셀 마을이군요..“


중세풍의 건물들.


활기찬 분위기의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사람들의 복장을 보니 마치 영화의 촬영을 보는 듯했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돌아본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일단 돈이 필요한데요..”


여기는 모험가 등록에도 수수료가 필요하니 무조건 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땡전 한 푼 없는 거지.


하지만 다행히 생각해놓은 방법이 있었다.


‘질 좋은 셔츠를 팔면 되겠지요.’


나는 주변의 사람들 중 한 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혹시 여기는 특이한 물건을 사고파는 곳이 어딥니까?“


”으음? 다른 곳에서 왔나? 특이한 물건 같은 건 똑같이 길드에서 사줄 거라네.”


”호오…감사합니다.“


행인의 대답에 나는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친절한…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그러자 남자는 왜인지 몸을 덜덜 떨며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었다. 


“…가..가는 길은 아나? 앞쪽으로 조금만 가면 보이는…큰 건물이 모험가 길드일세.“

“뭐….아무튼 초보자의 마을, 엑셀에 온 것을 환영하네. 그…그대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나에게 여러 가지를 알려준 고마운 행인은 어째서인지 황급히 말을 마치고는 빠르게 달려갔다.


….빨리 도망쳐야겠다는 말을 중얼거리며…


”흐음~…아무리 제 모습이 이래도 생긴 것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나쁜데요…“


나빠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앞으로도 그렇게만 행동해주시길..


나는 길드로 가는 길을 듣고 나서 곧바로 길드로 향했다.


“일단 길드에서 질 좋은 셔츠를 팔고 모험가 등록을 해야겠죠?“


지구의 물품은 대체로 비싸게 팔리니까 수수료 값은 될 것이다.


‘…근데 이거 지구의 옷이 아니지 않나요?’


뭐 그래도 이름부터 질 좋은 셔츠니 어느 정도 값은 나가리라.


***


나는 모험가 길드라는 이름이 적힌 건물 앞에 섰다.


길드는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2층인데다가 넓기도 해서 알아보기 쉬웠다.


모험가 길드.


다르게 말하면 그냥 인력사무소나 다름없다.


다른 점이라면 조금 더 위험하다는 점일까?


“후우…여긴가요.”


끼익-


문을 열고 들어간 길드에서는 맛있는 음식의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점과 식당을 겸업하니 그런 거겠지.


‘여기 음식수준은 기대를 안 했는데.. 다행이네요.’


군침이 돈다.


“카운터가….”


나는 나를 유혹하는 음식을 무시하고 곧장 카운터로 향했다.


창구중에 하나만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길래 무슨 일인가 쳐다보았더니 접수원이 거유에 미인이더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나는 다른 창구로 갔다.


“어…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갈색머리의 단발 여직원이 어딘가 어색하게 웃으며 나를 응대했다.


“이 옷을 팔고 모험가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만…“


나는 질 좋은 셔츠를 꺼내 올려두었다.


”상당히 고급스러운 옷이네요. 서..설마 장물은 아니겠죠?”


“흐음…글쎄요…?”


내가 능글맞게 미소를 짓자 직원이 표정을 굳혔다.


..날 무서워하지 않다니..


[혼란]도 있는데.


역시 모험가 길드에는 험악한 인간들이 많아서 적응되어 있는 건가.


아니면 단순히 감정이 얼굴에 잘 드러나지 않는 건가.


…아쉽다.


앞으로 코노스바 세계관을 자주 오게 될 것 같지는 않다.


아쉬움을 마음속으로 삼키고 말을 이어나갔다.


”하하…당연히 장물은 아닙니다…애초에 장물이라면 당당히 모험가 길드로 올 리가 없잖아요..?“


“그런가요…”


여직원이 경계심이 넘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옷감의 품질이 아주 좋네요..예..정말로 좋네요..이 근방에서는 이 정도로 좋은 옷감을 사기는 힘들텐데도요..”


“…이 정도면 4만 에리스에 매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흐음… 그런가요..“


나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뭐, 그 가격에 팔겠습니다.“


그 모험가 길드니 가격은 어련히 잘 쳐줬겠지.


길드가 선량한 시민을 등쳐먹을 리 없으니 말이다.


1에리스가 1엔.


그러니까 4만 엔. 


즉 약 40만 원에 질좋은 셔츠를 팔았다.


직원은 옷을 들고 위층으로 사라지더니, 짤랑거리는 작은 자루를 들고 내려왔다.


“여기 모험가 등록 수수료 1,000에리스를 제외한 39,000 에리스입니다.. 모험가에 대한 설명은….필요 없으시겠지요?”


“뭐…그렇긴 하지만 섭섭한데요? 그렇게 몸을 쓰는 일에 잘 맞아 보이는 얼굴은 아닐 텐데요..“


그렇게 우락부락한 체형은 아닌데..


“하아…그러면 여기 이 수정에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그러면 모험가님의 정보가 이 카드에 등록될 거예요.“


직원이 내 말을 무시하며 푸른 수정구와 카드를 내밀었다.


‘이게 바로 그 측정기…’


수정구는 애니로 보던 것과는 약간 달랐다.


계속 은은한 빛을 내는 것이..


나 비싸요~ 나 신비해요~ 하는 느낌이랄까.


‘능력치가 어느 정도로 나오려나요..‘


다른 만화처럼 능력치가 너무 높아 부서지거나 그러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없겠지.


신체능력이 좋지는 않으니 평균 이하일 것이다.


나는 수정구에 손을 올렸다.


이내 수정구가 번쩍이며 카드에 글자가 적히기 시작했다.


‘진짜로 보게 되니까 신기하군요.‘


조금 시간이 지나자 수정구의 빛이 사그라들며 작동이 멈췄다.


직원은 카드를 꺼내 살펴보고는 의아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음….이럴리가…? 왜 지력이랑 행운만 빼고 다 평균 이하라고 나오는 걸까요…? 모험가님..?“


“그걸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능력치가 낮다는 걸로 두 번이나 죽이시다니..섭섭하다구요..?“


말은 능청스럽게 했지만 내 속은 썩어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스탯이 그렇게나 처참하다니..


‘지력이랑 행운만 빼고 다 평균 이하라..’


내 신체능력은 내 생각보다도 좋지 못한 모양이다.


“..그러면 전직이 가능한 직업은 모험자 뿐입니다만..”


“다행이네요.“


“예…? 전직은 가능하지만 모험자는 고유의 스킬이 따로 없는데도 괜찮으시겠어요?“


”후훗…..오히려 원하는 바입니다.”


모험자.


고유의 스킬은 없지만 다른 클래스의 스킬을 배울 수 있는 직업.


굳이 다른 직업을 선택해 전용 스킬을 얻는 것보다는 랜덤뽑기에서 좋은 스킬이 나왔을 때 그 스킬에 맞는 능력을 배울 수 있는 모험자가 더 좋은 선택이리라.


….사실 좋은 직업은 얻을 수도 없지만.


얼핏 쳐다본 내 스탯은 그리 높지 않았다.


내 스테이터스는 이러했다.


이름:유스케 성윤

레벨:1

성별: 남자

나이:25

종족:인간

힘 20 민첩 16 체력 12 마법력 17 지력 32 행운35


스텟은 대충 현실 스텟의 4배로 계산된 것 같다.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모험가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스케 성윤님, 길드는 당신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직원은 환한 미소…가 아닌 꺼림칙한 표정을 지으며 나의 모험가 생활의 시작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다 좋았지만, 나에 대한 반응이 너무 심심해서 아쉬웠다.


하아…


현실에선 모두가 나를 두려워하며 피했는데…


아아…


그 반응을 생각하니 또 현실로 가고 싶어진다.


날 두려워하는 그 감정.


어딘가 어색한 표정.


“아아..참아야하는데..”


..아무래도 참기가 힘들 것 같다.


“하아…이미 중독돼버렸단 말이죠..?”


조금만…


조금만 더 참자.


아직 카즈마를 보지 못했다.


카즈마하고 안면만 튼 다음, 다시 현실로 가서 반응을 즐기자.


……근데 카즈마는 어디 있는 거지?


***


‘망할…다 외모만 보고 저쪽으로 가네..’


”하아..“


요즘 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저런 지방 덩어리가 뭐가 좋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내 몸을 내려다 보았지만, 발이 보이는 데는 그 어떠한 불편함도 없었다.


“치잇….”


‘저런 거..있어봐야 불편하기만 하지.. 없는 게 더 좋다고!!’


새로운 옆의 직원 때문에 실적이 확 줄어버렸다.


아름다운 외모…글래머러스한 몸매..


질투가 난다.


“하아..이러면 안 되는데..”


그렇게 중얼거리자 새로운 남자가 길드의 문을 열고 들어왔다.


“…..?”


감은건지 뜬 건지도 알 수 없는 눈. 


어쩐지 비열한 미소.


마왕군의 첩자가 저렇게 생기지 않았을까?


‘설마….진짜 첩자인가? 어떻게 해야 하지?’


남자는 옆의 줄에 한번 눈길을 준 후 나에게 찾아왔다.


“어…어서 오세요. 무슨 일로 오셨나요..?“


‘너무 어색했나…? 설마 지금 여기서 해코지하진 않겠지?’


내가 머릿속으로 여러가지 생각을 하자 그제야 남자가 입을 뗐다.


“이 옷을 팔고 모험가 등록을 하려고 합니다만…“


 그리 말하며 남자는 내게 옷을 내밀었다.


‘옷…? 이 옷은…’


남자가 내민 옷은 흰 상의였다.


이상할 만큼 좋은 옷감으로 만들어진.


”상당히 고급스러운 옷이네요. 서..설마 장물은 아니겠죠?”


이 정도면 귀족이 입어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의 옷이다.


이 남자는 어떻게 이 옷을 구한 걸까.


“흐음…글쎄요….?“


‘진짜로 장물인가..? 아니 그럼 왜 이곳으로 온 거지?’


내가 표정을 굳히자 그제야 남자가 대답했다.


”하하..당연히 장물은 아닙니다..애초에 훔친 물건이라면 당당히 모험가 길드로 올 리가 없잖아요..?“


‘그렇긴 한데..왜 여기로 온거지.. 아무리봐도 장물인 것 같은데..‘


불분명한 출처, 수상한 외모…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오히려 장물이 아닌 게 이상할 정도로.


“옷감의 품질이 아주 좋네요..예..정말로 좋네요..이 근방에서는 이 정도로 좋은 옷감을 사기는 힘들 텐데도요..”


내가 이상하단 투로 말해보았지만, 그는 은은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사람이..저렇게 비열해 보일 수가 있나? 애초에 진짜 사람은 맞는 건가?’


‘한번…떠볼까?’


“…이 정도면 4만 에리스에 매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부러 낮은 가격을 불렀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이 옷의 가치를 모른다는 것이겠지.


“흐음~… 그런가요..”


남자는 그렇게 읊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망했다.’


그의 표정에는 미소가 담겨있었다.


아주 비릿한 미소가.


‘저 남자가 이 일을 떠벌리고 다니면 어떡하지?설마 이걸로 잘리진 않겠지?지금이라도 빌어야 하나?어떻게하지?원래라면 좀 의심스러워도 이런 짓은 안 했을텐데.정신 계열 마법이라도 건 건가?’


오만가지 생각을 하니 마치 머리에 과부하가 걸린 것만 같았다.


”뭐, 그 가격에 팔겠습니다.“


‘….뭐?’


뜻밖에도 남자가 의외의 말을 했다.


‘이…이걸로 날 협박하려는 건가?’


남자는 이 가격이 물건의 가치에 비하면 부족하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지 않다면 나를 향해 그런 비릿한 미소를 지을 리가 없었다.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도망치듯이 위층으로 올라갔다.


터벅터벅-


위층에 도착한 나는 가쁜 숨을 내쉬며 털썩 주저앉아버리고 말았다.


“허억..허억..저 남자..대체 뭐야!?”


다리가 완전히 풀려버렸다.


“진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도대체가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 걸까.


도저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으으…내려가서 저 남자를 또 봐야 한다니..”


아직도 그 비릿한 미소를 떠올리면 몸이 부들부들 떨린다.


“하아…어쩔 수 없지.. 할 수 있다!!”


나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돈과 함께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밑으로 내려가니 그 남자의 얼굴이 다시 보였다.


다행히 그사이에 무슨 수작을 부리진 않은 모양이다.


“여기 모험가 등록 수수료 1,000에리스를 제외한 39,000 에리스입니다.. 모험가에 대한 설명은….필요 없으시겠지요?”


왠지 이 남자라면 이미 다 알고 왔을 것만 같다.


“뭐 그렇기는 하지만…섭섭한데요? 그렇게 몸을 쓰는일에 잘 맞아보이는 얼굴인가요?“


마왕군의 첩자같이 생겨서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아…그러면 여기 이 수정에 손을 올려주시겠어요? 그러면 모험가님의 정보가 이 카드에 등록될 거예요.“


이 남자는 도대체 얼마나 강할까.


이내 남자가 수정구에 손을 올리자 수정구가 남자의 능력을 측정하고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짧은 시간동안 적막이 이어졌다.


남자는 흥미롭다는 눈빛으로 수정구를 바라보았고 나는 그런 남자만을 주시했다.


마침내 측정이 끝났고, 나는 저 남자의 능력이 기록된 카드를 살펴보았다.


‘이게…뭐야!?‘


결과는 형편없었다.


행운과 지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치가 평균 이하.


오히려 상인에나 어울리는 능력치였다.


’저..불길한 남자가 이정도 밖에 안된다고? …그럴 리가.‘


저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압박감(심리적).


흉흉한 기세(착각).


절대 저 남자는 이런 허약한 인간이 아니다.


“음….이럴리가…? 왜 지력이랑 행운만 빼고 다 평균 이하라고 나오는 걸까요…? 모험가님..?“


도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그걸 저에게 물으시는 겁니까? 능력치가 낮다는 걸로 두 번이나 죽이시다니…섭섭하다고요..?”


남자에게 물어도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거짓을 말했다.


‘저 웃음..기분나빠.’


“..그러면 전직이 가능한 직업은 모험자 뿐입니다만..”


“다행이네요.“


“예…? 전직은 가능하지만, 모험자는 고유의 스킬이 따로 없는데도 괜찮으시겠어요?“


”후훗…..오히려 원하는 바입니다.”


‘오히려 원하는 바…라고? 무슨 생각이지?’


모험가만의 특별한 점이라 하면 시작 스킬이 없는 대신 모든 종류의 스킬을 배울 수 있다는 점.


그 점에 주목해 빠르게 머리를 굴린 나는 어느 한 추측을 생각해냈다.


‘설마…어떤 스킬들을 모으면 마기와 융합해 엄청난 위력을 내는 건가!?’


비약일 수도 있지만 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모든 절차가 완료되었습니다. 모험가가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유스케 성윤 님, 길드는 당신이 앞으로 보여줄 활약…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남자는 짧은 인사를 남기고는 밖으로 향하는 듯하더니, 돌연 멈춰 섰다.


‘….설마..지금 다른 마왕군과 통신 중인 건가!?‘


나의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하듯 남자는 갑자기 주점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동료들을 기다리는 거겠지.‘


그리고 몇 시간 후.


남자는 두 명의 일행과 마주했다.


푸른 머리의 소녀, 그리고 특이한 옷을 입고 있는 갈색머리의 남자.


‘…저런 옷을 마왕군이 입는건가..?’


특이하긴 하지만 편해 보이긴 하다.


방어력은 잘 모르겠지만.


그 남자는 그들에게 돈을 건네고 유유히 밖으로 사라졌다.


마음 같아서는 따라가 보고 싶지만…업무중이니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저..저기..”


그 남자의 일행이었다.


역시 이들도 모험가로 잠입(?)하려는 것일까?


‘이 사람들도…능력치를 이상하게 낮춰서 왔으려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이들의 능력치는 대단했다.


”….말도 안 돼.“


푸른 머리의 소녀, 아쿠아는 행운은 낮았지만, 그 외 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고.


갈색 머리의 사내, 카즈마는 신체능력은 처참했지만, 사람이 가질 수 있는 건가 싶을 정도의 엄청난 행운 능력치를 소유하고 있었다.


‘진짜…뭐지?’


이들은 뭔가 이상하다.


‘…대충이라도 한번 감시해보자.’


적어도 길드에서는 수작을 부리지 못하게 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있으리라!


***


어차피 그놈들도 길드로 올게 뻔하니 그냥 길드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두시간 쯤을 기다리자 푸른 머리의 소녀와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복장을 한 갈색머리의 남자가 들어왔다.


나는 그 푸른 머리의 소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또 보네요, 여신님~?”


“으읏..넌!!”


“이야..여신께서 여기 올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나는 알았었지만.


“뭐야. 아는 사람이야, 아쿠아?”


갈색 머리 그리고 현대의 옷.


카즈마다.


“…너 전에 여기로 전생한 사람이야. 특전으로 [특성-재생]을 받아갔지.”


“뭐!? 여신이 지랄하는 걸 보고도 정상적인 특성을 고르다니….”


놀라는 포인트가 저게 맞나?


…딱히 상관은 없겠지.


“반갑습니다. 저는 유스케 성윤이라고 합니다..“


난 카즈마에게 손을 내밀었다.


“난 사토 카즈마! 앞으로 잘 부탁해!”


카즈마가 내 손을 잡고 흔드며 말했다.


“설마 저 여신을 특전으로 고르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아…아니 그건 나도 홧김에…“


아무리 홧김이라도 저 여신을 고르는 건 정상이 아니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주인공하고는 친분을 쌓아둬야겠지.


”후후…농담입니다. 모험가 등록은 저쪽의 카운터로 가셔서 하시면 됩니다.”


”오! 고마워.“


”칫…“


아쿠아는 왜 저렇게 삐져있는 걸까.


설마 아까 그거 잠깐 놀려먹었다고 그러는 건가.


아니면 [혼란]이 영향을 미치는 건가.


‘….좀 골탕이나 먹여 볼까요.’


”그런데 등록에는 돈이 필요하지요. 돈은 있으십니까?“


“뭐!?….이런 망할..!! 아쿠아, 너 돈은 있어?”


아쿠아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뭐 빌려줄 수도 있긴 한데 말이죠..”


“제발 빌려주십시오!!!”


카즈마가 소리쳤다.


”빌어보세요, 아쿠아.“


”에? 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난 여신이라고!!“


”아아, 그럼 됐습니다. 이만 가보죠.”


나는 그렇게 툭 내뱉고는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뭐 하는 거야! 빨리 빌어야지!

-지금 여신한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며칠 동안 막노동을 해야할지도 모른다고!

-이이이익…


“거..거기 잠깐..!!”


아쿠아가 나를 멈춰 세웠다.


“왜 그러십니까?“


아쿠아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하며 내게 빌었다.


“아까..막..무시하고 해서 죄…죄송해요.”

“제..제발 돈 좀 빌려주세요.”


씨익-


”하하하핫!! 네에..좋습니다. 여기 2,000에리스입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카즈마가 내 손에서 돈을 낚아 채갔다.


“고마워! 잘 쓸게!”


“어어…그러시죠.“


카즈마가 원래 저랬나?


하도 고통받는 것만 봐서 원래 성격 같은 게 잘 기억이 안 난다.


코노스바는 본지 오래된 축에 속하기도 하고.


“푸흐…”


갑자기 웃음이 새어 나왔다.


소설과 애니로 보던 인물들을 실제로 보고 대화를 나누다니.


나는 축복받은 인간이다.


“흐흐…좋네요.”


감상은 여기까지.


“이제는…뭘 해야 할까요?“


특전을 받았다.


전직을 했다.


아쿠아와 카즈마를 보았다.


‘이제 퀘스트를 받아야 할까요?’


그런 생각도 들지만 지금의 나는…


약하다.


신체 능력은 평균 이하.


직업은 스킬 없는 모험자.


재생이 있긴 하지만 초보자 킬러라도 만나는 순간 목숨을 보장하기도 어렵다.


그것들을 상대로 심장이나 뇌가 절대 파괴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역시 다시 돌아가야겠군요.“


이쪽의 세계관에서도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았지만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많지 않다.


굳이 ’원작‘ 처럼 한 번에 오랜 기간을 머물러야 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나에 대한 반응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하다.


”그 반응을 다시 보고 싶네요….아아 상상만으로도 짜릿해요…“


’다시 쓰기 종료.‘


[다시 쓰기를 종료합니다.]


[보상을 정산합니다.]


[사토 카즈마의 인연 레벨은 2 입니다.]

[아쿠아의 인연 레벨은 3 입니다.]

[…]


[’이 멋진 세계에 축복을!‘ 에서 얻은 모든 능력이 ‘이야기의 힘’ 에 기록됩니다.]


***


[첫 번째 다시쓰기 보상으로 추가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89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다시쓰기‘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다시쓰기‘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돌아왔군요.’


나는 가장 먼저 [이야기의 힘] 탭을 살펴보았다.


[이야기의 힘]


-재생 (SS)

심장이나 뇌중 하나가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재생합니다.

신체결손도 수복 할 수 있습니다.

(20000 포인트)


‘2만 포인트라…뭐 이런…’


“쯧.. 터무니 없는 가격이군요.“


필요한 포인트를 보고 내가 혀를 차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첫 이야기의 힘 등록 보상으로 첫 상품의 가격이 무료로 변경됩니다.]


[이야기의 힘]


-재생 Lv Max (SS)

심장이나 뇌중 하나가 파괴되지 않는 한 죽지 않고 재생합니다.

신체결손도 수복 할 수 있습니다.

(무료)


“…후후, 운이 좋군요.”


무려 일만 포인트를 공짜로 번 셈이나 다름없다.


‘역시 초반에 사기 특전을 주는 코노스바를 고르는게 맞았어요.’


‘[재생] 구매.‘


띠링-


[스킬-재생(SS)를 획득합니다.]


[스킬-재생(SS)의 영향으로 부정 특성 ‘천식’이 사라집니다.]


[체력이 2 증가합니다.]


천식이 사라지고 체력이 2 증가했다.


‘천식이 사라진다고요..?‘


자동으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 그렇게 오래 달고살았던 것을.. 이렇게 쉽게.”


..허탈한가?


아니다.


그저 나의 능력에 전율할 뿐이다.


달릴 때마다 색색거리며 약을 쓰는 신세에서 벗어났다.


 벌써부터 숨을 쉴때마다 한결 편해진게 체감된다.


나는 이어서 [신체 관리]를 확인했다.


그러자 현재 내 모습이 3D 모형으로 나타났다.


”…신기하네요.“


시험삼아 약간 굽은 어깨를 펴보았다.


[굽은 어깨를 일반적인 어깨로 되돌리시겠습니까?]

[3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Yes!’


마음속으로 그렇게 대답하자 내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드득-


“끄으윽..”


격통이 찾아왔다.


뼈를 강제로 잡아 뜯는 느낌이었다.


“허어억…허억..허억”


이윽고 고통이 끝나자 나는 어깨를 돌려보았다.


“전보다…편하네요. 확실히 대단한 능력이에요.”


확실히 어깨를 쓰는게 편해졌다.


“흐음…바꿔야 할게 아주 많겠어요..“


[키를 174cm 에서 184cm 으로 늘리시겠습니까?]

[5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머리카락의 길이를 늘리시겠습니까?]

[5 포인트가 소모됩니다.]

[….]


나는 신체를 수정하는데 53 포인트를 사용했다.


“이게…저라니..”


신체 수정이 끝난 후 3D 모형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엄청난 미남이 남아있었다.


본래 모습이 사라진건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조금씩 바뀌어 상위호환의 외모가 되었다.


긴 흑발에 얇은 실눈.


잡티 하나 없는 피부와 여자같은 외모.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나’다.


원래도 그럭저럭 수려한 외모였지만..그때 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역시 대단해요..정말로.“


아직 제대로 한것도 몇개 없건만.


벌써 나는 엄청난 변화를 맞이했다.


이 능력이라면 ‘탑’은 문제가 없지 않을까?


띠리리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 관심을 보입니다!]

[납치당한 봄이 격한 관심을 보입니다!]

[번개맞은 의술사가 그 가루의 효과인지 묻습니다!]

[올림푸스의 여주인이…]

.


”그렇게 갑자기 말하시면 놀란다구요…?”


갑자기 성좌들에 대한 메시지가 폭주했다.


이 효과를 근력의 가루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건가?


“가루때문이 아니고 그저 이런 능력이 있을 뿐이랍니다~.“


나는 대충 해명을 하고 바뀐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손성윤

나이: 24

레벨:1


근력:5 민첩:6 체력:6지력:8 마나:0

남은 스탯:0

포인트: 136


직업: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 (EX)

스킬: 다시 쓰기 (EX), 검술 (E), 혼란 (B+), 정신방벽 (A), 재생 (SS)

특성: 다재무능(-), 광기(-), 자아부정(-), 빠른 성취(+), 연기의 귀재(+), 연기의 달인(+), 미남(+) 」


신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스탯들이 조금씩 올라 마나를 제외한 모든 스탯이 5 이상이 되었다.


“미남이라….좋군요.”


확실히 잘생겨지긴 했지만 특성이 추가될줄은 몰랐다.


원래도 잘생긴 편이었는데.. 


그정도는 평범하다는 걸까?


‘남은 포인트는…’


역시 능력치를 올리자.


능력치를 올리는데 필요한 포인트는 원작과 같았다.


능력치 1 이상에는 1 포인트.


능력치 10 이상에는 2 포인트.


나는 125 포인트를 사용해 모든 능력치를 20으로 맞췄다.


 「이름: 손성윤

나이: 24

레벨:1


근력:20 민첩:20 체력:20 지력:20 마나:20

남은 스탯:0

포인트: 11


직업: 이야기를 다시 쓰는 자 (EX)

스킬: 다시 쓰기 (EX), 검술 (E), 혼란 (B+), 정신방벽 (A), 재생 (SS)

특성: 다재무능(-), 광기(-), 자아부정(-), 빠른 성취(+), 연기의 귀재(+), 연기의 달인(+), 미남(+)」


우드드득-


신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나왔던 소리가 다시한번 들려왔다.


근육이 조이고 당겨지며 괴상한 느낌을 만들어냈고 머리에서는 두통이 일어났다.


고통에 눈을 감았다 뜨자 몸에 기묘한 활력이 도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후우.”


모든 과정이 끝나자 주먹을 쥐어보았다.


역시나 손아귀에 들어가는 힘 부터가 달라져있었다.


“…역시.”


역시나 이것은 꿈 같은 것이 아니다.


그 사실에 나는 전율하며 동시에 차분해지려 노력했다.


‘스킬 레벨도 올릴 수 있었다면..‘


스킬을 강화하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원작과는 다르게 불가능했다.


‘약간 아쉽군요..남은 포인트는 뽑기에 써야겠어요.’


남은 11 포인트로 일반 뽑기 12회를 돌렸다.


띠리리릭-


천상의 티슈 x1

정력옥 x1

성스러운 물 x1

소금 한 톨 x2

설탕 한 톨 x2

연막탄 x1

수류탄 x1

생수x1

단검 x1

스킬-다시 읽기(SSS)


….지금 내가 뭘 본거지?


“…대단하군요.“


나는 최대한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켜보려 했지만 그럴수 없었다.


하지만… 이런 사기 스킬을 얻고도 평온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있을까.


-…피하자.

-빨리 도망가는게..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사악해 보이는거지..

-근데..저 사람..눈에 익은데..


이런, 표정이 너무 사악해보였나.


흥분을 주체하지 못해서 표정도 망가진 모양이다.


하지만 덕분에 사람들의 반응을 다시 즐길 수 있었다


아아..


아아아..


이 얼마나 짜릿한 극상의 쾌락이냐!!


“아흐으으…”


사람들의 반응과 스킬에 대한 기쁨, 그리고 이 상황이 겹치니 엄청난 쾌락이 나를 덮쳤다.


사람을 죽일 때 보다도 더한 쾌락!


천국도 이것에 비하진 못하리라.


나는 흥분에 겨워 얕게 신음을 내뱉다가 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깨닫고는 가까스로 나를 진정시켰다.


사람들의 시선은 더한 쾌락이 되지만..


지금 한순간 때문에 앞으로의 수많은 일들을 망쳐버릴순 없다.


“후우..”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내뱉으니 좀 더 안정된 것 같다.


..앞으로.


탑을 오르다보면 이보다 더한 쾌락을 얻을수도 있을텐데..


그때도 나는 이성을 유지할수 있을까..?


‘그러지 못한다면.. 내 추태를 목격한 사람을 모두 죽이면 되겠지.‘


그래, 그러면 될것이다.


…탑을 올라가고픈 욕망이 더욱 강해졌다.


나는 머리속을 정리하곤 차분하게 새로 얻은 스킬의 자세한 정보를 확인해보았다.


[다시 읽기 Lv Max (SSS)


지금까지 당신이 읽은 것들을 다시 읽을 수 있습니다.


화산귀환, 게임 속 바바리안이 되었다, 템빨, 코난…..]


‘..역시 제게는 엄청난 스킬이예요.‘


나의 능력에 가장 잘 맞는 사기 스킬.


아마도 이 스킬은 다시 쓰기의 사용자를 위해서 존재하는 스킬이겠지.


‘스킬 사용.‘


촤르륵-


[다시 읽기가 발동합니다.]


[원하시는 이야기를 선택해주십시오.]


스킬을 사용하자 반투명한 갈색의 책이 촤르륵 펼쳐지며 시스템이 내게 선택을 요청했다.


’화산귀환.‘


촤르르륵-


이야기를 고르자, 이번에도 책이 촤르륵 넘겨지며 또다시 내게 도움을 청했다.


[원하시는 키워드, 혹은 에피소드를 말해주십시오.]


’자하신공에 대한 묘사를 부탁드리지요.’


촤르륵-


이번에는 앞서 두 차례보다 조금 더 오래동안 책이 넘겨지더니 새로운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자하신공 관련 에피소드: 691화 ~ 740화


해당 단어가 적힌 화 : ……..


자하신공의 위치에 대한 묘사: …………]


“허어..”


그 창에는 관련 에피소드는 물론이고 단어가 등장한 화 까지 모두 적혀있었다.


탄성을 흘리며 묘사를 눌러보니 더욱 자세한 정보가 떠올랐다.


“…더할 나위가 없군요.”


무엇보다 내게 필요한 스킬이다.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속으로 환호하고 있던 도중 저 앞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으아아악!! 

-도망쳐!!

-사…살려주세요!!


아니, 어디까지나 사람으로 보이는 괴물이었나보다.


녹색 피부와 작은 키, 약간 처진 매부리코, 그리고 길고 날카로운 귀. 


모든 소설의 초반에 한번씩은 나오는 몬스터.


고블린이다.


대략 백은 안되어보이는 그들을 자세히 보자 중앙의 한 고블린이 눈에 띄었다.


나무지팡이에 해골을 달아놓고 조잡한 가마에 타 이동하고 있는 놈.


아마 고블린 샤먼이겠지.


‘싸워야 하려나요.’


“죽지는 않겠지만…조금 아프긴 하겠네요.”


저들이 무장하고 있는 돌칼이나 나무 창이 조잡하다고는 하나 맞으면 고통이 뒤따를 것은 당연한 사실.


스킬 덕분에 아무리 맞아도 죽진 않겠지만 꽤 고생은 하리라.


-무기! 무기 있는사람 없어요!?

-도와주세요!!

-살려줘요!!!


이대로 가다간 놈들이 곧 맨앞의 사람들과 마주한다.


어떡하지? 앞으로 가서 싸워?


아니면…사람들을 방패로 삼고 사냥해?


“어떻게 해야할까요..”


그렇게 내가 고민하고 있던 순간.


채애애앵-!!


쇠의 마찰음 같은게 한 번 들리더니.


“”신의 뜻으로!!!””


함성이 내 고막을 강타하고.


스르릉-


푸르른 반월의 검기가 단숨에 모든 고블린의 목을 베었다.


일검.


단 일검이었다.


“…저게 무슨…”


푸확-


내가 탄성을 내뱉자 소설처럼 뒤늦게 고블린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하..하..하하핫…!!”


소설로는 더 뛰어나고, 더 강한 공격의 묘사도 많이 읽어보았지만 저 일격은 내게 적잖은 충격을 선사해주었다.


처음으로 직접 보게된 인간을 초월한 힘.


더없이 아름다웠다.


허나, 광채를 흩뿌리며 적들의 목을 가르는 공격에 그 누가 마음을 뺏기지 않을까.


“저런게..강함..이라는 겁니까.”


여기는 고작 1층인데도.


시작의..1층인데도 저런 공격을 할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그 한 가지의 사실은 내게 전율로 다가왔다.


”흐으으…“


아아아아..


나도


저런것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다.


내 능력이라면 더욱 더 아름답고, 뛰어난 공격을 할 수 있다.


”저것보다도 더 대단한것을 이 손으로 펼쳐내는 건 어떤 기분일까요..?“


그리고 그 공격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떨까.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듯 하다.


상상만으로도 흥분된다.


역시나 탑은


“최고예요…!”


….그리고 그렇게 흥분에 몸을 떠는 성윤을 하나의 안광이 주시하고 있었다.


그것도 혼란에 휩싸인 복잡한 눈빛으로.


***


단 한번의 공격으로 고블린 무리를 전멸시킨 그들은 사람들을 향해 계속 전진했다.


질서정연하게 줄을 맞춰 진군하는 그들을 보고 사람들이 지래 겁을 먹자 그들이 소리쳤다.


“진정해 주십시오!! 저희는 적이 아닙니다.”


[전장의 지배자가 npc들을 칭찬합니다.]

[번개의 주인이 잘 만들어졌다며 흡족해 합니다.]


‘npc…? 저 사람들이 npc라니요?’


”…npc보다는…탑의 주민들에 가까워 보이는데요..“


”저희는 신께서 당신들을 돕기 위해 만드신 생물체입니다! 적이 아닙니다!!“


-npc…?

-그러면…인공지능 비슷한 건가?


”부디 진정해주시고 말을 들어주십시오!!“


가장 앞에 있는, 아까 그 공격을 날린 남자가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저희는 여러분들을 돕기 위해 존재합니다. 1층에 대해서 설명해 드릴테니 부디 따라와주십시오!”


-따라가도 되는거에요..?

-부..불길한데..

-그래도 다른 방법이 없잖아요.


***


그들은 우리를 호위하는 형식으로 이동하며 우리를 이끌었다.


탑의 주민들을 따라가자 넓은 마을이 보였다.


아니, 이걸 마을정도라 해도될까?


중세풍의 건물로 가득찬 그 곳은 상상 이상으로 커 도시라 불러도 이상이 없을 듯 했다.


그런데 왜 중세풍의 건물인걸까.


중세때 탑의 1층이 만들어진걸까.


그렇다면 놀라운일이다.


이런게 100층이나 되는 탑을 몇백년만에 만들다니.


“하하…참..대단하군-“


오싹-


갑자기 몸이 부르르르 떨렸다.


이 느낌은…뭐지?


누가 날 보고있는건가?


아, 그거 때문이려나.


”하아…진짜 그 영화에 출연하는게 아니었는데..괜히 얼굴이 팔려서는 이러네요..하아..“


또 스토커인가.


…..짜증나게.


불쾌한 기분을 억누르고는 주민들을 따라 시장으로 보이는 곳을 지나니 넒은 광장이 눈에 들어왔다.


선두에서 주민들을 이끌던 자가 광장의 가운데로 나가 설명을 시작했다.


“모든 모험가님께 인사드립니다. 저는 1층의 도시, 스트룬의 경비대장 넬튼이라고 합니다.”


“모두 지금에 상황에 궁금한 점이 많으실겁니다. 아스트라페께서는 안내역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정말 딱 알려야하는 정보만 통보하고 가셨을테니까요.“


넬튼은 그리 말하며 차분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가 자세히 설명한 것을 요약하자면…


1.우리들은 [발할라]라는 이름의 탑에 소환됐다. 발할라는 신의 후계자를 뽑기위한 무대다.


2.탑을 오를수록 초인적인 힘이나 재화들을 얻는다.


3.직업이나 스킬은 그 사람이 지금까지 가장 많이 한 일에 관련되어 생기거나 랜덤으로 생성된다.


4.스탯은 근민체지 각각 5가 평균이며 마나는 첫 레벨업을 하면 개방된다.


이정도다.


”아마 이렇게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겁니다. “왜 탑을 올라야하지? 후계자고 뭐고 그냥 돌아가고 싶은데..” 같은 생각말이죠.“


눈썹이 찌푸려졌다.


“설마 그냥 나갈 수 있는건가요…그렇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런 말을 했다고 사람들이 내 옆에서 떨어지는 건 뭘까.


섭섭한데.


“만약 이런 생각을 하시는 분이 있다면..시스템을 확인해 주십시오.”


띠링-


[발할라가 모두에게 저주를 내립니다.]


[투쟁의 저주]

-1년 마다 5개 이상의 층이 공략되지 않을 시, 사망합니다.


싸아아아-


저주를 인지하자 서늘하고 오싹한 감각이 나를 덮쳤다.


내 머리에선 식은땀 한 방울이 떨어져 땅을 적셨다.


‘이게…저주’


단순히 오싹한 느낌뿐만 아니라 어디선가 탑을 올라야만 한다는..그런 강박감이 생겨난듯 했다.


치이이익-


무언가 불에 타는듯한 소리가 나며 나의 손등에 조그만 문양 수백개가 새겨졌다.


’아니, 이건 글자인가요.‘


어디선가 본듯하다.


….룬어.


혹시 그 신비의 언어, 룬어는 아닐까?


뭐, 아님말고.


지금 시점에서는 저주를 해주할 방법따윈 없다.


저런 문양도 지금 당장은 중요하진 않을 터다.


‘그래도..이런게 몸에 그려져 있으니까 신기하긴 하네요.‘


손등을 빼곡히 덮은 특이한 문자.


자동으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후후…좋네요. 이런게 있어야 동기부여도 되고..좋은 아이디어에요.“


[끝없는 갈망이 당신에게 감탄합니다.]


[어떻게 저런 말을 듣고도 그런말을 하는거지?]


“…?”


나는 의문이라는 듯 약간 옆으로 고개를 기울인뒤 말했다.


“탑등반물에서 사람이 죽는건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사람이 얼마나 죽어나가든 탑만 클리어하면 그만일 뿐입니다.“


[….너는 미쳤다. 우리는 후계자를 뽑는 것이지 인간들의 죽음을 감상하는게 아니다.]


“…..미치지 않고서 탑을 클리어 할 수 있겠어요…?”


 ‘탑’에서 이런 건 당연하다.


사람이 수없이 죽어나가는 것도.


내성스킬을 올리기위해 자해하는 것도.


정신을 보호하기위해 방어기제를 세우는 것도.


“저는 지극히 당연한 말을 하고 있을 뿐인데 왜 그런말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흐음..뭐가 부족한 대답이었을까요..?”


[너는….망가졌다.]


“그렇지만 ’탑‘은 그걸 원하지요.”


[어디에도 그런 탑은 없다.]


“아뇨, 있습니다. 어딘가에는….”


더이상 끝없는 갈망, 필로테스(추정)이 더이상 내게 메시지를 보내오는 일은 없었다.


왜 그런걸까?


왜 그랬지?


이런건..‘당연’한 일인데..


왜일까?


왤까?


뭐가 부족한거지?


어쩐지 화가 난다.


’언젠가 신을 만날 수 있다면 죽여볼까요?‘


보상은..많겠지.


신살(神殺)을 목표로 하는것도 나쁘지 않겠다.


-저…저주라고!!??

-으아아악!!

-으으으…이건 다 꿈일거야..

어김없이 들려오는 사람들의 비명소리.


“쯧..빨리 현실을 받아들이기나 할 것이지..왜 굳이 저렇게 비명을 질러대는지 알 수가 없네요..”


요즘 세상에 이런 류의 소설 하나도 안본건가.


약간 불쌍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도…옥석은 어디에나 있군요…”


시선을 끄는,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절반가량의 사람들은 침착하게 눈동자를 굴리고 있었다.


“후훗…”


앞으로 탑의 주체가 될 사람들.


그들이 바로 그런 이들이었다.


“음…?”


사람들을 관찰하던 중, 한 여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여자는 눈이 마주치자 당황스럽다는 듯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팬…일까요?”


‘…별거 아니겠지요..’


찜찜하긴 하지만 뭐 큰 문제는 아닐테니 신경을 끄기로했다.


지금까지 죽인 사람들의 지인인가 싶기도 했지만 그들은 모두 지방에서 막 상경한 가족이 없는 이들, 기댈 곳이 없는 이들이었기에 그건 아닐테다.


나를 보고있던 눈빛에 적의도 없었던것 같고 말이다.


내가 방금의 여성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무렵, 어느 한 목소리가 나의 주의를 끌었다.


”모두 진정해주십시오.“


뇌리에 박히는 선명한 음성.


그 음성은 단숨에 소란을 잠재웠다.


’소리에 마나를 입힌건가요?‘


으레 소설에서 나오듯, 말에 마나를 담아 말하면 저런 목소리가 나오는걸까?


신비하다.


“빨리…다음층에 가보고 싶네요..”


몇층정도의 등반자가 되면 저런 기교가 가능할까.


소설속에서 수련하는게 더 빠를려나..?


넬튼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이 저주는 투쟁의 저주..라고 거창한 이름이 붙어있긴 하지만 사실 그리 심각한 저주는 아닙니다. 지금 당장 모험가님들께서 등반을 시작하셔도 일부는 5층에 도달하시겠지요. 단순히 탑을 올라가게 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하시는데 편할겁니다.“


그의 말을 들으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탑의 난이도가…그리 높은편이 아닌가요?’


난이도가 낮다면 탑이란 이름이 아깝다.


극악의 난이도를 가져 등반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게 바로 ’탑‘ 아닌가.


사람들을 미치게하고.


자해를 하게만드며.


싸움밖에 모르는 투귀(鬪鬼)로 만드는게 바로 탑이 아닌가.


그런데 탑이 어렵지 않다면 그것을 어찌 탑이라 부르겠는가.


“..안돼요..그러면..안됩니다.“


…아직 올라가보지도 않았다.


섣불리 단정하지 말자.


넬튼은 저주에 대한 말을 마치고도 이것저것에 대해 설명하다가 광장 구석의 자루를 가리켰다.


“이 자루에는 1층의 지리를 담은 지도가 있습니다. 2층으로 가는 통로도 기록되어있으니 꼭 하나씩 챙겨가시길 바랍니다. 지도를 챙기신 후에는 여기 있는 목패를 하나씩 가져가 주십시오. 동쪽으로 가면 있는 모험가님들의 숙소에서 저 목패의 번호와 같은 방에서 묵으시면 됩니다.”


“만약 모험가님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한다면 꼭 경비대를 불러주십시오. 그럼 여러분의 앞길에 행운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그렇게 경비대장, 넬튼은 말을 마치고 다른 경비대원들과 함께 북쪽으로 걸어가며 퇴장했다.


….북쪽에 경비대원들이 머무는 모양이다.


경비대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목패와 지도를 향해 달려나갔다.


“이런…나중에 가면 저것들이 남아있을지 모르겠군요..”


나도 빨리 가야겠다.


***


터벅- 터벅-


나는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상념에 잠겼다.


지도와 목패를 얻는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미소를 지으며 걷기만해도 모세의 기적이 펼쳐지니 굳이 뛰지않아도 쉽게 그것들을 얻을 수 있었다.


[모험가의 목패 (C+)

모험가의 이름과 방이 기록되어있다. 한사람당 하나만 소유할 수 있다. 귀속아이템이다.]


[시작의 지도 (D-)

시작의 층이 그려져있는 지도다.]


의외로 두 물건은 아이템이었다.


목패의 경우에는 내가 목패를 집자 둥근 앞면에 내 이름이 적히며 내게 귀속되었다.


지도에 경우에는 특별한건 없었지만…탑의 일부가 기록되어서인지 아이템으로 취급되었다.


어쨌든 두 아이템을 얻었다.


그러면..이제 다음 층으로 올라가면 되는걸까?


“흐음…등반을 시작하기 전에 다른 곳으로 한 번 더 다녀오는게 나을까요…?”


한가지의 걱정이 생겨났다.


나는 전투에 익숙치않다.


포인트로 무식하게 신체능력을 올리기는 했지만…


그 몸을 다루는 법 조차 나는 알지 못한다.


다음층에 무엇이 나올지 알 수는 없지만 이곳은 ‘탑’인 만큼 마냥 쉽기만 하지는 않을 것이다.


“역시..몸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라도..‘무공’을 배워봐야겠어요..”


[속이기를 좋아하는 장난꾸러기가 어떻게 무공을 얻을건지 묻습니다.]


“후후…다 방법이 있답니다…?“


다음 소설이 정해졌다.


한 산에서 피로 이루어진 혈투가 일어난지 백년.


그리고 다시 움직임을 보이는 마교.


천마의 목을 벤 검존의 환생.


화산의 재건.


다음은 화산귀환이다.


[[화산귀환]을 선택하셨습니다.]


[아바타가 로딩됩니다.]


-손성윤

22세, 매우 뛰어난 근골을 가지고 있다. 무공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민초다. 고아이다.


-남궁성윤

23세, 남궁세가의 둘째 아들. 창궁무애검법(蒼穹無涯劍法)을 수련중이다. 기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손성윤

18세, 멸문당한 세가 북백손가의 마지막 후손이다. 가문의 가보 빙천신검(冰天神劍)을 소유중이다. 가문의 무공을 잃은지 오래라 외공이나 내공을 쌓지 못했다.


이번에는 세가지의 선택지가 떠올랐다.


‘….일단 두번째는 제외네요.’


그 명문가인 남궁세가의 혈족인건 좋지만 그만큼 행동에 제약이 생긴다.


또한 현재 내가 노리는건 화산의 자하신공인 만큼, 남궁이란 이름은 오히려 방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첫번째와 세번째가 남는데…‘


“흐으으음…”


…역시 세번째가 좋겠다.


‘빙천신검…얼마나 좋을까요..‘


근골이 뛰어나면 무공을 수련하는데 좋긴 하겠지만 나는 이 탑에서도 무공을 수련할 수 있다.


그건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갖고있다는 말과도 같다.


그보다는 내 스킬과도 어울리는 빙천신검이 탐났다.


”좋아요..좋아요…“


[아바타를 선택하셨습니다.]


[세계에 진입하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시간이 정지합니다.]


[기억이 전이됩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모든것이 멈추고 기억이 전이되었다.


이번의 아바타는 멸문한 세가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북해의 입구에서 고기를 잡으며 살아갔다.


무공에 대한 열망이 강했으나, 세가의 무공은 소실된지 오래.


결국 그는 가족들을 버리고 중원으로 떠나게된다.


’….? 이번에는 아바타도 정상은 아니군요.‘


[세계가 로드됩니다.]


그렇게 성윤은 다른 세계로 떠났다.


그러나 아직 자신을 주시하는 두 눈을 알아채지 못했다.


의문의 사람이 성윤을 바라보는 눈에는 한없이 많은 애정과 집착이 담겨있었다.


***


츠츠츠츳-


새로운 세계에 들어오자 밝은 햇빛이 나를 비췄다.


“여기는…어디인가요?”


화산귀환의 세계에 들어온 내게 첫번째로 보인것은 바로…숲이었다.


“하하…처음 탑의 광경과 비슷하네요.”


울창한 숲은 탑의 숲처럼 비현실적으로 큰 식물이 있지는 않았지만 나무로 빽빽히 둘러싸여있어서 탑의 광경을 연상시켰다.


[현재 위치는 호남의 형산입니다.]


[지금 당신은 빙천신검을 노리는 녹림도들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흐음…상황이 좋지 않군요.”


타닥- 타다닥-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발소리가 들릴정도라면 상당히 가깝다는 뜻.


일단..도망가야 한다.


***


의도치않은 추격전이 펼쳐진지 대략 5분정도가 지난것 같다.


타다다닥-


계속 달리고 있는데도 들려오는 발소리는 점점 커져만갔다.


그말은…저들이 나보다 신체능력이 뛰어나다는 거겠지.


“저기 있다-!! 잡아라!!”


결국 위치를 발각당했다.


‘어떻게 하지?’


현재 할 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


계속 도망가는 것과..싸우는 것.


도망간다면 금세 잡힐게 분명하다.


싸운다면..이길 가능성이 제로에 가깝다.


“젠장…시작하자마자 죽게 생겼네요..쯧.“


그 순간,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이 상황을 타개할 비책이었다.


”아..그게 있었군요… 하아..이런것도 빨리 떠올리지 못하다니..역시 아직 미숙하네요.“


나는 도망가던 발을 멈추고 등에 매고있던 봇짐을 인벤토리에 던져넣었다.


뒤를 돌아보자 약 스물정도의 남자들이 보였다.


우락부락한 근육과 등 뒤에 맨 도끼.


전형적인 산적의 모습이었다.


“하하-!! 드디어 포기했나!”


선두의 호랑이 가죽을 입은 사내가 소리쳤다.


“너는..누구지!? 나..나를 왜 노리는거냐!?”


“흐흐..네 검이 조금 좋아보여야 말이지.. 미안하지만 죽어줘야겠다!!”


그가 말을 마치자 산적들이 나를 둥글게 둘러쌌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 해야만 한다.


“그..그렇다면 이 검을 주겠다! 부디 목숨만은…!”


“호오..? 주제 파악을 잘하는 놈이로군…그런데 왜 그렇게 무릎이 뻣뻣해 보이는지 모르겠어?”


“크..크윽!”


나는 무릎을 굽히는척 하며 인벤토리에서 두 물건을 꺼냈다.


바로 앞서 자투리 포인트를 투자해 한 뽑기에서 얻은 연막탄과 수류탄이었다.


“…이라고 할 줄 알았나요..?”


우선, 연막탄을 바닥에 던졌다.


카강-


연막탄이 바닥에 부딫히며 연막이 뿜어져나왔다.


푸쉬익-


“뭐..뭐냐 이건!? 이런 썩을 놈이!!”


순식간에 산적들의 시야가 검은 연기로 가득찼다.


나는 바닥에 있는 돌멩이 하나를 산적 두목의 옆으로 찬 다음, 그의 반대방향으로 뛰어나가며 나를 막는 졸개를 걷어찼다.


“네..네놈!?”


고작 돌멩이 하나로 내가 저쪽으로 갔다고 착각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지금같은 상황에선 잠깐의 혼란을 주는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


“채..채주! 놈은 저쪽으로 갔습니다!”


”이..이런 쳐죽일 새끼가!!!!“


도망치던 중, 뒤를 한번 돌아보자 멀리서도 놈이 부들부들거리는게 보였다.


”후후.. 한순간의 방심은 평생의 실수가 되기에 충분하지요..“


놈이 그렇게 똑똑한 놈이 아니라 다행이다.


영리했다면 당장 도끼를 투척하라던지 하는 지시를 내렸겠지.


“죽어라아-!!!!!”


놈의 고함이 들려왔다.


“후훗..그래봤자 이제와서 할 수 있는건 아무것도 없다구ㅇ—”


슈우우웅-


서걱-


격통이 왼 어깨를 덮쳤다.


투둑-


흙길이 붉은 액채로 젖어갔다.


붉게 젖어버린 흙위에는 더이상 내 의지로 움직일 수 없게된 팔 한짝이 떨어져있었다.


“크으윽!!?”


달려있던 팔이 잘린 왼어깨에서 피가 뿜어져나왔다.


나의 팔을 가져간 무언가는 그 기세를 이어갈 나무 몇그루를 더 자르고 바위를 부순 후에야 뒤늦게 땅에 박혔다.


그게 무엇인가 하고 바라보니 녹이 슬어 제대로 관리조차 되지 않은것 처럼 보이는 도끼였다.


아직도 어깨에선 피가 흐르고, 도끼에 의해 잘려나간 곳의 단면이 부글거리며 재생이 시작되었지만 그 고통마저 지우지는 못했다.


“끄으으으...아무래도 저는….이 세계를..얕잡아 보고 있었나보군요…”


제대로 된 무인은 몇명 되지도 않는 녹림의 산채중 하나의 채주가 이정도 거리에서 저런 공격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이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하나 남은 팔을 등뒤로 숨겼다.


“하하하하!!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이!! 그런 장난질을 한 각오는 되셨나?”


…다행이다.


이 세계는 내 생각 이상이었지만 적어도 이놈의 지능은 내 예상범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렇지 않다면 바로 전에 뒤통수를 얻어맞고도 곧바로 똑같은 일을 저지를리 없지 않은가?


앞으로는 없을 행운이었다.


“크흐..역시..당신은 멍청해요.”


“….어디 고문을 받으면서도 그런 말을 할 수 있을지 보자꾸ㄴ—”


나는 기습적으로 등뒤로 숨겼던 수류탄을 땅에 던졌다.


콰앙-!


큰 폭발이 일어났고 연기가 내 시야를 가렸다.


이 정도의 폭발이 일어났으니 적어도 그 두목놈에겐 중상을 입혔을건 확실하다.


그렇지만..


‘…모두 죽었다고 보긴 힘들지요. 싸워야 할까요? 아니면…도망갈까요?’


찰나의 순간 동안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결국 내 선택은 결국 도망이었다.


”변수는..사양이랍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복수를 하겠다고 위험부담을 짊어질 필요는 없다.


“채…채주!!!“


내 생각을 뒷받침 하듯, 졸개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 수류탄을 던질때 멀리 떨어져 있던 놈들인 것 같았다.


“…앞으로는 생각보다 힘들겠군요..”


나는 어느새 재생된 팔을 휘둘러 보며 빠르게 산을 빠져나갔다.


***


형산을 빠져나가자 어느 한 작은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후우…겨우 빠져나왔네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 나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그래도..득이 없진 않아 다행이예요..”


방금의 추격전에서 얻은 소득은 두가지.


하나는 내 신체능력이 어느정도인지 파악하게 된 것이고,


두번째는 이 세계의 수준을 알았다는 것이다.


우선 이 신체는 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뛰어났다.


오랜 시간 달려야 겨우 숨이 차는 육체라니..천식으로 고통받던 내게는 꿈만 같았다.


”그래도 이곳은 아직 위험하니 마을로 빨리 가야겠어요..“


지금 이 경우만 보아도 벌써 어느정도의 체력이 회복되었다.


또한 이야기의 힘에서 구매한 [재생]도 기대이상의 재생속도를 보여주었다.


체감상 몇분만에 팔하나가 새로 돋아났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터벅- 터벅-


그리고 이 세계에 대한 것..


무공..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공은 내 기대를 뛰어넘는 성능인 듯 했다.


대충 보아도 몇백미터가 넘는 거리에서 던진 녹슨 무기로 그만한 파괴력을 만들어내다니, 가공할만한 성능이었다.


그 위력을 생각하니 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두려움에 의한 떨림이 아니었다.


흥분에 의한..기쁨에 의한 떨림이었다.


“아아..무공을..무공을 배운다면 저도 그런 힘을 낼 수 있을까요…?”


고작 산적따위가 그런 파괴적인 공격을 선보였다.


그렇다면..


나는.


자하신공(紫霞神功)의 위치를 알고 혼원단(混元團)이 묻혀있는 곳을 아는 나는.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할 수 있을까.


만에 하나.


어쩌면.


넬튼의 일격을 재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아아아…


그리된다면 얼마나 큰 희열감이 나를 감쌀까.


눈물 한방울이 땅에 떨어졌다.


어째서 눈물이 나오는건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나는 내 상태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아니, 신경쓰지 않았다.


탑에서 경비대장이라는 자의 일검을 보았을때와 같은 전율이 나를 뒤흔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나의 가능성에 대한 전율이었고.


그것을 가능케하는 시스템에 대한 감탄이었으며.


시스템을 만들어낸 탑과 신들에 대한 존경이었다.


“흐으으….“


”…앞으로도 이렇기만 하면 좋겠네요..“


뭐, 그래봐야 아직은 내공 한줌없는 힘없는 민초지만 말이다.


터벅- 터벅-


계속 걷다보니 마을에 들어섰다.


아까는 산에서 내려다보았어서 그런건지, 마을은 생각보다는 큰 규모를 자랑했다.


“자..자네 괜찮은가?”


마을을 둘러보던 내게 어느 한 중년의 남자가 걱정된다는 듯 말을 걸었다.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남자가 말을 이어나갔다.


“자네 옷이..”


그제야 나는 지금 내 모습을 깨달았다.


피로 물든 흑의.


한쪽 소매는 잘려있었고 얼굴에도 피가 튀어있었다.


그 몰골이 어찌나 끔찍한지 범에게 물려 죽은이가 시체가 되어 돌아왔다 해도 믿을만했다.


“하하..걱정은 감사하지만 멀쩡하답니다..?”


나는 그리말하며 진정으로 무사하단 듯이 미소를 지으며 그 자리에서 한바퀴 돌아보았다.


그러자 바닥과 남자에게 피가 튀며 그들을 물들였다.


“하…하..그..그런가…? 으음..그렇군.. 무사하다면 나는 이..이만 가보겠네..?”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버린 남자가 몸을 돌렸다.


이상하다.


왜 저럴까?


아! 얼굴에 피가 튀어서 그럴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저렇게 나를 두려워할리 없다.


…나는 좋지만 말이다.


아, 미소가 귀에 걸렸다.


그렇지만 이 미소를 지울수는 없을것 같았다.


“잠깐..혹시 이곳엔 책을 파는 곳이 어디있는지 알려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나는 발걸음을 옮기는 남자의 어깨를 잡아 멈춰세우고는 말했다.


“그..그러언 거러면 뒤쪽에 비서각이라는 곳이 있네..! 그러면 이제 가봐도되겠나..?”


어째선지 그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채 몸을 떨며 말하기에 나는 그의 몸을 돌리고 얼굴에 튄 피를 닦아주었다.


“마지막으로…혹시 십만대산으로 가려면 어느쪽으로 가는게 좋을까요..?”


“시…시..십만대산…이라고 했나….?”


“네에..그 마교들이 준동했던 대산 말입니다.”


남자는 시..시..시..십만..마교…라고 중얼거리더니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으음….심장이 안좋은건가?


나는 미소짓고 있었다.


***


쓰러진 남자를 뒤로하고 나는 인벤토리를 열었다.


산적과의 전투에 앞서 던져넣었던 봇짐을 꺼내기 위함이었다.


“흐음…그땐 몰랐는데 생각보다 짐이 무거웠네요?”


짐을 풀어해쳐보자 고급스러운 큰 목함과 작은 자루, 그리고 소량의 육포가 나왔다.


자루는 짤랑거리는 소리를 들어보니 전냥이 들어있는듯 하다.


“그러면..역시 이게 빙천신검이라는 건가요…”


나는 조심스레 목함을 열어보았다.


목함안에는 고급스런 천으로 감싸진 검 한자루가 있었다.


검을 감싼 천을 풀기위해 손을 대어보자 나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무슨..한기가 엄청나네요..”


엄청난 한기 때문이었다.


검신을 만진것도 아니고 고작 검자루를 감싼 천을 만진건데도 손이 시려왔다.


손시림을 참고 천을 풀어보자 누가 보아도 명검이라 할만한 검이 등장했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검자루.


때하나 묻지않아 광이 나는 검신.


그리고 신비롭게 뿜어내는 한기까지.


이 검이 명검이 아니라한다면 도대체 그 무엇이 명검일까. 


띠링-


[빙천신검冰天神劍 (Unknown)

북백손가의 가보. 과거 빙궁과 중원 사이의 무역을 돕던 북백손가가 빙궁이 하사한 만년한철을 명장 구야자를 초빙해 벼려낸 명검이다. 검에 막대한 한기가 깃들어있다. 현존하는 검중 손에 꼽히는 명품이지만 검이 완성된후 얼마지나지 않아서 북백손가가 멸문했기에 알려지지 않았다] 


”….와우..“


조금은 길다 싶은 정보.


하지만 그 내용은 명백히 내 기대를 초월했다.


”…이거 이 검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겠네요..하..하.“


빙천신검은 너무나 뛰어났다.


이 검이 알려지면 강호에 피바람이 불거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걸 어쩌죠..’


나는 이정도의 명검을 기대하지 않았다.


북백손가라는 이름을 듣고 북해의 한철로 만든 검이 아닐까..하는 생각은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화산의 제자들이 받게될 보급형 한철검 정도를 기대했었다.


 “…젠장..하필 왜 화산귀환의 세계관에서 이런일이 일어나는건가요…!”


이 검의 소유자가 나란게 알려지면 일어날 일은 불 보듯 뻔하다.


그 검총이 알려졌을 때 처럼 온갖 무인들이 달려들 것이다.


어쩌면 그 이상일수도 있다.


예를 들어..곧 부활할 천마께 검을 바친다며 마교가 개입할 수도 있고 말이다.


…그럴일은 없겠지만 불안한건 어쩔수 없다.


“쯧…잘 숨기고 다녀야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만한 명검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정도의 검을 보고도 포기한다니..아예 이 검을 보기 전이라면 모를까.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그 누가 이런 검을 보고도 탐욕을 참을수 있을까.


“에휴..결국 숨어다니는게 제 팔자라니..”


한숨을 쉰 나는 혹시 육포나 돈도 아이템으로 취급되는지 확인하려 했지만 아무리 바라보아도 시스템창은 떠오르지 않았다.


‘아이템은 무언가 특별한 것만 되는걸까요.’


그렇게 생각하던 순간 하나의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띠링-


[묵유경장墨油輕裝 (Unknown)

기름을 먹여 비에 젖지 않는 옷. 옷의 색이 검은빛을 띄고 가벼운 차림이라 묵유경장이라 한다. 현재는 일부가 훼손되었다.]


“이건…뭐죠..?”


나는 곧 묵유경장이라는 것이 내가 입고 있는 흑의라는 것을 깨달았다.


“…비에 젖지 않는다니..흥미롭군요..”


“방어력은 딱히 없는 걸까요..?”


설명에 방어력에 대해선 적혀있지 않은 것을 보니 그냥 단순히 물에 젖지 않는 옷 인듯 하다.


…하긴 얇은 천쪼가리에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이것도 감지덕지이긴 하다.


“그런데…빙검도 그렇고 이것도 그렇고..또 등급이 불명이네요..”


왜..이런거지?


무슨 기준이 있는걸까.


아무래도..이 의문은 오랫동안 품고있어야 할듯 하다.


***


아이템의 확인을 끝마친 나는 빙검과 육포를 다시 인벤토리에 집어넣고는 남자가 말했던 비서각이라는 곳으로 향했다.


지금 내가 서점으로 가는 이유는 무공의 구매와 북백손가의 조사를 위함이었다.


평범한 서점에서 무공은 팔지 않을수도 있지만..


[다시 읽기]로 확인해보아도 육합공은 저잣거리 난전에서 닷푼에 팔아치우는 무공이라 서술되어있으니 팔고있을 확률도 높다.


가장 정순한 내공을 모으는 무공인데다가 애초에 내공에 입문할 때 배우는 것이니 지금 내게는 큰 도움이 되리라.


그리고 북백손가에 대해서는 빙검의 설명으로 대충 알게되었지만 만약 마교와 결탁했다 멸문한 것이라면 큰일이니 한번 확인해 볼 생각이었다.


“뭐..그럴 가능성은 극히 적지만요.”


애초에 마교와 결탁했다면 나는 이미 불태워져서 죽었겠지.


“이곳인가요..?”


나는 비서각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있는 조그만 건물에 도착했다.


세 글자는 잘 모르는 내가 보아도 명필이라 할 만 했으나 너무 낡아 글자가 바래있었다.


끼익-


안으로 들어가보니 좁은 규모에 맞지 않게 책들이 빽빽하게 꽃아져있었다.


“껄껄..웬일로 새 손님이구먼..”


허리가 굽은 노인이 나를 맞이해주었다.


“따로..찾는 책이 있는가..?”


노인이 내게 걸어오며 물었다.


‘….설마?’


나는 노인을 유심히 바라보며 대답했다.


”천마신교와 화산에 대한 책이나 북해와 관한 책이 있을까요…?“


”자네…천마신교라 했나…?“


….맞나?


아닌가?


조금 더 낚시질을 해보면 되겠지.


”네에..신교나 화산에 대한 책이 있습니까….?“


나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평범한 미소로도 사람들이 나를 꺼리는데 일부러 사악한 미소를 지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대부분은 그 자리에서 자리를 피하거나 몸을 떨고는 한다.


그런데 이 노인은..


”…마교와 화산에 대한 책은 저 구석에 있다네.. 새외에 대한 책은 그 옆에 있고..“


오호라?


노인은 그저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마라혈궁…은 아닐테고..역시 하오문인가요.‘


일부러 마교를 멸칭으로 부르지 않고 신교라 칭했다.


사악한 미소도 지어보았다.


그런데도 이 노인은 태연하게 나를 대했다.


게다가..낡은 가게의 주인이 하오문도인건 상식이니까..


맞겠지…?


내 머리가 팽팽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오문인건 그냥 넘어가야 할까요? 아니 그러면 제 얼굴이 마교도로 팔릴 가능성이 높은데 말이죠..‘


사악한 실눈캐 컨셉이긴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안했는데…


뭐, 어쩔수 없지.


질러보자.


“하오문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나는 예의 그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자 곧 노인의 표정이 굳고는 기세가 뿜어져나왔다.


쿠구구궁—


..중력이 높아져버린 느낌이다.


이게 압도당하는 기분인가.


…짜릿하다.


아아…


역시 이곳은 대단하다.


“하으으.…숨기려면 잘 좀 숨기시지 그러셨습니까..”


“어떻게…알았느냐, 아해야.“


”마교를 신교라고 말하고 제 얼굴을 보여드렸는데도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은 없습니다만..?“


이건 사실이긴 하다.


”…그래..그렇군..그래서 너는…누구지?“


신중해야한다.


여기서 대답을 잘못하면 죽는다.


이 노인은 그럴 힘이 충분하다.


그렇게 다시한번 되새기자 식은땀 한줄기가 흘렀다.


…강호에선 노인과 아이와 여자를 조심하라 했던가?


정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이었구나.


“크흐..”


근데 왜 웃음이 나오는거지.


아, 그렇구나.


나는 이 상황조차 즐기고있구나.


그렇지 않다면 처음부터 미끼를 던져 이런 상황을 만들어냈을리 없다.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았다면..이런 끝내주는 상황에 처할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마약과 같은 희열감이 나를 감쌌다.


”하하..저는 그저…힘을 얻고 싶어하는 힘없는 민초이지요..!“


노인이 콧웃음을 내뱉었다.


“하! 그말을 지금 내게 믿으라고 하는 말이냐.”


“제 수준을 알고계시지 않습니까?”


노인은 할말이 없다는듯 입을 닫았다.


지금 나는 내공 한줌 없는 약자.


내가 반박귀진의 경지에 다다른 은거고수일리 없으니 할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면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마교에게 복수를 꿈꾸는 사내라 할까요?”


“마교가 사라진지 백년이다. 그런데 무슨 복수를 논하느냐?”


…아아.


그래, 어디한번 끝까지 가보자.


“마교가 사라졌다니.. 다 아시는 분이 거짓을 참 태연하게 말하십니다…?”


쿠궁-!


위압감이 갑자기 늘어났다.


무형의 기운이 정말 나를 죽일듯이 옥죄왔다.


“..허어.. 다 알고 왔구나…! 어찌 알게되었느냐!“


노인이 노호성을 터뜨렸다.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하하.. 참으로 베짱도 좋은 아해구나..! 북해의 일을 묻는것이 아니더냐!!“


이걸 벌써 알았다고?


그저 마교의 움직임이나 소문을 포착한 정도일거라 생각했건만..


의외의 사실에 당황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으니 노인이 추궁을 이어나갔다.


”북해의 일을 알기에 그에 관한 책을 물은것이 아니더냐! 이래도 발뺌할터냐!?“


그건 마교랑 상관없이 찾아보려고 했던 건데.


뭐, 그래도 행운은 기분좋게 받아들이자.


”하하…하하하하!!! 제가 고향의 일을 어찌 모르겠습니까!!?“


”…북해에서 왔느냐..?“


노인이 당혹스럽다는 듯 기세를 거둬들였다.


”북해와 중원사이의 한 세가를 기억하십니까?“


”…북백손가…! 하지만..그곳은 이미 멸문을…“


”아이를 가졌던 여인이 남편의 희생으로 탈출하고 그 후손이 조용히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는 뻔하디 뻔한 이야기지요.“


이 노인이 북백손가에 대해 조사한적이 없어야만 한다.


직접 북해에 정보원을 보낸게 아닌, 북해로 움직이는 마교를 포착한 것이여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난 죽겠지.


그러나 노인은 그저 짧게 읆조릴 뿐이었다.


“…그런가..그래..그런거였나..”


“하하..내 몹쓸짓을 저질렀군..”


노인은 회한에 잠긴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나는..나 또한 마교에게 멸문당한 세가의 후손이라네.”


***


하오문의 호남지부장 소재운은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내를 바라보았다.


이 어린 아해가 마교의 마수를 피해 홀로 북해에서 내려왔다.


얼마나 고되고,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을까.


자신의 과거를 보는것만 같아 더욱 안쓰럽다.


“나는…마교에게 멸문당한 호남의 세가..익양소가의 마지막 남은 핏줄이라네.”


순간적으로 이걸 말해도 될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으나 같은 처지의 사내에게라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내..아니 가여운 한 소년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자네가 마교의 정보책이라 생각해 그만 흥분하고 말았어..내 사과하지..”


정말..지난 십년간 오늘만큼 나 자신이 미웠던 적은 없었건만..


“그렇군요..”


소년이 고개를 떨구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듯한 이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마음이 아려왔다.


“차를..내올테니 대화를 해줄 수 있겠나?”


“물론입니다..”


다시보니 그 비열해 보이는 인상도 어딘가 순박해 보이기 시작했다.


내게..손자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터벅-터벅-


하하..


만난지 일각밖에 지나지 않은 소년에게 무슨 생각을 하는건가.


나도…참 주책이구나.


쪼르르륵-


내 마음도 모르고 퍼지는 차의 향기가 어쩐지 거북했다.


북백손가라... 들어본적 있다.


북해를 침공한 마교에게 빙궁과 같이 피해를 입은 세가.


꽤나 번성하던 세가였는데..


백년전에 빙궁과 함께 사악한 마교의 주교놈을 하나 처리했다고 했었나?


..소년에게 더욱더 미안해졌다.


어찌 말할 수 있을까.


익양의 소가는.. 마교에게 굴복했었다고.


터벅-터벅-


“그리 좋은차는 아니지만..여기 있네.”


“감사합니다.”


소년의 얼굴을 보자 죄책감이 나를 비추었다.


“앉아서..이야기를 조금 하지..”


“알겠습니다.”


“그래..그러면 북해에서 이 호남까지 내려온건가?”


“예..십만대산에서 찾을것이 하나 있습니다.”


…십만대산이라.. 무엇을 찾는다는 것일까.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찾는 것을 물어도 되겠나?”


소년은 잠시 고민하더니 내게 털어놓았다.


“…사실 찾아야하는 비급과 유해가 있습니다.”


…비급과 유해..


그런말을 하다간 고문당해서 지도의 역할을 하게될수도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비급이 무엇인지는 알려드릴수는 없으나..십만대산에 있다는 건 확실하기에.. 이곳까지 오게되었습니다.”


허공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


여기까지의 여정중 있던 일을 회상하는건가…


처음보는 이에게 자신의 목적을 알려주는 순박한 소년이 이곳까지 오면서 무슨일을 겪었을까.


어쩌면..


내가 마교에 관한 정보를 피하지 않고..북해에 관한일을 더 면밀히 조사했다면.. 저 소년을 도울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곳까지..오면서 험한 일을 겪지는 않았나..”


“…무슨 험한 일이 있었겠습니까..? 하하.. 그냥 산적 몇놈 만난 것 뿐이지요.”


녹림(綠林)!


머릿속에 두글자의 단어가 떠올랐다.


그래..이곳까지 오면서 병장기 하나 없이 왔을리 없다.


그런데도 아무것도 없는 것은 필시 녹림도에게 뺏겨버린 것이겠지.


문득, 나는 은근히 풍겨오는 피냄새를 깨달았다.


그래, 저 한쪽 소매가 잘린 옷이니, 무기하나 없는 차림새니..


호위를 고용해서 오다가 호위들이 죽고 겨우 도망쳐온건가.


“설마..이 앞의 흑호채놈들을 만났나..?”


“그놈들의 이름이 흑호채였습니까..? 채주라는 자가 던지는 도끼가 무섭긴 하더군요.”


..흑호채의 두목이라면 일류의 무인.


그래..그놈들에게 당한건가.


곧..지워야겠어.


“고초가 많았겠군..”


위로라도 해주고 싶었으나.. 감히 내가 할짓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나는..광동에서 자랐었지.. 우연히 스승님의 눈에 띄어 고향인 호남으로 돌아왔었네..“


말을 하다보니 저 소년이 더는 고향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본의아니게 기만을 한셈이 되는건가..


“노야..께서도 힘드셨겠습니다.”


”….“


갑자는 더 어린 소년에게 위로를 받다니..


이 무슨 추태인가..


노야…라.


나는..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없는 놈인데도..그리 불러주는 구나.


“사람을…그렇게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말게.”


“자네는 잘못하면 몸통만 남아 비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는 인간 지도가 될수도 있었어.”


“나는..그렇게 선한 이가 아니네..”


그렇다.


나는 결코 선하지 못했다.


아니, 선하지 않았다.


마교에게 굴복한 세가의 후손으로 태어났고.


마교를 자연재해로 치부하며 그에 관한 정보들을 피했다.


북해에 관한 정보를 얻고도.. 단순히 그들이 두려워 문주에게 마교를 저지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 자리에까지 오르며 손에 수많은 이들의 피를 묻혔다.


“…그런 말을 해주시는 노야께서 어찌 선하지 않다고 하겠습니까.”


“적어도 제겐..노야는 선인이십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소년을 쳐다보았다.


얼굴때문인가?


어째선지 나를 비웃는 것 처럼 보였다.


아니, 이건 내 비틀린 마음이 만들어낸 환상이다.


소년은 그저 다정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익양소가는..마교에게 굴복한 가문이었네.“


”그들의 주구가 되어 패악질을 일삼다가..천마가 죽자 그들에게 되레 멸문당했지.. 어쩌면 자업자득일지도 모르겠어..“


“그들의 피를 이은..나는 죄인일세..”


”그들이 그랬다고 하여..노야께서도 그들과 같아지는건 아닙니다. 노야가 스스로 그들을 비난하고 계신데도 어찌 노야와 그들이 같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런가.


나는 그들과 다르다고 할 수 있는것인가.


정녕 피를 뒤집어쓴 내가 그들과 다른것인가.


나는..그저 그들과 다르고 싶어서 말뿐인 비난을 하고 있는건 아닌가.


”그리..말해주어 고맙네..“


소년의 말을 들어도..


무언가 검은 것이 내 마음을 좀먹는 느낌이었다.


“그 누구라도..그리 대답했을겁니다.”


…적어도 이 소년은 나처럼 더러워지지 않았으면 한다.


“흐음…비급을 찾는다 하였나…그래, 그것의 수색을 도와주지.”


원래의 나라면..하지도 않았을 말을 잘도 꺼냈다.


동질감 때문일까…?


죄책감 때문일까…


…상관은 없겠지.


***


”정말..그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노인을 상대하는건 쉬웠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신의 사연을 다 털어놓아 내심 약간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지만 아마 [혼란] 덕분인듯 했다.


아무튼, 그 여파인지 노인의 눈에 죄책감이 가득하니 그저 조금 비위를 맞춰주면 됐다.


..중간에 사연을 듣고 비웃음이 나올뻔 하긴 했지만 말이다.


본인의 절반도 살지 못한 남자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다고 그렇게 신파극을 찍는단 말인가.


아아..정말 웃음을 참기가 힘들었다.


“물론이네..이 늙은이의 사연을 들어줬으니 그정도는 해줄수 있네..”


솔직히..내가 찾는것이 그 자하신공이라는 것을 알면 돌변해서 나를 죽일까 걱정이 되기는 한다.


그렇지만…저 눈을 보아라.


죄책감에 찌든 죽은 눈이 아닌가.


“정말…감사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아아..이거 고개를 들때까지 이 입꼬리를 진정시킬수 있을까 모르겠다..


이런것도..나름 재미있구나..


“오늘은 여기서 쉬고가게나. 내일 출발하지.”


“위층으로 올라오게.”


저벅- 저벅-


위층으로 올라가자 수많은 편지들과 문서들이 쌓여있는 탁자가 보였다.


“저것들은…?”


“하오문의 정보들이지. 그러고보니 자넨 내가 하오문도인건 어떻게 알고온건가?”


저게 다 정보들이라니..


하오문도들은 저런걸 다 외우는건가.


“원래는 내공을 배워보려고 무공서를 사려고 왔었지요. 노야께서 하오문도인지는 꿈에도 몰랐습니다.”


“음…기막힌 우연이군.”


글쎄..이게 정말 우연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쓰기]가 일부러 그런 상황에서 시작하게 했겠지.


푸드드득-


새 한마리가 열려있던 창문으로 들어왔다.


새를 쫓아내려고 다가가보니 발에 쪽지가 묶여있었다.


평범한 새와 그리 다르지 않은 생김새였으나 분명 전서구일테다.


“흐음..자네는 저 앞의 방에서 편히 쉬면 되네. 그동안의 노고가 만만찮았을 텐데 부디 조금이라도 해소하고 출발하는게 자네에게도 좋지 않겠는가?”


축객령이 떨어졌다.


아무리 그래도 하오문의 정보까지 보여줄수는 없다는거겠지.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별말을..”


나는 방문을 열고 방에 들어가 침상에 쓰러지듯 누웠다.


풀썩-


“…후우…다행히 살아남았네요..”


생각해보니 참 다사다난했던 화산귀환에서의 첫 날이었다.


시작하자마자 산적하고 추격전을 벌이지를 않나.


책을 사러 들어왔는데 웬 하오문도를 만나지를 않나.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요..”


짜릿했다.


처음으로 전투라 부를 수 있을만한 싸움을 해 보았고 고수의 기세를 맞아보기도 했다.


안전하기만 했던 현실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만족스러운 하루였다.


“후후..”


나는 [다시읽기]로 청진이 죽음을 맞이한 곳의 묘사를 다시한번 확인했다.


노인과의 대화 중간에도 잠깐 확인하긴 했었지만 어째선지 자꾸만 불안해졌다.


“으윽..”


피로가 쌓인걸까?


약간의 어지럼증이 나를 찾아왔다.


오늘은..무리하지 말고 일찍 자도록하자.


창밖을 한번 쳐다보니 환한 노을이 나를 반겨주었다.


“장관이네요…”


고층 건물로 가득찬 현대에서는 보기 어려운 광경.


그렇게 노을과 함께 무림에서의 첫날이 끝나갔다.


***


어느새 십만대산에 도착했다.


짧은 여행동안 나는 가장 정순한 내공을 모으는 심법, 육합공을 읽고 운기해보았지만 아직 단전을 만들지 못했다.


육합검도 검법서를 읽어보며 수련해보았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그저 첫날에는 어설프던 검이 조금 더 안정되고 계속해 같은동작을 펼칠때 오차가 줄어든 정도랄까?


“후우..결국 도착했네요.”


“그래..자네의 비급이 어느 지형에 있다고 했었지?”


하지만 그 성취도 이 노인 덕분이었다.


노인이 내게 기본적인 움직임에 조언을 주지 않았다면 성취는 더욱 느렸으리라.


그동안 노인에 대해서도 많은걸 알게되었는데.


대충 노인의 이름이 소재운이라는 것, 그가 호남의 지부장이라는 것, 생각보다도 이 노인의 죄책감이 상당히 짙다는 것 정도였다.


첫 만남에 유난히 호의를 보인것도 애초에 원래부터 큰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탓 인듯 했다.


“화산을 닮은 산의 동굴에 있습니다만..찾아주실 수 있겠습니까?“


”화산을 닮았다라..흠..내 한번 보고오지.“


노인은 옆의 나무를 박차고 허공으로 도약했다.


가뜩이나 나무도 높은데 그곳에서 도약하니 몇십 미터 상공까지 올라간 듯 했다.


노인은 허공에서 저 앞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사뿐하게 착지했다.


“화산을 비슷한 산은 찾았다만..맞는지는 모르겠군. 같이 가보지.”


”알겠습니다.“


노인의 말을 들으니 괜히 긴장되었다.


‘드디어…자하신공이…!’


나는 긴장과 기대를 품은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기 시작한지 반 시진쯤 되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이곳이네..나름 화산과 비슷하지 않은가?”


…화산을 직접 눈으로 본적이 없어서 모르겠다.


나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아쉽게도…화산을 가본적이 없는지라..그건 잘 모르겠군요..”


“음? 화산과 비슷한 산을 찾아야 하는데 화산을 가본적이 없단 말인가?”


‘아차..’


그만 말실수를 하고 말았다.


“하하..섬서에서 질 나쁜 흑도를 만나는 바람에 급히 빠져나왔었지요..”


“그런가…”


어째 노인의 눈에 담긴 동정이 한층 더 짙어졌다.


..뭐 좋게 생각하자.


“한번 올라가보게. 내가 자네의 비급을 볼수는 없지.”


하하..


참 좋은 양반이다.


“정말..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정말..참으로..이용하기 좋은 양반이다.


너무나 바보같아서 웃음이 자꾸만 새어나온다.


아아..


그러니까 그 나이까지 죄책감이나 달고 사는거지 않겠나.


멍청한 노인네.


저벅-저벅-


나는 혼자서 묵묵히 산을 올라갔다.


동굴이 보이지 않아 의아해 할때쯤. 


내 시야에 작은 구멍이 들어왔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동굴이었다.


”….드디어..!“


조급해지던 발걸음은 막상 목표를 찾자 점차 차분해졌다.


긴장해서일까?


아니면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일까.


마침내 동굴안에 들어서자 한 사람의 유해와 서책이 보였다.


관리되지 않았음에도 어딘가 신비한 느낌이 드는 유해.


바로 화산의 도사, 청진의 유해였다.


더욱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가 남긴 글귀가 보였다.


비록 내 몸은 이곳에서 잠드나


내 마음만은 머나먼 화산과 함께한다.


대화산파 십삼대제자 청진.


청진의 의지가 담긴.


얼마 남지않은 진기를 소비해가며 남긴 글.


내 마음이 서먹해졌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어떤 마음으로 이 글귀를 남겼을까.


시야가 흐려지고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툭- 투둑-


곧 나의 눈물이 바닥을 적셨다.


일생의 목표를 이룬듯 흘러내리는 눈물은 도저히 멈출생각을 하지못했다.


”소설 속의 당신의 이야기를 읽고 눈물을 흘렸지요. 이제는 그것을 현실로 마주하는군요.“


소설을 읽고 눈이 팅팅 부었던 내 모습이 기억의 바다에서 떠밀려왔다.


청진이란 사람에게 매료돼 그에 대한 정보를 쥐잡듯이 긁어모았던 기억의 파편또한 함께였다.


”나는 당신을 꽤나 좋아했습니다. 재능이 없기에 끝없이 노력해서 무공을 이해했다니요..“


”대단한 이야기지요..“


”아쉽게도…당신이 남긴 흔적은 화산에게 전달되지 않을겁니다.. 아니, 어쩌면 화산의 품으로 돌아갈수도 있지요..“


”다만..그에 앞서 더욱 가치있는곳에 쓰일테니 걱정 마십시오..“


눈물이 흐르는 눈과는 상반되게 내 입가에는 한없이 밝은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청진에게도 그만큼이나 기쁜일이 아닌가!


”당신의 흔적이 다른세계에도 남을테니 그 얼마나 고귀한 업적이 되겠습니까!”


나는 팔을 활짝펴며 아무도 없는 동굴에서 소리쳤다.


분명 성윤 혼자만이 있는 공간이었지만 그의 눈은 무언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기뻐하셔도 좋습니다!! 당신의 발자취가 이 세계를 넘어 차원에까지 영향을 미칠테니!!“


“하하..하하하핫!!!”


끝없이 들려오는 웃음이 마치 그가 실성한 듯 보였다.


그는 웃음을 흘리면서도 인벤토리에서 빙검을 꺼내 동굴 벽에 글귀를 새겼다.


그대의 혼은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으나


그대의 발자취는 다른세계에도 남으리라.


이방인 무명(無名)


“크크크큭….크흐흐흐…하하하하!!”


한 사람의 혼이 남겨진 동굴에 광소가 울려퍼졌다. 


광소를 터뜨리는 사내의 입은 한없이 기쁘게 웃고 있었으나, 사내의 눈은 더없이 구슬프게 눈물을 흘렸다.


동굴의 바닥은 눈물로 젖어갔고, 동굴의 공간은 웃음소리로 가득찼다. 


하나의 사람이 두가지 감정의 극에 달한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사내의 행동은 일각이 넘어도…일다경이 지나도 계속되었다.


***


나는 가까스로 웃음과 눈물을 멈추고 중얼거렸다.


“아아..그만 너무 흥분해버리고 말았네요..”


하지만 분명 청진도 저승에서 기뻐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리 있겠는가?


나는 머릿속을 채우는 상념을 잠재우고 아이템들의 정보를 확인했다.


[자하신공 紫霞神功 (Unknown)

화산의 내공심법에서 가장 난해하고 고강한 심법이다. 대기만성의 신공이며 경지에 다다를시 내공이 노을빛으로 물든다. 천하에서 세손가락 안에 드는 고절한 신공이다.] 


[매화검결 梅花劒結 (Unknown)

화산 최고의 검법이자 이십사수매화검법의 상위 검법이다. 총 여덟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천하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고절한 검법이다.]


“호오…역시 뛰어나네요…”


또 등급이 불명인건 찜찜하지만 내 기대를 완벽히 충족시켜주는 물건이었다.


이미 만연한 미소는 지워질줄을 몰랐다.


”하하..이제 단전만 만들면 될텐데요..“


단전만 만든다면 바로 자하신공으로 넘어가 내공을 긁어 모을 수 있다.


…두근두근 거린다.


터벅- 터벅-


 나는 무공서의 확인을 마치고 산을 내려왔다.


산을 내려가는 발걸음은 어쩐지 그 전보다 경쾌한 것만 같았다.


그렇게 시간을 신경쓰지 않고 걷다보니 어느새 저 멀리에 노인이 보였다.


”그래..원하던 것은 찾았나?“


”네.. 모두 노야 덕분입니다…“


…이대로 이 노인과 헤어져야 하나?


무언가 더 뽑아먹을 수 있을것 같은데..


아쉽다.


”그러면..이제 다음 계획이 따로 있는가?“


다음으론 섬서에 갈 예정이다.


섬서에서 은하상단으로 향하는 청명을 중간에 만나 대화를 할 것이다.


…내가 은근히 마교와의 관계를 내비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아아아..


상상만으로 짜릿하다.


청명의 마교에 대한 분노..


그것을 직접 볼 수 있다니..!


정말 이곳은 마약같은 세계다.


“섬서에..만날 이가 있어 그곳으로 가보려고 합니다.”


“섬서라…흑도놈들에게 위협을 받지는 않겠나?”


“….그 아이를 만날 기회는 지금 밖에 없을것 같아서..그래도 가보려고 합니다.”


만날 사람을 ‘그 아이’라 칭하자 노인이 의아한 기색을 보였다.


으음…어떤 관계로 할까..


그래, 역시 그게 제일 좋겠다.


“몇년 전에 헤어지게된..동생이 한명 있습니다. 수소문을 하고 있었는데 이전에 섬서에 잠깐 들렀을때 비슷하게 생긴 아이를 본 적 있다는 사람이 있더군요.“


“으음…그래..가족이 있었나..”


잠시 침음을 흘린 노인은 품에서 어떤 물체를 꺼냈다.


“이건…?”


노인에 손에 들린 것은 한없이 얇고 정교한 가면이었다.


정말 인간의 피부를 벗겨 만든것일까?


“인피면구라고 하는 물건이네..이것을 쓰면 적어도 그 흑도놈들에게 공격받지는 않겠지..”


사실...이 노인이 섬서까지 동행해주는 걸 기대했는데..


과한 욕심이었나보다.


“이런 귀물을…제게 주셔도 괜찮겠습니까?”


내가 예의상 묻자 노인은 깊이 잠긴 눈으로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자네를 볼때면..나의 어린시절이 겹쳐보인다네.. 그저 자네는..조금 더 편히 살았으면 하는마음에서 건네주는 것이니 부담갖지 말게나.”


아아…


정말 바보같기 그지없다.


그래요..잘 써주겠습니다.


다만.. 그 사용처는 당신이 생각하는 곳과 다를겁니다.


“정말..뭐라 할말이 없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꼭 은혜를 갚겠습니다!”


은혜를 갚는것은…당신이 더럽다고 생각하는 하오문의 멸문으로 하지요.


그때가 온다면..저 노인은 어떤 목소리로 울부짖을까..


아아..하루 빨리 강해져 그 비명을 들어보고 싶다.


그렇게 나는 꼭 은혜를 갚겠다는 다짐을 하며 노인과 헤어졌다.


그리고 이제 청명을 만나기 위해 섬서로 발을 옮겼다.


 ***


“성공했군요..”


노인과 헤어져 홀로 섬서를 향해 여행을 시작한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드디어 단전을 생성하는데 성공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따라했던 육합공이 조금은 이해되는 것 같았다.


단전을 만드는 방식은 의외로 그리 어렵지는 않았지만 많은 집중이 요구되었다.


자연에서 순수한 기를 끌어모으고 선천진기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회전시킨다.


그것을 선천진기를 완전히 감싼 작은 구가 만들어질 때까지 반복한다.


마지막으로 모은 기로 다시한번 작은 구를 감싸면 작은 단전이 만들어진다.


이와 같은 과정을 한번 시도하는데에 두시진 정도가 걸렸고 나는 네번째의 시도에서 단전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후우…생각보다는 빨리 만들어졌네요..”


앞으로 몇번 더 시도해야 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빨리 만들어졌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도중에 의복점에서 구매한 옷이 흠뻑 젖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무시하고 다시 내면을 관조함과 동시에 운기를 시작해보았다.


“….”


더없이 순수한 기운이 단전에 쌓여갔다.


비록 아주 조금밖에 되지 않는 기운이였으나 내공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은 나를 고무시키기에 충분했다.


[내공스탯이 생성 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단전을 얻을 시, 내공이 공유됩니다.]


시스템 창도 나의 첫 내공을 축하해주었다.


”이게..바로 내공…“


내공을 전신에 퍼뜨려보자 몸이 한층 가벼워졌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떠도는 다른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이건…?”


자연의 기.


정제되지 않은 기운이 내 몸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기가 탁하긴 하지만 마치 영약을 막 복용한 것과 같은 상태였다.


“..그런가요.”


왜 이런 기운이 내 몸에 있을까.


“..역시 그걸까요..”


생각나는 건 한가지.


바로 20 스텟의 마나였다.


그 마나가 내 몸을 떠도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상태창의 마나는 이런 방식이었던 건가요..”


비효율적이다.


순수함이 떨어져 안정성이 낮고.


단전의 내공이 아니라 육체를 강화시키지도 못한다.


기의 유형화는 아직 성공해보지도 못했지만 그 상황까지 가면 기의 낭비도 무척이나 심하리라.


이 마나를 효율적으로 탈바꿈시킬 방법은 하나.


“..흡수해야겠군요.”


마나를 내공으로 전환시켜 단전에 담는 것.


애초에 지금 내 몸의 상황은 영약을 복용한 것과 다르지 않다.


그저 그 기운이 가만히 있을 뿐이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태창으로 올린 것이라 그런거라고 추측할 뿐이다.


애초에 그 편이 훨씬 좋기도 하고.


일반적인 영약은 흡수하지 못한 기운은 몸을 빠져나가버린다.


그렇기에 영약을 먹고 바로 운기에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여유롭게 기운을 흡수할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말 기운의 손실이 없다면 육합공을 통해 혼탁한 마나를 정화시킬 수도 있다.


그렇기에 모두 흡수해버려 단전에 내공을 쌓는게 최선이다.


그리된다면.. 얼마나 강해질까.


마음같아선 지금 당장이라도 시도해보고 싶지만 무리다.


나는 오늘 처음 단전을 만들고 처음으로 내공을 쌓은 초보.


기를 다루는것에 익숙지 않은 내게 그런 시도를 하라는건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좀 더 내공에 대해 익숙해지고, 깨달아야만 한다.


***


열흘이 흘렀다.


나는 그동안 단전을 생성한 지역을 벗어나지 않은 채, 운기와 내공의 운용에만 집중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벽곡단을 최대한으로 구매해놨기에 식량은 충분했다.


그리고 나는 그 열흘동안, 이류의 경지에 올랐다.


내공을 한 신체부위로 옮길 수 있는 경지.


어디까지나 이류이기 때문에 가능한 성과였다.


”이류에서 일류로 가는거였다면 몇년이 걸렸겠지요..“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수도.


이류의 조건은 몸안의 내공을 움직여 신체의 한 부위에 담는 것.


이미 운기를 할때 자연의 기를 내 쪽으로 움직이게 하는데, 어찌 그런게 어렵겠나.


”..후후.“


나는 숨을 고르고는 지금까지의 성과를 모두 망라하여 정리하려는 듯 빙천신검을 들었다.


그리고는 자세를 취했다.


육합검(六合劍).


"상단세."


단전의 내공의 절반이 팔로 옮겨갔고 나머지 절반은 앞으로 일어날 일의 여파를 감당하기 위해 다른 신체를 고르게 강화시켰다.


내공을 머금은 팔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내려갔고,


이내 작은 소음이 터져나왔다.


파앙!!


검이 땅에 닫지 않았음에도 산길의 흙바닭이 일부 파여나갔다.


“..괜찮군요.”


어마어마한 신기는 아니지만 충분히 만족스러운 수준이었다.


“하하… 그동안 열심히 수련한 보람이 있네요..”


“그럼 이제는..”


마나를 흡수할 시간이다.


사실 고작 이류의 경지로 가능할까 싶지만 일류에 오르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터.


만약 실패해 죽더라도 상관 없다.


주화입마는 한번 들어서보고 싶기도 했으니.


나는 차분히 호흡을 가다듬고 운기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기를 자연에서 끌어와 정제한 후 단전에 담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자연에서가 아닌 내 몸안의 기를  끌어온다.


육합공으로 일차적으로 기를 순수하게 만든 후 담는다.


그 과정을 끊임없이, 집중해 반복한다.


운기를 시작한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후우…”


거의 다 되었다.


어느새 마나의 6할이 단전으로 이동했다.


조금만 더 한다면..!


쩌적-!


‘이런!!’


어디선가 들려오는 무언가에 금이 가는 소리.


나는 곧바로 내 몸의 이상을 알아챘다.


내가 천신만고의 노력을 들여 만든 단전에 금이 가고있었다.


‘마나의 양이…. 너무 많아요!‘


20 스텟에 달하는 마나를 지금 막 만들어진 단전이 감당하는 건 불가능했던 모양이다.


범람하는 마나의 격류.


그것이 단전에 몰아쳐 단전을 부수려했다.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여기서 잘못하면 주화입마에 든다.


..청명이 설매단을 먹고 겪었던 것과 같은 궤의 문제.


‘청명은..‘


청명은 어떻게 했었지?


어떤 방식으로 이것을 통제했었지!?


‘흐르게 두어라.’


그래, 청명은 그저 흘러가게 두었다.


그것이 도가의 가르침.


그리고 내가 익힌 것 또한 화산의 육합이다.


흘러가라.


그저 흘러라 마나여!


나는 억지로 잡으려 했던 마나의 통제를 완전히 풀고 기다렸다.


곧 막대한 마나가 단전을 덮쳤고.


퍼석-!


단전이 깨져버렸다.


’단전이 부서지다니, 이게 아닌건가요…!?’


아니, 이미 돌이킬 수 없다!


흐름에 몸을 맡겨야 한다.


단전이 깨진 복부에서 엄청난 통증이 느껴졌다.


깨져버린 단전이 몸에 퍼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그저 내버려두었다.


그게 정답이었던 걸까.


곧 마나의 격류가 잦아들었고, 단전의 조각은 몸을 한바퀴 돈 뒤에 다시 제자리로 찾아갔다.


완전히 움직임을 멈춘 마나는 다시한번 단전의 조각을 뒤덮는듯 하더니 이내 삼켜버렸다.


“끝났군요.”


더이상 아무런 미동도 없다.


나는 육합공을 운용해 기를 모은다음 마나와 단전의 조각을 감쌌다.


다시 한번 단전이 만들어졌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욱 튼튼하고 알찬 단전이.


띠링!


[모든 마나스탯이 내공스탯으로 변환되었습니다.]


[현실에서도 단전을 얻을 시, 즉시 모든 마나가 내공으로 치환됩니다.]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괜한 수고를 줄일 수 있는 호재였다.


나는 미소를 짓고는 내면을 관조했다.


“이렇게나 많다니..!“


새로운 단전에는 이전의 혼탁한 마나가 아닌 순수한 내공이 가득 차 있었다.


심상치않은 양의 내공이 모였길래 어느정도인지 심공의 묘사를 확인해보니 답이 나왔다.


무려 반갑자, 즉 30년의 육합기였다.


마나를 모두 내공으로 전환해 20년.


깨진 단전을 다시 흡수해 10년.


내공의 증진만이 아니라, 기에 대한 통제력도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 세계의 경지는 8개.


내공을 가진 삼류.


그 내공을 한 부위의 신체에 담을 수 있는 이류.


내공을 신체 외, 다른 물건에 담을 수 있는 일류.


기의 유형화가 가능한 절정.


강기를 만들어내는 초절정.


그 이후는 지금은 중요치 않다.


그리고 지금 나는 단숨에, 일류에 다다랐다.


말도 안되는 성장.


물론 검법에 대한 이해나 숙련이 턱없이 부족해 한 단계 아래의 이류와 싸워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경천동지할 성장임은 분명하다.


기연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으리라.


“하으…“


기연.


기연!!

 

그것을 내가 얻다니.


아아..


황홀하기 그지없다.


아아아..!!


과욕을 부리다가 몸이 터져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을 테지만..


완전히 기연을 흡수하니 더 바랄 것이 없구나!


“하하하하핫!!!!”


살인따위는 발끝조차 따라오지 못할 전율.


나는 한참을 미친듯이 웃다가 결국 기절했다.


참으로 운이 좋은 날이었다.


***


오랜 시간이 지났다.


며칠동안 걷기만 한걸 되새기면 허탈해질것 같아 정확히 셈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보름은 넘게 지났으리라.


그동안 인피면구를 쓰고다니면서도 많은 일이 있었는데, 돈이 떨어져 적당한 사람을 죽인다음에 금전과 옷을 가져가기도 했고 중간에 산적을 또 만나기도 했다.


뭐, 그놈들은 내공을 배운놈들도 아니었고 해서 다리랑 팔하나 잘리고 몰살시키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때문에 옷이 필요해져서 또 애꿎은 사람을 죽여야만 하기도 했다.


그래도 오랜만의 살인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드디어..서안이라니..!”


나는 서안에 들어서며 짧게 읆조렸다.


그동안의 고생을 생각하니 눈물이 나올것만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눈물이나 질질 짜고있을때가 아니다.


바로 청명을 만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때다.


그러려면..


“…객잔에 방을 잡아야하는데…“


어디가 객잔이지?


설마 저 큰 건물이 객잔인가?


거참..작은 마을에서만 머물렀다보니 이런 곳은 약간 당황스럽다.


“하아…완전 촌놈이 다 됐네요..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나는 적당한 행인에게 은하상단의 위치와 그와 가까운 객잔의 위치를 묻고 그곳으로 향했다.


당연히 그 행인이 도망치듯 돌아간건 덤이였다.


“후훗..그래도 이런 짓을 하니까 스트레스가 좀 풀리네요…“


상단 근처의 괜찮은 객잔을 찾았을 때는 달포치의 돈을 미리 내려고 했었는데 생각 보다 숙박비가 비싸서 보름정도만 미리 값을 내었다.


그렇게해서 잡은 방은 은하상단의 입구가 가장 잘 보이는 곳.


청명의 유무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방에 들어가 곧장 바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흘러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어느새 쏜살같이 칠주야가 지나갔다.


칠주야 동안 운기도 하지않으며 눈이 빠질정도로 밖만 쳐다봤지만 청명의 발끝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젠장…! 도대체 언제 오는거죠? 설마 이미 왔다 간건가요!?”


그동안 나의 마음 역시 조급할대로 조급해졌다.


설마 원작 시작 시점과는 다른 시간대인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하는 걸까.


수많은 의문들과 걱정들이 내 머리를 메우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까드득-


그래, 뭐라도 씹으니 조금 진정되는것 같다.


그렇게 성윤이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고있기를 일각.


드디어 어느 한 소년이 은하상단에 접근했다.


“….왔군요….!!!”


나는 곧장 대충 차림새를 정리한 후에 그 소년에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 조금 더 가까이서 보자 소년의 얼굴이 확연하게 보였다.


길게 묶은 말총머리.


가슴에 수놓아진 매화무늬.


무엇보다 그림과 완전히 같은 외모.


검존의 환생, 화산광견 청명이었다.


“….!”


나는 곧장 청명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물론 인피면구를 쓴 상태였다.


“….너는..네가..“


나는 더없이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겨우 한 마디를 입 밖으로 내뱉었다.


”보고싶었다…동생아..!!“


나는 청명을 끌어 안으며 울부짖었다.


더없이 처절하게.


한없이 처량하게.


그렇게 보이도록.


”…뭐!? 아..아니 잠깐..“


청명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청명을 끌어안은 채로 주저앉아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꽤 당황한 얼굴이리라.


정말..보지 못하는게 아쉽다.


“..이 앞에 내가 묵는 객잔이 있다. 거기서 회포를 풀자꾸나..“


나는 뭐라뭐라 중얼거리는 청명을 무시하고 손목을 잡아서 객잔까지 끌고왔다.


“이게 도대체 몇년만이더냐.. 이제는..다시는 헤어지지 말자꾸나…꼭..”


나는 그렇게 아련한 눈빛으로 청명을 한번 쳐다본 뒤 음식을 시켰다.


“으..으음..”


청명은 내 눈빛에 뭐라 말하지 못하고 침음을 흘렸다.


허공을 바라보는 눈동자를 보니 아마 장문사형 타령을 하고있을테지.


“혀..형님..?”


“하하..전에는 그냥 형이라 불렀지 않느냐..편히 부르거라..”


“으음…형 그게..사실은..내가 기억을 잃어서..”


…기억상실.


불쾌하다.


‘…하아.. 젠장.’


그래도 예상을 못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청명이라면 좀더 뻔뻔하게 나올줄 알았는데..


이것도 [혼란] 덕분인가?


생각보다 쓸모가 많다.


“…지금 무어라…..기억을..잃었단 말이냐..?”


순간적으로 휘청이는 연기를 하자 청명이 어쩔줄을 몰라한다.


“그러면..우리가 무슨 가문의 사람인지..왜 헤어졌는지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이냐..“


“하..하..하..이제야..겨우..재기할 기회를 얻게되었는데..“


“하늘은…야속하기 짝이 없구나..”


똑- 똑-


나의 눈물이 탁자의 나무를 적셨다.


“…그래도 서로 무사하잖아? 그럼 된거지…”


청명이 낮은 목소리로 변명하듯 말했다.


“아니…아직..방법이..있을 수도 있다..”


“내가..꼭 네 기억을 되돌려주마..!”


나는 주먹을 꽉 쥐며 다짐하는 척 했다.


물론 그럴수록 청명의 낯빛은 죄책감으로 썩어들어갔다.


”..기억을 되돌리는 방법은 없잖아? 굳이 찾아보려 하지마, 형.“


저말은 정말로 나를 걱정해서 하는 말일까.


아니면 자신이 사라질까 걱정해 하는 말일까.


..나도 기억을 되찾고 싶지는 않다만..


어쩐지 공감이간다.


”아니다..그들…그들이라면 가능 할것이다..!“


”그들…?“


청명이 의아하다는 기색과 걱정스러워 하는 기색을 내보였다.


”이곳에서 할 말은 아니구나. 내가 머물고 있는 방이 있으니 그곳에 올라가 말해보자꾸나.“


”…그래.“


“..기억을 잃고나서는 무엇을 했느냐.”


“나는..화산에 입문했어.“


후진없이 바로 박아버리는구나, 청명아.


”화산이라…“


”그곳은…이미 망한 문파가 아니더냐… 왜 그런곳에..“


청명은 나를 신념이 담긴 눈으로 응시하며 설명했다.


”…기억을 잃고서 나는 거지로 구걸을 했었어.. 그때 화산의 도사가 나를 데려가줬지. 이미 화산은 내 고향이야. 그러니까 나는 앞으로도 형이랑 같이 갈수는 없어. 나는 앞으로 화산에서 수련하며 은혜를 갚을거야.“


”…그게..네 선택이라면 존중하겠다.“ 


그 뒤로는 식사와 조용히 그동안의 일을 묻는 대화가 지속되었다.


기억상실증을 연기하는 청명은 대충 어디까지 기억을 잃었는지 기준을 정해 답하는 듯 했다.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큰 문제없는 대응을 보면 청명은 연기에도 재주가 있는 모양이다.


”하하..그래, 이만 올라가서 더 대화를 나눠보자꾸나.”


방에 올라온 우리는 조금 더 진지한 대화를 시작했다.


”성현아..너는..천마신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성현은 내가 생각한 청명의 원래 이름이다.


”….형.“


내가 질문을 마치자 청명의 얼굴이 마치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


‘…대단하네.’


그저 질문을 한것 뿐인데도 뿜어져나오는 이 살기.


내가 마교와 손을 잡았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간 목이 베이는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강했다.


”그 새끼들은 신교같은게 아니야. 마교(魔敎)지. 악마를 믿고 스스로 악마가 되기를 자처하는..쳐죽일 놈들. 그런놈들을 어떻게 사람이라 부르겠어.“


”그게..네 생각이냐.“


”이건 내 생각이 아니라 그저 사실일 뿐이야. 결코…변하지 않는 사실.“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마는..우리는..익양소가라는 망한 세가의 후손이다..“


”뭐!? 그 마교에 붙어먹어서 아양떨던 놈들!?“


청명이 말도안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뱉었다.


”..그건 어찌 아느냐..?“


”마교와의 싸움에 모든걸 희생한 화산의 문도인데…모를리가 있겠어?“


“..그런가…사실…얼마전에 신교에서 내게 접촉해왔다. 곧..천마가 부활할거라 하더구나..“


콰앙-


청명이 바로 앞의 탁자를 내리쳐 부쉈다.


”그게…무슨..말도 안되는..!“


흥분한 청명의 기색에서 분노와 두려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자신의 친우들을 죽인 천마에 대한 분노와 그 하늘에 닿은 강함에 대한 두려움.


…그 청명도 두려움이라는게 있구나 싶어 꽤나 놀랐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말해봐..형. 천마가..부활할거라고!?“


청명이 내 멱살을 붙잡고는 소리쳤다.


마치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무사할수 없을거라 말하는 듯한 기세였다.


"진정해라, 동생아. 나도 그것에 대해 많은것을 알지는 못한다."


“아..”


청명이 돌연 탄성을 내뱉더니 내게 사과했다.


“..미안해, 형. 너무 흥분해서..”


“아니다..그 누구라도 너와 같이 행동할 것이다.“


나는 옷 매무새와 목소리를 가다듬고는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얼마전.. 그래, 달포 정도였나. 그정도 전에 흑의의 사내가 내게 접촉해왔다. 그가 자신을 칭하길 천마신교의 집법사자라 했었다.“


”그는..“


나는 잠시 말을 끊고는 내 몸을 감싸며 두려움에 떠는 듯한 몸짓을 취했다.


”..광기 그 자체였다.. 그가 신교에 관해 말할때면은 요사스럽고 사이한 기운이 뿜어져나와 나를 옥죄었었다.“


”그가 내게 부탁…아니 명령하기를 곧 중원을 침공할 것이니 내통자로서 살아가라고 하더구나. 그러면서 일이 잘 풀린다면..원하는 모든 것을 얻을것이라고..그리 말했지..”


말하면서 슬쩍 청명을 곁눈질해보니 분에 겨워 부들부들 떠는 청명의 모습이 보였다.


그래, 그것이다.


언젠가는 그 분노를 나에게도 쏟아내주거라.


아아..그건 얼마나 황홀할까…


”너는..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내가 청명에게 의사를 묻자 청명은 다소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다.


”들어볼 가치도 없어. 그 새끼들의 힘을 빌려서 부귀영화를 누리면 뭐하겠어? 인간임을 포기하면서 까지 찾을 정도로 그게 그렇게 중요해!?“


“으음…그래, 네 의견은 잘 알겠다.“


”…하하…은하상단을 찾아가려고 했다 했지? 어서 가려무나.”


나는 찔리는게 있다는 듯이 황급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형… 만약..형이 마교와 손을 잡으면 내가 손수 대가리를 깨주러 갈테니까.. 잘 생각해!!“


나는 그 말에 그저 잔잔한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래.. 다음에 보자, 형.“


“다음.. 그래, 기회가 된다면..”


청명은 꺼림칙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은하상단으로 떠났다.


아아아아…


만약 네가, 타락해서…천마를 부르짖는 네 형을 본다면…어떤 반응일까…?


“아아아… 그 얼마나..”


황홀한 광경일까…!!


검총의 이야기가 기다려지는 구나..


[다시쓰기]에 자동진행이란게 없는게 너무도 아쉽다…


앞으로 기다려야하는 시간이 두렵다…


이 쾌락을!! 


느끼지 못하는 시간이 무섭다…


“하아아..정말…너무..기대되는군요. 아아..”


나는 가쁜 한숨을 내쉬었다.


***


또 한번 약간의 시간이 지났다.


이제는 은하상단의 이야기가 끝나고 화산신룡의 명성이 들려오기 시작한다.


그동안 나는 육합공에서 자하신공으로 넘어가려 시도해봤지만 아직 기초가 부실해서인지 자하신공은 아직 내게 너무 어려웠다.


매화검결도 비슷한 경우여서, 결국 나는 그동안 또다시 육합검과 육합공만을 수련했다.


“..스승이 있다면.. 좋을텐데요.”


정식으로 화산에 입문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러면 행동반경에 제약이 생긴다.


 뒤에서 청명을 기만할 내게는.. 더없는 악수(惡手)이리라.


“..앞으로는 무엇을 해야할까요..”


앞으로는 이년간의 공백기가 남아있다.


“2년이라…”


기다리는 것이 있는 내게는 참으로..길고..긴 시간이 아닐수 없다.


“하아…역시 어디 적당한 산이라도 찾아서 폐관수련을 하는게 나을까요..”


앞으로의 선택지는 두가지.


하나는 이년동안 수련하며 힘을 키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탑으로 돌아가 힘을 쌓고, 다시 돌아와 나만의 세력을 꾸리는 것.


그리고 내 선택은 첫 번째였다.


”앞으로…이만큼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없지요… 그동안..최대한 세력을 만들어놔야..“


내가 원하는 판을 짜기 좋다.


2년동안…아무리 노력해도 큰 세력을 만들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어느정도의 자금을 갖고, 적당한 강자 한두명이 있는 조직을 만든다면.. 앞으로의 활동이 훨씬 편해질테니…


결국 조직은 필요하다.


“후…그럼 결정됐네요.”


결정을 내린 나는 마음속으로 한 단어를 속삭였다.


‘다시쓰기 종료.’